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발렌슈타인 이전) : 어리광쟁이 소동기(1)
제국력 487년 4월 25일. 오딘, 로이엔탈 저택. 오스카 폰 로이엔탈.
이상하다. 나는 집에서 자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트리스탄의 함교에 있다. 이상하다. 절대 이상하다. 이건 꿈이다. 꿈이 틀림없다…….
...
신제국력 2년 6월 18일. 로이엔탈 함대기함, 트리스탄. 오스카 폰 로이엔탈.
“각하. 이제 곧 하이네센에 도착합니다.”
베르겐그륀의 말에 나는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무뚝뚝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오랫동안 함께 한 사이다. 베르겐그륀도 익숙하다.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신영토 총독. 그것이 내 새로운 직무다. 구 자유행성동맹령의 통치 책임자. 각 상서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책임은 황제에게만 진다. 이끄는 전력은 4개 함대, 5만 5천척. 지금 현재, 나만큼 커다란 권한을 가진 인간은 황제 라인하르트를 빼면 누구도 없다. 아마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곧 프라우 로이엔탈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경이 사과할 일이 아니야. 게다가 나와 그녀도 군인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어. 신경 쓰지 마라.”
“예.”
프라우 로이엔탈. 다시 말해 나의 아내지만. 옛 성은 발렌슈타인이라 한다. 에리카 발렌슈타인 상급대장. 권한은 나보다도 작을 텐데 영향력은 나보다도 크다는 말도 안 되는 여자다.
내가 이 여자와 결혼한 건 당연하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사정에 의해 별 수 없이 결혼하게 되고 말았다. 신영토 총독 취임 조건이 결혼이었던 거다. 조건을 황제에게 제안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친우일 터인 미터마이어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진지했다.
“경의 여성편력 때문에 하이네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무슨 바보 같은.”
그런 걸로 폭동이 일어난다면, 구제국에선 폭동따위 일상다반사였겠지.
“농담이 아니야. 신영토 사람들에게 있어 경은 본질적으론 적이다. 경에게 있어선 별일 아닌 사정이라도 그들은 경이 권력으로 여자들을 희롱하고 있다고 볼지도 몰라.”
“내가 여자를 꼬신 게 아니야. 여자가 날 꼬신 거다. 희롱하다니, 이거 억울하군.”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도 말인가?”
“…….”
“경을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 잊은 건가?”
“…….”
잊었을 리가 없다. 나는 한 번 반역 혐의를 받았었다.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 대역죄인 리히텐라데 후작의 일족. 나는 어리석게도 그 여자를 집에 가둬두고 있었으나, 그것을 랑에게 들켜 모반혐의를 받았다.
그때 나를 도와준 것은 에리카 발렌슈타인이었다. 케슬러 헌병총감을 움직여 랑, 오벨슈타인의 음모를 분쇄했다. 그 두 사람은 파면되고, 나는 신영토 총독을 명받았다.
결국 저 사건은 예보녀와 케슬러가 저 두 사람을 부수기 위해 이용했을 뿐이었다. 뭔가를 이유로 아군의 발을 걸고 넘어지려 한 두 사람을 제거한 것이다. 그런 사정이 없었다면 케슬러가 날 구하기 위해 움직이리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니 결혼하라는 거다. 기혼자에 신혼이라면 여자들도 포기하겠지.”
“…….”
바보인가? 이 녀석은. 그런 걸로 포기한다면 세상에 불륜 따위 일어날 리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으나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신영토 총독 취임 조건은 결혼이라는 농담과도 같은 현실이 일어났다. 아마도 심술이겠지.
신영토 총독 지위를 그냥 날리는 건 아깝다. 형태만이라도 결혼을 할까 생각했지만, 이게 잘 되지 않았다. 모든 여자가 사귀는 건 괜찮지만 결혼은 싫다는 거다. 나는 연인으로선 좋지만 함께 가정을 꾸리기엔 좋지 않다는 듯하다. 웃기지 마라. 너희들도 가정에 얼마나 어울린다는 거냐! 어차피 요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겠지.
내가 결혼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는 건 바로 모두가 알게 되었다. 모두 동정하기는커녕 결혼도 못하고 신영토 총독도 될 수 없지 않은가. 인기는 있으나 사랑은 받지 못하는 로이엔탈 제독이라며 웃음거리로 삼았다. 이 녀석도 저 녀석도 글러먹은 녀석들뿐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예보녀, 에리카 발렌슈타인에게 의지했다. 절반쯤 자포자기였다. 이 여자는 내 천적이다. 이 여자만은 손을 대지 않는다. 그렇게 결정했지만 별 수 없었다. 형태뿐인 결혼이다. 그거라면 이 여자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손은 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부탁했다.
의외로 예보녀는 간단히 승낙했다. 놀랍게도 저쪽이 먼저 형태뿐인 결혼입니다. 그래도 좋습니까하고 물어왔다. 뭔가 농담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상대도 곤란하고 있던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청혼을 받았으나,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에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결혼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평화가 찾아오고 거절할 구실이 없어지고 말았다. 내 청혼은 상대방에게 있어서도 바라던 바였던 것이다.
혼인신고를 카이저에게 보고하니 그때부터 난리였다. 군에 있었을 때는 “로이엔탈 바보자식”, “우리들의 에리카님에게 독니를 박다니.”같은 이유도 알 수 없는 노성이 일어났다. 카이저가 칙령으로 우리들의 결혼을 인정한다는 성명이 나오지 않았다면 페잔에서 피의 비가 내렸겠지.
결혼이 인정되니 예보녀는 신영토 부총독이라는 지위를 받아 하이네센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그녀에겐 함대가 주어졌다. 총세 2만 척. 나보다 많은 건 무슨 일이냐하고 생각했으나 미터마이어가 말하길 어느 가정에서나 남편보다 부인이 실권을 쥐고 있다고 한다. 그다지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급료 전부를 에바에게 주고, 용돈을 받아서 쓰고 있지만 전혀 불만 없다고.”
“…….”
기쁘게 말하지 마라. 바보. 그러니 너는 바람 한 번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거다. 네가 그럴 생각이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될 수 있을 것을. 나는 탄식을 내뱉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예보녀에게 2만 척이라는 함대가 주어진 이유는 대충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내가 반란을 일으키려 해도 예보녀가 2만 척을 가지고 있으면 억누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겠지. 바보 녀석이. 저 여자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없는 건가. 저 여자가 그럴 생각만 한다면 신영토군 5만 5천척이 한 치의 분란도 없이 지지하겠지. 내가 반대해도 무시할 것이 틀림없다.
결혼식을 어떻게 하고 싶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감사하게도 예보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보다 신영토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덕분에 나는 지금 이렇게 트리스탄에 있을 수 있다. 감사한 이야기다.
...
신제국력 2년 6월 18일. 오스카 폰 로이엔탈, 신영토 총독에 취임.
나와 예보녀는 총독부에서 살고 있다. 섣불리 집 같은 걸 빌렸다간 경비가 큰일이다. 총독부로 출근과 퇴근, 더욱이 부재중일 때의 집 관리 등등 경비에 부담을 가게 만든다. 우리들 이외에도 베르겐그륀 같은 상급대장들은 총독부 내에 주거를 가지고 있다.
“어떻습니까? 오늘 맛은.”
“음. 맛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내가 칭찬한 건 저녁식사다. 이건 결코 아부가 아니다. 함께 살기 시작하고 2주일 지나지만 예보녀, 아니 아내가 만든 요리는 실로 맛있다. 케이크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평범한 요리도 훌륭하다. 단언하지만, 프라우 미터마이어에게도 지는 일은 없다. 살찌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내가 칭찬한 걸로 안심한 거겠지. 예보녀도 한 입 먹고 납득한 것 같다.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오늘 저녁은 메인 요리로 글라슈와 슈페츨레와 샐러드, 수프로 콜라비의 크림수프, 디저트로 복숭아가 들은 쿼크다. 거기에 적포도주가 곁들어있다.
나는 이 여자와 식사를 하는 것이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다. 뭐라고 해도 이 여자와 식사는 질리는 일이 없다. 다른 여자와 이야기할 거라곤 패션이나 식사, 나머진 기껏해야 소문 등등이지만, 이 여자라면 정치, 군사, 경제, 요리, 뭐라도 가능하다.
게다가 이 여자와 대화는 절대로 필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론 신영토 통치를 맡고 있으나 예보녀는 신영토의 치안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신영토에서도 그녀의 역량에 빚지고 있는 면이 크다. 행정과 치안유지 책임자의 의견교환 장소, 그 하나가 이 식사였다. 솔직히 이만큼 믿음직한 부하는 없다. 잘도 결혼한 셈이다.
단 하나, 이 식사에서 불만이 있다면 그녀가 술을 마실 수 없는 거겠지. 그것만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애초에 취하게 만들어서 뭘 어떻게 하리란 소리도 있다. 뭐, 주정뱅이 알코올중독 여자보단 낫다. 거기에 취사, 세탁, 청소, 일, 전부 완벽하게 해낸다. 이 여자가 어째서 결혼하려하지 않은 건지. 그리고 하필이면 나와 계약결혼을 해버린 건지, 전혀 모르겠다.
식사가 끝나면 난 입욕시간이다. 그 사이, 예보녀는 뒤처리를 하고 있다. 예보녀의 입욕은 그 뒤다. 샤워만이 아니라 욕조에도 들어가는 듯하다. 그녀는 꽤 느긋하게 입욕하는 것 같다. 때때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나는 이 여자와의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뭐, 밤일 쪽은 없으니까 가정부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당연하지만 불만도 있다.
“에리카. 너, 밤에는 운동복을 입고 자는 건가.”
“그런데요?”
“그거 안 되겠군.”
나는 굳이 얼굴을 굳혔다. 예보녀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째선가요? 꽤 편리합니다만.”
“넌 내 아내다. 그런 색기 없는 운동복 등으로는 내 센스가 의심받겠지.”
그렇다. 설령 계약결혼이라도 내 센스가 의심받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별로 누가 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모른다고. 부하에게 네가 운동복을 입고 있는 모습 따위 보이고 싶지 않아.”
“당신의 부하는 신혼가정에도 밀고 들어옵니까?”
분명 그렇다. 신혼가정에 밀고 들어올 바보 같은 부하 따위 최전선행이겠지. 하지만 평화롭게 된 지금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오벨슈타인의 밑에서 위장병이라도 걸리게 만들까.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지금은 어디에 있지? 어딘가의 보급기지라고 들었는데……. 아니, 지금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일에 열심힌 녀석이 많으니까 말이지. 긴급시에는 밀고 들어올지도 몰라. 베르겐그륀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과연. 그렇군요.”
예보녀는 응응하고 끄덕였다. 좋아. 찬스다. 여기에서 한 번에 공격한다.
“네글리제를 사 왔다. 그리고 가운도. 오늘 밤부터 그걸 써.”
“…….”
“그리고 속옷도 사왔다.”
“예에, 속옷입니까?”
나의 아내, 예보녀여. 그런 허탈한 표정을 짓지 마라.
“네겐 하얀 것밖에 없는 듯 하더군.”
“어째서, 그런 걸 알고 있죠?”
그녀는 의심쩍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딱히 옷 갈아입는 걸 본 것이 아니라고.
“세탁물을 보면 안다. 네 속옷은 하얀 것뿐이다.”
“…….”
“빨강, 파랑, 녹색, 황색, 표범무늬, 그리고 끈도 사왔다. 하이네센은 오딘보다도 속옷 종류가 풍부하군. 적당히 골라서 써라.”
예보녀가 눈썹을 찌푸리고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고른 건가요?”
“그렇다. 신장 167센티미터. 체중 51킬로그램. 사이즈는 위에서 89, 57, 87, D컵이다. 내 눈에 잘못은 없을 거다. 문제는 없다.”
“……변태.”
에리카는 조금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날 질책했다.
이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악담을 했다! 이것이 보고 싶었던 거다. 나의 센스라는 건 구실에 불과하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 여자 앞에서 패배감을 맛봐왔다. 어떻게든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이 여자에게 이기고 싶다고 생각한 거다.
그것이 드디어 이뤄졌다. 내가 발견한 이 여자의 약점은, 여자다운 꾸밈을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지. 참으며 3년, 견디며 2년, 은인자중의 5년간이었다. 저 굴욕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미터마이어. 나를 칭찬해주게. 나는 드디어 이 여자에게 이긴 거다!
나는 어리석게도 이 여자에게 이겨서 우쭐거렸다. 이 여자는 당한 채로 가만히 있을 여자가 아니다. 그걸 알고 있는데 정말 작은 일승에 취해버렸다. 당연하지만 그녀의 복수는 용서가 없었다.
복수가 행해진 건 일주일 뒤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간, 그녀는 내가 사 온 네글리제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속옷은 확인할 수도 없기에 매일 아침 그녀에게 색을 묻고 있다. 그녀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이 실로 즐거웠다.
그 날 직장에 가니 모두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존넨펠스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고, 슐러는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베르겐그륀, 모두 어찌된 일인가?”
베르겐그륀은 곤란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
“베르겐그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라. 이건 명령이다.”
“실은 그, 전자신문에 묘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묘한 기사? 나는 일단 PC를 세우고 조사했다. 바로 알았다. 1면 톱, 액세스 랭킹 1위의 기사다. “신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는 어리광쟁이.” 취재기자: 더스티 아텐보로.
내가 저번, 에리카를 위해 네글리제, 가운, 속옷을 산 것이 적혀 있다. 하이네센에서도 유명한 여성 속옷점에 내가 가서 네글리제, 가운, 속옷을 즐겁게 골랐다고 점원이 증언했다고 한다.
“부인께서 언제나 일을 열심히 하시기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다지 멋에 신경 쓰지 않기에 아름답게 치장해주고 싶다고. 예? 쓰리사이즈 말입니까? 그건 손님의 개인정보이기에 조금……. 단지, 부인께선 무척 좋은 몸매셨습니다. 신총독께서 도취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분명 점원이 곁에 와서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귀찮기에 적당히 말하고 쫓았지만, 괜한 걸 말하지 마라! 하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기자는 예보녀에게도 취재하러 갔었다.
“로이엔탈 부인은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연령은 26세지만 조금 더 젊게 보인다. 부드러운 웃음을 띠고, 이쪽의 질문에 정중히 대답했다. 신영토의 통치방침, 민주공화제에 대해서 즐거운 취재가 가능했던 건 부인의 인품에 의한 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신총독이 선물한 속옷에 대해서 물어보니 부인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아무래도 신총독은 매일 부인의 속옷을 확인하는 것 같다. 갈아입히기 인형놀이라도 하는 걸지도 모른다. 부인은 작은 목소리로 ‘남편은 어리광쟁이에요.’라고 부끄럽게 말했다.”
“…….”
“괘씸한 기사입니다. 엄중히 주의하죠. 그리고 프라우 로이엔탈에게도 주의해야합니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각하의 위신이, 더 나아가 제국의 위신이 걸려있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각하?”
“이 기사 내용대로야. 베르겐그륀, 나는 어리광쟁이다.”
“예에?”
베르겐그륀. 그렇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지 마라. 이 내가,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이 기사를 부정하고 지워버리다니. 그런 한심한 짓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지워버린다 해도 누구도 믿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꼴을 볼 뿐이다. 나는 그런 한심한 꼴을 견딜 수 없다.
“나는 딱히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야. 다른 여자라면 그럴지 몰라도 자신의 아내에게 갈아입히기 인형놀이를 한다고 해도 어떤 문제도 없다. 그렇지 않나?”
“예에. 그야 그렇습니다만…….”
베르겐그륀은 눈을 부릅뜨고 놀라고 있다.
“베르겐그륀. 이 하이네센은 속옷 종류가 풍부하다. 경도 시험해보도록.”
“……시험, 말씀이십니까.”
어딘가 모르게 곤란한 표정이 우스웠다. 조금 놀려볼까.
“그 표범무늬 말이네만. 그건 좋았지. 정글 속에서 탄력 좋은 암표범이라도 잡은 기분이 된다. 자신이 자유분방해지는 기분이 되는 거다.”
“……자유분방.”
베르겐그륀.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했나? 에리카인가?
“끈도 좋다고. 벗길 필요가 없으니 말이야. 끈을 비끼기만 하면 된다.”
“……과연. 깊이가 깊군요.”
“그렇다. 바보취급 할 수 없어. 겨우 속옷, 그러나 속옷이다.”
베르겐그륀은 계속 끄덕이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존넨펠스는 팔짱을 끼고, 슐러, 레켄돌프는 어딘가 아연해하고 있다. 어딘지 모를 우월감이 내 가슴에 들어찼다. 이 녀석도 어리광쟁이가 되면 좋은 거다.
그렇다 해도 좋은 잽이지 않은가. 나의 아내여. 이걸로 나는 자타공인의 어리광쟁이다. 아마도 3일만 지나면 신영토만이 아니라 제국 전토까지 소문이 퍼지겠지. 이제 누구도 날 로이엔탈이라 부르지 않을 거다. 어리광쟁이다. 어떻게 될지는 상상할 수 있다.
“신영토에서 보고가 오지 않는다. 어리광쟁이는 뭘 하고 있는 건가.”
“폐하. 진정하세요. 어리광쟁이는 인형놀이 때문에 바쁜 겁니다.”
“에잇. 이 무슨 일인가.”
“잘 되지 않았습니까. 폐하. 어리광쟁이가 인형놀이에 바쁜 동안엔, 우주는 평화롭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카이저린.”
“어리광쟁이가 겨우 몰입할 수 있는 걸 찾은 겁니다. 반란이 일어날 걱정도 없어졌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카이저린.”
“진심입니다. 이 페잔에서도 속옷을 보내도록 하죠. 어리광쟁이는 분명 폐하의 상냥함에 감격하여 충의의 마음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한 번 승리한 대가는 터무니없이 큰 것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패배를 인정해선 안 된다. 전쟁에선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솔직히 말해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말하는 걸로 자신을 고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