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망명편. 제 31 화. 이제르론에서(1)
우주력 794년 10월 20일. 이제르론 요새. 바그다슈.
함대가 이제르론 요새에 접선하여 요새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제3혼성여단에서 4, 5명 정도가 마중 나왔다. 아무래도 여단장이 직접 나온 것 같다. 꽤나 초조하던 참인 것 같다. 기밀복과 헬멧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걸음에서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 전황이 좋지 않은 거겠지.
“제3혼성여단, 여단장 샤프 준장이다.”
안 좋군. 상급자인 저 쪽이 먼저 말을 걸었다. 보통은 이쪽이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리는 게 상례인데……. 그런 여유도 없을 정도로 몰려 있다는 건가……. 혹은 실전 경험이 적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소 패닉 상태라는 가능성도 있겠지.
“총사령부에서 왔습니다. 발렌슈타인 대령입니다. 이쪽은 바그다슈 중령, 미하마 대위입니다.”
“음. 철퇴명령이 나왔다는 듯하네만. 어떻게 되고 있나?”
의심쩍은 목소리다. 무리도 아니다. 철퇴라는데 요새에 접선한 건 100척 정도의 소함대다. 이제르론 요새에는 로젠리터, 제3혼성여단, 그리고 강습양륙함에서 탈출한 병사까지 합하면 1만 명을 넘는 사람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수송선, 혹은 양륙함으로 단 번에 철퇴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저 함대로 철퇴해주시면 됩니다.”
“뭐라고?”
샤프 준장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지만, 발렌슈타인 대령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세한 건 바그다슈 중령에게서 들어주십시오.”
“기다려라. 대령.”
“소관은 로젠리터에게 최후미를 맡아달라고 전해야만 합니다. 거기 귀관. 안내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샤프 준장과 함께 마중을 나온 사관의 안내를 받으며 떠났다. 샤프 준장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이런이런. 내가 뒤처리를 해야하나……. 뭐, 여기에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도록 할까…….
“철퇴 순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부상자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다음으로 강습양륙함 승무원, 제3혼성여단, 마지막으로 로젠리터가 철퇴합니다.”
“기다려라. 저 함대로는 모두 옮길 수 없지 않나? 수송선이나 양륙함을 어째서 준비하지 않았나. 아니, 평범한 함선을 쓸 거라면 어째서 좀 더 대규모로 하지 않았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샤프 준장은 침을 튀길 듯한 기세로 질문했다. 역시 이 녀석에게 로보스 원수 해임에 대해서 말할 수 없겠군. 말했다간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질문공세를 해대겠지. 미안하지만 그런 여유는 없다.
“총사령부의 결단입니다. 대규모 철퇴작전은 적의 주의를 끌기에 철퇴함대를 위험에 노출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 총사령부의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소규모 함대에 의한 순차철퇴작전을 총사령부는 생각했습니다. 이미 총사령부는 다음 철퇴작전을 실시할 함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타고 온 함대가 철수하면 바로 이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30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럴 때엔 총사령부란 이름을 연호하는 게 좋다. 끈질기게 질문하면 총사령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는 게 아닌가. 상대에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 입을 막는다……. 예상대로 샤프 준장은 불만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최우선으로 철퇴하는 것은 부상자가 됩니다만?”
“문제없네. 제3혼성여단과 로젠리터 모두 부상자는 한 데 모아두고 있어. 최우선으로 철퇴하게 할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지.”
가슴을 피며 말하지 말라고. 크게 자랑할 거리도 아니다.
“그럼 그 뒤에 강습양륙함의 승무원, 제3혼성여단이 됩니다.”
“……제3혼성여단은 한 번에 옮길 수 없겠군…….”
“그렇겠군요. 각하는 다음 함대로 철수하게 됩니다.”
샤프 준장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보였다. 지휘관이니까 당연하겠지.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고. 한심하다…….
“……별 수 없군. 총사령부의 결단이라고 한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소관은 발렌슈타인 대령의 뒤를 쫓아야만 합니다. 그럼 이만.”
“음.”
그래그래. 그래야만 지휘관이다. 힘내라고. 샤프 준장. 아아, 그리고 안내할 사람을 받아야…….
...
로젠리터의 쇤코프 대령은 가설 사령부를 설치하고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곁에 있는 건 블룸하르트 대위인가. 하지만 대령은 없다……. 저도 모르게 미하마 대위를 돌아봤다. 대위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여어, 왔군. 발렌슈타인 대령에게 귀관들에 대한 건 들었다.”
쾌활한 목소리로 쇤코프 대령이 답했다. 발렌슈타인 대령이 여기에 왔었던 건 틀림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일단‥….
“반샤페 준장에 대한 일. 유감이었습니다.”
내 말에 쇤코프 대령과 블룸하르트 대위가 표정을 바로 했다.
“아아. 신경 써줘서 고맙네. 하지만 여기는 전장이다. 그 이상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그렇군요. 일단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해야지요.”
“맞는 말이다. 특히 살아있는 적을 어떻게든 해야겠지.”
쇤코프 대령이 대담한 웃음을 띠웠다. 믿음직한 사내다. 역경 속에서 이러한 웃음을 띠울 수 있다니…….
“발렌슈타인 대령은 어디에?”
미하마 대위가 질문했다.
“포로를 조사하고 있다. 제국군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
“포로?”
이쪽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포로가 있는 건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미하마 대위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 우리들이 이상했던 거겠지. 쇤코프 대령이 웃음소리를 냈다. 블룸하르트 대위와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열 발 정도 맞았지만, 이쪽도 세 발 정도는 돌려줬다. 그렇지 않으면 연대가 괴멸했겠지.”
“과연. 역시 로젠리터로군요.”
“아부는 됐어.”
아부가 아니다. 기습을 당하고 연대장을 잃은 것이다.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전투력은 일개 사단에 필적한다. 그 평가는 폼이 아니다.
“손해가 컸습니까?”
“기습을 받았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았다는 거지. 장소도 좋지 않았다. 좁은 통로라서 몸을 숨길 곳이 없었어. 순식간이었지. 백 명 정도 죽은 게…….”
쇤코프 대령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반샤페 준장도 그 때 전사했습니다. 로젠리터는 지휘관을 잃고 더욱 혼란에 빠졌죠…….”
블룸하르트 대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표정은 쇤코프 대령과 마찬가지로 고통에 차있다.
“반샤페 준장의 책임도 아니야. 요새에 들어가서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기습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연대장은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거기서 복병이라니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겠지.”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아니면 죽은 자의 명예를 지키려고 하는 건지. 혹은 양쪽 다인가……. 화제를 돌리는 게 좋겠지.
“……쇤코프 대령이 무사했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후방에 있었으니 말이야. 운이 좋았다. 아니면 나빴나? 무너져가는 아군을 어떻게든 추스르는 것이 한계였다. 결국 300명 정도가 전사했겠지. 중상자도 비슷해. 연대의 약 5분의 1을 잃었지…….”
그 상태에서 역습을 가했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샤페 준장을 잃고, 연대도 대 손실을 입었다. 그래도 쇤코프 대령이라는 새로운 지휘관을 얻을 수 있었다…….
“헌데 최후미에 대한 건, 들으셨습니까?”
“들었네. 뭐, 우리들이 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예상대로군.”
“…….”
담담한 어조였다. 블룸하르트 대위도 태연하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예상이 빗나간 부분도 있지.”
“빗나간 부분이라면?”
“귀관들이 마지막까지 어울려준다는 거다. 참 별난 성미의 사람들이군.”
그렇게 말하고 쇤코프 대령과 블룸하르트 대위가 소리 내며 웃었다. 저도 모르게 나도 웃고 말았다. 미하마 대위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로보스 원수가 해임됐다는 건?”
“그것도 들었다. 로젠리터 따위 괴멸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린힐 대장이 214조를 행사했다고……, 아닌가?”
우리들의 표정을 눈치 챘겠지. 쇤코프 대령이 질문했다.
“정확히 말하면 발렌슈타인 대령이 214조 행사를 진언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로보스 원수 해임은 없었겠죠.”
“…….”
“그 뒤에 여기로 오겠다고 지원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포로가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총사령부가 장병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총사령부 사람이 희생될 각오를 보일 필요가 있다면서 여기로 온 것입니다.”
“……그래서야 참을 수 없겠군요.”
블룸하르트 대위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 말대로다. 총사령부는 마치 초상집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걸 그가 짊어지게 한 것이다. 와이드본 대령의 한탄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기혐오에 빠져있다. 그를 죽게 내버려둘 순 없다.
“발렌슈타인 대령을 죽게 할 순 없어요. 그렇기에 제가 여기에 왔습니다. 전투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차할 땐 총알받이 대신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은 살아서 돌아가고 싶지만요.”
미하마 대위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말하고서 이상했던 거겠지. 그녀가 소리 내며 웃었다. 완전히 동감이다. 나도 웃음소리를 냈다.
“……꽤나 마음이 깊구만.”
쇤코프 대령이 이쪽을 가늠하는 듯한 시선으로 봤다.
“그렇지요. 그와 오래 알던 사이에요. 여러 가지 마음 가는 데가 있습니다만……. 문제는 그게 짝사랑이라는 거지요.”
짝사랑인가.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발렌슈타인 대령은 주변과 관계를 맺는 걸 피하고 있다. 와이드본 대령이나 나, 미하마 대위도 그 걸로 괴로워하고 있다. 혹시 발렌슈타인도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짝사랑 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정이 깊은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심술궂고 근본이 나쁘고.”
“거기다가 무서운 부분이 있는 미인이다.”
“사실은 상냥한 사람이에요. 대령은.”
정신을 차리니 모두가 웃고 있었다. 정말이지 여기에 있는 건 전부 어쩔 도리도 없는 녀석들이다. 나도 포함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바보들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
우주력 794년 10월 20일. 이제르론 요새. 에리히 발렌슈타인.
“발렌슈타인 대령. 여기입니다.”
리츠가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아마도 물자창고 같은 거겠지. 여기가 이제르론 요새의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장은 해제했습니다만, 조심하십시오. 대령에게 만일의 일이 있었다간 쇤코프 대령에게 죽을 테니까요.”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습니다. 진심이라구요.”
알았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하전입자 라이플도 가져왔잖아? 안심하라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병사가 세 명, 이쪽을 향해 경례했다. 아무래도 경비를 서고 있는 것 같다. 답례하면서 방 안을 돌아보니 네 명의 제국인이 있었다. 네 명 모두 기밀복은 입고 있지만 헬멧은 쓰고 있지 않다. 세 명은 앉아있지만 한 명은 웅크린 자세로 누워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간이 부은 건가, 아니면 부상을 입은 건가……. 아마도 부상이겠지. 자고 있는 녀석이 있다면 안톤 페르너 정도일 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은근슬쩍 라이플을 겨눴다. 세 사람의 얼굴에 긴장이 스쳤다.
“알려줬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답해주세요.”
“…….”
질문을 하자 세 사람이 날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봤다. 한 사람은 장신이다. 또 한 사람은 팔에 부상을 입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꽤나 체격이 좋다. 이 녀석들의 수상쩍다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침울해진다…….
“경들의 지휘관은 누구입니까?”
“…….”
이번엔 서로를 돌아봤다. 이적행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가…….
“오프레서 상급대장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뤼네부르크 준장도 말이죠. 그 외에는?”
또 서로를 돌아봤다. 모두 의심쩍은 표정이다.
“그 외엔 없다. 두 사람뿐이다.”
장신이 답했다. 조금 사투리가 섞여있다. 아마도 변경출신이겠지.
“틀림없습니까?”
내 질문에 장신이 끄덕였다. 라인하르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내 착각인가……. 그렇다면 누가 저 미사일 함정의 공격을 간파했나? 뤼네부르크? 아니, 라인하르트가 간파했을 거다. 하지만 여기에는 없다고 하면 녀석은 어디에 있지?
설마 뮈켄베르거 곁인가……. 그렇다면 이쪽의 철수작전을 간파할 것이 틀림없다. 작전 실패인가? 어떻게 하지? 다른 탈출법을 생각할까? 이대로 가면 라인하르트는 우리들을 미끼로 동맹의 주력함대를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말하는 건가?”
부상을 입은 사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내 질문에 또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건 함대지휘관이겠지? 장갑척탄병과는 관계없어.”
“그렇지. 애초에 저건 그냥 장식이잖아? 함대지휘관인데도 출격도 못하고 있으니.”
장신과 체격 좋은 사내가 입을 모아 부정했다. 과연. 그들 사이에선 라인하르트는 장식인가……. 그래서 없다고…….
“또 한 명 있군요. 누구입니까? 그건.”
“……뮈젤 준장. 하지만 그냥 장식이다. 출격도 못하고 뤼네부르크 준장과 다니고 있어.”
“누나가 황제 폐하의 총희니까 말이지. 애송이 주제에 준장 각하라고.”
“뤼네부르크 준장은 망명자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 그래서 저런 애송이하고 같이 다니는 거지.”
변함없이 인망이 없구만. 라인하르트. 하지만 문제는 거기가 아니다. 라인하르트는 역시 뤼네부르크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관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가시군…….
“지금 그는, 뮈젤 준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프레서 각하, 뤼네부르크 각하와 함께 있지.”
“장갑척탄병을 지휘하고 있는 거군요.”
“지휘 따위 하고 있지 않아. 애송이가 할 수 있을 리가.”
체격 좋은 사내가 노골적으로 라인하르트에 대해 반감을 표했다. 지금의 라인하르트에겐 실적이 없다. 출격도 못하는데다가 준장이라는 어중간한 지위다. 이 사내가 반감을 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알고 싶은 건 알았다. 지금까지는 이쪽의 예상대로다. 라인하르트는 뮈켄베르거에 대해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단 이 고비만 넘기면 철수할 수 있겠지. 나머진 쇤코프의 역량 문제다. 걱정 없다.
자고 있는 녀석. 얼굴만이라도 봐둘까. 내가 그 남자에게 다가가자 리츠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령. 조심하십시오.”
“예.”
내가 대령이라 불린 것이 의외였던 것 같다. 세 사람이 놀란 표정을 보였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고 있는 남자의 팔을 하전입자 라이플로 움직였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숨이 멎었다.
“귄터! 귄터 키슬링!”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나. 넌 오딘 헌병대에 있을 터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