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22 화. 10년의 세월
제국력 487년 9월 21일. 오딘, 신무우궁. 라이너 폰 겔라흐.
“그래서, 어땠는가?”
원수봉 수여식 이후, 신무우궁 남관 끝에 있는 어느 방에서 리히텐라데 후작이 내게 질문했다. 방 안은 어둡고 밀담하기엔 딱 좋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실제로 지금부터 행할 것은 밀담과 다르지 않다.
저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에서의 회의 후, 나는 은밀히 후작에게서 개혁에 의한 증세 금액을 확인하도록 명령 받았다. 정말로 10조 제국 마르크나 되는 재원이 있는가 하고…….
조사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이미 우주함대 사령부에는 신영토 점령통치 연구실이 설치되어 제국의 정치경제의 개혁안이 은밀히 작성되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그걸 알았을 때 모두가 얼마나 놀랐는지. 미소지으면서 말하는 발렌슈타인과 말을 잃은 문무의 중신들. 순간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른 리히텐라데 후작과 창백한 얼굴로 신음한 로엔그람 백작……. 발렌슈타인은 이미 3개월이나 전부터 이 사태를 상정하고 있었다.
나는 신영토 통치연구실에서 자료를 받아 매일 밤늦게까지 혼자서 조사를 계속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 없는 작업이었기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결과가 나온 건 어젯밤 늦게였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말대롭니다. 세금, 정치 개혁, 그리고 폭발한 문벌귀족을 합한다면 국고에 들어오는 금액은 10조 제국 마르크를 가볍게 넘겠죠.”
“그런가……. 역시 그렇게 되는가…….”
내 대답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게 어느 사실을 내게 알려줬다. 눈 앞의 노인은 발렌슈타인의 말을 의심한 게 아니다. 만일을 위해서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자신을 납득하게 하기 위해서였나…….
“실현하면 작금의 재정위기는 완전히 해소됩니다.”
“……그렇구먼.”
“…….”
리히텐라데 후작은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먼 곳을 보고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발렌슈타인. 그는 언제부터 정치, 세금 개혁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나도, 리히텐라데 후작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는 걸 거부한 개혁안이다. 금단의 과실이었다. 설령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과육이 넘쳐 흐른다고 해도, 그걸 얻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배를 맛봐야 할 것인가…….
신은하제국, 우주의 유일한 통일국가. 내란, 숙청.
그는 귀족사회를 부수려고 하고 있다. 나는 귀족이다. 분명 스스로의 권리만을 주장하여 제국의 위기를 살피려하지 않는 동포들을 혐오, 아니 증오마저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귀족이다.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을까.
“왜 그러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정신을 차리면 리히텐라데 후작이 이상하단 얼굴로 날 보고 있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사고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 같다. 무심코 쓴웃음이 나왔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언제부터 생각했을까요? 이 개혁안을.”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시선을 거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구먼.”
“설마…….”
중얼거리듯이 말한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난 반론하려 했지만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저것의 양친이 귀족에게 죽었다는 건 경도 알고 있겠지?”
“예.”
“벌써 10년이 되는가…….”
벌써 10년……. 아니, 혹은 아직 10년인가…….
“그럼 10년간,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그러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국무상서는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10년 전이라고 하면 그는 아직 사관후보생이잖습니까?”
내 반론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건 사관학교 재학 중에 제문을 땄다. 뭘 위해서 제문을 땄을까…….”
발렌슈타인은 사관학교 재학중에 제문을 땄다. 당시 유명했던 이야기다. 군인이면서도 군에 관계없는 자격을 취등했다. 광범위한 행정관으로서의 지식……. 설마, 그런 걸까?
그때엔 묘한 사관후보생이 있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게 이 날을 위해서였던 걸까. 이 10년간, 그는 은밀히 귀족을 멸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던 걸까.
“1년 반 전, 폐하가 병에 쓰러졌었다. 경도 기억하고 있겠지?”
“예.”
“그때, 발렌슈타인에게 오딘의 치안을 맡겼다…….”
“…….”
“거절하지 않았지. 불과 일개 소장의 신분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을 적으로 돌리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
“그때에,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던 걸지도 몰라…….”
“설마…….”
목소리가 떨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일개 소장이 제국의 최고 귀족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을, 아니, 귀족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오딘을 내란에서 지켰다.
그때부터 귀족과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적대관계가 됐다. 난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필연이었던 걸까…….
아연해하는 나에게 국무상서는 시선을 향하고 망설이면서 말했다.
“경은 저것의 양친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가?”
“이런저런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듣기는 했다. 하지만 진실은 모른다. 귀족사회의 소문이라는 건 그런 것들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의 전임자요.”
“! 설마.”
“사실이다. 여러 일이 있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고 리히텐라데 후작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양친, 퀸멜 남작가, 마린도르프 백작가, 베스트팔레 남작가, 카스트로프 공작가 사이의 이야기를 해줬다.
“루케 사법상서가 그 건으로 카스트로프 공작을 단죄하려 했던 걸 막은 건 나다. 그게 원인으로 루케 사법상서는 사임했다…….”
고통에 찬 목소리였다. 후회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어째서 그런 일을……. 들어야만 할까? 지금 듣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들을 기회는 없겠지.
“질책을 각오하고 묻겠습니다만, 어째서 그런 일을?”
책망하는 소리가 오리라 생각하니 무심코 작은 목소리가 됐다. 하지만 리히텐라데 후작은 화내지 않았다. 불쾌하다는 표정도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쓴 걸 내뱉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카스트로프 공작가는 제물이었던 걸세.”
“제물? 산제물의 제물 말입니까?”
“음. 평민들이 가진 제국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을 때, 카스트로프 공작가를 처단하여 불만을 잠재운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한 제물이었던 걸세…….”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카스트로프 공작가가 반란군을 유인하기 위해서 이용된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평민들의 불만을 해속하기 위해서 이용된 것도. 하지만 그게 10년 이상이나 전부터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니…….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알고 있을까요?”
“양친을 죽인 게 카스트로프 공작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카스트로프 공작가가 제물이라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지. 총명한 사내요.”
“!”
총명하다는 말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총명하다. 카스트로프 공작가가 산제물이라는 걸 발렌슈타인은 눈치채고 있었다. 난 몰랐다. 저 상냥한 표정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어둠을 봐 왔는가……. 무심코 오한이 일었다.
“루케 사법상서를 멈추게 한 것이 나라는 건, 글쎄. 어떨까? 뭐라고도 하지 않더군. 루케에게도 카스트로프 공작가가 제물이라는 건 말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내가 말린 것을 루케는 다른 곳에서 말하지 않았던 것 같더군.”
“…….”
어두운 웃음을 띠우며 리히텐라데 후작이 음침한 사실을 말한다. 어두침침한 방에서 들리는 음침한 사실. 썩는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카스트로프 공작을 단죄했다면 발렌슈타인은 군인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개헉의 씨앗은 내가 뿌렸다는 건가…….”
국무상서의 말에 자조의 울림이 있다. 내가 후작의 입장이었다면……. 역시 스스로를 조소하겠지. 무슨 짓을 하고 있냐고.
“내가 씨앗을 뿌리고, 발렌슈타인이 자랐다……. 크게 자랐지. 커다란 열매를 맺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요. 수확해야만 하겠지.”
“…….”
“나이는 먹는 게 아니구먼. 묘한 곳에서 어처구니없는 씨앗을 뿌렸다는 걸 깨닫고 마네. 곤란한 일이야. 겔라흐 자작. 경도 신경쓰도록 하게.”
“…….”
리히텐라데 후작의 마음을 난 잘 알 수 있다. 후작은 제국을 지키기 위해 카스트로프 공작을 산제물로 골랐다. 그 와중에 한 알의 씨앗이 떨어졌다. 씨앗은 크게 자라나, 지금은 제국을 지키기 위해 귀족 그 자체를 산제물로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도망치지 마십시오.”
발렌슈타인의 말이 되살아난다. 저 말의 의미는 제국의 위기에서 도망치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0년 전의 사건에서 도망치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듯이 들린다.
말을 바꾸는 편이 좋겠지. 이대로는 신경이 닳을 뿐이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귀족으로 하자고 폐하에게 조언한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만, 대체 누가 폐하에게 추천한 걸까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일까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아니야. ……모르겠는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어두운 미소를 보였다. 무슨 말일까……. 설마…….
“알았는가? 나일세.”
“!”
추천한 건 리히텐라데 후작이었다. 후작은 웃으면서 날 보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나의 의문을 읽은 거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은 답을 가르쳐줬다.
“귀족을 멸망시킨다고 하면서, 스스로 귀족이 된다. 그러한 제멋대로의 사내에게 제국의 운명은 맡길 수 없다! 혹시 받아들었다면, 내란 종결후에 저걸 처리해버릴 생각이었네.”
“!”
“눈을 돌리지도 않았지. 그것만이 아니라 원수봉을 받아든 후, 흑진주 홀을 노려봤다. 저건 선전포고요. 귀족 따위 되지 않겠다. 귀족 따위 인정하지 않는다. 적으로 돌아서도 좋고, 아군에 붙어도 좋다. 단지 각오만은 해둬라. 그렇게 말한 걸세…….”
“…….”
후작은 발렌슈타인을 시험하여 때에 따라선 죽일 생각이었다. 발렌슈타인은 거기에 대해 선전포고로 대응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곳에서 두 사람만이 싸우고 있었다. 언젠가 이 두 사람을 쫓을 수 있을까…….
잠시 동안, 침묵이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을 감쌌다. 서로 입을 여는 것도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을 보고 있다. 후작은 명백히 지친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어떨까…….“
“겔라흐 자작. 이 이상 망설이지 말게. 이 이상 망설이면 우리들이 멸망하게 되네. 저건 말일세. 외견과는 다르게 내면은 엄격한 남자요. 가볍게 보지 말게. 우리들은 폐하의 의지대로 움직여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야만 하네.”
리히텐라데 후작은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후작의 뒷모습은 명백히 지쳤음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후작은 싸울 것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부턴 새로운 제국을 만들기 위해 싸우겠지.
나는 언젠가, 후작을 뒤쫓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