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닝백작 2020. 6. 18. 22:06

  선풍에 나부끼는 제비꽃 색의 머리카락. 근심을 품은 비취색 눈동자. 처참한 사투 끝에 그 피폐함은 극에 달했을 터인데, 그녀는 의연하게 가슴을 피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받아들인다. 그 아름다움, 신성함에 나는 단지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틀림 없이 그녀는 신화 그 자체였다.

 

  "이 승리를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노라. 비열한 사과의 계략이 없는 한, 나의 준족을 능하는 자는 없나니!"

  드높은 승리의 개가에 객성의 환성이 더욱 한층 열기를 더한다. 불패라 불렸던 콜로세움 퀸을 쓰러뜨리고, 이 날, DENSETSU 토너먼트에 새로운 패자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질주하는 아탈란테'. 팀 「아카디아의 처녀들」의 필두전사. 우리의 총애하는 여왕이며―――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덴세츠 흥행사」의 바이오로이드. 그 말인 즉슨, 인간들의 애완 인형.

 

  "오늘의 멧돼지는 유달리 벅찼다. 슬슬 나도 명계의 강을 건너게 되겠다고 각오하던 차였다."

  대기실에 돌아가 유수세정(流水洗浄)을 받으면서 아탈란테는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도 모를 말을 흘렸다. 담담한 어조에 흥분하는 기색은 없다. 기록적 시청률을 획득한 위대한 승리를 했음에도.

 

  "당신은 챔피언을 쓰러뜨린 겁니다. 오늘 싸움은, 일찍이 없었던 위업이었다구요?"

  그렇게 내가 급히 알렸음에도, 아탈란테는 시원하게 웃을 뿐이다.

  "챔피언? 이상한 말을. 멧돼지에게 패자든 뭐든 있을까 보냐. 짐승은 짐승. 여신이 우리들의 무용을 시험하기 위해 보내신 시련일 터인데."

 

  "하지만 콜로세움 퀸은―――"

  말을 이으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탈란테는 항상 대전 상대를 멧돼지라 부른다. 그건 어디까지나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혹은 그녀의 시각에 있어서, 모든 적이 멧돼지 모습으로 인식 교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알아. 여기는 그리스의 아카디아와는 다른 토지. 다른 시대. 조금 전 전장도 지고스 산(Mt. Zygos)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카디아의 영광을 재차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부활했다. 그야말로 오이네우스의 소환에 응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사냥꾼이여. 세상 사람이 뭐라 부르든지, 이곳은 나의 칼리돈. 무용을 드러내어 여신을 찬미하는 시련의 장소인 것이다."

  시원하게 미소를 짓는 아탈란테의 눈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렇게 설계되었고, 정신구조가 초기화된 그녀에겐. 이곳이 인간들의 오락을 위해 바이오로이드 끼리 싸움을 붙이는 "흥행"의 스테이지라는 현실은, 결코 아탈란테의 마음에는 닿지 않는다.

 

  아마도 콜로세움 퀸도, 같은 정신구속을 처치해 두었겠지. 그녀들 일선급의 인가 선수들에겐 쇼를 돋보이는 연출을 위해 그러한 처치가 실시되어 있는 것이 관습이다.

 

  나는 아탈란테와 달리 시합의 흥을 돋구기 위한 잡병. 다시 말해 쇼의 조역이다. 그렇기에 손이 많이 가는 정신구속도 받고 있지 않다. 바이오로이드로서 표준적인 충성 원칙만이 각인되어, 디렉터들의 명령하는 대로 스테이지의 전투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냥꾼이여. 오늘 자네의 움직임은 적확하여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자네가 다른 멧돼지를 잘 막아주었기에, 나는 무리의 리더에 전념할 수 있었다."

  "―――과분한 말씀, 황송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내 등 뒤를 맡아주길 바란다. 함께 여신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동포여."

  유수세정을 끝낸 아탈란테는 나를 향해 돌아서며 노고를 치하하며 위로했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나신은 그야말로 여신의 조각상처럼 아름답다. 떨어지는 물방울조차 보석 알갱이처럼 보일 정도로.

 

  이 나신에 얼마 안 되는 얇은 천을 둘렀을 뿐인 모습으로, 그녀는 창과 방패를 손에 쥐고 재차 전장에 선다.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은 덴세츠 흥행의 보디 디자이너가 계산에 계산을 거듭한 성과다. 어떠한 미녀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관객을 흥분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잔혹한 사실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나는 그녀의 나신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나에겐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이 갖춰져 있는 걸까? 나는 객석에 앉는 자가 아니다. 피를 흘리고, 혹은 피를 뒤집어 쓰는 자다. 그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 따위 불필요할 뿐인데.

 

  "어째서―――"

  "응? 왜 그러나? 사냥꾼이여."

  "어째서 나에겐…우리에겐, 마음 같은 게 과연 필요할까요?"

  그건 싸우는 데에 성가신 것들이다. 검을 휘드르고, 칼에 애이고, 동포의 단말마를 들으면서 살아남는 나날을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 같은 건 없는 게 좋았다.

 

  "그건 어리석은 질문이군. 이 가슴 속에 마음이 있기에, 우리들의 싸움은 의미를 가진다."

  아탈란테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면서, 가르침을 내리듯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싸우고, 쓰러뜨린 사냥감을 아르테미스 신에게 바친다. 하지만 신은 단지 멧돼지 고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야. 그 사냥감을 쓰러뜨리는 데에까지 이르른 용맹함과 불굴의 투지. 그거야말로 진정한 헌상품이다. 생사의 갈림길을 버티고 참은 우리들의 정신이야말로 신에게 기쁨을 주는 거다."

 

  "그렇…지요."

  나는 항변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구속된 정신은…자기 자신을 신화 속의 영웅이라고 믿게 만들며, 의심하는 능력조차 뺏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진리를 말하여 맞추고 있었으니까.

 

  그렇다―――헌상품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건 피가 아니다. 우리들의 아픔이. 비명이. 그리고 더없이 아름답고 긍지 높은 '물건'이, 이 이상 더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그럼 바람이 언제부턴가 허무하게 부서져 내리는 순간이야말로. 분명 그 객석에 모인 인간들을 흥분시키고, 환성을 내지르게 만드는 거겠지.

 

  그를 위해 만들어지고, 그를 위해 싸우기를 계속 한다. 우리들은 덴세츠 흥행사의 바이오로이드. 오리진 더스트의 기적이 가져온 새로운 오락의 도달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