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7년 10월 6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하나, 널리 회의를 개설하여 무엇이든 공공의 의론에 의해 결정할 것.


  하나, 위에 서는 자와 아래에 서는 자가 마음을 합하여 나라를 위해 활동에 전념할 것.


  하나, 신민은 모두 하나가 되어 제각기 뜻을 펼치도록 할 것. 제국신민이 실망하거나 마음이 꺾이는 일이 없도록 할 것.


  하나, 낡은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도리에 기반한 행동을 할 것.


  하나, 지식을 넓게 구하여 크게 제국을 발전하도록 노력할 것.


  제국은 지금, 미증유의 개혁을 행하려고 하며, 짐 스스로 신민을 통솔하여, 대신 오딘에게 맹세하길 크게 제국의 국시를 정하여 제국신민의 번영의 길을 구하고자 한다. 제국신민은 짐과 함께 마음을 합하여 제국 천년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라.


  음. 이런 느낌인가. 조금만 더, 아니. 꽤 문장을 교정할 필요가 있지만, 대체로 이정도면 되겠지. 나머진 프리드리히 4세, 리히텐라데 후작, 겔라흐 자작에게 맡기자. 적당히 고쳐주겠지.


  내가 밤중에 혼자서 응응 끄덕이면서 생각하고 있는 건, 15일에 발표될 칙령 전에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제국 전토에 선언하는, 신제국이 개혁을 통해 목표로 하는 국가상이다.


  낮에 이런 걸 만들고 있다간 큰일이 난다. 그렇기에 밤, 아무도 모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발레리에게도 비밀로 하는 작업이다.


  고려한 건 메이지정부에 의한 ‘5개조 선언문’이다. 그 때까지의 막부 체제를 버리고 근대국가를 세우려고 한 메이지 신정부가 그를 위해 일본 국민 모두에게 힘내자고 선언한 문장…….


  난 저 선언문을 좋아한다. 위에서의 시선이 아니라, 손을 잡고서 함께 나라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모습은 당시의 메이지 신정부가 짊어지고 있는 마음, 불안, 희망, 그런 것이 뭉쳐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의 제국은 지금까지 일부 특권계층에 의한 귀족 중심의 정치에서 바뀌려고 하고 있다. 실로 제국의 메이지 유신이다. 이제부터 앞으로 어떤 곤란이 있을지 모르지만, 프리드리히 4세에 의한 선언문이 모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겠지.


  좋네. 응. 실로 좋아. 전쟁이라느니 모략이라느니, 하고 있을 때마다 지긋지긋하다. 선언문과 같이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문장을 만드는 쪽이 훨씬 즐겁고 세상에 도움이 된다.


  역시 정치라는 건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라던가, 사람을 속이는 모략이라느니, 변변찮은 것들이다. 저런게 특기더라도 어떤 자랑거리도 아니다.


  우주에서 전쟁을 없앤다. 그 뒤엔 변호사나 관료로군. 역시 원래부터 공무원이었기 때문인지, 그런 공공의 일에 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제국의 메이지 유신인가. 난 누구에게 해당될까? 사카모토 료마? 오오쿠보 토시미치? 사이고 타카모리? 요시다 쇼인? 타카스기 신사쿠? ……모두 끝이 좋지 않은 건 왜일까. 개혁자는 끝이 좋지 않다는 건가. 힘이 빠지니까 그다지 생각하지 말도록 할까…….


  즐거운 일이 끝나자마자 변변찮은 현실이 보이는가. 현실도피의 시간은 끝이다. 어서오세요. 음모와 야심가들의 세계에. ……뤼네부르크가 말한 대로, 우주함대 사령부의 내부엔 라인하르트의 동향을 위험시하는 움직임이 있다.


  다행인 점은 라인하르트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주변 분위기를 읽고자 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말이야. 무사태평하게 지내고 있다. 저 모습을 보면 오베르슈타인은 라인하르트의 귀에 아직 독을 주입하지 않은 거겠지.


  오베르슈타인도 라인하르트가 연극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혹은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건가. 라인하르트의 귀에 넣는다고 하면, 역시 날 죽이기 직전, 직후겠지.


  다시 말해 라인하르트는 지금 시점에선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해도 좋다. 혹은 계속 모르는 채로 있을지도 모른다. 원작에서도 그런 일이 꽤나 있었으니까. 좋은 신분이구나. 라인하르트. 네가 정말 부러워.


  거기에 비하면 이쪽은 오베르슈타인에 페르너에, 게다가 볼텍. 덧붙여 바보에 단순한 바보 귀족들의 상대까지 해야 하니……. 지긋지긋한 면면들이다. 모두 뭉쳐서 블랙홀로 던져버리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당분간 우주는 평화롭게 되겠지. 아니, 블랙홀도 집어 삼키기 전에 내뱉을지도 모른다.


  라인하르트가 별동대 지휘관을 지명했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바린, 루츠, 뮐러……. 들은 순간 예상대로라서 진절머리가 났다. 물론 표정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뮐러는 이전에도 라인하르트의 분함대 사령관을 임하고 있었다. 라인하르트가 보기에 믿을 수 있고 잘 아는 사령관인 거겠지.


  바렌, 루츠는 공방에 균형이 좋고 성격도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온후하기에 나이가 젊은 상관에서 보자면 성격면, 능력면 모두 쓰기 편한 타입이다. 원작에서 키르히아이스의 부장을 명했던 것도 그게 이유다.


  다시 말해 내가 본대로 이끌게 되는 건 메르카츠, 케슬러, 메크링거, 클레멘츠, 아이제나흐, 켐프, 렌넨캄프,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극단적인 면면들이 된다……. 지장 타입인 케슬러, 메크링거, 클레멘츠, 맹장 타입인 켐프, 렌넨캄프,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견실한 건 아이제나흐 뿐인가.


  군대도 야구와 마찬가지로 4번 타자만 모여 있다고 좋은 게 아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능력이 있다. 별동대에 비해 본대는 운용이 어려워질 것 같다. 메르카츠 제독에겐 부담을 주게 되겠지. 나중에 상담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역시 라인하르트와 케슬러는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케슬러는 라인하르트의 참모장을 잠시 맡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가 별동대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케슬러는 발탁되지 않았다.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도 케슬러의 위치는 라인하르트에게서 떨어진 장소에 있었다. 의식하고 했던 일은 아닐 거다. 그러니 오히려 질이 나쁘다.


  원래라면 케슬러는 우주함대의 총참모장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 3차 티아매트 회전에서 라인하르트 사이에 지휘권 문제로 틈이 생겼다.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이상하게 됐다.


  메크링거도 마찬가지다. 저 싸움에서 라인하르트 사이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원래라면 메크링거도 케슬러와 마찬가지로 우주함대 총참모장을 맡을 수 있는 사내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을 총참모장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이 지금의 라인하르트를 만들고 있다. 둘 중에 한 명이 총참모장으로 곁에 두고 있었다면 이제르론에서 패할 일은 없었겠지. 지금도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나도 고생하고 있다. 내가 저 두 사람 중 누군가를 총참모장으로 한다면, 정치면을 중시한다면 케슬러를, 군사면을 중시한다면 메크링거를 고르겠지만, 부사령장관인 라인하르트와 반드시 어디선가 충돌하게 되겠지. 그걸 막기 위해 내가 움직이면 그 원인으로 또 내가 지치고 만다. 총참모장을 둬도 두지 않아도 부담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 결과, 나는 총참모장 없이 지내고 있다. 발트하임은 어디까지나 내 함대의 참모장으로 우주함대의 총참모장은 아니다.


  라인하르트의 결점이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물을 곁에 두지 못한다. 케슬러와 메크링거는 냉정한 사내들이다. 원작에서도 라인하르트에 대해 냉혹하다고 좋을 관찰을 보이고 있었다.


  이 세계에선 그게 더욱 강하게 나왔다. 라인하르트는 두 사람이 자신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느끼고 있겠지. 그렇기에 멀리했다. 항상 곁에 자신을 긍정하는 키르히아이스가 있다는 것의 폐해다.


  별동대 함대 사령관들에겐 고생을 끼치게 되었다. 나중에 노고를 위로해야겠지. 특히 뮐러. 그는 최연소고, 사람이 좋은 데다 고생을 스스로 짊어지려는 구석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제아들러(바다독수리에)에 있겠지. 나중에 가볼까…….


  라인하르트의 결점은 또 하나 있다. 실전지휘관으로 성격이 너무 강하다. 혹은 무훈을 세우는 데에 너무 고집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결과 중시. 이기면 좋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보인다.


  오늘도 그게 나왔다. 포로교환으로 내란을 일으킨다던가, 우쭐거리며 말한다. 조금만 더 있었다간 네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냐고 화낼 ㅃᅠㄴ했다. 팔을 두드리며 참았지만.


  전생하기 전엔 포로교환을 이용한 내부분열 공작에 그렇게 강한 혐오감을 품지 않았었다. 아니, 오히려 혐오감 따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와서 생각이 변했다.


  포로교환. 이건 통상 뭔가 정치적인 이유나 목적이 있어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인도적인 측면을 가진다는 것도 확실하다. 원작에서도 라인하르트는 동맹이 인도적으로 포로교환에 응해줬다고 감사하는 말을 했었다.


  말하자면, 이건 상대를 신뢰하여 행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이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서로에게 인도적으로 행동합시다. 반칙은 안돼요. 그런 거다. 그걸 내부분열에 사용 한다……. 인도란 뭣인가. 아까전의 감사는 뭐였던 것인가.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건 나 혼자였을까?


  바그다슈는 내란이 라인하르트에 의해 일어난 거라고 양 웬리에게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난 바그다슈가 무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무를지도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정당하다고 긍지를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책략을 생각한 라인하르트나 오베르슈타인, 책략을 실행하기 전에 눈치 챈 양 웬리 쪽이 이상하다. 양 웬리가 군인으로서 직업을 싫어했던 건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게 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생각일까.


  트류니히트의 동맹정부가 라인하르트를 고르지 않았던 것. 망명정부를 교섭상대로 고른 것도 단순한 판단 미스라곤 할 수 없지 않을까.


  원작의 동맹정부가, 제국 내부에서 행해지고 있던 개혁을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아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개혁자로서 라인하르트에 대한 호의를 가져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망명정부를 교섭 상대로 골랐다. 어째서인가? 초토작전과 포로교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맹정부의 상식에 비춰보면 초토작전이나 포로교환을 이용한 내부분열 따위 어느 쪽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동맹정부는 라인하르트를 믿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들에게 라인하르트를 부정하게 했다……. 오히려 양 웬리가 라인하르트를 계속 높게 평가했던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초토작전을 취한 라인하르트를 어째서 양 웬리는 높게 평가했는가……. 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동맹정부가 양 웬리를 사문회에 부른 것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단순한 괴롭힘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동맹의 군사개입을 막는 거라면, 내가 말한 대로 1년 후의 교환으로 충분하다. 혹시 그렇게 했다면, 동맹정부는 과연 망명자를 받아들였을까? 라인하르트는 동맹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건 라인하르트 자신이겠지.


  제국에게 있어서도 라인하르트를 위험시하는 사람은 있었겠지. 칼 브라케다. 그가 라인하르트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던 것도 라인하르트의 자질에 믿을 수 없는 걸 느꼈기 때문이겠지.


  그는 라인하르트의 개혁도 결국 권력탈취의 일환이며 권력기반이 안정되면 개혁자의 얼굴을 버리는 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개혁자가 압제자가 된다. 다시 말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제 2의 루돌프가 된다…….


  라인하르트 만년의 전쟁은 아무리 봐도, 감정에 의한 것으로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브라케의 불안은 계속 증대됐겠지.


  라인하르트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라인하르트가 황제병이라는 병에 걸렸던 건 사실이겠지. 하지만 치료가 적절하게 행해졌다곤 할 수 없다.


  라인하르트를 위험하게 생각한 개혁파 일부가 의사에게 명하여 라인하르트를 병사하게 만들었다. 그 가능성은 없는 걸까. 라인하르트가 죽으면 전쟁은 끝난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가 죽으면 오베르슈타인이 실각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이후엔 힐다를 중심으로 정치를 행하면 된다. 정치가로선 라인하르트보다도 힐더가 더 믿음직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상, 군인의 시대가 끝나고 문관들의 시대가 온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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