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86 화. 용사 중의 용사
제국력 487년 12월 24일. 렌텐베르크 요새.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강습양륙함이 렌텐베르크 요새에 붙는 건 문제 없었다. 적은 함대전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함대의 포격으로 요새를 통제하고 그 사이에 강습양륙함으로 렌텐베르크 요새에 접선했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 앞이다. 예상대로 오프레서는 제 6통로에 제플 입자를 살포하고 있다. 화기는 일절 쓸 수 없다. 여기서 앞으로는 백병전이다. 오프레서가 상대라면 처참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이길 수 있을지…….
접선한 강습양륙함 중 한 척에 임시 지휘소를 설치하는 것과 동시에 감시 카메라를 요새 내에 설치하여 전황을 관찰하도록 한다.
“뤼네부르크 중장. 공격준비 됐습니다.”
“음. 베크만 대령, 크라나흐 대령. 슬슬 시작해주게. 단, 무리는 하지 말고.”
“예.”
백병전에 쓰이는 토마호크는 탄소 크리스털로 만들어져있다. 표준 사이즈는 전장 85센티, 중량 6킬로. 그걸 한 손으로 휘두르는 거지만, 오프레서는 전장 150센티, 중량 9.5킬로의 토마호크를 양손으로 쓴다.
장갑척탄병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 2미터를 넘는 신장과 강고한 골격을 굳센 근육으로 감싸고 있다. 이 거체가 전장 150센티, 중량 9.5킬로의 토마호크를 쓸 때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면으로는 싸울 수 없다. 그럼 정면에서 싸우지 않으면 된다. 장갑복은 완전한 단열구조로 되어 있고,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는 2시간이다. 오프레서를 2시간 뱅뱅이 돌린다. 그가 장갑복을 벗을 때부터가 승부다.
베크만과 크라나흐는 화려한 부분은 없지만 견실하고 진중한 자들이다. 전과에 휘둘리는 일 없이 냉정하게 싸울 수 있고,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개인전보다 집단전을 특기로 하고 있다.
오프레서를 상대로 밀리면 피하고, 피하면 누른다는 시간 벌기 작전을 행하기엔 적임이겠지.
“각하. 좀처럼 잘 되지는 않느군요.”
“그렇군. 역시 안 되나.”
“예.”
……4시간 지났다. 4시간 지나도 오프레서는 장갑복을 착용한 채로 계속 싸우고 있다. 그 사이에 이쪽은 베크만과 크라나흐가 교대로 싸우고 있지만…….
스크린에는 베크만 대령의 지친 표정이 있다. 베크만과 크라나흐는 잘해줬다고 할 수 있다. 이쪽의 피해도 가능한 한 줄이고, 오프레서에게 4시간이나 시간을 번 것이다. 하지만 오프레서는 장갑복을 입은 채다. 내 어림짐작은 빗나간 것 같다.
“아무래도 약물을 쓰고 있는 것 같군.”
“아마 그렇겠죠.”
오프레서는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 흥분제인가. 각성제인가. 어느 쪽이든 시간을 버는 의미는 없어졌다.
“다음엔 내가 나간다.”
“각하!”
베크만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 오프레서 상대로는 별 수 없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다. 무심코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 표정을 짓지 마라. 이래도 일단 오프레서 대책은 세워뒀어. 처음부터 내가 나가야 했던 걸지도 몰라.”
“…….”
“지금부터 그쪽으로 간다. 기다리게.”
스크린을 끊고 장갑복을 입었다. 그리고 토마호크와 전투용 나이프를 준비한다. 토마호크는 이 날을 위해서 준비한 특제품이다. 전장 75센티, 중량 4.5킬로. 표준 사이즈보다 10센티 짧고, 1.5킬로 가볍다. 전투용 나이프는 두 개, 좌우 허리에 장비했다. 그리고 또 하나, 변형 나이프를 정면에서 보이지 않도록 배후에서 허리에 집어넣는다.
사령장관의 말대로 함정을 거는 편이 좋았을까? 아니, 이건 나와 오프레서 사이에 결판을 지어야만 하는 맹세인 것이다. 그 날, 슐라흐트플라테를 먹었을 때부터, 장갑척탄병총감이 되고 싶다고 답했을 때부터 결정된 일이다. 피할 수는 없다.
지금이 되어서 보면 베크만과 크라나흐를 처음에 내보낸 건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나서야만 했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건, 역시 마음 속 어딘가 오프레서가 무서웠기 때문이겠지. 한심한 이야기다.
내가 장갑복을 입고 나가자 오프레서의 부하들 사이에서 흥분과 같은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일단 나도 그 나름대로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오프레서 각하.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참전. 일기토를 희망한다!”
싸움을 앞에 둔 고양된 기분과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차가운 기분이 마음속에서 혼합되고 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지금쯤 눈꼬리를 올리며 화내고 있겠지. 하지만 이걸로 피할 수 없게 됐다.
“늦지 않았나. 뤼네부르크. 겁에 질려서 나오지 않는가하고 생각 했다고.”
오프레서가 앞으로 나왔다. 나와의 거리는 5미터. 대충 그런가.
그래도 눈앞의 오프레서에겐 압도적인 위압감이 있다. 거대한 불곰이라도 앞에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다. 무심코 배에 힘을 넣는다. 먹히지 마라.
“기다리게 한 것 같군요.”
“흥. 죽을 각오는 되어 있는가. 뤼네부르크.”
“그런 것, 소관에겐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 죽을 순 없다. 그와 약속한 것이다. 30년 후의 세계를 보자고. 난 반드시 살아서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
“호오. 잘도 말하지 않는가. 잔재주를 부렸지만, 내겐 통하지 않아. 모두, 손댈 필요 없다. 뤼네부르크. 일기토 받아들이지!”
발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오프레서는 토마호크를 휘둘렀다. 뒤로 피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토마호크가 달린다. 빠르다! 한 순간 2미터 가까운 거리를 줄였다!
오프레서의 몸이 흐르며 견갑골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을 땐 지나갔을 터인 토마호크가 반대 방향에서 보다 스피드를 올려 날 덮쳐왔다! 괴물 녀석. 다시 한 번 난 뒤로, 조금 좌후방으로 뛰었다.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이 남자를 상대로 방어는 있을 수 없다. 서툴게 방어하면 타격만으로 날라가버리던가, 충격으로 토마호크를 놓치고 만다. 오히려 위험하다. 막는 게 아니라 피할 수밖에 없다. 내가 표준보다도 가볍고 짧은 토마호크를 고른 것도 그게 이유다. 조금이라도 몸이 가벼운 편이 좋다.
오프레서가 이번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일격을 날렸다. 나의 배를 노린다. 뛰어 물러가는 것과 동시에 우측으로 게걸음 친다. 그냥 뒤로 물러서지 마라! 상대에게 기세를 줄 뿐이다.
오프레서가 머리를 노려왔다. 오프레서의 신장으로는 내 배를 노리는 것보다 머리를 노리는 편이 훨씬 멀리서 토마호크를 내밀 수 있다. 참아라. 여기선 아슬아슬한 곳에서 피해라! 눈앞을 토마호크가 스쳐 지나간다. 공기가 타는 냄새가 났다.
이때를 기다렸다! 토마호크를 되돌릴 때까지가 승부다! 토마호크를 오프레서의 눈 앞에서 던진다. 그리고 오프레서의 발밑으로 뛰어든다! 뒤에서 예의 변형 나이프를 뽑아 오프레서의 발을 찌른다. 맹수의 포효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걸 들으며 앞으로 구르듯이 도망쳤다.
머리 위에서 금속음이, 계속해서 몸 곁에서 금속음이 들린다. 더욱 앞으로 도망쳐 오프레서를 봤다. 오프레서는 서 있다. 발 근처엔 떨어진 내 토마호크가 있다. 소리를 낸 건 이 녀석 이겠지.
오프레서의 다리갑옷에는 내가 찌른 변형 나이프가 꽂혀 있다. 이 날을 위해서 준비한 무기다. 손잡이는 있지만, 그 앞은 화살촉과 마찬가지다. 칼날 끝 부분은 시옷자처럼 굽어있어서 빼기 힘들게 되어 있다. 무리하게 빼면 상처가 넓어져 아픔이 늘어날 뿐이겠지.
오프레서를 힐긋 봤을 때,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몸의 크기다. 상반신의 웅대함. 그리고 토마호크의 크기를 보면 그 근육의 대단함에, 파괴력을 상상하고 탄식을 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프레서의 진정한 강함은 상반신이 아니다. 그걸 지탱하는 하반신에 있다. 상반신만의 남자라면 저 토마호크 돌리기는 불가능하다. 토마호크의 무게에 이끌려 균형을 잃는다. 일격밖에 볼게 없는 사내겠지.
강인한 상반신. 특히 엄지발가락의 짓밟는 힘. 거기에 상반신의 파워가 맞아 들어갈 때, 민치 메이커, 오프레서가 탄생한다. 그럼 그걸 뺏으면 오프레서의 무서움은 반감되겠지. 그게 내 생각이다.
“꽤 하지 않는가. 뤼네부르크.”
“…….”
나는 일어서서 전투용 나이프를 왼쪽 허리에서 뽑았다. 이제부터 이게 무기가 된다. 문제는 오프레서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가다.
천천히 조금씩 오프레서와의 사이를 좁힌다. 뺨 아래에 땀이 흘러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잠시 동안밖에 싸우지 않았는데 땀을 흘리고 있다. 아니, 땀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진정한 건가.
앞으로 한 발, 앞으로 한 발 내밀으면 오프레서의 토마호크 거리에 들어간다. 포기해야하나. 아니면 오프레서가 움직이는 걸 기다릴까……. 한 순간의 망설임, 그 순간에 오프레서가 움직였다! 서둘러 뒤로 물러난다. 때에 맞출 수 있을까!
울부짖는 듯한 소리와 함께 토마호크가 눈앞을 지나간다. 역시 파고드는 힘이 약하다. 그만큼 토마호크의 속도와 거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목은 몸통과 떨어지게 됐겠지.
거리를 좁혔다. 오프레서의 몸이 흐르고, 토마호크의 역습은 오지 않는다. 텅 빈 옆구리에 전투용 나이프를 꽂는다. 더욱 파고들려고 한 그 순간, 외침소리와 함께 굉장한 힘으로 날아갔다.
격심한 충격을 참으며 서둘러 일어섰다. 오프레서는 주저앉아 있다. 그 옆구리, 아마도 늑골 사이에 전투용 나이프가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나이프는 폐에 도달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발뿐만이 아니라 호흡의 괴로움도 오프레서를 괴롭히게 되겠지. 내 승리다.
또 하나의 전투용 나이프를 뽑아 천천히 다가간다. 오프레서가 헬멧을 벗어 던졌다. 입에서 피가 나오고 있다. 날 보고 씨익하고 웃었다.
“훌륭하다. 뤼네부르크……. 아무래도 내 패배인 것 같군.”
“…….”
“다리를 노리는가. 잘도 생각했군. 일기토에서밖에 쓸 수 없는 수지만.”
오프레서가 몸을 숙였다.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항복하길 바랍니다.”
“바보 같은 소릴 하지마라. 경이 내 입장이라면 항복할 텐가? 패자를 모욕하지 마라. 용사로서 대해라.”
“…….”
거절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과는 싸우지 못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신 오딘은 날 가엽게 여기신 것 같군. 경이 와줬을 때, 일기토를 바랐을 때, 난 기뻤다. 감사하네. 뤼네부르크. 잘도 여기까지 찾아왔다.”
“…….”
“장갑척탄병, 부탁하네. 경이야말로, 용사 중의 용사다.”
“……알겠소.”
오프레서가 찔려 있던 전투용 나이프를 신음소리와 함께 뽑았다. 전투복 안은 피투성이겠지.
“우리들 앞에 용사 없으며, 우리들 뒤에 용사 없다. 안녕이다. 뤼네부르크.”
“…….”
오프레서가 나이프로 경동맥을 끊었다.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천천히 오프레서의 몸이 쓰러졌다.
“오프레서 상급대장은 전사했다. 이 이상의 싸움은 무용. 투항해라!”
오프레서의 부하들은 그 자리에서 항복했다.
“내게 어울리는 건 내가 살아있는 동안뿐이다. 내가 죽으면 투항해라. 쓸데없이 죽지 마라.”
오프레서가 생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오프레서는 죽을 장소를 구하고 있었다. 난 그 소원을 이뤄준 걸까. “패자를 모욕하지 마라. 용사로서 대해라.” 오프레서의 말이 들린다.
이뤘다고 믿도록 하자. 나도 언젠가 죽을 장소를 구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건 30년은 나중의 일이될 것 같다.
장갑척탄병 제 21사단은 렌텐베르크 요새 제 6통로를 확보했다.
...
제국력 487년 12월 24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렌텐베르크 요새 공략은 성공했다. 뤼네부르크가 제 6통로를 확보하고, 핵융합로를 제압하여 적은 이 이상 저항은 무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싱겁게 투항했다. 후진이 없는 거다. 처음부터 전의는 낮았을지도 모른다.
뤼네부르크는 영웅이다. 모두가 오프레서를 쓰러뜨리는 그를 칭찬하고 있다. 하긴 본인은 꼭 기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지만. 어딘가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오프레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타인은 모를 뭔가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괴로운 일이겠지. 오프레서가 죽은 지금, 이제부턴 뤼네부르크 혼자서 짊어지게 된다.
뤼네부르크가 내게 “걱정을 끼쳤습니다.”라고 사과했다. 난 잠자코 단지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날 보고 뤼네부르크가 쓴웃음 지었다. 어쩐지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것 같아서 재미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뤼네부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남작부인이 뤼네부르크에게 말을 걸었다. 일기토 도중, 내가 뤼네부르크를 걱정해서 큰일이었다는 둥, 분노 때문에 손을 쓸 수 없었다는 둥. 쓸데없는 말을.
남작부인의 이야기에 뤼네부르크는 곤란해하며,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닫았다. 주변은 모두 웃음을 참고 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만 하는 녀석들이다. 난 지쳤다고 말하며 개인실에서 쉬도록 했다. 내가 함교를 나가자 모두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정말, 쓸데없는 짓만 하는 녀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