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역할을 끝낸 신의 아이

역할을 끝낸 신의 아이 : 재상과 연인

추리닝백작 2015. 2. 13. 19:09


  신의 아이가 열을 내서 쓰러졌다는 보고가 왔다. 하지만 약사를 파견할 일은 없었다. 신의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시녀가 약초만을 얻으러 왔기 때문이다.

  신의 아이를 위해서 이전부터 약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신의 아이가 지금까지 약사를 필요할 상태가 된 적이 없기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의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는 저 시녀가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저 시녀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약사도 아닌 저 시녀가 나설 정도면 그렇게 심한 상태도 아닌가."


  일단은 안심한다. 그리고 국왕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향한다. 지금 시간이라면 집무실에 있을 터이다.

  시간이 남으면 방에 틀어박힌 총희의 상태를 보러 가기 때문에, 집무실에 없어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총희.


  마법단장이 보여준 총희와 신의 아이의 대화를 생각한다.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그건 알고 있었다.

  신의 아이가 상냥하기에 어리광을 부리고, 신의 아이가 약한 부분에 들러붙어 있다. 그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서 신의 아이가 필요하다고 신의 아이의 마음을 상처입혀서라도 묶어뒀다.


  ……나, 는! 나는 여기 밖에 있을 곳이 없는데! 전부 내뱉을 수 있을리, 없는데! 제멋대로 말하지 말라고!!!


  그렇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신의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미소짓고 있을 뿐. 그 이유도 알고 있다.

  단지 실제로 본인의 입에서 듣는다면, 알고 있었다는 스스로의 생각이 굉장히 가벼운 것이었다고 느껴진다.


  정말로 알고 있었던 걸까?

  알고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 것은 아닐까? 신의 아이를 계속 상처입혀 온 자신을 정당화한 건 아닐까?


  "알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서 신의 아이를 계속 상처입힌다. 이 선택을 되돌릴 순 없다.

  단지.


  신의 아이를 신경쓴다는, 그런 지금까지의 자신으로 있을 순 없다.

  원한을 받고 싶지 않다. 그런 보신의 마음을 벗겨내지 않으면 안된다.


  너무나도 늦은 결의지만.


...


  아침이 밝았다.

  단지 자기혐오에 빠져 울고 있었을 뿐인 밤이 끝났다.

  창문에서 내려오는 빛이, 저 장대비가 물러났다고 알려준다.


  흔들흔들하고 일어난다.

  테라스 창을 열어서 밖으로 나간다. 부드러운 바람이 조금 차갑다.

  마치 어제의 비가 거짓말처럼 조용한 정원을 내려보고, 문뜩 생각났다.


  지금까지 자신은 뭘하고 있었던 걸까하고.


  택한 것은 자신이다. 과정은 어쨋든, 그 손을 잡은 것은 자신이다. 아내가 있는 사람과 함께 길을 걸을 것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곁에 있을 뿐이었다. 주변의 눈을 두려워했을 뿐이었다. 결국엔 신의 아이에게 구원을 바란다는 어리석은 짓까지 했다.


  "그걸로 누가 인정해준다는 걸까. 누가 죄를 사해준다는 걸까."


  상처입은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선택한 거라면 할 수 밖에 없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카셰의 존재를 안 신의 아이는 책망하지 않았다. 미소로 축복해 주었다. 그 미소 아래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숨기고.

  그렇다면 거기에 합당한 것을 돌려줘야 했다. 남편을 뺏은 여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남편에게 붙어 있는 모습에, 신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편에게 배신당해도 왕비로서의 책무를 계속해 온 신의 아이에게, 그런 카셰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을까?


  "나, 는."


  난간에 떨어지는 눈물.

  한심하다.

  신의 아이는 웃고 있었는데.

  괴로워도 웃고, 괴로워도 왕비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왕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일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카셰와는 달리. 매일, 매일.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자신은 뭘 할 수 있을까?


  "……아니, 야. 할 수 있을, 지가 아니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언제나 지금 이 상태로 있을 수 밖에 없다. 신의 아이를 저렇게까지 몰아붙인 나 자신인 채로.


  "사함을 구하는 짓은 이제 하면 안돼. 그런 자격따위 나에게 없어. 내가 선택한거야. 계속 짊어지고 가야."


  꽉하고 난간 위에 올려 둔 양손으로 주먹을 만든다.

  사이에 떨어지는 눈물.


  괴롭다.

  가슴이, 괴롭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어리광을 부릴 뿐인 자신에게서 벗어나야한다.


  레가트에게, 신의 아이에게, 더 이상 어리광 부려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