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본편(연중)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214 화. 결전, 가이에스부르크(4)

추리닝백작 2015. 2. 12. 14:34


제국력 488년 3월 3일 21: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이제 곧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갑니다.”

  발레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주의를 환기했다.

  “오퍼레이터에게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그리고 적 함대의 움직임에 주의하도록 전해주세요. 어떤 사소한 거라도 보고하도록.”

  “예.”


  발레리가 오퍼레이터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걸 들으면서 전술 컴퓨터 화면을 봤다. 화면에는 아군이 적을 밀어붙이는 상황을 표시하고 있다. 비텐펠트 켐프의 돌진은 과연 대단하다.


  그라이프스가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면, 카르나프 남작, 하일만 자작은 이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걸 알았겠지. 그럼 가이에스하켄을 쏘든가, 혹은 예비를 내보내 이쪽의 공세를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적의 예비는 움직이지 않는다. 양군 모두 예비를 쓰지 않고, 그라이프스가 준비한 예비 병력은 이쪽에 비해 적다. 그걸 생각하면 예비는 쓰기 힘들겠지. 게다가 여기서 예비를 써도 열세를 조금 더 견딜 뿐이다. 대세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라이프스가 비장의 패로서 예비를 쓰려 한다면 전국을 바꿀 결정적인 장면에서 쓰려 할 것이다. 역시 여기선 가이에스하켄을 이용하려 하겠지. 괜찮다. 여기까진 다소 차질이 있었지만 나의, 아니 작전회의의 상정 대로다. 그리고 그라이프스에게 있어서도 상정 대로겠지.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 후의 전개를 그라이프스는 어떻게 읽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들은 그라이프스의 생각을 어디까지 읽었는가. 거기가 승패를 나눌 것이다.


  “적 함대, 회피행동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함대, 급속대피! 정면의 적과 같은 방향으로 전속으로 대피하라! 적은 가이에스하켄을 사용한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와 나의 명령에 순식간에 함교의 공기가 긴박해졌다. 오퍼레이터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대피명령을 내기 시작한다. 이 함교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소란이다. 정면의 헬더 자작이 천정 방면으로 대피하고 있다. 내 함대도 같은 방향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비추는 영상에 우익부대가 회피행동을 취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모니터에 표시에는 아직 거기까지 비추고 있지 않다. 모니터에 반영하기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가 주포를 발사하려하고 있습니다!”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빨리 회피하는 거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발트하임 참모장이 포효하는 듯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당황하는 것 같은 발트하임의 표정이 웃겼다. 내가 알고있는 한 총기함 로키가 이렇게까지 긴박한 소란에 싸인 적은 없다. 무심코 얼굴이 풀렸지만, 발레리가 엄한 표정으로, 남작부인이 기가 막힌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서둘러 표정을 고쳤다.


  실제로 웃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화면에 보이는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어느 한 점이 급속히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곧 가이에스하켄이 발사되겠지. 겨드랑이 아래가 끈적하게 기분 나쁜 땀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함선이 사정거리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겠지. 단지 적과 마찬가지 방향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문제는 적이 아군을 죽여서까지 이쪽에게 치명상을 입히려할지 아닐지다. 작전회의에서도 그게 문제가 됐다.


  적에는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가 있다. 그 두 사람이 아군사살 때문에 한직으로 쫓겨났다. 아마도 아군사살은 업을 것이다. 하지만 한다면 헬더 자작과 날 노리겠지. 나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잘 모르겠다. 문제는 그라이프스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그게 일단 첫 번째 승부처가 된다.


  “가이에스하켄, 옵니다!”

  오퍼레이터가 비명을 지른다. 그것과 동시에 스크린에 거대하고 새하얀 빛이 작렬한다. 빛의 다발이 우주를 뚫고 지나갔다. 화면의 입광량이 조율되어 있기에 볼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실명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에너지량이다. 확실히 토르 해머에 필적한다. 직격하면 한 순간에 증발했겠지. 하지만 난 살아있다. 첫 번째 승부에선 이겼다는 거다.


  “참모장. 피해 상황을 확인하세요. 그리고 우익부대 전부에 후퇴명령을.”

  “예.”

  발트하이미 지시를 내려고 하기 전에 오퍼레이터가 소리를 질렀다.


  “전방의 적, 공격을 걸어옵니다!”

  발트하임이 날 봤다. 그 시선을 받고 화면을,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봤다. 확실히 스크린에선 헬더 자작이 공격을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모니터는 적이 총 반격을 개시하고 있다는 걸 보이고 있다.


  “각하…….”

  “참모장. 방금 전의 명령을 실행하세요. 그리고 후퇴는 가능한 한 무참하게 하도록.”

  “예.”


  난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리는 걸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화면을 봤다. 적의 예비가 움직이고 있다. 목표는 어디지? 나인가, 아니면 메르카츠인가……. 날 향해서 오면 성가시겠지만. 어디, 어느 쪽이냐?


  적의 예비가 케슬러 방면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적은 이쪽의 좌익을 치려는 것 같다. 후방으로 나오려는 건가. 혹은 케슬러, 클레멘츠를 치려는 건가. 뭐, 그건 메르카츠의 책임범위다. 난 뿔뿔이 흩어진 우익을 수습해야…….


  그라이프스. 알고 있나? 서로의 함대 절반이 뿔뿔이 흩어졌다. 넌 남은 절반으로 승부를 걸려 하고 있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진 네 좌익은 누가 수습하지? 전면의 함대를 공격하며 좌익을 수습한다. 한다고 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 보나? 나라면 망설일 부분이겠지.


  내겐 메르카츠가 있다. 그리고 내 부대는 훈련된 정규군이다. 그러니 난 우익의 재편과 반격에 전념할 수 있다. 하지만 네겐 좌익의 재편성과 공격을 위임할 인물이 없다. 그리고 네가 이끄는 군대는 통솔이 먹히지 않는 귀족연합군이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1:10. 메르카츠 함대 기함 네르트링겐.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가이에스하켄이 우주를 찢었다. 무시무시한 에너지파였지만, 아무래도 아군의 피해는 적은 것 같다. 함교 크루도 모두 화면에 눈을 뺏겼다.


  “슈나이더 소령.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안부를 확인해주게.”

  “예.”

  내 말에 정신을 차린 슈나이더 소령이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괜찮다. 사령장관은 무사하다. 믿는 거다. 그런 생각에 답하는 듯이 오퍼레이터가 반응했다.

  “총기함 로키를 확인했습니다. 총기함에게서 우익부대에 대해 후퇴 명령이 나왔습니다.”

  “음.”


  예정대로다. 안심하는 한 편 긴장이 내 마음을 묶는다. 지금부터 아군 좌익은 내 관리하에 들어온다. 8개 함대, 약 10만척이 내 지휘로 움직이는 거다. 별 수 없는 긴장감이 몸을 감싼다.


  “각하. 적이 공격을 걸어옵니다.”

  슈나이더 소령이 긴장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전면의 적이 공격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그라이프스 대장은 전면공세에 나선 것 같다.


  아군의 후퇴명령을 새삼 내린다. 그 명령을 전하기도 전에 오퍼레이터가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적, 예비 부대를 투입했습니다!”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에 적의 예비부대, 2개 함대가 이쪽을 향해 오는 것이 보였다. 목표는 케슬러 제독의 측면, 혹은 후방인가. 성가신 일이 됐다. 오퍼레이터에게 케슬러 제독 사이의 통신을 열라고 명령했다.


  “케슬러 제독. 아무래도 예비가 그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그런 듯합니다. 조금 일이 성가셔졌군요.”

  화면에 나온 케슬러 제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예비를 그쪽으로 향하게 하려 하네만.”

  케슬러 쪽에서 예비를 보내달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 이쪽이 먼저 말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케슬러 제독은 조금 생각하고 거절했다.


  “……아뇨. 예비 투입은 멈추십시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쪽에도 생각이 있습니다.”


  케슬러 제독이 씨익 웃으며 답하고, 그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적이 배후를 찔러 올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측면에서 포위를 선택할 거라고. 몇 번이나 그의 의견에 끄덕이며 새삼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신뢰가 두터운 이유를 이해했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2:0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적이 가이에스하켄에 입은 피해는 거의 없었다. 적은 이쪽의 함대에 맞춰 회피행동을 취한 것 같다. 아군사살을 피했기 때문에 손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가이에스하켄을 쓴 덕분에 아군의 좌익은 괴멸의 위기에서 해방됐다.


  지금 아군의 좌익은 후퇴를 하는 적을 쫓아 공격을 걸고 있다. 적은 돌파, 혼전으로 몰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함대의 연계를 취하지 못하고 이쪽의 공격에 고전하며 후퇴하고 있다.


  차라리 에리히를 헬더 자작과 함께 소멸해버리면 좋았을까……. 그렇게 하면 적의 혼란은 지금과 비교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우익이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가이에스하켄이 발사되기 전에 후퇴를 시작했다. 에리히가 회피행동을 취했기에 공세를 취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쪽은 전군을 가지고 반격을 개시하고, 예비를 써서 케슬러 함대의 측면을 찌르고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손해를 주지 못하고 있다.


  케슬러 함대는 후퇴하며 클레멘츠 함대와 협력하여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폴겐 백작, 발데크 남작을 뿌리치고 있다. 역시 적의 철퇴가 빨랐다. 그런 만큼 적은 여력을 가지고 후퇴하고 있다.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군요. 적의 측면을 무너뜨리질 못합니다.”

  브러울러 대령이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대령의 표정이 쓰디쓰다.

  “…….”

  “측면이 아니라 배후로 돌아가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어째서 측면을 찔렀는가. 아마도 측면을 무너뜨려 절반을 포위하는 걸로 승리를 확정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러는 편이 적에게 큰 손해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다. 그리고 예비를 후방으로 보내면 그 시점에서 적이 후퇴한다. 전과가 충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귀족연합은 오합지졸이다. 이 한 번의 전투에서 승패를 정한다. 그 생각이 총사령관의 선택지를 묶었던 걸지도 모른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간 포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군은 우세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침묵하고 있던 우리들을 격려하는 듯이 감리히 중령이 말을 했지만, 브러울러 대령은 끄덕이지 않았다.


  “어떨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조금씩이지만 전열을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우측으로?”


  브러울러 대령의 말에 나와 감리히 중령은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봤다. 모니터에는 피아의 상황이 나와 있다. 확실히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함대를 우측으로 이동하여, 케슬러 함대는 후퇴하면서 폴겐 백작, 발데크 남작과 정면으로 가려하고 있다. 이래선 포위는커녕 후방에도 돌아갈 수 없다.


  잘 되고 있지 않다. 맘껏 공격할 수 없다. 지금은 유리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유리가 지속되는 건 아니다. 어디선가 결정적인 전과를 올려야 하지만, 그 계기가 보이질 않는다. 나와 감리히 중령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비를 후방으로 돌려도 잘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승기는 오히려 좌익에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좌익?”

  앵무새처럼 되묻는 내게 브러울러 대령이 끄덕였다.


  “보시는 바대로 적은 가이에스하켄을 피하기 위해 대피행동을 취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적은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공격을 특기로 하는 지휘관이 모여 있습니다만, 그들은 모두 방어가 서툰 듯합니다.”

  “과연.”


  확실히 화면에 보이는 적들은 고생하면서 도망치고 있다. 덧붙여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기에 서로 원호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집결하려 하고 있긴 하지만, 공세에 나설 때의 기세는 어디에도 없다.


  “예비를 좌익에 보내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상외로 큰 게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예상외로 큰 것?”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입니다. 아군의 철퇴를 원호하기 위해서겠죠. 최후미를 맡으려는 듯합니다.”


  서둘러 화면을 다시 봤다. 거기에는 아군의 퇴각을 원호하며 적의 추격을 가로막는 함대가 있었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3: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정면의 적, 공격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정면의 적, 헬더 자작인가……. 끈질긴 놈이다. 넌 내 스토커냐! 아니, 끈질기게 쫓아오도록 만들고 있는 건 이쪽이다. 불만을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긋지긋하다.


  “우측에서 하일만 자작의 함대도 공격합니다!”

  하일만 자작. 이 녀석도 아까부터 끈질기다. 어지간히 날 죽이고 싶은 것 같다. 리메스 남작가의 일이 있으니까. 저 건은 카스트로프 공작이 한 짓이지만, 녀석들은 그걸 모른다. 나도 딱히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녀석들, 굉장히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무작정 공격을 걸어온다.


  “비텐펠트 제독에게서 입전! 명령을!”

  이 녀석이든 저 녀석이든 시끄럽다. 또 한숨이 나왔다. ‘명령을’인가. 자기가 철퇴행동을 원호하고 싶다고 하는 거지만, 각하다. 네가 꼴불견을 보이며 도망치고, 내가 후위를 맡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이 쫓아오지 않는다. 뭐, 마음은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사령장관에게 후위를 맡기고 도망치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겠지.


  “비텐펠트 제독에게 답신. 이쪽에게 신경 쓰지 말고 철퇴하라.”

  “예.”

  “전 함선에 명령. 정면의 함대 중앙에 주포 3연 제사. 쏴라!”


  내 명령과 함께 함대에서 주포가 3번, 헬더 자작의 함대로 쏴졌다. 한 순간 적이 혼란에 빠진다. 있는 힘껏 찔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서 하일만 자작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계속해서 우측의 함대 중앙에 주포 3연 제사. 쏴라!”

  주포를 발사하고 적이 혼란에 빠지는 게 보였다. 이걸로 시간은 벌 수 있겠지. 녀석들, 내 목을 따고 싶어서 정신이 없는 것 같다. 협력하는 걸 잊고 있다. 이거라면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메르카츠는 좌익을 잘 수습하고 있는 것 같다. 적의 예비는 케슬러 함대의 측면에 붙지 못했다. 그리고 메르카츠는 아직 예비를 투입하지 않았다. 그라이프스는 이제 손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좌익은 이겼다. 나머진 우익이다.


  아군의 우익부대는 조금씩 집결하고 있다. 켐프 함대는 아이제나흐 함대와 행동을 함께하며 후퇴하고 있다. 파렌하이트는 뮐러와 함께다. 적을 유인하며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앞으로 1시간 정도면 집결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