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7년 10월 2일. 오딘, 신무우궁. 라이너 폰 겔라흐.


  “볼텍은 꽤나 당황한 모양이더구먼.”

  “그렇군요.”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답하면서 발렌슈타인 원수를 본다. 원수는 조금 방심한 듯이 볼텍이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다.


  볼텍은 마음이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원수의 유언비어는 공묘하고 강력했다. 하지만 그는 견뎌냈다. 동요는 보였지만 추태는 보이지 않았다. 페잔의 변무관으로서 마지막 일선을 넘지 않았다고 해도 좋다.


  “발렌슈타인 원수. 방금 그건 진짜입니까?”

  “그거라고 하셔도 곤란합니다만. 재무상서가 말하시는 것이 루퍼트 케셀링에 대한 거라면 사실입니다.”


  마음을 바로잡고 답하는 원수의 말에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은 시선을 마주쳤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이상하다는 듯한 어조로 묻는다.

  “경은 묘한 걸 알고 있구먼. 어디서 조사했는가? 정보부인가?”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로 원수는 시선을 피했다. 부자연스런 침묵이 떨어졌다.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는 없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 나는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시선을 향했다. 후작도 수상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발렌슈타인. 경은 볼텍을 어떻게 봤나?”

  “……볼텍은 제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재기, 야심은 있어도 마음은 약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렇지 않았던 듯 합니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그렇게 말하고 조금 생각한 뒤 말을 계속했다.

  “루빈스키는 실수했습니다. 그는 볼텍을 곁에서 떨어뜨려선 안됐습니다. 곁에 두고 있으면 그를 지켜줄 방패가 됐겠죠. 오히려 오딘에 루퍼트 케셀링을 보냈어야 했습니다.”


  “…….”

  “루퍼트가 성공하면 그걸 공적으로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젊기 때문이라며 감싸줄 수 있죠. 뭐, 걱정이었던 거겠죠. 멀리 두는 것이.”


  그렇게 말하고 원수는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을 띠웠다. 순간 오싹할 것 같은 잔혹한 것을 느꼈지만, 기분 탓이었던 걸까. 검은 망토에 감싸인 원수가 불길하게 보인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조금 생각에 잠기고서 원수에게 말했다.


  “루퍼트 케슬링이네만. 페잔의 렘샤이트 백작에게 만일을 위해서 조사하게 해둘까?”

  “그렇군요.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출생만이 아니라 현재의 움직임도 포함해서.”


  “그렇군. 헌데, 안톤 페르너 준장이라고 했는가. 그에 대해서…….”

  “그는 적입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을 원수가 끊었다. 그 날카로운 말에 방 안이 긴장한다. 원수는 가면 같은 무표정이 되어있다.


  “그는 사관학교에선 동기생에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적입니다.”

  원수의 말에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은 시선을 마주쳤다.

  “……그를 아군으로 하는 건 불가능합니까?”

  망설이면서 질문하는 내 말에 원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와 싸우고 싶어합니다. 모략가로서의 저와 싸워, 그 힘을 시험하고 싶어합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왔죠…….”

  “하지만 친구가 아닙니까? 이대로는…….”


  내 말에 원수는 희미하게 쓴웃음을 짓고 말을 계속했다.

  “안톤은 제가 죽으면 슬퍼할 겁니다. 절위해서 울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싸우는 걸 그만두려고 하진 않을 겁니다. 패배를 인정하기 전까지 계속 싸우겠죠.”

  “…….”


  “두 분이라면 아시겠죠? 살아가는 이상,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양보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도 귀족을 버리는 것에 동의했다. 그건 신은하제국, 우주를 통일하는 유일의 성간국가라는 꿈과 교환하는 일이었다. 단지 권력 싸움으로 버린 것이 아니다.


  무거운 공기를 타파한 것은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였다.

  “발렌슈타인. 폐하께서 경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더군. 장미 정원으로 가보게.”


  발렌슈타인 원수는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끄덕이고 자리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일어날 때 짙은 감색의 띠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만이 띠의 색을 눈치 채겠지. 그를 기피하며 멀리하는 자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걱정이구먼.”

  리히텐라데 후작의 중얼거림에 누가냐고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다.

  “조금, 지친 것 같아 보입니다만.”


  리히텐라데 후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로엔그람 백작도 곤란한 이요.”

  “?”


  “애송이가 꼬임에 넘어가선. 원래라면 죽음으로 죄를 갚아도 이상하지 않것만. 폐하가 봐주니까 기어올라서.”

  “…….”


...


제국력 487년 10월 2일. 신무우궁, 장미정원. 프리드리히 4세.


  “폐하. 리히텐라데 후작에게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만.”

  “음. 수고하는군. 발렌슈타인.”


  말을 걸며 눈앞에서 무릎 꿇는 젊은이를 봤다. 아담하고 화사한 몸을 검은 망토가 숨기고 있다. 처음 보고 이 자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라고 해도 누구도 믿지 않겠구먼.


  “일어서게. 사양은 필요 없네. 그대도 장미를 보게나. 이제 곧 꽃도 지겠지. 꽃이 지면 가지를 쳐야겠구먼.”

  “예.”


  발렌슈타인은 일어나 짐의 뒤에 섰다. 발렌슈타인. 그대의 좋은 점은 사양하지 않는다는 걸세. 다른 자였다면 묘하게 사양하니 말일세. 오히려 짐이 피곤해져버려.


  “케슬러에게 들었네. 로엔그람 백작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듯 하구먼.”

  “예.”

  “어떤가? 안네로제를 후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은.”


  안네로제를 후궁에서 내보내는 건 아깝지만, 그렇게 하면 조금은 로엔그람 백작도 진정할지도 모르니.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호오. 확실하게 말하는구먼.

  “안 되는가?”

  “예. 로엔그람 백작은 오히려 굴욕이라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그렇겠구먼. 근처 귀족들도 소란을 피울지도 모르고.”

  안네로제가 후궁에서 물러나면, 총애를 잃었다고 판단한 귀족들이 난리법석을 피우겠지…….


  로엔그람 백작은 그 굴욕에 견디지 못하고, 그 굴욕을 맛보게 한 짐을 용서하지 않을 테고……. 돌려도 지옥, 돌리지 않아도 지옥인가. 다시 말해, 짐이 죽어 자연스럽게 저것이 후궁에서 물러난다. 그것 밖에 없다는 거로군.


  “게다가 폐하의 곁에 새로운 여성을 바치고자 귀족들이 달려들 것입니다만.”

  이 녀석, 즐기고 있구만. 과연. 확실히 그렇겠구먼. 이 나이에 어린 아가씨 상대는 조금 번거롭다. 그렇군. 이 녀석에게 돕게 하는 법도 있구먼.


  “과연. 확실히 그렇구먼. 그대에게도 한 명 보내줄까? 취향에 맞는 아가씨를 골라보게나. 단, 그대가 싫어하는 귀족의 아가씨네만.”

  배후에서 이상하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그래선 부모가 납득하지 않을겁니다.”

  “그렇지도 않네. 귀족의 긍지라든가 뭐라든가가 방해할지 모르지만, 내심에선 그대와 인연을 맺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겠지. 짐이 보냈다고 하면 체면도 서겠고.”


  “어리석은 이야기군요.”

  “그렇네. 정말 어리석은 이야기야.”

  무심코 웃음소리가 나왔다. 발렌슈타인도 웃고 있는 듯 하구먼.


  장미꽃을 보면서 귀족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는가. 웃는 건 황제와 평민. 이 무슨 얄궂은 일인고. 루돌프 대제는 이러한 날이 오리라 상상이라도 했을는지.


  눈앞에는 아름다운 꽃이 자랑스럽게 펴있다. 뒤에 있는 발렌슈타인은 꽃을 보고 있을는지. 장미꽃이 어울리는 젊은이요. 검은 망토도 한층 돋보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장미꽃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네. 곤란한 자요…….


  “저건, 찬탈을 바라고 있겠지.”

  “케슬러 제독이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니. 그런 건 말하지 않았네. 하지만 저것의 눈을 보면 알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짐작가는 것을 늘어놔 보아라.”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과연. 찬탈의 의지 있다는 것인가…….

  “아마도, 그걸 바라고 있겠죠.”

  “그런가.”


  솔직한 남자요. 다른 자라면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든가, 있을 수 있다고 불끈하며 백작을 비방하겠지. 그대는 그 어느 쪽도 아니야. 단지 생각나는 점을 내 놓는다……. 그뿐이구먼.


  “저것에 있어서 그대는 방해겠지. 그대가 있는 한 권력을 쥘 수 없으니 말이야.”

  “…….”


  “도망치고 싶은가? 그대는 권력 따위 바라고 있지 않아.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럼 어째서 도망치지 않는가?”

  “저를 신뢰하며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


  “게다가…….”

  “게다가? 또 있는가?”

  “저 때문에 30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1천만 명을 죽였습니다. 이제 도망칠 수 없습니다.”


  “도망칠 수 없는가. 괴롭구먼…….”

  “예…….”


  “제국은 멸망하네. 문벌귀족은 증대하고, 서로의 세력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지. 정치는 사유화하고, 제국은 서서히 썩기 시작하고 있어. 언젠가 제국은 분열하여 내란 상태가 되어, 존재할 수 없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네.”

  “…….”


  “그대의 말대로요. 제국은 멸망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자리에서 도망칠 수도 없어. 지옥이로구먼…….”

  “폐하……. 폐하가 로엔그람 백작을 끌어들인 것은…….”


  “그렇네. 로엔그람 백작이라면 짐을 지옥에서 구해주리라 생각했네. 저건 골덴바움 왕조를 멸하겠지. 하지만 은하제국은 저것의 곁에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 틀림없어…….”

  “…….”


  “하지만 그대가 나타났지. 그대가 새로운 길을 제시했네. 기뻣어. 그대에게 있어선 민폐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


  “미안하구먼. 짐이 저것의 야심에 부채질을 한 셈일세.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어. 그대에게 수고를 끼치게 될 것 같네.”

  “폐하…….”


  목소리가 젖어들었구먼. 울고 있는가? 발렌슈타인. 아니, 울고 있는 건 짐도 마찬가지인가……. 아까 전부터 아무래도 장미꽃이 잘 보이지 않아…….


  “짐은 슬슬 돌아가야 하네. 국무상서가 걱정하니 말이야. 그대는, 잠시 더 장미를 보고 있도록 하게나. 가끔씩은 좋겠지.”


  짐은 발렌슈타인을 남겨놓고 걷기 시작했다. 장미정원의 출구에서 돌아본다. 장미꽃에 둘러싸인 발렌슈타인의 모습이 보였다. 먼 곳에서도 장미꽃이 잘 어울린다. 검은 망토도 잘 보인다. 안 되겠구먼. 또 눈물이 흘러나왔다. 마침 좋은 풍경이 헛되질 않은가…….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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