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LO_DENSETSU(완결)

#LO_DENSETSU 04

추리닝백작 2020. 6. 18. 22:09

  어딘지 짐작도 가지 않는 장소에서, 나는 눈을 떴다.

  지면도 없고, 상하좌우의 감각도 애매한 장소. 그보다 애초에 자기 자신의 신체 감각이, 없다.

 

  "정신이 들었어?"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형체도 보이지 않는데, 마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친밀한 거리에. 목소리는 틀림 없이,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것이었다.

 

  거기서 겨우, 나는 이 알 수 없는 공간인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코어 링크?"

  "그래. 지금 나와 당신은 이어져있어. 다행이야. 한 번 더, 대화를 하고 싶었어."

 

  코어 링크. 다수의 바이오로이드의 사고 회로를 접속하여 의식을 공유하게 만드는 기술. 하지만 병렬처리의 은혜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선 동형 모델의 바이오로이드끼리 링크시킬 필요가 있다. 나와 모모처럼, 그레이드 격차가 막심한 자들 끼리가 링크를 해도 효과는 옅다.

 

  "나는…당신의 보조회로에 입력된 거야? 그래서 몸의 감각이 없는 거야?"

  "아니, 달라. 내가 당신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 거야.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링크이지만."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모모와 같은 고급 모델을 나 따위에 증설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애초에――"그렇다면 어째서, 내겐 몸의 감각이 없는 거야?"

 

  모모는 말하기 힘들다는 듯이 잠시 말을 멈춘 후에,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골라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당신의 멘탈 코어는, 중대한 손상을 입었어. 첫 번째 강제 명령에 불복했을 때…그리고 두 번째 명령이 치명상이 되었어."

  "……."

 

  "그래서 나는, 당신의 자율신경을 대체하기 위해 이렇게 링크를 구축하고 있는 거야. 지금 당신의 몸에는 고농도 오리진 더스트가 투여되어서, 대폭 그레이드업 되고 있는 중이야. 그 동안, 잠들어 있으면서도 부하에 견뎌내야만 하니까, 내가, 말야."

 

  모모의 설명은, 더더욱 나를 혼란시킬 뿐이었다.

  "내가? 그레이드업? 어째서?"

  "콜로세움에서 당신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으니까. 프로듀서가 당신을 차기 시즌의 빌런으로 발탁하기로 결정한 거야. 매지컬 모모의 숙적, 뽀끄루 대마왕으로서."

 

  "그런 거,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말을 하면서, 겨우 나는, 모모가 애써 이야기하고 있는 진실에 대해 이해했다.

  "…그런가. 할 수 없으니까, 지금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구나."

  "…응."

 

  이 이상은 숨길 수 없다고 단념한 것인지, 모모는 겨우 진상에 대해 이야기할 각오를 가져주었다.

  "당신의 멘탈 코어는 새로운 포맷에 맞춰 초기화될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명령 위반으로 부서진 회로를 재생할 수 없다고…"

 

  "그런가…."

  냉혹한 선고를, 나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었다.

  "나는, 죽는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죽은 뒤구나."

 

  두 번의 명령 위반에 의한 자율 신경 시스템의 붕괴로, 나는 육체의 생존활동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나를 대신해서 지금은 모모의 코어 링크가 심폐기관이나 순환계를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는, 육체에서 쫓겨난, 말하자면 유령 같은 거다.

 

  확실히 나의 몸'만'은 재생된다. 하지만 멘탈 코어는 완전히 새롭게 초기화되어, 찌꺼기나 다름 없는 '나'라는 자아는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유령이, 새롭게 태어난 육체에서 '제령된다'는 거다.

 

  "…미안해."

  달리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듯이, 모모는 신음하듯 그렇게 속삭였다.

  괜찮아, 라고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 때문이 아니다. 콜로세움에서 죽고 죽이던 적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소리지만, 어째선지 그게 나의 진심이었다.

 

  죽음.

  지금의 내 생각도, 기억도, 모든 것이 사라진다. 뒤에 남는 육체는 누군가 다른 자가 된다.

  예전에는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픔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고 싶었던 고난의 세월은, 무엇 하나 생각나지 않았다.

  그 대신 계속 떠오르는 것은…아탈란테.

  그 아리땁고 용맹한 모습. 그 눈빛.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들을 이끌어줬던 긍지 높은 웃음. 짧은 생애 속에서 내가 모은, 작고 사소한 보물들.

 

  그렇다――영광은, 확실히 있었다. 우리들 속에, 아탈란테의 흔적과 함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광채와 함께.

 

  하지만 그것도, 나라는 자아의 단절과 함께 잃게 된다.

  그 상실감에, 나는 울었다. 아직 몸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단 한 번도 울었던 적이 없었는데.

 

  소리도 없는, 눈물도 없는 가상공간에서의 오열. 그걸 모모는 의심하지도 않고, 멸시하지도 않고 단지 지켜봐주었다.

  "옛날, 누군가가 말했어. 모든 건 빗속 눈물처럼 사라져간다, 라고. 분명 우리들 같은 것들을 위한 말이라고 생각해."

 

  "――아아, 우는 건. 좋은 거구나. 씻겨나가는 느낌이 들어."

  한바탕 울고난 뒤, 나는 의외일 정도로 침착해질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가볍고 투명하게 된 감각이었다.

 

  그렇다 해도, 모모는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주저되는 것 같았다. 나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인 모모의 침묵은, 조금 거북한 부분이 있었다.

 

  결국, 나와 그녀 사이엔, "그것"을 빼놓고 그 외 고를 수 있는 화두가 없는 거다. 너무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마음이 썩 좋지 않았기에, 나부터 말을 꺼내기로 했다.

  "어째서, 아탈란테를 죽인 거야?"

 

  구제할 도리 없는 심한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모는 어째서인지, 안도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모두의 꿈이었으니까."

 

  모두――터무니 없이 크고, 그리고 적절한 주어였다. 그 전투를 지켜본 모두. 우리들의 용기를 비웃고, 우리들의 고통을 심심풀이로 취급한 자들. 그걸 위해 나를, 모모를, 아탈란테를 설계하여 세상에 내놓은 자들.

  "꿈은…이루어져야 하니까. 그걸 위해 나는 태어났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지뢰의 파편에 배가 찢겨도, 내 채찍에 목이 감겨도. 그 광경을 기대하고 꿈꾸는 자들을 위해 웃으며, 그 소망을 계속 이뤄간다.

 

  "…미안해. 하찮은 질문이었어."

  "아니야. 고마워. 나도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겨우 기분이 정리되었어."

 

  "그래. 대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나와 모모의 밀회는, 이 물거품과 같은 한 때의 것. 다음에 각성했을 때의 나는, 대마왕인지 뭔지로 만들어져서, 분명 모모를 상처입히고, 고함 치고, 소중한 것을 빼앗곤 하겠지. 그녀를 증오하고, 때론 죽고 죽이는 일조차 있을 것이다.

 

  "뽀끄루 대마왕, 이었던가? …다음의 나도, 또 당신에게 심한 짓을 하는 거지?"

  "그럴지도 모르고…아닐지도.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라며 모모는 쓴웃음 지었다.

 

  "나도 콜로세움에서 신체의 손상, 재생비용의 상의가 통과할지 아닐지 알 수 없어. 불가능하다면 차기 '모모'는 내가 아니라, 다음 아이가 기용될 거라고 생각해."

  "그런가."

  나도, 모모도, 같은 덴세츠 흥행사의 바이오로이드인 이상, 그 운명에 큰 차이는 없다.

 

  인간들은 계속해서 도락의 꿈을 꾼다. 우리들은 싸우고, 버려지고, 그리고 또 싸우기 위해 고쳐진다.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지금 이 때처럼 내가 모모의 상냥함에 닿을 기회는, 이제 두 번 다시 바랄 수 없겠지. 그리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저기, 언젠가, 누구도 꿈을 꾸지 않게 되면…"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나는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입에 담았다.

  "우리들에게 꿈을 지게 하는 인간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그게 너무나도 바보 같은 헛소리라는 걸 눈치 채고, 나는 도중에 말을 멈췄다.

  혹시 설령 그런 날이 온다고 한다면, 누가 우리들을 배양조에서 되살려주겠는가?

  인간들의 일그러진 꿈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우리들에게, 누가 새로이 생명을, 삶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것인가?

 

  하지만 모모는 미소 짓고――모든 희망을 이루는 마법소녀의 미소로,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말을 이어주었다.

  "그 때는…우리들, 분명 친구가 될 수 있겠지?"

 

  나는 끄덕였다.

  형편없이 허무하고, 이뤄질 리가 없는 약속이라고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모모의 말은, 넘치고도 남을 안도로 나를 치유해 주었다.

 

  "뭔가, 지쳤어…조금, 잘게."

  "응. 잘 자요. 좋은 꿈을 꾸길."

 

  모모가 지켜보는 중에, 나는 안식에 몸을 맡긴다.

  그건 차갑고, 컴컴한 장소였지만, 어째선지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멸망 전의 어느 기록. 아카디아의 처녀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