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망명편. 제 54 화. 제 7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 (4)
제국력 486년 5월 7일 03:00. 암릿처 성계. 뮈젤 함대 기함, 탄호이저. 라인하르트 폰 뮈젤.
눈앞의 화면에 얼굴이 새파래진 에렌베르크 군무상서,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 그리고 오프레서가 있다. 이 간덩이가 돌덩이 같은 영감의 안색이 창백해진 걸 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예의 산제물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슈타덴은 눈치 채지 못한 건가? 반란군의 목적을.”
군무상서 에렌베르크 원수가 갈라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곤 생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된다. 적진에 고립된다. 그런 공포감이 더 강하겠죠. 게다가 잘 되면 반란군을 협공할 수 있다. 그런 마음도 있을 겁니다.”
“공포와 욕심인가…….”
“원정군은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당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주류함대는 원정군이 괴멸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다음은 자기 차례니까요. 발렌슈타인은 7만 척의 함대를 이제르론 회랑에 둠으로써 제국군을 유인하고 있는 겁니다.”
“개미지옥인가…….”
“군무상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되었다. 이대로 가면…….”
군무상서와 통수본부총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서려있다. 그들을 겁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나조차 두렵다. 원정군이, 주류함대가 전멸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제국은 6만 5천 척의 함대, 약 7백만의 장병을 잃게 됩니다. 보충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죠.”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오프레서의 목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그리고 군무상서와 통수본부총장의 얼굴이 굳는다.
“간단하게 말하지 말게. 시간만이 아냐. 비용도 만만찮다. 배를 만들고 병사를 훈련한다. 그리고 전사한 장병의 가족에겐 유족연금을 내야만 하겠지. 게르라하 자작도 큰일이군. 재무상서 취임 직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분기탱천해서 찾아올지도 모르겠군.”
군무상서의 막말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군무상서의 입장이라면 같은 태도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떻게도 할 수 없다. 무력감만이 가득하다.
이전에 생각했던 건 역시 틀리지 않았다. 반란군을 상대로 한 전투는 이제부터 점점 더 가열차게 될 것이다. 바로 그자, 발렌슈타인이 가열할 것이다. 앞으로는 승패가 아니라 생사를 건 싸움이 된다. 그리고 우주는 피로 붉게 물들게 되겠지……. 바로 그렇다. 이제르론 회랑은 7백만 명의 피로 붉게 물들 것이 틀림없다.
“뮈젤 중장. 요새사령관, 슈토크하우젠에겐 알렸는가?”
“알렸습니다. 요새사령관은 주류함대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습니다만, 반란군의 통신방해가 심하여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무슨 일인가. ……뮈젤 중장. 경의 함대는 제때 도착할 수 있겠는가?”
매달리는 듯한 어조로 슈타인호프 원수가 질문했다. 기분은 알겠다. 슈타인호프도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정말 어떻게도 할 수 없다.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상담 같은 걸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용병의 문제가 아니란 거다.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슈타덴이 적어도 일주일 늦게 군을 움직였다면……. 한숨이 나왔다.
“유감입니다만, 이미 늦었습니다. 소관은 14일에 이제르론 요새에 도착합니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걸린다는 겁니다. 저희들이 요새에 도착할 쯤엔 이미 전투가 끝났겠죠.”
“……어떻게도 할 수 없는가.”
“이제르론 요새조차 함락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혹은 다소 남은 함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땐 이쪽을 유인하기 위한 함정일 가능성이 높겠죠.”
신음소리가 들렸다. 에렌베르크인가 슈타인호프인가, 혹은 두 사람 모두일지도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겠죠. 지상전에선 때때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상을 입은 적을 죽이지 않고 방치하여 구출하려 하는 적을 유인한다……. 비겁한 수법이긴 합니다만, 그만큼 효과적입니다. 죽게 내버려두면 사기가 떨어지고, 구하려고 하면 피해가 늘어난다……. 지옥입니다.”
또 신음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발렌슈타인! 저주를 받아라, 가름새끼. 대체 얼마나 많은 제국군 장병의 피를 마셔야 속이 풀리는 게냐!”
에렌베르크가 뺨을 떨면서 발렌슈타인을 저주했다. 그는 아마도 카스트로프 사건을 모른다. 알고 있는 나로선 발렌슈타인을 저주할 수 없다. 에렌베르크가 부러웠다. 새삼 알면 후회할 거라는 말이 뼈에 사무쳤다.
“저희들의 임무를, ……확인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최우선으로 지켜야할 것은 이제르론 요새. 그걸로 괜찮습니까?”
내가 조금 더듬거리면서 말하자 화면 너머의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끔찍한 일이다. 나는 아군을 방치할 허가를 구하고 있다.
“……그러도록 하지. 이제르론 요새 유지를 최우선으로 한다.”
에렌베르크가 쥐어짜는 목소리로 답했다. 장절한 마음이겠지. 이 순간 제국군 장병 700만 명의 목숨이 버려졌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 지독한 질문을 해야만 한다.
“만일, 요새가 반란군의 공격에 의해 함락되었을 경우엔?”
내 질문에 에렌베르크가 눈을 감았다. 지친 표정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죄악감이 가슴에 가득 찼다.
“……무리하지 말고 후퇴하라.”
“예. 알겠습니다.”
이걸로 아군을 죽게 내버려 두는 건 두 번째다. 첫 번째 때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게 내버려 둘 것을 스스로 요청했다. 점점 지독해진다. 다음엔 스스로 결단하여 아군을 죽게 내버려 둘지도 모른다.
이전엔 싸움을 앞두고 흥분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그런 일이 없어졌다. 아마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없겠지. 그건 무덥고 눈부신 여름 같은 계절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발렌슈타인이 지배하는 춥고 음울한 겨울이다……. 발렌슈타인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이 겨울은 끝나지 않겠지…….
...
우주력 795년 5월 7일, 11:00. 우주함대 총 기함, 헥토르. 미하마 사아야.
5월 6일 18시 23분에 전투를 개시하여, 이제르론 요새 주류함대가 동맹군의 배후를 찌르기 위해 덮친 것이 같은 날 6일 22시 38분이었습니다. 그 이후 약 12시간이 지납니다만,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정면의 제국군 원정군은 제5, 제10, 그리고 시틀레 원수의 직할함대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앙에 시틀레 원수, 우익에 제5, 좌익에 제10 함대입니다. 배후에서 온 주류함대에는 제1, 제12 함대가 대응하고 있습니다.
제국군 원정군도 후방에 약 1만 척의 함대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동맹령에서 찾아올 원군에 대응하기 위해서겠죠. 그 때문에 제국군 정면 병력은 4만 척 정도. 동맹군과 거의 같은 수이기에 교착상태가 되는 건 별 수 없는 일입니다.
부드러운 분위기가 총 기함 헥토르 함교에 풍기고 있습니다. 도저히 전투 중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만, 작전이 순조롭기 때문이겠죠. 유일하게 예상외였던 것은 뮈젤 중장의 존재입니다만, 그것도 작전 수행에 방해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발렌슈타인 준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함교의 회의탁자에는 시틀레 원수를 둘러싸고 마리네스크 준장, 와이드본 준장, 양 준장, 발렌슈타인 준장이 있습니다. 저와 그린힐 중위――이번 4월에 중위로 승진했습니다. 만세진급입니다――도 자리에 앉을 것을 허락 받았습니다. 다들 적당한 음료수를 마시며 화면과 전술 컴퓨터를 보고 있습니다.
“주류함대의 공격이 꽤나 격렬하군.”
“제1, 제12 함대를 자신 쪽으로 끌어오고 싶은 거겠지.”
“손대중을 하면 한 함대를 원정군 쪽으로 보내리라 생각하는 건가…….”
와이드본 준장과 양 준장이 전술 컴퓨터를 보며 대화하고 있습니다.
“역시 제1 함대는 조금 움직임이 둔하군.”
시틀레 원수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습니다. 원수의 표정은 조금 불만스러워 보입니다. 확실히 주류함대가 격렬히 공격하는 데에 반해 제1 함대는 조금 놀아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제12 함대가 같이 있지 않았다면 꽤나 고전했을지도 모릅니다.
“별 수 없겠죠. 제1 함대는 수도경비와 국내치안을 주임무로 해왔습니다. 제국군과의 전투경험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전경험은 전무에 가깝죠…….”
“…….”
마리네스크 준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발렌슈타인 준장도 마찬가집니다.
“가장 두통을 앓고 있는 건 쿠브르슬리 제독이겠죠.”
“그야 그렇겠지. 언젠가는 군의 최고봉에 오르리라 평가받고 있는데 여기서 넘어지면 좌천이니까 말이야. 거기다가 총사령부엔 상대가 누구든지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사내가 있고.”
양 준장의 말을 와이드본 준장이 야유하는 듯한 어조로 이었습니다. 발렌슈타인 준장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들 발렌슈타인 준장을 봤습니다만 준장은 완전 무시입니다. 그런 준장을 보고 시틀레 원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발렌슈타인 준장. 뭔가 말하는게 어떤가?”
“하이네센에 돌아가면 쿠브르슬리 제독에게 훈련에 힘을 쏟을 것을 권하는 것이 좋겠죠. 앞으로 제1 함대도 전장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듯한 어조에 시틀레 원수가 또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원수는 아마도 와이드본 준장에게 반론하라고 말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마도 일부러 그런 겁니다.
“이번엔 눈감아 준다는 건가. 쿠브르슬리도 필사적이게 되겠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매번 제5, 제10, 제12 함대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준장의 무뚝뚝한 대답에 시틀레 원수가 떫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원수만이 아닙니다. 다들 떫은 표정입니다. 다들, 함대사령관이 믿음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죠.
“알고 있네. 나도 그건 생각하고 있어.”
시틀레 원수에 말에 발렌슈타인 준장을 뺀 전원이 서로를 돌아봤습니다.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원수는 함대사령관을 바꿀 것을 생각하고 있다…….
저번엔 제4, 제6 함대 사령관을 교대했습니다. 이번에 교대하게 되는 건 누구인가? 제1 함대 쿠브르슬리 제독은 지금까지의 대화를 보면 그 지위에 머무를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2, 제3, 제7, 제8, 제9, 제11에서 고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대체 누가 그 후임이 될 것인지…….
쿠브르슬리 제독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다행이라 생각하겠죠. 여기서 교대하게 된다면 무능하단 낙인이 찍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앞으로 출세는 바랄 수 없습니다. 명백히 동맹군은 실력중시로 싸우는 집단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미하마 소령. 별동대가 오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되는가?”
시틀레 원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평소처럼 나이스 그레이입니다. 그린힐 중위도 때때로 “댄디하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8시간 정도면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앞으로 8시간이면 승패가 정해지겠군.”
원수가 중얼거리듯이 말했습니다. 제겐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들렸습니다.
“괜찮습니다. 저희들은 반드시 이깁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거겠죠. 와이드본 준장이 원수를 격려했습니다만, 원수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기지 않으면 곤란하네. 10만 척이나 되는 대군을 움직였으니까 말이야. 정부를 설득하는 것도 큰일이었어.”
“잘 되면 제국군 함정 약 7만 척, 병력 700만을 잡을 수 있습니다. 짜잘하게 함대를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비용 대비 효율로 말하자면 충분히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결과를 내놓으면 정부도 불평할 수 없을 겁니다.”
냉정한 목소리였습니다. 마치 경영 컨설턴트 같은 말투입니다. 발렌슈타인 준장의 말에 시틀레 원수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네가 부럽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냉정할 수 있는지……. 제국군은 이쪽의 목적을 눈치 챘을까? 발렌슈타인 준장.”
“눈치 챘다 하더라도 문제없습니다. 그들은 이쪽의 예정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발렌슈타인 준장이 냉혹하다고 해도 좋을 어조로 원수에게 답했습니다. 원수가 또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양 준장이 쓴웃음을 띄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싸움을 원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는, 반드시 구해야 하는 곳을 공략하라, 인가…….”
고대의 병법서, 손자의 한 구절입니다. 이쪽이 싸움을 바란다면, 이쪽이 싸움을 걸었을 때, 그곳을 공격하면 적이 반드시 구출해야만 할 곳을 공격하라는 말입니다. 이 작전의 설명을 했을 때, 발렌슈타인 준장이 알려줬습니다.
“처음엔 이제르론 요새, 다음은 원정군, 제국군은 그 어느쪽도 내버려둘 수 없다……. 훌륭해. 발렌슈타인 준장.”
양 준장의 감탄에 발렌슈타인 준장은 말이 없습니다. 칭찬을 받았으니 조금은 기뻐해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아무래도 미묘합니다.
그린힐 중위도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발렌슈타인 준장이 양 준장을 배척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 발렌슈타인 준장이 양 준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럴 리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조금 더 양 준장이 발렌슈타인 준장에게 협력해 줬으면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전도 거의 대부분 발렌슈타인 준장이 생각했습니다. 저와 그린힐 중위가 도왔습니다만, 작전 외에도 밴플리트 4=2 기지의 철거, 함대 동원계획, 보급계획 등등도 큰일이었습니다.
와이드본 준장이 작전을 계획서로 정리하고, 그걸 마지막에 양 준장이 확인했습니다. 양 준장이 사무처리를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조금 더, 라고 생각하고 맙니다. 발렌슈타인 준장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티타임은 그로부터 30분 정도로 끝났습니다. 양 준장은 가면을 취하기 위해 개인실로, 저와 발렌슈타인 준장은 저녁식사를 취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저녁식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일 순 없습니다. 저희들 다음으로 교대하여 와이드본 준장과 그린힐 중위가 저녁식사를 취합니다.
이대로 전투가 지속 된다면 아마도 한 번 더 식사를 취하고 가면도 취할 수 있겠죠. 그 다음엔 탱크배드 수면만이 휴식을 취할 수단이 될 겁니다. 별동대가 오기까지 앞으로 7시간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