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본편(연중)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292 화. 악명

추리닝백작 2020. 5. 28. 16:36

제국력 490년 11월 3일. 오딘,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드문 일이군. 경이 자기 발로 방문하다니."

  "조금, 겉으로 드러내어 말할 수 없는 일을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그런 거라고 생각했네."

  할아범이 웃었다. 뭐, 그렇겠지. 나도 할배도 업무 외에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극히 무미건조한 관계지만 나는 싫지 않다. 할배도 마찬가지겠지.

  언젠가 취미에 대한 이야기라도 해볼까. 하지만 이 할배, 어떤 취미가 있는 걸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음모 꾸미기?

 

  응접실로 안내되어 홍차를 받았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신다. 11월 밤 정도가 되면 역시 서늘하다. 따뜻한 홍차가 몸을 따뜻하게 한다.

  "안사람이 기다리지는 않는가."

  "조금 늦어질 거라 말해뒀습니다."

  "그런가."

  또 한 모금, 홍차를 마시고 컵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조금 곤란해하고 있습니다."

  "반란군 때문인가."

  "리히텐라데 후작. 그 단어는……."

  "그렇군. 실수했나?"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반란군이라 부르며 지낸 거다. 그리 간단하게 고쳐지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다.

 

  "후작의 눈에서 보실 때 지금의 제국과 10년 전의 제국, 같은 왕조의 제국으로 보이십니까?"

  "아니, 그렇게 볼 수 없겠지. 잘도 뭐, 이렇게나 바뀌었구먼."

  후작이 감탄했다. 진심이겠지. 나도 잘도 바뀌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렇지요. 제국인이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동맹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작이 흠, 하고 코방귀를 뀌었다. 코방귀를 끼면 국가의 중진이라기 보단 인상 나쁜 할배가 되는구만.

 

  "골덴바움의 악명이 조금 너무 강한 모양입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눈을 부릅 떴다.

  "경, 어처구니 없는 소릴 하는구먼. 5년 전이라면 불경죄로 치안유지국이 경을 체포했을 걸세."

  "네. 그것입니다. 동맹인이 가지고 있는 제국의 인상은."

  "그렇군."

  후작이 크게 끄덕였다.

 

  "우리들이 아무리 제국이 변했다고 인식하고 있어도 동맹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폐지되고 치안유지국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인이 가진 제국의 인상은 그 옛날 제국의 모습인 채입니다."

  "좀처럼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

  "변하지 않는 건지, 변하는 걸 거부하고 있는 건지……."

  "150년, 포학한 은하제국이라 비난해온 것이야. 간단히 바뀌지 않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불쾌한 가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들어주십시오. 가령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하고 동맹을 쓰러뜨려 30년 뒤에 통일한다고 선언했을 경우, 과연 동맹인이 제국에 대해 가지는 인상은 어떠했을까요? 지금과 같았을까요?"

  후작이 다시 흠하고 콧방귀를 꼈다.

 

  "로엔그람 백작을 예시로 들다니, 꽤나 심한 예시로구먼. 하지만 경이 하고 싶은 말은 알겠네. 당연히 다르겠지. 로엔그람에겐 경이 말하는 악명은 없어."

  리히텐라데 후작이 한 모금 홍차를 마셨다. 그건 그렇고, 라인하르트의 이름을 거론하는 순간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싫은 모양이다.

 

  "폐하께서 하신 일은 골덴바움 왕조, 아니 루돌프 대제와 결별을 하신 거라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정치, 사회체제는 근본부터 변했습니다. 이제 같은 왕조라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왕조의 명칭은 골덴바움입니다. 가문의 내용물은 바뀌었으나 외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동맹인은 그 외견밖에 보질 못합니다."

  "그렇군. 악명 높은 골덴바움인가. 경이 말한 대로다."

  "……."

  "생각해 보면 찬탈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과거의 악명과 결별할 수 있으니까."

 

  어이어이,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 거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리히텐라데 후작이 씨익하고 웃었다. 이 할배, 즐기고 있구만. 뭐, 나 정도의 상대가 아니면 이런 불경한 소리는 할 수 없나. 다른 녀석들은 어딘지 모르게 골덴바움의 이름을 사양하게 된다. 그건 그렇고 만만찮은 할배다.

 

  "유감입니다만. 제국은 찬탈이 아니라 개혁을 택했습니다. 뭐, 개혁이라기 보단 혁명에 가깝습니다만, 왕조 교체는 없습니다. 왕조의 시조는 루돌프 대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과거의 악명을 이어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가신 일이로고. ……그래서, 어찌할 건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여기에 온 것은 아닐 테니."

 

  "신왕조 성립을 선언하는 건 어떤가 하고."

  "이제 곧 신년인가. 실행한다고 한다면 그 때로군. 하지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그리고 역사학자, 정치학자를 이용하여 지금의 제국은 앞선 제국과 다르다는 걸 발표하게 하는 겁니다. 골덴바움 왕조는 개혁에 의해 전혀 다른 제국으로 재탄생했다.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낸 왕조도 앞선 왕조와 다른 새로운 왕조다, 라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웃었다.

 

  "경,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군. 신왕조 성립을 이론으로 만드는 건가."

  "그렇습니다. 학자들에게 루돌프 대제에 대한 비판을 하게 해도 좋겠죠. 그것 자체가 신왕조 성립을 돋보이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강연회, 토론회를 제국, 페잔, 동맹 이곳저곳에서 대대적으로 실행하는 겁니다. 당연하지만 제국 정부 주최로서."

  "동맹에서도인가."

  "그렇습니다. 엘스하이머의 첫 업무가 되겠죠."

  "마치 세뇌와도 같군. 반발할 걸세."

  다시 웃었다. 나도 웃었다. 확실히 세뇌에 가깝다.

 

  "상관 없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어선 동맹인의 의식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설사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제국은 자신들의 왕조가 과거의 골덴바움 왕조와 다르다며 말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겠죠."

  "알겠다. 제펠 학예상서에게 말해두지. 적당히 학자를 골라두라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왕조론. 적어도 동맹 내부에서 제국에 협력하려는 사람들에겐 받아들어지기 쉬운 이론이다. 그리고 그들 입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좋은 이론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퍼뜨린다. 그에 의해 점점 받아들이게 만든다.

 

 

 

우주력 799년 11월 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제국의 대사가 도착하는 건 1월이었지. 호안."

  "그래. 오딘과 하이네센은 멀다. 그 정도는 걸리겠지. 왜 그러나?"

  "그가 오지 않으면 국채 발행을 마무리 지을 수 없어."

  "그래, 그랬었지."

  호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군인을 민간으로 되돌린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상황의 안정이 필요하다. 경기부양대책을 취해야만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재원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실직자를 늘릴 뿐이겠지. 지금은 일단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이런이런. 실직자가 무서워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재정 적자가 늘어날 뿐이로군."

 

  그 말대로다. 재정 적자가 늘어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실업자의 증가는 단순한 경제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실업자의 존재는 커다란 사회 불안을 일으킨다. 지금 정권 기반이 약한 정부에게 있어 사회 불안은 너무 위험하다. 반제국 운동, 반정부 운동으로 간단히 연결 되겠지. 받을 그릇 없이 군대에서 방출하는 건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TV전화의 수신음이 울렸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 트류니히트의 얼굴이 비췄다. 약간은 기분 전환이 되겠지. 조금 표정이 굳어 있지만. 무슨 일이 있었나?

  "무슨 일인가? 트류니히트."

  「무슨 일이라니 내가 묻고 싶군. 자네들은 언제쯤이 되어야 신력에 동의할 건가? 제국에선 동맹이 지금까지 동의하지 않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네.」

  호안을 돌아봤다.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아니, 새로운 책력이 필요하단 건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공휴일이 말이지. 루돌프 대제 탄신기념일이라니. 의회의 반발이 심해. 자네도 알고 있잖은가?"

  트류니히트가 얼굴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네들이야말로 알고 있는 건가? 공휴일에는 자유행성동맹 건국기념일, 은하연방 건국기념일도 포함된다고.」

  "……아니, 그건 알고 있지만."

  호안이 말하자 트류니히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건가? 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강화조약을 채결했다. 그리고 책력에도 그 이름을 공휴일을 넣으려 하고 있어. 이제부터 앞으로도 은하연방, 자유행성동맹이란 국가가 있었다고 사실을 남길 것이라는 거다. 이 우주에 민주공화정 국가가 존재했던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

  그렇군. 그런 의미가 있었나. 호안이 두세 번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레벨로, 호안. 제국에선 지방자치에는 민주공화정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아. 자네들은 조금 그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극단적인 말을 하자면 목적은 민주공화정의 존속이며 자유행성동맹은 그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럴 정도의 각오를 가져야만 해.」

 

  "대담한 발언이군."

  「나는 진심으로 말하는 걸세. 레벨로. 자네들은 버티는 걸로 제국의 양보를 받으려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아무리 그래도 루돌프의 탄생일이 공휴일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 하지만 의회가 시끄러운 거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내가 답하자 트류니히트가 "아무 것도 모르는구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제국은 내년부터 새로운 책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페잔으로 천도한 뒤 신제국 성립을 선언한다. 알잖은가? 새로운 국가에 새로운 수도, 새로운 책력. 전 우주에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선언할 셈인 거야. 그걸 자네들이 망가뜨리는 걸세. 제국에선 신력은 내후년부터 쓰게 될 거라고 포기하고 있어.」

  "……."

 

  「눈치 채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게. 제국은 스케줄을 공표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자네들은 당연히 눈치 챘어야 한다. 만약 깨닫지 못했다면 자네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자유행성동맹이 제국의 보호국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지 않아. 너무나도 무신경하다.」

  "……."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지. 동맹 정부에는 두 명의 주인이 있다고. 하나는 동맹 시민, 그리고 또 하나는 제국이다. 그 사실을 자네들은 잊고 있지 않은가? 」

  "그럴 생각은 없지만……. 동맹의 내부 사정을 지나치게 우선하고 제국과의 관계에 둔했다는 점은 있을지도 몰라."

  내심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제국으로 떠난 걸로 다소 제국을 경시했을지도 모른다. 트류니히트가 다시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건을 진행하고 있는 건 발렌슈타인 원수다. 자네들은 멋지게 그의 얼굴에 먹칠을 했어.」

  "그럴 생각은 정말로 없었다. 트류니히트. 그렇지? 호안."

  "그래."

  「그렇다면 제대로 인식하길 바라네. 자네들은 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것을.」

  분노하고 있다. 혹은 트류니히트는 발렌슈타인 원수에게서 갈책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자네들이 아무리 싫어해도 그는 제국 최대의 권력자다. 아마도 앞으로 몇 년 뒤에 정치가로 전직하여 리히텐라데 후작의 후임자가 될 거라고 여겨지고 있어. 그렇게 되면 명실상부한 제국의 일인자다.」

  "……."

  「그리고 그 정도로 동맹을, 민주공화정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제국에 없다. 그는 자네들의 가장 큰 이해자이자 보호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얼굴에 먹칠을 해서 어떻게 할 건가? 재차 시민에게 주권 같은 걸 주면 안 된다고 확신하게 만들 뿐이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가장 큰 이해자이며 보호자. 트류니히트의 말이 맞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를 적대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무시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곤란해지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교섭을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제국의 개혁파 대부분이 그의 지지자다. 그들은 민주공화정에 호의를 가지고 있지만, 자네들이 발렌슈타인 원수의 얼굴에 먹칠을 계속 하면 틀림 없이 민주공화정에서 등을 돌리게 되겠지. 제국 최대 권력자의 얼굴에 계속 먹칠한다. 그런 바보 짓을 하는 정치 제도를 지방자치에 도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아니, 어렵겠지."

 

  「그 말대로다. 그런 짓을 하면 제국은 중앙과 지방 사이에 어처구니 없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 거다. 알겠는가? 자네들의 행위는 민주공화정의 존속을 위험하게 하고 있는 거야.」

  그렇군. 자유행성동맹의 내부 사정에 고집하는 건 위험한가. 우선해야 할 것은 민주공화정의 존속…….

 

  "알겠다. 바로 의회를 설득하여 새로운 책력을 받아들이게 하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동맹 정부가 나서서 결정의 지연을 사죄하고 내년부터 실행하기를 희망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하네. 호안.」

  항의하려 하는 호안을 트류니히트가 막았다.

 

  「한 번 제대로 동맹 시민에게도 이해하게 만드는 게 좋아. 제국의 요청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찮은 감정론으로 반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야.」

  "……."

  「제국은 30년 후의 통일을 목표로 착착 진행하고 있어. 동맹도 그 움직임에 맞춰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맹을 보는 제국의 시선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말 거야.」

  그리고 민주공화정을 보는 눈도 점점 더 안 좋아진다…….

 

  "알겠다. 트류니히트. 자네 말대로 하지. 발렌슈타인 원수에게 전해주게. 죠안 레벨로가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하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재차 동맹 정부에서 신력의 수락과 내년부터 실행되길 정식으로 요청한다는 것도."

  내 말에 트류니히트가 "알겠다"며 끄덕였다.

 

  트류니히트의 통신이 끊어지자 집무실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풍겼다.

  "호안, 자유행성동맹국은 제국의 보호국인가……. 어려운 현실이군."

  "여기에 있으면 잊을 것 같지만, 트류니히트는 제국에 있다. 싫어도 그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겠지."

  "그렇겠지. 괴로운 건 녀석도 마찬가지인가. 아니, 괴로움은 우리들 이상인가."

  그런 와중에 트류니히트는 민주공화정 존속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에게 있어 우리들의 행동은 답답하게 보이겠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니 호안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