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망명편(완결)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망명편. 제 56 화. 제 7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 (6)

추리닝백작 2015. 2. 13. 17:30


우주력 795년 5월 7일 19:00. 우주함대 총기함, 헥토르. 에리히 발렌슈타인.


  결국 찾은 곳이 여긴가. 사령부 참모가 전투 중에 살롱에서 시간 때우기……. 뭐하고 있는 건지. 용서받을 일이 아니군. 시틀레도 와이드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고 와라. 그런 거겠지. 뭐, 다행히 전쟁은 이기고 있다. 무리하게 내가 있을 필요도 없겠지.


  딱히 좋아서 7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죽일 필요가 있으니까 죽이는 거다. 뭐, 최종적인 목표가 화평이라는 걸 양은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한 거겠지. 사람을 죽이고 화평을 구하는가……. 외도의 극치. 아니, 가장 원시적인 해결법이라고 해야 할까. 양이 아니라도 얼굴을 찡그리겠지.


  알고는 있다. 양이 그런 녀석이라는 건……. 양은 전쟁이 싫은 것이 아니다. 전쟁에 의해 사람이 죽는 것이 싫은 거다. 그렇기에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말이지. 제국과 동맹을 비교하면 동원병력조차 압도적으로 제국이 유리하다고. 그런 상황에서 적병을 죽일 기회를 놓친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중에 고생하는 건 동맹이다. 그런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다른 사람 일이다. 더더욱 참모에 어울리지 않는군. 누구보다도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쓰려고 하지 않는다. 양의 입장에서 보자면 스스로 하지 않아도 내가 해준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참모는 스탭이다. 스탭은 몇 사람이든 있다. 모든 걸 자신이 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비상근 참모의 탄생이다. 양은 지휘관으로서 머리에 서는 수밖에 쓰임새가 없다. 네 판단 미스로 사람이 죽는다. 그런 입장에 있지 않으면 진심을 다하지 않는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다. 그런 인간인 거다. 어떻게도 되지 않는다.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내 마음도 모르고, 라고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침울해진다고……. “망명자에게 갈 곳은 없다. 이용할 만큼 이용하면 된다. 그 사이에 높은 곳에서 구경인가? 좋은 신분이다.”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양은 그런 비겁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겁한 건 그런 말을 한 내 마음이다. 나중에 사과할까……. 사과해야겠지. 난 양을 더러운 말로 부당하게 책망했다. 와이드본이 말리지 않았으면 대체 무슨 말을 했을지…….


  “여기에 있었습니까? 준장.”

  사아야가 눈앞에 있다. 아무래도 날 걱정해서 온 것 같다. 괜한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이 이러니 말이지……. 바보 같은 아이를 돌보게 돼서 고생이군. 사아야.


  “양 준장에게 심한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네요. 나중에 사과하는 게 좋겠어요.”

  “그렇게 하죠.”

  내 대답에 사아야는 쿡하고 웃음을 흘렸다.


  “슬슬 폭발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계속 무리하고 있었으니까요.”

  “…….”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뭐든지 혼자서 하려고 한다. 준장의 나쁜 버릇이에요.”


  그럴 생각은 없다.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한다고. 하지만 라인하르트의 무서움을 어떻게 설명하면 되지? 그가 황제가 된다고 해도 누구도 믿지 않을 거다.


  “양 준장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니까 답답하다. 아닌가요?”

  “그렇지요. 하지만 별 수 없습니다. 양 준장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또 혼자서 무리하지요.”

  “…….”


  사아야는 이번엔 곤란하단 듯이 미소를 띠웠다.

  “그린힐 중위도 걱정하고 있어요.”

  “걱정? 프레데리카가 나를? 뭔가 착각이겠지? 난 의심쩍은 표정을 지은 거겠지. 사아야가 이상하단 듯이 웃었다.


  “그게 아닙니다.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건 양 준장에 대한 거에요. 준장이 양 준장을 언젠가 배척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어요. 두려워하고 있다구요. 발렌슈타인 준장. 준장이 그렇게 스스로 참고만 있으니까…….”


  바보 같은 이야기다. 어째서 내가 양을 배척하나? 양을 좋아한다고 해서 날 적대시하는 건 그만뒀으면 좋겠다. 라인하르트를 상대하는데 비장의 카드를 스스로 버리는 바보가 어디에 있나?


  “그런 일은 하지 않아요. 뮈젤 중장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인물이 동맹에 있다면 양 준장뿐입니다. 전 뮈젤 중장에게도 양 준장에게도 미치지 못합니다. 전 양 준장의 힘을 필요하고 있어요.”

  내 말에 사아야가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준장뿐이에요. 그런 말을 하는 건. 다른 사람들은 준장이라면 뮈젤 중장에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바보냐? 난 천재가 아니다. 원작지식을 잘 써먹고 있을 뿐이다. 이 녀석도 저 녀석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내가 독창성 따윈 눈꼽 만큼도 없는 범재라는 건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미하마 소령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사아야는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보였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준장의 말이 빗나간 일은 없었지만, 뮈젤 중장의 천재성을 본 적도 없으니까요.”

  “…….”


  그렇다는 거지. 아직 라인하르트의 천재성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원작에서도 그가 천재라는 걸 다들 인식한 건 아스타테 이후였다. 내가 소란을 피워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몇 사람인가가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충 그 정도겠지. 그래도 원작보다는 낫다. 양도 아직 라인하르트의 천재성을 진정한 의미로 인식하고 있다곤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절박함이 없다. 그게 괜히 더 날 답답하게 만든다.


  “양 준장입니다.”

  살롱 입구에 양이 있다.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이런이런. 저쪽도 사과하러 온 것 같다. 와이드본에게 무슨 말을 들었나……. 헌데,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사아야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맘에 들지 않았다.


...


우주력 795년 5월 7일 19:00. 우주함대 총기함, 헥토르. 프레데리카 그린힐.


  “꽤나 엄격하게 말하더군.”

  “그렇습니까? 삼가는 편이 좋았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뭐, 다소는 괜찮겠지. 조금은 작전참모로서 일해주지 않으면 이쪽도 곤란해.”

  시틀레 원수와 와이드본 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 준장은 함교를 나갔다. 아마도 발렌슈타인 준장에게 사죄하러 간 거겠지. 잘 되면 좋겠지만…….


  와이드본 준장이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답답한 겁니다. 발렌슈타인이 진정한 의미로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아닙니다. 양입니다. 그만한 실력도 있죠. 그런데……. 저래서야 발렌슈타인이 불쌍합니다.”


  “맘에 들지 않는 겐가? 어째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가 하고.”

  “뭐, 다소 그런 점도 있습니다.”

  “엉뚱한 화풀이는 좋지 않군.”

  시틀레 원수가 쓴웃음 섞인 말로 와이드본 준장을 꾸짖었다. 와이드본 준장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그렇지요. 나중에 사과하겠습니다.”

  “승전이라는 것도 곤란한 일이군. 여유가 넘쳐서 참모들이 전쟁보다도 집안싸움에 정신이 팔리니.”

  “집안싸움입니까? 확실히 곤란하게도 발렌슈타인이 함께 있으면 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여유롭기도 하겠죠.”


  와이드본 준장이 익살맞은 말투로 말하자 시틀레 원수가 큰 목소리로 웃었다.

  “뭐, 확실히 질 것 같지 않군.”

  와이드본 준장도 웃는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을 하고 있다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좋다. 그럴 정도로 동맹군은 우세하다.


  “양 준장의 일이네만, 걱정할 필요는 없네. 언젠가 그에겐 충분할 정도의 일을 하도록 만들 걸세. 지금은 그 전의 준비기간이라는 거겠지.”

  원수의 말이 와이드본 준장이 “호오.”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생각이 있으신가 보군요.”

  와이드본 준장의 질문에 시틀레 원수가 끄덕였다. 원수는 악동 같은 웃음을 보이고 있다.

  “이 싸움이 끝나고 나서의 일이네만. 기대해줬으면 좋겠군.”

  “과연. 이거 기대되는군요. 그럼 이 싸움을 빨리 끝내야겠습니다.”

  “그렇겠군.”


  시틀레 원수는 양 준장을 버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는커녕 앞으로 더욱 더 준장을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준장이 부당한 취급을 받을 일은 없다. 함교에 양 준장이 돌아왔다. 그 뒤에 발렌슈타인 준장과 미하마 소령이 보였다.


  미하마 소령은 우습다는 듯한, 그리고 양 준장과 발렌슈타인 준장은 두 사람 모두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잘 화해한 것 같다. 미하마 소령, 감사합니다.


...


제국력 486년 5월 9일 14:00. 이제르론 요새. 토마 폰 슈톡하우젠.


  “그래서 원정군, 주류함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군. 반란군은 총세 10만 척의 함대로 아군을 공격하고 있네. 게다가 원정군은 앞뒤로 협격당하고 있는 거다.”


  내 말에 스크린 너머의 청년은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한 순간 망설이다가 다시 질문했다.

  “……주류함대를 돌아오게 할 순 없습니까?”


  저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원정군에서 주류함대에 철퇴하도록 연락이 있었다고 하네. 하지만 현실적으로 주류함대도 2배의 병력을 가진 반란군을 상대하고 있다. 간단하겐 철퇴할 수 없지. 아니, 상대가 철퇴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지 않아. 게다가 젝트 제독 자신이 철퇴하는 데에 저항감이 있겠지.”


  내 말에 뮈젤 중장이 한숨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녀석들의 생각은 확실하네. 제국군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야. 섬멸하려는 거다. 사실은 철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당초 함정은 아닌가하고 생각했지만 반란군의 철퇴는 함정이 아니었다. 제국군 원정군은 확실히 이제르론 회랑을 통해 요새로 귀환 중이었다. 반란군은 함대를 둘로 나눠 원정군과 주류함대를 상대했다. 승기는 있었다. 원정군, 주류함대, 어느 쪽인가가 반란군을 돌파하면 7만 척의 반란군을 격파할 수 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역시나 함정이었다. 반란군은 거기에 더해 이제르론 회랑 밖에서 2개 함대, 3만 척의 대군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원정군, 주류함대, 합계 6만 5천 척의 제국군은 극히 위험한 상황에 있다.


  지금, 반란군은 통신방해를 행하고 있지 않다. 이제르론 요새엔 원정군, 주류함대의 비명과도 같은 전황보고가 들어오고 있다. 그 때문에 사령실에 있는 자들 모두의 얼굴이 창백하다. 주류함대와 사이가 나쁘다곤 해도 누구도 그들이 섬멸되는 것을 원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함대가 섬멸되면 다음 공격대상은 요새다.


  “원정군은 메르카츠 제독이 후방을 지키고 있다는 것 같다. 지금은 아직 버티고 있지만, 메르카츠 제독이 무너지면 원정군은 단숨에 무너지겠지.”

  어떻게도 할 수 없다. 메르카츠 제독은 2배의 반란군을 상대하고 있는 거다. 원정군의 배후를 지킨다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현실로 보자면 총알받이나 마찬가지다.


  원정군의 배후를 반란군에게 노출시킬 순 없다. 전술행동은 극히 제한되어있겠지. 단지 계속 지킬 뿐이다. 격침되는 아군을 갈책하며 조금이라도 붕괴를 늦추고 있을 뿐이다. 괴롭고 비참한 싸움이다. 아마도 메르카츠 제독에게 있어선 최후의 싸움이 되겠지만, 그게 이러한 싸움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버텨주지 않으면 안 된다. 원정군이 1분 1초라도 길게 적을 묶어줘야 한다. 그것이 원정군에게 있어 얼마나 괴롭고 비참한 일이라 할지라도, 이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기 위해선 원정군의 희생이 필요하다.


  “뮈젤 중장, 경이 이제르론 요새에 도착하는 건 14일로 틀림없는가?”

  틀렸다고 말해주게. 좀 더 빨리 도착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어딘가 기적을 바라고 있다…….


  “틀림없습니다. 유감스럽습니다만, 저희들이 이제르론 요새에 도착하는 건 아무리 서둘러도 그게 한계입니다.”

  “알겠다. 경의 증원을 기다리지.”


  그걸 계기로 뮈젤 중장과의 통신을 끝냈다. 뮈젤 중장은 14일에 온다. 그렇다면 원정군에겐 적어도 12일까진 버텨줘야만 한다. 앞으로 3일. 도저히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한숨이 나올 것 같다.


  “사령관 각하. 원정군에게서 연락이.”

  “뭐라고 하는가?”

  “후방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메르카츠 제독이 전사했습니다.”


  오퍼레이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눈앞이 컴컴해졌다. 후방이 무너졌다고 한다면 원정군의 괴멸은 시간문제겠지. 일단 틀림없이 뮈젤 중장은 때맞춰 오지 못한다…….


  “뮈젤 중장에게 연락을……. 원정군의 후방이 무너졌다. 메르카츠 제독, 전사.”

  서두르도록, 이라곤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때맞춰 올 수도 없다. 제국 최대의 위기가 이제르론 요새에 닥치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