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본편(연중)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80 화. 분진합격

추리닝백작 2015. 2. 12. 14:21


제국력 487년 12월 13일. 제국군 병원. 에리히 발렌슈타인.


  “각하. 우주함대사령부에서 긴급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긴장한 발레리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유스티나. 우리들은 자리를 피하자.”

  “죄송합니다. 원수. 프로이라인.”


  뮈켄베르거 원수가 가볍게 끄덕이고 유스티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 의자에서 일어섰다. 유스티나는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원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방에서 나가는 걸 확인하고 휴대용 TV전화를 정면에 두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에 나타난 건 발트하임 참모장이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있다. 위험하군. 이 남자가 파리해지다니, 그렇게 있는 일이 아니다.


  “각하. 적이 오딘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말입니까?”

  거리적으로 가까운 건 프레이아 방면이다. 하지만 그쪽은 지금 메르카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 아르테나 방면에서 왔나?


  “프레이아 방면에서입니다.”

  프레이아? 묘한 이야기로군. 메르카츠들이 돌파 당했나? 패했나?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빠져나갔나. 대충 그런 건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들이 프레이아 성역 제압에 의식을 빼앗긴 사이에 프레이아 성역 외측을 도는 형태로 빠졌다고 합니다.”

  “…….”


  본대를 끌어들이고 그 사이에 별동대인가. 대충 읽었다. 슈타덴이겠지. 하지만 프레이아 성계를 빠져나오다니. 예상외로 꽤 한다. 아무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아군의 순찰부대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적 병력은 약 3만. 이쪽의 2배입니다. 메르카츠 제독들이 쫓고 있습니다만, 적은 앞으로 4일이면 오딘에 도착합니다. 아마도 시간에 맞지 않겠죠. 저희들은 이제부터 요격에 향합니다.”


  어이어이. 나는 그냥 자고 있으라는 건가? 새파란 얼굴로. 그렇다 해도 순찰부대라니. 그리운 이름을 들었군.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그쪽으로 향합니다. 지휘는 제가 잡겠으니, 그 준비를.”


  “각하. 기다리십시오.”

  “발트하임 참모장. 말려도 무리입니다. 모처럼 손님이 찾아온 겁니다. 아무쪼록 접대에 부족함이 없어야겠죠.”


  “…….”

  마음은 고맙지만, 나도 슬슬 자고만 있는 거엔 질렸다. 피망과 리버 따위 이 이상 먹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불안합니까? 발트하임 참모장.”

  “……아뇨. 사령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발트하임은 경례를 했다. 나도 거기에 답했다.


  통신을 끊은 후, 발레리를 봤다. 손에 내 군복을 가지고 있다. 역시 나의 부관. 발트하임보다 훨씬 배짱이 두둑하다. 단지 표정이 조금 굳었군. 아쉬운 일이다.


  “중령. 옷을 갈아입을 테니 도와주겠습니까?”

  “예.”

  레널드 선생이 찾아온 건 이제야 상의를 입고 망토를 붙이려고 하던 때였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보시는 대롭니다. 적이 왔으니 이제 요격으로 향합니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입니까! 쉬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레널드 선생은 날 제지하려고 하는 거겠지. 침대에 앉아 있는 날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내 앞에 서기 전에 발레리가 막았다.


  “중령. 거길 비키세요!”

  노호가 날라 왔다. 발레리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눈이 위로 올라가, 평소의 상냥한 선생님은 없다.

  “그럴 수 없습니다. 각하는 우주함대 사령장관인 겁니다. 적이 이 오딘을 향해 오고 있는 이상, 요격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침착한 목소리였다. 그게 오히려 레널드 선생을 격앙하게 만든 것 같다.

  “알고 있는 건가요. 중령! 원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목숨이 걸린 문제라구요!”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전 확실하게 적에게 죽습니다.”

  “!”

  “전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러 갑니다. 게다가 여기는 식사가 썩 맛있지 않아요. 이제 슬슬 피망과 리버는 질렸습니다.”


  레널드 선생이 입을 다물고 발레리가 쓴웃음을 짓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망토를 붙이고 작은 목소리로

  “설 수 있나요?”

  라고 물었다.


  스스로 일어서기엔 조금 힘들다. 발레리의 어깨에 손을 올려 일어섰다. 앞에 나아가려고 하니 옆구리가 당기는 아픔이 일었다. 입원중에 입고 있던 옷에 비하면 군복은 움직이기 불편하고, 무겁다는 것도 잘 알 수 있다. 걷는 것도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발레리를 의지하며 천천히 나아간다. 휠체어를 쓸까 생각했지만, 환자 취급 받는 건 옛날부터 좋아하지 않는다. 괜찮다. 혼자는 무리더라도 둘이라면 어떻게든 된다. 난 발레리를 의지하며 병실을 나섰다.


...


제국력 487년 12월 13일. 제국군 병원. 유스티나 폰 뮈켄베르거.


  병실을 나온 뒤, 불안을 참지 못하고 아버님에게 물었다.

  “아버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아버님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동안 날 보고, 병실 앞에 있는 경비병에게 시선을 향했다.


  “저편으로 갈까.”

  라고 말하고 아버님은 경비병에게서 떨어지듯이 걷기 시작했다. 20미터 정도 떨어졌겠지. 아버님은 자리에 서서 날 봤다.


  “아마도 적이 이 오딘으로 공격해왔든지, 혹은 아군이 대패배를 했겠지. 그 이외에 우주함대사령부에서 입원중인 사령장관에게 긴급연락을 하리라 생각할 수 없어…….”


  적이 공격해왔다? 대패배? 자신의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걸 알았다. 아마도 얼굴색은 창백해졌겠지.

  “아버님. 적이 공격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공격하고 있는 건 이쪽이 아닌가요?”


  “유스티나. 전쟁인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그럼, 원수는.”

  “출진하겠지.”


  “그, 그런. 무리입니다. 원수를 말려주세요.”

  “…….”

  정신을 차리니 난 아버님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입을 강하게 닫은 채 답하지 않았다.


  “아버님이 말리시지 않는다면 제가 말리겠어요.”

  “쓸데없다!”

  “아버님…….”

  아버님은 엄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적이 공격해 왔든지, 혹은 아군이 대패배를 했든지. 어느 쪽이든 오딘은 혼란에 빠지겠지. 그걸 억누르기 위해선 저 자의 힘이 필요하다.”

  “…….”

  “그걸 저 자는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말려도 쓸데없다.”

  “아버님…….”


  “유스티나. 잘 들어라. 저 자를 말리는 일은 물론, 저 자 앞에서 우는 일도 용서할 수 없어.”

  “…….”

  “전장에 나가야 하는 남자를 괴롭게 하지 마라. 그걸 할 수 없다면 군인 따위 좋아해선 안 된다.”


  “하, 하지만 원수는 부상을.”

  “저 자가 일반병사라면 대신할 수 있는 자가 있겠지. 전장에 나가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자는 우주함대 사령장관인 것이다. 너 만의 것이 아니야.”


  “…….”

  “앞으로 저 자와 함께 하려 한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날 것이다. 참을 수 있는가? 참을 수 없다면 저 자는 포기하라. 좋아하는 일 따위, 내가 용서할 수 없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원수가 피츠시몬즈 중령과 함께 방을 나오는 중이었다. 원수는 중령에게 의지하면서 걷고 있다. 때때로 얼굴을 찡그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상처가 아픈 거겠지.


  “각하. 적이 오딘으로 향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3만 척의 대군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요격으로 향합니다.”

  “그런가. 고생이로군. 무운을 빌겠네.”


  아버님과 원수가 말을 교환하고 있다. 난 눈물을 참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무래도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유스티나. 원수가 출격한다고 한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감사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원수가 우리들에게서 멀어져간다. 조금씩 멀어져간다. 빨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갔으면 하고 생각하는데도 답답할 정도로 걸음이 느리다. 정말 원수의 부상이 원망스러웠다.


  원수가 보이지 않게 되면 아버님에게 달라붙어 마음껏 울자. 소리를 죽이고 마음껏 울자. 그거라면 아버님도 용서하실 테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으면 원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


제국력 487년 12월 13일. 우주함대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실 옆에 있는 회의실에 이미 함대 주요 멤버가 모여 있었다. 부사령관 크루젠슈테른 소장, 참모장 발트하임 소장, 분함대사령관 크납슈타인 소장, 그릴파르처 소장, 투르나이젠 소장, 부참모장 슈마허 준장, 키르히아이스 준장, 부관 피츠시몬즈 중령, 베스트팔레 남작부인. 모두 그다지 얼굴색이 좋지 않다. 하긴 가장 얼굴색이 나쁜 건 나겠지.


  “그럼 적의 움직임을 자세히 알려주세요.”

  내 말에 발트하임 참모장이 답했다.

  “적의 총 병력은 3개 함대, 3만 척입니다. 아까 전에 말씀 드렸듯이 아군 부대가 프레이아 성역 제압에 신경을 뺏긴 사이 프레이아 성역 외측을 도는 형태로 돌파, 오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내가 끄덕이자 발트하임이 말을 계속했다.

  “이대로 가면 적이 오딘에 도착하는 건 4일 후가 됩니다. 현재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클레멘츠 제독이 후방에서 적을 쫓고 있습니다만. 둘 사이에 약 2일 정도의 거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군이 적을 따라잡는 것보다 적이 오딘에 오는 것이 빠르다는 겁니까.”

  “예. 저희들은 아군 증원이 오기까지 두 배의 적을 상대해야만 합니다.”


  과연. 모두의 얼굴색이 나쁠 만하다. 오딘을 지켜야만 하는 이상, 후퇴전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배의 적을 상대해야만 한다. 상대가 슈타덴이라고 해도 힘으로 밀고 오면 조금 귀찮다.


  “참모장. 적의 지휘관은 누구입니까?”

  “슈타덴 대장, 그리고 라트부르흐 남작, 세츨러 자작이 지휘를 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총지휘는 슈타덴 대장이 잡고 있겠죠.”


  역시 슈타덴인가. 그리고 라트부르흐 남작……. 유괴범 중 하나로군.

  “각하. 적은 현재 함대를 세 개 방면으로 분산하여 오딘으로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격으로 향할 우리들을 포위섬멸할 생각이겠죠.”


  발트하임의 말에 무심코 웃음이 나왔지만, 아픔 때문에 몸을 수그리고 말았다. 발레리가 서둘러 내 등을 쓰다듬는다.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모두의 얼굴을 보니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바로 출격합니다. 준비를 취해주세요.”

  “각하. 적은 2배의 전력입니다. 작전의 일단이라도 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발트하임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작전의 일단입니까……. 적은 2배가 아닙니다. 겨우 7할 정도의 전력입니다. 그것뿐입니다.”

  “7할? 각하. 적은 3만의 병력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모이면 그렇겠죠. 지금은 아직 분산되어 있습니다. 각개격파하면 됩니다.”

  “…….”

  “이 작전은 시간과의 승부입니다. 서둘러주세요.”

  “예.”


  자리에서 일어나 막료들이 준비에 착수한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기다리고 발레리에게 부탁해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 두 원수 사이에 통신을 열게 했다.


  “지금부터 출격합니다.”

  “음. 이길 수 있나?”

  “뭐, 어떻게든 되겠죠.”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얼굴을 찌푸렸다. 믿음직하지 못한 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리히텐라데 후작. 뭐, 여기는 사령장관을 믿도록 하죠.”

  “군무상서의 말대롭니다.”

  “뭐. 믿어 둘까. 경. 조금 타인이 안심할 수 있을 말은 할 수 없나?”

  한숨 섞인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이었다. 변함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늙은이다.


  “이래도 노력하는 편입니다만.”

  “……별 수 없구먼. 페잔은 맡기게나. 예의 건도 이쪽에서 진행해두지. 경은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통신이 끊어지고 새카매진 스크린을 보면서 너무나 얄궂은 일에 실소했다. 설마 여기서 아스타테 회전을 내가 하게 될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상대가 슈타덴이라니……. 실수했군. 슈타덴. 함대를 분산할 필요 따위 없었다.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좋았을 것을……. 무슨 생각을 한 건진 상상은 가지만. 그쪽의 미스를 최대한으로 이용해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