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본편(연중)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58 화. 포위

추리닝백작 2015. 2. 12. 14:10


제국력 487년 11월 5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귄터 키슬링.


  슈마허 준장은 에렌베르크 원수가 자신에게 붙인 감시역. 에리히는 지금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 에렌베르크 원수와 에리히는 계속 협력관계에 있다. 그게 어째서…….


  곤혹해하는 나에게 에리히는 조금 옛날 이야기가 되지만, 이라고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뮈켄베르거 원수가 퇴역한 것이 발단이었어. 후임인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누구로 할지가 문제가 됐지만, 뮈켄베르거 원수가 생각한 후보자가 두 명 있었지.”


  후보자는 두 명인가. 대체적으로 상상이 간다.

  “한 명은 로엔그람 백작. 또 한 명은 나였지. 단, 나는 평민인 데다가 계급도 낮았다. 자연스럽게 뮈켄베르거 원수가 생각한 후계자는 로엔그람 백작이 됐지.”


  그 외에도 이유는 있다. 에리히는 황제 붕어 때에 국내 치안을 유지한다는 역할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원정에 나가는 건 어렵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그것도 고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로엔그람 백작을 후임자로 하고 싶다고 에렌베르크 원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에렌베르크 원수는 그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어.”

  에리히는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용인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 듯이 느껴졌다.


  “어째서냐? 달리 후보자가 있었다는 건가? 메르카츠 제독이라던가.”

  내 말에 에리히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아니야. 두 사람이 보는 시야가 달랐기 때문이다.”

  “시야가 달라?”


  에리히는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전장에서 이길 수 있는 지휘관을 골랐다. 그런 의미에서 로엔그람 백작을 고른 건 틀리지 않았어.”


  “에렌베르크 원수의 시야란?”

  “국내 최대의 무력집단을 이끄는 데에 적합한지 아닌지다.”

  “……무슨 의미냐.”


  에리히는 한 순간 망설임을 보였지만, 탄식과 함께 답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위험한 위치다. 강대한 무력과 강렬한 야심, 그게 만났을 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인가.”

  “……쿠데타인가.”

  “아니야. 찬탈이다.”

  “!”


  단 숨에 응접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잠시 동안 에리히와 마주본다. 그런 건가. 그런 거였나. 에렌베르크 원수는 저 시점에서 로엔그람 백작의 야심을 눈치채고 있었던 건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에리히는 희미하게 끄덕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렌베르크 원수에게 그 위험성을 지적한 건 다름이 아니라 리히텐라데 후작이다.”

  “리히텐라데 후작…….”


  이번엔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몸 안의 피로감이 확장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이 에리히가 보고 있다. 무심코 고개를 젓고 기분을 바로했지만, 희미하게 에리히가 쓴웃음을 짓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조건을 붙여 로엔그람 백작의 우주함대 사령장관 취임을 인정했다.”

  “경을 부사령장관으로 할 것이군.”

  “표면적으론 로엔그람 백작을 보좌하여 국내의 내란을 억누르라는 거였지. 하지만 실제론 백작에 대한 감시역이었어.”


  어딘가 자조하는 듯이 에리히가 말했다.

  “그들에게 그런 부탁을 받은 건가?”

  “아니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


  “원래부터 난 로엔그람 백작에게 이런저런 형태로 협력하고 있었지. 하지만 제 3차 티아매트 회전에서 난 로엔그람 백작에게 지휘권을 주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내가 무조건적으로 백작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

  “…….”


  “게다가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와 로엔그람 백작 사이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고 해. 거기에 대해서도 그들은 눈치챘다.”

  “차이란?”


  “로엔그람 백작은 폐하에 대해서 명확한 적의가 있었어. 하지만 내겐 그게 없었지. 오히려 호의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 한 점 때문에, 백작이 찬탈하기 위해 움직일 때 내가 막는 역할로 돌아서리라고 그들은 읽었던 거야.”

  “…….”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몸을 옭아매는 무겁고 괴로운 것을 뿌리치기 위해서다. 에렌베르크 원수, 리히텐라데 후작. 저 두 사람의 무시무시함이 지금에야 사무치게 느껴진다.


  저 노인들의 예측대로 에리히는 로엔그람 백작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큼 폐하에게 다가가고 있다. 백작이 찬탈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그렇게 된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거다.


  “슈마허 준장은 표면적으로 황제 폐하에게 만일의 경우가 있을 경우, 나와 에렌베르크 원수의 사이를 원활하게 이어주고, 오딘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 붙여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이 로엔그람 백작을 억누르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보내진 감시역, 이라는 건가…….”

  “그런 거야. 하긴, 거기에 대해서 눈치 챈 건 저번 제국군 3장관 회의에서였지만.”


  내 말에 에리히는 끄덕였다. 응접실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다. 화두를 바꿔야할까. 하지만 아직 듣지 못한 것이 있다. 유야무야로 할 수는 없다…….


  “에리히. 슈마허 준장에 대한 건 알았다. 하지만 에렌베르크 원수의 위기라는 건 무슨 소리야?”

  에리히는 내 질문에 희미하게 웃음을 띠웠다.


  “로엔그람 백작이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되고, 내가 통수본부총장이 된다. 그 경우 슈타인호프 원수는 어떻게 되지?”

  “과연. 군무상서인가…….”

  “그래. 에렌베르크 원수는 후진을 위해 군사에서 용퇴하게 되겠지.”


  누구도 실태를 범하지 않았다. 그런 이상 모두가 하나씩 지위를 올리게 된다. 에렌베르크 원수는 최장년이기도 하다. 후진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형태로 군부에서 떠나게 되는가…….


  “에렌베르크 원수는 분노했겠군.”

  “저번 제국군 3장관 회의에서 어느 인사가 결정됐어……. 내란이 일어나는 대로 메르카츠 제독은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으로 취임한다. 그리고 내게 만일의 경우가 있을 경우 그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될 것으로 합의됐다.”


  “! 선임은 로엔그람 백작이겠지?”

  무심코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로엔그람 백작은 날 암살하는 데에 관여했다는 것으로 하고 배제할거야.”

  “!”

  에리히의 얼굴엔 아까 전까지 보이던 웃음이 없다. 차갑고 매마른 표정을 짓고 있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회의에는 리히텐라데 후작도 있었어. 알겠지? 노인들은 로엔그람 백작이 찬탈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명확하게 인식한 거야.”

  “슈타인호프 원수도?”


  “슈타인호프 원수도 마찬가지다. 로엔그람 백작의 위험성을 가장 크게 인식한 건 그였어. 그랬기 때문에 날 받아들었지.”

  “받아들이다? 무슨 말이냐.”


  “원래부터 슈타인호프 원수는 날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

  “이제르론이로군.”

  내 말에 에리히가 쓴웃음과 함께 끄덕였다. 저 이제르론에서 일어난 아군사살. 저 이래로 슈타인호프 원수는 확실히 에리히를 기피하고 있었다.


  “난 기본적으로 병참통괄, 우주함대사령부에서 군무를 하고 있었지. 주로 접촉한 건 에렌베르크 원수, 뮈켄베르거 원수다. 슈타인호프 원수와는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어.”

  “꽤나 미움을 받았군.”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에리히는 완전히 무표정했다.

  “그가 날 싫어한 건 이제르론만이 원인이 아니야. 나와 로엔그람 백작이 친하게 보였던 게 컸었어. 슈타인호프 원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난 언젠가 로엔그람 백작과 함께 반역할 자에 불과했지.”

  “…….”


  “부정은 하지 않아. 난 이 나라의 정치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로엔그람 백작에게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에게 찬탈 의지가 있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지.”

  “그런 걸 내게 말해도 좋은 건가? 난 황제의 어둠의 왼손이라고.”


  가능한 한 표정을 엄하게 하고 말했지만 에리히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곤란한 일이야. 경이 상대라면 아무래도 입이 가벼워져. 어째서일까?”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 확신범 녀석이. 변함없이 나쁜 남자로군. 경이 여자였다면 대체 몇 명의 남자를 파멸하게 만들었을지.”


  내 말에 에리히는 웃음을 보였다.

  “귄터 키슬링, 안톤 페르너, 나이트하르트 뮐러. 파멸하게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들뿐이군. 재밌을 것 같은데?”

  “그쯤 해둬. 그래서?”


  에리히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계속했다.

  “로엔그람 백작이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내가 부사령장관이 되는 걸 슈타인호프 원수는 반대하지 않았다. 어째서라고 생각해?”

  “글쎄…….”


  확실히 슈타인호프 원수가 반대하지 않았던 건 이상하다. 반역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두 사람을 실전부대의 정점에 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고 있었던 거야.”

  “역시 그런가……. 베네뮌데 후작부인 사건, 그리고 로엔그람 백작을 잘라버리기 위해 지금의 함대 사령관들을 모은 일이로군. 케슬러 제독에게서 들었어.”


  내 말에 에리히가 “그런가. 알고 있었나.”하고 중얼거렸다.

  “나와 로엔그람 백작은 협력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때엔 서로에 대한 불신감이 극심하게 됐었지. 슈타인호프 원수는 정보부를 써서 그 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던 거야. 언젠가 주도권을 어느 쪽이 쥘지 분쟁하게 된다. 그리고 이기는 건 나일 거라고 판단한 거지.”

  “…….”


  “그 뒤엔 슈타인호프 원수가 예상했던 대로 됐어. 우주함대 안에서 내 영향력이 커지고, 초조해진 로엔그람 백작은 이제르론에서 패배했지.”

  “그리고 경이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되었다.”

  내 말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얄궂은 이야기야. 로엔그람 백작이 없었다면 내가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이 되는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사령장관이 되는 일도 없었을 거야.”

  “무슨 의미냐?”


  “진절머리가 났던 거야. 야심가에 실력 있는 귀족을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두면 항상 찬탈의 위기에 떨어야 하니까. 차라리 평민인 편이 편했던 거겠지.”


  “업이 깊은 이야기로군…….”

  “정말이다.”

  탄식이 나왔다. 너무나도 비린내 나는 이야기에 진절머리가 났다. 아마도 표정에도 나왔겠지. 에리히는 쓴웃음 지으면서 “지긋지긋하지?”하고 말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딱히 은하제국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야.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실력 있는 고급군인이 강대한 무력을 쥐었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통치자들의 영원한 악몽이다. 이제르론 요새의 함대사령관직과 요새사령관직이 통일되지 못했던 것도 근본에는 그게 있어.”


  “사령관직이 줄어들기 때문 아니었나?”

  “표면적으로는 말이지. 대놓고 반역을 경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순 없잖아?”

  “그것도 그런가.”

  무심코 실소했다. 확실히 반역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다.


  “저 요새에 틀어박혀 반역이라도 일으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고 말아. 그걸 두려워한 거지.”

  “지치는 이야기로군. 에리히, 경은 지치지 않는가?”


  “이 정도로 지친다면, 우주함대 사령장관 따위 못해먹어.”

  그렇게 말하고 에리히는 웃었다.

  “그럼 내겐 평생 무리로군. 부탁 받아도 사양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일을 매일 듣는다면 인간불신의 결정체가 되고 말겠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만.”

  “곤란한 일이로군.”

  “본제로 되돌아가도 될까? 귄터.”

  “아아, 부탁해.”


  “이제르론 요새 함락에서 3백만 명이 죽었어. 에렌베르크 원수와 슈타인호프 원수는 저 패전에서 로엔그람 백작의 야망이 끊겼다고 봤지. 두 사람 모두 백작의 처분에는 의견이 갈렸지만, 군부에서 추방하라곤 하지 않았어.”

  “…….”


  “그들에게 있어서 예상외였던 건, 내가 로엔그람 백작을 부사령장관으로 한 거였겠지. 반란군을 유인하기 위해서였지만, 그게 백작의 야심을 되살아나게 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멍청한 이야기지만, 난 마음속 어딘가에서 백작을 믿고 싶어했다고 생각해. 야심을 버린 것이 아닌가하고…….”


  “슈타인호프 원수가 날 받아들이게 된 건 그때부터다. 반란군을 격멸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로엔그람 백작을 부사령장관으로 두는 이상, 언젠가 백작이 움직일 거라 원수는 봤지. 백작을 억누르는 데엔 내게 협력하여 나의 지위를 반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오베르슈타인은 잘못 생각했군. 그들을 너무 경시했어. 경을 배제하는 데에만 너무 집중했나.”

  내 말에 에리히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 오베르슈타인 준장은 그들과 직접 만난 적이 없어. 아무래도 판단재료는 로엔그람 백작에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지. 백작에게서 보자면 에렌베르크 원수나 슈타인호프 원수나 범용하게 보이겠지.”

  “……과연.”


  “저 노인들을 경시해선 안됐어. 군인으로서, 궁정인으로서 제국의 정점에 있는 거야. 거쳐온 수라장이 얼마나 될지……. 재능으로는 로엔그람 백작에게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경험과 강함은 훨씬 위에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나도 아직 애송이에 불과해.”


  “경이 애송이라면 나 따윈 갓난아이로구만. 언제가 돼야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어.”

  “동감이야.”


  힘없는 웃음소리가 응접실에 울렸다. 정말이지. 이 제국에는 괴물 같은 노인이 너무 많다. 로엔그람 백작은, 오베르슈타인은 눈치 챘을까? 자신들이 노인들에게 포위되고 있다는 것을. 에리히라는 먹이에 달라붙는 순간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로엔그람 백작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