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아름다운 꿈(연중)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34 화. 카스트로프 공작

추리닝백작 2020. 6. 22. 17:55


제국력 487년 8월 25일. 이제르론 요새. 라인하르트 폰 뮈젤



  "먼 길, 수고하셨습니다. 뮈젤 제독."
  방면군 사령부에 도착 인사를 하니 그라이프스 이제르론 방면군사령관은 온화흔 표정으로 우리들의 도착을 위로해주었다.
  "아뇨. 반란군 격퇴에 늦은 점, 면목 없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도착하기 전에 반란군을 격퇴하신 점, 마음 깊이 감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오딘을 출발한 직후에 반란군은 철수하고 있었다. 내가 지연시킨 것도 아니니까 사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선 이렇게 말해둬야하는 거겠지. 이제부터 앞으로 2개월 정도는 이제르론 요새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집주인과 싸워서 딱딱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

  내 말에 그라이프스 방면군 사령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 모든 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배려 덕분이다. 설마 반란군이 요새 내부에 병사를 침투시킬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뤼네부르크 중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오싹하군."

  뤼네부르크 중장은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 뒤에서 대담한 미소를 짓고 있다. 여전하다.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슈타텐 중장이 불쾌하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이것도 여전하다. 왠지 갑자기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사령부 요원은 전원 모여 있는 것 같지만, 이들 외에 면식이 있는 건 메르카츠 뿐이다. 그는 그라이프 방면군사령관 뒤에 서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선 2개월 정도 이쪽에 머무를 거라 들었네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핬네만."
  "하나는 이번 방어전에서 이제르론 방면군사령부에서 뭔가 문제가 없었는지, 개선할 점이 없었는지를 확인하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군."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은 끄덕이고 있지만, 슈타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들의 결점을 찾으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마음이 좁은 녀석이다.
  "다음 싸움이 근시일 내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전에 개선할 수 있는 점은 개선해두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겠죠."

  내 말에 방면군사령부 요원이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철수한 적이 다시 처들어온다. 평소라면 조금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이 한 번 사령부 요원에게 시선을 향하고서 질문했다.
  "근시일 내에 다시 처들어온다는 건가……, 뭔가 근거는 있는 건가? 뮈젤 제독."
  다들 시선을 향해왔다. 슈타텐의 표정이 험악하다. 적당한 말을 했다간 호통 쳐주겠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알기 쉬운 녀석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국내 정치개혁을 하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개혁?"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이 중얼거리자 사령부 이곳저곳에서 서로를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생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 다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

  "올해 중순에는 시작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우리들이 이제르론 요새에 도착하는 걸 기다리는 거겠죠. 정치개혁이 시작되면 경우에 따라선 제국 내부에서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 정치개혁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가."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이 중얼거리자 이곳저곳에서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반란군이 그 혼란을 틈타려고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페잔이 그걸 부추길 가능성도 있겠죠. 방심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적하자 이번엔 신음소리가 들렸다. 다들 페잔이 제국의 약체화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어째서 지금 개혁을……."
  "슈타텐 참모장!"
  한탄하며 중얼거리는 슈타텐을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이 책망했다.
  "하지만, 모처럼 전황이 유리한 상황인데……."
  슈사텐이 더욱 말을 질질 끌었다.

  "슈타텐 중장. 지금이기에 개혁을 진행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
  슈타텐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개혁을 진행하면 귀족이 불만을 품겠지. 그걸 억누르기 위해선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면 제국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 그리고 군부가 협력체제를 취하고 있어. 불만을 억누르는 것이 가능하다."

  내 말에 슈타텐이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보고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는가……. 확실히 그렇군. 반란군이 처들어오면 경이 4개 함대를 이끌고 그걸 막는 건가……."
  "방면군사령부도 협력해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이 끄덕였다.

  "뤼네부르크 중장에 대한 것도 그렇고, 경에 대한 것도 그렇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수완에는 감탄하게 되는군."
  "진심으로."
  내가 답하자 그라이프스 방면군사령관이 웃음을 지었다.

  "그럼 뮈젤 제독, 우리들도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세. 일단 이번 전투에서 보였던 방면군사령부의 문제점이로군. 그리고 반란군이 처들어올 때를 대비한 우리들의 연계……. 지금 당장 회의실로 향하도록 할까. 그다지 시간은 없어 보인다."
  "예."



제국력 487년 8월 25일. 오딘, 신무우궁. 플레겔 내무상서



  흑진주 홀에 귀족, 군인, 관료가 모였다. 그들 대부분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정부에서 중대한 발표가 있다고 하기에 모였을 뿐이다. 다들 불안하다는 듯이 서로를 돌아보면서 무슨 일인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내무상서인 나도 사법상서인 룸프도 발표 내용을 모른다.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흑진주 홀에 있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주변에 들키게 되는 건 좋지 않다. 믿음직하지 않다고 모두에게 경멸을 받을 뿐이다. 질문을 해오는 사람도 있지만 나도 룸프도 가벼이 알려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쫓아내고 있다…….

  황제 옥좌에 가까운 위치에는 제국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대귀족, 고급문관, 무관이 나열하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원수, 슈바인호프 원수……. 다들 말이 없다. 하지만 불안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발표 내용을 알고 있겠지.

  정부 각료인 우리들이 모르는 정부 발표가 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제국에는 두 개의 정부가 있다. 하나는 리히텐라데 후작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 이건 공식적인 것으로 나도 룸프도 그 멤버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국의 실력자인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부자,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들로 구성된 비공식 정부다. 아무래도 이번 정부 발표는 그쪽 비공식 정부의 발표인 것 같다.

  제국에서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카스트로프 공작은 아직 처분되지 않았다. 재무상서인 채다. 혹은 이번 정부 발표로 처분이 발표될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다들 모여있는 거다. 그 이외의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 호출 이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경시하는 건 위험하다고 나도 룸프도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는 걸 새삼 재인식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양자가 된 것도 세력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그 기량을 주목하여 양자로 삼은 거라고 봐야겠지. 공작가의 장래를 그에게 맡긴 거다.

  "전 인류의 지배자이며 전 우주의 통치자, 천계를 아우르는 질서와 법칙의 보호자, 신성하며 불가침한 은하제국 프리드리히 4세 폐하의 입장이오."
  식전관의 목소리와 제국 국가의 장엄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와중,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입장했다. 참가자는 다들 깊숙히 고개를 숙이고 폐하를 기다린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호화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폐하는 흑진주 홀을 둘러 보고는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폐하에게 인사한 후 우리들을 향해 바라봤다.
  "다들, 수고가 많다. 오늘 모이게 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이 제국이 앞으로도 번영하기 위해 폐하는 어느 결단을 내리셨다. 그걸 모두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그렇군. 칙명이라는 건가. 그거라면 정부 각료도 거역할 수 없다. 하지만 대체 뭘 한다는 건가…….
  "귀족에게 주어져 있는 징세권에 대해 지금까지 제국은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귀족 중에는 무자비하게 세금을 거둬 제국 신민을 괴롭히는 놈들이 있다. 따라서 제국은 신민을 보호하기 위해 귀족의 세금 징수권에 대한 제한을 가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세율 상한을 정한다."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귀족의 세금 징수권에 대한 제한을 가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물론 폭정의 극한에 달했던 귀족에 대해선 갈책이 있었던 적도, 혹은 멸문을 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개개인에 대한 일이었다. 그걸 제도화한다는 건…….

  "이 제한을 넘어 세금 징수를 했을 경우, 제국 신민을 과하게 괴롭혔다는 것으로 중한 벌을 받게 되겠지. 또한 동시에 간접세 세율도 내리기로 한다."
  간접세도 내린다. 다시 말해 귀족만이 아니라 정부도 세금 경감을 한다는 건가……. 당연히 세수도 줄어든다. 귀족에게만 불이익을 주지는 않겠다는 거로군. 이래선 정부에게 정면으로 불만을 토해내는 건 어렵다.

  정치개혁, 평민들의 보호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군. 이건 공작이 주도한 일이겠지. 확실히 평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 가스를 빼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건 틀림 없다. 그걸 가스를 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소를 한다는 건가. 하지만 귀족들이 납득할 건지…….

  "기다리십시오! 재무상서로서 승인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저희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굵은 목소리가 흑진주 홀을 울렸다. 재무상서 카스트로프 공작이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있다. 직권을 침범 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흑진주 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리히텐라데 후작과 카스트로프 공작을 보고 있다.

  "어리석은……."
  룸푸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동감이다. 이만한 큰일이다. 상담하는 걸 잊었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고의로 알리지 않은 거다. 그걸 눈치챘다면 어째서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각한다면 당연하게도 나름대로의 대응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도 큰 목소리로 이의를 제창하다니……. 확실히 바보다. 처분해야만 하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흥미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카스트로프 공작인가……."
  마치 거기에 있었냐는 듯한 어조였다.
  "간접세 경감 같은 걸 하면 세수가 줄어듭니다. 그래선 국가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분연하게 이의를 제창하는 카스트로프 공작을 리히텐라데 후작이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봤다.

  "유감이지만, 경은 더 이상 재무상서가 아닐세."
  "……."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역시 여기에서 처분하는 건가……. 카스트로프 공작이 뭔가를 외쳤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다. 다들 입을 모아 뭔가를 말하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오른손을 들자 흑진주 홀이 쌩하고 조용해졌다.

  "경은 해고다. 신임 재무상서는 게르라흐 자작이 임한다. 경이 걱정할 일은 없어."
  "……말도 안 되는, 어째서……."
  "어째서? 카스트로프 공작가는 지금까지 저지른 죄로 인해 멸문되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냉소를 짓고 있다. 말의 내용보다도 그 표정에 놀랐다. 다들 입을 열지도 못하고 잠자코 보고 있다.

  "죄라는 건, 죄라는 건 대체 뭡니까. 리히텐라데 후작. 대체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겁니까."
  무심코 실소가 나올 뻔했다. 룸프도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이 남자, 자신이 지은 죄를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범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걸지도 모른다. 이곳저곳에서 서로를 돌아보며 실소하는 귀족, 군인의 모습이 보였다.

  "경이 범한 죄는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카스트로프 공작."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손에 서류를 쥐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과 마찬가지로 공작도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다.

  "사법성, 내무성에 보관되어 있던 겁니다."
  카스트로프 공작이 이쪽을 봤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나와 룸프를 보고 있다. 좋은 수법이다. 이걸로 우리들이 개혁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카스트로프 공작을 배제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보였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우리들에게 시선을 향해왔다. 표정에 웃음기가 있다. 모두에겐 공작이 우리들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우리들이 그 감사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확인하고 있는 거다…….

  룸프를 돌아봤다. 내가 끄덕이자 그도 끄덕인다. 지금 여기에서 거역하다니 미치광이의 소행이다. 웃음을 지으며 미세하게 고개를 숙였다. 룸프도 같은 행동을 취한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이걸로 귀족들은 우리들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게 되겠지. 그리고 나도 룸프도 지금의 지위에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이 장소에 있는 많은 귀족들이 그 증인이다.

  "자료 중에는 10년 전, 경이 사람을 써서 콘라트 발렌슈타인, 헬레네 발렌슈타인을 죽였다는 것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다들 두 사람의 공작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차가운 웃음을 짓고, 카스트로프 공작은 안면을 창백하게 하여 작게 떨고 있다.

  "그건, 리메스 남작가의……."
  "무의미합니다. 퀸멜 남작가의 횡령을 꾀한 경이 남작가의 자문 변호사였던 아버지를 죽였던 건 알고 있습니다. 그 죄를 타인에게 덮어씌워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것도요."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는다. 이번엔 다들 발데크 남작, 코르비츠 자작, 하일만 자작을 보고 있지만, 세 사람은 그 시선을 무시하고 카스트로프 공작을 노려보고 있다. 혹은 주변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10년간 누명을 쓰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최근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복수를 두려워하고 있었겠지. 원한이 깊었을 것이다.

  "복수일 셈인가. 그래서 카스트로프 공작가를 멸문까지 몰고간 것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카스트로프 공작의 목소리가 떨고 있다.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소리 높여 웃었다.

  "복수? 복수할 셈이었다면 작년 폐하께서 환후 중에 계실 때 죽였을 겁니다. 필요하기에 살려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처분할 필요가 생겼다. 그 뿐입니다."
  "무슨 말이냐. 그건……. 살려두었다고?"
  의심쩍어하는 카스트로프 공작을 보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다시 소리 높여 웃었다. 공작만이 아니라 리히텐라데 후작도 웃고 있다. 명백히 비웃음이라 알 수 있는 웃음 소리다.

  "최근 평민들에게서 세금을 착취하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귀족이 많아졌지요. 평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그걸 막기 위해 경을 재무상서로 한 겁니다."
  "……."
  무슨 뜻일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예상대로 경은 직권을 남용하여 사적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평민들은 다들 경과 같은 자가 재무상서이기에 세금이 착취되고 있다며 경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누가 재무상서를 해도 마찬가지다."
  카스트로프 공작이 항의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다시 소리 높여 웃었다.

  "맞습니다. 누가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바꾸기 위해선 근본적인 개혁을 실행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걸 실행할만한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었죠. 그렇다면 평민들은 제국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카스트로프 공작, 경을 재무상서로 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전율이 몸을 흔들었다. 다시 말해 제국에 대한 원망을 카스트로프 공작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는 건가. 그렇기에 지금까지 카스트로프 공작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가 처벌받을 때는 평민들의 불만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든가, 제국이 개혁을 식시할 때……. 그리고 그 때가 지금 도래하려 하고 있다. 이 무슨 냉혹, 이 무슨 비정, 다들 창백하게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나, 날 이용한 건가. 리히텐라데 후작!"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카스트로프 공작이 소리를 치자 리히텐라데 후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만인가? 카스트로프 공작. 경도 꽤나 좋은 시절 보내지 않았는가. 슬슬 그 대가를 치뤄야하겠지."
  "……비겁한."
  신음하는 듯한 소리에 리히텐라데 후작의 쓴웃음이 더욱 더 커졌다.

  "비겁? 눈치 채지 못한 경이 어리석었을 뿐이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치 챘네. 공작이 말하지 않았는가? 필요했기에 경을 살려두었다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봤다. 공작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당황하며 시선을 카스트로프 공작에게 되돌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무시무시함이다. 아마도 공작을 본 사람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겠지.

  말 없이 땅에 못박힌 것처럼 서있는 카스트로프 공작에게 대해 리히텐라데 후작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번엔 혐오감을 표하고 있다.
  "길었네. 경과 같은 자가 재무상서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신물이 났지만 이제야 겨우 처리할 수 있어. 개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체제가 갖춰졌으니 말이야."

  "개혁이 잘 될거라 생각하는가? 웃기지 마라! 간접세 세율을 내리면 세수가 부족해진다. 그 부족분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결국 증세할 수밖에 없어!"
  카스트로프 공작이 비명과도 같은 항의를 했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히텐라데 후작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귀족이 필요 이상으로 세금을 착취하지 않는다면 간접세 세율을 내려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카스트로프 성계는 제국 정부의 직할령이 됩니다. 거기에서도 세수를 기대할 수 있겠죠."
  "……."

  반론하지 못하는 카스트로프 공작에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도 카스트로프 공작가는 멸문되었습니다. 공작가의 사적 재산은 모두 제국 정부에게 접수됩니다. 무척 배부르게 모아두셨겠죠? 세수 부족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말 없이 땅에 못박힌 카스트로프 공작에게 리히텐라데 후작이 추가타를 날렸다.
  "수고했네. 카스트로프 공작. 경이 살아서 다할 수 있는 역할은 이제 없어. 편히 발할라로 가도록 하게. 그게 경이 제국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행이다."
  모두가 얼어붙은 와중, 카스트로프 공작이 신음소리를 울리며 몸을 쭈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