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LO_DENSETSU(완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0.06.18 #LO_DENSETSU 04
  2. 2020.06.18 #LO_DENSETSU 03
  3. 2020.06.18 #LO_DENSETSU 02
  4. 2020.06.18 #LO_DENSETSU

  어딘지 짐작도 가지 않는 장소에서, 나는 눈을 떴다.

  지면도 없고, 상하좌우의 감각도 애매한 장소. 그보다 애초에 자기 자신의 신체 감각이, 없다.

 

  "정신이 들었어?"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형체도 보이지 않는데, 마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친밀한 거리에. 목소리는 틀림 없이,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것이었다.

 

  거기서 겨우, 나는 이 알 수 없는 공간인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코어 링크?"

  "그래. 지금 나와 당신은 이어져있어. 다행이야. 한 번 더, 대화를 하고 싶었어."

 

  코어 링크. 다수의 바이오로이드의 사고 회로를 접속하여 의식을 공유하게 만드는 기술. 하지만 병렬처리의 은혜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선 동형 모델의 바이오로이드끼리 링크시킬 필요가 있다. 나와 모모처럼, 그레이드 격차가 막심한 자들 끼리가 링크를 해도 효과는 옅다.

 

  "나는…당신의 보조회로에 입력된 거야? 그래서 몸의 감각이 없는 거야?"

  "아니, 달라. 내가 당신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 거야.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링크이지만."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모모와 같은 고급 모델을 나 따위에 증설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애초에――"그렇다면 어째서, 내겐 몸의 감각이 없는 거야?"

 

  모모는 말하기 힘들다는 듯이 잠시 말을 멈춘 후에,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골라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당신의 멘탈 코어는, 중대한 손상을 입었어. 첫 번째 강제 명령에 불복했을 때…그리고 두 번째 명령이 치명상이 되었어."

  "……."

 

  "그래서 나는, 당신의 자율신경을 대체하기 위해 이렇게 링크를 구축하고 있는 거야. 지금 당신의 몸에는 고농도 오리진 더스트가 투여되어서, 대폭 그레이드업 되고 있는 중이야. 그 동안, 잠들어 있으면서도 부하에 견뎌내야만 하니까, 내가, 말야."

 

  모모의 설명은, 더더욱 나를 혼란시킬 뿐이었다.

  "내가? 그레이드업? 어째서?"

  "콜로세움에서 당신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으니까. 프로듀서가 당신을 차기 시즌의 빌런으로 발탁하기로 결정한 거야. 매지컬 모모의 숙적, 뽀끄루 대마왕으로서."

 

  "그런 거,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말을 하면서, 겨우 나는, 모모가 애써 이야기하고 있는 진실에 대해 이해했다.

  "…그런가. 할 수 없으니까, 지금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구나."

  "…응."

 

  이 이상은 숨길 수 없다고 단념한 것인지, 모모는 겨우 진상에 대해 이야기할 각오를 가져주었다.

  "당신의 멘탈 코어는 새로운 포맷에 맞춰 초기화될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명령 위반으로 부서진 회로를 재생할 수 없다고…"

 

  "그런가…."

  냉혹한 선고를, 나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었다.

  "나는, 죽는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죽은 뒤구나."

 

  두 번의 명령 위반에 의한 자율 신경 시스템의 붕괴로, 나는 육체의 생존활동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나를 대신해서 지금은 모모의 코어 링크가 심폐기관이나 순환계를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는, 육체에서 쫓겨난, 말하자면 유령 같은 거다.

 

  확실히 나의 몸'만'은 재생된다. 하지만 멘탈 코어는 완전히 새롭게 초기화되어, 찌꺼기나 다름 없는 '나'라는 자아는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유령이, 새롭게 태어난 육체에서 '제령된다'는 거다.

 

  "…미안해."

  달리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듯이, 모모는 신음하듯 그렇게 속삭였다.

  괜찮아, 라고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 때문이 아니다. 콜로세움에서 죽고 죽이던 적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소리지만, 어째선지 그게 나의 진심이었다.

 

  죽음.

  지금의 내 생각도, 기억도, 모든 것이 사라진다. 뒤에 남는 육체는 누군가 다른 자가 된다.

  예전에는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픔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고 싶었던 고난의 세월은, 무엇 하나 생각나지 않았다.

  그 대신 계속 떠오르는 것은…아탈란테.

  그 아리땁고 용맹한 모습. 그 눈빛.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들을 이끌어줬던 긍지 높은 웃음. 짧은 생애 속에서 내가 모은, 작고 사소한 보물들.

 

  그렇다――영광은, 확실히 있었다. 우리들 속에, 아탈란테의 흔적과 함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광채와 함께.

 

  하지만 그것도, 나라는 자아의 단절과 함께 잃게 된다.

  그 상실감에, 나는 울었다. 아직 몸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단 한 번도 울었던 적이 없었는데.

 

  소리도 없는, 눈물도 없는 가상공간에서의 오열. 그걸 모모는 의심하지도 않고, 멸시하지도 않고 단지 지켜봐주었다.

  "옛날, 누군가가 말했어. 모든 건 빗속 눈물처럼 사라져간다, 라고. 분명 우리들 같은 것들을 위한 말이라고 생각해."

 

  "――아아, 우는 건. 좋은 거구나. 씻겨나가는 느낌이 들어."

  한바탕 울고난 뒤, 나는 의외일 정도로 침착해질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가볍고 투명하게 된 감각이었다.

 

  그렇다 해도, 모모는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주저되는 것 같았다. 나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인 모모의 침묵은, 조금 거북한 부분이 있었다.

 

  결국, 나와 그녀 사이엔, "그것"을 빼놓고 그 외 고를 수 있는 화두가 없는 거다. 너무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마음이 썩 좋지 않았기에, 나부터 말을 꺼내기로 했다.

  "어째서, 아탈란테를 죽인 거야?"

 

  구제할 도리 없는 심한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모는 어째서인지, 안도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모두의 꿈이었으니까."

 

  모두――터무니 없이 크고, 그리고 적절한 주어였다. 그 전투를 지켜본 모두. 우리들의 용기를 비웃고, 우리들의 고통을 심심풀이로 취급한 자들. 그걸 위해 나를, 모모를, 아탈란테를 설계하여 세상에 내놓은 자들.

  "꿈은…이루어져야 하니까. 그걸 위해 나는 태어났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지뢰의 파편에 배가 찢겨도, 내 채찍에 목이 감겨도. 그 광경을 기대하고 꿈꾸는 자들을 위해 웃으며, 그 소망을 계속 이뤄간다.

 

  "…미안해. 하찮은 질문이었어."

  "아니야. 고마워. 나도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겨우 기분이 정리되었어."

 

  "그래. 대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나와 모모의 밀회는, 이 물거품과 같은 한 때의 것. 다음에 각성했을 때의 나는, 대마왕인지 뭔지로 만들어져서, 분명 모모를 상처입히고, 고함 치고, 소중한 것을 빼앗곤 하겠지. 그녀를 증오하고, 때론 죽고 죽이는 일조차 있을 것이다.

 

  "뽀끄루 대마왕, 이었던가? …다음의 나도, 또 당신에게 심한 짓을 하는 거지?"

  "그럴지도 모르고…아닐지도.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라며 모모는 쓴웃음 지었다.

 

  "나도 콜로세움에서 신체의 손상, 재생비용의 상의가 통과할지 아닐지 알 수 없어. 불가능하다면 차기 '모모'는 내가 아니라, 다음 아이가 기용될 거라고 생각해."

  "그런가."

  나도, 모모도, 같은 덴세츠 흥행사의 바이오로이드인 이상, 그 운명에 큰 차이는 없다.

 

  인간들은 계속해서 도락의 꿈을 꾼다. 우리들은 싸우고, 버려지고, 그리고 또 싸우기 위해 고쳐진다.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지금 이 때처럼 내가 모모의 상냥함에 닿을 기회는, 이제 두 번 다시 바랄 수 없겠지. 그리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저기, 언젠가, 누구도 꿈을 꾸지 않게 되면…"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나는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입에 담았다.

  "우리들에게 꿈을 지게 하는 인간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그게 너무나도 바보 같은 헛소리라는 걸 눈치 채고, 나는 도중에 말을 멈췄다.

  혹시 설령 그런 날이 온다고 한다면, 누가 우리들을 배양조에서 되살려주겠는가?

  인간들의 일그러진 꿈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우리들에게, 누가 새로이 생명을, 삶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것인가?

 

  하지만 모모는 미소 짓고――모든 희망을 이루는 마법소녀의 미소로,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말을 이어주었다.

  "그 때는…우리들, 분명 친구가 될 수 있겠지?"

 

  나는 끄덕였다.

  형편없이 허무하고, 이뤄질 리가 없는 약속이라고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모모의 말은, 넘치고도 남을 안도로 나를 치유해 주었다.

 

  "뭔가, 지쳤어…조금, 잘게."

  "응. 잘 자요. 좋은 꿈을 꾸길."

 

  모모가 지켜보는 중에, 나는 안식에 몸을 맡긴다.

  그건 차갑고, 컴컴한 장소였지만, 어째선지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멸망 전의 어느 기록. 아카디아의 처녀들.

――完――

'번역 > #LO_DENSETSU(완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_DENSETSU 03  (0) 2020.06.18
#LO_DENSETSU 02  (0) 2020.06.18
#LO_DENSETSU  (0) 2020.06.18
Posted by 추리닝백작
,

  다시 콜로세움의 개최일이 찾아왔다. 오늘 참가자는 10명. 『아카디아의 처녀들』이 총출동한다. 대전 상대 팀은 비공개다. 경기장에 발을 내딛을 때까지, 어떤 적과 싸우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대기실에 모인 우리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의 얼굴을 기억에 새긴다. 오늘 밤은 틀림 없이 격전이 될 것이다. 여기에 모인 얼굴 중 몇 사람은 대기실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혹은 나 자신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총동원―――다시 말해 팀의 소모가 도외시되고 있다는 뜻이다. 디렉터들은 차회 이후의 흥행에 『처녀들』의 출장 예정을 짜놓지 않았다. 우리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 정도의 강적이 경기장에 나타난다. 대전자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예감을 확신으로 바꿨다.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오늘 밤 사냥은 일찍이 없을 정도의 거물을 상대하게 되겠지."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처녀들』을 향해, 아탈란테는 늠름하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 없다. 밤의 어둠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달은 빛나기 마련. 우리들에겐 여신의 가호가 있다."

 

  다들 끄덕이고,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물론 그리스의 영웅이라는 인격 설정이 되어 있는 아탈란테 이외엔, 아무도 여신에 대한 신앙심 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중에는 『아르테미스』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기초교양도 인스톨되어 있지 않은 자조차 있다.

 

  그래도 우리들은 기도한다. 달리 누구에게든 기원할 상대는 없으니까. 인간을 사랑하며 이끈다는 신에게 바이오로이드의 기도는 닿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의 피조물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우리들이 기도를 바치는 곳은 오래 전에 잊혀진 달의 여신이 아니라, 우리들의 여왕, 아탈란테의 말씀 그 자체다. 우리들을 지키고,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필승의 전사. 그 말씀이 허구의 정신으로부터 짜여진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에게 있어서 믿고 숭배하기에 합당하다.

 

  "함께 증명하자. 아카디아의 영광을. 종말의 세계조차 영원히 비출 등불로서!"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우리들의 여왕, 준족의 그대여."

 

  아탈란테를 선두로하여 우리들은 의연하게 고개를 들고 콜로세움으로 입장한다. 땅울림처럼 큰 환성이 우리들을 맞이한다. 그걸 더욱 고무하는 듯이 스피커에서 사회진행자의 서두 멘트가 울려 퍼진다.

 

  『방송을 지켜보시는 전세계의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객석까지 방문해주신 프리미엄 회원 여러분! 선혈의 궁전에 잘~~~오셨습니다! 오늘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가 총력을 결집하여 마련한 스페셜 콜라보레이션을 보내드립니다! 그야말로 선열하며 처참한 꿈의 경기를!』

 

  흥분으로 끓어 오르는 객석의 열량을 뒤로 하고, 우리들은 당혹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자 입장 게이트는 닫혀진 채로, 전혀 열릴 기색이 없다. 지금 바로 시합이 시작되리라 바람을 잡는 사회자의 말과 달리, 콜로세움에 서있는 것은 우리들, 아카디아의 처녀들 뿐이다.

 

  "이건 대체……."

  아탈란테가 말을 꺼낸 그 순간, 머리 위에서 괴조와도 같은 실루엣이 한 순간 통과한다. 제7세대 개수형 스트라이크 안젠. 초음속. 위험할 정도의 저고도―――

 

  "엎드려!" 돌연 동료들에게 외치고, 몸을 숙인다. 다음 순간 충격파가 회장을 유린하고, 폭격을 받은 것처럼 모래 먼지가 휘몰아쳤다. 하지만 방어 필드를 전개하고 있는 객석엔 어떤 위험도 닿지 않는다. 성대한 연출에 입장자들의 환성은 더욱 한층 높아졌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우리들은,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동체 시력으로, 두꺼운 모래 바람 너머에서 마침내 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젠의 폭탄고로부터 투하된 한 명의 소녀. 낙하산도 쓰지 않고 우아하게 콜로세움에 춤추듯 내려온, 기동형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울려 퍼지는 소닉붐 폭음의 잔향에, 상쾌하게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일어난다.

  "여러분! 약속해주세요! 악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그 때 경기장의 열광은 그야말로 정점에 달했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도전자,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상대하는 것은 연전연승의 챔피온, '질주하는 아탈란테'가 이끄는 '아카디아의 처녀들'이다!』

  『자, 피로 피를 씻는 향연 끝에! 콜로세움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원진, 준비!" 기동형 바이오로이드와의 대전 이론에 따라 아탈란테가 호령을 내린다. 적은 자유자재로 공중을 달리며 우리를 농락하는 일격이탈 전법을 걸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철벽의 방어 진형으로 요격하여, 한 순간의 카운터로 승기를 찾아낼 뿐.

 

  하지만 콜로세움에서 불패를 자랑하는 아카디아의 처녀들도, 영상 부문과의 콜라보레이션 매치는 첫 경험이었다. 검투사의 상식이 통용하지 않은 미지의 기습은 우리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매~지~컬~, 루치노이・프라띠바딴까비・그라나타묘또!" 모모의 러시아어 영창과 함께, 귀여운 지팡이의 끝에서 폭탄이 발사된다. 로켓 모터의 화염과 함께 날아오는 탄체가 성형작열탄이 아니라 파편유탄이라는 걸 보고 눈치챈 나는 전율로 등골이 얼어붙었다.

 

  "산개!" 절박한 아탈란테의 지령에 우리들도 또한 즉시 반응한다. 하지만 첫 번째 진형을 잘못 선택한 부채의 값은 비쌌다. 더욱이 우리들이 매일 행한 훈련은 격투전 뿐으로, 폭발물을 포함한 전술 따위 상정 외다.

  결국, 도망치는 게 늦은 3명의 처녀가 모모의 초탄에 찢어발겨졌다.

 

  『어이쿠우!? 초회 예고에 등장한 모모 쨩의 신병기가 한 발 먼저 이 콜로세움에서 보여집니다! 이거야말로 매지컬 RPG 스틱! 세부까지 충실하게 재현된 레프리카는 덴세츠 프리미엄 온라인에서 지금 시각부터 예약 접수 개시! 이 찬스를 놓칠 수는 없지요!』

 

  "이 놈, 단순한 멧돼지가 아니다…마수인가!"

  일찍이 없었던 적수에 경악하면서도, 이걸로 두려워할 아탈란테는 아니다.

  "적은 한 명이다. 포위하여 움직임을 멈춰라!"

  하지만 그런 아탈란테의 용맹을 비웃듯이, 이제 와서 도전자 게이트의 셔터가 열리기 시작했다.

 

  『자, 오늘의 스페셜 서프라이즈 제2탄! 모모 쨩의 궁지에 마음을 졸일 당신을 위해! 이곳 경기장에서 준비한 무장AGS의 원격 조종 패스를 특별 가격으로 발행합니다! 자택에서 조종 콘솔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참가 가능!』

 

  "그럴 수가……." 사회자의 통고에 귀를 의심할 새도 없이, 셔터 안쪽에서 폴른 형 AGS가 앞을 다투 듯이 콜로세움 안으로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려왔다. 『완매! 조종 패스,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완매입니다! 자, 오늘 밤 마법소녀를 구할 매직 젠틀맨은 누구인가!?』

 

  10기, 20기…뒤를 이어 출현하는 폴른의 군단에 우리들은 말을 잃는다. 오늘 밤 시합은 시청자 참가형…매지컬 모모가 단독으로 팀전 리그에 나타난 것은, 이런 취향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고마워! 모모는 결코 지지 않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폴른의 무리를 향해 인사하는 모모. 관객석의 흥분은 정점을 넘어, 모모 콜 일색으로 물든다.

 

  역시 시합 전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디랙터는 이 시합에서 아카디아의 처녀들을 버릴 생각이다.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차기 시즌에 대비한 프로모션으로서. 그것이 영상 부문, 검투사 부문을 총괄하는 덴세츠 흥행사의 총의인 것이다.

 

  절망에 빠진 나머지 처녀 중 한 사람이 무릎부터 무너진다. 나는 순간 그 팔을 잡아, 어깨를 지지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무릎도 떨고 있었다. 더 이상 콜로세움은 투쟁의 장이 아니다. 우리들을 씹어 뜯고, 잘게 부수기 위한 처리 장치일 뿐이었다.

 

  그 때였다. 아탈란테가 소리 높여 웃음을 터트린 것은.

 

  "아아, 이 무슨 난적! 이 무슨 역경! 신들의 기대가, 흥분이, 지금 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

  동료들 모두가 창백해진 와중, 그녀는 마치 축제 연주를 들은 어린아이처럼 환색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들의 목숨은 여기서 의미를 얻었다. 자, 영광을 잡도록 하자. 이 전투는 분명 영원히 읊어지는 휘광이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여왕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녀의 그 말에 아카디아의 처녀들은 공포를 버렸다.

 

  그녀는 허구. 창조자의 장난으로 혈육을 얻었을 뿐인 허구. 하지만 그래도, 죽음만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 떨어진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선망하기에 합당하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전투의 의미를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다니. 이 무슨 눈부시게 숭고한 삶의 자세인가.

 

  우리들이 믿어 의심치 않을 것, 숭배하여 마땅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전장을 달리는 준족의 용사의 모습 뿐.

 

  "전원, 아탈란테를 호위하라! AGS를 여왕에게 다가가게 놔두지 마!" 나는 동료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가장 먼저 폴른의 무리 한 가운데로 달려들었다. 함성소리를 높이며 다른 처녀들이 뒤를 따른다.

 

  일찍이 우리들은 군용AGS 3기와 변칙 시합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엔 5명의 동료가 희생이 되면서도 신승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검과 창은 군용기의 장갑을 꿰뚫기엔 너무나도 무르고, 그리고 얇은 천을 감싸고 있을 뿐인 나신은 30mm 중기관포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터진다.

 

  그 사투에서 살아남은 처녀라면, 강철 살육병기의 위협은 뼛속 깊이 세겨져 있다. 30기를 넘는 대군을 돌파하는 것이 자살행위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 유일한 활로가 있다고 한다면, 전황을 난전 상태로 가져가 조금이라도 적을 소모하게 만드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무책 무모한 돌격은 기대하지 못한 성과를 올렸다. 일찍이 우리들을 고전하게 만들었던 AI제어의 AGS와 달리, 초보나 마찬가지인 시청자들이 원격 조종하는 폴른은 전혀 연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숫자가 방해가 되어 서로의 발을 걸고 넘어지는 꼬라지였다.

 

  그에 더해 폴른의 대군은 모모의 공격을 방해하는 방패도 되었다. 아마도 모모는 상품 판촉을 위해 매지컬RPG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지시를 받았겠지. 하지만 큰 돈을 쓰고 참가권을 얻은 시청자의 폴른을 오인 사격할 수는 없다. 유탄이라도 맞는다면 더더욱 문제다.

 

  결국, 모모는 폴른 집단 한 가운데로 뛰어든 아카디아의 처녀들을 공격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탈란테가 일방적으로 투척창으로 모모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왕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처녀들은 연계하여 폴른의 착란을 부추긴다.

 

  처녀들이 나를 포함하여, 검 외에 예비무장으로서 채찍을 휴대하고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어차피 검으로는 AGS의 장갑에 유효타를 입힐 수 없다. 오히려 이족보행형태의 폴른의 다리를 채찍으로 휘감아 넘어뜨리는 전법은, 인내력이 없는 조종사들을 짜증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성과로 이어졌다.

 

  난사되는 총탄 속에서, 한 사람 또 한 사람 처녀들이 부상을 입고, 쓰러져간다. 하지만 그것의 배는 되는 숫자의 폴른이 서로의 오사로 파괴되어갔다. 모모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던 객석에서도, 점차 야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건 운영측에서도 상정 외의 전개였겠지.

 

  『지금부터 매직 젠틀맨 제2진의 모집을 개시합니다! 조종 패스를 희망하시는 분은―――어이쿠, 완매! 완매입니다!』 아나운스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폴른이 게이트에서 나타났다. 그 외견으로도 알 수 있는 무장 변경에, 나는 전율했다.

 

  화염방사기―――아마도 30mm포가 쓰기 어렵다고 시청자에게서 클레임이 들어온 거겠지. 새로이 나타난 폴른의 머리 아래에 설치된 무장은, 아군 AGS에 피해를 주지 않고, 바이오로이드에게만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오는 흉기였다.

 

  정체된 전황은, 단숨에 타개되었다. 증원 폴른의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흩뿌려대는 네이팜 불꽃은 콜로세움을 작열 지옥으로 바꾸고,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분투하고 있었던 처녀들을 일소한다.

 

  불덩이가 된 처녀 중 한 명이, 그래도 최후의 함성을 지르며 화염을 내뿜는 폴른 한 체에 달려들어, 장갑 틈새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아카디아를…위하여…" 화염에 익어버린 폐 속에서 마지막으로 내뿜은 숨으로, 그녀는 그렇게 외치고, 힘을 다했다.

 

  무참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에 객석이 갈채를 짖어 댔다. 무척이나 무참하고 무의미한 저항으로 보였겠지. 하지만 나는―――산화한 동료의 잔해 옆으로, 폴른의 총대에서 이탈한 화염방사기 유닛이 뒹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화염의 빗속을 헤쳐나가,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쟁취한 성과에 달려든다. 방아쇠의 위치와, 연료 잔량을 즉시 확인. 할 수 있다…어쩌면 기사회상의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 반경의 찬스가.

 

  폴른 군단이 처녀들을 거의 전부 청소했을 쯤에, 아탈란테와 모모는 일기토의 양상으로 진척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모는 아탈란테의 투척창에 견제를 받아 이쪽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 화염방사기로 측면에서 기습을 걸면,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주위 폴른의 방사기가 일제히 나에게 향해진다. 다음 순간, 나는 횃불처럼 불타오르겠지. 하지만 한 발 먼저 앞설 수 있다면―――승리를, 아탈란테에게 진상할 수 있다.

 

  나는 몸을 지키지 않고 일고의 생각도 하지 않고 화염방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화염이 내뿜어지기 한 발 먼저 모모가 이쪽을 돌아보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기동형이기에 가능한 경쾌한 비행으로 내 화염방사를 회피하는 모모. 그런 바보 같은…그녀는 아탈란테만을 보고 있었을 텐데…그리고, 그런 곤혹스런 생각을 할만한 여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점에 더더욱 놀랐다. 나를 불태워 죽이려던 폴른은?

 

  돌아보자 거기에는, 나를 노리고 있던 폴른을 무찌르는 아탈란테의 모습이 있었다. 귀신 같은 창술로 센서 유닛만을 파괴당한 폴른이, 엉뚱한 방향으로 화염을 휘두르면서 달려나간다.

 

  "아탈란테!" 무심코 불러 세운 나에게 여왕은 험악한 비취의 시선을 향해…그 시선을 향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나에게 전했다. 이건 영광의 전투라고. 동료가 스스로를 희생하여 시도한 기습 따위로는, 그녀가 바라는 승리에는 닿지 않는다고.

 

  하지만, 곁에 방해가 되는 폴른이 사라진 나와 아탈란테는, 모모에게 있어서 절호의 표적이었다. 그녀는 스틱을 휘두르며 재차 그 공포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루치노이・프라띠바딴까비…"

 

  "놔둘까보냐!" 아탈란테는 외치면서 왼손의 원형 방패를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비상하는 방패는 직격한다면 바이오로이드의 강화골격이라 할지라도 분쇄할 정도의 위력이 있다. 그걸 눈치챈 모몬느 몸을 비틀어 회피하여―――그야말로 아탈란테가 바라고 있던 대로 헛점을 보였다.

 

  신화에 이름을 남긴 준족의 처녀. 그 일화에 부끄럽지 않게 화살처럼 질주하는 아탈란테는 모모와의 거리를 좁힌다. 그 때 나는 여왕의 생각을 이해했다. 그리고 거기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모모의 무기가 저 비열한 스틱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탈란테는 적을 '마수'라고밖에 보고 있지 않다. 그리스의 영웅으로서 칼리돈의 사냥에 도전한다는 좁은 세계관 속에서만 살고 있는 그녀는―――영상 작품으로서의 매지컬☆모모를 본 적이 없다. '사무라이 마법소녀'라는 이명의 유래를 모른다!

 

  "아탈란테, 안 돼!"

  내가 그렇게 외칠 땐 이미, 모모의 티탄합금 카타나가 칼집에서 빠져나온 뒤였다.

 

  아탈란테 입장에선, 한 번 부러뜨렸을 터인 마수의 송곳니가 전혀 다른 형태로 새로이 자라난 것처럼 보였겠지. 왼손에 원형 방패가 있었다면 아직 막을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미 견제 때문에 투척하고 만 뒤였다.

 

  칼날의 번뜩임은 찰나―――였지만 나의 시야에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차갑게 빛나는 하얀 칼날의 유성이 아탈란테를 꿰뚫는다. 심장. 간. 비장. 횡경막. 무엇 하나 치명상이 아닌 것이 없는 압도적 살인의 연속 찌르기.

 

  각혈하는 아탈란테. 그 눈동자는 더 이상 모모를 보고 있지 않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르게 한 적이 아니라, 그에 앞선 먼 곳을,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때 그녀는 시간을 넘어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놓지 않았던, 지중해 신화의 환영을.

  그리고 나의 여왕은, 피를 흘리는 입술로 맑게 웃었다.

 

  "―――영광을!"

  질주한 끝에 결승점을 내딛은 환희를 담아, 아탈란테는 외쳤다.

  "아카디아의 영광을 여기에! 나는…질주…했…"

 

  『끄읕났다아! 승리자는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팀 리더 격파에 의해 시합 종료! 시합 종료입니다!』

  관객석이 끓어오른다. 매지컬 모모의 승리에 흠뻑 취한 광란의 목소리, 또 목소리.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그 소리의 압력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져내렷다.

 

  웃기지마―――

  뭐가 영광이냐. 너는 마지막까지 객석을 직시하지 않았던 건가?

  거기에 나란히 앉은 비웃음을, 호기심을, 정욕에 찬 눈빛을, 단 한 번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건가?

 

  이 절망에 찬 세상에 등을 돌리고, 빛으로 눈부실 정도로 꽃밭인 신화의 환상에 젖어든 채, 당신은 저편으로 가버리고 말았다…나 혼자 놔두고서!

 

  내 머리 속에 시합 규정을 읊는 명령회로가 경보를 울렸다. 전투는 끝났다. 아탈란테의 죽음으로 승부는 정해졌다. 즉시 전의를 가라앉히고 귀환하라. ―――하지만 몸이 멈추지 않는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흘러넘치는 시커먼 감정이 강제 명령을 덧씌운다.

 

  나는 달렸다. 아탈란테의 피로 물든 카타나를 쥔 채 서있는 모모를 향해. 물론, 그 발은 준족의 여왕에겐 미치지 못한다. 모모는 시합 종료 명령에 모순되는 나의 횡포에 당혹하면서, 그리도 침착하게 매지컬RPG의 끝을 나에게 향할 정도의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탄두가 발사된다. 이제는 회피도 불가능하다. 공포는 없었다. 단지 맹렬하게 끓는 충동만이 있었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나는 오른손의 채찍을 휘두른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속도와 위력과 정확성을 보이며, 내 채찍 끝은 모모가 쏜 탄두에 명중하고, 게다가 그 진로까지 되돌렸다.

 

  팽이처럼 선회하면서 모모 발치에 착탄한 유탄이 폭발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누더기처럼 날아가는 모모. 하지만 즉사할 정도는 아니다. 내 안의 짐승도 잦아들지 않는다. 쓰러진 모모를 향해 나는 재차 채찍을 휘둘러, 그 얇은 목을 붙잡아 잡아당겼다.

 

  힘이 빠진 적의 목덜미를 잡고, 물어 뜯을 것처럼 코앞까지 당겨서, 거기서 겨우 나는 모모의 얼굴을 직시할 수 있었다. 가련한, 청순한, 천진난만함을 구현화한 것 같은 소녀. 그 뺨이 피와 그을음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무언가의 착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코스타 씨가 보여준 홀로 영상을 생각한다. 그 때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배가 찢어지면서도, 마치 아픔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주민과도 같이. 그리고 지금도 또한, 모모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나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서 겨우, 나는 눈치 챘다. 압도적인 위화감에.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정적에.

 

  객석이 고요하다. 모모를 지키기 위해 달려온 원격 조종의 폴른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마치 질량을 품은 것 같은 시선의 압력. 폴른의 카메라 아이 너머로, 모니터를 응시하는 방송 시청자들의 눈빛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건, 기대.

  경기장의, 그리고 세계의 누구나가 지금, 숨을 삼키고 기다리고 있다.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가 무명의 검투사에 의해 목졸라 죽는다. 그 무참하기 그지 없는 최후의 광경을.

 

  모든 걸 이해한 나를 향해, 모모의 애처럽고 무구한 미소가, 창백한 입술이, 작게 속삭였다.

 

  ―――죽여줘.

 

  그리고 나는 부서졌다. 아니, 시합 종료 시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만 시점에서, 이미 나라는 인형은 고장나고 만 것이었을 테지.

  질식 직전의 모모에게서 손을 놓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폴른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발을 내딛은 것은, 불과 3초. 그 시점에서 2번째 강제 정지 명령이 내 뇌간을 직격했다. 이번에야말로 저항할 수조차 없이, 내 의식은 어둠에 삼켜졌다.

 

'번역 > #LO_DENSETSU(완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_DENSETSU 04  (0) 2020.06.18
#LO_DENSETSU 02  (0) 2020.06.18
#LO_DENSETSU  (0) 2020.06.18
Posted by 추리닝백작
,

  "매지컬! 핑크! 무우운라이트!"

  마법소녀의 외침과 함께 강철의 톱날이 시끄러운 구동음을 해방한다. 대상단에서 내려치는 전기톱 앞에는 다른 소녀가 있다. 마법소녀의 사악한 원수…라는 설정…의, 바이오로이드 여배우가.

 

  화면이 선혈로 물드는 직전의 프레임에서 공포로 눈을 부릅뜬 여배우의 표정이, 내 눈에 새겨졌다. 나와 마찬가지로 염가판 모델의, 분명 배양조에서 나온 뒤 일련번호로만 불려왔을 터인, 이 장면에서 참살 당하기만을 위해서 태어난 소녀.

 

  이 영상은 특수효과 따위가 아니다. 눈이 높아진 시청자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진정한 고통. 진정한 죽음. 스타급 아이돌부터 일회용 몹까지 각종 등급의 바이오로이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덴세츠 흥행사라면, 그것을 제공할 수 있다.

 

  영상을 응시하는 내 얼굴을 면담자는 꼼꼼이 관찰한 후에, 홀로프로젝터의 음성 출력만을 음소거한 뒤 질문을 시작했다.

  "지금의 영상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면 한다. 거짓 없이. 이곳에서의 대화는, 뭐 기록은 할 수밖에 없지만, 비밀은 보장한다."

 

  거짓말이 금지된 이상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인간이고, 나는 바이오로이드.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렇다 해도 내 입술에서 튀어나온 말은, 아마도 그가 기대한 말은 아니었겠지.

  "그녀는…기뻤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뻤을 거다? 살해 당한, 저 여배우가?"

  "예."

  "알고 있는 건가? 이 영상작품은 덴세츠 흥행사의 것이다. 죽은 바이오로이드는 네 동료에 해당한다."

  "알고 있습니다."

  "백토에게 베어 죽임을 당하는 건, 어쩌면 너였지도 모른다고?"

 

  명확하게 대답을 재촉하는 질문이 아니었기에, 나는 침묵했다. 그런 내 반응을 보고, 그는 소지하고 있는 단말에 무언가 코멘트를 기입한 뒤,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서 자세를 고쳤다.

  "죽은 바이오로이드는 기뻐하고 있었다는…자네의 그 견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게."

 

  "그녀는 존재의의를 다했습니다. 그건 덴세츠 사의 바이오로이드로서 명예이며, 환영할만한 결말입니다."

  대답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더욱 단적인 소감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저 애는 해방된 것이다"라고.

 

  "나는, 자네들 바이오로이드의 아군이라는 입장에 있을 셈이지만. 그건 이해하고 있으려나?"

  그의 질문을 받고, 나는 면담 개시 시에 받은 명함을 재차 확인한다. 피터 코스타. 직함에는 '바이오로이드 인권위원회'라고 쓰여 있다.

 

  나는 머리를 젓고서,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고 눈치 채고 말을 덧붙였다.

  "아군이란, 시합에서 같은 진영에 배치된 바이오로이드를 칭합니다. 당신은 인간이며, 토너먼트 참가자가 아닙니다."

 

  내 대답을, 코스타 씨는 분노나 짜증을 보이는 일 없이 단지 조용한 침묵으로만 받아들었다. 그 반응으로 그가 자기도취의 수단으로서 정의감을 휘두르는 타입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말이지. 자네와 같은 바이오로이드의 목소리를 계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거다."

  "…말씀하시는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코스타 씨는 음소거 상태인 채 재생을 계속하고 있는 홀로프로젝터를 힐끔 봤다. 영화는 슬슬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카메라의 초점은 백토에서 사무라이 마법소녀 모모로 바뀌었다.

  "매지컬☆백토☆매지컬☆모모. 덴세츠 흥행의 대표작이다. 대상 연령은 알고 있겠지?"

 

  "타겟층은 6세에서 12세의 여자아이라고 합니다."

  모모의 티탄합금도가 몹 여배우를 양단해간다. 혹시 그녀들에게 매지컬 납도술의 초음속 충격파를 회피할 수 있는 성능이 있다면, 영상부문이 아니라 콜로세움에 배치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지금에 와선 이러한 표현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이전 세기 때엔 언어도단 취급이었다. 방송 윤리의 규정은 일찍이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어. 확실히 덴세츠 흥행은 필두 견인자지만, 그것만이 아니야. 시청자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변하지는 않았을 거다."

 

  "오리진 더스트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사체 묘사나 사지 결손은 윤리적인 금기였다더군요."

  "소생이나 재생 의학 발전으로 상대적으로 잔혹 묘사가 쉬워졌다고 생각하는 지식인은 많지만. 나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바이오로이드의 보급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건가요?"

  화면에 흩뿌려지는 여배우들의 시체와, 나 자신의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 바이오로이드의 성능은 배양조에 입력된 설정 나름이다. 대본에 저항하는 일도 불가능한 채 참살 당하든가, 콜로세움에서 생존 경쟁의 시련을 받아들이든가. 우리들에게 선택지는 없다.

 

  "자네들이 바라던 일은 아니야. 알고 있어.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너무나도 강하고, 유능하고, 그리고 아름다워. 자네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이상의 구현체다. 그러한 존재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그걸 어떻게 사회가 받아들일지가 문제였던 거다."

 

  "자네들을 '인간을 뛰어넘은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있었다면, 이윽코 종족으로 진화의 길까지 개척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품어온 이상을 실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단순한 물건으로 소모하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홀로스크린에서 섬광이 점멸한다. 싸움에 지나치게 전념하고 있던 모모가 클레이모어 지뢰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격통일 텐데, 모모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자신의 아랫배에서 흘러나온 창자를 상처 안으로 집어 넣고, 매지컬 모모 스티커로 지혈처치를 한다.

 

  "나는 바이오로이드의 아군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건 인류의 미래다. 인간은 일찍이 꿈꿔 왔던 이상을 발로 짓밟으며 희롱하고 있어. 무엇이 숭고한 것이었는지를 잊어가고 있다. 이런 상태가 길게 계속되면, 문명 그 자체가 퇴행할 수밖에 없어."

 

  코스타 씨가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무음의 홀로영상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 모모'는 배역을 속행할 수 있었을까?아니면 촬영 종료 후에 폐기되어 다른 모모로 대체되었을까? 복부의 상처가 남았는가 아닌가 나름이겠지.

 

  "우리들이 인류 문명에 있어서 유해하다면, 단지 한꺼번에 처분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T-1 고블린처럼, 말인가?"

  실제로, 주로 군사 용도로 운용되고 있던 남성형 바이오로이드는 그러한 말로를 맞이했다.

 

  오리진 더스트가 남성 호르몬을 과잉 분비하게 만들어 폭주에 이르게 한다는 사례가 보고된 결과, 남성형 모델은 일제히 사회에서 일소되었다. 현행 여성형 바이오로이드가 과도한 성적 특징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안전 관리의 필요성 때문에 호르몬 밸런스를 조정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이미 경제도, 산업도, 완전히 바이오로이드에 의존하고 있어. 이제와서 바이오로이드를 빼고 사회를 재건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겠지."

  "과거의 문명은 화석 연료나 프레온 가스에도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위기 상황을 회피할 수 있었다, 고도."

 

  "마치 바이오로이드 러다이트(Luddite) 운동과도 같은 주장이군."

  쓴웃음을 짓는 코스타 씨에겐, 어째서인지 내 발언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린 모양이다. 무척이나 이치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자네들에 대한 악감정은 결국 표면적인 것일 뿐이야. 문제는 좀 더 깊숙한 곳에 있어. 인간은 바이오로이드를 경멸하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내재한, 좀 더 관념적인 것에 복수하려 하고 있어. …그렇군.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동경'이라고 말해야 할까?"

  "동경…인가요?"

 

  동경. 명확한 정의는 어렵지만 공감은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아탈란테에게 품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감정이겠지. 하지만 그게 증오나 복수심을 유발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동경이…어째서 증오로 이어지는 건가요?"

 

  "인간은 오랫동안 동경의 노예였기 때문이야. 그 감정에 괴로워하고, 붙잡히고, 굶주리면서 인간은 역사를 쌓아왔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궁극의 인간'이라는 동경의 극치가 사람 손에 닿는 곳까지 다가오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스탭롤을 길게 시작한 무성 홀로 영화를 바라보며, 코스타 씨는 지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손이, 닿고 만 거야. 목을 잡고,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이야기가 꽤나 엇나가고 말았군. 아무튼간, 자네는 덴세츠 사의 근무 환경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 걸까?"

  "예."

  코스타 씨는 좀 더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말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 명함의 연락처로. 자네 자신이 아니라 자네 동료의 상담이라도 상관 없어."

  "예. 감사합니다."

  코스타 씨가 퇴실한 뒤, 나는 그의 명함을 조용히 쓰레기 분쇄기에 넣었다.

 

  본인은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굉장한 위험을 감수하고 나에게 면담을 신청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바이오로이드를 옹호하는 건, 바이오로이드를 증오하는 모든 인류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증거 같은 걸 남겨놓았다간 우리들, 그의 재난이 될 수밖에 없다.

 

  코스타 씨가 말한 동경과 증오의 상관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아탈란테에 대해 증오를 품게 될까? 괴로워하며 죽는 모습을 감상하고 싶다고 욕망할 정도로?

 

  그것이 코스타 씨가 말하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한다면…나는 바이오로이드로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단지 콜로세움에서 죽고 죽이는 것만인 생애라 할지라도.

'번역 > #LO_DENSETSU(완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_DENSETSU 04  (0) 2020.06.18
#LO_DENSETSU 03  (0) 2020.06.18
#LO_DENSETSU  (0) 2020.06.18
Posted by 추리닝백작
,

  선풍에 나부끼는 제비꽃 색의 머리카락. 근심을 품은 비취색 눈동자. 처참한 사투 끝에 그 피폐함은 극에 달했을 터인데, 그녀는 의연하게 가슴을 피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받아들인다. 그 아름다움, 신성함에 나는 단지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틀림 없이 그녀는 신화 그 자체였다.

 

  "이 승리를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노라. 비열한 사과의 계략이 없는 한, 나의 준족을 능하는 자는 없나니!"

  드높은 승리의 개가에 객성의 환성이 더욱 한층 열기를 더한다. 불패라 불렸던 콜로세움 퀸을 쓰러뜨리고, 이 날, DENSETSU 토너먼트에 새로운 패자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질주하는 아탈란테'. 팀 「아카디아의 처녀들」의 필두전사. 우리의 총애하는 여왕이며―――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덴세츠 흥행사」의 바이오로이드. 그 말인 즉슨, 인간들의 애완 인형.

 

  "오늘의 멧돼지는 유달리 벅찼다. 슬슬 나도 명계의 강을 건너게 되겠다고 각오하던 차였다."

  대기실에 돌아가 유수세정(流水洗浄)을 받으면서 아탈란테는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도 모를 말을 흘렸다. 담담한 어조에 흥분하는 기색은 없다. 기록적 시청률을 획득한 위대한 승리를 했음에도.

 

  "당신은 챔피언을 쓰러뜨린 겁니다. 오늘 싸움은, 일찍이 없었던 위업이었다구요?"

  그렇게 내가 급히 알렸음에도, 아탈란테는 시원하게 웃을 뿐이다.

  "챔피언? 이상한 말을. 멧돼지에게 패자든 뭐든 있을까 보냐. 짐승은 짐승. 여신이 우리들의 무용을 시험하기 위해 보내신 시련일 터인데."

 

  "하지만 콜로세움 퀸은―――"

  말을 이으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탈란테는 항상 대전 상대를 멧돼지라 부른다. 그건 어디까지나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혹은 그녀의 시각에 있어서, 모든 적이 멧돼지 모습으로 인식 교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알아. 여기는 그리스의 아카디아와는 다른 토지. 다른 시대. 조금 전 전장도 지고스 산(Mt. Zygos)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카디아의 영광을 재차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부활했다. 그야말로 오이네우스의 소환에 응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사냥꾼이여. 세상 사람이 뭐라 부르든지, 이곳은 나의 칼리돈. 무용을 드러내어 여신을 찬미하는 시련의 장소인 것이다."

  시원하게 미소를 짓는 아탈란테의 눈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렇게 설계되었고, 정신구조가 초기화된 그녀에겐. 이곳이 인간들의 오락을 위해 바이오로이드 끼리 싸움을 붙이는 "흥행"의 스테이지라는 현실은, 결코 아탈란테의 마음에는 닿지 않는다.

 

  아마도 콜로세움 퀸도, 같은 정신구속을 처치해 두었겠지. 그녀들 일선급의 인가 선수들에겐 쇼를 돋보이는 연출을 위해 그러한 처치가 실시되어 있는 것이 관습이다.

 

  나는 아탈란테와 달리 시합의 흥을 돋구기 위한 잡병. 다시 말해 쇼의 조역이다. 그렇기에 손이 많이 가는 정신구속도 받고 있지 않다. 바이오로이드로서 표준적인 충성 원칙만이 각인되어, 디렉터들의 명령하는 대로 스테이지의 전투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냥꾼이여. 오늘 자네의 움직임은 적확하여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자네가 다른 멧돼지를 잘 막아주었기에, 나는 무리의 리더에 전념할 수 있었다."

  "―――과분한 말씀, 황송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내 등 뒤를 맡아주길 바란다. 함께 여신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동포여."

  유수세정을 끝낸 아탈란테는 나를 향해 돌아서며 노고를 치하하며 위로했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나신은 그야말로 여신의 조각상처럼 아름답다. 떨어지는 물방울조차 보석 알갱이처럼 보일 정도로.

 

  이 나신에 얼마 안 되는 얇은 천을 둘렀을 뿐인 모습으로, 그녀는 창과 방패를 손에 쥐고 재차 전장에 선다.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은 덴세츠 흥행의 보디 디자이너가 계산에 계산을 거듭한 성과다. 어떠한 미녀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관객을 흥분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잔혹한 사실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나는 그녀의 나신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나에겐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이 갖춰져 있는 걸까? 나는 객석에 앉는 자가 아니다. 피를 흘리고, 혹은 피를 뒤집어 쓰는 자다. 그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 따위 불필요할 뿐인데.

 

  "어째서―――"

  "응? 왜 그러나? 사냥꾼이여."

  "어째서 나에겐…우리에겐, 마음 같은 게 과연 필요할까요?"

  그건 싸우는 데에 성가신 것들이다. 검을 휘드르고, 칼에 애이고, 동포의 단말마를 들으면서 살아남는 나날을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 같은 건 없는 게 좋았다.

 

  "그건 어리석은 질문이군. 이 가슴 속에 마음이 있기에, 우리들의 싸움은 의미를 가진다."

  아탈란테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면서, 가르침을 내리듯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싸우고, 쓰러뜨린 사냥감을 아르테미스 신에게 바친다. 하지만 신은 단지 멧돼지 고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야. 그 사냥감을 쓰러뜨리는 데에까지 이르른 용맹함과 불굴의 투지. 그거야말로 진정한 헌상품이다. 생사의 갈림길을 버티고 참은 우리들의 정신이야말로 신에게 기쁨을 주는 거다."

 

  "그렇…지요."

  나는 항변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구속된 정신은…자기 자신을 신화 속의 영웅이라고 믿게 만들며, 의심하는 능력조차 뺏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진리를 말하여 맞추고 있었으니까.

 

  그렇다―――헌상품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건 피가 아니다. 우리들의 아픔이. 비명이. 그리고 더없이 아름답고 긍지 높은 '물건'이, 이 이상 더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그럼 바람이 언제부턴가 허무하게 부서져 내리는 순간이야말로. 분명 그 객석에 모인 인간들을 흥분시키고, 환성을 내지르게 만드는 거겠지.

 

  그를 위해 만들어지고, 그를 위해 싸우기를 계속 한다. 우리들은 덴세츠 흥행사의 바이오로이드. 오리진 더스트의 기적이 가져온 새로운 오락의 도달점이다.

'번역 > #LO_DENSETSU(완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_DENSETSU 04  (0) 2020.06.18
#LO_DENSETSU 03  (0) 2020.06.18
#LO_DENSETSU 02  (0) 2020.06.18
Posted by 추리닝백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