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본편(연중)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219 화. 내란종결후(3)

추리닝백작 2015. 2. 12. 14:35


제국력 488년 6월 3일. 오딘 헌병본부. 귄터 키슬링.


  취조실에 있는 눈앞의 남자는 명백히 허세를 부리고 있다. 가슴을 피고 얼굴을 올리고 오만하게 눈을 부라리고 있으나, 때때로 시선이 떨어지고 침착하지 못하게 몸을 비튼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진 손도 그렇다.

  “취조는 언제 시작할 건가?”

  “…….”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상대는 명백히 불안한 표정을 보였다. 이런이런. 조금 더 씹는 맛이 있는 상대가 필요했는데……. 뭐 5분 이상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거다.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문이 열리고 아담한 체구의 남성이 들어왔다.

  “오랜만이군요. 라트부르흐 남작.”

  “바, 발렌슈타인…….”

  라트부르흐 남작이 놀라며 목소리를 올렸다.


  “늦다고. 에리히. 라트부르흐 남작이 경을 기다리다 지칠 뻔했다.”

  “미안하네. 귄터.”

  에리히는 경악하는 라트부르흐 남작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라트부르흐 남작은 경악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슨 용무냐. 발렌슈타인.”

  “포로를 어떻게 할지 정해졌습니다. 그걸 알려드리고자 왔습니다.”

  라트부르흐 남작의 얼굴이 긴장했다. 죽음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내란에 의해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혔다. 반역죄인 거다. 원래라면 사형, 혹은 사형이 아니더라도 농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내란의 규모가 크다. 평범한 처분은 취할 수 없다.


  포로에 관한 처분은 일부를 빼고 정해졌다. 부사관을 포함한 병사에 대해선 죄를 묻지 않을 것. 군에 복귀할지 아닐지는 본인의 의지에 따른다. 사관에 대해선 본인의 의지 확인을 행한다. 군에 복귀할지, 아니면 귀족에 대한 충성을 관철할지. 군에 복귀 하겠다 답한 사관에겐 처분 없음. 귀족에 대한 충성을 관철 하겠다 답한 사관은 페잔으로 추방하게 된다. 최종적으론 페잔에 머무를지 동맹에 망명할지를 고르게 되겠지.


  문제는 귀족, 그리고 군 내부에서 내란의 주요 멤버다. 라트부르흐 남작, 세츨러 자작, 라겔 대장, 노르덴 소장……. 그들은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가. 그게 겨우 정해졌다.


  “사형인가. 이 라트부르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짓말이군.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필사적으로 공포를 억누르고 있겠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누구라도 죽음은 무서운 일이다.


  “선택지는 두 가지 있습니다.”

  “두 가지?”

  “하나는 평민으로서 살아가는 겁니다. 작위, 영지, 재산을 모두 몰수합니다. 그 뒤에 어느 정도의 금전을 받고 제국 신민으로서 살아가는 겁니다. 거기부턴 남작의 능력 나름입니다. 재산을 만들지, 아니면 몰락할지.”


  “또 하나는, 또 하나는 죽음인가?”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평민으로서 살 것을 거부했을 경우엔 페잔으로 추방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금전은 드립니다. 그 경우 추방된 뒤에 어떻게 자칭하든지 자유입니다. 작위가 목숨보다 소중하다면 그 길을 추천합니다.”


  에리히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비꼬고 있는 걸 테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생각에 잠긴 라트부르흐 남작에겐 눈치 챌 여유가 없었겠지.

  “충고하겠습니다만, 제국은 우주를 통일합니다. 망명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볼 수 없어요.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 평민으로서 살아가라는 건가.”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라트부르흐 남작이 얼굴을 찡그렸다. 굴욕이겠지. 두 손을 묶이고 입술을 깨물고 있다.


  “내게 평민으로서 사는 것이,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나? 발렌슈타인.”

  남작이 쥐어짜는 듯이 말했다.


  “긍지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어렵겠죠. 눈 깜짝한 사이에 몰락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째서 죽이지 않는가. 날 모욕하는 것이 목적인가. 오만방자함에도 정도가 있다! 발렌슈타인!”


  방 안의 모두가 침묵했다. 남작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고 있다. 에리히는 날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남작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나…….

  “귀족으로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까?”

  “그렇다. 날 경멸하는가. 발렌슈타인. 하지만 난 다른 삶의 방식을 모른다. 라트부르흐 남작으로서밖에 살 수 없는 거다.”


  또 방 안의 모두가 침묵했다. 라트부르흐 남작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금까지 문벌귀족이 불쌍하다 생각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업자득이라고도.


  “죽여라. 라트부르흐 남작으로서 날 죽여달라.”

  “……유감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날 죽여주게! 발렌슈타인!”

  남작이 매달리는 듯이 외쳤다.


  “제국에게 협력한다면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하지요. 어떻습니까?”

  “협력이라고? 내게 뭘 하라는 거냐.”

  이제부터 에리히가 뭘 제안할지는 알고 있다. 솔직히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말리고 싶다. 아마도 에리히도 동감이겠지. 무표정하게 라트부르흐 남작을 보고 있다.


  “남작을 페잔으로 추방합니다. 다른 포로 중에서도 페잔으로 향하는 사람이 있겠죠. 저편엔 람즈베르크 백작, 샤이드 백작이 있습니다. 그 움직임을 살펴줬으면 합니다.”

  “…….”

  라트부르흐 남작은 아무 말 없이 에리히를 보고 있다.


  “해준다면 작위의 유지를 보장합니다. 영지도 말입니다. 단, 영지는 지금까지완 다른 영지가 될테고, 당연합니다만 세금도 내셔야 합니다. 정부의 방침에도 따라주셔야 합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자유는 없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이 멸망했기에 귀족들은 힘을 잃었다. 라트부르흐 남작이 지금까지처럼 힘을 휘두르려고 해도 혼자선 무리다. 그리고 세금을 내게 된다면 더욱 힘을 잃게 된다.


  “내게 스파이가 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동료들을 배신하라고.”

  라트부르흐 남작이 고통에 찬 소리를 냈다. 그런 남작을 보고 에리히가 한숨을 내쉬었다.


  “남작. 솔직하게 말하죠. 전 페잔에 모이고 있는 사람들을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작의 질문에 에리히는 한 순간만 눈을 피했다.


  “제가 두려워하고 있는 건 그들을 이용하려는 자들입니다. 제국에 적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제국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자들, 그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이용가치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접촉하고, 지원하고, 이용하려고 하겠죠…….”

  “……반란군인가.”


  “아드리안 루빈스키도 있지요. 그 외에도 접촉하려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걸 남작이 살폈으면 합니다.”

  “…….”

  라트부르흐 남작은 망설이고 있다. 작위와 배신, 그 갈래에서 망설이고 있다.


  “그들을 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페잔에서 불평하고 있는 것 만이라면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꾐에 빠져 반제국활동을 행하면 그 나름대로의 대응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하지만 남작이 사전에 알려주시면 이쪽에서도 수를 쓸 수 있습니다. 그들을 단지 불평가의 모임으로 해두는 것도 가능합니다.”

  “…….”


  라트부르흐 남작은 에리히의 제안을 받아들었다. 망설이고 있었지만, 마지막엔 끄덕였다. 그 외에도 에리히의 제안을 세츨러 자작, 노르덴 소장이 받아들었다. 노르덴 소장은 중장의 지위가 조건이었다. 라겔 대장은 접촉하지 않았다. 그를 이용하면 상급대장이라는 지위를 준비해야만 한다.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믿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네 명중 세 명을 이쪽의 내통자로 했다. 대성공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에리히의 표정은 밝지 않다. 기밀유지를 위해 준비한 작은 방, 지금 이 방에는 우리들 두 사람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에리히는 침울한 모양이다. 아니, 그렇기 때문인가.


  “에리히, 어째서 여기에 왔나?”

  “…….”

  “내가 하는 수도 있었는데……. 나로는 걱정인가?”


  에리히는 날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 이 책략은 내가 생각했다. 그래서다.”

  “말도 안 되는. 뭐든지 자신이 다 할 생각인가? 몸이 몇 개나 있어도 모자라다고.”


  “……귄터. 경우에 따라선 난 그들을 잘라버리게 될지도 몰라. 아니, 아마 잘라버리게 되겠지. 그들은 날 원망할거야. 그러니 자신들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사람의 얼굴 정도는 보게 해주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고 에리히는 시선을 피했다.


  “에리히, 그들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겠고, 그 각오도 있을 거야. 그런 뒤의 선택한 거다. 경이 죄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하지만 받아들이도록 유도는 했다…….”


  에리히는 시선을 피한 채다. 알고 있다. 누구라도 이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에리히는 내게 안 좋은 마음을 들게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이 일을 맡은 것이겠지. 별 수 없는 녀석이다.


  “……앞으로 내가 그들을 제어한다. 경은 직접 접촉하지 마라.”

  “…….”

  “이건 내 일이다. 경이 신경쓸 필요 없어.”

  내 말에 에리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귄터. 미안해.”

  “이상한 소릴 하지 마라. 그리고 뭐든지 전부 자신이 짊어지려는 건 그만둬. 좀 더 날 신용해.”

  “신용하고 있어. 경이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어.”

  에리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아니야. 난 경을 위해서라면 더러운 일이든 뭐든 할 수 있단 말이다!”

  에리히는 한 순간 날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귄터.”


  정말이지 별 수 없는 녀석이다. 신랄한 책략을 생각하는 주제에 냉혹하게는 될 수 없다. 중요한 부분에서 허술함이 나온다. 그러니 적이 보면 틈이 있는 듯이 보인다. 파고 들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사람이 필요하군. 에리히를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에리히를 보며 생각했다.


...


제국력 488년 6월 3일. 오딘 헌병본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곤란한 녀석이지. 내가 곤란할 말만 한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을 할 땐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키슬링도 마찬가지겠지. 이 녀석은 너무 제대로일 정도로 제대로 된 녀석이다. 그런데도…….


  “귄터. 수사 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

  “로엔그람 백작은…….”

  “아니, 백작에 대한 건 됐어. 궁내성과 내무성의 건을 듣고 싶어. 궁내성의 얼굴 모를 사내는 누구였어? 알았겠지?”

  내 말에 키슬링은 잠자코 끄덕였다.


  궁내성의 얼굴 모를 사내. 내무성과 페잔, 그리고 오베르슈타인과 일을 꾸민 자다. 노이켈른 궁내상서를 조종하여 불필요하다고 처리한 자. 그 자를 특정할 수 없었기에 이번 장미정원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궁내성 시종차관 카르테나 자작이다.”

  궁내성 시종차관인가……. 황제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자다. 페잔이 소중하게 할 만하군. 정보원으로선 최고겠지.

  “……그렇다면 예의 약은.”

  “아아. 카르테나 자작에게서 백작부인에게 넘겨졌다고 한다.”


  카르테나에게서 백작부인에게 말인가. 그 출처는 오베르슈타인과 내무성이겠지. 그들의 처분은 정해졌다. 로엔그람 백작의 찬탈에 가담했다.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찬탈에 가담했기에 사형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문제는 루빈스키로군. 녀석이 어디까지 이 건에 얽혀 있었을지.


  “귄터. 카르테나 자작은 페잔과의 연결을 실토했어?”

  “그래. 루빈스키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더군. 연락은 항상 루빈스키하고만 했다고 해. 아마 볼텍도 모르고 있겠지.”

  “그런가.”


  “그의 저택에서 트라운슈타인산 버팔로 모피가 몇 장인가 나왔어. 기록을 조사했지만 그에게 하사된 사실은 없다. 그는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 지 답하지 못했어.”

  그렇게 말하고 키슬링은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플레겔 내무상서는 페잔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가?”

  “직접적인 연결은 없었던 것 같아. 언젠가 카르테나 자작이 방해가 되었을 땐 그 건으로 그를 매장해버릴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이런. 서로를 이용할 뿐이며 추호도 신뢰는 없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한숨 쉬지 마. 에리히. 경을 죽이려고 한 의사 말이지만. 그 남자는 루빈스키가 준비했다고 하더군. 카르테나 자작이 그렇게 말했어.”

  “…….”

  과연. 만일의 경우엔 만일의 대비를 인가. 그 자 다운 방식이다. 내가 살아난 건 요행이라고 해도 좋다.


  “단, 그 자는 제국인이다. 페잔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지금 여기에 루빈스키가 있고 그를 심문해도……, 아마 시치미 뚝 뗄 테지.”

  “……간단하게 꼬리는 잡지 못하나. 검은 여우는 끈질기구만.”


  키슬링은 내 말에 끄덕였지만, 문뜩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묘한 남자야. 지구야말로 인류의 모성, 지구에 대한 은혜와 책임을 인류는 잊어선 안 된다든가 말하고 있다. 지구교의 신자인 것 같아.”

  “……지구교인가…….”


  과연. 페잔에서 사람을 보내면 당연히 의심을 받는다. 루빈스키는 지구교에서 사람을 보냈는가. 무관계한 사람, 그렇게 보이게 하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이걸로 지구교를 조사할 수 있고, 리히텐라데 후작에게도 녀석들이 페잔의 뒷면이라는 설명을 할 수 있다.


  “에리히, 지구교 말이지만. 감시할까?”

  “……아니, 그건 그만둬줘.”

  내 말에 키슬링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카롭군. 키슬링. 하지만 헌병대는 안 된다. 헌병이 움직이면 녀석들은 조심하며 움직임을 멈추든가 지하로 숨어버릴 거야. 지구교는 다른 녀석들에게 조사하도록 하자. 적임자가 있다. 슬슬 녀석에게도 일거리를 주도록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