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23 화. 길을 여는 자
제국력 487년 9월 21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오이겐 리히터.
“브라케. 이제 곧 여섯시다. 오늘은 빨리 퇴근하는게 어떤가?”
“그렇군. 요즘 계속 퇴근이 늦어. 가끔씩은 일찍 퇴근할까.”
“그래. 피로가 쌓이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겠지.”
우리들의 대화를 들은 거겠지. 브룩도르프, 실버베르히 두 사람이 마찬가지로 퇴근 상담을 하고 있다. 거기에 따라 이곳저곳에서 같은 대화가 나왔다.
오늘은 발렌슈타인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원수봉 수여식이 있었다. 그 때문이겠지. 우주함대 사령부의 직원들도 일찍 끝내고 축배를 들기 위해 나간 것 같다. 우리들만 남아서 일을 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 가끔씩 숨을 돌리는 일도 필요하다.
“모두들, 오늘은 이만 끝내고 조금 마시지 않겠나?”
말을 걸어온 것은 엘스하이머였다.
“그건 위험하겠지. 술집에서 개혁안 따윌 외쳤다간 말도 안되는 일이 되고 말아.”
내 말에 몇 사람인가가 끄덕인다. 신영토 점령통치 연구실에 틀어박히게 되고 나서부터 우리들은 밖에서 마시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마셔도 아주 조금이다.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은 주정뱅이의 헛소리로라도 해선 안 된다. 묘한 걸 말했다간 사회질서유지국에 잡히고 만다.
주량이 줄었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할 보람이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최근엔 굉장히 몸 상태가 좋다. 건강하게 되고 말았다. 나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여기서 마시면 된다. 좋은 술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엘스하이머는 기쁘게 왼손을 높이 들었다. 손에는 위스키병이 쥐어져 있다. 이곳저곳에서 환성이 올랐다.
“무슨 물건인가? 엘스하미어.”
“실은 말이야. 아까 전에 사령장관에게서 받은 거다. 리히터.”
“사령장관이?”
“음. 승진 축하로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각하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말야. 다같이 마시라고.”
사령장관이 보내준 술. 거기에 더욱 환성이 올랐다. 이렇게 되면 마시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모처럼 받은 거다. 마시도록 할까.”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평소엔 격론을 나누며 모처럼 의견이 일치하는 일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이럴 때엔 죽이 잘 맞는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브라케와 나는 잔을 준비한다. 그룩은 얼음, 오스마이어는 물, 브룩돌프, 실버베르히, 엘스하이머는 어디에선가 치즈와 크래커, 그리고 견과를 조달해 왔다.
건배 준비가 끝나고 가볍게 잔을 올린다. “프로지트.”라고 외치고 잔을 입에 옮긴다. 몇 사람인가가 “맛있다.”라는 말을 하며, 웃음 소리가 올랐다. 잠시 동안 위스키를 마시면서 안주를 먹는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방 안에 퍼졌다.
“칙령이 나오기까지 앞으로 한 달인가……. 기대되는군.”
실버베르히가 치즈를 먹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몇 사람이 끄덕인다. 개혁 개시를 고하는 칙령은 10월 15일에 발표된다.
원래라면 좀 더 빨리 칙령을 낼 수 있었다. 개혁안의 골자는 이미 완성됐다. 하지만 군의 편제가 끝나지 않았다. 샨타우 성역 회전은 제국의 대승리로 끝났지만, 피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0월 15일에 발표는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칙령에선 먼저 제국이 일부 특권계층이 권력을 사유화했기에 피폐해졌다는 것을 호소한 후, 개혁을 행함으로서 앞으로 천년의 번영을 제국에 가져올 것을 선언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구체적인 개혁 내용은 다음 여섯 항에 있다.
1. 귀족에 대한 과세 실시.
2. 귀족을 대상으로 한 특별금융기관 폐지.
3. 농노해방.
4. 해방농노를 대상으로 한 농민금고 창설
5. 간접세 인하.
6. 형법, 민법의 개정.
이 중에서 1~3은 귀족의 재력을 뺏는 것이 목표다. 재력이 없어지면 그들이 가진 강대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이 가진 정치적인 특권도 힘이 있기 때문이다. 힘을 잃으면 특권도 잃는다.
해방된 농노는 그대로 난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걸 구하기 위해 설치되는 것이 4의 농민금고다. 그 재원은 2의 귀족을 대상으로 한 특별금융기관의 폐지에 의해 확보한다.
2의 금융기관이지만, 이건 확실히 말해서 심하다. 제국정부에서 운용금고가 나와 있는 거지만, 무이자, 무담보, 무기한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융자를 하고 있다. 민간에선 있을 수 없다.
물론 상한은 있다. 또 빌릴 수 있는 것도 개인이 아니라 가문에서 빌리는 걸로 한정되어 있다. 귀족들은 금전면에서 곤란할 경우엔 먼저 이쪽을 의존한다. 민간금융기관은 그 다음이다. 이 금융기관을 없앤다. 당연히 융자한 돈은 돌려받게 될테니 큰 소란이 될 것이 틀림없다.
5, 6은 평민대책이다. 귀족에게 과세하는 걸로 세수가 오른다. 그런 만큼 간접세를 내리는 걸로 물가를 낮추고 생활면에서 부담을 낮춘다. 귀족이 과세에 반대하면 당연히 간접세도 내릴 수 없다. 평민들의 반감이 폭발하겠지.
6은 이제부터 공평한 재판을 실현하는 법개정을 행한다는 선언이다. 실제로 법개정을 행하는 건 내란 종료 후가 된다.
이건 개혁의 제 1보다. 이제부터 새로운 나라 만들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뭐라 할 수 없는 고양감이 몸을 감싼다. 곁에 브라케가 잔의 위스키를 단숨에 마셨다.
“어이어이. 괜찮은가? 브라케. 그렇게 마셔서.”
“괜찮아. 오늘은 기분이 좋아. 술이 맛있어.”
그 목소리에 주변이 반응했다.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브라케를 본다.
“희안하군. 브라케. 무슨 바람이 불었나?”
브룩도르프가 브라케에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브룩도르프의 말대로다. 오늘의 브라케는 조금 이상하다.
요즘 최근 브라케는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는 귀족을 내란에서 뭉개고 난 다음 국내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적어도 이 개혁안을 귀족을 폭발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건 반대였다.
개혁의 정신이 왜곡되고 만다. 그렇게 생각하는 브라케의 기분은 알겠다. 하지만 폐하는 건강하시고 귀족들은 몸을 웅크리고 있다. 이대로는 내란은 일어나지 않고 반란군은 전력을 회복하고 말겠지.
별 수 없었다. 이성으론 알고 있어도 감정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그 마음이 브라케의 불만이었을 테지만…….
“경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알아.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나. 그렇겠지?”
“뭐, 그렇지.”
브라케의 질문에 엘스하이머가 답했다.
“오늘 원수봉 수여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겠지?”
“귀족이 되는 걸 거절했던 것 말인가?”
“그렇다. 그룩.”
브라케는 크게 끄덕이고 양 손으로 짝하고 자신의 얼굴을 두드렸다. 이런, 이 녀석 벌써 취했나.
“난 걱정하고 있었다. 사령장관에게 있어서 개혁이란 무엇인가하고. 우리들에겐 신은하제국, 우주를 통일하는 성간국가라는 꿈을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어떨지 말이야.”
“…….”
“혹시 평민에 대한 인기몰이인가. 아니면 권력탈취를 위한 몇 가지 수단 중 하나라서 사실은 개혁 따위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
그의 걱정도 기우라고는 할 수 없다. 샨타우 성역 회전의 대승리로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명성, 실력은 일찍이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가 개혁보다도 권력의 길을 택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귀족이 되는 걸 거절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심했다. 혹시 사령장관이 귀족이 되는 걸 받아들었다면 난 여기를 떠났을지도 몰라.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신용은 할 수 없으니까 말야.”
방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 제각기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다. 사령장관이 귀족이 되는 걸 받아들었다면 어떻게 해야했는가.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때였다. 경쾌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난 사령장관을 믿고 있다고. 브라케.”
“……엘스하이머.”
“사령장관은 약속대로 샨타우 성역에서 반란군을 격파했다. 그리고 폐하를 설득하여 개혁 칙령을 내놓는 것까지 결정했다. 제국은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우리들은 확실하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 이 이상 뭘 바라는 건가? 브라케.”
확실히 엘스하이머의 말대로 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외친 개혁은 한 번도 받아들어진 적이 없었다. 그것이 지금 이뤄지고 있다. 그 것이 불안에 부채질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 걱정이 지나친 건가? 엘스하이머.”
“그래. 지나친 걱정이다.”
간단하게 엘스하이머에게 단정되어 브라케는 말을 잃었다. 그런 브라케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면서 엘스하이머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그보다도 예의 건, 준비는 되어있나?”
엘스하이머의 말에 모두가, 말을 잃은 브라케도 표정을 고친다.
“준비는 되어 있어. 하지만 엘스하이머. 잘 되리라고 생각하나?”
“브라케. 잘 될 필요는 없어. 이번엔 행하는 데에 의미가 있지.”
정말 괜한 걱정인 걸까. 브라케의 걱정은 기우인 걸까.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지금은 개혁의 추진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령장관이 그 얼굴을 버렸을 때, 우리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
제국력 487년 9월 21일. 오딘, 제아드라(바다독수리). 울리히 케슬러.
“1년 전에는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
잔을 입으로 옮기며 바렌 제독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동의하듯이 뮐러, 클레멘츠, 루츠, 비텐펠트, 아이제나흐가 끄덕인다.
“1년 전인가. 생각나는군. 제 57회의실을.”
“클레멘츠 제독. 난 지금도 제 57회의실로 가는 일이 있다. 거기에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말이지.”
클레멘츠와 비텐펠트가 말을 교환한다. 두 사람 모두 감상 깊은 표정이다. 아니, 두 사람만이 아니라 바렌, 루츠, 아이제나흐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제 57회의실. 1년 전, 발렌슈타인은 여기에 9명의 소장을 모았다. 켐프, 루츠, 파렌하이트, 렌넨캄프, 클레멘츠, 바렌, 비텐펠트, 아이제나흐, 메크링거.
그 9명과 발렌슈타인이 제 3차 티아매트 회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제국군 우주함대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제국군인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이야기다.
“미안하군. 케슬러 제독. 뮐러 제독. 무심코 생각나서 말이지.”
“상관없네. 클레멘츠 제독. 제 57회의실의 일은 군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으니.”
내 말에 뮐러는 온화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군 내부에서 제 57회의실은 유명하다. 그때까지 비주류파였던 사람들이 제 57회의실에 불려간 걸로 운명이 달라졌다. 지금까진 일상회화 중에서도 제 57회의실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운명의 전환기라는 의미로.
화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루츠가 비텐펠트에게 질문했다.
“사령장관의 망토 색을 검게 하는 걸 추천한 건 경이라고 하더군. 비텐펠트 제독.”
“뭐, 그렇게 되는 걸가. 저건…….”
묘하게도 비텐펠트는 말을 망설였다. 항상 확실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있어서 희안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했다. 그 시선을 느낀 거겠지.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흰색을 추천했다고. 나는.”
“흰색?”
뮐러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한다. 모두 시선을 교환하고 있다. 확실히 흰색과 검정은 전혀 다르다.
“음. 하지만 사령장관이 백색은 부사령장관에게 양보하겠다고 해서 말이야. 브륀힐트도 흰색이니 그 편이 좋을 거라고…….”
“…….”
“그래서 함선 색에 맞춘다면 망토색은 검정이 되겠다고 말하니…….”
“말하니?”
“그걸로 좋다고 말하셨네. 바렌 제독.”
한 순간의 침묵 뒤, 희미한 쓴웃음이 그 장소에 떠올랐다.
“곤란하군. 흑색은 나도 쓰고 싶었는데…….”
“?”
“아니, 그 때엔 내가 원수가 될 가능성 따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야. 그러니 부럽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지…….”
“무리도 아닙니다. 저도 자신이 원수가 되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모두 비텐펠트와 뮐러의 대화에 끄덕이고 있다. 확실히 그렇겠지. 발렌슈타인은 특별하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이기에 불과 6년 만에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됐다. 그이기에 상급대장에 원수가 되는 것이 용인됐다. 우리들에게 용인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 발렌슈타인은 자신은 특별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소신은 평민으로서 최초의 원수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후의 원수는 아닙니다.”
흑진주 홀에서 흐른 발렌슈타인의 말. 저 말을 들었을 때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런 것이 용인되는가. 뭔가 착각이 아닌가하고.
하지만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들 평민에게도 원수가 될 가능성이, 제국군 3장관이 되는 가능성이 보였다.
“사령장관이, 원수부를 열 생각은 없다. 원수부에 들어가고 싶으면 스스로 원수부를 열라고 하셨지만. 정말 진심이었을 줄이야…….”
쓴웃음이 섞인 말투로 루츠가 중얼거렸다.
“제 57회의실이로군. 사령장관은 길을 열었다. 나머진 스스로 걸으라는 거지.”
“케슬러 제독의 말대로다. 대장에 승진했다고 해서 그 지위에 머무르는 건 용서할 수 없어. 오히려 지금부터다.”
클레멘츠의 말대로 오히려 지금부터다. 지금까지는 평민이기 때문에 승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벽이 무너졌다. 지금부터는 실력이 있는 자는 승진하고, 없는 자는 멈추게 된다.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