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아름다운 꿈(연중)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38 화. 공적자금

추리닝백작 2020. 6. 22. 17:56


제국력 487년 11월 15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11월이 되니 오딘의 밤은 꽤나 서늘해졌다. 난방은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따뜻한 음료는 필요하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응접실에는 7명의 남자가 각자 음료를 입으로 옮기고 있다. 내가 코코아, 리히텐라데 후작이 홍차, 그 외에는 다들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하지만 공작이라면 영지 경영도 못하는 바보 같은 귀족따위 부숴버리라고 말할 줄 알았네만……."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보고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할아범, 예리하네. 사실은 바보 같은 귀족따위 뭉개버리고 싶었다.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니 하고 싶지 않았다.

  "귀족을 무너뜨리고 그 빚에 대해선 채권자의 자기책임으로 한다. 듣기엔 좋지만 그렇게 했다간 제국은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리히텐라데 후작."
  내가 답하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무상서 게르라흐 자작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 되겠군. 아무래도 설명하지 않으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제국 귀족 4천개 가문, 그 중에 페잔의 금융기관, 상인에게서 융자를 받고 있는 귀족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직접 받은 대출뿐만이 아니라 귀족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융자 등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다들 서로를 돌아보았다.

  "절반, 아니 3분의 2일까."
  "조금 더 많겠지. 8할을 넘지 않겠는가?"
  아버지와 리텐하임 후작이 동의를 구하듯이 주변을 둘러보자 다들 애매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뭐, 대충 그 정도겠지. 아무튼 절반은 넘는 건 틀림 없다.

  "그럼 한 가문 당 금액은?"
  다들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시선이 게르라흐 자작에게 향했지만, 그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평균으로 계산하면……, 1억, 아니 2억 정도일까요?"
  그 정도일까? 그 바보 놈들의 빚이 5억, 10억이다. 조금 더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리텐하임 후작이 말했듯이 8할이라고 하면 3천 가문 이상의 귀족이 페잔의 금융기관, 상인에게서 융자를 받고 있다는 게 됩니다. 한 가문 당 평균 2억 제국 마르크라면 6천억 제국 마르크의 돈이 페잔에서 제국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게 됩니다."
  "……."

  모두 얼굴이 굳었다. 실제론 좀 더 많겠지. 아마도 1조 제국 마르크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귀족 이외의 기업, 평민들에게 빌려준 자금을 더하면 어느 정도가 될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2조인가. 아니면 3조 제국 마르크인가…….

  제국 통치의 결점이다. 귀족에 큰 재량권을 부여하고 말았기에 그게 일종의 블랙박스가 되고 말았다. 귀족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거다. 본래 세계에서라면 그런 일은 없었다. 어디의 나라에서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유행성동맹이라면 파악은 하고 있겠지.

  하지만 제국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도 재무상서 게르라흐 자작도 페잔에서 자금이 이 나라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돈의 무서움을 모르는 거다. 하지만 본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생각하면 어느 정도 상상은 할 수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귀족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가령 이것을 전체의 5% 정도라고 친다면 150가문의 귀족이 해당됩니다. 한 가문 당 5억 제국 마르크의 빚으로 치더라도 750억 제국 마르크의 불량채권이 제국에 있는 겁니다. 이걸 무시하면 당연히 페잔의 금융기관, 상인은 대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렇겠지."
  플레겔 내무상서가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페잔의 금융기관, 상인에게 있어서 귀족이란 건 가장 안심할 수 있는 투자처였습니다. 하지만 제국 현 정권이 귀족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렇군. 페잔은 융자를 거둬들이고 철수하겠지요."
  게르라흐 자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도 불안한 표정이다. 이제야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융자 철수 같은 미적지근한 일이 아니겠지. 아마도 대출 중지란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지 경영이 양호한 귀족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본래 파산할 리가 없었던 귀족도 차례차례 파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출 중지 다음은 대출 거부겠지. 귀족에 대한 융자는 위험하다고 보고 융자를 억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국의 경영은 혼란하고 마비되어 정체된다. 그리고 대출 중지, 대출 거부는 귀족만이 아니라 민간에도 실시될 것이다. 혼란과 마비와 정체는 더욱 심각하게 된데……. 내가 그걸 설명하자 다들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연하다. 개혁은커녕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 우리들은 다들, 목이 날아간다.

  "본래 돈이라는 건 극히 탐욕적인, 그리고 겁쟁이인 생물입니다. 이익이 된다고 생각되면 거기에 모입니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칩니다……. 지금 여기서 부채를 안고 있는 귀족을 망하도록 내버려 두면, 페잔의 금융기관, 상인들은 제국 정부는 귀족들을 구제하지 않고 정리하려 한다고 판단하겠죠. 눈 깜짝할 사이에 페잔에서의 자금은 제국에서 도망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란이 되겠죠."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잠시 동안 침묵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구제한다는 건가."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걸 눈치챈 거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불쾌하단 표정으로 홍차를 입으로 옮겼다.
  "버릴 수 없는 이상 구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제하여 빚을 제국에게 대신 내도록 합니다. 그리고 평민에 대한 권리 확대, 페잔 자금의 감시, 귀족들의 억제를 위해 사용하는 겁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이다. 아버지도 리텐하임 후작도 그리고 게르라흐, 플레겔, 룸프 각 상서도 우울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750억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그걸 아까워하면 그 10배, 아니 20배 이상의 자금이 제국에서 사라져버리겠지. 불량 채권 정리는 빠르고 대담하게 행하지 않으면 비참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공적자금 투입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이곳은 제국이다. 지지율이라느니 여론이라느니 그런 바보 같은 감정론으로 좌우되는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카스트로프에게서 몰수한 자금도 있다. 돈은 있는 거다. 결단 있게 실행해야 한다.

  "평민의 권리확대는 알겠지만, 페잔 자금의 감시, 귀족들의 억제라는 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귀족을 일종의 기업으로 보고 그 영지경영을 감시한다. 그 와중에 유입되는 자금을 감시한다. 그러는 방법밖에 없겠죠. 아버님."
  아버지는 미심쩍은 표정이다. 아니 다른 사람들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것 같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결산보고서를 매해 2회 작성하도록 하여 제국 정부에 제출하게 하는 겁니다. 그에 의해 귀족들의 영지경영 상태, 가문의 자금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페잔에서 어느 정도의 자금이 귀족에게 유입되고 있는지도 보이겠죠."
  "우리들도 말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우리들도입니다. 리텐하임 후작."
  응접실에 한숨이 넘쳤다. 불만인가? 하지만 이걸 실행하지 않으면 제국이라는 국가가 보이지 않게 된다.

  "귀족들이 작성한 결산보고서와 일반기업이 작성한 결산보고서, 그걸 합치면 제국 전체에 어느 정도의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경기 동향의 예측도 세우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게르라흐 자작."
  "확실히 그 말이 맞군요."
  게르라흐가 답하자 다들 다시 신음했다.

  지금까지가 아마추어였다. 제국 건국 당시는 귀족도 유능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기에 결산보고서 작성따위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귀족들의 질은 열화되었고 영지경영도 만족스럽게 못하는 바보 놈들도 많아졌다. 그런 이상 감시체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이용하여 모든 귀족에게 결산보고서 작성을 의무하도록 하죠. 제국 정부가 귀족의 실수를 구제해주는 건 이번 한 번만. 이후엔 구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귀족은 제국 정부에 대하여 그 경영상태를 보고한다. 제국 정부는 그걸 감시하여 이상이 발견되면 권고, 지도한다. 그렇게 하는 걸로 영지 경영의 건전화와 귀족 재정상태의 건전화를 꾀한다……. 그리고 이걸 실행하면 페잔의 영향도 받기 쉬운 귀족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군."
  리히텐라데 후작이 맞장구를 치자 다들 끄덕였다.

  "그럼 일단 귀족들에게 빚을 갚을 수 없는 자는 제국 정부에게 신고하도록 통지할가. 그리고 빚을 청산한 뒤에 결산보고서 작성을 귀족들에게 의무하도록 한다. 어떤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다들에게 묻자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찬성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은 건 역시 결산보고서따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 벌거벗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성적으로는 납득해도 감정적으로는 불만이 있다는 거다. 하지만 시작되면 그 나름대로 장점도 있다고 이해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귀족들에게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책무를 제국 정부가 이어 받는 형태로 하도록 하죠. 제국 정부가 채권자와 교섭하여 책무를 지불하는 겁니다."
  "그건 큰일이 아닙니까. 귀족들에게 어느 정도 맡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플레겔의 제안에 다들 끄덕였다. 그러는 편이 좋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플레겔 내무상서. 책무 중에는 법률로 정해진 금리를 넘는 것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
  "대출 금액이 커지면 빌려주는 쪽도 주저하게 됩니다. 빌리는 입장에선 금리가 높아져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귀족에게 맡겨두면 그대로 갚게 되겠죠.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부당하게 취득한 이익은 반환하게 만드는 편이 좋습니다."
  룸프 사법상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한숨을 내쉬고 싶다. 인간이 하는 짓은 몇 년, 아니 몇 세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도 원래 세계에서도…….

  "그리고 이번 책무를 대신 져주는 귀족에게는 감찰관을 파견하도록 하죠."
  "감찰관?"
  "영지 경영에 실패한 겁니다. 제국 정부에서 감찰관을 파견하여 경영에 관하여서는 그 동의가 필요하도록 만든다……. 제국 정부에 책무를 전부 갚기 전까지 정부의 감시하에 두는 겁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흘렸다.

  "엄격하군."
  "세금을 투입하는 겁니다. 당연하겠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민들이 분노할 겁니다. 정부는 귀족에게 무르다고."
  "……."
  할아범이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향이 너무 크기에 망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고 말하면 무르다고 받아들어져도 어쩔 수 없는 거다.

  "결산보고서의 관할은 재무성이겠습니다만, 감찰관은 내무성 쪽이 좋겠죠."
  "서로 감시하게 만드는 건가."
  "감시하게 만드는 건 아닙니다만, 검사 기관은 많은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가? 재무상서, 내무상서."
  두 사람도 끄덕였다. 반대는 없다. 그리고 국무상서는 아버지와 리텐하임 후작, 그리고 룸프 사법상서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쪽도 반대는 없다. 다시 말해 룸프는 법제화에 나선다는 것이 된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아버지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표정이 험하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대로 응접실에 둘이서 마주 앉았다.
  "에리히, 아까 전의 결산보고서지만……."
  "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라고 하신다면?"
  "당가나 리텐하임 후작가는 그 힘을 정부에게 알려지면 깎아낸다는 움직임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군요."
  그렇군. 그걸 걱정하나……. 기우라고는 할 수 없겠네.

  "네가 말했었지. 지금은 좋지만 10년 후, 15년 후는 알 수 없다고. 이 경우도 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확실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개혁이 진행되면 평민의 힘이 커집니다. 다시 말해 개혁을 진행하면 정부의 힘이 커지는 일이 되는 겁니다만……."
  내가 우물거리자 아버지가 끄덕였다.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건 너다. 평민들의 지지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나 리텐하임 후작가에게도 향하겠지."
  "……전체적으로 보면 귀족들의 힘은 억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는 정부의 힘이 강해지게 되는……."
  아버지가 "음"하고 끄덕였다.

  "당가만을 두려워하는 일은 없겠죠. 두려워한다면 당가가 다른 귀족과 연합하는 일일 거라 생각합니다."
  "리텐하임 후작도로군. 혹은 일문의 녀석들이든가."
  "네."

  단독이라면 두려워할 일은 없겠지. 있다고 한다면 연합할 때다. 문제는 그걸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을지로군. 예를 들면 내가……. 무리로군. 귀족을 억제하려 하고 있는 나를 추대하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걸 말하자 대공도 "그렇겠지"라며 끄덕였다.

  "내 기우일까?"
  대공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불안한 표정이다.
  "가능성으로 말하자면 당가에 강한 적의를 가진 사람이 이 나라에 나타났을 때겠죠. 그 사람이 이 나라의 실권을 장악했을 때,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움직인다면 위험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걱정할 필요 없나."
  "그렇지요. 방심할 순 없습니다만……."
  "음."
  대공이 안심한 듯이 끄덕였다. 10년은 괜찮겠지. 15년도 문제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 뒤겠지. 엘빈 요제프, 이 녀석이 어떻게 성장할지. 그게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