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망명편(완결)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망명편. 제 14 화. 신뢰

추리닝백작 2015. 2. 12. 15:00


■ 제국력 485년 4월 6일. 반플리트 4=2. 지크프리드 키르히아이스.


  “어떻게도 할 수 없군.”

  “예. 그렇습니다. 라인하르트님.”

  “나머진 발퀴레를 기다리는 것뿐인가…….”

  나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라인하르트님에게 아무말 없이 끄덕였다.


  반플리트 4=2에 있는 자유행성동맹을 자칭하는 반란군 기지는 두려울 정도로 튼튼했다. 공격을 개시하고 12시간, 제국군은 이 기지 공격에 지치고 있다. 아니, 이 기지에 우롱 당하고 있다.


  당초의 예정대로라면 고생도 없이 공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상공격메카를 투입하고 제공권을 뺏어 적 기지에 침입한다. 24시간도 걸리지 않고 기지 공략은 끝났겠지. 모두가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잘못된 예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인하르트님도 기지공략은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적 함대의 증원이었겠지……. 이렇게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상공격메카는 근접방어화기 시스템 앞에서 파괴되고, 적 다기능복합탄에 의해 이쪽의 장갑지상차는 파괴되어간다. 일방적으로 제국군이 반란군에게서 공격을 받고 있다. 나도 라인하르트님도 장갑지상차에 타고 있지 않다. 장갑지상차는 위험하다. 반란군은 철저하게 장갑지상차를 파괴하고 있다. 지금 우리들은 장갑지상차 그림자에 숨어있는 가설지휘소에서 전투를 통솔하고 있다.


  이 무슨 추잡한 적인지. 적은 빈번히 지원요청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그 통신내용은 완전히 엉터리다. “아군 피해 막대.”, “적이 기지에 침입했으나 어떻게든 격퇴했음.”, “적에게 제공권을 빼앗김.” 등등…….


  이 통신은 함대사령부에서도 방수하고 있다. 덕분에 이쪽이 아무리 사령부에게 상황이 불리하다고 알려도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해서 무훈을 과대하게 받고 싶은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이 기지를 공략할 수 있다면 최고전공자일 거라고 라인하르트님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공격부대의 지휘관, 뤼네부르크 준장도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그래도 준장은 사령부와 거래하여 발퀴레 투입을 얻어냈다. 그 노력과 끈질김은 라인하르트님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미운 녀석이지만 실력은 확실하다. 전장에선 믿을 수 있다.” 그것이 라인하르트님의 뤼네부르크 준장에 대한 평가였다. 공격 전에 있었던 그에 대한 악감정도 이 곤경 앞에서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긴 그건 뤼네부르크 준장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노골적으로 눈밖에 두고 있던 라인하르트님을 상대로 사령부에 대한 불평을 말하는 일도 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님도 거기에 대해서 끄덕이고 있다. 강력한 적과 무능한 아군……. 믿을 수 있는 건 아무리 본의가 아니더라도 함께 전장에 있는 상대방밖에 없다…….


  “발퀴레가 온다면 근접방어화기 시스템을 부술 수 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라인하르트님이 신음하듯이 말하셨다. 이 전투는 지상전이라는 점도 그렇고 고전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본의가 아닌 점 투성이겠지.


  발퀴레가 상공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0분 정도 지난 뒤였다. 총 군세 200기의 발퀴레가 기지를 향한다. 근접방어화기 시스템을 모두 부술 필요는 없다. 어딘가 한 곳, 집중적으로 파괴하기만 하면 된다. 나머진 그곳에서 지상공격메카를 투입하면 된다.


  적의 대공방어시스템이 움직였다. 레이저포가 발퀴레를 노리지만 발퀴레는 저공비행으로 변경하여 기지로 향한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가면 기지에 도착한다. 그 때였다. 라인하르트님이 절망의 목소리를 올렸다.


  “무리다. 키르히아이스. 저걸 봐라.”

  라인하르트님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동맹의 단좌전투정, 스파르타니안 편대가 모여 이쪽을 향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숫자는 아무리 봐도 발퀴레보다도 많다. 아마도 두 배정도는 되겠지.

  스파르타니안이 상공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발퀴레는 저항하지 못한다. 상공으로 향하면 대공방어 시스템의 포화를 뒤집어쓰겠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지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기지에 도착하는 일은 없다…….


  지휘소 안에서 병사가 통신이 들어왔다는 걸 알려왔다.

  “뮈젤 준장. 응답해주게. 뤼네부르크다.”

  소형 통신기에서 뤼네부르크 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거칠게 들린다. 전파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라인하르트님이 대답했다.


  “여기는 뮈젤. 뤼네부르크 준장. 지금 연락하려고 했던 참이다.”

  “마음이 맞는군. 뮈젤 준장.”

  쓴웃음이 섞인 뤼네부르크 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퀴레의 공격은 실패한 것 같다.”

  “유감이긴 하지만, 동의한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쓰다. 기지를 공격할 수단을 잃은 것이다. 무리도 아니다.


  “경은 저 스파르타니안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나? 적의 함대에서 왔다고 생각하나?”

  “아니. 적의 함대가 왔다면 사령부가 가만있지 않겠지. 저건 적 기지에 숨어있던 것일 거다. 기지 너머에 달리 비행기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동감이다. 그럼 어째서 적은 지금까지 스파르타니안을 내보내지 않았을까?”

  뤼네부르크 준장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있다.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니 대단한 일이다.


  “시간 벌기겠지. 적 증원이 오기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다. 저 증원요청도 그게 목적이다. 우리들은 아무래도 적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경은 이야기가 빨라서 좋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다만. 사령부에 증원을 요구해도 무리겠지. 상공에서의 공격도 받아들어 줄 거라 생각할 수 없어.”

  뤼네부르크 준장의 말에 라인하르트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뤼네부르크 준장도 라인하르트님도 몇 번이나 함대에 의한 기지 공격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령부는 수긍하지 않았다. “기지공략따위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말하며 조소할 뿐이다. 라인하르트님도 뤼네부르크 준장도 사령부에선 고립되어 있다. 그리고 사령관, 그림멜스하우젠 중장은 전혀 의지할 수 없다. 기지공격부대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게다가 적의 증원부대가 근처까지 왔을지도 몰라. 최악이군…….”

  뤼네부르크 준장의 목소리가 한 순간 끊겼다. 공격할 수단이 없는 이상, 적 증원부대가 근처까지 왔을 가능성이 있는 이상 취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철퇴밖에 없다. 이대로 공격을 계속해도 희생이 늘어날 뿐이겠지.


  하지만 뤼네부르크 준장은 그걸 라인하르트님이 먼저 말하게 할 생각일까. 철퇴는 뮈젤 준장의 진언에 의한 것으로 할 생각일까. 무심코 몸이 굳었다. 라인하르트님도 표정이 엄하다.


  “철퇴한다. 귀관은 차석지휘관이다. 내 지시에 따라줘.”

  “…….”

  라인하르트님이 나를 봤다. 눈에는 복잡한 색이 있다. 뤼네부르크 준장을 의심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은가? 그걸로.”

  여기서 철퇴하면 패퇴라는 것이 된다. 당연하지만 경력에 상처가 남는다. 3년 만에 전장에 나온 뤼네부르크 준장에게 있어서 이게 최후의 전장이 될지도 모른다.


  이기고 싶다는 기분, 패전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은 누구보다도 강하겠지……. 라인하르트님이 말을 건 것은 자신도 함께 책임을 나누고 싶다는 의사표시다. 라인하르트님답다고도 말할 수 있고,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의 호의엔 감사한다. 하지만 패전의 책임 정도 혼자서 질 수 있을 것 같아. 걱정 할 필요 없다.”

  어딘가 많은 것을 포함한 웃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보다도 철퇴를 서두르지. 적 함대가 도착하면 아마도 녀석들은 전면적으로 반전공세에 나올거다. 뿌리치기 힘들겠지. 그때까지 얼마나 기지에서 떨어질 것인가. 그것이 생사를 나누게 될거다.”

  “…….”


  “경이 먼저 가라. 내가 뒤를 맡지.”

  “하지만, 그건.”

  “우물쭈물하지 마라. 뮈젤. 1분 1초가 생사를 나누게 될 거다.”


...


■ 우주력 794년 4월 6일. 반플리트 4=2. 미하마 사아야.


  너무한 이야기입니다. 바그다슈 소령은 나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의심해도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페잔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보고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럽혀선 안 된다고.


  지금도 그에 대해선 후회하고 있지 않습니다. 발렌슈타인 소령도 제가 정보부에 보고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그 장소에 데려간 거겠죠. 도청기가 붙어 있었다. 자신의 일구일언이 녹음되고 있었다. 오한이입니다. 이 무슨 무서운 짓을……. 제가 이 두려움을 잊는 일은 평생 없겠죠.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얼어붙을 것 같습니다. 발렌슈타인 소령 곁에 달라붙어 그 일부시종을 감시하고 있었다……. 소령에게 제가 어떻게 보였을지……. 자신의 주변을 얼쩡거리는 더러운 감시견으로 보였을 테죠. 대체 소령은 어떤 기분으로 있었을지…….


  그리고 그 때 보였던 소령의 눈. 경멸하는 듯한 눈이었습니다. 사람의 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 고지식한 정보부원. 그런 눈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런 눈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항상 그런 눈을 보게 되겠죠. 어차피 정보부의 인간이며,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위험한 여자라고…….


  저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에 죄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발렌슈타인 소령이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령은 저에게 격의 없이 대해줬습니다. 어디까지나 보급담당부의 동료로서 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다지 소령을 감시한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소령은 심술쟁이에 사디스트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근본이 나쁜 사람이지만, 절 신경써줬다고 생각합니다. 아레스하임에서도 페잔에서도 저는 소령과 함께 있는 걸 즐겁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소령이 저를 경계하고 있었다면 저는 싫어도 자신이 감시자라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즐겁다니, 그런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령부 안은 정적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까 전까지 있었던 긴장이나 흥분은 없습니다. 저희들의 대화를 들었던 겁니다. 무리도 아니겠죠. 모두 저와 바그다슈 소령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있습니다.


  사령부를 침묵이 지배하고 있는 도중, 발렌슈타인 소령이 스크린을 봤습니다. 스크린은 스파르타니안이 발퀴레를 격추하는 장면을 비추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전개입니다. 기지까지 닿는 발퀴레는 전혀 없다고 해도 좋겠죠.


  “바그다슈 소령.”

  저는 작은 목소리로 소령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소령이 “무슨 일인가.”하는 듯한 시선으로 절 봅니다.

  “저는 페잔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정보부 보직은 해임인가요?”

  해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아군까지 의심해야 하다니, 이젠 질렸습니다. 후방근무본부에서 일하는 편이 편합니다.


  “그렇지 않네. 나는 중위가 한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

  무심코 소령의 얼굴을 봤습니다. 농담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귀관처럼 감시자인 것을 감시대상자가 눈치 채면 감시자로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 상대가 경계하여 교류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정보가 단편적으로밖에 들어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감시대상자가 스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야.”

  “…….”


  “하지만 귀관은 아니었다. 감시자라고 들켜도 발렌슈타인 소령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했다. 물론 소령이 귀관을 적대시하지 않았던 것도 크겠지만, 귀관도 불필요하게 소령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덕분에 우리들은 귀관을 통해 소령을 알 수 있었다.”


  정말일까요. 저는 그다지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령의 표정에는 조롱이나 경멸의 색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페잔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감시자로선 실격이 아닙니까?”


  “소령은 귀관에게라면 이야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귀관은 소령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예.”

  제 대답에 소령은 부드러운 웃음을 보였습니다.


  “귀관들에겐 신뢰관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말이지. 그건 어떤 것들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귀관은 그걸 지켰다. 잘못된 일은 하지 않았어.”

  잘못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럼 어째서 도청기를?


  “귀관은 잘못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이 더러운 일을 해야만 했다. 감시자도 감시대상자도 인간이다. 그걸 잊으면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살아있는 정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정보를 보냈을까요? 저는 언제나 실수만하고 발렌슈타인 소령에게 압도되고 있었습니다. 그게 살아있는 정보?


  “귀관에겐 심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네. 용서해달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단지…….”

  “단지?”


  “발렌슈타인 소령과의 관계를 유지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네. 비오라 대령이 말했어. 두 사람은 정말 즐거워보였다고. 어딜 봐도 감시자와 감시대상자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이지.”

  “…….”


  즐거웠습니다. 페잔만이 아닙니다. 아레스하임도 즐거웠습니다. 그 전부터 쭉 즐거웠습니다. 소령과 함께 있는 일이……. 지금과는 천지차이입니다. 무심코 코 안쪽이 시큰거렸습니다.


  “그는 지금 혼자다.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리고 있어. 하지만 그래선 언젠가 부서지고 말겠지. 그래서 귀관이 손을 뻗어줬으면 한다. 언젠가 그는 반드시 도움을 필요하게 될거야.”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제 질문에 바그다슈 소령은 가볍게 웃음을 띠우며 고개를 가로 저였습니다.

  “나는 알 수 없어. 귀관도 알 수 없겠지. 그러니 믿는 거다. 언젠가 분명 그가 도움을 필요할 때가 올 거라고. 자신이 그를 구할 거라고.”


  지금과 같은 무서운 소령이 아니라, 예전의 소령으로 돌아 와준다면,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령 심술궂은 사디스트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본성이 나쁜 사람이지만, 상냥한 웃음을 띠는 소령이 전 좋습니다. 소령, 돌아와주세요. 부탁이니까, 돌아와요…….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저는 자신이 뭘 잃었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잃은 것은 신뢰였던 겁니다. 제국과 싸울 것을 결심한 뒤부터 소령은 사람의 마음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신뢰도 버린 겁니다. 그걸 되돌리지 못하는 한, 제가 알고 있는 소령은 돌아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