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7년 8월 4일. 신무우궁, 장미정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브룩하우젠 후작들을 헌병대에 넘긴 후, 새로이 반란군 토벌 칙명을 받았지만, 난 어떤 감명도 받지 못했다. 아마도 저 장소에 있던 사람은 모두 같은 생각이었겠지.


  황제와 세 사람의 중신들의 흉소에 독기가 빠졌다고 해도 좋다. 식전 마지막까지 기분이 좋았던 황제와 세 명의 중신. 한 편, 얼굴이 창백해진 귀족들. 있을 수 없는 구도였다.


  이미 헌병대는 오딘에 있는 페잔의 변무관사무소를 급습했다. 이걸로 루빈스키는 오딘에 있어 눈과 귀를 잃었다. 제국 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제부터 우주함대는 반란군 요격에 나선다. 제도가 비게 되는 이상 나름대로 절차가 필요하다. 오딘에선 반역자 맥시밀리언과 통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헌병대가 계엄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뤼네부르크 중장이 이끄는 장갑척탄병 제 21사단은 동쪽 정원과 남쪽 정원 사이에 부대를 전개했다. 뤼네부르크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심복이라고 해도 좋다. 그걸 귀족들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들이 묘한 움직임을 할 일은 없겠지.


  우주함대 사령부에 돌아가고자 하니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불러 세웠다.

  “로엔그람 백작. 폐하가 경을 부르시네.”

  “폐하께서?”


  “음. 장미정원에 오라고 하시는군.”

  ‘장미정원’ 다시 말해 비공식이라는 건가. 대체 무슨 용무인가? 아까 전의 광경을 생각하면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싫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 내 마음속을 눈치 챘는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어딘가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만만찮은 영감이다.


  리히텐라데 후작과 헤어져 장미정원으로 향한다. 황제는 때때로 장미정원에 신하를 부른다. 불린 것은 극히 일부, 한줌도 되지 않는 신하뿐이다. 황제의 신뢰가 두터운 문무 중신들. 나도 이번에 그 안에 들어간다는 건가. 기뻐해야 할 일인가, 슬퍼해야 할 일인가.


  생각해보면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아직 대장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장미정원으로 불려갔었다. 황제의 입장에서 봐서 신뢰할 수 있는 신하였던 거겠지.


  장미정원에 가니 황제는 장미꽃을 즐거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왔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황제는 장미만을 보고 있다. 나는 황제의 곁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폐하. 리히텐라데 후작으로부터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음. 수고했네.”

  내 머리 위에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삼 생각했다. 이런 목소리였나? 아니, 확실히 황제의 목소리다. 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든다. 뭐지?


  “무공을 기대하고 있네. 로엔그람 백작.”

  “감사하옵니다. 소신의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음.”


  당연한 인사로 끝이다. 아무래도 황제의 변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목소리가 들렸다.


  “저번 패전 때부터 시끄럽게 구는 자들이 있어서 말이야. 로엔그람 백작가는 무인의 명가. 그대에겐 짐이 무겁다고 말이지.”

  “…….”


  “작위나 지위는 공적의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지. 그것도 이번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면 불만을 가질 자들도 입을 다물 걸세.”

  “황송하옵니다.”


  웃음 섞인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이것을 말하고 싶었는가. 다시 말해, 두 번 다시지지 말라고. 그런 거로군. 말하지 않아도 질 생각은 없다.


  “백작가 따위 누가 잇든, 누가 끊든 대단찮은 일은 아니지만 말일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너무 많구먼.”

  “…….”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난 무심코 고개를 올려 황제를 봤다.


  프리드리히 4세는 내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장미 꽃잎을 손끝으로 쓰다듬고 있다. 입가에는 웃음이 있다. 뭔가가 다르다. 황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설마 가짜?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이 위화감은 뭔가?


  “그렇다 해도 아까운 짓을 했구먼.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대를 공작으로 했을 텐데.”

  “공작……이옵니까?”


  무슨 말이냐? 공작?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음. 카스트로프 공작가일세. 그대가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내려주겠네만. 어떤가?”

  나를 시험하는 건가? 그럴 리는 없다. 이 범용한 남자가 날 시험할 리는……. 그렇게 생각한 순간 브룩하우젠 후작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감사한 말씀이십니다만, 신에게 있어선 백작가조차 몸에 벅찬 지위이옵니다. 공작이란, 이른바 구름 위의 신분. 신의 손이 닿을 범위가 아니옵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하니 황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쿡쿡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말하는 황제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발렌슈타인에게 말일세. 귀족이 될 생각은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네. 정확히는 어떤 인물을 통해서 남작가를 이을 생각은 없냐고 물어본 게지만.”

  “…….”


  발렌슈타인을 귀족으로? 남작가를 잇게 한다? 묘한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 궁중에서도 소문이 돌지 않던 이야기다. 진짜인가? 그렇다면 꽤 입이 무거운 남자가 움직였는가……. 다시 말해 진심이었다는 건가.


  “저것이 뭐라 대답했는가, 그대는 아는가?”

  “……소신은 뭐라고도.”

  무심코 맺음이 좋지 않은 대답이 됐지만, 실제로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발렌슈타인에겐 출세욕은 느낄 수 없다. 뭐라고 대답해도 빗나가게 될 것 같다.

  “좋네. 생각하는 대로 대답해보게.”


  황제의 말에는 날 시험하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즐거워하며 듣고 있다.


  “모르겠는가? 발렌슈타인은 말일세. 귀족이 되고 싶다고도, 귀족이 되는 걸 명예라고도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네.”

  그렇게 말하고 황제는 이상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작위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들려주고 싶구먼. 이 제국의 사령장관이, 귀족이 되는 걸 명예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


  그라면 그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난 극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로엔그람 백작가를 잇는 것조차, 그에게 있어선 코웃음 칠 일이겠지. 나는 뮈젤이란 성이 싫었을 뿐이지만…….


  “모두 어떻게 생각할는지. 놀랄까? 화낼까? 미쳤다고 생각할까……. 그대는 놀라지는 않은 것 같구먼.”

  “……그렇지는…….”


  마치 나쁜 장난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몸을 움츠렸다. 황제는 변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틀림없이 변했다. 여기에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범용한 프리드리히 4세가 아니다…….


  “어떨는지? 짐은 이렇게 생각하네. 차라리 저것에게 황제위를 넘겨줘버릴까 하고.”

  “폐하…….”

  “명예라 생각할까?”


  황제의 뜬금없는 질문에 난 힐끔힐끔 황제를 봤다. 황제를 넘긴다? 무슨 농담인가? 하지만 황제는 웃음을 거둔 진지한 표정으로 묻고 있다.

  “……소신은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그대는 어떤가? 황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시옵니다. 황제라니.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사옵니다.”

  그렇게 대답하니, 황제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런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는가.”

  “…….”

  눈치 챘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알 수 있다.


  “얼굴색이 좋지 않군. 로엔그람 백작. 짐이 변한 게 이상한가?”

  “아뇨. 그렇지는.”

  황제는 어디까지나 즐거운 기색이다.


  “짐의 수명이 말이네. 올해 안이라고 하더구먼.”

  “!”

  무심코 나는 황제를 봤다. 하지만 황제는 온화하게 웃고 있다. 잘못 들었나?


  “발렌슈타인이 그렇게 말했네.”

  “…….”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역시 발렌슈타인은 황제의 수명은 올해 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황제에게 말한 건가? 황제에게 책망을 듣지 않았는가? 황제와 발렌슈타인 사이엔 무슨 일이 있는가? 단지 군신 사이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은 반년으로 목숨이 다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년, 좋을 대로 살자. 그렇게 생각했을 때, 짐에게서 모든 것이 풀려났네.”

  “…….”


  “즐겁구먼.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즐겁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네. 덧붙여 즐겁게 해주는 남자가 있으니까 말이야.”

  “…….”


  “가능하다면 조금 더 오래 살고 싶구먼. 그대나 저 남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은 기분 일세……. 미련이구먼. 아니, 짐은 내년에도 살아남을지도 모르네. 그 때엔, 저것에게 벌을 줘야만 하겠지. 짐을 속인 거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황제는 또 웃었다. 황제는 어디까지나 기분이 좋은 채다. 난 단지 기분 좋게 웃는 황제를 지켜봤다.


  한 번 웃고 나서 황제는 표정을 굳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엔그람 백작. 가보게나. 무훈을 기대하고 있겠네.”

  “예. 반드시. 폐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사옵니다.”

  난 고개를 숙이고, 일어난 후 빠른 걸음으로 장미정원을 떠났다.


...


제국력 487년 8월 4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우주함대 사령부에 돌아오니 각 함대 사령관이 이미 출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반란군 요격으로 향한다.”

  메르카츠, 케슬러, 메크링거, 클레멘츠, 아이제나하, 루츠, 바렌,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뮐러가 각자의 표정으로 끄덕인다.


  “반란군이 이 오딘으로 향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우리들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계획에 따라 샨타우 성계에서 반란군을 기다리게 되겠지.”


  “이미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리히텐라데 경유로 샨타우 성계로 향하고 있다. 샨타우 성계에서 제국군의 총력을 가지고 반란군을 격멸한다.”

  “예.”


  “기다려라. 전승 전배다.”

  나는 출격하려는 그들을 불러 세우고 여성부사관들에게 와인을 가져오도록 했다.


  “승리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이 다음은 그걸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란군을 살려서 돌려보내지 마라. 그 조건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 경들에게 대신 오딘의 은총이 함께 하길. 프로짓!”

  “프로짓!”


  와인을 목을 넘기고 관습에 따라 잔을 바닥에 내리쳤다. 잔이 산산조각이 나서 깨졌다. 반란군도 이 잔처럼 산산조각 나겠지…….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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