우주력 796년 3월 27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에리히 발렌슈타인.

  최고평의회 빌딩의 기자회견실에는 많은 매스컴 관계자가 모여 있었다. 나와 트류니히트가 안으로 들어가자 카메라맨이 찰칵찰칵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눈부시다. 이래서 사진은, 아니 매스컴은 좋아하지 않는다. 트류니히트가 단상 위에 오른다. 나는 그 뒤에 섰다.

  "오늘, 동맹 의회에서 최고평의회 자문위원회의 창설이 승인되었습니다."
  다시 한층 더 플래시가 심하게 터져 나왔다. 익숙해 보이네. 트류니히트. 침착하게 프래시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눈부시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면 얼굴을 노골적으로 찡그렸을 거다.

  "이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동맹은, 아니 우주는 앞으로 커다란 변화를 목도하게 됩니다. 그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려면 관청이 가지는 분파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겠죠."
  어떤 시대든 어떤 나라든 관료의 텃세라는 건 심각하지. 특히 신참자는 괴롭힘 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걸 왜 내가…….

  "저는 그 넓은 시야를 최고평의회 자문위원회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각 위원회에서 우수한 인재를 모아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검토하여 최고평의회의 새로운 전력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 위원회에서 우수한 인재라는 거, 정말 오는 거야? 애물단지들의 오합지졸로 끝나는 거 아냐? 그런 결말이라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 쪽이 좋겠지.

  "초대 최고평의회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리히 발렌슈타인 대장입니다."
  트류니히트가 날 돌아보며 팔로 가리켰다. 빙그레 웃고 있다. 버라이어티 방송의 사회자 같군. 프래시가 다시 터져나왔다. 눈부시다고. 불쾌하다. 조금 얼굴을 찡그리고서 트류니히트의 옆으로 다가가자 트류니히트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환영했다. 친밀함을 어필하려는 거냐?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지?

  "의장, 발렌슈타인 대장은 최고평의회 자문위원장에 취임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군대를 퇴역한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유사시에는 현역 복귀하여 군무에 임하게 되겠죠."
  어딘가의 기자,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남자와 트류니히트의 대화에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퇴역이라고 해도 말이지. 형식적인 거니까. 이게. 제1특설함대의 후임 사령관은 정해져있지 않다. 춘우 참모장이 일시적으로 사령관 대리를 수행하고 있지만, 후임이 정해질 기색이 전혀 없다. 이상하지? 어딜 어떻게 봐도 날 위해 자리를 비워두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리라고 말했다고. 이런 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누구도.

  "약간 연령이 너무 적은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일부 들려오고 있습니다만?"
  이번엔 7대 3 머리의 중년인가. 재미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저에게는 그런 걱정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만. 어느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
  "그의 젊음이 직무에 있어 장해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구교, 페잔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지적한 건 발렌슈타인 대장이었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마시길."

  7대 3! 일부의 목소리라든가 애매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너무 젊으니까 불안하다, 싫다고 확실하게 말하면 되지 않는가. 괜히 돌려 말하니까 트류니히트에게 바로 반격을 먹는 거다. 정말이지 쓸모가 없다. 난 이런 일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좀 더 팍팍 말해라. 언제라도 그만둬 줄 테니까.

  "정부의 최대 현안은 제국과의 화평입니다만, 최고평의회 자문위원회가 그 현안을 맡는다고 들었습니다. 틀림 없습니까?"
  "틀리지 않았습니다. 외교위원회가 세워질 때까지 자문위원회가 그 직무를 대행하게 되겠죠."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아마도 "저런 애송이가 가능한 건가"라고 말하는 거겠지.

  "정부는 제국과의 화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발렌슈타인 대장은 망명자입니다. 그 입장이 화평 문제에 끼칠 영향을 트류니히트 의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또 안경이다.
  "영향이라고 한다면?"
  빙그레 웃으며 트류니히트가 물었다. 너구리구만. 기자가 무슨 뜻으로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화평 교섭에 있어 제국측에 유리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가, 그런 뜻입니다."
  말하기 어렵다? 도저히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 안경은 비아냥에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에 대해서 싫어하는 거겠지. 망명자 애송이가 군부, 정부의 상층부에 있다니 좋게 보일 리가 없다. 트류니히트가 웃었다.

  "그가 군대에서 세운 공적을 잊으셨는지? 무훈뿐만이 아닙니다. 병사를 지키기 위해 총사령관을 해임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자기 보신이나 사리사욕으로 움직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 정도로 성실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응응하고 끄덕이는 모습이 있다. 너희들 말이지. 트류니히트에게 간단히 설득 당하지 말라고.

  나는 정말로 최고평의회 자문위원회 위원장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그걸 다들 모여서 등을 밀어대고는. 여기서 내버리는 건 심하다느니, 내 도움이 필요하다느니 입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속내를 따지자면 성가신 일들을 모두 내게 떠밀려는 거겠지.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이 놈들은 렘샤이트 백작까지 불러서 날 설득했던 거다.

  "제국인 3천만 명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의 협력이 필요하다. 트류니히트 의장들만이 아니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도 경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어."
  3천만 명인가. 거절할 수 있을까보냐. 살아있는 놈의 일보다 자신이 죽인 인간에 대한 걸 듣는 쪽이 아프다. 3천만 명이라는 숫자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하겠지.

  "발렌슈타인 대장. 귀하는 평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질문한 것은 중년 여성기자였다. 왠지 싫은 눈빛이다. 이상하게 달라 붙는 듯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때때로 있단 말이지. 이런 눈을 하는 녀석. 이쪽을 곤란하게 만들고 기뻐하는 거다. 고양이가 생쥐를 가지고 놀면서 재밌어 하는 거라고 할까. 뭐, 조금 돌려서 말할까.

  "전쟁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제국과의 화평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하는 열성 화평추진파라고 들었습니다만."
  "열성인가 아닌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주가 평화롭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 기뻐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상한 스위치라도 눌렀나?"

  "그건 귀하가 망명자라는 점과 관계가 있습니까?"
  내가 망명자니까 이 이상 제국인을 죽이고 싶지 않다. 따라서 화평을 바라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개인적 감정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비판하고 싶은 걸 거다. 지긋지긋하네. 쓰레기 년이. 트류니히트, 넌 참 대단해. 이런 쓰레기 놈들을 상대로 뒤틀리면서도 정치가를 계속하고 있으니까. 나는 도저히 무리다. 빙그레 아줌마에게 웃음 지었다.

  "유감이지만 관계 없습니다.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전쟁이 질렸다, 살인은 지긋지긋하다, 그게 평화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그건."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다. 꼴 좋네. 한 번 더 밀어 붙일까.

  "농담입니다. 재미 없었습니까?"
  "……."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웃어도 좋을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은 이 이상 전쟁을 계속하면 살인이 좋아질 것 같아서 무서워졌기 때문입니다. 그건 중독성이 있으니까요."
  후후훗, 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안면이 창백하다. 통쾌하네. 이거야말로 중독성이 있다. 트류니히트는 쓴웃음 짓고 있다. 역시 넌 성격이 나빠.

  그 뒤에는 성가신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적당히 끝내고 최고평의회 회의실로 트류니히트와 함께 향했다. 때때로 트류니히트가 쿡쿡하고 웃었다. 역시 난 이 녀석이 싫다. 날 가지고 놀려고 하니까 말이다. 회의실 안에 들어가자 박수로 환영을 받았지만 무시하고 원탁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훌륭하군. 이걸로 매스컴 무리도 자넬 얕보지 못하겠지."
  "말했잖은가? 레벨로. 그는 정치가에 재능이 있다고. 내가 보기에 군인보다 정치가 쪽이 적성에 맞을 걸세."
  레벨로와 트류니히트의 대화에 다들 끄덕였다. 살인자보다 사기꾼의 적성이 더 맞다고 들어도 조금도 기쁘지 않다. 한숨이 나올 것 같다.

  "헌데 자문위원장에게 묻고 싶네만, 제국과의 화평 교섭, 자네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생각인지 확인하고 싶네만."
  네그로폰테가 살피는 듯한 표정으로 확인해왔다. 화평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 군의 예산이 좌우된다. 국방위원장으로서 신경 쓰이겠지. 다른 이들도 내게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심으로는 "예산이~"라고 소리치고 있겠지.

  "신속히 화평 교섭을 행하여 조약을 체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교섭이 길어지면 시민들 사이에서 화평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교섭 중단의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화평 교섭 그 자체보다 양국 수뇌에 의한 정상회담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라, 시선이 강해졌군.

  "정상회담으로 화평 조약의 큰 틀을 합의합니다. 나머진 그 합의에 따라 교섭을 진행하면 되겠죠. 그러는 편이 부드럽게 화평 교섭이 진행되리라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8월까지 정상회담을 행하고 싶군요."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타렐 부의장이 헛기침을 했다.

  "확실히 정상회담으로 합의가 된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네. 하지만 가능할까? 지금까지 국교가 없었던 양국이다. 갑자기 정상회담이라고 해도 제국은 망설이지 않을까. 우리 쪽도 시민들이 동요할테고 의회도 시끄럽겠지. 이것저것 조건을 달 것이 틀림 없어. 간단하겐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네만……."
  응응하고 다들 끄덕이고 있다. 안심해라. 내가 지혜를 빌려주마. 원작지식이라는 이름의 지혜를.

  "정상회담의 명목을 화평 교섭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동맹 시민, 제국 신민이 납득할 명목이라면 좋겠죠."
  다들 의심쩍은 표정이다.
  "그런 명목이 있을까?"
  "있습니다. 타렐 부의장."
  훗, 듣고 놀라라.

  "포로교환입니다."
  내가 선언하자 몇 사람인가가 "포로교환"이라고 중얼거렸다. 어라? 반응이 좀 좋지 않군. 아무래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동맹, 제국에는 포로가 각각 2백만 명 정도 있습니다. 그걸 교환하는 겁니다. 포로교환은 군부가 아니라 정부가 행합니다. 조인식은 이제르론 요새에서 양국 정상에 의해 행합니다. 어떻습니까?"

  이곳저곳에서 "으음"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겨우 납득한 것 같다.
  "그렇군. 포로교환인가. 조인식을 구실로 정상회담을 한다는 건가."
  "이거라면 동맹시민도 반대하지 않겠지. 아니 대찬성일 거다."
  "제국도 말이지."
  "의회도 찬성할 것이 틀림 없어."
  흥분하지 말라고. 그렇게.

  "하지만 괜찮은가? 이제르론 요새로 가는 건 위험하지 않나? 경우에 따라선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다고."
  "괜찮겠지. 조인식이 무사히 끝나면 포로교환이 행해지게 된다."
  "그렇군. 그렇겠지."
  그 말대로다. 문제는 없다. 지금의 제국에는 포로교환을 반려할 만한 여유가 없다. 민심을 짓밟을 수 있을 정도라면 귀족들을 페잔에서 처리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로교환은 정부의 구심력을 높일 수 있다고 기뻐하겠지.

  "괜찮다면 포로교환과 정상회담에 대한 건, 렘샤이트 백작과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질문하자 다들 트류니히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걸 받고 트류니히트가 끄덕였다.
  "좋겠지. 잘 되면 단숨에 화평에 다가갈 수 있다. 교섭해 주게."

  "알겠습니다. 진전이 있으면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문위원회는 겉으로는 외교위원회, 통상위원회의 설립 준비를 하고 있는 걸로 하겠습니다. 화평 교섭은 그 전망이 선 다음으로. 매스컴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알겠다. 그걸로 좋아. 다들 괜찮겠지?"
  트류니히트가 재확인하지 다들 끄덕였다. 뭐, 이걸로 조금은 속일 수 있겠지.


우주력 796년 3월 27일. 하이네센. 율리안 민츠.

  "제독, 무슨 생각 하세요?"
  "응, 뭐 이것저것."
  거실에서 제독이 홍차를 마시면서 대답했다. 아까까지 양 제독은 TV를 보고 있었다. TV는 트류니히트 의장을 비추고 있었지만 채널을 바꾸지 않고 계속 보고 있었다. 의장을 싫어하는 제독에게는 드문 일이다. 발렌슈타인 제독이 나왔기 때문일까?

  "발렌슈타인 제독은 퇴역해버렸네요."
  "응."
  "군에 있어 큰 손실이네요. 제독."
  "그건 어떨까?"
  어라, 아닌가? 큰 손실이 아니야?

  "제1특설함대 후임사령관은 정해지지 않았어.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건."
  "그래. 발렌슈타인 대장을 위해 남겨둔 거라고 생각해. 의장이 말한 유사시에는 현역 복귀라는 건 빈말이 아니야."
  그렇구나.

  "하기야 현역복귀할 정도의 사태가 일어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화평인가요?"
  "응. 발렌슈타인 대장은 열성 화평추진파니까.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그건 누구나 인정하고 있어."
  양 제독이 한 모금 홍차를 마셨다. 뭔가 마음이 여기에 없다는 느낌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군에 있어선 화평 쪽이 더 큰 손실이겠지. 정부 내부에선 지금부터 예산 때문에 시끄러운 것 같아."
  "국방비 삭감 때문인가요?"
  양 제독이 끄덕였다.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다. 화평이 맺어지면 국방비를 삭감할 수 있게 된다. 국방위원회는 어떻게든 예산을 지키려고 하고 다른 위원회는 예산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네그로폰테 위원장은 신임이니까. 아무래도 역학 관계로는 다른 위원장에게 밀리겠지. 국방비를 지킬 수 있을지 어떨지……, 특히 레벨로 재정위원장은 옛날부터 국방비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던 사람이니까……."
  "국방비, 줄어들겠네요."
  "그렇겠지"라고 제독이 끄덕였다.

  "네그로폰테 위원장이 믿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군은 발렌슈타인 대장에게 의지하게 될지도 몰라. 그의 군에 대한 영향력은 퇴역하기 전보다 더 강해질지도 모르지."
  그거일까? 양 제독이 생각하고 있던 건. 제독은 발렌슈타인 대장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걸 걱정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렌슈타인 대장은 화평추진파인 거죠? 군에 있어서 예산 삭감을 일으킨 인물이라고 기피하는 인물이 아닌가요?"
  그러니 군대에서 퇴역시키고 정부 쪽으로 가도록 내몬 것이 아닐까?
  "반대야. 율리안. 화평이 실현되면 발렌슈타인 대장의 정부에 대한 존재감은 일찍이 없을 정도로 막대해지겠지. 군은 좋든 싫든 상관없이 그에게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아."
  제독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화제를 바꾸는 편이 좋을까?

  "제독, 학교에서도 다들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습니다만, 정말로 화평이 가능할까요? 잘 실감이 나지 않는데요."
  내 말에 양 제독이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지. 150년이나 전쟁이 이어져 내려온 거야. 화평이라고 말해도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말이지, 율리안."
  "네."
  제독은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지긋이 날 보고 있다.

  "발렌슈타인 대장은 진심이야. 그는 정말 화평을 맺으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그가 진심이라면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해."
  "……."
  "내가 너무 지나친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
  양 제독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나친 생각? 무슨? 묻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묻지 못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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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3월 20일. 하이네센, 우주함대사령부. 시드니 시톨레.

  「여어, 시톨레. 지금 통화 가능한가?」
  "유감이지만 바쁘다.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각 함대의 결제문서가 산처럼 쌓여 있다. 입원하고 있었던 때가 그리워. 레벨로. 내 인생 최고의 나날이었군. 잃어버린 황금의 나날이다."
  레벨로가 고개를 뒤집으며 크게 웃었다.

  농담이기만 한 건 아닌데 말이지. 이번 쿠데타는 군부만이 아니라 경제계까지 참가자가 섞여 있다. 따라서 그들을 조사하는 조사위원회의 멤버는 군부, 법질서위원회의 합동 팀이 되어 있다. 그들의 죄목은 국가반역죄가 되니까 처벌하는 건 동맹의회가 되겠지. 아마도 나도 증언을 요청 받게 될 것이다. 성가신 일이다.

  「그럼 기분 전환으로 내 이야기라도 들어보는 건 어떤가?」
  "기분전환? 과연 전환이 될까? 뭐, 좋겠지.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가?"
  「퍼레이드 식전이라느니 쇼라느니가 끈나고 겨우 최고평의회에서도 화평을 검토하게 되었네.」
  "좋은 일이군. 이제 제대로 일에 착수했다는 거겠지."
  「그렇다네.」
  레벨로가 끄덕였다.

  「검토하는 단계에서 바로 우리의 불비함을 깨달았다네.」
  "흠, 그게 뭔가?"
  「놀라지 말게. ……외교를 할 관청, 즉 외교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아.」
  "허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실소했다.

  「웃지 말게. 시톨레. 우리들은 정말 곤란해하고 있다네.」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지금까지 제국과 사이에 외교따위 없었네.  관할관청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아. 누구도 곤란하지 않았으니까."
  「전쟁이 계속 되었던 것도 일부는 그 때문일지도 몰라. 있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가?」
  "부정할 수는 없군."
  일제히 둘이서 웃었다.

  자유행성동맹이 성립했을 때, 언젠가는 제국과 접촉하는 일이 있으리라 당시 위정자들은 생각했을 터다. 전쟁이 일어나리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전쟁을 끝낼 때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걸까? 그들은 국방위원회는 만들어도 외교위원회는 만들지 않았다. 제국과 접촉하는 건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몰랐다. 외교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도 개점휴업 상태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동맹시민에게서 세금 낭비라고 비난을 받으리라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 150년이나 계속 되리라 생각했을까? 혹시 150년 계속 되리라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도 외교위원회를 만들지 않았을까? 가공의 이야기지만 비난을 받아도 외교위원회를 만들고 존속을 계속 했다면 동맹시민의 머리에는 항상 화평이라는 문자가 있었을 것이다. 화평은 무리라도 휴전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괜찮았지. 하지만 제국 사이에 화평을 맺는다. 그걸 항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관할관청이 절대로 필요하네. 철밥통 공무원이 늘어나는 건 좋지 않지만 관할관청이 없는 건 그보다 더 곤란해.」
  "뭐, 그렇겠지."
  새로운 관청이 생기면 그만큼 지출이 늘어난다. 재정위원회로서 좋지 않은 일이겠지. 하지만 말이지, 레벨로. 문제는 지출만큼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다. 150년 계속된 전쟁이 끝난다면, 평화를 지속할 수 있다면 싼값이다.

  "필요성은 인정하네. 하지만 이제부터 만든다고 해도 시간이 걸리겠지. 화평 문제는 서두를 필요가 있어. 일시적으로 어딘가의 위원회를 위탁하는 건 불가능한가?"
  레벨로가 고개를 저었다.
  「사무 방면은 누구도 맡고 싶어하지 않아. 다들 자신들 문제로 손바닥이 한가득이야. 화평이 맺어지면 국내 개발에 예산이 돌아오게 되네. 지역사회개발위원회, 천연자원위원회, 경제개발위원회는 당연하고 다른 위원회도 자신 쪽으로 예산을 돌리기 위해 필사적이야.」

  "화평 문제는 동맹의 안전보장에 관한 문제다. 국방위원회에게 위탁하는 건 어떤가? 싫다고는 하지 않겠지."
  「무리일세. 신임 위원장은 자기 쪽의 예산을 지키기 위해 군의 재편 문제로 바빠. 네그로폰테와 국방위원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
  "……."
  침묵하는 나에게 레벨로가 씨익하고 웃었다.

  「국방비는 크게 줄어들게 되네. 시톨레. 전쟁이 계속 되면 무기탄약의 소비가 줄어들어. 함선 수리비도 줄어들고 손실함의 보충도 줄어드니까 신조함 건조 계획도 재검토 해야 하네. 수당도 줄어드니 인건비도 감소하게 되고, 아아, 그리고 부상자가 없으니 의료품도 줄어들지.」
  "어이어이."
  멈추게 하려 했지만 멈추지 않는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사라진 것도 크네. 저것의 유지비가 사라졌으니까. 매년 2회의 정기검사와 운용훈련, 가볍게 볼 수 없는 금액이지.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지만. 건설비를 포함하면 얼마나 큰 낭비인지…….」
  "발렌슈타인이 말하더군. 저게 없었다면 주전파가 폭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이네센 방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이야."
  「위로도 되지 못하는군.」
  레벨로가 흥하고 코를 울렸다.

  「그래서 말일세. 각 위원회는 화평 문제를 다룰 여유가 없어. 지금은 5월에 있을 잠정예산을 의회에 제출하고 있지만, 이건 문제 없이 승인 되겠지. 문제는 그 후다. 5월까지는 본예산을 편성하게 되지만 어디든 누구든 다들 예산 획득을 위해 혈안이 되겠지. 뭐, 재정위원회에선 어느 정도 시안은 만들어 뒀어. 그것과 맞춰서 예산 편성을 하게 되겠지만, 전쟁이나 다름 없는 소란이 될 걸세. 경우에 따라선 1개월 더 잠정 예산을 만들게 될지도 몰라.」

  전쟁인가. 확실히 그렇다. 어느 위원회도 예산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전쟁 때문에 군부가 우선되었다. 그게 사라지면 앞으로 억눌러왔던 만큼 예산을 요구하게 되겠지. 군대에게 있어 겨울이 오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사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화평 문제는 어떻게 할 건가? 누구도 받지 않는다면 트류니히트 의장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건으로 우리들도 생각했네만…….」
  어물거리는군. 레벨로는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안 좋은 건가?"
  「안 좋은 일이 되어가고 있어. 의회가 움직이고 있다네. 트류니히트도 머리를 감싸쥐고 있지.」
  의회? 동맹의회가 움직이고 있다? 무슨 말이지?

  「의회 일부에 화평문제를 검토시키자는 움직임이 있네. 구체적으로는 외교심의부회를 만들어 거기서 화평문제를 검토시키고 정부에 의견을 제출하게 하려 하고 있어.」
  "……화평 교섭에 참가하고 싶다는 건가. 의견을 취합하자는 의미에선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의회의 불만을 잠재우는 기회도 되겠지."
  레벨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만이라면 좋을텐데.」
  "아닌가?"
  내 질문에 떫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들은 정치적 인기를 노리고 있다네. 주전파가 동맹시민들에게 받아들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보고 화평론으로 점수를 따려고 하고 있어. 그들이 생각하는 화평론이 어떤 건지 예상할 수 있는가?」
  "아니, 상상도 할 수 없군."
  레벨로가 흥하고 코를 울렸다.

  「주된 요구는 이제르론 요새의 양도, 페잔의 할양, 입헌군주제로 정치체제 이행이지. 도저히 불만을 잠재우기만 하리라 생각하긴 어려워.」
  한숨이 나왔다. 주된 요구라는 거니까 다른 구체적인 요구는 더욱 많겠지. 그렇군. 주전론이 힘을 잃은 이상 달리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게 조금이라도 제국에게서 이득을 얻고 싶다, 얻어야만 한다는 슬로건…….

  "무리로군. 제국이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무 생각도 없겠지. 단지 소란을 피워 눈에 띄고 싶어할 뿐이야. 동맹 시민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로 말이지."
  "……."
  「트류니히트에게 화평 문제를 맡기면 그들은 멧돼지처럼 트류니히트에게 돌격하겠지. 말꼬리를 잡고 난동을 피울 게 눈앞에 선해. 클레이머처럼 말이지. 각 위원회가 이 문제를 받지 않는 것에 이런 이유도 있네. 성가신 일은 사양이라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할 건가?"
  레벨로가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최고평의회 직속의 자문기관을 만드려고 하네.」
  "거기서 화평문제를 검토하게 하자고?"
  「그렇지. 그리고 자문기관의 책임자에겐 정부의 토의에 참가하게 하여 의장의 방패 역할을 맡기려고 하네.」
  "다시 말해, 외교위원회 대신인가?"
  「그것만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자문기관에는 화평문제만이 아니라 갖가지 문제를 검토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네.」

  "갖가지, 라고한다면?"
  「화평이 실현되면 동맹은 크게 변하게 되겠지. 정치, 경제, 군대, 사회, 갖가지 분야에 영향이 미칠 걸세. 그걸 검토하게 하여 정부에 조언하게 하네.」
  "상설 조직으로 만드려는 건가?"
  레벨로가 끄덕였다.

  「명칭은 최고평의회 자문위원회. 멤버는 각 위원회에서 한 명씩, 서기국에서 한 명, 그리고 따로 군부에서 한 명, 위원장은 최고평의회가 선출할 걸세.」
  "……."
  「위원장은 최고평의회에 상시 출석하네. 발언권은 있지만 결제권은 없어. 어디까지나 조언자로서 최고평의회에 참가하게 되네.」
  ……그렇군. 그런 건가. 역시 정치가란 족속은 얕볼 수가 없군.

  "앞으로 갖가지 문제가 생기겠지. 자문위원회로부터 조언이라는 형태지만, 정부가 직접 말하고 싶은 건 말하게 할 생각인가. 의장의 방패가 아니라, 정부의 방패가 아닌가?"
  「뭐, 그런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하네.」
  호안이 아니다. 능청 떠는 건 서툴군.

  "하지만 상설이 된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겠지. 괜찮은가?"
  「그건 어떻게든 할 걸세. 의회도 화평이 맺어지면 세상이 크게 변할 거라는 건 알고 있어. 자문위원회의 필요성을 호소하면 반대는 하기 어렵겠지. 자칫 반대하다가 사회가 혼란해졌을 때, 의회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혼란을 초래했다고 비난 받고 싶지는 않을 걸세.」
  그렇군. 자문위원회를 만들게 하고 실패하면 정부를 비난한다. 그런 건가. 안전한 장소에서 질끔찔끔 찌르면서 즐거워하는 놈들이다. 비난은 해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네."
  「뭔가?"
  "발언권은 있어도 결제권은 없다고 했지. 그래선 자문위원회로부터 조언이 무책임한 것이 되지 않는가? 기왕이면 결제권도 부여해서 책임을 지게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네만."
  「……그렇군, 일리 있어. 이쪽은 결제권이 없는 편이 의회에 설명하기 편하리라 생각했지만……, 그 부분은 검토해보지.」
  레벨로가 응응하고 끄덕였다.

  "뭐, 잘 해 달라고밖에 말할 수 없군."
  국방비는 예산 삭감인가.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가 아픈 일이다. 시끄럽게 구는 놈들도 있겠지. 주전파를 없애놓은 게 정답이었군.
  「그래서 말일세. 시톨레. 위원장에는 발렌슈타인을 생각하고 있네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는 망명자가 아닌가? 화평문제를 취급하는 건 어렵겠지. 게다가 너무 어려."
  뭐가 어쨌든 의회의 바보 놈들이 망명자니까 제국에 무르다, 어리니까 미숙하다는 비난이 나올 것이 틀림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의 적임자가 있으리라 생각하나? 화평을 실현하기 위해선 제국과 동맹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간이 필요하네.」

  "그건 그렇지만……, 레벨로, 발렌슈타인을 위원장으로 하자는 건 자네만의 의견인가?"
  레벨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최고평의회의 총의일세.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들 듣고 싶어하고 있어. 우리 중에 가장 그와 오래 알던 사이 아닌가.」
  다시 신음소리가 나왔다. 오래 알았다고 해도 마음까지 허락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네만…….

  「화평을 맺게 되면 렘샤이트 백작과 밑작업을 하게 되겠지. 백작에게 들었지만 묘한 인간과 교섭하는 것보다 발렌슈타인 쪽이 좋다고 하더군. 만만치 않지만 교섭이 가능한 상대라고 말이야.」
  "그렇군."
  렘샤이트 백작이 두려워하는 건 교섭이 불가능한 상대. 다시 말해, 완고한 교조주의자, 혹은 세론에 떠밀려 자신의 의견으로 판단 할 수 없는 인물이겠지. 의회의 바보 놈들 따위 논외로군.

  "확실히 적임일지도 몰라. 하지만 본인은 끔찍하게 싫어할 걸세. 정치에 관여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여기까지 해줬잖아. 나머지는 니들끼리 해.'라고 말할 게 눈에 선하네."
  레벨로가 실소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네. 하지만 최고평의회로선 그를 이쪽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해하겠지?」
  "……."

  「다들 그의 역량을 인정하고 있네.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어. 그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거야.」
  "적으로 돌리다니, 온건하지 않군."
  내가 웃어도 레벨로는 웃지 않았다.
  「2개 함대로 조기에 하이네센을 해방시킨 건 정답이었네. 제압전에 참가한 것도 말이야. 그 덕분에 우리들의 정치적 기반은 반석이 됐다고 해도 좋아. 그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야. 전략가이며 동시에 정치 센스가 풍부한 정략가라는 걸 모두 이해하고 있어.」
  "……."

  「시톨레, 의회 내부에는 그를 이용하려는 세력도 있네.」
  "……설마."
  「이용하기 쉬운 거야. 영웅이라는 건 말이지. 그들 뿐만이 아니야. 그 외에도 그를 이용하려는 자는 많겠지. 묘한 일이 되기 전에 그를 끌어들이고 싶네. 이건 그를 지키는 일이기도 해.」
  언제부턴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끌어들이고 싶다.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일찍이 나도 같은 걸 생각했던 처지다. 제국에 돌려줄 수는 없었다. 죽이는 건 아까웠다. 동맹에 끌어들여 활용하는 게 그를 지키는 일이라고……. 대의원만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발렌슈타인을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하고 있는 일은 다들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의 역량을 알고 있다는 부분만큼은 의원들보다 레벨로들 쪽이 더 낫다고 해야겠지. 그의 힘을 사익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이용하는 거다.

  "내버려 두는 건 불가능하단 건가."
  레벨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불행하게도 그는 아직 젊어. 이용하기 쉽다고 누구나 생각할 걸세.」
  "……반대는 하지 않겠네. 단 그를 설득하는 건 너희들만으로 해주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좀 도와줘. 항상 만나던 그 집이다. 제발 좀 부탁해.」
  한심한 표정을 짓지 말라고, 레벨로. 한숨이 나왔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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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2월 10일. 뮈젤 함대 기함, 탄호이저. 라인하르트 폰 뮈젤.

  「상황은 어떤가?」
  "상정했던 것이긴 했습니다만, 토벌전이라고 하는 게 가장 어울릴 거라 생각합니다. 당주가 없기에 구심점이 될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뿔뿔히 흩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성가시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가.」
  내가 답하자 화면에 비춘 오프레서가 표정을 찡그렸다. 블독이 맛없는 먹이에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그런 느낌이다. 실제로 목소리에도 쓴맛이 묻어 있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 쪽에 손해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그들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감정 면에서 납득하지 못하겠다.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저항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인식하면 바로 항복할 겁니다."
  「그런가.」
  불독은 기뻐하지 않는다. 뤼네부르크, 경이 부여해준 먹이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국은 지금 가벼운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귀족연합군이 페잔에서 크게 패한 이후 제국 정부는 원정군에 참가한 귀족들의 작위, 영지의 박탈을 선언했다. 당연히 귀족들, 정확히는 유족, 친족, 가신은 반발하여 저항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걸 진압하고 있는 거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다.

  당주는 모두 페잔에서 전사했든가 포로가 됐다. 그렇기에 반란을 이끌 인물이 없다. 도망쳐 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동맹에는 발렌슈타인이 있다. 그리고 페잔은 그 원정 이후 반제국, 아니 반귀족감정이 굉장히 강하다. 도망치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겠지. 그들은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는 거다. 게다가 당주가 없는 지금, 멋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다. 당주가 돌아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성가신 일이다. 본래 어느 정도 뭉친 세력을 격파하며 나아가는 쪽이 효율적이지만 그럴 수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융단폭격, 롤러 작전에 가깝다. 오딘에서 변경을 향해 조금씩 귀족령을 평정하고 있다. 평정 작전을 개시한 이후 약 1개월이 지났지만 평정한 영역은 제국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너무 비효율적이라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거운 상황이 되고 있다. 오프레서와 마찬가지로 나도 얼굴을 찡그리고 싶다.

  「자유행성동맹에서 일어난 반란 말이지만, ……진압 됐다. 싱겁기 그지 없군.」
  진압 됐다? 빠르다. 너무 빠르다. 뤼네부르크를 돌아보자 그도 놀라고 있다. 케슬러, 클레멘츠도 마찬가지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열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진압 됐다?

  "동맹군의 주력은 페잔에 있었을 겁니다만……."
  내가 묻자 오프레서가 끄덕였다.
  「거의 대부분이 페잔에 있었지. 하이네센은 2개 함대로 공략했다.」
  "2개 함대? 묘하군요. 하이네센에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을 겁니다만……."
  뤼네부르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오프레서가 또 끄덕였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양 웬리가 하이네센을 공략한 것 같다. 희생자는 거의 없다고 하더군.」
  "양 웬리……, 엘 파실의 영웅입니까."
  웅성거림이 생겼다. 양의 이름 때문인가, 아니면 희생자가 거의 없다는 것 때문인가.

  「아무래도 엘 파실의 기적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군. 발렌슈타인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성가신 일이다.」
  확실히 그렇다. 오프레서의 기분이 안 좋은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양 웬리인가. 그 당시엔 재밌는 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재밌어 하기만 할 수도 없어진 것 같다.

  「발렌슈타인은 쿠데타가 일어날 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리 2개 함대를 하이네센 근처까지 돌려놓고 있었지. 렘샤이트 백작에게서 받은 보고니까 틀림 없어. 귀여운 구석이 없는 놈이다.」
  오프레서는 콧방귀를 꼈다.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부탁이니까 그만 둬라. 옮을 것 같아 두렵다.

  "틈을 봐서 폭발시켰다, 대충 그런 거겠죠."
  「그런 듯하군.」
  "쿠데타 세력은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의지하고 있었을 겁니다만……."
  「의미가 없었던 듯하다.」
  또 오프레서가 콧방귀를 꼈다. 최근 뤼네부르크도 비슷한 버릇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 악몽이다.

  발렌슈타인 입장에서 보면 쿠데타 세력이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의지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반란을 길게 끌어 동조자를 늘린다. 대충 그런 거겠지. 하지만 순식간에 공략 됐다. 그리고 싱겁게 진압 됐다. 쿠데타 세력은 하드웨어에 너무 의지했다. 난공은 있어도 불락은 없다. 제국도 이제르론 요새에 너무 의지하는 건 위험하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공략한 거지? 알고 싶다.

  「동맹의 혼란은 종결됐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화평을 외치고 있지만 방심할 수는 없어. 국내 혼란이 계속 되면 어디든 불리하게 움직이게 되겠지. 발 밑을 들켜 화평 조건 그 자체가 엄하게 될 가능성도 있어. 평정을 서둘러 주게.」
  "예."
  「이제르론 요새로 배송된 귀족들은 마린도르프 백작을 제외하고 전원 자결했다.」
  오프레서의 말에 함교 분위기가 긴장 됐다. 자결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강제된 자결이겠지. 스스로 죽음을 고를 정도라면 포로가 되는 일 없이 페잔에서 죽었을 거다.

  "그 안에는 프레겔 남작, 샤우드 남작도 있습니까?"
  「뤼네부르크, 열외는 없다.」
  오프레서의 대답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이걸로 저항하는 무리도 진정 되겠지. 평정도 편해질 터다. 부탁하지.」
  "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비정한 결단을 했군요. 그 두 사람을 잘라내다니."
  케슬러가 탄식한 건 통신이 끊어진 뒤였다. 나도 다소 놀라고 있었다. 샤우드 남작은 모르겠지만 프레겔 남작에 대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대우는 잘 알고 있다. 자식이나 다름 없는 취급이었다. 그걸 죽였다…….

  "서둘러야만 합니다. 공작이 이만큼이나 태세를 보인 이상 저희들도 결과를 보여야 합니다."
  클레멘츠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 서두르지."
  내가 답하자 뤼네부르크, 케슬러도 끄덕였다. 서둘러야만 한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그 두 사람을 잘라낸 건 우리에 대한 원호이며 하루 빨리 혼란을 수습하라는 갈책이기도 할 테니까…….


우주력 796년 3월 9일. 하이네센, 삼월토정. 미하마 사아야.

  웨이터가 주문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 나와 엄마는 생선이 메인인 코스, 남동생인 셰인은 고기가 메인인 코스를 주문했습니다. 음료는 나와 엄마는 백포도주, 남동생은 우롱차입니다. 셰인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붉은 얼굴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퇴학 처분이 됩니다.

  "누나, 여기 꽤 비싸지 않아?"
  "신경 쓰지 마. 이렇게 셋이서 식사하는 건 오랜만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사관후보생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까 신경 쓰인다구."
  동생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습니다. 너 말이지, 조금은 침착하라고. 발렌슈타인 제독처럼 되라곤 하지 않겠지만. 그래선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죽을 거야.

  엄마는 조금 기분이 안 좋아 보입니다. "가끔씩은 좋잖아?"라고 말하니 "뭐, 가끔이라면"이라고 마지 못해 엄마는 끄덕였습니다.
  "졸업하면 또 여기서 축하해 줄게."
  동생 셰인이 기뻐하며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해서 좋아.

  오늘은 내가 하이네센으로 돌아온 뒤 첫번째 일요일입니다. 그런 고로 가족이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돈 내는 건 저입니다. 조금 분발하여 삼월토정을 예약했습니다만, 엄마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듯 합니다. 좀 더 싼 곳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누나, 승진하는 거야?"
  "그런 것 같네."
  "하아, 미하마 대령인가. 누나, 대단하네."
  동생 셰인이 한숨을 뱉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한숨을 뱉고 싶습니다. 어느샌가 대령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어딜 봐도 엘리트 고급사관입니다. 동기 중에서 저 만큼 출세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사자를 포함해도 그렇습니다. 하기야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거라는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축하해야겠네. 좋은 거야? 누나가 사는 걸로."
  "괜찮아. 급료도 올라가니까. 게다가 출병했으니까 수당도 나오고 신경 쓰지 마."
  출병하면 위험수당이 지급됩니다만 이게 꽤 괜찮은 금액이 됩니다. 전쟁하고 싶어하는 군인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 중에 이것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사할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전쟁은 꽤 벌이가 좋은 사업이 되겠죠. 덧붙여 이기면 승진이고 급료도 올라갑니다.

  "발렌슈타인 제독은?"
  셰인의 질문에 엄마가 꿈틀하고 반응했습니다. 엄마는 제독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눈치 채지 못한 척했습니다.
  "승진할 거야. 발렌슈타인 대장이네."
  "2계급 특진이 아니구나. 양 제독은?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공략했는데."

  "발렌슈타인 제독, 양 제독, 와이드본 제독 세 사람은 대장으로 승진, 그리고 훈장 수여. 자유전사 1등 훈장이나 공화국명예장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하이네센 기념특별 공훈대장일지도 모르겠네."
  동생이 또 한숨을 뱉었습니다. 제가 거론한 훈장은 모두 큰 공훈을 올린 자만이 수여 받을 수 있는 훈장입니다. 세 사람 모두 30대니까 이례의 일이겠죠. 동생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트류니히트 의장들이 지상제압전에 참가했다는 거 정말이야? 선전이 아니냐고 하던데."
  "진짜야. 그린힐 대위에게 들었으니까 틀림 없어."
  "그린힐 대위?"
  "양 제독의 부관. 그린힐 통합작전본부장 대리의 따님이야. 이전에 우주함대 총사령부에서 같이 일했어."
  동생이 상반신을 되돌리며 "헤에"하고 목소리를 올렸다.

  하이네센에선 트류니히트 의장들이 장갑복을 입고 지상제압전에 참가했다는 게 큰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애국위원회를 격렬하게 규탄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선언했던 것도 있어 싸우는 의장, 유언실행의 정치가라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 때문이겠죠. 쿠데타 진압 후 트류니히트 의장은 재차 최고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하기야 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으니까 평가하는 것보다 정치가도 편하지 않구나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압전에 참가했던 것 덕분에 의장들이 하이네센 시민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비판도 거의 없습니다. 시민에게 희생도 없었던 점도 있어 그건 긴급 피난으로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시민들은 생각하는 듯합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생각대롭니다.

  애국위원회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쪽이 2개 함대로 공세를 펼칠 거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만,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던 점이 믿을 수 없었던 듯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쇼크 상태, 허탈 상태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제압되어 구속 당했습니다. 뭐, 얼음으로 목걸이를 부수다니 그들이 아니라도 쇼크 상태가 되겠죠.

  요리가 나왔기에 먹기 시작했습니다. 맛있습니다. 메인 생선 요리는 농어의 파이 말이입니다만 소스가 끝내줍니다. 바삭바삭한 파이 껍질도 최고! 호박 수프도 굉장히 맛있습니다. 엄마도 "맛있네!"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벌써부터 디저트 케이크가 기대됩니다. 동생의 메인은 카르보나드 플라망드, 쇠고기를 흑맥주로 익힌 요리입니다만 이쪽도 맛있어 보입니다.

  "누나, 정말로 평화가 오는 걸까?"
  동생이 화평에 대한 걸 입에 담은 건 식사도 꽤나 진행되었을 때입니다. 조금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제국은 화평을 바라고 있고 동맹도 화평을 바라고 있어. 이유는 알겠지?"
  "응"하고 동생 셰인이 끄덕였습니다.

  "군인만이 아니라 정치가나 경제인까지 쿠데타에 참가했어. 바로 진압 당했지만 쿠데타 규모는 꽤 컸다. 지금은 전쟁보다도 화평을 맺어 국내, 민심을 안정시킬 것을 우선해야 한다, 겠지?"
  "심한 이야기네. 평화가 오면 출세 할 수 없게 된다, 경영이 어려워진다, 아무도 벌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전쟁을 해야 된다고 하는 거니까."
  동생은 우울한 듯 하지만 엄마의 어조에는 울분이 섞여 있었습니다.

  싱겁게 진압되었습니다만, 쿠데타의 규모는 컸다고 생각합니다. 군인은 에벤스 대령 외에 정보부장 브론즈 중장, 무어 중장, 파스토레 중장, 루그랑쥬 중장, 베이 대령, 크리스티안 대령, 마론 대령, 하베이 대령까지 고급 군인이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로보스 원수도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주변에서 그리 좋은 취급은 받지 않았던 듯 합니다만.

  경제인 중의 쿠데타 참가자는 거의가 군사산업의 경영자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화평이 실현되면 경영이 악화 된다, 그렇기에 참가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페잔을 속령화하여 경제적인 권익을 얻고 싶다, 그런 생각도 있었다는 듯합니다. 그들과 친한 정치가들이 쿠데타에 참가했습니다. 그 대부분이 뭔가의 형태로 경제인에게서 금전면으로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군산복합체의 의한 사적이익을 추구한 쿠데타라고 매스컴은 비판하고 있습니다.

  "나, 어떻게 되는 걸가. 6월에 졸업인데 화평이 맺어지면……. 사관학교에서도 다들 걱정하고 있어. 장래에 대해서. 올해부터 입학자 수도 줄인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고……."
  셰인이 우롱차를 한 입 마셨습니다.

  "제국이 존재하는 이상, 군대를 급격히 줄이는 일은 있을 수 없고 무제한으로 줄이는 일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여러 면에서 영향은 나오겠지. 가장 큰 건 출세가 늦어지는 거려나? 전쟁이 사라지면 수당도 줄어들 테니까 다른 직업에 비해 급료도 반드시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질 거라 생각해. 뭐, 하향세 직업이네."
  "하아, 곤란하네."
  동생이 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전사할 위험이 사라지는 거야. 이렇게나 감사한 이야기가 어딨어. 급료가 싸지는 것 정도로 불만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것도 그렇지만."
  엄마에게 혼나고 동생이 중얼중얼 답했습니다. 뭐, 엄마의 마음은 알겠지만 급료가 싸지는 건 조금 괴롭습니다. 그래도 동생은 남자고 사관이니까 아직 괜찮습니다. 적어도 결혼에는 고생하지 않을 터. 가장 불리한 건 독신의 여성 부사관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생각하지만 임관 거부라든가 고려하고 있어?"
  내가 묻자 셰인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불명예니까. 하지만 주변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야.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임관 거부는 하지 말아줘. 사기꾼 취급 받으니까. 나중에 불리해져."
  동생은 "응"하고 끄덕였습니다.

  임관 거부, 사관학교 후보생이 졸업 후, 군대에 임관하는 걸 자발적으로 거절하는 일입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공부하고 급료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임관하지 않는다. 양성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전부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단물만 빨아 먹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사기꾼 행위로서 굉장한 불명예로 취급 받습니다. 민간에서 취직하려고 해도 임관 거부는 정당한 이유가 아니면 거부 되는 일이 많겠죠. 특히 군부, 정부와 관계가 깊은 기업, 공공기관은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동생의 우울한 기분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닙니다. 저는 올해 25세입니다만 대령으로 승진합니다. 전시라고는 해도 굉장히 젊은 대령입니다. 이후 평시가 되면 승진은 꽤나 느려집니다. 어쩌면 임관 후 1년만에 중위로 승진하는 자동 승진도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동생이 25세 때의 계급은 아마도 중위나 대위일 겁니다. 소령이 되는 건 30세를 넘어서겠죠.

  자신은 소령도 되지 못랄 텐데 눈앞에 20대의 대령이 있다, 게다가 그 위를 보면 20대의 대장까지 있다. 납득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무공을 쌓았으니 승진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동생들은 무공을 쌓을 기회조차 없었던 겁니다. 불공평하다는 마음은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발렌슈타인 제독은 주전파를 쳐부쉈습니다. 화평을 맺는 일도 어렵지 않겠죠. 하지만 평화가 뿌리를 내리기 까지 아직 많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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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1월 30일. 페잔, 제1특설함대 기함, 하소르. 에리히 발렌슈타인.

  "정말 허술한 놈들이군요."
  쇤코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소르의 함교는 출격준비에 서두르는 분위기가 넘치고 있다.
  "뭐,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귀족연합군의 격멸에서 화평, 페잔의 독립까지 눈 깜짝한 사이였습니다. 초조했어도 이상하지 않죠."

  진심은 아니다. 시간이 있었어도 실패했겠지. 귀족연합군을 격멸한 시점에서 파에타를 포함한 우리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무리들도 얌전해졌다. 군인이라면 이기는 지휘관을 바란다. 승리하는 방식이 선명하며 철저하다면 자기 발로 적으로 돌아서고자 생각하진 않는다. 하물며 반란에 가담하여 적대하다니 얼간이도 그런 얼간이가 없다. 귀환하면 승진이 기다리고 있는 거다. 반란에 가담하여 모든 걸 잃는 위험을 감수할 바보는 없다. 이렇게 말해도 좋겠지만 자만으로 비춰질 것 같아서 그만 뒀다.

  놈들이 폭발하기 전에 헌병을 써서 제압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안 되는 거다. 이건. 그런 수를 쓰면 화평을 추진하는 트류니히트 정권이 방해물인 주전파를 묻어버렸다, 그런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트류니히트 정권을 약하게 만들게 된다. 화평을 맺기 위해선 강력한 정권 기반이 필요한 이상 그런 방법은 쓸 수 없다.

  그 바보 놈들을 폭발하게 만들고 그 뒤에 진압한다. 애초에 저 놈들이 루돌프의 흉내를 낼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걸 동맹시민에게 보여주면 된다. 동맹시민도 주전파가 위험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겠지. 주전파가 힘을 잃는 반면 화평론이 힘을 늘린다. 트류니히트 정권에게 있어서 순풍이 되겠지.

  "페잔에 아무도 남기지 않아도 괜찮았던 겁니까?"
  "상관 없습니다. 페잔은 독립시킬 거니까요. 반란 진압에 전력을 다한다. 그런 명목으로 방폐합니다. 괜히 남겨뒀다간 나중에 귀찮아집니다."
  춘우 총참모장이 그렇군요, 하고 끄덕였다.

  "하지만 반동맹활동을 하는 건 아닙니까? 후방을 착란시킬 기능성이 있습니다만."
  "이쪽이 철수하고 있는데 말인가?"
  "지구교 잔당이 페잔 시민을 부채질 할 가능성이 있겠죠."
  "그렇군."
  춘우 총참모장과 비로이라이넨 준장의 대화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찡그리는 사람도 있다.

  "최후미에는 우리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신경 쓰면서 철수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착란이 있었을 경우 어떻게 합니까?"
  춘우 총참모장이 질문했다. 다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닌데 말이지. 페잔에는 군사력이 없다. 게다가 보급은 우르바시에 충분히 있다. 착란 따위 괴롭힘도 되지 못한다.

  "일단 내란의 진압을 우선합니다."
  내 대답에 다들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뭐냐, 그건. 페잔이 아니라 내가 걱정이었던 거냐? 내가 페잔에 핵 미사일이라도 퍼부을 거라 생각했을까? 불쾌하네! 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할 필요도 없다. 난 괜한 짓은 하지 않는 주의다.

  "내란을 진압하면 페잔 쪽에서 사과하러 오게 될 겁니다. 아마도 돈으로 정리하려고 하겠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는 경멸하는 빛이 있다. 페잔인은 미움 받고 있는 듯하다. 뭐, 나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언젠가 제국 사이에 화평이 맺어지면 이제르론 회랑도 해방되겠죠. 그렇게 되면 동맹, 제국 상선이 직접 양국을 오가게 됩니다. 페잔의 전략적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지고 중간교역의 이익도 잃게 됩니다."
  "페잔에 있어서 생존환경이 엄하게 되겠군요. 과연, 그게 페잔에 대한 복수입니까."

  그게 아니다. 페잔이 우선권을 쥐고 우주를 지배하려 생각하는 일은 사라질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동맹과 제국이 손을 잡고 있는 이상 페잔은 얌전해진다. 우주는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동맹도 제국도 국내 재건과 안정에 쏟을 시간이 필요하다. 미개척지도 잔뜩 있다. 공공사업에 의한 경기부양이 계속 되겠지.

  고도성장 시대를 실현 할 수 있다면 페잔도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페잔은 양국을 서로 다투게 만드는 게 아니라 협조하게 만듬으로서 번영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할 것이다. 페잔만이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번영한다. 공존, 공영이 가능하다면 페잔도 수전노라든가 돈의 망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될 것이다. 뭐, 거기까지 가기는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트류니히트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부탁이니까 안전하게 탈출해 달라고. 여기까지 자리를 깔아줬으니까 나머진 네가 하기 나름이다. 앞으로 트류니히트는 구국의 영웅, 민주공화제의 옹호자, 자유의 수호자로 불리게 되겠지. 웃기는 소리네, 원작을 알고 있는 나에겐 질 나쁜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양은 눈을 까 뒤집겠지. 모포를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잠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우주력 796년 2월 4일. 리오 베르데 성역, 제1함대 기함, 아이네이아스 순 수울즈콰리터.

  "와이드본 제독, 수고가 많군."
  "예. 원수 각하를 아이네이아스에 모시게 된 것을 마음 깊이 기쁘게 생각합니다."
  와이드본 제독이 딱딱하게 긴장하고 있다. 제독만이 아니다. 함교에 있는 사람들 모두 딱딱하다. 무리도 아니다. 수도 하이네센을 탈출한 시톨레 원수를 맞이했지만, 그 동행자가 굉장한 면면들이니까.

  그린힐 대장, 게다가 본 적 없는 군인이 몇 사람, 게다가 모두 장성이다. 그리고 트류니히트 최고평의회 의장을 포함한 최고평의회 멤버들. 자유행성동맹의 정부, 군부의 탑들이 여기 아이네이아스에 결집하고 있다. 마치 정부가 여기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제국의 렘샤이트 백작도 있다.

  "와이드본 제독, 잠시 실례하도록 하겠네."
  "예. 아무래도 군함이기에 충분한 대접은 어렵습니다. 불편을 끼치게 되겠습니다만, 관대한 용서 바랍니다."
  "아니, 여기라면 안전하다. 그 이상의 대접은 없어. 그렇지 않은가?"
  의장의 질문에 동의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역시나 상선으로 탈출하는 건 불안했던 것 같다.

  와이드본 제독이 총사령부 사이에 통신을 연결할 것을 명령했다. 잠시 시간을 두고 화면에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가 비췄다. 와이드본 제독이 경례하자 총사령관 대리도 답례했다.
  "트류니히트 의장 각하, 시톨레 원수 각하를 포함한 정부, 군부의 분들을 무사히 수용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뭔가 문제는 없었습니까?」
  "아뇨. 딱히 없었습니다."
  「그럼 시급히 제3함대와 합류해주세요.」
  "예."
  총사령관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톨레 원수와 트류니히트 의장에게 대화를 요구했다. 나보다 젊은데도 참 태연하구만.

  "무슨 일인가? 발렌슈타인 중장."
  「몸은 좀 어떻습니까? 시톨레 원수.」
  "문제 없다. 걱정해준 건가? 중장."
  기뻐하는 듯이 시톨레 원수가 말하자 총사령관 대리가 쓴웃음을 띄웠다.

  「그게 아닙니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확인한 겁니다.」
  켁, 무슨 말을 하는 건냐. 시톨레 원수와 트류니히트 의장이 서로를 돌아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와이드본 제독은 눈을 까뒤집고 나도 깜짝 놀랐다.
  「총사령관 각하. 맡고 있었던 지휘권을 돌려 드립니다.」
  "그렇군. 그게 있었지. 확실히 지휘권을 돌려 받았다."
  총사령관 대리가 경례하자 시톨레 원수가 답례했다.

  「그럼 먼저 두 분이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이런. 사람 쓰는게 험하구만. 겨우 상황이 진정 됐다고 생각했는데."
  트류니히트 원수가 투덜거렸지만 총사령관 대리, 아니 발렌슈타인 제독은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먼저 정부, 군수뇌부가 제1함대와 합류했다는 것, 지휘권이 제게서 시톨레 원수에게 반환됐다는 걸 표명해주십시오.」
  제독의 말에 "알겠다"하고 시톨레 원수가 끄덕였다.

  「다음으로 두 분은 광역통신으로 건재함을 어필해주세요. 그 때 트류니히트 의장 각하께선 애국위원회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조잡한 복제품이며 민주공화제의 정신을 더럽히고 있다고 강하게 규탄해주십시오.」
  "음."

  「긴 전쟁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어리석은 인간을 만들고 말았다. 자유행성동맹은, 아니 인류는 평화에 의한 안식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자신은 최고평의회 의장으로서 반드시 그들을 분쇄하고 질서와 안정을 되찾겠다고 선언해주시길 바랍니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크게 끄덕였다.

  "거기에 대해선 나도 생각하고 있었네.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선 시민들이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돼. 이번 사건으로 동맹시민도 전쟁 계속에는 커다란 의문을 품었겠지. 쿠데타가 성공하면 민주공화제는 폐지될 처지였으니까 말이야. 동맹시민에게 평화의 필요성을 이해시킬 좋은 기회다."
  아, 의장뿐만이 아니다. 다른 정치가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리고 각 성계, 자치단체, 군조직에 어느 깃발 아래에 있을지 확실하게 하라고 명령해주세요. 그리고 애국위원회에 붙는 세력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애국위원회를 고립시키는 거군."
  「그것도 있습니다만 의장 각하의 아군이 된다는 건 화평을 지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후일 화평을 추진할 때 모두가 화평을 지지해줬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자네는 변함 없이 빈틈이 없구만"이라고 트류니히트 의장이 웃었다. 시톨레 원수도 웃고 있다. 상층부에선 제국과의 화평은 이미 정해진 노선인 것 같다. 정말 우주에 평화가 찾아올 날이 가까워졌다. 그건 그렇고 발렌슈타인 제독이 화평파의 중심인물이라는 소문은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제독은 희미하게 웃음을 띄우고 있다. 무척이나 모장(謨將), 이라는 느낌이다.

  「하이네센은 제1, 제3함대가 해방해주십시오.」
  이곳저곳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자네들을 기다리지 않고 말인가?"
  발렌슈타인 제독이 "그렇습니다"라고 끄덕였다.
  「원수, 우리들의 합류를 기다리면 시간이 지체 됩니다. 하이네센 시민에게 부담을 지게 만들게 되겠죠. 쿠데타는 시급히 진압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군부에 대한 하이네센 시민의 불만이 분출되게 되겠죠.」

  시톨레 원수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귀관의 말은 알겠네. 그 말이 옳다는 것도 인정해. 하지만 2개 함대로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공략할 수 없겠지. 적어도 제12함대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실패하면 그거야말로 주전파의 기세를 올려주는 꼴이 되네."
  시톨레 원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이 많아지면 애국위원회는 당연히 경계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방어체제를 굳히게 되겠죠. 경우에 따라선 시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시기에 2개 함대라면 경계도 그만큼 크지 않을테고 준비도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함대사령관은 두 사람 모두 신임 중장입니다. 특히 양 중장은 비상근 참모라고까지 불렸던 사람이니까요. 애국위원회가 시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은 적겠죠. 지금 공략해야만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다. 확실히 그 말이 맞지만,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다……. 모두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심하세요. 하이네센 탈환 작전은 이미 책정이 끝난 상태입니다. 양 중장이 아르테미스 목걸이 공략을, 와이드본 제독이 하이네센 제압전을 행하게 됩니다. 원수 각하는 작전 총지휘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소동이 일어났다. 다들 놀라고 있다. 아니, 와이드본 제독만은 놀라고 있지 않다. 알고 있었네, 이건. 뭐 당연한가.

  "가능한 건가? 아르테미스 목걸이를 공략하는 일이."
  원수가 질문하자 발렌슈타인 제독이 가볍게 소리 내어 웃었다.
  「양 중장은 엘 파실의 영웅입니다. 그의 앞에서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위협이 되지 못하죠.」
  또 소란이 일어났다. 시톨레 원수가 와이드본 제독에게 시선을 향했다.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원수도 크게 끄덕였다.

  "알았다. 하이네센 탈환작전을 실행하지."
  시톨레 원수의 말에 함교에 세 번째 소란이 일어났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트류니히트 의장을 포함한 최고평의회 분들은 지상제압전에 참가해주시길 바랍니다.」
  어이어이, 진심인가? 다들 눈이 점이 됐다고.
  「작전 실시 때까지 장갑복에 익숙해지시길 바랍니다. 제압 목표는 최고평의회 빌딩입니다. 반역자들에게 점령된 최고평의회 빌딩을 탈환해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기다리게. 진심인가? 자네는."
  정치가 중 한 사람이 당황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진심입니다. 레벨로 재정위원장. 이대로는 최고평의회는 하이네센 시민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선 곤란한 겁니다.」
  으음, 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여러분을 하이내센에서 탈출시킨 것은 인질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애국위원회에게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걸 이해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병사에게 싸우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병사와 함께 싸워주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트류니히트 정권은 시민의 지지를 모을 수 없습니다.」
  납득할 수 있는 말이다. 발렌슈타인 제독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편하게 지낼 수 없구만."
  트류니히트 의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는 건가?"
  "여기까지 와서 안 할 수는 없겠지. 아니면 도망치는 건가?"
  "……기가 막히는군."
  의장과 타렐 부의장이 대화하고 있다. 다른 위원장들도 기가 막힌 표정이다. 발렌슈타인 제독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득도 충분히 있습니다. 살아 남으면 앞으로 10년은 선거에서 낙선할 걱정은 없겠죠. 대량 득표로 당선입니다. 선거에서 낙선할 걱정이 없다는 건 큰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남으면 말이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맥과이어 천연자원위원장이 불안한 표정으로 발렌슈타인 제독에게 질문했다. 태평한 말을 한다. 그런 느낌이다.

  「알레 하이네센 정도는 아니겠지만 훌륭한 동상이 서겠지요. 자유와 민주공화제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용감한 정치가로서. 자유행성동맹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힐 테고, TV드라마나 영화에도 등장하겠죠. 주인공이나 그에 비준한 입장으로 말이죠.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유명해질지도 모릅니다. 나쁘지 않죠?」

  맥과이어 위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말이지……."
  기분은 알겠다. 엉망진창이다. 죽는 편이 평가가 좋을 거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들 어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와이드본 제독은 하늘을 쳐다봤다.

  「아아, 장례식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국장으로 치뤄지겠죠. 장례위원장은 트류니히트 의장이 맡게 될 겁니다. 각하를 애도하는 감동적인 영결문을 읽으시게 되겠죠. 그리고 관은 의장을 포함한 최고평의회 분들이 짊어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아니, 이제 충분해. 발렌슈타인 중장. 죽으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알았다. 좋은 일만 가득하지만 죽지 않기 위해 조심하도록 하지."
  진절머리가 난 어조였다. 뭔가 진짜로 죽을 것 같구만.
  「그렇죠. 죽지 않을 정도만 힘내 주세요. 그리고 만일을 위해 유서와 묘비명을 준비해주세요. 괜찮습니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해서니까요.」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 하도록 하지. 그리고 부탁이니까 다들 죽지 말게나. 난 장례위원장 따위 맡고 싶지 않고 자네들의 영결문도 읽고 싶지 않으니까."
  트류니히트 의장의 말에 다들 끄덕였다. 누군가가 "읽게 하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아."라고 말했다. 어쩌면 하이네센에서 도망쳐 온 것을 후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정치가도 편하지 않군. 정말 동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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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1월 30일. 페잔, 제1특설함대 기함, 하소르. 알렉스 카젤느

  하이네센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아마도 주전파가 일으킨 거겠지. 그 이외는 생각할 수 없다. 하이네센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 듯하다. 쿠데타 발생 첫 보고로부터 3시간 정도 지났지만 상세한 정보는 알 수 없다. 쿠데타를 일으킨 무리가 자유행성동맹 애국위원회라고 자칭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주모자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우리 쪽에서 연락을 취하려고 해도 하이네센과의 통신은 단절되어 있다. 답답할 노릇이다. 아르탕스는 무사한 걸까. 딸들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걱정 된다. 양도 율리안이 걱정 되겠지. 랍도 제시카를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 의외로 욱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 같다.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는 쿠데타 발생을 알고는 바로 전 함대를 향해 공연히 소란 떨지 말고 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르라는 명령을 내린 후 하소르 회의실에서 장성회의를 열 것을 결정했다. 회의실에는 각 함대에서 장성들이, 그리고 총사령부 요원들이 모여 있다. 여기에 없는 건 제1, 제3, 제12함대 사람들 뿐이다.
  "슬슬 세 시간입니다만. 의외로 수완이 나쁘군요."

  우란푸 제독의 불평에 가까운 어조에 회의실에서 실소가 일었다. 회의실에는 긴장감은 조금도 없다. 커피를 마시면서 속보를 기다리는 중에 그런 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선잠을 자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게 기적에 가깝겠지. 하지만 앞으로 1시간 정도 이 상태라면 내가 가장 먼저 잠들 것 같다.

  "준비 기간이 짧았던 걸지도 모르지. 군복을 입고 쿠데타 계획을 짰을까? 파자마를 입고 했어야 하는데. 멍청한 놈들."
  뷰코크 원수의 말에 더 큰 실소가 일었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파자마 모습으로 최고평의회에 출석한 이후, 동맹에선 그걸 소재로 삼은 패러디나 조크가 유행하고 있다.

  "최근 하이네센에선 디자인이나 소재에 신경 쓴 고급 파자마와 나이트 가운이 팔리고 있는 듯합니다. 뷰코크 원수."
  "호오, 그건 어찌 된 일인가?"
  "유비무환이겠죠. 언제 심야에 불려도 안심이라는 것 같습니다."

  칼센 제독의 대답에 모두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그 이야기는 알고 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그걸 핑계 삼아 부인들이 자신의 새로운 잠옷을 사고 있다는 게 진상이라는 결말이다. 백화점이나 의복점이 부인들을 겨냥해 잔뜩 팔고 있는 것 같다. 대단한 상인혼이다.

  "우리들도 파자마를 사는 게 좋을까?"
  또 웃음 소리가 일어났다.
  "그럴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란푸 제독. 제국과 화평을 맺으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밤 중에 누가 깨우는 일도 없어지겠죠."
  총사령관 대리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건 그 화평이 원인일 터다. 그걸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하이네센에서 광역통신이 들어왔다. 이완되어 있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다시 죄어졌다. 화면은 장년의 군인을 비추고 있었다.
  「이에 선언한다. 우주력 796년 1월 30일, 자유행성동맹 애국위원회는 수도 하이네센을 실효 지배 하에 놓았다. 동맹 헌장은 폐지되고 애국위원회의 결정과 지시가 모든 법에 우선한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브레첼리 준장이다. 몇 사람인가 끄덕이고 있다. "에벤스 대령이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화면에 비춰진 사람은 그럭저럭 유명한 것 같다.
  「동맹 헌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방침을 발표한다. 하나, 은하제국 타도라는 숭고한 목적을 향해 거국일치체제의 확립.」

  알고 있었지만 가장 먼저 화평을 부정해왔다. 다들 총사령관 대리를 봤지만 총사령관 대리는 화내는 일도 없이 잠자코 화면을 보고 있다.
  「둘, 페잔과 새로운 외교 관계 구축」
  새로운 외교 관계 구축? 뭐냐 그건? 독립은 아니겠지. 그거는 이미 트류니히트 의장이 말했으니까 굳이 새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병합인가?

  생각에 빠진 중에도 방침 발표가 계속된다. 언론 통제, 군인의 사법경찰권 부여, 무기한 계엄령 선포, 의회 정지, 반전, 반군부 사상을 가진 자의 공직추방, 항성간 운송, 통신의 전면 국영화, 양심적 병역 거부의 형벌화, 정치가 및 공무원의 부정부패에 대한 형벌 강화, 유해한 오락의 추방, 필요를 넘은 약자 구제의 폐지…….

  도중부터 총사령관 대리가 큭큭 웃기 시작했다. 발표가 끝나고 화면이 꺼져도 계속 웃고 있다.
  "제국은 루돌프의 망령에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는데 반대로 동맹은 그 망령에 씌이려고 하고 있군요. 꽤나 끈질긴 망령입니다. 액막이가 필요할까요?"

  그렇군. 확실히 그렇다. 애국위원회가 하려는 건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행한 것과 같다. 다들 끄덕이고 있다. 그건 그렇고 총사령관 대리에겐 여유가 있다. 또 하이네센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광역이 아니다. 직접인 듯하다. 아마도 애국위원회의 결정에 따를지 묻는 거겠지. 화면에서 아까 전의 남성이 나타났다.

  「자유행성동맹 애국위원회, 에벤스 대령이다. 발렌슈타인 중장, 귀관의 총사령관 대리 직임을 해제한다. 이후 각 함대사령관은 애국위원회의 지시에 따르도록.」
  꽤나 거만한 태도다. 회의실 안에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총사령관 대리에게 반발심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경우에 따라선 군대가 나뉠수도 있다…….

  "조건에 따라선 복종해도 좋습니다. 에벤스 대령."
  「……조건이란?」
  총사령관 대리는 싱글벙글 웃고 있다. 에벤스 대령은 의심쩍은 표정이다.
  "애국위원회 대표는 누구입니까?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대표라면 저뿐만이 아닙니다. 다들 안심하고 지시를 따르겠죠."
  에벤스 대령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위원회는 회의에 의해 모든 걸 결정한다.」
  회의실에 웅성거림이 생겼다. 대표가 없어? 웅성거림 속에서 에벤스 대령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다. 총사령관 대리가 소리 내어 웃었다.
  "과연. 대표를 맡을만한 인물이 없습니까. 혹은 조정 불충분으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습니까? 어느 쪽이든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건 조직으로서 문제입니다. 그래서야 불안하네요."
  에벤스 대령의 표정이 굳었다. 뺨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다. 아무래도 총사령관 대리의 지적이 정곡이었던 것 같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당연하지만, 최고평의회 멤버는 구속하셨습니까?"
  「…….」
  "시톨레 원수, 그린힐 대장은 어떻습니까?"
  「…….」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정부, 군대의 중요인물을 구속하지 못했다. 이래선 쿠데타에 성공했다곤 말하기 힘들다. 그 거만함은 아마도 허세였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라라? 쿠데타는 일으켰지만 정부, 군대의 요인 구속은 실패했습니까? 쿠데타 발생의 첫 보고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선후책을 검토했으나 결정권을 가진 자가 없어 우왕좌왕했다, 대충 그런 거겠죠. 이래선 저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도 애국위원회에 참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참 대단한 쿠데타네요."
  총사령관 대리의 조소에 에벤스 대령의 얼굴이 더욱 경직됐다.

  「닥쳐라. 우리를 경멸하여 우위에 서려는 건가? 그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아. 함대사령관들은 귀관의 지시에는 따르지 않는다. 귀관은 미움 받고 있으니까.」
  에벤스 대령이 증오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가 소리 내어 웃었다.

  "미움 받고 있다? 그 정도야 대령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누가 저 같은 어린 놈에게 명령을 받고 기뻐하리라 생각합니까? 저도 그 정도로 옹이구멍은 아닙니다."
  「…….」
  "하지만 사람은 좋고 싫은 감정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생물이 아닙니다. 에벤스 대령. 귀관은 그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명백히 바보 취급을 받고 에벤스 대령의 몸이 굳었다. 가까스로 화를 참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란 지위나 명예를 얻으면 무의식적으로 그걸 지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사리사욕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걸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판단, 행동이 정당하다는 대의명분을 원하는 거죠.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는 이득과 대의명분, 이 두 가지만 준비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걸 얻은 뒤 안정을 보장할 수 있다면 두말할 것 없습니다."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기분은 잘 알겠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될텐데, 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총사령관 대리가 서류를 손에 쥐었다. 미하마 중령에게 "읽어주세요."라고 건넸다. 중령은 서류를 받아 확인하고 놀라고 있다. 총사령관 대리와 에벤스 대령을 교대로 본 뒤, 목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

  "발신, 우주함대 사령장관, 시드니 시톨레 원수. 수신, 제1특설함대 사령관 에리히 발렌슈타인 중장. 본관이 부상치료중인 동안, 귀관을 총사령관 대리에 임명한다. 귀관에게 직속 제1특설함대 및 우주함대에 대한 지휘권을 위임한다."

  "우주함대 행동명령, 귀관은 위임된 지휘권을 이용하여 이하의 명령을 수행하라. 하나,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는 휘하 함대를 이끌고 귀족연합군을 격파, 자유행성동맹의 안전을 확보하라. 둘, 귀족연합군 격파 후, 귀관은 페잔에 주둔하여 지구교를 근절하라. 셋, 동맹령 내에서 정치적, 군사적 혼란이 일어났을 경우, 귀관은 가지고 있는 모든 병력을 사용하여 혼란을 수습하고 법질서를 회복하라. 또한, 귀관이 취하는 모든 행동은 사전에 승인된 것으로 한다. 귀관이 최선이라 생각되는 행동을 취하길 기대한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반란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다? 미하마 중령이 모두 읽자 총사령관 대리는 에벤스 대령에게 보여주도록 명령했다. 중령이 명령서를 화면으로 향한다. 신음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되는. 어찌된 거냐. 그건. ……어째서 그런 게 거기에 있는 거냐.」
  에벤스 대령이 중얼거렸다. 동감이다. 나도 놀라고 있다. 하지만 묘한 건 함대사령관들 중에 놀라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시톨레 원수가 포크 중령에게 습격 당했을 때, 배후에 지구교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노리는 건 동맹의 혼란이겠죠. 궁지에 몰린 지구교는 동맹을 혼란에 빠뜨려 활로를 찾으려 했다. 지휘계통이 혼란에 빠지고 귀족연합군과 서로 공멸하길 바란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어째서 그런 게 있냐고 묻고 있는 거다.」
  에벤스 대령이 반문했지만 총사령관 대리는 말을 끊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그 계획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의 대비책을 준비해야겠죠. 제국에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다음에 노리는 건 주전파를 부채질하여 쿠데타나 테러에 의한 동맹의 혼란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군부에 있어 절대적인 존재인 시톨레 원수는 장애물이었다. 그렇기에 그 사건을 일으켰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당신들은 이용 당한 겁니다."
  에벤스 대령이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리도 아니다. 총사령관 대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에벤스 대령들은 제대로 조종 당했다는 거니까.

  「말도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숭고한 대의에 따라 결기한 거다! 허튼 소리는 집어치워!」
  비명이나 다름 없는 소리였다. 총사령관 대리가 쓴웃음을 띄웠다.
  "허튼 소리입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죠. 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건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화평을, 페잔의 독립을 표명한 건 제국과의 화평을 진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만, 동시에 당신들을 초조하게 만들어 폭발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으니까요. 트류니히트 의장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들은 누구도 구속하지 못했죠……."

  에벤스 대령은 입을 열고, 그리고 닫았다. 얼빠진 표정이다. 총사령관 대리는 불쌍한 걸 보는 눈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게 에벤스 대령을 자극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 우리의 대의에 거짓은 없어! 각 함대사령관은 애국위원회의 지시에 따를 것을 표명하라!」

  에벤스 대령의 말에 반응하는 지휘관은 없었다. 말 없이 화면을 보고 있다.
  「왜냐,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냐! 파에타 중장, 귀관은 이 자를 증오하고 있을 거다. 뷰코크 원수, 원래는 총사령관 대리 자리에는 원수나 보로딘 원수가 앉아야 했을 거다.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냐! 발렌슈타인을 싫어한다고 했을 거다! 그건 거짓말이었는가! 이런 어린 놈의 지휘에 따르는 거냐. 어째서냐!」
  눈에 핏줄이 서고 점점 봉두난발이 되어 간다. 소용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위원회에 참가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소용 없습니다. 에벤스 대령. 각 함대사령관에겐 페잔 점령 후 모든 걸 말했습니다. 그들은 애국위원회의 쿠데타가 이용 당한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란 토벌의 대의명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죠. 내란 종결 후, 하이네센에 돌아가면 승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애국위원회는 그들에게 이득과 대의를 준비하지 못했죠. 그리고 저는 그 양쪽 모두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귀관들의 패배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접촉에는…….」
  발버둥치는 에벤스 대령에게 총사령관 대리가 손을 내저어 말을 끊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귀관들에게서 접촉이 있었을 경우, 저에 대해 반발하고 있고 제국과의 화평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하라고 명령했던 겁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잠자코 있는 건 함대사령관들 뿐이다.
  「네 놈들, 날 속인 건가!」
  노성이 울렸다. 화면에서 에벤스 대령이 핏줄 선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면 동맹과 제국은 공멸합니다. 어디쯤에서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국력을 결집하여 제국을 쳐부수는 거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거다!」
  역설하는 에벤스 대령에게 총사령관 대리는 "무리입니다"라고 부정했다.

  "인구 130억의 동맹이 240억의 제국을 정복하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까? 동맹의 국력으로 우주를 통일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혼란에 빠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화평으로 공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국 귀족은 쳐부쉈습니다. 지구교도 힘을 잃었습니다. 화평을 맺는 데에 남은 장해는 동맹에 있는 주전파뿐입니다. 그것도 이번 반란으로 힘을 잃게 되겠죠."

  탕하고 격한 소리가 화면에서 들렸다. 에벤스 대령이 양손을 쥐고 들어 올리더니 다시 한 번 책상을 두들겼다.
  「네놈, 비겁하게…….」
  총사령관 대리가 소리 높여 웃었다. 모두 놀라서 총사령관 대리에게 시선을 향했다. 총사령관 대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웃고 있다.

  "비겁? 비겁이라는 건 정당한 수단이 아닌 위법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시민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을 칭하는 말입니다."
  「…….」
  "귀관은 민주공화정의 군인이면서도 목소리 높인 시정방침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행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약자의 배제와 힘에 의한 폭정, 견식이 없음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귀관들을 속인 것에는 죄악감도 없고 동정심도 없습니다. 차라리 시원할 정도입니다. 저는 루돌프가 굉장히 싫습니다. 귀관들은 그의 조잡한 모조품이라고 할까요?"

  「……우리에겐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다.」
  끈적끈적 달라붙는 듯한 어조였다. 망집, 그렇게 생각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방어병기입니다. 하이네센은 지킬 수 있어도 자유행성동맹 전토는 지킬 수 없죠. 애국위원회는 자유행성동맹의 장악에 실패한 겁니다."

  에벤스 대령이 다시 신음소리를 흘렸다. 총사령관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에는 웃음이 있다. 몸이 떨리는 공포를 느끼며 기립했다.
  "이제부터 애국위원회라 자칭하여 하이네센을 압청 하에 두고 있는 반역자를 토벌한다. 전군, 바라드 성계를 향해 출격하라."
  "예."
  전원이 경례로 총사령관 대리에게 응답했다. 화면은 에벤스 대령의 창백해진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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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1월 10일. 페잔, 제1함대 기함, 아이네이아스. 말콤 와이드본.

  "바빠졌군. 양."
  「동감이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바빠졌어. 하기야 어느 의지 때문에 바빠진 거지만 말이야.」
  "……."
  「보고 있으면 재밌지.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면 말이야.」
  화면 너머에서 양이 웃음을 띄고 있었다. 재밌어 하고 있을 때냐! 당사자라는 인식이 조금도 없는 녀석이다.

  새해가 밝고 나서 꽤 바빠졌다. 1월 3일, 샌포드 의장이 샌포드 전 의장이 됐다. 이유는 페잔에 대한 국가기밀 누설죄, 그리고 뇌물. 후임 의장은 트류니히트 국방위원장이 취임했다. 1월 6일, 동맹군은 페잔에서 문벌귀족 연합군을 격파했다. 그리고 하이네센에선 트류니히트 의장이 승리보고와 제국과의 화평론을 화두에 올렸다.

  7일에 동맹군은 페잔의 80인 위원회, 별칭 장로위원회의 멤버를 지구교 관계자로서 전원 체포했다. 같은 날 하이네센에선 트류니히트 의장이 페잔을 점령할 생각은 없으며 페잔의 독립을 보장한다고 선언. 그리고 8일, 제국은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하고 국내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을 선언했다……. 그건 그렇고 불편하군. 사람 눈을 피해서 개인실에서 통신하고 있다는 건.

  "여기서 화평론을 꺼낼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 좀 더 정권기반을 굳히고서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양이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예상 외의 사태인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화평론을 이야기했단 건 정부 내부는 어느 정도 제국과 화평을 맺는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가 아닌가 싶어. 실제로 관료로부터 반대의견이 나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
  그렇군. 그 말이 맞다.

  "트류니히트 정권의 기반은 의외로 강고한가."
  양이 끄덕였다.
  「샌포드 전 의장의 해임 이전부터 트류니히트 국방위원장을 의장으로 만들자는 합의가 최고평의회 내부에서 있었던 게 아닐까? 아마도 합의 사항 안에는 제국과의 화평도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수완이 너무 좋고 부자연스러워.」

  확실히 수완이 너무 좋다. 샌포드 전 의장 시절, 최고푱의회 내부는 결코 한 덩어리라고 할 수 없었다. 트류니히트 의장과 타렐 부의장, 보론 법질서위원장의 관계는 결코 좋지 않았다. 꽤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보이지 않는다. 대립이 해소되어 있다.

  정치가들은 전쟁에서 평화로 키를 틀려고 하는 듯하다. 샌포드 전 의장이 페잔에 내통하고 있었다는 건 예상 이상으로 정치가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늦기는 했지만 새삼 지구교의 무시무시함을 재인식했다고 할까. 동맹시민 사이에서도 문제시하고 있는 목소리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타이밍에서 화평론을 공표하는 건가……. 승전의 기쁨도 저멀리 날아가 버렸군."
  양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패배한 뒤에 화평을 맺는 것보다 이기고 있는 중에 화평을 맺는 편이 유리한 건 확실하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야기를 꺼낸 타이밍은 틀리지 않았어. 꽤나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양의 말이 맞겠지. 패배 뒤의 강화는 극히 어렵다.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그건 강화에 납득하지 못하는 주전파를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방치해 두면 주전파가 제국령 침공을 주장할 거라고 위기감을 느낀 걸지도 몰라. 동맹시민도 거기에 동조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러니 선수를 쳐서 화평론을 꺼낸 걸지도.」

  "그렇군. 하지만 주전파는 어떻게 나올까? 이대로 화평을 얌전히 인정하리라 생각하긴 어려운데……."
  「그야 반격은 있겠지. 전쟁 속행을 외칠 거야. 간단하게 화평을 받아들이진 않겠지.」
  양이 난해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발렌슈타인은…….

  "잘 알 수 없는 건 페잔의 처우로군. 볼텍은 죽었고 80인 위원회는 사실상 소멸했다. 어떻게 되는 거지?"
  양이 "으음"하고 신음하고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자치령주를 선출할 수 없게 됐지. 통치자가 없는 이상 점령하여 병합하는 건가 싶었는데, 정부는 독립을 보장한다고 하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사령관 대리는 페잔의 통치자를 고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 정부의 지시를 기다리는 건가?」
  "호오, 틀림 없는 건가?"
  「통치자를 선정하고 있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생각해. 카젤느 선배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선배도 당황하고 있었지.」

  "정부와 총사령관 대리 사이에 의견 상충이 있었던 걸까? 일치하고 있던 건 지구교 배제까지였다든가."
  양이 또 신음했다.
  「그렇지. 그 경우 대립점은 정말 독립 시킬 것인가, 아니면 괴뢰를 세우고 명목 상 독립을 시킬 것인가. 대충 그런 거겠지.」
  "……누가 무슨 의견일까?"
  「글쎄, 누가 무슨 의견일까?"

  서로 확실하지 않은 어조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상상은 간다. 아마도 정부는 괴뢰를 세울 것을 바라고 있겠지. 페잔의 경제권익을 손에 넣고 싶을 것이 틀림 없다. 발렌슈타인은 거기에 반대하고 있다. 그렇기에 괴뢰를 고르는 행위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할 건가?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있을 듯하지만…….

  "제국이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했지. 꽤나 큰 발걸음을 내딛었어."
  「문벌귀족이 몰락하고 제국정부는 유전자의 맹신을 부정했다. 동맹 입장에서 보면 화평의 허들이 꽤나 낮아졌지. 동맹시민을 설득하기도 쉬워졌어. 그건 그렇고 페잔 독립을 보장한 직후의 발표라는 게 의미심장하네.」
  양이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아마도 총사령관 대리는 제국과의 화평을 맺는 걸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페잔의 경제이익을 얻어도 전쟁이 계속 되면 의미가 없어.」
  "전쟁 계속인가……. 양, 페잔의 속령화를 바라고 있는 건 정부가 아니라 주전파라는 가능성은 있을 수 없나? 겉으로는 경제적 권익을 주장하며 진짜 목표는 제국령 침공……."
  내 지적에 양이 "그렇네"하고 끄덕였다.

  「가능성 있어. 정부, 혹은 산업계의 일부가 거기에 동조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트류니히트 의장도 생각보다 운신 할 수 없는 상황일 가능성이 있어. 열악유전자 배제법 폐지는 제국에서 트류니히트 의장에게 보내는 원호사격인가. 이쪽이 진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고개를 갸웃하는 양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페잔의 처우가 좀처럼 확실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겠지. 마치 3차원 체스로군. 동맹, 제국이 한 수 한 수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다음 수를 쓰고 있다. 발렌슈타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나 양이 눈치 챈 점을 녀석이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정부로부터 상황 보고가 없었을 거라 생각하기도 힘들다.

  단순하진 않군. 3차원 체스와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녀석의 존재겠지. 개인이면서도 어딘가 동맹, 제국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13개 함대를 이끌고 페잔에 있다. 마치 제국, 동맹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맹, 제국, 그리고 주전파,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신 램프가 점멸하고 있다.
  "양, 통신이 들어왔다. 일단 보류로 해두지."
  「이쪽도 그래. 와이드본.」
  서로의 얼굴을 힐끔힐끔 봤다.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양의 통신을 보류로 해두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비춘 것은 부관인 수울즈콰리터 대위였다. 총사령부에서 시급히 하소르로 출두하라는 연락이 있었다는 듯하다. 양도 같은 이야기였다. 우리들 두 사람뿐인가. 아니면 함대사령관 전원인가…….


  하소르에 출두한 건 나와 양 두 사람뿐이었다. 묘하게도 함교에는 발렌슈타인이 없었다. 의심쩍어 하자 미하마 중령이 "총사령관 대리는 개인실에서 제독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하고 안내해줬다. 아무래도 오늘은 방문객이 많은 듯하다. 중령의 말로는 조금 전까지 파에타 중장이 하소르에 와있었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걸까? 무척이나 마음 불편한 자리였겠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선객이 있었다. 뷰코크 원수와 보로딘 원수였다. 셋이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뷰코크 원수가 발렌슈타인과 나란히 앉아 있고 정면에는 보로딘 원수가 앉아 있었다. 발렌슈타인은 우리들을 보고 "이쪽으로"하고 말하며 앞을, 보로딘 원수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양과 서로를 돌아봤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다. "실례합니다"하고 말하고 보로딘 원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제1함대 상황은 어떻습니까?"
  "보급은 끝났습니다. 앞선 회전에서 파손한 함선 수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그걸 빼면 언제라도 함대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내가 답하자 발렌슈타인이 시선을 양에게 향했다. 양이 "제3함대도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제1, 제3, 두 함대는 후방 차단을 담당했기 때문에 파손한 함선은 그리 많지 않다. 발렌슈타인이 뷰코크 원수, 보로딘 원수에게 시선을 향했다. 두 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론인가.

  "귀관들은 나와 함께 우르바시로 향하게 됐네."
  보로딘 원수가 말했다. 우르바시? 이번 전투에선 보급거점으로 썼던 곳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우르바시로 함대를 움직이는 건 무슨 의미가? 단순한 경비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뭔가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양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게다가 "나"라고 했다. 뷰코크 원수는 관계 없는 건가?

  원수들은 의심쩍어하는 우리들을 보고는 서로를 돌아보고 희미하게 쓴웃음을 띄웠다. 발렌슈타인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일어서더니 집무석으로 향하여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봉투인 듯하다. 소파에 돌아오더니 그 봉투를 나에게 건넸다.

  안 좋은 예감이 더욱 강해지지만 거절은 불가능하다. 받아 들고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 ……그렇군. 3개 함대를 움직이는 이유는 이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군. 여기서 선택 됐다는 건 나름대로 신뢰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양이 나와 종이를 신경 쓰이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기뻐해라. 너도 신뢰 받고 있는 것 같다. 종이를 양에게 건넸다.



우주력 796년 1월 30일. 페잔, 제1특설함대 기함, 하소르. 장 로베르 랍.

  "어떻게 될까요?"
  "글쎄. 어떻게 될까."
  코클랭 대령과 우노 소령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화하고 있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하소르 함교에는 이곳저곳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고개를 갸웃하고 싶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총사령관 대리가 있다면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개인실에 틀어박혀 있다.

  "우리들은 언제 쯤이면 하이네센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정부에서 귀환명령이 내려오면 돌아갈 수 있겠지."
  "나옵니까? 그거."
  우노 소령이 의심쩍은 목소리로 말하자 코클랭 대령이 "글쎄"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함교에는 탈력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대로 가면 귀환은 어렵겠지. 페잔의 처우도 결정되지 않았고."
  코클랭 대령의 답에 다들 표정을 찡그렸다. 페잔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 방침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동맹정부는 페잔의 독립을 보장한다고는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이대로 제국령으로 돌입하라든가 있을 수 없는 일일까요?"
  "……하이네센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무리도 있는 듯하더군."
  "전쟁 속행이 되어 버리면 총사령관 대리는 어떻게 하실까요? 요전에 그만 둔다든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만."
  "어렵겠지. 군이 간단히 총사령관 대리의 퇴역을 인정하리라 생각하기 힘들어."
  "그렇겠죠."
  코클랭 대령과 우노 소령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 다들 끄덕이고 있다.

  "총사령관 대리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 건 아냐. 이 전쟁에서 2천만 명 가까이 죽었어. 이제르론이나 반플리트까지 더하면 사상자는 3천만 명에 가깝겠지. 슬슬 지긋지긋해질 법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정신 이상한 놈이고."
  브레첼리 준장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나왔다. 나도 한숨을 내쉬고 싶다. 3천만 명? 엄두도 나지 않는 숫자다.

  "하지만 하이네센에선 주전파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는 듯하더군. 페잔의 처우가 정해지지 않는 것도, 귀환명령이 나오지 않는 것도 지금이 제국령 침공의 찬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겠지."
  춘우 총참모장의 말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떫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나도 당분간은 전쟁하고 싶지 않다. 이제 지긋지긋하다.

  현재 은하제국은 혼란 상태에 있다. 제국 정부는 이번 귀족연합군에 참가한 귀족들에 대해 패전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구체적으로는 작위, 영지 박탈이다. 그리고 귀족연합군에 참가한 귀족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귀족들의 유족이나 친족은 납득할 수 없다고 정부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그걸 제국의 정규군이 토벌하고 있다. 주전파의 주장은 그 혼란을 틈타 밀고 들어가자는 것인 듯하다…….

  "며칠 전, 전자신문에 망명자를 군의 중요 지위에 올려도 좋은 거냐는 칼럼이 있었죠. 어차피 제국인인데 신용할 수 있겠냐고. 어딜 어떻게 봐도 총사령관 대리를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 칼럼 배후에는 주전파가 있겠죠.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가 화평파와 이어져 있다는 게 재미 없나봅니다."

  "뭐, 이어져 있다기 보단 화평파의 중심이라는 평가가 정확하겠지. 그러니 방해물인 거야. 신경 쓸 필요 없다. 정면에서 바라보고 총사령관 대리를 비난할 수 없으니까 음침한 곳에서 뒷담이나 하는 거지."
  브레첼리 준장과 총참모장의 대화에 모두가 끄덕였다.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지휘관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오히려 눈이 마주치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겠지. 나도 그 칼럼을 읽었지만 너무나 노골적이라 바보스러울 청도로 유치해서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침공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대로 가면 총사령관 대리가 말한 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비로라이넨 준장이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듯이 질문했다. 몇 사람인가가 끄덕였다. 그걸 보고 준장이 말을 계속했다.

  "12조 제국 마르크라구요? 그걸 국채 상환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만, 실제론 배상금 같은 거겠죠. 귀족은 괴멸 상태에 제국 정부는 개혁을 행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폐지, 국채 상환이라는 형태로 배상금을 낸다. 이거 동맹이 이겼다는 거라구요. 제국은 패배를 인정한 겁니다. 이미 충분하겠죠. 제국이 개혁을 진행한다면 침공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주전파는 국채가 상환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거겠지. 그보다도 동맹정부가 발행한 50조 디나르의 국채가 사실상 사라진 쪽을 더 기뻐하는 것 같아. 빚이 사라진 거니까 그만큼 군사비를 늘려서 제국령으로 침공하자는 계산이다. 2천억 디나르의 임시수입도 있었고……."

  "2천억 디나르입니까. 크네요. 총참모장. 이번 군사행동입니다만 정부는 1천억 디나르를 예산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순수히 경제활동으로선 흑자라구요. 국채의 건도 포함하면 거저먹기나 다름 없습니다. 주전파가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카젤느 선배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전쟁으로 번다? 대체 언젯적 이야기지?

  "그거, 모두 총사령관 대리가 한 거라구요."
  "……."
  "뭐, 거저먹기라고 해야 하나, 불난 집 도둑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본인은 화평을 위해 한 일인데 전쟁 계속이라니……. 저라도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브레첼리 준장의 한탄에 다들 끄덕였다. 동감이다. 나도 한 마디 거들어야겠다.

  "애초에 언제까지 전쟁을 할 겁니까? 지금 화평이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전쟁을 계속하라고 한다면, 끝이 어딘지 보여주지 않으면……. 이대로 질질 끌려다는 건 사양입니다. 목숨이 몇 개나 있어도 모자릅니다. 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습니다. 약혼자가 있으니까요?"
  내 말에 이곳저곳에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화평이 보이기 시작하여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해지고 있다.

  "뭐, 트류니히트 의장은 전쟁 계속에는 반대하는 모양이다. 의장의 고집에 기대할 수밖에 없지."
  "의지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총참모장. 원래는 주전파였던 사람이라구요. 언제까지 주전파를 억누를 수 있을지……."
  내 말에 춘우 총참모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꽤 열심힌 모양이야. 주전파는 꽤나 초조한 모양이라고 셀레브레제 대장에게서 들었다. 전자신문 건도 놈들의 초조함이 원인이겠지. 스트레스 발산인가. 울분을 하이네센에 없는 사람들에게 부딪힌 거다. 애초에 그걸 쓴 건 황색언론 종류지만. 아무도 신용하지 않아."
  카젤느 선배의 말에 다들 애매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좀처럼 신용할 수 없다. 그런 느낌이다.

  "긴급통신입니다!"
  돌연 오퍼레이터가 큰 목소리를 냈다. 표정이 굳어져있다. 좋지 않은 징후다. 무언가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함교의 분위기가 긴장됐다. 제국령 침공, 그 단어가 머릿속에 반짝거렸다. 나 혼자가 아니겠지. 다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총참모장이 "무슨 일인가"하고 물었다.
  "하이네센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 모두가 서로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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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1월 7일. 하이네센. 통합작전본부. 바그다슈.

  "대승리, 축하 드립니다."
  내가 축하의 말을 전하자 화면 너머의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가 가볍게 웃음을 띄웠다.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는다. 페잔에서 순조로운 거겠지.
  「동맹시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놀라고 있습니다. 난리가 났죠."
  총사령관 대리가 끄덕였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한밤중에 파자마 차림으로 회견 한 것도 난리였습니다만, 페잔에서 대승리를 거둔 것도 놀라고 있습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군대를 은밀히 페잔 방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건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전쟁은 조금 더 나중 일일 거라고 시민들은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또 끄덕였다. 다들 놀라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트류니히트 의장이 제국과 화평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했다는 게 동맹시민에게 있어서 놀라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응은 어떻습니까?」
  "찬반이 팽팽합니다. 뭐, 다수는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감정으로는……, 이라는 마음이겠죠. 대승리 직후입니다. 어째서 지금? 그런 생각도 있으리라 봅니다."

  총사령관 대리는 불만스런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조금은 의외였다.
  "괜찮겠습니까?"
  총사령관 대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최고평의회 의장이 공식으로 화평을 검토하고 있다고 표명했다. 그리고 동맹시민은 머리까지 화평론을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니다. 현시점에선 그걸로 충분하겠죠. 화평론은 비로소 시민권을 얻은 셈입니다.」

  그렇군. 확실히 그렇다. 지금까지는 최고평의회 의장이 화평론을 표명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생명이 끝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지구교의 음모, 제국의 개혁, 그리고 샌포드 의장의 스파이 의혹……. 특히 페잔이 국채와 주식을 써서 동맹, 제국을 좌지우지하려 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동맹시민 사이에선 이대로 전쟁을 계속해도 되는가 하는 의혹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약합니다. 이대로 가면 다시 주전론이 기세를 가지게 되겠지요."
  「그렇겠죠. 공세를 가하여 압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하면, 페잔에서 지구교 잔당 사냥을 하는 것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지만…….

  「렘샤이트 백작과 만나주겠습니까?」
  "……."
  호오, 제국에게 뭔가 할 생각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하길 바란다고 전해주길 바랍니다.」
  "!"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

  "하, 하지만 가능하겠습니까? 그건……"
  내가 말을 흐리자 총사령관 대리가 가볍게 소리 내어 웃었다.
  「루돌프 대제가 만든 제국의 조법(祖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청안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이후로 유명무실해진 법입니다. 폐지 해도 사회적인 혼란은 일어나지 않아요. 게다가 앞장서서 반대할 법한 귀족들은 모두 처부쉈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만……."
  또 총사령관 대리가 웃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내심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골덴바움의 피는 약체화되고 있습니다. 자손이, 특히 남아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제국이 후계자 문제로 흔들린 것도 그게 원인입니다.」

  그렇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각자 딸이 한 명밖에 없다. 생식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건가. 유전자적으로는 약자라 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열악유전자라 판단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에게 그쪽으로 설득하면 폐지까지 갈 수 있으리라 총사령관 대리는 생각하고 있다…….

  제국이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하면 그 영향은 확실히 크다. 유명무실하다고는 해도 루돌프가 만든 법이다. 게다가 은하제국이 포악하다고 비난 받는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공화주의자를 탄압하고 인류가 제국과 동맹으로 양분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걸 폐지한다……. 제국에서의 영향은 작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맹이 받는 충격은 크다. 개혁과 함께 행한다고 한다면 주전파도 제국을 포악하다고 비난하기 힘들다.

  「뭐, 헤르크스하이머의 건도 있으니까요. 그 두 사람도 싫다곤 하진 않겠죠.」
  헤르크스하이머? 총사령관 대리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상쩍은 웃음을 띄고 있다. 내가 알 필요는 없다는 건가? 혹은 렘샤이트 백작에게 은근슬쩍 전하라는 걸까……. 양쪽 다 그럴듯하다.

  「헌데, 예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가장 당황하고 있는 건 그들일지도 모르겠군요. 예정이 틀어졌다, 라는 느낌입니다. 오늘도 회의를 열고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나올지. ……움직일지, 아니면 포기할지……."
  총사령관 대리가 웃음을 띄고 날 보고 있다.

  "포기하는 일은 없겠죠.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움직이기 쉬운 상황이 됐으니까요. 문제는 때에 맞춰 준비가 끝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조잡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좋겠습니다만. 그 때문에 전 함대에게 통신 봉쇄를 명령했으니까요.」
  "그렇군요."
  적은 귀족연합군만이 아니다. 거기까지 보고 통신봉쇄인가…….

  「시톨레 원수는 뭐라고 하십니까?」
  "각하에 대해서 악당의 지혜로만 움직이는 놈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악당은 달리 있는데 말이죠.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누굴 가리키는 걸까, 시톨레 원수? 혹은 나일까?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헌데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도 원수께 전해주세요. 트류니히트 의장에겐 시톨레 원수께서 전하시도록 하죠. 렘샤이트 백작에게 전하는 건 그 뒤에.」
  "예."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가 지긋이 날 봤다.
  「그럼 준장, 뒤는 맡기겠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쪽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몇 번 눈을 가늘게 하고 끄덕였다. 사냥감을 시야에 뒀을 때의 육식동물의 눈이다. 쇤코프 준장이 봤다면 기뻐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국력 487년 1월 8일. 오딘, 신무우궁.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하라는 건가."
  「네. 이미 트류니히트 의장에게도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의장도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저 법은 동맹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리텐하임 후작이 놀라고 있다. 후작이 나에게 시선을 향해왔다. 후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애매한 표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그다슈 준장에 의하면 발렌슈타인은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폐지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렘샤이트 백작의 말에 리텐하임 후작이 "분명 그렇지만……."하고 어미를 흐렸다.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루돌프 대제가 만든 법이며 유전자와 혈통을 중시하는 제국의 기반이기도 한 법이다. 어떤 의미로는 제국 국체의 부정이라고 해도 좋겠지. 리텐하임 후작이 말을 흐리고 내가 입을 다무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화면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렘샤이트 백작이 말하기 어렵단 표정을 짓고 있다.
  「두 분에게도 곤란한 법이 아닌가 하고 바그다슈 준장이 말했습니다만.」
  "그건 무슨 뜻인가?"
  내가 묻자 렘샤이트 백작이 시선을 내렸다.
  「두 분 모두 여식이 한 분씩밖에 없습니다. 황족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리텐하임 후작이 표정을 찡그렸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발렌슈타인은 바그다슈 준장을 통해 골덴바움의 피가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렘샤이트 백작은 돌려 말하고 있지만 본인은 바그다슈에게 좀 더 노골적인 말을 들었던 거겠지. 굉장히 말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다시 말해 폐지하는 편이 우리들에게 좋다는 건가. 우리들은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유지할만한 자격이 없다고."
  내 말에 리텐하임 후작이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좋은 표정이 아니다. 렘샤이트 백작이 당황했다.

  「그런 말씀은……, 그러고 보니 바그다슈 준장이 묘한 말을 했습니다만.」
  "……."
  「헤르크스하이머의 건도 있다고. 무슨 말이냐고 되물어 보니 준장도 모르는 듯했습니다. 발렌슈타인이 우리에게 전하도록 한 것 같더군요.」
  헤르크스하이머? 확실히 묘한 말을 하는군.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을 말하는가? 뭔가? 리텐하임 후작이 표정을 굳혔다.

  "후작?"
  "아아, 아무 것도 아닐세. ……지금 바로 대답할 순 없다. 폐지한다고 하면 폐하의 윤허를 받아야만 하겠지. 그렇지 않은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뭐, 그렇지. 렘샤이트 백작. 동맹측에 의견은 알겠다. 조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네.」
  렘샤이트 백작이 다행스런 표정을 했다. 통신을 끊었다.

  "후작. 무슨 일이 있었는가?"
  "……."
  "헤르크스하이머라고 한다면,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질문에 리텐하임 후작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아, 그래."하고 끄덕였다. 역시 뭔가 있다. 그리고 후작은 뭔가 알고 있다.

  "그건 언제였을까?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이 오딘을 도망쳤던 건."
  "483년 말미였지. 벌써 3년이 지났네."
  "그런가. 3년인가."
  벌써 3년이 지났는가…….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이 도망친 뒤, 백작 저택에서 부인의 시체가 발견됐다. 사인은 독살. 그리고 백작도 그 가족도 도망 중에 죽었다. 그걸로 오딘에선 갖가지 소문이 흘렀다.

  "헤르크스하이머 백작부인을 죽인 건 나다. 정확히는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을 죽이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실수로 백작부인을 죽이게 되었지.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은 그걸로 오딘을 도망쳤다. 본래 백작만 죽고 끝날 일이었지만……."
  "……."
  리텐하임 후작의 표정이 쓰다. 예상 외의 결말은 본의가 아니었던 거겠지. 하지만 어째서 죽이려고 했지?

  "자의가 아닐세. 선선대 프리드리히 4세 폐하의 허가를 받았던 일이다."
  "……무슨 말인가."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은 리텐하임 후작의 주변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백작을 폐하의 허락을 받고 죽이려 했다? 사사로운 일은 아닌 듯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지?

  "당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는 다음 제위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관계였네.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은 자신의 세력확장을 위해 어떻게든 사비네를 다음 여제로 만들려 했지. 그리고 어떤 비밀을 찾아냈네."
  "비밀?"
  리텐하임 후작이 끄덕였다.

  "화내지 말고 듣기 바라네.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은 엘리자베트의 유전자를 은밀히 감정했던 걸세."
  "설마."
  바보 같은. 엘리자베트는 황가의 피를 잇고 있는 거다. 그걸 허락도 없이 유전자를 감정했다고? 사실이라면 불경죄로 처벌 받을 일이다. 백작이 죽게 된 건 그게 이유인가?

  "그 결과, 엘리자베트는 X연쇄우성유전병을 일으킬 인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네."
  "……그게 무슨 말인가?"
  리텐하임 후작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엘리자베트의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수학적인 확률의 문제가 되지만, 그 인자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 임신했을 경우, 여아의 50퍼센트는 발병하고, 남아의 50퍼센트는 태내 사망에 의해 출생하지 못하네. 따라서 유산의 가능성이 높고, 태어나는 자손은 여아가 남아보다 2배 많다는 계산이 되지."
  "리텐하임 후작!"
  내가 소리 높여 외치자 리텐하임 후작이 "마지막까지 들어주게. 부탁함세."하고 말했다. 표정은 쓰디쓴 채다.

  "그걸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돌연변이인가, 유전적으로 이어 받은 것인가하는 의문이었네. 그 의문이 가지는 의미에 눈치챘을 때, 나는 몸을 떨 수밖에 없었네.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말이야. 눈치 챘다면 나에게 알리지 않았을 테고 백작도 죽지 않았겠지."
  "……설마."
  목소리가 떨렸다. 리텐하임 후작이 끄덕였다.
  "사비네의 유전자를 은밀히 감정하게 했네. 결과, 사비네도 X연쇄우성유전병을 일으킬 인자를 가지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친이 자매인 두 사람의 딸이 같은 인자를 보유하고 있다. 돌연변이가 아니야. 모친에게 이어 받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지. 공작에게 상담할까도 생각했지만, 일단 먼저 선선대 폐하에게 보고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네. 엘빈 요제프 전하에 대한 일도 있었으니. 보유자는 선선대 폐하인 건가, 황후 폐하인 건가……, 솔직히 말하지. 죽음도 각오했네."
  "……."

  후작뿐만이 아니다. 나도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왕가에 유전적 질환이 있어선 안 된다. 원인은 나와 리텐하임 후작이라는 게 됐을 것이다.
  "선선대 폐하는 이미 알고 있었네. 보유자는 황후 폐하였다."
  "설마."
  리텐하임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다."라고 중얼거렸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몇 번인가 유산했었지? 그 건으로 수상하게 여겨 은밀히 조사한 듯 하네. 그 때 우리들에게 아이가 한 명씩밖에 없다는 걸 보고 만일을 위해 조사한 듯하네. 선선대 폐하에게도 베네뮌데 후작부인에게도 문제는 없었다. 유산에는 다른 원인이 있었던 거지. 알려주시진 않았으나. 하지만 얕궂게도 우리들의 처와 딸에겐 이상이 검출되었다. 황후 폐하가 보유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피곤한 표정, 지친 목소리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황후 폐하는 황가에 받아들어진 시점에 검사를 받았을 터.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면 사전에 알았을 텐데……."
  내 질문에 리텐하임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선선대 폐하는 본래 황제에 오르실 분이 아니었네. 그 때문에 검사는 대충대충했다는 것 같군."
  한숨이 나왔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 건가.

  "폐하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아이를 주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지 생각하고 있네."
  "……."
  "백작부인에게서 아무 이상 없는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기라도 해보게. 그렇게 되면 후계자는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아이로 해야만 하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새로운 혼란이 일어나겠지. 그걸 걱정하셨으리라 생각하네."
  다시 한숨이 나왔다.

  "내가 몰랐던 이유는?"
  "폐하는 공작에게 알릴 필요 없다고. 딸의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고 아비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하셨네. 동감이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어."
  "그렇군. 그 말이 맞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따라서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은 죽었다. 죽지 않으면 안 됐다.

  "미안하군. 후작. 후작에게만 하기 싫은 일을 떠밀어버린 모양이다."
  "신경쓰지 말게. 공작이 같은 입장이었다면 같은 행동을 했겠지. 그 뿐인 이야기일세."
  "……."
  화면이 재색으로 둔하게 빛나고 있다. 그 모습조차 징그럽게 생각됐다.

  "발렌슈타인은 이 일을 알고 있는 듯하군. 헤르크스하이머 백작의 일족은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네만……."
  "살아남은 자가 있었겠지. 거기서 흘러들어갔으리라 생각하네."
  리텐하임 후작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나도 그렇겠지. 지키고 있던 비밀이 가장 몰랐으면 하는 상대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별 수 없군. 후작.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하도록 하지."
  "그렇군. 그렇게 할까."
  "다행히 반대할 터인 귀족들은 몰락했다. 정치적인 문제는 없을 터."
  정치적인 문제는 없다. 하지만 리텐하임 후작의 얼굴색은 좋지 않았다. 아마도 부인과 사비네에게 어떻게 말할지, 혹은 말하지 않을지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아프다.

  문벌귀족이 멸망하고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폐지된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 체제의 종언이군. 결국 이 날이 왔는가……. 500년이나 이어져 내려왔다고 해야 하는가, 500년밖에 이어져 내려오지 못했다고 해야 하는가. 사람의 일생을 생각한다면 길다고 해야 하겠지만, 국가의 흥망성쇠를 생각하면 대단치 않은 기간이겠지. 500년 이상 지속된 국가는 역사에 널려 있다. 그 폐막을 여제부군인 내가 행하게 될 줄은, 1년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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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1월 6일. 오딘, 오프레서 원수부.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원수부에 출근하니 회의실로 모이라는 고지가 내려와 있었다. 동료들은 이미 회의실로 향한 듯하다. 서둘러 나도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메크링거, 아이제나흐, 비텐펠트, 미터마이어, 뮐러가 모여 있었다.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옆자리의 뮐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소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페잔 방면에서 움직임이 있었던 듯 합니다만……."
  뮐러가 고개를 흔들며 어미를 흐렸다. 페잔인가. 귀족연합군이 제멋대로 굴고 있는 듯했지만. 페잔인이 폭동이라도 일으켰나?

  다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가능성은 있겠지. 그 놈들, 클롭슈톡에서도 약탈이 심했다고 들었다. 페잔인이 견딜 수 없게 되어 폭동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건 오프레서 원수였다. 그 뒤에 뮈젤 제독, 케슬러 참모장, 클레멘츠 부참모장이 이어서 들어왔다. 서둘러 기립하여 경례로 맞이했다.

  다들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오프레서 원수가 우리들과 직접 만나는 일은 없었다. 항상 뮈젤 제독을 통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폭동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답례가 끝나고 다들 자리에 앉자 오프레서 원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6일 새벽,  페잔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모두 서로를 돌아봤다. 전투가 시작됐다고?

  "귀족연합군에 대해 자유행성동맹군이 기습을 가했다."
  "……."
  "귀족연합군은 불의의 기습에 압도적으로 열세인 모양이다."
  "동맹군은 자신들의 영지 내부에 귀족연합군을 유인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메크링거 소장이 묻자 오프레서 원수가 흥하고 코를 울렸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몰래 페잔에게 접근하고 있었던 거겠지. 제대로 속았다는 거다."
  "……."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끌어들여 때린다. 전쟁의 상식이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불의를 찔렀단 말인가.

  "혹은 함대를 페잔으로 순간이동시켰든가. 그 사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
  "농담이다. 재미 없었는가?"
  농담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다. 다른 이들도 웃지 않는다. 잠자코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원수가 흥하고 코를 울렸다.

  "전황은 귀족연합군의 열세라고 들었습니다만……."
  "귀족연합군은 포위 당했다. 얼마나 살아남을지……, 전멸해도 난 놀라지 않는다."
  로이엔탈 소장과 원수의 대화에 모두 표정이 굳었다. 전멸? 그렇게 되면 전사자는 2천 만을 넘게 된다.

  "농담이 아니다. 브룩하우젠 후작을 포함한 귀족들 태반이 지상에 내려가 있던 모양이다. 함대는 지휘관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서 싸우고 있어. 발렌슈타인을 상대로 살아남는 건 어렵겠지."
  "설마, 정말입니까? 그건."
  원수의 말에 뮈젤 제독이 놀라고 있다. 함대는 지휘관 없이 뿔뿔이 흩어져 싸우고 있다? 아무래도 제독도 몰랐던 모양이다.

  "페잔의 마린도르프 백작에게서 연락이 있었다. 주요 귀족들은 모두 지상에 내려가 있던 모양이야. 지금은 동맹군에게 쫓겨 고등변무관 사무소에 도망친 상태다. 이미 주변은 포위된 것 같더군. 도망치는 건 힘들겠지."
  "……."
  다들 한숨을 내뱉었다.

  "하기야 동맹군의 포위가 없었다면 페잔 시민이 습격하고 있었을 거라고 마린도르프 백작은 보고하고 있다. 시내 이곳저곳에서 귀족연합군과 페잔 시민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 동맹군에게 두들겨 맞고 페잔 시민에게 습격 당하고, 최악의 상황이군."
  "……."
  다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귀족연합군은 페잔 시민의 원한을 있는 대로 산 모양이다.

  "이미 뮈젤 중장에게는 말했지만, 이번 원정에 참가한 귀족들은 패전 책임을 지는 걸로 되어 있다. 영지, 재산 몰수와 작위 박탈이다."
  다들 또 서로를 돌아봤다. 귀족들이 얌전히 따르지는 않겠지. 당연하지만 저항할 거다.

  "출격 준비를 해둬라."
  그렇게 말하고 오프레서 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기립하여 경례로 배웅했다. 원수는 그에 응하는 일 없이 방을 나갔다.



우주력 796년 1월 6일. 페잔, 제국고등변무관사무소. 미하마 사아야.

  "여기에 오는 건 오랜만이군요. 미하마 중령."
  "네. 이 전에 온 뒤로 3년 지났습니다."
  제가 대답하자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는 눈앞에 있는 제국 고등변무관 사무소를 그리운 눈빛으로 봤습니다. "그렇게나 지났습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저는 조금 복잡한 기분입니다. 이 고등변무관 사무소에서 열린 파티에 참가했던 일은 잊을 수 없습니다. 따뜻하면서도 애절했던 파티. 하지만 나중에 그 파티에 참가했던 걸 굉장히 후회했습니다. 제가 정보부에서 멀어졌던 것도 그 파티가 계기였습니다. 따뜻함과 애절함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건 무시무시함과 혐오였습니다.

  귀족연합군과의 전투는 이미 끝났습니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포위섬멸전이었습니다. 포위하는 것도 쉬웠습니다만 포위한 후에도 귀족연합군에게서 대단한 저항은 없었습니다. 병력은 막대했지만 조직력이 없고 연대를 취한 반격도 없었습니다. 동맹군의 공격 앞에 어쩔 도리 없이 격파 당했습니다. 귀족연합군은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이었던 겁니다.

  최종적으로 귀족연합군은 3만 척 남은 시점에서 항복했습니다. 그것도 전체가 항복한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제각기 항복해왔습니다. 전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도 없이 싸우고 있었던 겁니다. 총사령관인 브룩하우젠 후작은 지상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결국 전투 중에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든가. 한심한 참상에 다들 어처구니 없어 했습니다.

  지상전도 끝났습니다. 이쪽은 함대전보다도 먼저 결착이 났습니다. 귀족연합군은 블라스터 정도의 경화기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완전무장한 육전대 앞에 어찌 할 도리 없이 압도 당해 항복했습니다. 남은 건 눈앞에 있는 고등변무관 사무소에 도망친 귀족들 뿐입니다.

  "어떻게 하실 건지? 저희들은 언제라도 돌입할 수 있습니다만."
  쇤코프 준장이 총사령관 대리에게 물었습니다. 즐거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입니다.
  "대화로 해결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안으로 들어간다고 전해주세요."
  "……."

  네에? 눈이 점이 되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쇤코프 준장, 리츠 중령, 블룸하르트 소령, 데어 데켄 소령……. 각하, 알고 계신가요? 당신은 총사령관 대리며 귀족연합군을 쳐부순 장본인입니다. 귀족들에게 있어 각하보다 증오하는 존재는 달리 없을 터입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간다구요?

  "저기에는 마린도르프 백작이 있고 그에게는 딸이 있습니다. 곤란하게도 여기에 동행하고 있죠. 전투가 벌어지면 휘말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로 해결합니다."
  의지는 굳건한 모양입니다. 쇤코프 준장이 어깨를 으쓱 했습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외견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고하다는 걸 준장은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30분 후, 총사령관 대리, 쇤코프 준장, 블룸하르트 소령, 데어 데켄 소령,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은 고등변무관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내 된 곳은 그 파티가 열린 방입니다. 그 때엔 장신구로 치장한 초대객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눈에 핏줄이 돋은 사람들이……. 마음이 무겁습니다. 싫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총사령관 대령은 빙그레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어째서?

  "잘도 왔군. 발렌슈타인."
  말로는 환영하고 있습니다만 끈적끈적한 어조에는 증오가 묻어있습니다. 이상한 머리모양에 혈색이 나쁜 남성이 총사령관 대리를 증오에 찬 눈빛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걸 보고 총사령관 대리가 쿡하고 웃었습니다.

  "미하마 중령, 저 사람은 프레겔 남작입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카에 해당하며, 프레겔 남작 자신도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레겔 남작이 조금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였습니다.
  "하기야 그 외에 자랑할 거리도 없죠. 헤어스타일도 이상하고."
  쇤코프 준장 일행이 실소했습니다. 저도 뿜었습니다. 프레겔 남작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습니다.

  "네 놈, 죽고 싶은 건가!"
  프레겔 남작이 협박해왔습니다만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는 "무섭네요"하고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절 죽이면 큰일이 일어나니까요."
  "……."
  무섭습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습니다.

  "동맹군은 포위를 풀 겁니다. 그리고 페잔 시민이 여기로 몰려 들겠죠."
  귀족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폭동이라는 건 군대와 다릅니다. 굉장히 잔인하죠. 분이 풀릴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죽입니다. 시체는 누더기 걸레와 구분할 수 없겠죠. 마린도르프 백작, 당신도, 당신의 딸도 마찬가집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시선을 향한 방향에는 초로의 신사와 젊은 여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굳어 있습니다. 초로의 신사가 헛기침을 했습니다.
  "프레겔 남작, 자중하도록 하게. 내가 경들을 여기에 들여보낸 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피난으로서 인정했기 때문일세. 우리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취할 거라면 여기서 나가도록 하게."

  "우리들을 내쫓겠단 건가!"
  프레겔 남작과는 다른 귀족이 격분했습니다.
  "경들의 출병은 정부와는 관계 없이 이뤄진 일일세. 그런 이상 여기에서 숨겨줄 의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네. 그렇지 않습니까? 브룩하우젠 후작."
  "……."

  어머머, 내분일까요? 마린도르프 백작의 말에 귀족들이 떫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까 격분한 사람이 브룩하우젠 후작? 귀족연합군 총사령관이 이런 곳에 숨어있었다니……. 조금 너무 무책임한 건 아닐까요? 전사한 병사들이 불쌍합니다…….

  "걱정 없다. 마린도르프 백작. 저 자를 인질로 하면 돼. 배를 준비하게 하고 제국으로 돌아가는 거다. 저 자를 데려가면 백부님도 기뻐하시겠지!"
  프레겔 남작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총사령관 대리를 손가락질 했습니다. 주변 귀족들이 입을 모아 프레겔 남작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소용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해도."
  총사령관 대리의 말에 귀족들이 불만스런 표정을 보였습니다.
  "동맹정부는 우리들 모두를 한꺼번에 처리하라고 명령할 테니까요."
  "……."
  "망명자로서 무공을 너무 쌓았으니까요. 눈엣가시입니다. 저는. 죽어주는 편이 동맹에게 있어서도 좋은 겁니다."
  "……."

  "발렌슈타인 중장은 인질이 되면서까지 비열한 귀족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까지 포함해 모두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동맹 정부는 그렇게 발표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
  총사령관 대리가 백작 영애에게 질문하자 그녀가 끄덕였습니다.

  "그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알겠습니까?"
  총사령관 대리의 말에 귀족들이 떫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쇤코프 준장도 "있을 법하군요."라고 끄덕이고 있습니다. 확실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안심하시죠. 제국으로 돌아가게 해드리겠습니다."
  총사령관 대리가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무섭습니다. 틀림없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족들도 뭔가 흉흉한 것을 느낀 거겠죠.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어째서 우리들을 돌려보낸다는 거지?"
  어떤 귀족이 깊은 의심이 담긴 질문을 했습니다. 총사령관 대령이 이름을 묻자 샤우드 남작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사람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카인 듯합니다.
  "여제부군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친족이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양국 관계를 생각하면 죽이는 건 삼가하는 편이 좋겠죠. 게다가 당신들을 여기서 죽이는 게 그만큼 의미가 있을 거라 보기 힘듭니다. 그렇게나 전투가 서툴러서야……."
  총사령관 대리가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항복하시죠."
  "……."
  "마린도르프 백작. 당신에게도 항복을 권유합니다. 항복하면 동맹군의 비호를 받게 됩니다. 그 이외에 이곳의 안전을 보장 받을 방법은 없습니다. 페잔인에게 노리개가 되어 죽고 싶지 않다면요."
  귀족들이 서로를 돌아봤습니다. 망설이고 있습니다.

  "항복 후에는 수송선으로 이제르론 요새로 이송하겠습니다. 거기서 오딘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배를 준다면 우리들만으로 제국으로 돌아가겠다. 이제르론으로 갈 필요는 없어."
  총사령관 대리가 웃음소리를 높였습니다.
  "브룩하우젠 후작. 당신들에게 배를 주고 도망치게 하면 페잔인이 뒤를 쫓지 않겠습니까? 당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귀족들이 표정을 찡그렸다.

  "동맹군의 포로가 되면 동맹군이 이제르론 요새로 이송하겠습니다. 당연하지만 호위도 붙입니다. 그렇게 하면 페잔인들은 손대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르론 요새에 도착하면 나머진 제국군이 당신들의 안전을 보장하겠죠. 어떻습니까?"
  "……."



  귀족들을 태운 수송선이 천천히 우주항에서 부상했습니다. 호위 구축함이 5척, 상공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걸로 된 겁니까?"
  쇤코프 준장이 질문하자 발렌슈타인 총사령관 대리는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걱정됩니까?"
  "네. 나중에 정부에게서 무슨 말을 들을지 모릅니다."
  총사령관 대리의 쓴웃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카가 두 명이나 있었으니까요. 죽이는 건 위험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힐끔 준장이 총사령관 대리를 봤습니다.
  "포로로서 동맹에 머무르게 하는 편이 좋지 않았습니까?"
  "좋지 않네요. 이후 동맹과 제국 사이에 교섭이 있을 경우 그 두 사람을 써서 교섭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었다간 장기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쇤코프 준장이 "그렇습니까"하고 끄덕였다. 수송선이 천천히 상공으로 올라갑니다. 조금씩 작아집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저들은 이미 끝났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문벌귀족들을 배제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패전은 좋은 구실이 되겠죠. 그들은 저항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병력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모두 잃었습니다. 우습게도 저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요."
  "……."

  "게다가 그들을 처단하는 건 페잔에 대한 사죄도 됩니다. 우리들이 손을 써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원한을 사지 않아도 됩니다. 페잔도 저들을 죽여서 원한을 사지 않아도 되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맡겨두면 됩니다. 정부에게도 그렇게 전합니다."

  납득했습니다. 조카 두 사람을 처단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인물이라고 평가됩니다. 평민들의 신뢰도 얻게 되겠죠. 자신에게 밀어 넘긴 우리들에게 불만을 품을지라도 원망할 수는 없을 테고 효과를 생각하면 저 두 사람을 처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함없이 성격이 나쁩니다. 어이 없는 표정으로 보고 있자, 시선을 눈치챈 거겠죠. 절 돌아보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 표정을 지어도 안 됩니다. 전 속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속았으니까요…….


ps.
  101화가 아니라 111화라고 알려주신 분 감사합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우주력 796년 1월 6일. 하이네센. 죠안 레벨로.

  최고평의회 회의실을 향해 잰걸음으로 서둘러 가고 있는데 뒤에서 "레벨로 재정위원장"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세 사내가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타렐, 샤논, 라우드였다. 세 명 모두 파자마 위에 나이트 가운을 두르고 있다. 합류해서 회의실로 서둘러 갔다.

  "설마 이 모습으로 최고평의회에 참석하게 될 줄이야. 전대미문이겠지."
  "이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욱 휘둘리게 될 테니까 말이야. 각오해두는 편이 좋아."
  타렐과 내 대화에 샤논과 라우드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회의실 문을 열었다.
  「제3혼성여단 제25연대로부터 보고! 수소동력 센터를 점령!」
  「동일 제37연대로부터 물자유통 센터를 점령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좋아! 제83연대는 어찌 됐나! 치안경찰본부를 아직 제압하지 못했나! 뒤처지고 있지 않나!」
  「제83연대는 치안경찰본부 앞에서 전투상태!」
  「상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압도 당했다. 발이 멈췄다. 회의실이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스크린에서 흘러 넘치는 굉장한 열기, 환성, 흥분……. "앉게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트류니히트다. 방 안을 새삼 둘러보니 여섯 명의 사내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마지막인 것 같다. 다들 나이트 가운을 두르고 있다.
  "우리쪽이 유리한 듯하군?"
  "유리하지. 압도적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말투였다.

  스크린을 봤다. 총기함 하소르의 함교겠지. 발렌슈타인의 모습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며 보고와 명령의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트류니히트가 "레벨로"하고 날 불렀다.
  "우주공간과 지표, 양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 우주에선 포위전이 될 것 같다. 지금 제1, 제2, 제3의 3개 함대가 전장을 우회하면서 귀족연합군의 후방을 잡으려 하고 있다. 성공하면 포위망이 완성되겠지."

  "괜찮나? 그 전에 상대방이 도망치는 건 아닌가?"
  내가 질문하자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도망칠 수 없겠지. 놈들의 통신을 방수했지만,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귀족들이 지표에 내려가 있던 것 같아."
  "그렇군. 전함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땅에 내려가는 게 즐거울 테니까……."
  "놈들을 회수하지 못하는 이상, 함대는 도망칠 수 없다."
  트류니히트가 씨익하고 웃었다.

  "게다가 지금 우리 군은 포위망을 완성하기 전까지 전력을 다해 귀족연합군을 공격하지 않아. 적당히 대응하고 있지. 그 이유 때문에라도 놈들은 전장에 머물고 있어."
  "그렇군."
  "이미 지표에선 우주항, 궤도 엘리베이터, 지상교통제어 센터를 육전부대가 점령했다. 귀족들은 도망칠 수단이 없어. 게다가 제7, 제8함대의 공격도 시작됐지. 이대로 가면 귀족연합군은 궤멸된다."
  제7, 제8함대의 공격에 소란이 일어난 건 그런 이유 때문인가. 귀족들은 도망 수단을 잃고 어찌할 바도 없이 격멸되고 있다.

  "특설 제1함대도 전투하고 있는 건가? 그다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직접 전투에 참가하고 있진 않아. 후방에서 발렌슈타인은 전군을 지휘하고 있지. 예비 병력으로서의 역할도 있고."
  예비인가. 2만 척의 함대를 예비로 두고 있다. 여유롭군. 그것도 불의의 기습 덕분인가…….

  「제3혼성여단 제83연대, 치안경찰본부를 점령!」
  「로젠리터, 자치령주부를 점령!」
  일제히 거대한 환성이 올랐다.
  「제1, 제2, 제3함대가 우회에 성공! 후방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더욱 환성이 커졌다. 회의실에서도 흥분하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전함대에 명령해 주세요. 포위망이 완성될 때까지 방심하지 마라. 목표는 귀족연합군의 격파가 아니라 철저한 섬멸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발렌슈타인의 목소리다. 조금도 흥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스크린에서 환성이 사라졌다. 회의실에서도 사라졌다. 스크린에 비춘 발렌슈타인은 평정, 아니 무표정에 가깝다.
  「바, 바로 전군에 알리겠습니다.」
  조용해진 회의실에 참모의 긴장된 목소리가 선명하게 흘렀다. 아까 전까지 있었던 소란이 깨끗이 사라졌다.

  「비오라 대령, 지상제압의 진척 상황은?」
  발렌슈타인의 질문에 비만 체형의 사관이 긴장을 숨기지 못했다.
  「예,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귀족연합군은 생각보다 많은 인원수가 지상에 내린듯 합니다. 육전부대는 그들과의 전투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잔 시민과 귀족연합군이 이곳저곳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지연의 한 이유가 되고 있는 듯합니다.」
  발렌슈타인이 끄덕였다.

  「증원이 필요 할까요?」
  「아뇨. 현 상황에서 각 부대의 증원 요청은 없습니다. 진척은 늦어지고 있습니다만 예상 외의 손해가 나오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귀족연합군은 지휘계통을 확립하지 못하고 질서정연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현시점에서 증원은 필요 없으리라 판단합니다.」
  발렌슈타인이 또 끄덕였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만은 해주세요. 그리고 공공방송 센터, 중앙통신국의 제압을 서두르도록. 제압 후엔 우리들이 해방군이며 선량한 페잔 시민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다고 확실하게 알리세요.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싶습니다.」
  「옛. 제압을 서두르도록 명하겠습니다.」
  발렌슈타인이 세 번째 끄덕였다. 냉정하군. 정말로 전쟁 중인 건지, 아니 이기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묻고 싶을 정도다.

  "발렌슈타인 중장, 잠시 괜찮은가?"
  보론이 묻자 "물론입니다."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방금 자치령주부를 제압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볼텍 자치령주는 어떻게 되었는가?"
  발렌슈타인이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차가운 시선이었다.

  「……죽었겠죠. 살아 있다면 그가 먼저 우리 쪽에 연락을 했을 겁니다.」
  "……."
  「우리들이 귀족연합군에 기습을 가한 시점에서 귀족들은 볼텍이 우리들과 내통했다고 판단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살려두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죽였겠죠.」
  담담하다. 모르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그 어조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렇게까지 몰아 넣은 건 네가 아닌가?

  "전부 예상대로인가? 중장."
  내 비아냥에도 발렌슈타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있다. 오싹할 정도의 차가움이다. 그러니까 다들 널 무서워하는 거다. 조금은 상처 입은 표정을 보였다면 좋았을 텐데.
  「지상제압이 늦어지고 있는 것 외에는 예상한 대롭니다.」

  발렌슈타인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거의 대부분이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그걸 보고 발렌슈타인은 쓴웃음을 띄웠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지구교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페잔 자치령주가 되는 건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그걸 그가 모르진 않았겠죠. 하지만 그 이외에 적임자가 없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지.」

  「지구교와 손을 끊었다는 것도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그의 손으로 지구교를 쳐부수는 정도는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페잔을 그의 손으로 세웠어야죠. 그렇게 했다면 그도, 새로운 페잔도 살아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중간했다고 할까요? 덕분에 우리 쪽이 뒤처리를 하게 되겠죠.」

  어중간인가……. 페잔에 귀족연합군을 유인한 건 발렌슈타인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페잔을 쳐부술 필요가 있다는 거였다. 불쌍하다는 것도 볼텍의 행동에 따라선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진심일지도 모른다. 혹은 한탄인가?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내게 하게 만드는 건가? 마지막은 안타까운 어조였다.

  여성 사관이 "제독"하고 말을 걸고는 발렌슈타인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발렌슈타인이 끄덕였다.
  「지금 로젠리터에게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볼텍 자치령주의 유체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총살 당한 듯하군요.」
  "……."
  누군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에도 스크린에서는 끊임 없이 전황보고와 명령지시의 교환이 들려왔다. 전황은 유리하다. 하지만 어딘가 기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어째선지 다들 서로를 돌아보며 찜찜한 시간이 흘러간다.

  「제1, 제2, 제3함대가 귀족연합군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 포위망이 완성됐습니다!」
  여기엔 역시 회의실에 환성이 흘렀다. 스크린에서도 환성이 오르고 있다.
  「전군에 통신을」
  발렌슈타인의 말에 함교가 조용해졌다.

  「제1명령, 섬멸하라. 제2명령, 섬멸하라. 제3명령, 섬멸하라. 페잔을 문벌귀족의 무덤으로 만들어라.」
  「…….」
  말이 안 나온다. 다들 굳어있다. 평온한 어조와는 다른 과격한 내용에 따라갈 수 없다.

  「복창합니다! 제1명령, 섬멸하라! 제2명령, 섬멸하라! 제3명령, 섬멸하라! 페잔을 문벌귀족의 무덤으로 만들어라!」
  젊은 여성사관이 절규하듯 복창했다. 창백한 모습으로 외치고 있다. 아까 전에 발렌슈타인에게 볼텍의 죽음을 전한 사관이다. 다들 입을 모아 "섬멸이다", "처부숴라"며 발작하듯 움직였다. 페잔을 문벌귀족의 무덤으로 만들기 위해…….



우주력 796년 1월 6일. 제1특설함대기함, 하소르. 에리히 발렌슈타인.

  전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귀족연합군 함대는 동맹군에 포위되어 궤멸되고 있다. 남은 건 8만 척 정도다. 절반 이상 격파되었다. 본래 오합지졸이었던 놈들이다. 조직적, 효과적인 반격은 없다. 조금씩 확실하게 전력을 줄이고 있다. 페잔에 정박중인 함대도 제7, 제8함대가 격파되었다. 이 우주에서 귀족연합군의 함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지상부대도 필요한 시설은 전부 점령했다. 남은 건 고등변무관저 뿐이다. 문벌귀족 일부가 도망쳐 흘러들어간 듯하지만, 육전대 일부가 봉쇄하고 있다. 나중에 인질 교섭을 해야만 한다. 성가신 이야기지만 놈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게다가 마린도르프 백작만으론 놈들과 교섭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고등변무관저에 도망친 놈들은 운이 좋았다. 다음으로 운이 좋았던 건 육전대에 잡혀 죽은 놈들이겠지. 최악은 페잔 시민에게 잡혀 죽은 놈들이다. 쇤코프에게서 누더기 걸레 같은 시체가 몇 개나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무척이나 원한을 사고 다녔던 것 같다.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다.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함교는 진정된 상태다. 아까 전까지 있었던 소란은 깨끗이 사라졌다. 전쟁의 귀추를 보고 있다. 군인들이 소란을 피울 때는 전황이 유동적일 때 뿐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건 잠자코 전황을 지켜보는 일밖에 없다. 나머진 때때로 "방심하지 마라"고 각 함대에 명령할 뿐이다. 정부와의 통신도 포위망을 완성한 시점에서 끝냈다.

  트류니히트는 파자마 모습으로 매스컴에 대승리를 보고할 생각이라고 했었지. 꽤나 재밌는 연출이다.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귀족연합군에 항복할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체면이 있기 때문인가? 그냥 얼른 항복하면 좋겠는데 누군가가 먼저 최초로 항복해주지 않으면 창피해서 항복할 수 없다는 거다. 어쩌면 가장 운이 나쁜 건 이 놈들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을 단지 기다릴 뿐이다.

  볼텍이 죽었다. 귀족들에게 죽은 모양이다. 하기야 그렇게 되도록 만든 건 나다. 내가 볼텍을 죽였다고 해도 좋다. 부정은 하지 않을 거고 할 생각도 없다. 볼텍은 장애물이었다. 놈은 자신이 페잔 시민에게서 신뢰받고 있지 않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을 거다.

  귀족연합군을 제어하지도 못하고 페잔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도 못했다. 그리고 동맹군을 부르기 위해 막대한 자산을 동맹에게 양도했다. 볼텍에게 있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하지만 페잔 시민에게 있어서 볼텍의 행동은 매국행위나 마찬가지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페잔 시민은 그의 죽음을 바랐을 것이다.

  볼텍이 살아 남기 위해선 동맹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동맹의 힘을 배경으로 페잔을 통치한다. 괴뢰가 될지 실력 있는 지배자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동맹에게 있어서 볼텍을 받아들이는 데에 메리트는 없다. 적어도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볼텍을 받아들이면 페잔 시민은 볼텍의 배경이 된 동맹을 원망한다. 그리고 제국도 동맹은 페잔의 간접지배를 노리고 있다고 불만을 품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동맹의 정치가들 중에는 페잔에게서 돈을 받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놈들에게 묘한 영항력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극히 성가신 존재가 된다.

  볼텍을 죽게 내버려둬도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긴 힘들다. 실컷 이용해먹고 죽게 내버려뒀다. 동맹은 신용할 수 없다. 페잔 시민에게서 그런 비난을 받게 되겠지. 사실이니까 부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망명을 인정하면 볼텍을 숨겼다고 페잔 시민에게 원망을 산다. 볼텍은 존재 자체가 불안정 요소였던 거다.

  어찌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죽게 했다. 그리고 페잔 독립을 보장한다. 그것이 볼텍과 동맹 정부 사이에 맺어진 약속이라고 페잔 시민에게 전하는 거다. 볼텍은 불운하고 무력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페잔의 행방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독립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볼텍은 제국 귀족에게 죽었지만 동맹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

  페잔인의 원한은 귀족연합군에 머물고 볼텍에게 향하는 일은 없겠지. 그리고 동맹은 귀족연합군을 쳐부수고 볼텍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서 페잔인에게 원한을 받지 않는다. 이게 최선이다. 동맹 내부에선 페잔의 실효지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잔은 독립시켜 제국과의 완충지대로 이용하는 편이 좋다. 제국도 안심하겠지.

  레벨로는 불만스러워 보였지. 볼텍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건가? 국책과 주식의 양도로 카운터 파트너였으니까 정이 붙은 걸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선 나쁘지 않지만 정치가로선 조금 냉혹함이 부족하다. 트류니히트나 호안은 정신 바짝 차린 표정이었다. 그 두 사람은 볼텍의 죽음에 어떤 통한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트류니히트의 정권이 얼마나 이어질까? 3년? 아니 아직 젊으니까. 최소한 5년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 뒤를 호안이 비슷하게 정권을 담당한다. 10년 평화가 지속되면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당연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겠지. 냉혹함이 부족한 레벨로가 정권을 잡는 건 그 뒤가 좋다.

  제11함대는 일을 잘 해주었다. 저번에 쿠브르슬리는 제1함대를 이끌고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번엔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제1함대는 적의 배후를 차단하여 포위망을 완성해 보였다. 사관학교 수석졸업은 장식이 아닌가. 제2함대의 파에타도 걱정이었지만 와이드본과 양이 주변에 있다. 지금으로선 눈에 띄는 문제는 없다.

  양은 내심 투덜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무겁다든가 이제 지긋지긋 하다든가……. 하지만 이건 놀이가 아니라 전쟁이다. 좋고 싫고의 감정이 아니라 냉혹함과 계산이 필요하다. 사람을 죽이는 이상 나름대로의 리턴을 얻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귀족연합군을 섬멸하여 루돌프가 만든 국가제도를 처부슨다. 제국을, 아니 우주를 루돌프의 주박에서 해방시킨다.

  앞으로 6만 척 정도인가.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조금만 더 하면 500년에 걸친 주박에서 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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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1월 3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통신이 끝나고 발렌슈타인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회의실에는 무겁고 괴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최고평의회 멤버는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그런 그들을 보고 트류니히트가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무슨 일 있었는가?”라고 질문했다. 성격이 나쁘다고. 트류니히트.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주제에.

  “아니, 그는 대체 정체가 뭔지 생각했을 뿐일세.”
  토렐이 답하자 트류니히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에리히 발렌슈타인 중장. 동맹군 사상 최연소의 장성이다. 아마도 린 파오, 유수프 토패롤, 블루스 애쉬비 원수보다도 일찍 원수가 되겠지.”

  “그게 아닐세 의장.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트류니히트가 손을 들어 토렐을 막았다.
  “알고 있네. 알고 있어. 토렐 경제개발위원장. 자네가 하고 싶은, 아니 자네들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가 무섭다. 두렵다. 그런 거겠지?”
  트류니히트가 둘러보자 다들 끄덕였다.

  “자네는, 아니 의장은 두렵지 않은 건가?”
  망설이는 느낌으로 라우드가 묻자 트류니히트는 고개를 저었다.
  “두렵지는 않군. 그에게 야심이 있다면 저 재능은 위험하겠지만, 그에겐 야심이 없어.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네.”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이해하고 있다는 건가?”
  보론이 질문하자 트류니히트는 하늘을 올려보고 “으음.”하고 신음했다.
  “아마도 말이지. 뭐, 예를 들자면 그는 지나치게 날카로운 명도일까? 너무 날카롭기 때문에 주변에선 마검이 아닌가 의심을 받고 있을 정도로.”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반신반의, 그런 느낌이다. 나 개인적으론 꽤 적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저 애송이는 입은 거칠고 성격도 나쁘다. 하지만 야심이나 사심은 느낄 수 없다. 건방지며 징글징글한 애송이이긴 하지만 위험한 젊은이는 아니다. 아니 위험하긴 할까? 마치 견본을 보이는 것처럼 페잔에게서 돈을 갈취했다. 악독한 방법이긴 하지만 정부에게 돈이 없으니까 비난도 할 수 없다. 아마도 화평종결 후의 경재진응대책에 쓰이게 되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저 녀석이 있으면 나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점이다. 불쾌하긴 하군.

  “보론, 자네는 저 녀석 때문에 아픈 꼴을 당했었지?”
  보론이 얼굴을 찡그렸다. 예의 정보누설 건인가.
  “나도 그 건에서 그에게 쓴맛을 봤던 기억이 있네. 시틀레 원수도 책상을 치며 분노했다고 하더군. 하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보면 그가 했던 일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국가에게 있어서 불이익은 없었다. 그 부분에 있어선 배려가 가능한 사내야.”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보론이 답하자 트류니히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뭐, 알고 지내는 사이로선 큰일이다. 입은 거칠지 성격도 나쁘다. 덧붙여 주변을 휘두르는 놈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믿음직하고 신뢰도 할 수 있어. 하루 정도는 만나지 않아도 좋지만 사흘 만나지 않으면 불안해지지. 두 명은 너무 많지만 한 사람 정돈 그런 친구가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트류니히트의 말에 타렐이 “칭찬하고 있는 건지 깎아내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평가로군.”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모두가 웃었다. 겨우 팽팽한 긴장이 풀렸다.

  “헌데 트류니히트 의장. 의장은 진심으로 화평을 생각하고 있는가?”
  리우가 질문하자 다들 트류니히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흥미만 섞인 질문이 아니다. 정권의 기본방침을 확인하려는 것이겠지. 적어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화평을 생각하고 있네. 동맹은 이제 한계야. 아니 동맹만이 아니라 제국도 그렇지. 전쟁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건 오늘 하루를 봐도 잘 알 수 있겠지. 최고평의회의장이 페잔의 꼭두각시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국가 내부를 바로 세우는 일은 제국만의 문제가 아니야. 동맹도 국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은가?”
  트류니히트가 나를 봤다.

  “의장의 말대로다. 저 바보 같은 국채액을 자네들도 들었겠지? 15조 디나르다. 긴 전쟁 때문에 인구는 감소하고 징수도 줄어들고 있어. 그걸 보충하기 위해 증세하고 국채 발행을 계속했지. 조금만 더 있었으면 페잔과 지구교에게 당했을 것이다.”
  다들 끄덕이고 있다. 소리 높여 화평에 반대할 인간은 없다. 페잔의 위협을 현실로 인식했다. 그런 느낌인가.

  “하지만 화평인가. 누구보다도 제국인과 싸워 무훈을 올린 그가 화평…….”
  토렐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몇 사람인가가 끄덕였다.
  “전쟁이 좋아서 무훈을 올린 것이 아니야. 그에게 있어서 전쟁은 그저 일이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지. 시틀레 원수에게 들었지만 이겨도 즐거워하는 일은 없다고 하더군. 내심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

  “딱 1년 전 오늘, 1월 3일. 발렌슈타인 중장과 대화를 나눴다. 나와 레벨로, 시틀레 원수 세 사람이서 말이지. 제국에게 이길 수 있는가? 화평은 가능한가? ……기억하고 있나? 레벨로.”
  “기억하고 있지. ……그런가. 그게 1월 3일이었나…….”
  트류니히트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1년이다. 그때부터 1년이 지났다…….

  “제국에게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지. 그리고 대등한 국가관계를 쌓아 화평을 맺는 일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동맹령 안에서 제국군 장병을 마구 죽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제국의 전쟁지속력, 의지를 꺾어야만 한다고…….”
  “…….”

  “뻔한 대답이다. 실망이 없었다곤 할 수 없어. 하지만 그는 묘한 말을 했지.”
  “묘한 말?”
  타렐이 질문하자 트류니히트가 끄덕였다.
  “제국에는 불확정요소가 있다. 그에 의해선 다른 선택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트류니히트가 나를 봤다. 다음을 말하는 건 나인가.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수명이었지. 프리드리히 4세는 후계자를 정하고 있지 않기에 사후에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제국을 2등분, 3등분하는 내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황제는 꼭 건강하지만은 않아. 그 죽음은 예상보다 이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했지.”
  “그건…….” 보론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다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역시 두려운가…….

  실제로 반년도 지나지 않아 황제는 죽었다. 엘윈 요제프도 죽고 제국은 국내개혁을 위해 화평을 필요하게 되었다.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긴 하다……. 공포심을 품지 말라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뭐, 그런 일이다. 두려운 점은 있지만 신뢰는 할 수 있어. 조만간 자네들도 그와 만나고 싶어 하겠지. 두려운 것을 보고 싶어서 말이야.”
  트류니히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참 속도 편하다…….

...

우주력 796년 1월 3일. 제1특설함대 기함, 하소르. 에리히 발렌슈타인.

  통신이 끝난 뒤 함교에 있던 총사령부 요원은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잠시 지나 춘우 총참모장이 조심스런 느낌으로 말을 걸었다.
  “각하, 정말로 화평은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다들 다시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뭐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150년 동안 전쟁을 해왔다. 전쟁이 있는 것이 당연한 세계인 것이다. 전쟁이 없는 세계가 오리라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겠지.

  “전제국가를 믿을 수 있을까.”, “화평을 맺어도 바로 파기되는 건.”, 그런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제국가라는 건 신용할 수 없단 말이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은하제국은 꽤나 온건한 일면을 가진 국가가 될 것이다. 동맹보다도 신뢰할 수 있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은 화평을 맺어 국내 개혁을 행하기 위해 문벌귀족들을 쳐부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국은 붕괴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옳다. 하지만 문벌귀족을 쳐부쉈을 때, 제정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를 저 두 사람은 생각하고 있지 않겠지.

  문벌귀족의 존재의의란 무엇인가? 루돌프가 귀족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선거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 우수한 지배자 계급을 만들어 유지하기 위해서다. 뭐, 이건 실패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들이 쳐부수려고 하고 있을 정도니까. 아니 500년 버텼으니까 실패라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금속피로를 일으켜서 쓸모가 없어졌다. 대충 그런 걸까…….

  나머지 또 하나의 이유는 평민들에게서 황제를 보호할 완충재로서의 존재다. 본래 은하연방시민으로서 주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던 평민계급은 황제들에게 있어서 언제 혁명을 일으킬지 모르는 잠재적인 적이었다. 귀족들은 그 잠재적인 적에게서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던 것이다. 제국의 통치가 평민들에게 엄격하고 귀족들에게 느슨했던 건 그것 때문이다.

  그 귀족의 존재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완충재가 없어진 이상 황제는 스스로 평민들과 마주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실정에 대하여 평민들의 비판은 직접 황제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가신 일이 황제가 종신직이라는 점이다. 동맹과 달리 선거로 황제를 정권에서 끌어내리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정은 자정능력이 극히 낮은 정치체제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제의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런 경향은 강해진다. 그리고 은하제국은 황제의 권력이 극히 강한 국가다. 황제의 권력행사에 대한 점검기능, 억지기능이 전혀 없다. 바보 같은 루돌프가 의회를 해산시켰기 때문이다. 남겨두고 점검기능을 부여해뒀다면 국가로서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평민들이 정책의 변경을 요구해도 황제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도 할 수 없다면, 평민에게 있어서 정책의 변경은 곧 황제의 암살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황제든 거지든 목숨은 하나다. 죽고 싶지 않다면 황제는 평민들의 반응을 항상 신경 써야만 하게 되겠지.

  앞으로 제국은 동맹과 화평을 맺어 국내 개혁을 실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국측에서 화평을 파기하고 전쟁을 벌이는 일은 굉장히 위험성이 크다. 개혁이 중단될 수밖에 없고 패배하게 되면 그 점에서도 평민들에게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로마노프조 러시아, 독일 제2제국, 모두 패전에 의해 제정이 끝났다.

  제국은 국채를 상환하며 화평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가 말한 것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최고평의회의장은 전쟁에서 져도 정치가로서 끝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황제는 생물체로서 목숨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선 제정 그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 동맹보다도 제국측이 지도자에게 부가되는 위험이 크다. 당연히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후계자 선정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도달할 것이다. 바보나 정신병자에겐 제국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황제만이 아니다. 평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화평을 맺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라프 소령이 나에게 질문했다.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호감이 가는 사내다. 주변에서도 신뢰가 두텁다. 제시카와 어떻게 됐을까? 그런 부분을 들은 적이 없군. 이번에 들어볼까. 아니 개인적인 질문은 좀 위험한가.

  “퇴역할 겁니다.”
  내가 답하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그런 느낌이다.
  “앞으로도 전쟁을 계속하다니, 바보 같은 행동에 어울릴 수 없습니다. 퇴역합니다.”

  이런이런. 이번엔 다들 굳었다. 그렇게 이상한 말을 했나? 앞으로 전쟁을 하게 되면 이제르론 요새 공략이나 페잔을 통한 제국령 침공으로 이어진다. 제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어느 쪽이든 사양이다.
  “……퇴역이라니 할 수 있을까요?”
  “그렇네요. 도저히 허락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사아야가 의문을 가지자 데슈 대령도 그것을 지지했다.

  뭐, 그렇겠지. 허락을 해주리라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도망칠 수밖에 없겠지만, 어디로 도망치면 좋을까? 제국은 논외고 페잔도 이번에 아픈 꼴을 보여줬다. 갈 곳이 없네. 다시 말해 일이 어떻게 되든 화평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혹은 성형을 해서 어딘가에 조용히 살아볼까…….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되면 렘샤이트 백작에게 상담해보는 수도 있군. 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전군에 페잔 회랑 돌입 명령을. 순서는 제10함대, 제11함대, 제12함대, 제4함대, 제5함대, 제6함대, 특설제1함대, 제7함대, 제8함대, 제9함대, 제1함대, 제2함대, 제3함대 순서로 갑니다.”
  내가 명령을 내리자 다들 놀랐다. 춘우 총참모장이 정부의 수속종료보고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질문했다.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귀족연합군을 공격하기 전에 수속은 끝날 것입니다. 교섭이 끝난 이상 가능한 한 빨리 페잔 시민의 고통을 끝내주고 싶습니다…….”
  빨리 끝내고 싶다고. 이것도 저것도. 나라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

우주력 796년 1월 6일. 하이네센. 죠안 레벨로.

  귓가에 소리가 들린다. TV전화 소리다. 시끄럽군. 시간은 3시…….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5분인가……. 아내는 침실을 따로 하고 있다. 정치가의 아내가 되면 수면부족이 된다고 한다. 부정은 할 수 없다. 화면을 표시하자 번호는 트류니히트의 것이었다. 성가신 일이 일어났나. 일어나야만 한다.

  “이런 시간에 뭔가.”
  “페잔 전쟁이 시작됐다.”
  완전히 눈이 떠졌다. 화면에 비춘 트류니히트의 눈은 충혈되어 있다. 아무래도 이 자도 지금 막 일어난 참인 것 같다.

  “전쟁? 무슨 말이냐? 페잔 시민과 문벌귀족이 부딪쳤다. 시가전이 일어났다. 그런 말인가?”
  내가 질문하자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동맹군과 귀족연합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거다.”
  “!”

  “말도 안 돼. 국채와 유령회사 수속이 끝난 것이 어제라고. 그들은 란테마리오에……, 설마…….”
  트류니히트가 끄덕였다.
  “그 설마다. 발렌슈타인은 란테마리오에 없었다. 페잔 회랑 입구로 이동하고 있었던 거야.”
  “이게 무슨 일이냐.”
  그 애송이. 또 한방 먹였군. 이게 대체 몇 번째인가?

  “레벨로 최고평의회를 연다. 바로 와주게.”
  “알았다. 옷을 갈아입고…….”
  “그럴 필요 없어. 그대로 와주게.”
  “…….”
  제정신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트류니히트는 진지했다.

  “신정권은 초동이 늦다, 위험의식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옷을 갈아입는 건 나중에 집사람이나 비서에게 준비하도록 하면 돼. 바로 와주게.”
  “알았다.”
  큰일이 일어났다. 밤중에 파자마로 최고평의회인가……. 전대미문이군. 파자마 위에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서둘러 침실 밖으로 나왔다. 서둘러야만 한다…….

...

ps.
  파자마 회의!
  단 참가자는 중년 아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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