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본편(연중)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76 화. 감상과의 결별

추리닝백작 2015. 2. 12. 14:20


제국력 487년 12월 7일. 오딘, 제국군병원. 에리히 발렌슈타인.


  눈을 뜨고 이틀째. 내 몸은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 충분히 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렌베르크 원수가 라인하르트, 메르카츠, 그리고 각 함대사령관에게 내가 눈을 떴다는 걸 알렸다. 그 일이 내게서 휴식을 빼앗아갔다.


  에렌베르크 원수의 마음은 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실로 경사스럽다. 각 함대사령관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하자. 반역자들도 크게 억울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그런 거겠지.


  각 함대사령관들의 마음도 알겠다. 자신들의 상관이 살아난 것이다. 그건 기쁜 일이겠고, 안심했을 것이 틀림없다. 나로서도 적어도 “아, 살아났어?”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부탁이니까 쉴 틈도 없이 내게 연락하는 건 그만둬라. 특히 표면적으론 내 몸을 걱정해서 연락은 자숙, 그런데도 뒤에서 몰래 연락해서 상태 확인. 너희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덕분에 나는 그들에게서 연락이 올 때마다 아픔을 참고 상반신을 일으켜 필사적으로 웃음을 띠며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기뻐하는 녀석, 걱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날 보는 녀석, 암살자들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녀석, 이러저러 있었지만, 가장 곤란한 건 아이제나흐였다.


  지긋이 날 걱정하는 눈으로 보고 있다. “괜찮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이제나흐는 납득하지 못한 것 같다. 걱정하는 듯이 날 보는 걸 그만두지 않는다. 정말 곤란한 녀석이다. “걱정 없어.”라고 말해도 반신반의의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별 수 없다. 화두를 바꾸자고 생각해서 “건강하게 잘 하고 있나?”하고 물으니까 겨우 끄덕였다. “무리하지 마라. 힘내.”라고 말하니 이번엔 기쁘게 끄덕인다. 거기까지 하고 겨우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거겠지. 경례하고 통신을 끊었다.


  마치 도시에 나간 무뚝뚝한 아들과 그런 아들을 걱정하는 시골의 늙은 아버지의 대화였다. 묘한 느낌이다. 아이제나흐는 원작에선 그다지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느낌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내겐, 예시가 나쁘지만, 골든 레트리버 같은 느낌이 든다. 대형에 얌전하고 똑똑하며 충성심을 겸비한 골든 레터리버다. 난 고양이보다 개가 더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에게 말할 수 없겠지.


  그들과 대화하고 알게 된 점이 있다. 쿠데타 발생 후, 메르카츠가 이끄는 본대는 내가 의식을 되찾기 전까지 진군을 중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편, 라인하르트는 변경 성역으로 진공을 명령받았다. 제국 수뇌부는 라인하르트의 동향에 꽤나 신경질적이 되어 있다. 뭐, 무리도 아닌 일이긴 하지만.


  그들 외에도 발트하임 소장을 시작한 함대 막료들과 뤼네부르크 중장이, 그리고 리히터, 브라케를 시작한 개혁파 문관들이 병실로 밀고 들어왔다. 모두가 다행이다. 다행이다. 라며 기뻐하는 와중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눈만이 웃고 있지 않았다.


  연기도 못할 거면 오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을. 내 상태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거겠지. 기분은 알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차라리 죽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해두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겠지.


  그 뒤에 뮈켄베르거 원수와 유스티나가 찾아왔다. 유스티나는 오자마자 울어버리고, 원수는 벌레를 씹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위로하고 싶어도 작은 목소리 밖에 나오질 않고, 움직이는 건 힘들다. 아버지의 앞에서 딸을 울리는 나쁜 녀석이라도 된 기분이다. 말해 두지만 난 가해자가 아니다. 피해자라고. 아픈 꼴을 당한 건 나다.


  피로가 나온 거겠지. 난 오늘 아침부터 조금 열이 있다. 덕분에 발레리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고, 의사 선생님(클라라 레널드라고 한다고 한다. 그것도 독신이었다.)은 무서운 눈으로 날 노려본다. 나 때문이 아니야. 난 불쌍한 피해자라고 해명했지만, 완전히 무시했다.


  뭐, 그러저러해서 오늘의 난 절대안정, 면회사절이라는 일종의 격리상태가 됐다. 방에 있는 건 발레리뿐이다. 오늘 하루는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꿈뻑꿈뻑하고 있으니 나쁜 노인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건강한 것 같구먼.”

  “…….”

  리히텐라데 후작이었다. 내 머리맡에 앉아 기쁜 표정으로 날 보며 웃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단순히 내 무사를 기뻐하는 모습은 아니다. 악당의 상담 상대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느낌이다.


  상반신을 일으키려하니 후작에게 제지당했다. 그대로 있으라는 것 같다. 내 입장에서도 누워있는 편이 좋았기에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발레리는 어느 샌가 사라졌다. 눈앞의 노인이 밖으로 보낸 거겠지.


  “면회사절일 겁니다만?”

  “야속하구먼. 경과 나의 사이가 아닌가?”

  “…….”


  무슨 사이냐? 기분 나쁘게 히죽히죽 웃는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그런 말을 듣고 새삼스레 내가 악당의 동료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도 눈앞의 노인은 곤란하게도 생명의 은인이다. 70을 넘어서 암살자를 블라스터로 격퇴한다. 무슨 노인이냐?


  “폐하와 후작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어쨌든, 폐하 덕분인 건 틀림 없겠지. 경은 운이 좋아.”


  리히텐라데 후작이 신묘한 표정이 되었다. 이 노인에게도 귀여운 부분이 있다. 폐하가 관련되면 얼굴에서 악면상이 사라져 보통의 노인이 되는 거다. 그게 없으면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는 단순한 음모옹이겠지.


  “뭐가 이상한가?”

  “아뇨. 아무 것도…….”

  난 어느 샌가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내가 어째서 웃었는지 눈치 챘겠지. 언짢다는 듯이 한 번 코를 울린 다음 악면상으로 돌아왔다. 궁정정치가,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의 얼굴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있겠지?”

  “예. 쿠데타로군요.”

  “음.”


  잠시동안 침묵이 떨어졌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팔짱을 끼고 이쪽을 보고 있다.

  “……궁내성, 내무성, 페잔, 그리고 로엔그람 백작이 얽힌 쿠데타다. 뭐, 로엔그람 백작은 백작 자신보다도 그 주변이 움직인 거겠지만.”

  “…….”


  아마도 그렇겠지. 오베르슈타인,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이 두 사람이 움직였다고 봐도 좋다. 라인하르트 자신은 쿠데타는 인정해도 내 암살 따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야 내게 이긴 게 되지 않는다. 저 남자는 패자인 것이다. 패자에겐 패자의 긍지가 있다.


  “유감스럽지만 내무성과 페잔, 로엔그람 백작의 관여는 증명할 수 없네. 증명할 수 없는 이상, 그들에게 죄를 묻는 일도 할 수 없지. 다시 말해 쿠데타의 싹은 남은 채라는 거로군.”

  “……로엔그람 백작은 배제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보고 있다. 어딘가 어림잡고 있는 듯한 눈이다.

  “언제 말인가?”

  “지금은 무리입니다. 내란 발발부터 별동대 지휘관을 파면할 순 없습니다.”

  “경은 로엔그람 백작에게 무르구먼.”

  “…….”


  리히텐라데 후작이 얼굴을 귓가로 가져왔다. 그리고 중얼거리는 듯한 말을 낸다.

  “내란 진압 후가 되면 백작은 무훈을 올리고 돌아오게 되네. 오히려 배제는 어려워지지. 한다면 지금일세.”

  “…….”


  무심코 후작을 봤다. 고개를 올린 후작이 엄한 시선을 향해온다.

  “로엔그람 백작을 배제하여 내무성을 제압한다. 빠른 편이 좋은 건 경도 알고 있겠지.”

  “…….”


  내무성 제압인가……. 확실히 이대로는 내란의 싹을 남겨두게 된다. 우선해야만 하겠지. 하지만…….

  “저 자를 죽이고 싶지 않은가……. 경은 묘한 자로군. 저 자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저 자를 감싼다. 어째서인가?”


  “…….”

  답할 수 없었다. 별로 감싸고 있을 생각은 없다. 저 자를 배제하자고 정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답할 수 없었다.


  “알고 있는가? 백작을, 백작의 주변을 반역까지 몰고 간 건 경이라고?”

  “!”

  내가 라인하르트를 몰고 갔다? 무슨 말을 하나. 농담인가하고 생각했지만, 리히텐라데 후작은 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농담을 하는 게 아닌 듯하다.


  “경은 언제라도 로엔그람 백작을 배제할 수 있었다. 억누르고, 거기에 폭발할 것 같으면 목을 날려버리면 좋았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네. 적당히 우대하고, 적당히 억눌렀다. 백작과 그 주변에게 있어서 보자면 경에게 우롱당하는 꼴이겠지.”

  “바보 같은…….”


  리히텐라데 후작은 내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고양이가 생쥐를 가지고 노는 거나 마찬가질세. 로엔그람 백작이 활로를 구해도 항상 경이 그걸 막고 있어. 그런 주제에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이번 쿠데타는 경 스스로 부른 일일세. 그야말로 생쥐,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로군……. 경은 백작이 스스로 고개를 숙일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가?”

  “…….”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애처롭다는 듯이 보고 있다. 바보 같아서 말도 안 나온다. 라인하르트가 스스로 머리를 숙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 난 고개를 흔들어 답했ㄷ.


  “그런가. 그럼 결착을 지을 때로군. 이 이상 백작을 우롱하는 건 그만 두게나. 무엇보다도 백작 자신이 결착을 지을 걸 바라고 있겠지. 어떤 결말이 될지라도 말이야.”

  “……날조합니까? 증거를.”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경의 곁에는 백작의 충신이 있었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준장이군요.”


  “그걸 몰아 붙여 폭발하게 만든다. 미끼는 경이로군. 여기까지 일을 몰고 온 경의 책임일세. 경 스스로 갚는 게 좋겠지.”

  과연. 지금의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에게서 떨어져 고립되어 있다. 폭발로 몰고 가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렇다 해도…….


  “제가 미끼입니까. 변함없이 심한 일이군요.”

  “자업자득일세.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으니 말이야.”

  “…….”


  확실히 그렇다. 내가 라인하르트를 좀 더 빨리 억누르든가 배제했다면, 이번 쿠데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경은 퇴원하면 바로 출격하게나.”

  “페잔은 어떻게 합니까?”

  “별 수 없네. 이쪽에서 대응하지.”

  “…….”


  “경은 백작의 충신과 함께 출격하라. 책략은 이쪽에서 생각하지. 경은 자신의 신변 안전만을 생각하게.”

  “…….”


  라인하르트를 배제한다고 했지만, 내게 맡기면 허술함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가. 이런이런. 퇴원은 2주일 후. 그리고 출격. 레널드 선생과 발레리는 눈을 치켜뜨고 화내겠지. 귀찮은 일이 됐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돌아가자 발레리와 레널드 선생이 찾아왔다. 두 사람 모두 “절대안정인데.”, “면회사절은 지켜주셔야.”라면서 투덜거리고 있다. 내게도 무슨 말을 한 것 같지만, 깊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못했다.


  내가 라인하르트를 몰고 갔다. 궁지에 몰린 생쥐로 만들었다. 우롱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들은 우롱 당했다고 생각했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생각을 난 부정할 수 있을까?


  “경은 로엔그람 백작에게 무르구먼.”

  “저 자를 죽이고 싶지 않은가.”

  “경은 묘한 자로군. 저 자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저 자를 감싼다. 어째서인가?”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이 되살아난다. 부정할 수 없었다. 어째서 무른 걸까. 어째서 죽이고 싶지 않은 걸까. 어째서 감싸는 걸까…….


  알고 있다. 난 저 남자를 죽이고 싶지 않다. 아니, 죽여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 남자를 배제하려고 생각해도 어떤 이유를 달아서든 뒤로 미뤘다.


  이 세계는 은하영웅전설의 세계다. 아니, 이제와선 내가 바꿔버리고 만, 은하영웅전설의 세계였던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는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의 세계인 것이다.


  두 사람의 영웅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인류의 미래를, 우주의 패권을 다투는 이야기의 세계였다. 나 스스로 몇 번이나 그들에게 감정이입하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기며 읽었던 세계였다.


  소설 속에서 라인하르트는 싫지 않았다. 미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멋있다고도 생각했고, 동경하기도 했고, 서투른 상냥함에 호감을 가졌다……. 키르히아이스 사후의 고독에는 동정했다. 전쟁을 너무 좋아하는 것은 곤란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이분자는 오히려 나다. 처음엔 라인하르트에게 협력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립했다. 그렇다고 해서 배제할 수 있을까? 할 수 없겠지. 불가능하다.


  그래서야 내가 알고 있는 은하영웅전설의 세계가 아니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은하영웅전설의 세계가 사라지고 만다. 아마도 난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그래서 라인하르트를 배제할 수 없었다…….


  슬슬 현실을 재인식해야하겠지. 이 세계는 내가 알고 있는 은하영웅전설의 세계완 다른 곳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위험해진다.


  난 이제 사에키 타카시라는 일개 독자가 아니다. 제국 원수, 우주함대사령장관, 에리히 발렌슈타인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가진 입장인 것이다. 전생의 감상 같은 어리석은 것에 얽매여 있을 때가 아니다.


  방을 둘러보니 레널드 선생은 없었다. 발레리만이 날 걱정하는 눈으로 보고 있다.

  “피츠시몬즈 중령.”

  “왜 그러시나요? 원수.”

  “잠시 혼자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생각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발레리는 조금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미안해. 발레리. 사실은 생각하고 싶은 일 같은 건 없어. 단지 옛날처럼 라인하르트가 된 상상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 정도는 지금의 내게도 허락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