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력 796년 8월 19일, 0:00. 이제르론 요새. 앤드류 포크.


  회전이 시작하고 6시간이 지났다. 전선은 교착하고 있다. 우익부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우익이 적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좌익이 공세로 나올 수 없잖은가! 저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면 우주함대 사령부의 명령으론 싸울 수 없다고 하는 건가. 바보 녀석들이!


  사령장관을 보니 불안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쓸모없는 것이 여기에도 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 어째서 이 남자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냐? 뭐,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니까 그 점에 대해선 평가하고 있지만.


  그렇다 쳐도 저 쓸모없는 것들, 내 경력에 상처를 입힐 생각인가? 저 정도의 적들 따위 빨리 정리해버릴 수 없는 건가? 뭐가 미라클 양이냐. 어차피 비상근 참모. 밥벌레 양일뿐이지 않은가.


  로엔그람 백작 따위 어차피 누나가 황제의 총희이기에 출세한 것이다. 발렌슈타인 따위 지방 반란 진압도 제대로 못할 정도의 무능력자가 아닌가.


  그린힐 총참모장도 어리석은 자들에게 꼬드김 당해 저런 무능력자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딸을 너무 아낀 나머지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 앤드류 포크 준장이야말로 제국을 쓰러뜨릴 남자다. 동맹은 날 칭송해야 한다. 제국을 쓰러뜨린 명장! 역사 최고의 지장! 그 별칭은 나에게야말로 어울린다. 뷰코크, 우란푸, 보로딘 따위 날 치켜세우기 위한 조역에 불과하다.


  이 싸움이 끝나면 계급도 소장을 뛰어넘어 중장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중장이 되어야 한다. 우주함대 총참모장이 되어 동맹군을 움직인다. 작전참모 따위 나에겐 부족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익의 쓸모없는 것들의 엉덩이를 때려줘야.


  “총사령관 각하. 우익에게 다시 한 번 공격을 명령합시다. 저 정도의 적을 무너뜨리지 못하다니. 할 마음이 없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총사령관 명령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슨 총사령관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귀관의 말대로다. 다시 한 번, 적 좌익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라. 날 우롱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엄하게 말하는 거다!”


  단순한 남자다. 조금 프라이드를 긁기만 하면 간단하게 춤춰준다. 프라이드 정도의 능력도 없는 주제에. 쓰레기통이라도 뒤져 보는 게 좋을 거다. 무능력 사관이.


...


제국력 487년 8월 19일, 2: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전방에 적의 대군을 확인. 부사령장관이 이끄는 제국군과 교전중인 모양.”

  “앞으로 200광초로 사격거리에 들어옵니다.”

  떨림 섞인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함내의 흥분과 긴장은 최고조로 올랐다.


  원작이라면 4천만 개? 5천만 개였나. 기뢰군이 동맹군의 배후를 지키고 있었을 테지만, 여기엔 없다. 별동대가 오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가, 꽤 늦으리라 판단했겠지.


  혹은 동맹군은 페잔의 정보를 무작정 믿은 걸지도 모른다. 슈무데 제독도 맥시밀리언도 잘 일을 처리했다. 아니면 제국군 따위 대단하지 않다고 방심했는가.


  적은 아직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완전히 무방비한 배후를 보이고 있다. 이쪽의 함대는 횡렬로 포진을 짜고 있다. 좌측에서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나, 켐프, 렌넨캄프다.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공격력에 자신이 있는 사내들이 좌익에 모여있다. 루츠, 케슬러들과 적을 협공하여 그대로 그물을 올리듯이 우익으로 포위를 향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간단히 동맹군을 섬멸할 수 있겠지.


  “참모장. 전 함대에 명령을.”

  “예? 하지만. 그래선 적이 눈치채지 않겠습니까?”

  진지하게 걱정하는 발트하임 참모장의 얼굴이 우스웠다.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괜찮습니다. 이 시점에서 눈치채도 적은 아무런 수도 쓸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혼란할 뿐이겠죠.”

  “예. 그럼 뭐라고?”


  “최대전속으로 돌입하여 적의 좌익을 공격하라……. 그리고…….”

  “? 그리고?”

  “섬멸하라. 사령장관은 경들의 무훈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적의 섬멸을 바란다. 라고.”


  “!”

  “왜 그러십니까?”

  “예. 바로 명령하겠습니다.”


  발트하임 참모장은 내가 과격한 말을 하는 것에 놀란 것 같다. 한 순간 말을 잃었다……. 이 싸움에서 모든 걸 정한다. 언젠가 올 내전 때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겠다. 제국의 손으로 우주를 통일한다. 지금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오퍼레이터. 전 함대에 명령. 최대전속으로 돌입하여 적의 좌익을 공격하라. 섬멸하라. 사령장관은 경들의 무훈을 바라지 않으며, 단지 적의 섬멸을 바란다.”

  “예.”


  이쪽을 눈치 챘겠지. 전술 컴퓨터의 의사전장 모델에 비춘 동맹군의 움직임에 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미 늦다. 이걸로 섬멸한다.


...


제국력 487년 8월 19일, 2:00. 제국군 비텐펠트 함대 기함, 케니히스티겔.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각하. 총기함 로키에서 입전.”

  “음.”

  “최대전속으로 돌입하여 적의 좌익을 공격하라. 섬멸하라. 사령장관은 경들의 무훈을 바라지 않으며, 단지 적의 섬멸을 바란다.”


  “!”

  ‘사령장관은 경들의 무훈을 바라지 않으며, 단지 적의 섬멸을 바란다.’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령장관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거겠지.


  그레브너, 오이겐, 디르크센은 시선을 마주하고 사령장관이 보낸 전문의 과격함에 놀라고 있다. 난 오히려 평소 온화하기에 전장에선 누구보다도 격렬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전 함대에 명령. 섬멸하라! 한 척이라도 제국에서 도망치게 놔두지 마라!”


...


우주력 796년 8월 19일, 2:00. 제 2함대 기함, 파트로클로스. 파에타.


  “배후에 적의 대군!”

  “바보같은. 무슨 말이냐!”

  오퍼레이터의 절규가 함교에 울린다. 적이라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적입니다! 5개 함대. 총수, 약 6만을 넘습니다!”

  바보 같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대체 어디의 적이냐. 발렌슈타인이 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무슨 일이냐. 제국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적은 우리 군을 협공하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적은 아직 오딘쯤에 있을 것이다. 무슨 착각이다.


  “적, 공격합니다!”

  화면에 화구가 차례대로 생겨나고 사라져간다. 아군이 차례대로 폭발한다.


  “사령관 각하.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해야 좋으냐?

  “……제 3, 제 4분함대를 배후의 적에게 향해라!”

  “각하. 그래선 전방의 적이. 애초에 반전공격은.”


  그런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수가 없지 않은가!

  “닥쳐라! 제 3, 제 4분함대를 배후의 적으로 돌리는 거다!”

  어째서냐.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나. 각개격파하는 게 아니었나…….


...


우주함대 796년 8월 19일, 2:00. 제 13함대 기함, 히페리온. 양 웬리.


  “각하. 적이.”

  무라이 참모장이 눌러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트리체프, 라프, 그린힐. 모두 믿을 수 없는 걸 본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당했군.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카스트로프에 가지 않았어. 그렇게 보이고 샨타우로 향했던 거지. 페잔조차 속이고 말이지. 정말, 훌륭하다.”


  페잔을 속였다? 아니, 혹은 페잔도 제국에 붙었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동맹은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군사력이 저하하고, 페잔도 적으로 돌았다. 최악이라고 해도 좋겠지.


  “각하.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합니까?”

  라프가 어딘가 질렸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렇지. 아직 도망치기엔 이른 것 같다. 다행히 이쪽은 협공당하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무참한 일이 되었다. 아군의 좌익은 전멸이군. 이쪽도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


제국력 487년 8월 19일, 2:00. 제국군 로엔그람 함대 기함, 브륀힐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반란군의 좌익은 완전히 무너졌다. 전방과 후방에서 제국군에게 협공당해 차례대로 함열이 무너져 폭발하고 있다. 화면에는 압도적으로 적을 부수고 있는 제국군의 모습이 비추고 있다.


  브륀힐트의 함교는 승리에 끓어오르는 듯한 기쁨으로 폭발하고 있다. 저번, 이제르론 요새에서 패배의 고배를 마신 병사들이 그대로 타고 있는 거다. 기쁨도 한층 더 크겠지.


  “각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서 통신입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상에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모습이 비췄다.


  “로엔그람 백작. 기다리게 했습니까?”

  “아뇨. 문제는 없습니다. 적을 협공할 수 있었으니까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보지만 온화한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전장에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다.


  “협공하고 있는 적은 이제 곧 끝나겠죠. 그 다음엔 그물을 끌어 올리듯이 차례로 적을 포위하는 형태로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물을 끌어 올리는가. 확실히 그런 느낌이군.


  “알겠습니다. 소관에게도 이견은 없습니다.”

  “그럼, 백작은 이대로 그쪽 함대를 지휘해주세요. 전 이쪽을 지휘합니다.”

  나에게 이대로 11개 함대를 지휘하게 하는 건가?


  “하지만, 그건.”

  “목적이 일치하고 있으니 문제는 없겠죠? 그리고 그러는 편이 혼란이 적습니다. 의지해도 되겠지요? 부사령장관.”


  “예.”

  묘한 남자다. 난 언젠가 경의 위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그 나에게 11개 함대를 맡긴다는 건가. 의지하고 있다고? 어떻게 해도 잡을 수 없는 남자다. 아직 닿지 않는다. 그런 건가…….


  “부사령장관. 적을 섬멸합니다.”

  “! 예.”

  온화한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 확실히 눈앞에 있는 건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다.


  경례와 함께 화면에서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모습이 사라진다.

  “오퍼레이터. 전 함대에 명령. 적을 섬멸하라!”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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