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망명편. 제 94 화. 종언
우주력 795년 9월 25일. 제1특설함대 기함, 하소르. 요펜 폰 렘샤이트.
하소르의 함교에서 세 사람의 군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사람은 장신, 한 사람은 중간 키에 중간 체격,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작은 체구…….
“알겠나? 발렌슈타인. 난 납득한 게 아니라고.”
장신남의 목소리에 작은 체구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무리 쥐어짜도 이 이상은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요.”
“정말로 그렇다면 좋겠지만. ……양, 돌아갈까.”
“……그러지.”
장신남과 중간남이 작은 체구의 남자를 두고 걸어갔다.
두 사람이 함교에서 나간다. 그 모습을 작은 체구의 남자, 발렌슈타인은 잠자코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휴하고 한숨을 내쉰다. 흠, 지쳐있나……. 발렌슈타인이 이쪽을 향해 시선을 보낸다. 혹은 신경 쓰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신가요? 렘샤이트 백작.”
“아니, 잠시 경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네만……. 아무래도 지쳐 있는 것 같군.”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대화는 길어지겠지. 오늘이 아니더라도 좋은가……. 지금도 저 두 사람에게 두 시간 가까이 잡혀 있었다. 육체적인 피로는 둘째치고 정신적 피로는 심하겠지. 내일로 미룰까…….
“회의실로 가시겠습니까?”
“내일로 미뤄도 좋네만…….”
내 말에 발렌슈타인이 웃음을 띠웠다.
“내일은 내일 일로 이러저러 바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사양할 필요 없어요.”
“조금 길어질 것 같네만?”
“상관 없습니다.”
“……그럼 회의실로 가도록 할까.”
발렌슈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 저도 동석하겠습니다.”
말을 꺼낸 것은 미하마 중령이었다.
“두 사람만 계시면 뒤에 쓸데없는 의심을 살지도 몰라요.”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발렌슈타인에게 시선을 향하자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그렇겠군요. 동석하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겠군. 그러는 편이 좋겠지.”
“감사합니다.”
불편한 일이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국과 동맹은 전쟁 중이고 발렌슈타인은 망명자다. 당연한 주의겠지. 그녀는 페잔에서 발렌슈타인과 행동을 함께 한 여성이다. 그럭저럭 믿어도 좋을 것이다.
발렌슈타인이 발걸음을 띠었다. 그 뒤를 내가 걷는다. 더욱 그 뒤를 미하마 중령이 따랐다. 발렌슈타인은 무방비할 정도로 가련한 등을 보이고 있다. 나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혹은 미하마 중령을 신뢰하고 있다는 걸까. ……묘한 자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회의실에서 나와 발렌슈타인이 마주 앉고, 미하마 중령이 발렌슈타인 옆에 앉았다. 중령이 음료수를 준비하는 것을 기다리고 말을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음료수는 물이다.
“꽤나 짜이고 있던 것 같더군.”
“그렇습니다만.”
쓴웃음을 짓고 있다. 발렌슈타인만이 아니다. 미하마 중령도 그렇다.
“무모한 짓만 하니까 그렇겠지.”
“그런 이유도 있겠죠. 하지만 사실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이 원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맹, 제국, 페잔, 그리고 지구. 모든 것이 혼란 속에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걸 저에게 물어도 곤란할 뿐이지만요.”
이런이런, 미리 선수를 쳤는가…….
“장신의 사관이 꽤나 거칠게 굴던 것 같던데……. 저것이 와이드본 중장인가.”
“네. ……뭐, 와이드본 중장은 괜찮습니다. 그는 말이죠. 성가신 건 또 한 사람 쪽입니다.”
“엘 파실의 영웅이로군…….”
발렌슈타인이 말없이 끄덕였다.
“흠. 양 웬리와는 잘 맞지 않는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아닙니다만?”
“상대방은 저를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꽤나 경계를 풀어주지 않아서…….”
또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미하마 중령은 웃지 않는다. 과연. 미묘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제국으로 돌아오는 건 어떤가?”
“제국으로?”
“동맹에선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망명자에 불과하겠지. 꽤나 섞이기 힘드리라 생각하네만.”
절반은 진심이다. 나머지 절반은……. 헌데, 뭘까? 책략인가? 아무래도 다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상하게도 미하마 중령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잠자코 듣고 있다. 그리고 발렌슈타인도 그녀를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이 두 사람은 꽤나 강한 신뢰관계에 있는 것 같다.
“저는 반역자입니다? 렘샤이트 백작.”
발렌슈타인이 즐겁게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그에 뒤따르듯 웃었다.
“듣고 보니 그랬군. 하지만 경이 반역자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경은 희생자겠지. 게다가 지금은 지구교의 음모를 폭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제로 리히텐라데 후작이 카스트로프 공작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 자는 제국에 있었을 것이다.
“제국으로 돌아가서 3일이나 살아 있을 수 있다면 기적이겠죠. 저는 제국인을 1천만 명이나 죽였으니까요.”
“…….”
“…….”
침묵이 떨어졌다. 1천만 명이라는 숫자가 무겁게 짓누른다.
“……조금 더 줄일 순 없었는가? 영 하나만 줄었어도 꽤나 달랐으리라 생각하네만.”
농담 섞어 말했다.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작아진다. 어딘가 비밀 대화를 하는 어조였다.
“어렵군요. 5백만 명 정도라면 간단하게 늘릴 수 있습니다만, 줄이는 건 조금…….”
마찬가지로 농담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곤란한 자로고.”
“곤란한 자입니다.”
발렌슈타인이 소리 내어 웃었지만 나는 함께 웃을 수 없었다. 어딘가 보기 안쓰럽다. 미하마 중령도 안타깝다는 듯이 발렌슈타인을 보고 있다. 그녀도 웃을 수가 없다…….
발렌슈타인이 웃음을 그치자 회의실에 쌀쌀맞게 조용해졌다. 이 자가 극히 위험하며 만만찮은 상대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무방비하고 위태로운 듯이도 보인다. 신경질적인 부분이 있다면 반발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없다. 야심 따위 눈꼽 만큼도 없는 자겠지. 왠지 모르게 내버려 둬도 좋은가 싶은 마음이 든다……. 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냐고 질문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곤란한 자다…….
“제국 본토에서 연락이 있었네. 뮈젤 제독을 습격한 자가 나온 듯하다. 하지만 경의 충고 덕분에 스친 상처 하나 없이 그 자를 제압할 수 있었다는군. 경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하네.”
“그렇습니까.”
발렌슈타인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앉은 미하마 중령이 이쪽을 봤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발렌슈타인이 지구토벌로 향하고 있는 뮈젤 중장에게 경고를 한 일을 설명하자 한 순간만 발렌슈타인에게 시선을 향하고, 그 뒤 좋게 볼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녀도 발렌슈타인이 뮈젤 중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발렌슈타인이 그걸 보고 곤란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맘에 들지 않나요?”라고 발렌슈타인이 묻자 “네, 맘에 들지 않습니다.”하고 그녀가 답했다. 발렌슈타인의 쓴웃음이 더욱 커졌다…….
“꽤나 사이옥신 마약이 투여된 상태였다고 하는군.”
“…….”
“성가신 놈들이다. 대체 어디까지 손이 뻗쳐 있을지……. 이렇게 되면 안전한 장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설령 신무우궁 안이라도 말이야.”
“그렇겠지요. 조심하도록 하세요. 종교관계자라는 건 수단을 고르지 않습니다. 어떤 비열한 수단도 신의 이름을 외치면 용서 받으리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 말대로다. 사이옥신 마약을 써서 사람을 조종하다니 비열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사람을 죽이게 하다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한 모금 물을 마셨다.
“경에게 듣고 싶은 일이 있네.”
“…….”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단 거짓말은 없도록 하지. 어떤가?”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띠우며 끄덕였다.
“트류니히트 국방위원장과 시틀레 원수 말이네만. 경은 친해 보였지만, 그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
“우리들 제국인에 대해 조금도 혐오감을 보이지 않더군. 단순한 주전파라고 생각할 수 없네만…….”
발렌슈타인이 또 쓴웃음을 지었다.
“답하기 전에 알려주세요. 그걸 들어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본국에 전할 걸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알고 싶어합니까?”
“당연하겠지.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앞으로의 협력에 지장이 나올 위험은 없는지, 크게 걱정하고 있어.”
“과연…….”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전쟁을 멈추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요.”
“!”
아무렇지도 않은, 남 일을 말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나와 미하마 중령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뭐, 저에겐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멋대로 멈출 수도 없을 테고, 간단하게 입밖에 낼 일도 아니지요. 어떻게 될지…….”
발렌슈타인이 웃음을 띠고 이쪽을 보고 있다.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아니면 무시해야 하는가……. 상대방의 진심을 살필 생각이었는데 어느 샌가 이쪽이 당하고 있다. 시험 당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신경 쓰인다고 하시더군.”
피할 수는 없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답했다. 상대방이 한 발 들이민 이상, 이쪽도 거기에 답하여 발을 내밀지 않으면 승부가 되지 않는다. 미하마 중령이 전신에 긴장감을 품는 것이 보였다.
“신경 쓰인다, 입니까.”
“음. 청안제, 망명제의 일이네만…….”
“모두 과거의 일이군요. 미래의 일이 아니고 현재 일도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군.”
밀리고 있다. 위치가 좋지 않다.
“지금은, 말입니까……. 뭐, 트류니히트 위원장도 시틀레 원수도 지금은 정부의 일개 위원장, 일개 군인에 불과합니다. 동맹의 최고권력자라고 할 수 없죠…….”
“과연…….”
트류니히트, 시틀레는 전쟁을 멈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걸 실행하기엔 지위도 시간도 부족한 상태다. 그런 건가……. 제국 측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그런 거겠지. 서로가 더듬거리며 상대방을 찾고 있다…….
“이 뒤는 직접 들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겠군. 그러는 편이 좋겠지.”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있다. 생각 이상으로 긴장한 것 같다. 밀리긴 했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그런 정도인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미하마 중령도 다행스럽단 표정을 짓고 있다. ……문제는 눈 앞의 이 자로군. 이번엔 이 자의 생각을 들어야만 한다. 다시 한 번 아랫배에 힘을 줬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꽤나 추상적이군요.”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듣고 보니 그렇다. 이쪽도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그럼 제국은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나? 경의 생각을 들려주지 않겠나.”
내 말에 발렌슈타인이 지긋이 이쪽을 봤다. 질 수 없다고 생각하여 눈에 힘을 주고 받아친다. 발렌슈타인은 쓱하고 시선을 피하고 물을 머금었다.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 체제의 종언…….”
“!”
놀라움에 그를 보자 그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는 반역자입니다. 루돌프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무례를 탓해야 하겠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말의 무게에 눌렸다. 이 뒤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부의 유능한 인간을 귀족으로 만들어, 황실의 수호와 통치의 전부를 맡겼습니다. 귀족들은 어느 시기까진 군인, 정치가, 관료로서 그의 기대에 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츰차츰 그 기대에 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체제에 틈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루돌프가 만든 체제는 종언의 때를 맞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내 말에 발렌슈타인은 고개를 두세 번 저었다.
“제 생각에 의하면 50년 정도 전에서부터 그것이 시작되었습니다.”
50년 전……, 50년 전이나 전부터 시작되었단 말인가…….
“동맹군에 브루스 애쉬비가 등장한 것으로 제국군의 지휘관에 전사자가 대거 나왔습니다. 그 대부분이 귀족입니다. 손실의 구멍을 평민, 하급귀족이 매웠습니다. 원래라면 귀족이 메워야 할 그것을 귀족이 하지 못했다……. 귀족은 루돌프의 기대에 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른다. 군사부분에 숙련된 귀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귀족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도 오딘에서 안락한 생활을 보낼 것을 바랬다. 제국을 위해서 선두에 서서 싸우는 것을 거부했다……. 능력만이 아니라 의지면에 있어서도 루돌프 대제의 기대를 배신했다…….
“귀족들이 향락에 취해 의무를 다하지 않을뿐더러, 그 의무를 평민, 하급귀족에게 밀어붙혔습니다. 게다가 그 대가일 터인 권리를 그들에게 주지 않고 짓밟았지요. 평민, 하급귀족의 불만, 분노는 한계에 달했겠지요.”
“…….”
발렌슈타인이 한 모금 물을 마셨다. 나도 물을 마신다. 미하마 중령도 물을 마셨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그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
메아리처럼 반복하는 나에게 발렌슈타인이 끄덕였다.
“그렇기에 카스트로프 공작을 평민, 하급귀족의 증오의 대상으로서 준비한 거겠죠. 귀족들이 루돌프의 기대에 응하지 않는 이상, 리히텐라데 후작에겐 산제물을 만드는 것만이 제국을 지킬 방법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조소는 느껴지지 않았다. 발렌슈타인은 마음 깊이 리히텐라데 후작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
“……종언의 뒤에 오는 것은.”
목소리가 갈라졌다.
“재생인가, 붕괴인가……. 제국이 재생하기 위해선 철저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별 도리도 없이 혼란에 빠져 붕괴할 수밖에 없겠죠.”
“……개혁인가.”
“열쇠를 쥐고 있는 건 귀족이겠죠. 루돌프의 유산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유산을 받아들어 개혁을 행할 것인가, 아니면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버릴 것인가……. 당연한 일입니다만, 어떻게 결단할지에 따라 제국의 미래는 변하겠죠…….”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또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시 말해 루돌프 대제를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라는 것인가……. 그리고 혈통을 중시하는가 능력을 중시하는가라는 것도 되겠지. 과연. 화평에도 관련되는 일인가……. 개혁에는 제국만이 아니라 동맹의 미래도 달려있다. 주의해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