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212 화. 결전, 가이에스부르크(2)
제국력 488년 3월 3일 15:00. 브라운슈바이크 함대 기함 베를린.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적과의 거리, 100광초.”
“적, 옐로존에 돌입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떨리는 목소리에 함교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실전은 오랜만이다. 긴장이 몸을 감싼다. 자신의 심장이 맥동하는 것이 확실하게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정도로 자신은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함교는 점점 더 조용해진다.
클롭슈톡 후작의 반란을 진압한 일도 있지만, 저건 전투라고 할 수 없다. 곁에 있는 안스바하 준장도 다소 긴장을 한 듯이 보인다. 그도 이만한 회전은 처음일 것이다. 긴장하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지휘관석에 앉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아까 전부터 지긋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전술 컴퓨터의 화면을 본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너 준장의 말이 신경쓰입니까?”
내 질문에 공작은 잠자코 끄덕였다.
“신경 쓰이는군. 발렌슈타인은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페르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라이프스의 말대로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아무래도 불안하다.”
출격 직후, 페르너가 적의 진용에 대해서 알려왔다. 그리고 그의 생각도. 그의 말대로 적의 진용은 부자연스럽다. 의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냐고 한다면 페르너 자신조차 단언하지 못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말대로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알겠지만, 적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페르너들에게 맡기지요. 그들 쪽이 후방에 있기에 대국적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적입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지휘에 집중해주십시오. 잠시 동안은 방어하는 것만으로 벅찰 테지요.”
“카르나프 남작,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 괜찮으리라 생각하나?”
공작이 무거운 어조로 질문했다. 나를 보는 공작의 표정에는 불안이 있다. 그들의 전면에 위치하는 건 켐프, 발렌슈타인, 비텐펠트. 버틸 수 있을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헬더 자작은 이미 실전을 경험했습니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선 충분히 움직여줬다고 합니다. 전장에서 뭐가 필요한지 이해했겠죠. 문제는…….”
“카르나프 남작, 하일만 자작이군.”
“예. 그들은 실전의 엄함을 모릅니다. 공작과 헬더 자작, 그리고 클라이스트 대장이 지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스바하 준장의 대답에 공작은 떫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하긴 이런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그걸 염두에 두고서 이 포진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지원이라고 해도 이쪽도 정면의 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상태에서 켐프, 발렌슈타인, 비텐펠트를 막을 수 있을까? 혼전은 피해야만 한다. 엄한 상황으로 몰리게 되겠지.
적이 점점 다가온다. 그와 함께 함교의 긴장감도 높아진다. 싸움이 시작되면 많은 병사들이 죽게 된다. 하지만 이 긴장감을 계속해서 견디는 것과 싸움에 몰두하는 것 중 병사들에게 있어서 어느 쪽이 편할까?
“적군, 옐로존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이제 곧 시작한다. 아마 포수의 손가락은 이미 발사 버튼 위에 올라가 그들은 숨을 쉬는 것조 잊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
“적, 사정거리에 들어왔습니다!”
“쏴라!”
비명과도 같은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공작의 굵고 낮은 소리가 응했다. 그리고 기세 좋게 오른손이 내려간다!
빛의 다발이 수백만 개, 귀족연합군에서 적을 향해 뿌려졌다. 동시에 적에게도 마찬가지로 빛의 다발이 귀족연합군을 덮친다. 결전이 시작됐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7:0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적은 역시 우익과 좌익으로 지휘권을 나누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우익과 좌익의 기세가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예비가 움직였습니다…….”
전술 컴퓨터의 화면을 보면서 브러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이 말하고 있다. 전투가 시작되고 1시간 반이 지났다. 역시 적은 우익의 공세가 강하다.
그리고 예비가 움직였다. 당초 중앙에 있던 4개 함대가 2개 함대씩 제각기 에리히,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에게 나뉘었다고 봐야겠지만, 너무나도 빤히 보이는 행동이다. 함정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전황은 좋지 않다. 켐프,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공세에 평판이 있는 사내들이 그 평판에 부끄럽지 않은 공격을 가하고 있다. 아군은 방어 일색으로 순식간에 밀려서 후퇴하고 있다.
적의 우익이 누르고, 그에 의해 아군의 좌익은 별 수 없이 후퇴. 그리고 아군의 우익은 적의 우익, 혹은 예비에게 측면을 찔릴 위험이 있어 좌익이 후퇴하는 것에 맞춰 후퇴, 그리고 적의 좌익이 전진한다.
전투를 시작하고 나서의 전투상황이다. 혼전상황이 되지 않았다는 것, 궤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다행이지만, 그 외에 좋은 요소가 없다. 덕분에 사령실의 공기는 싫을 정도로 무겁다.
두 사람의 소녀도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울고 있지 않는 게 다행이다. 여기서 울기까지 하면 사기가 뭉텅 잘려나가겠지.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위험해서 할 수 없다. 어디의 바보가 두 사람을 유괴해서 이용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거다. 눈앞에 둘 필요가 있다.
“페르너 준장.”
브러울러 대령의 목소리에 시선을 향하자 망설이면서 질문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분이십니까?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만.”
화면에는 격렬한 기세로 공격하는 에리히의 함대가 보이고 있다. 그 기세는 켐프, 비텐펠트, 파렌하이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그 기세에 끌려가듯 뮐러, 아이제나흐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다.
“외견대로의 성격이 아닙니다. 오히려 꽤나 격렬한 부분이 있는 사내입니다. 평소엔 신중하지만 여차하면 어떤 내기라도 크게 걸어옵니다. 아니, 본인은 내기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보고 나오는 거겠지만, 적으로 돌리면 얄미운 상대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혼전을 노리고 있는 걸까요? 혹은 좌익의 격멸?”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좌익의 공략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미끼일 가능성도 버릴 수 없지요. 진짜 목적은 우익일지도 모릅니다…….”
“……우익입니까. 생각할 수 있는 일이군요. 확실히 적으로 돌리면 얄미운 상대입니다.”
브러울러 대령이 얼굴을 찡그렸다.
스스로 말하고 눈치 챘다. 화려하게 눈을 끌고 있는 적의 우익은 미끼일지도 모른다. 진짜 노리는 건 좌익을 이용한 공격이다. 지휘권을 나눈 건 그게 이유겠지. 이쪽이 에리히의 움직임에 휘둘리다가 틈을 보이면 메르카츠가 단숨에 공격한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의를 풀지 마라!
전술 컴퓨터의 화면에 또 아군의 좌익이 밀리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감리히 중령이 망설이면서
“예비를 내보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제안했다.
예비인가. 아군의 예비는 폴겐 백작의 1개 함대, 1만 3천 척. 발데크 남작의 절반 함대, 7천 척.합쳐서 2만 척이 있을 뿐이다. 적에게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적다. 그걸 지금 쓴다?
“지금 예비를 쓰면 적이 예비를 쓸 때 대응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브러울러 대령. 이대로라면 아군은 후퇴할 뿐입니다.”
“후퇴는 당초 예정했던 것이다. 적을 끌어들여 기회를 봐서 가이에스하켄으로 일격을 가한다. 그렇지?”
말꼬리를 잡는 감리히 중령을 브러울러 대령이 보듬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적은 기세를 타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혼전, 혹은 돌파되어선 가이에스하켄을 쓸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아군까지 합쳐서 적을 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
감리히 중령의 말에 브러울러 대령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상황은 좋지 않다. 아군은 계속 밀리고 있다.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어느 정도 상정한 일이다.
문제는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을 때, 적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을지 없을지다. 예비를 써서 다소 여유를 가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령의 기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혹시 적, 아군을 함께 쐈을 경우, 그 때부터 귀족연합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 틀림없다. 모두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다. 적을 끌어들이기 위한 소모품으로 쓰이고 있다고 인정할 수 없겠지. 에리히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공격을 걸고 있을 것이다.
“경이 말하고 싶은 건 알겠다. 하지만 예비 투입을 판단하는 건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권한이다. 우리들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일이 아니야. 게다가 아직 돌파된 것도 혼전이 된 것도 아니야.”
브러울러 대령이 감리히 중령을 달랬지만, 감리히 중령은 인정하지 않았다.
“총사령관에게 의견을 진언해보면 어떻습니까?”
“그건 그만두는 편이 좋겠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총사령관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어.”
브러울러 대령이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동감이다. 후방에 있는 우리들이 총사령관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은 해선 안된다.
“브러울러 대령의 말대로다. 중령.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을 믿도록 하지. 우리들이 총사령관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을 취하면, 전선의 지휘관들 중에도 같은 행동을 취하는 자가 나올 수밖에 없어.”
“소관은 총사령관을 가볍게 보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도 있는 거다. 우리들은 총사령관의 입장을 약하게 하는 일을 해선 안돼.”
감리히 중령은 마지못했지만, 내 말에 끄덕였다.
“대령의 말대로 아직 돌파를 당한 것도, 혼전이 된 것도 아니야. 조금 침착하지. 중령, 적의 우익에 휘둘리지 마라. 좌익이 진짜라는 가능성도 있는 거다.”
아군의 좌익은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조금씩 가이에스하켄 사정거리에 다가오고 있다. 예정대로다. 휘둘리지 마라. 침착하는 거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8: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꽤나 끈질기군요.”
감탄하는 듯이 뤼네부르크가 말했다. 난 잠자코 끄덕였다. 정말 그렇다. 적의 좌익이 끈질기다. 뤼네부르크의 발언에 응하는 듯이 발트하임이나 슈마허도 빈번하게 적의 끈질김에 감탄(?), 혹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면 솔직하게 감탄할 수 있을 테지만, 싸우고 있는 본인으로서 잠자코 코코아를 마시면서 끄덕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할지…….
그라이프스의 지휘도 좋지만,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싸웠던 헬더, 클라이스트가 잘 싸우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그다지 기쁜 일이 아니다. 귀족연합군은 싸우면 싸울수록 끈질겨지고 있다. 마치 이쪽이 녀석들을 단련해주고 있는 듯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적이 끈질겨지는 건 다음이 없다는 공포심 때문도 있겠지만, 이길 수 있다는 희망도 있기 때문이겠지. 절망만으론 여기까지 정연하게 싸울 수 없다. 어딘가에서 자멸하게 된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주포를 이용하여 이쪽을 격파하려는 거겠지. 주포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가기까지 돌파하도록 만들지 않겠다. 혼전으로 만들지 않겠다. 적이 노리는 건 그런 것일 거다. 알고는 있지만, 역시 성가시다.
화면을 보면 아군이 적을 밀어붙이고 있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우리 함대도 꽤 격렬하게 적을 공격하고 있다. 원래 분함대사령관 중에 투르나이젠이나 크납슈타인, 그릴파르처 등 유능한 지휘관들이 모여있는 거다. 이 정도는 해주겠지.
그들은 원작에서 평가되면서도 어딘가 색이 바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원래 실력은 있다. 젊은 호프들인 거다. 지금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이상한 야심을 가지지 않고 무훈을 쌓아가면 다음 세대를 짊어질 사람들이 되겠지.
투르나이젠, 크납슈타인, 그릴파르처, 알고 있나? 키포이저 성역 회전 전에 내가 말한 말을. 영웅 따위 되려고 하지 마라. 되려고 하는 순간 자신은 자신이 아니게 된다.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신을 잃은 녀석에게 주변이 보일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자신도 주변도 보이지 않는 녀석이 된다. 그런 녀석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파멸 뿐이다. 너희들은 원작에선 파멸했다. 이 세계에선 파멸하지 말라고…….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9: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클라우스 발트하임.
전황은 결코 좋지 않다. 아군은 적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돌파한 것도 아니고, 혼전 상태로 끌고 들어가 가이에스하켄을 봉인한 것도 아니다. 적은 점점 후퇴하며 이쪽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안으로 끌어들이려하고 있다.
끈질기다. 실로 끈질기다. 우리들은 4시간 가까이 싸우고 있다. 적은 후퇴는 하고 있지만 혼란에 빠지진 않았다. 귀족연합군이 여기까지 정연하게 싸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적의 분전에 감탄의 소리를 지르는 중,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침묵을 유지한 채 전황을 보고 있다. 때때로 코코아를 마시지만 표정은 변함없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참모장. 앞으로 얼마나 지나면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로 들어갑니까?”
사령장관이 시선을 전술 컴퓨터의 화면으로 향한 채 질문했다.
“이대로 가면,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약 1시간 후, 아군이 들어가는 건 더욱 1시간 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대답에 슈마허 준장이 끄덕였다. 괜찮다. 틀리지 않았어.
“앞으로 2시간입니까.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군요.”
내 대답에 사령장관의 은근히 끄덕이고 웃음을 보였다. ‘진짜 싸움’, 사령장관의 그 말에 함교의 공기가 긴장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와중, 사령장관만이 온화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