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본편(연중)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218 화. 내란종결후(2)

추리닝백작 2015. 2. 12. 14:35


제국력 488년 5월 30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발렌슈타인.


  리히텐라데 후작과 헤어진 후에 장미정원으로 향했다. 후작의 말에 의하면 프리드리히 4세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프리드리히 4세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장미정원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웠지만, 그로부터 벌써 반년인가. 세월이 빠르다.


  프리드리히 4세는 장미정원에서 장미를 손보고 있다. 노란색 꽃이 피어 있다. 무심코 미터마이어의 프로포즈를 생각했다. 이거와 같은 꽃일까. 뭐, 여기에 있는 건 황제 폐하가 키우는 장미다. 흔해빠진 장미와는 다를지도 모른다. 아니, 꽃이란 건 뭐든 마찬가진가……. 잘 모르겠다.


  근처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폐하. 발렌슈타인입니다.”

  “발렌슈타인인가. 반란 진압. 수고했네.”

  “예.”


  “꽤나 만나지 못했네만…….”

  “마지막에 배알하고 나서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런가. 그로부터 반년인가…….”


  그 습격사건에서 반년이다. 프리드리히 4세의 목소리에는 그리운 기색이 있다. 확실히 그 당시엔 살아남는 것에 필사적이었지만, 이제와선 꿈같은 느낌이다. 그리움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다.

  “소신이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건 폐하의 은덕입니다. 마음 깊이 감사를 표합니다.”

  “신경 쓰지 말게. 그대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온화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4세는 내게 일어서라고 했다. 비공식 장소인 거다.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황제의 옆얼굴이 보인다. 황제는 정면에 피어있는 황색 장미꽃을 보고 있다.


  “발렌슈타인. 궁중이 쓸쓸해지지 않았나?”

  “예. 리히텐라데 후작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번화한 건 장미정원 뿐이구먼. 이 알키미스트(Alchymist)가 피고 나서 장미정원이 갑자기 번화해졌네.”


  프리드리히 4세가 은근하게 쓴웃음 짓고 있다. 알키미스트? 장미의 꽃이름인가?

  “옛날엔 이 꽃이 싫었지만, 지금만은 감사하구먼.”

  “……폐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에 대한 일. 유감이옵니다.”

  내 말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 때문이 아닐세. 칙령을 내린 건 짐이야. 이렇게 되리라 알면서도 내린 걸세…….”

  “로엔그람 백작,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 대한 일도 그렇습니다. 뭐라고 해야 좋을지. 폐하께 가까운 분들을 소신이 모두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문벌귀족의 생존자들은 내 이름을 악인열전, 간신열전에 기록해야 한다고 소란이겠지. 유혈제 아우구스트 2세에 이은 치부(Schamberg)인가. 어느 쪽이든 멀쩡한 건 아니다.


  “그것도 그대 때문이 아닐세. 저것의 야심을 알면서도 여기까지 세운 건 짐이야. 이렇게까지 세웠음에도 저걸 버리고 자넬 택했다. 그때부터 라인하르트가, 안네로제가 망할 것은 알고 있었다. 짐이 저것들을 망하게 한 것이야.”


  프리드리히 4세가 쓸쓸하다는 눈으로 장미를 보고 있다.

  “구하는 것도 할 수 없었지.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저것을 모욕하는 일이 되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난 잠자코 끄덕였다. 패자 라인하르트에게 있어서 죽는 것보다도 황제의 명령에 의해 죽음에서 살아나는 쪽이 굴욕이겠지. 그들은 지금 조사를 받고 있다. 재판은 언제쯤이 될지…….


  “그대는 뒤돌아보지 말게. 뒤돌아봐선 안 되네.”

  “폐하…….”

  프리드리히 4세가 날 봤다. 쓸쓸한 표정. 그리고 상냥한 눈.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황제는 슬퍼하고 있다. 그래도 날 격려하고 등을 밀어주고 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렸다.


  “고개를 들어라. 발렌슈타인. 그대가 잘라 버린 것은 원래라면 짐이 잘라 버려야 했던 것들이야. 그대는 짐을 대신해 그걸 잘라버렸을 뿐일세. 그대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그대는 단지 앞으로 나아가라.”

  “하지만, 그래서야.”


  “괜찮네. 새로운 제국을 만든다. 그대는 그 일만을 생각해라. 그거야말로 짐의 소망……. 잊지 말게.”

  “……예.”

  잠시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잠자코 장미를 바라봤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피어오른 노란색 장미를…….


  프리드리히 4세가 입을 연 것은 10분 정도 지나고 나서였다.

  “그대, 결혼은 하지 않는가?”

  “예?”

  느닷없이 무슨 말을 하는가. 이 노인……. 프리드리히 4세의 얼굴에는 아까 전까지의 쓸쓸한 표정은 없다. 어딘지 재밌어하는 색이 있다.


  “군 중앙병원이 그대를 걱정하더군.”

  “걱정 말입니까?”

  내 말에 프리드리히 4세는 기뻐하며 끄덕였다. 잘 모르겠군. 결혼과 병원? 어떻게 이어지는 거냐?


  “그대의 건강관리는 만전이냐며.”

  “……건강관리.”

  “그대는 무리를 하니까 말이야. 곁에 그대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세.”

  부탁한다. 그렇게 기뻐하는 얼굴을 하지 마. 어딘가의 노인장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입니까.”

  “그렇지. 어차피 결혼은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


  난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겠지.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그런 날 보고 웃었다.

  “그대는 자신에 대한 일이 되면 꽤 둔하구먼. 지금 그대는 제국 제일의 실력자라네. 살아남은 귀족들이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 무슨 생각을 할지……, 알겠지?”


  과연, 내게 딸을 밀어붙여서라도 살아남으려는 건가.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군. 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겠지. 프리드리히 4세는 그런 나를 보고 다시 한 번 웃었다.

  “귀족이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영애를 바친다면, 오히려 소신이 아니라 폐하께 헌상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프리드리히 4세가 무겁게 끄덕였다.

  “그 말이 맞네. 조금 성가시지. 그대에게 한 명 넘겨주려 생각하네만.”

  “소신은 평민입니다. 자신이 귀족임에 콧대를 세우는 여성은 사양입니다.”

  프리드리히 4세가 또 웃었다. 부탁이니까 내게 여자를 밀어붙이지 마라. 혼자서 어떻게든 해줘. 그렇다 해도 귀족이라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좋아하는 아가씨라도 있는가?”

  “……딱히 그런 건…….”

  “그럼 짐이 골라도 문제는 없겠지. 귀족이라는 것에 콧대를 세우지 않는 아가씨라면 되지 않는가?”


  아니, 그, 내게도 연애할 권리라는 게 있겠지? 좋아하는 건 아니더라도 신경 쓰이는 여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아가씨와 결혼해라’는 조금……. 애초에 그건 귀족의 세계겠지? 난 평민이라고.


  “불만인 것 같군. 연애결혼이라도 바라는 겐가? 그대는 평민일지도 모르지만 우주함대 사령장관, 원수일세. 그러한 일, 가능하리라 생각하나?”

  “…….”


  “앞으로 그대에게 모두가 딸을 바치려 들겠지. 누구를 고를지 성가신 일이 될게야. 하지만 짐이 아가씨를 추천하면 모두 포기하겠지. 그대를 위해서라도 좋은 이야기일세.”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 노인장. 꽤나 교섭이 능숙하지 않은가. 어째서 황족 따위로 태어났어? 페잔에 태어났으면 재단 하나라도 만들었겠지. 프리드리히 4세가 페잔의 자치령주였다면 꽤나 만만찮았을 것이다.


  “뮈켄베르거의 아가씨는 어떤가? 그대와 친해 보였네만.”

  “……그건.”

  “짐도 알고 있네만 좋은 아가씨일세.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네만.”


  노인. 히쭉거리는 건 제발 그만두라고. 어째서 늙은이들이란 건 젊은 녀석들을 놀리며 즐기는 걸까. 확실히 나쁘진 않아. 유스티나는. 하지만 말이지. 아버지가 무서운 데다가 그쪽은 군인의 명가라고. 조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뮈켄베르거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군사의 후계자로겠지. 사위라면 어떨까는 솔직히 의문이다. 애초에 밀어붙이는 건 성미에 맞지도 않다.


  “하지만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뮈켄베르거도 그 아가씨도 꽤나 기뻐했네. 특히 아가씨가 말이야.”

  “……허어.”

  더럽다. 노인. 도망칠 구석은 전부 막아놓은 뒤냐. 내가 거부할 수 없도록 미리 다 준비했다.


  “발렌슈타인. 이 결혼을 거부하는 건 용서할 수 없네.”

  “…….”

  갑자기 프리드리히 4세가 엄한 표정을 보였다. 아까 전까지 어딘가 놀리는 것 같은 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귀족이 평민인 그대와의 결혼을 바라네. 그 의미를 그대도 알겠지?”

  “그건…….”

  귀족이란 건 무엇보다도 유전자를, 혈통을 중시한 루돌프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들이 평민과 피의 혼합을 바라다니 본래 있을 수 없다.


  그런 그들이 평민과의 결혼을 바란다. 다시 말해 유전자, 혈통의 부정이다. 루돌프를 탈피한다는 것 이외의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로 귀족과 평민의 벽을 없애기 위해선, 피의 교류는 피할 수 없네. 피하면 새로운 벽이, 차별이 생기네. 새로운 제국에는 그러한 벽은 불필요하다. 그렇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뮈켄베르거 가문은 백작가의 분가다. 그리고 대대로 군인의 명가로서 존재해온 가문이기도 하다. 그 뮈켄베르거 일가가 평민을 사위로 고른다……. 내 결혼은 당연히 동맹에도 화두가 되겠지. 그 부분도 고려한 이야기인가……. 그야말로 정략결혼이로군. 유스티나는 그 부분을 이해하고 있을까…….


  “짐은 이걸 계기로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기할 생각일세.”

  “!”

  내가 놀라서 프리드리히 4세를 보자 웃기다는 얼굴로 웃었다.


  “유전자나 피에 속박되지 않는다면 저건 필요 없으니까 말이야. 제국이 변했다는 가장 큰 증거가 되겠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그대는 뮈켄베르거의 아가씨와 결혼해야만 하네. 알겠나?”

  “예.”


  이제부터 뮈켄베르거와 만날 테지만. 어떤 얼굴로 만나야 하는 거냐. 그 때의 일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 프리드리히 4세가 또 웃음을 올렸다. 오딘은 마계다. 무시무시한 노인들뿐이다.


...


제국력 488년 5월 31일. 오딘 제아들러(바다독수리). 알베르트 클레멘츠.


  “이렇게 둘이서 술을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군. 클레멘츠.”

  “아아. 전에 마신 게 내란이 일어나기 전이었으니까. 반년 전인가.”

  “음.”


  그땐 내란을 앞에 두고 모두 어딘지 모르게 바짝 긴장이 곤두서 있었다. 술을 마셔도 긴장을 푸는 일이 없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건 없다. 제아들러(바다독수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침착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제아들러(바다독수리)에 있는 사람도 변했다. 내란 전에는 문벌귀족 출신의 귀족과 하급귀족, 평민은 자리를 함께 하는 일이 없었다. 거기엔 엄연한 차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언제 출격하나?”

  “일주일 뒤다. 경은?”

  “이쪽도 일주일 뒤다.”


  일주일 뒤에 출격. 내란 종결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출격하는 건 국내의 치안유지를 위해서다. 문벌귀족이 멸망해서 새로운 혼란이 생겨나고 있다. 그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들 문벌귀족은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 지방의 안전보장도 맡고 있었다는 거지만, 그 귀족이 망했기 때문에 안전보장을 맡고 있던 존재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은 그 지방의 물류, 통상의 주요한 담당자였다. 그게 없어졌다. 각 성계의, 성계 간의 경제활동이 극단적으로 저하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부터 뭐가 일어나는가? 간단하다. 극단적인 물자 부족, 물가의 상승, 밀수, 비합법활동(해적활동)이다. 이걸 방치하면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문벌귀족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만다. 개혁이 좌절된다.


  군부는 이미 병참통괄부에 명령하여 각 성계에 운송선을 파견하고 있다. 잠시 동안 군부가 제국 내의 물류를 지탱해야만 하겠지. 그리고 우리들의 역할은 그 호위, 해적활동의 저지다.


  해적들 중에는 이번 내란에 참가했던 자들도 있다. 항복하지 않고, 망명도 하지 않고 해적이 됐다. 꽤 많은 장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기에 방심할 수 없다. 정규함대를 움직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전기간은 세 달, 또 한동안 메크링거와도 만날 수 없게 되겠지.


  “메크링거. 사령장관이 프로이라인 뮈켄베르거와 약혼했네만. 결혼은 언제가 되겠는가?”

  “포로교환이 끝나고 나서라고 들었네만.”

  “흠. 그럼 반년은 나중인가.”

  “그렇게 되겠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뮈켄베르거 원수의 딸과 약혼했다. 폐하의 중매, 뭐 명령이 있다고 하지만.

  “원수 각하도 이걸로 조금은 무리를 하지 않게 되실까.”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야. 각하는 그다지 몸이 건강하지 않으시니까.”


  메크링거의 말에 난 끄덕였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서 우리들을 지휘 통솔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 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메크링거도 그건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완벽한 인간은 없다…….


  사령장관의 결점은 두 가지 있다고 난 생각한다. 하나는 건강면에서 불안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제국 굴지의 중요인물이라는 인식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내란 진압에 있어서도 자신을 미끼로 한다는 등 무리한 행동이 많았다. 무모한 건 아니다. 뭐라고 해야하나. 자신의 목숨에 관해서 집착이 옅은 듯이 보이는 거다.


  “귀족과 평민의 결혼인가. 이제부터 늘어날까?”

  내 질문에 메크링거가 끄덕였다.

  “늘어나겠지. 문벌귀족 중 많은 이들이 없어진 거다. 결혼 상대를 고를 여유는 없어졌을 것이다.”

  “과연.”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가 루츠 제독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듯하더군.”

  메크링거의 말에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주변에서 시선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메크링거를 보고 한쪽 눈을 감는다. 그가 날 보고 조용히 웃었다.


  “들었는가? 클레멘츠.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폐기된다고 하더군.”

  “과연. 세상도 많이 변하겠군.”

  “변하겠지. 좋은 방향으로 말이야.”


  ‘누구나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국가’, ‘새로운 시대를 우리들의 손으로 열어젖힌다.’, 제 57회의실에서 사령장관이 한 말이다. 그 말이 실감을 가졌을 때, 굉장히 건배하고 싶어졌다. 출격은 일주일 뒤다. 출격하면 또 당분간은 만날 수 없게 된다.


  “메크링거. 건배하지.”

  “괜찮지만, 뭐에 대해 건배하나?”

  “그렇군. 새로운 제국을 위해, 라는 건 어떤가?”

  내 말에 메크링거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메크링거가 잔을 올렸다. 나도 잔을 올린다.

  “새로운 제국을 위해!”

  내 말에 메크링거가 뒤를 이었다.

  “새로운 제국을 위해!”

  한 순간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고 잔의 와인을 단숨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