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력 797년 1월 13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군부의 염려는 알겠다. 아무래도 우리들은 말도 안 되는 궁지에 빠진 것 같군.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네들의 의견을 듣고 싶네.”
“…….”
트류니히트의 말에 보로딘 본부장, 그린힐 총참모장이 침묵한 채 답하지 않는다.
“사양할 필요 없네. 아무래도 자네들은 우리들을 잘라버릴 생각도 검토한 것 같군. 아닌가?”
“트류니히트 의장!”
네그로폰테가 트류니히트를 책망하고 보로딘 본부장과 그린힐 총참모장을 노려봤다.
“자네들은…….”
“괜찮지 않은가? 네그로폰테군. 난 그게 나쁘다고 하지 않아. 오히려 필요한 냉혹함이다. 아군으로서 믿음직할 뿐이야.”
“…….”
트류니히트는 웃음조차 띠며 네그로폰테를 막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보로딘 본부장과 그린힐 총참모장이 서로를 돌아본다. 잠시 뒤 보로딘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제국군이 스스로 페잔의 진주를 바란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병력의 차이가 있는 이상, 우리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경우 정부는 주전파에게서 책임을 물을지도 모르지만, 방법에 따라선 나라를 하나로 뭉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와신상담인가.”
“그렇습니다. 만일 실패해서 그에 의해 정권교체가 생길 경우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생각이었습니다.”
“……자네들의 책임을 묻는 일은 없겠는가?”
“싸우지도 않았는데 말입니까?”
“과연. 확실히 그렇군.”
보로딘의 비아냥 섞인 어조에 트류니히트가 쓴웃음 지었다.
“전략적으로 보자면 페잔을 아군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음 정권에서 솔직하게 모든 걸 말하고, 자중해야 한다고 설득할 생각이었습니다.”
“정부가, 군의 주전파가 그걸 받아들이리라 생각하는가?”
“현실문제로서 동맹에는 제국을 침공할만한 전력이 없습니다.”
“과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건가…….”
말하고 있는 건 트류니히트와 보로딘 본부장 뿐이다. 누구도 대화에 가담하려하지 않는다.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하지만 제국에서 페잔 진주 의뢰가 있었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무리 그게 동맹에 있어 불이익을 만든다고 해도 주변을 납득하게 하는 건 곤란하겠죠.”
보로딘 본부장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모두가 끄덕였다.
“뭐라 해도 이제르론, 페잔 두 회랑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동맹의 안전보장 면에서 보자면 평화적으로 페잔에 진주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호안이 한숨 섞인 말을 냈다. 그 말대로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보장 면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주스럽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그것만이 아니야. 경제면에서도 진주를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오르겠지. 페잔의 자본 이용을 구하며 말이지……. 현재 페잔이 소유하고 있는 상환기간을 넘긴 국채가 얼마나 있는지 아는가? 트류니히트 의장.”
내 질문에 트류니히트가 조금 뒷맛이 나쁘다는 듯이 답했다.
“고액이라고는 알고 있네만. 확실하겐…….”
“5천억 디나르다.”
5천억 디나르. 그 말에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나왔다.
“지금의 동맹 재정능력으론 일시에 지불하는 건 도저히 무리야. 증세인가, 혹은 재원 없이 지폐를 증쇄할지다……. 국채를 증발해도 누구도 사려고하지 않을 테니. 하지만 페잔이 손에 들어오면……. 알겠지? 모두 뭘 생각할지.”
잠시 동안의 침묵 후, 호안이 입을 열었다.
“처음엔 페잔 자본의 이용뿐이라도, 언젠가는 접수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 거로군? 레벨로.”
“그 말대로다. 그리고 한 번 행하면 제한 없이 페잔 자본을 착취하려고 하겠지. 마약 같은 거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하고 말아…….”
누구도 페잔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들에게 전쟁을 하게 만들고, 그 피를 빨아 살찌고 있다. 흘린 피만큼 돌려받겠다. 자기합리화의 변명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페잔은 제국의 도움을 바라는가…….”
“…….”
트류니히트가 중얼거리는 듯이 말했다. 그 말대로다. 그거야말로 제국의 노림수겠지. 보로딘 본부장, 그리고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을 들은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다른 수는 없는가?”
네그로폰테가 초조한 어조로 질문했다. 군인들에게 책망하는 것 같은 시선을 향하고 있다.
“그들을 책망해서 어쩌겠다는 건가?”
“그런 건…….”
호안의 말에 네그로폰테가 끝을 흘리며 입을 닫았다.
그의 마음은 알겠다. 팔방진이다. 누군가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어지겠지. 제국은 24시간 이내의 회답기한을 달아두었다. 벌써 1시간 가까이 소비했지만, 어떤 진전도 없다. 하지만 호안의 말대로, 그들을 책망해선 안 된다. 우리들은 그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린힐 총참모장과 보로딘 본부장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미묘하게 보로딘 본부장이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서 말을 교환하지 않고 의견 교환이 있었던 것 같다.
“수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있는 건가?”
트류니히트의 말에 모두가 시선을 그린힐 총참모장에게 향한다.
“페잔의 중립성을 제국, 동맹의 손에 의해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페잔 스스로가 그 중립성을 확립한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페잔 스스로 중립성을 확립한다? 대체 무슨 말인가? 모두가 의심쩍은 얼굴로 돌아보는 와중,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이 흘렀다.
“구체적으로, 페잔인의 손으로 루빈스키를 추방하게 만듭니다.”
“!”
“그런 게 가능하겠나?”
모두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 와중, 네그로폰테가 반신반의의 표정으로 그린힐 총참모장에게 물었다.
“국방위원장은 페잔의 장로회의를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자치령주를 정하는 위원회겠지. 그게?”
네그로폰테의 말에 그린힐 총참모장이 끄덕이면서 말을 계속했다.
“장로회의는 확실히 자치령주를 정하는 기관입니다만, 동시에 자치령주를 해임할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
“장로회의의 유권자 중 2할이 개회를 요구하면 회의가 열립니다. 그리고 3분의 2 이상의 다수가 찬성하면 루빈스키를 파면할 수 있습니다…….”
“!”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이 방에 울렸다. 모두가 서로를 돌아본느 와중, 보로딘 본부장이 말을 계속했다.
“제국의 요구는, 루빈스키에게 반제국활동을 그만두게 하는 일입니다. 루빈스키를 파면할 수 있으면 침공하는 일 없이 그걸 만족할 수 있습니다.”
“과연.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는 건가…….”
“그 말대로입니다. 레벨로 위원장.”
“…….”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트류니히트는 눈을 감고, 호안과 네그로폰테는 하늘을 올려보고 있다. 모두 각자의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다.
“어떤가? 트류니히트 의장. 군부의 제안은 지금의 동맹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네만.”
내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눈을 열고 어렴풋이 끄덕였다.
“확실히 레벨로 의원장의 말대로다. 페잔에 진주하는 게 불가능한 이상, 달리 이 위기를 피할 수는 없겠지…….”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겠나?”
내 질문에 그린힐 총참모장이 답했다.
“일단 페잔의 유력자와 접촉하여, 이대로 루빈스키가 자치령주에 머물고 있으면 페잔의 자치가 위험하다고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로회의를 열어서 루빈스키를 파면해야 한다고.”
트류니히트, 호안, 네그로폰테가 끄덕이고 있다. 그걸 보면서 그린힐 총참모장이 말을 계속했다.
“다음으로 제국에 대한 회답입니다만, 이건 회답 기한 아슬아슬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수락한다는 회답을 합니다.”
“…….”
“그 뒤에 함대를 천천히 전진하여, 페잔에서 루빈스키가 파면되는 걸 기다립니다…….”
“함대의 규모는 어떻게 하나? 3개 함대 전부를 전진하는가? 줄이는 편이 좋지 않은가?”
네그로폰테가 그린힐 총참모장에게 질문했다. 만일 실제로 진주하게 될 경우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아뇨. 3개 함대 전부를 진군합니다. 병력을 줄이면 페잔에서 루빈스키를 파면하자는 움직임이 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병력은 필요합니다.”
“과연. 압력을 거는 것으로 페잔에서 루빈스키를 파면한다. 파면 후엔 제국에 대해서 페잔의 중립성은 회복되었다고 병력을 뺀다. 그런 거로군.”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그 말대로입니다. 의장.”
“네그로폰테군의 걱정은 알겠지만, 우선해야 하는 건 장로회의를 개최하게 만드는 것이군……. 좋겠지. 그 방향으로 진행하세.”
트류니히트가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에 동의했다. 호안도 네그로폰테도 끄덕이고 있다.
“그다지 시간이 없네. 서둘러야하겠지.”
“그렇지. 레벨로. 자네의 말대로다. 서둘러야만해. 헌데 군부에 듣고 싶은 일이 있네만.”
트류니히트의 말에 보로딘 본부장, 그린힐 총참모장이 희미하게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서두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뭘 물어보려는 건가?
“어째서 처음부터 이 안을 내놓지 않은 건가? 처음부터 이 안을 제안했다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대응할 수 있었을 테지만…….”
보로딘 본부장, 그린힐 총참모장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일까. 그들은 이 안을 꼭 바라지 않았다? 아니면 눈치 채는 것이 늦었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국의 진짜 목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제국의 진짜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린힐 총참모장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제국이 루빈스키의 배제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페잔인의 손으로 루빈스키를 파면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문제가 있습니다.”
“…….”
“그렇지 않았을 경우, 다시 말해 제국의 목적이 페잔 회랑을 이용해 동맹령의 침공일 경우입니다만. 그 경우 최선의 선택은 제국에게 페잔을 점령하게 만들어, 반제국활동을 일으키게 하여 제국의 침공을 막는 일입니다.”
“…….”
“이번, 제국에서 페잔 침공의 연락이 있었을 때, 저희들은 제국의 목적을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제국을 페잔으로 침공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한 겁니다. 의장 각하의 공동점령안은 그 의미로 최선의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아무래도 난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군.”
트류니히트가 다소 비아냥을 섞어 감사했지만, 그린힐 총참모장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보로딘 본부장이 희미하게 언짢은 표정을 보였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제국에서 제안을 보면, 제국의 목적은 페잔 회랑을 이용한 동맹령 침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최선의 것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이번의 방법으로는 사태를 미루는 것일 뿐이다. 그런 건가?”
“그렇습니다. 의장. 게다가 뒤로 미루면 내란을 종결한 제국은 더욱 강대한 국가가 되어 우리들을 덮치겠죠. 힘든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린힐 총참모장의 침울한 어조가 방을 울렸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다. 이번 책략은 일시적인 위안밖에 되지 않는다. 모두 같은 생각을 했겠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과연. 잘 알았다. 헌데 이번 장로회의를 쓰자는 것도 양 제독의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양 제독은 페잔과 제국의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는 걸 중시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대책을 생각해 저희들과 연락을 취했던 겁니다.”
“호오. 놀랍군. 제국의 발렌슈타인 원수가 책사라는 건 들었지만, 양 제독도 꽤나……, 뒤처지지 않는 자로군.”
호안이 탄성을 질렀다. 거기에 따르는 듯이 방에 웃음이 일었다. 트류니히트도 웃음을 띠고 있다.
“……보로딘 본부장. 그린힐 총참모장. 자네들이 유능하다는 건 잘 알았다. 하지만 조금 더 우리들에게 속내를 풀어주지 않겠나? 열세에 있는 이상 협력은 필요불가결하겠지. 부탁하네.”
“…….”
트류니히트의 웃음을 띤 말에, 보로딘 본부장, 그린힐 총참모장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품고 있긴 하지만, 트류니히트는 내심 초조해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일이 있다곤 하지만, 군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건 틀림없다.
양 웬리인가. 아무래도 그가 군부의 키맨인 것 같다. 유능하긴 하지만 우리들에 대한 경계심이 꽤 강하다. 시트레 경유로 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실행해야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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