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아름다운 꿈(연중)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43 화.

추리닝백작 2020. 6. 22. 17:58


제국력 488년 4월 10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저택. 에리히 폰 발렌슈타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 있는 밀담실에 세 명이 모였다.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 그리고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제국 귀족 4천 가문 중에서도 정점에 선 권력자일 테지만, 나에게 있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란 건 골칫거리만 몰려오는 벌 게임과 같은 자리처럼 느껴진다.

  "일부러 이곳에서 대화라니, 꽤 성가신 이야기인가 보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소파에 나란히 앉은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의 표정이 굳어있다. 꽤나 긴장하고 있겠지. 나도 다소는 긴장하고 있다.

  "저는 평민으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귀족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리텐하임 후작에게 판단해달라는 건가."
  "예."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날 봤다. 험한 표정이다. 그리고 경계의 색이 있지만, 거부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걸 봐주세요."
  한 권의 파일을 꺼냈다. 게르라흐 자작에게서 빌린 자료다. 귀족전용 금융기관, 특수은행, 신용금고에서 융자를 받고 있는 귀족 일람이다. 아버지가 파일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진도가 나갈수록 아버님의 표정이 떫어지고 입가가 일그러진다. 다 읽고난 뒤 크게 숨을 내쉬고 파일을 리텐하임 후작에게 건냈다.

  "게르라흐 자작인가."
  "예. 리히텐라데 후작이 제게 상담하라 했다고 합니다."
  "또 성가신 일을……."
  아버지가 중얼거린다. 그리고 옆에서 파일을 읽고 있는 리텐하임 후작의 표정도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성가시다. 이런 문제를 떠넘겨진 나는 더더욱 귀족이 싫어졌다.

  "제국이 재정난에 신음할만 하군. 이걸 보면 이해할 수 있어."
  "어느 정도의 가문이 빚지고 있는 거냐? 에리히."
  "제국 귀족 4천 가문, 그 중에 대충 3천 가문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빚지지 않고 있는 건, 무척이나 유복하여 빚을 질 필요가 없든가, 반대로 너무 가난하여 대출조차 받지 못하던가, 혹은 권력이 없든가입니다."
  두 사람이 지친 표정을 보였다. 내 고생을 조금은 이해했으려나.

  리텐하임 후작이 내게 파일을 돌려주려 하기에 거절하고 또 하나의 파일을 건냈다.
  "이건?"
  "페잔 상인에게서 빚을 지고 있는 귀족입니다. 지금은 정부가 대신 감당하고 있습니다."
  리텐하임 후작이 아버님에게 시선을 향하고서 파일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한숨을 내쉬고 아버님에게 파일을 건냈다. 아버님도 마찬가지였다. 읽기 시작하고 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이름이 기록되어 있군. 공작."
  "네. 정부의 대출 보조를 받고 있는 대부분의 귀족, 500만 명 정도입니다만. 그들은 금융기관에게서 융자를 받은 것에 더해 페잔 상인에게서 대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불쾌한 표정을 짓지 말라고. 빚을 진 건 내가 아니니까. 어째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금융기관에게서 받은 융자는 페잔의 투자회사에 맡겨져 운용되든가, 혹은 귀족 자신이 기업을 운용하는 데에 쓰였습니다. 거기에서 얻은 이익이 귀족들의 유흥비가 되는 식입니다. 투자회사도 절대로 귀족들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손해를 입히게 되면 귀족들은 두 번 다시 돈을 맡기지 않을 테니까요. 신용이 걸려있습니다. 페잔 상인이 그들에게 융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변제는 확실하니까요."
  눈앞의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다. 불쾌한 이야기일 테니까. 호통이 없는 것이 다행인가.

  "내년부터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이 작성되어 공표되는 것이 의무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일들이 평민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폭동이 일어나겠지."
  아버님이 말하자 리텐하임 후작이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본래 영지 개발에 쓰여야 할 자금이 유흥비를 벌기 위해 쓰인 거니까. 그것도 부족해서 빚까지 지고 있는 바보도 있다. 적어도 이익을 영지 개발에 써줬다면……. 무리겠지. 평민따위 귀족에게 있어 벌레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작은 이 사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지금 상황에서 자금 회수는 불가능합니다. 강제 회수하면 제국은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되겠죠. 이건 재무성도 같은 의견입니다. 아마도 페잔도 혼란에 빠질테고, 그 혼란은 동맹에까지 미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은하계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제국에서 빼낸 자금이 페잔에 맡겨지고 페잔이 그걸 운용한다는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그걸 멈추면 페잔은 말도 안 되는 자금부족에 빠지겠지.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폭동이 일어나는 걸 단지 기다린다는 건가."
  "……."
  "공작,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리텐하임 후작의 목소리에는 책망하는 색이 있었다. 화를 내도 소용 없다. 나도 분노하는 중이니까.

  "폭동이 일어난 시점에서 정부가 개입합니다. 그리고 상황을 조사하여 '시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판단하여 작위를 박탈합니다."
  "말도 안 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라고 두 사람이 어이 없어하는 소리를 냈다. 목소리만이 아니다. 시선도 그렇다. 마치 정신이 나갔냐는 듯한 눈이다.

  "작위를 박탈당한 귀족의 재산은 모두 제국 정부의 것이 됩니다. 귀족이 경영하는 기업, 투자한 자금 전부입니다. 사실상 회수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아차렸겠지.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영지도 몰수하니까 직접세도 증가할 것이고, 영지 경영을 못하는 귀족들도 도태하게 됩니다. 재정재건과 귀족계급의 열화 방지. 일거양득이네요."

  페르너, 네가 한 말이 맞았다. 영지경영을 하지 못하는 귀족이 영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귀족은 제국의 번병, 지켜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이상해지는 거다. 오히려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렇게 되면 귀족도 어리광을 부릴 수 없게 된다. 모델은 에도 막부다.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다이묘에 죄가 있다면 용서 없이 지위를 박탈하고 영지를 몰수했다. 덕분에 어떤 번도 영내통치에는 힘을 들였다. 농민 봉기 같은 건 막부에 구실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

  "에리히, 폭동이 일어나 박탈당한 귀족의 숫자는 어느 정도가 되리라고 보고 있나?"
  "최소한 500가문 아래는 아니겠죠. 그리고……, 2천 가문을 넘을지도 모르겠네요. 폭동 하나가 일어난 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불만 같은 건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아버님이 한숨을 내쉬고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넌 분노하고 있는 건가?"
  "분노하는 중입니다."
  "……."
  "귀족은 제국의 번병? 농담이 아닙니다. 이걸 보면 아시겠습니다만, 어딜 어떻게 봐도 제국을 갉아먹는 해충입니다. 바보처럼 제국은 지금까지 그 해충 놈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국은 벌레 파먹은 자국 투성이인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면 제국은 해충 놈들에게 물어뜯겨 썩어 자빠지고 말겠죠."
  아버님이 고개를 저었다.

  "혼란이 일어날 거야. 놈들이 얌전히 영지와 지위를 박탈 당할 거라 생각할 수 없다. 네가 귀족들의 몰락을 바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놈들은 협력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하겠지. 큰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대공의 말대로다. 공작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 외의 방법은 없는 건가? 박탈하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해야겠지. 처음부터 박탈을 목적으로 했다간 생사를 건 전쟁이 될수밖에 없어.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반란군이 그걸 틈 탈 가능성도 있다."

  역시 반대인가. 뭐,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지만. 아버님도 리텐하임 후작도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귀족을 제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혼란은 바라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이 바라는 건 연착륙이다. 원작에서 라인하르트가 행한 것 같은 드라마틱한 경착륙은 바라고 있지 않다.

  결국 체제 안에서의 개혁이라는 게 된다. 이 두 사람만이 아니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같은 생각이겠지. 라인하르트처럼 체제 그 자체를 바꾸는 개혁은 되지 않는다. 바라지 않는다. 그런만큼 개혁은 철저한 것은 되지 않겠지. 어중간한 대증요법에 가까운 정책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소화불량에 빠질 것 같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나 자신이 배제 당하게 된다. 은근슬쩍, 무리 없는 개혁을 진행해야만 한다. 데릴사위는 괴롭다. 입장이 너무 약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싶어지네.

  "그럼, 이건 차선책입니다만. 금융기관에서 빚진 것만이 아니라 정부에게서도 빚을 지고 있는 귀족입니다만, 이 빚들을 전부 탕감해줍니다."
  "탕감?"
  "네. 단, 영지는 몰수합니다. 영지 경영을 할만한 능력을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두 사람이 신음소리를 냈다.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합니다. 성가신 영지 경영은 하지 않아도 되고, 빚도 사라집니다. 덧붙여 융자한 자금은 그대로 재산으로서 인정됩니다. 재정상황은 단숨에 개선되겠죠. 영지를 잃는 일에 저항은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작위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익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정부는 직할령이 늘어나고, 그곳에서 직접 세금을 거둘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적자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본전은 뽑을 수 있겠죠."
  "……."
  "그리고 영지 경영을 하지 않는 이상, 세금 면제는 없습니다. 이후로는 세금을 내도록 합니다."
  다시 신음소리가 들렸다.

  "영지를 잃고 세금을 내는가……. 엄하군."
  "음. 엄하다. ……, 공작 혹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단 폭동이 일어나면……."
  "몰수인가."
  "네. 그들이 바라던 일입니다. 용서는 없습니다. 저로서는 그쪽이 더 좋네요. 이 이상 저 놈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건 사양입니다."
  두 사람이 얼굴을 찡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만인가?

  "이 이상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빚 탕감에 융자도 거저 주겠다는 겁니다. 대우가 너무 좋을 정도입니다. 평민들도 간단하겐 납득하지 않겠죠. 무척 정중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불만을 품으면, 그 불만은 이번엔 정부를 향하게 될 겁니다."
  아버님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째냐?

  "어쩔 수 없군. 그래서, 에리히.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할 건가? 빚을 지고 있지는 않지만 융자를 받고 있는 놈들이네만."
  "융자를 회수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렇다면 융자를 써서 얻고 있는 이익의 일부를 영지 개발에 돌리는 걸로 지금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할 건가?"
  "융자에서 얻은 이익의 10%를 정부가 회수합니다. 그리고 30%를 영지 개발에 투자하게 합니다. 이건 법률로 정하여 위반하면 처벌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벌금입니다만, 위반 사항이 심할 경우 영지 몰수도 실시합니다.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이 작성되면 법 집행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익 전부를 영내 개발에 투자하라고 하면 귀족들은 반발하겠지. 하지만 절반 이상을 자유롭게 써도 좋다고 하는 거다. 참아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평민들도 불만은 있겠지만 영지의 투자금액은 확보했다. 게다가 융자기간이 길어지면 영지 개발에 투자금액은 최종적으로는 융자금액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 이쪽도 참아줘야만 한다. 정부도 정기적으로 수입을 가지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본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리텐하임 후작."
  "영지 몰수, 세금 지불은 조금 엄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폭동이 일어나면 작위가 박탈되어도 불만을 말할 수 없다. 그걸 생각하면 우대라고 해도 좋겠지. 공작의 말대로, 너무 무른 대처라고 비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다."
  아버님이 "그렇겠지"라며 끄덕였다.

  뭐, 잘 됐나. 처음부터 영지 몰수, 세금 지불을 제안했다면 너무 엄하다고 난색을 비췄겠지. 일부러 작위 박탈이라는 극단적인 강경책을 내놓았던 건 영지 몰수, 세금 지불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걸로 리히텐라데 후작, 게르라흐 자작도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이 찬성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두 사람도 떫어하긴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제국력 488년 4월 10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저택. 안톤 페르너



  에리히가 서재로 오라고 불렀다. 요 며칠 간 에리히는 기분이 좋지 않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과 함께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들어가니 에리히가 소파에 앉도록 권유했다. 양쪽에 슈트라이트 소장과 안스바흐 준장, 한 가운데에 나다. 또 이 배치인가. 좀 봐달라고…….

  "회의는 잘 끝나셨습니까?"
  안스바흐 준장이 말하자 에리히가 끄덕였다.
  "대공, 리텐하임 후작은 제 생각에 찬성해주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뿐만이 아니다. 양쪽의 두 사람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에리히에게서 상담을 받았지만, 저 두 사람이 받아들일지 어떨지 의문이었다. 영지 몰수에다가 귀족에게 세금을 내게 한다는 것에 동의했는가…….

  "이 다음은 리히텐라데 후작, 게르라흐 자작에게 설명하게 됩니다. 다소 논쟁도 있겠습니다만,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이 찬성하고 있다고 하면 반대는 하지 못하겠죠."
  제국은 변한다. 귀족이 세금을 내는 거다. 평민들도 제국이 변했다고 실감하게 되겠지.

  "슈트라이트 소장, 영지를 잃은 귀족들입니다만, 사병을 보유하고 있을 겁니다. 영지를 잃으면 필요 없게 되겠죠. 제국군에 넣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병력인지 조사해주겠습니까? 가능하면 훈련도도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급히 조사하겠습니다."
  그렇군. 섵불리 방치하면 해적이 될수밖에 없다. 제국군 편입이 필요하겠지. 500 가문쯤 되면 꽤 많은 병력이 될 것이다. 5만 척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니, 빚을 지고 있으니까 그보다 적으려나…….

  "그리고 안스바흐 준장."
  "예."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노의 숫자를 조사해주세요."
  "농노, 입니까."
  준장이 반문하자 에리히가 "그렇습니다"라고 끄덕였다.

  "영지가 없어진 이상 농노는 불필요하게 됩니다. 사적재산이기에 정부가 구매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겠죠. 귀족들 사이에서 거래를 하게 되면 싼값에 후려쳐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가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해주면 기뻐하겠죠. 다소는 서비스 해야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돈이 들겠군요."
  내가 지적하자 에리히가 힐끔 날 봤다. 그런 무서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기 위한 재원은 준비했다. 귀족들의 수익 10%를 징수할 것이고, 몰수한 영지에서는 직접세도 들어온다. 문제는 없어."
  불쾌하단 목소리다. 그렇게 생각하니, 에리히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언젠가 직접세 수입은 더욱 늘어날 거야."
  엑, 하고 생각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도 의아한 표정이다. 그걸 보고 에리히가 더욱 웃음을 크게 지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명백한 냉소다.

  "수익의 40%를 빼앗기게 된 귀족들이 그걸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안톤."
  "……."
  "무리겠지. 대부분의 귀족은 투자회사에게 더 많은 이익을 내라고 요구할 거야. 더욱 큰 리턴을 얻기 위해 더욱 큰 리스크를 지닌 상품에 손을 대게 되겠지. 언젠가 실패하여 손실을 내게 될 거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손실을 내면 당연히 영지 개발에 돌릴 자금은 사라진다. 영지민들은 납득하지 않겠지. 정부도 납득하지 않아. 그 수익으로 영지 개발에 돈을 내고 있으니까 투자회사에 융자를 맡기는 걸 인정하고 있던 거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슈트라이트 소장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영지를 몰수한다."
  "그건……."
  말을 잃은 슈트라이트 소장을 에리히가 차가운 눈으로 쳐다봤다.
  "영지 개발을 할 수 없는 이상 영주로서의 자격은 없다. 제 예측으로는 10년도 지나지 않아 제국 귀족 4천 가문 중 절반 이상은 영지를 가지지 못한 귀족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안스바흐 준장이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그것에 대해선 대공 각하, 리텐하임 후작은……."
  "모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예상입니다. 빗나갈 가능성도 있겠죠. 그렇기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다. 말하면 반대할 거라 생각한 거다. 에리히의 진짜 목적은 귀족의 무력화겠지. 그렇게 하여 개혁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면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반대할 것이라 봤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귀족을 우대하는 척하는 정책을 보여주며 설득했다…….

  "말하는 게 좋을까요?"
  은근슬쩍 꺼낸 에리히의 말에 양쪽 두 사람의 몸이 굳었다. 나도 그렇다. 시험 받고 있다. 개혁을 지지하는가 아닌가. 자신을 지지하는가 아닌가……. 에리히가 웃음을 짓고 우리들을 보고 있다.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다. 떨릴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 조금 전 부탁했던 것, 시급히 조사해주세요."
  "예."
  공기가 풀렸다.
  "안톤, 게르라흐 자작에게 연락을 취해줘. 예의 건으로 상담하고 싶다고."
  "알겠습니다."

  그걸 계기로 서재에서 물러났다. 방을 나오자 세 사람 모두 두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할 건가. 슈트라이트 소장."
  "글쎄. 경은 어떻게 할 건가? 안스바흐 준장."
  "어떻게 해야 할지. ……페르너 대령, 경은 어떻게 할 건가?"
  "……글쎄요. 소관은 뭐라고도."
  결국 아무도 대답을 내지 못했다. 서로를 돌아보고, 그리고 발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