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63 화. 베네뮌데 사건(3)
■ 제국력 486년 7월 17일. 신무우궁, 동후원. 그레이저.
"그레이저 선생님."
동후원으로 향하는 날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다. 그럼 어디의 공주님인가하고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발렌슈타인 중장이 있었다……. 예의 서간에 대해서 생각하니 내심 허리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설마 서간을 보낸 것이 나라고 눈치챈건 아닐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르다…….
"제게 무슨 용무라도? 중장 각하."
"예. 선생님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요. 실은 최근 몸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바로 피곤해집니다."
중장은 조금 표정을 흐리면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이 사람은 몸이 약했지. 조금 업무가 지나친 감도 있다. 참모로서 출병 계획에 참가하고 있다고 하고. 병참통괄의 국장보좌. 몇일 전에는 궁중의 경비책임자였다. 유능한 것도 본인을 위한 것이 되질 않는군…….
"일단 진찰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흠. 지금 시간이 되시는지요?"
"예. 괜찮아요."
"그럼 제 방에서 진찰하지요. 이쪽입니다."
궁중의로서 나는 남후원의 일각에 전용 진찰실이 주어져있다. 긴 회랑에서 나는 중장과 대화하며 진찰실로 향했다. 남후원에 온 일은 그다지 없었던지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중장은 생각보다 대화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의사의 일에 대해서 즐겁게 질문해왔다. 흥미가 있는지 물어보니 예술보다는 훨씬 흥미가 있다고 한다. 외견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 회답이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군.
진찰을 해서 안 것은 역시 과로였다. 일이 바쁘기 때문에 식사가 불규칙한데다 수면부족도 있다. 일이 바쁜 사람들에게 자주 있는 증상이다.
"조금 일이 과하신 것 같군요. 일을 줄이실 수 없겠습니까?"
"아무래도 어렵군요. 어째선지 모두 제게 귀찮은 일을 가져오니까요. 잇달아 끝도 없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중장이 대답한다. 귀찮은 일인가. 나도 그에게 귀찮은 일을 가져 온 한사람이긴 하다…….
"선생님도 그 중 한사람이지요."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무심코 끄덕일뻔하고, 당황하며 중장을 본다. 중장은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품에서 서간을 꺼냈다.
"기억에 있으시죠? 선생님."
"……."
빙그레 미소짓는 중장은 난 말을 잃었다.
"선생님은 B부인과 함께 파멸하고 싶지 않다. 그 때문에 이 서간을 국무상서에게, 나에게 보냈다. 아닌가요?"
"알고 계셨습니까?"
무심코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국무상서에게서도 같은 것을 봤습니다. 이 건에 대해 조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정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국무상서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각하의 말씀대롭니다. 제가 ㅤㅆㅓㅅ습니다. 이 이상 베네뮌데 후작부인과 함께 있어선 스스로 파멸할 뿐입니다."
말해버리자. 이 이상 숨기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무리다.
"후작부인을 무슨 일을?"
중장은 조용하게 물을 뿐이다.
"……후작부인을 임신하게 하라고 제게 명령했습니다."
"폐하 이외의 사람과 말이죠?"
이 사람은 날카롭다. 과연 범상찮은 인물이라고 할만하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뮈젤 대장도, 백작 부인도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고."
중장은 한번 한숨을 내쉰다. 질린 것일까?
"그건 가능한 일입니까?"
"무리입니다. 궁중에 있는 한 그런 일이 가능할리 없습니다. 후작부인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백작 부인을 궁중에서 내쫓으라고. 그 다음에는 가능할거라며."
"그렇게 말했습니까."
"예."
말한 뒤,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중장은 눈을 감는 듯이 하여 생각하기 시작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니까, 그가 슥하고 눈을 올려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외에 다른 사람의 출입이 있었습니까?"
"그건, 방문 상인이 좀 있습니다만……."
"귀족, 군인은 어떻습니까?"
"이전엔 프레겔 남작이 자주 왔었습니다."
"최근엔?"
"최근입니까……. 콜프트 자작이 때때로 오는 듯 합니다만."
중장의 눈이 한순간 가늘어지더니 금새 돌아왔다. 그리고 강한 시선으로 날 본다.
"틀림 없습니까?"
"예. 틀림 없습니다. 한번 동석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습니까?"
강한 시선인 채다. 콜프트 자작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뮈젤 대장을 비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해야할지. 그."
"미터마이어 소장입니까?"
"그렇습니다. 미터마이어 소장입니다. 언젠가 복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중장은 몇번이나 끄덕이면서 "콜프트 자작인가."하고 중얼거렸다.
"선생님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대로 베네뮌데 후작부인과 만나 주십시오."
"그건."
그래서야 난 뭘 위해서 털어놓은 것인가.
"안심해주십시오. 선생님에 대해선 국무상서에게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처벌되는 일은 없을겁니다."
"……."
"선생님이 알고 있는 내용을 국무상서에게도 전해주십시오."
"……."
다시말해, 내게 스파이가 되라는 건가.
"긴 시간은 아닐겁니다. 한달 정도겠죠.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별 수 없다. 앞으로 한달만 참아보자.
...
■ 제국력 486년 7월 17일.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어리석은 이야기구먼."
나와 그레이저 의사의 대화를 들은 리히텐라데 후작은 쓰디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동감이다. 원작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곤 하지만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어리석음엔 두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할텐가?"
"소문을 흘리도록 하죠."
"소문? 무슨 소문이냐."
그런 식으로 수상쩍다는 듯이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 성격이 나쁘다고. 어르신.
"베네뮌데 후작부인과 콜프트 자작이 정을 통했다는 소문입니다."
"과연. 그걸로 처단할텐가."
처단은 조금 심가겠지. 아직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아뇨. 사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지 말아달라고.
"두 사람이 정을 통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겠죠."
"그렇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얼굴을 했다.
"단지 세간을 소란스럽게 했다는 비난은 할 수 있습니다."
"흠."
재밌겠다는 얼굴을 하지 말라고. 리히텐라데 후작.
"후작부인은 주의를 받고, 콜프트 자작은 반년 정도 그의 영지에서 자중하게 합시다."
콜프트 자작은 자신의 영지에서 자중하게 한다. ㅤㅅㅓㅌ불리 방치했다간 미터마이어를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 원작에선 반대로 격퇴 됐지만. 이 세계에서도 잘 될지는 모른다.
"그걸로 될 것 같나?"
"후작부인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없어지겠죠. 그렇게 부추기는 사람이 없어지면 조금은 얌전해질겁니다."
"과연. 재밌는 생각일세."
리히텐라데 후작은 몇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후작부인을 오딘에서 추방해서 전원 생활을 하게 하는게 좋지 않겠나?"
탐색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그렇게 해서 원작에선 폭발했었지. 아마.
"자칫 잘못하면 폭발하게 됩니다."
"흠, 귀찮구먼."
후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나도 동감이다. 정말 귀찮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그레이저 의사입니다만. 이후엔 후작이 직접 만나주십시오."
"어째선가?"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후작은 묻는다.
"소관이 빈번히 신무우궁에 가는 건 눈에 띕니다."
"흠. 확실히 그렇지."
사실은 내가 의사에게 갈때면 병약하기 때문이라고 모두가 말해서 싫은 거지만.
"그리고 이 건이 처리되면 베네뮌데 후작부인에서 떨어뜨리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모처럼의 정보원을 버리는겐가?"
불만스럽겠지만 그레이저는 이제 안된다.
"이대론 그의 정신이 버티지 못합니다."
"하지만 궁정의에서 벗어나면 좌천이네만."
"궁정의인 채로 페잔으로 보내지요. 새로운 의학기술을 습득한다던가. 적당한 명목을 붙여서."
"과연. 그 뒤에 이쪽의 입김이 들어간 사람을 후작부인에게 붙이면 되는겐가."
과연. 리히텐라데 후작. 이야기가 빠르다.
"예. 부인도 갑자기 나타난 신인에게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겠죠."
"이쪽이 밀어 붙였다는 걸 눈치채면 어떻게 하나?"
그 사람을 시험하는 듯한 표정은 그만두지 않겠어?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좋습니다. 감시되고 있다는 걸 알면 얌전해지겠죠."
"과연. 경도 사람이 나쁘구먼."
기쁘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침울해지잖아.
"콜프트 자작이네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과 연척이 되네. 사전에 말해두는 편이 좋지 않겠나?"
"그렇군요. 그편이 좋을 겁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걱정은 당연하다.
"경. 부탁할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별 수 없다. 그레이저도 이쪽의 부탁을 들어줬으니 말이지.
"그리고 소문이 흐른 후의 조사네만. 경에게 부탁하고 싶네."
"소관에게 말입니까?"
잠깐 그거 기다려라. 과중노동이다.
"손대중이 어려운 역할이니까 말일세."
"소관에게 그런 역할은 무리입니다."
그래. 무리다."
"경이기에 좋은 것이다."
"?"
"경은 무서우니 말일세. 경을 얕볼 수 있는 사람은 없네."
어르신. 그렇게 기쁜 듯이 말할 일이 아니잖아? 애초에 내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가? 모두 오해하고 있지 않아?
"……."
"저번 로엔그린에서도 블라스터를 뽑았다고 하잖은가. 죽음인지 불경죄인지 고르라며."
아니, 그건 그날 기분이 좀 나빴기 때문에…….
"……."
"훗훗훗. 부탁했네."
난 상관운이 없는 듯 하다. 그냥 없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무섭다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그렇게 히쭉거리고 있는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