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력 797년 1월 13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트류니히트 의장. 제국은 동맹이 제안한 페잔 공동점령안을 정식으로 거절하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소.”
트류니히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집무실에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이 일었다……. 이쪽의 제안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 이야기할 여지는 없다는 건가…….
“……그럼 제국은 단독으로 페잔을 침공하겠다는?”
잠깐 간격을 두고 나온 트류니히트의 목소리는 낮고 저력에 가득찬 것이었다. 렘샤이트 백작을 엄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렘샤이트 백작은 트류니히트의 질문에 답하는 일 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소. 동맹 정부는 페잔 회랑의 확보만을 고집하여 현 상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고.”
“…….”
엄한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다, 그런 말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다. 호안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제국과 동맹은 150년에 걸쳐 전쟁을 해왔소. 동맹은 그 현실을 무시, 혹은 경시하려하고 있다. 양국이 공동으로 페잔을 점령이라니, 새로운 분쟁을 부르는 것일 뿐이오.”
“동맹 정부는 페잔에서 실리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 점을 본국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습니까?”
트류니히트의 말에 렘샤이트 백작이 침통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당연히 이야기했지. 이건 그 후의 회답이외다.”
“…….”
“알겠는가? 공동점령을 받아들이면, 페잔에 양국의 군대가 진주하게 되오. 무력을 가진 상대에 대해 강한 적의를 가진 두 군대가 하나의 혹성에 주둔하게 되는 거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본국은 생각하고 있소.”
“…….”
“아니면 동맹군은 페잔에서 모든 무장을 해제할 수 있소? 그렇다면 말은 다르지만…….”
“말도 안 돼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내뱉는 듯한 보로딘의 어조였다.
“침착해라. 보로딘 본부장!”
“농담도 아닙니다. 레벨로 위원장. 그런 짓을 하면 군부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위험합니다.”
“그렇겠지. 제국군도 마찬가지요. 다시 말해, 공동점령은 위험하며, 불가능한 일이오.”
“병사를 삭감하면 되겠죠.”
“?”
보로딘 본부장의 말에 렘샤이트 백작이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병사를 삭감?
“페잔에 대군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점령후엔 양군이 2천 척 정도의 군사를 페잔에 두기만 하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있소? 개미굴에 둑방이 무너진다는 말도 있소. 방심은 할 수 없지.”
침묵이 집무실을 지배했다. 렘샤이트 백작은 침통한 표정인 채다. 혹시 렘샤이트 백작은 공동점령에 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안이 무너진 건 그에게 있어서도 본의가 아니었는가……. 렘샤이트 백작이 고개를 한 번 젓고서 말했다.
“트류니히트 의장, 동맹정부는 페잔을 제국의 일개 자치령으로서 인정한다. 영토적인 야심은 없다. 그렇게 들었소만.”
“……말씀 대롭니다.”
“페잔의 중림을 바라며, 요즘 최근의 루빈스키의 행동은 중립에서 이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대로…….”
렘샤이트 백작은 하나하나 확인하는 어조로 물었다. 이상한 느낌이다. 모두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트류니히트만이 스크린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동맹정부는 제국에 대해 공동점령이라는 제안을 내놓았소.”
“…….”
“제국은 거기에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판단하여 거부했지만, 거부한 이상 거기에 대한 대안책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
대안책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나눌 여지는 있다는 건가. 하지만 이 시점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건가? 나머진 제국에 의한 페잔 점령, 그것뿐이겠지. 트류니히트가 한 순간 이쪽으로 시선을 향해왔다. 곤혹해하는 듯한 색이 눈에 있다. 같은 마음이겠지.
“제국정부에서 동맹에 대해 새로이 제안이 있소.”
“…….”
“제국은 자유행성동맹군의 페잔 자치령에 대한 진주를 인정하오.”
“!”
모두 한 순간 굳었다. 제국이 동맹군의 페잔 진주를 인정한다? 무슨 일이냐? 잘못 들은 건가? 트류니히트와 호안, 보로딘도 모두 아연해하고 있다.
우리들이 아연해하는 와중, 렘샤이트 백작의 목소리만이 담담히 흘렀다.
“본래 페잔 자치령의 중립성은 제국이 보장하는 것이오. 하지만 지금 현재 제국은 내란상태에 있으며 페잔 자치령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피하고 싶소.”
“…….”
“또한 자유행성동맹 정부가 페잔 회랑의 중립성에 관해서 품는 불안감도 이해할 수 있소. 따라서 제국정부는 페잔 자치령의 중립성 회복을 자유행성동맹 정부에 의뢰하려 생각하고 있소.”
“진심입니까? 그건.”
“물론. 이건 정식 의뢰이오.”
“……조건은?”
“거기에 대해선, 일단 첫째로…….”
집무실 안은 망설이는 것 같은, 그리고 무겁고 괴로운 분위기가 넘쳐있다. 이미 렘샤이트 백작과의 회담은 30분 이상 전에 끝났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페잔의 단독진주를 인정한다. 무슨 일인가? 제국 내부의 내란이 예상 이상으로 대규모인 건가? 그렇기에 병력을 페잔에 뺏기고 싶지 않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 모두 말없이 생각에 빠져있다. 아니, 마음 어딘가에서 말하는 걸 망설이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멤버가 모두 모이지 않았다는 것도 있겠지. 렘샤이트 백작과의 회담 후, 동맹 내부의 의견을 합치기 위해 네그로폰테와 우주함대에서도 사람을 보내라고 명령했다.
네그로폰테는 바로 왔지만 우주함대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30분 기다려 달라고 했다. 문답무용으로 부르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래선 회의를 기다리는 의미가 없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늦었습니다.”
집무실 문을 열고 그린힐 총참모장이 들어왔다. 서둘러 온 거겠지. 이 시기인데 뺨에 땀이 흐르고 있다.
“앉게나. 먼저 군부의 생각을 듣고 싶어.”
트류니히트의 질문에 대해 그린힐 총참모장이 의자에 앉으면서 답했다.
“그 전에, 제국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좋겠지.”
트류니히트가 렘샤이트 백작이 제시한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렘샤이트 백작이 제시한 조건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단지 실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별개지만…….
조건은 다음 8항목이다.
1. 동맹군의 페잔 진주는 제국정부의 의뢰에 의한 것이라는 걸 선언할 것.
2. 동맹군의 페잔에서의 임무는 제국군을 대신하여 페잔의 중립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걸 선언할 것.
3. 동맹군의 페잔 철퇴에 대해선, 페잔의 중립성을 확인한 후로 하고, 제국, 동맹 양국의 합의에 의해 행할 것. 합의 없이는 철퇴를 행하지 말 것. 또 병력의 증원에 대해서도 양국의 합의가 필요하게 할 것.
4.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체포, 혹은 사살과 그 신병은 제국에 인도할 것.
5. 페잔 자치령주를 정할 때엔 반드시 사전에 제국의 승인을 얻을 것.
6. 페잔에 의한 제국고등변무관의 권리, 안전, 그리고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것.
7. 페잔에 진주하는 군대는 페잔에서 제국 방면으로 군사행동을 행하지 말 것.
8. 자유행성동맹은 어떠한 의미로도 제국에 대해 반제국적인 활동을 행하지 말 것. 혹시 반제국적인 활동이 있다고 제국이 인정했을 경우, 자유행성동맹은 페잔에 진주할 정당한 이유, 권리의 전부를 잃을 것.
그린힐 총참모장은 트류니히트가 설명하는 사이,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잠자코 듣고 있었다. 때때로 메모에 뭔가를 적는다. 트류니히트의 설명이 끝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총참모장.”
“솔직히 말하자면, 페잔에 우리 군만으로 진주하는 건 위험합니다.”
트류니히트의 질문에 그린힐 총참모장이 답했다.
“위험이란?”
“제국의 조건에선 우리들이 제국 대신에 페잔의 내정에 관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페잔의 원한을 사는 건 우리들이며 제국이 아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장.”
그린힐 총참모장의 대답에 트류니히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국을 대신하여 우리들이 더러운 일을 한다는 거로군…….”
“그 말대롭니다. 네그로폰테 위원장.”
“좋지 않군.”
정말 좋지 않은 사태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공동점령이라면 그 부분의 약점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닙니다.”
“?”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에 보로딘 본부장을 뺀 모두가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있나?
“공동점령을 행한 후, 양군은 물러나게 됩니다. 그 뒤, 제국이 페잔 방면에서 동맹령의 침공을 획책할 경우엔, 페잔 시민에게 반제국활동을 행하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반제국활동?”
“그렇습니다. 페잔인에 의한 조직적인 사보타쥬, 총파업에 의한 사회, 경제 운영 시스템의 무력화입니다. 거기에 의해 페잔을 보급기지, 중계기지로 하는 제국의 의도를 막습니다.”
호안이 신음소리를 냈다. 트류니히트가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과연. 제국이 더러운 일을 하는 거라면 페잔 사람들에게 원망을 받는 건 제국이다. 충분히 가능성은 있겠지.”
“공동점령 중엔 우리들은 페잔에 대해 동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것만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어느 정도 친밀함만 확립하면 나머진 시간을 걸어서 그걸 심화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페잔인에 의한 게릴라 활동인가……. 자네들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던 건가?”
호안이 기가 막힌다는 소리를 냈다. 그린힐 총참모장이, 보로딘 본부장이 서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보로딘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르론의 양 제독이 생각한 겁니다. 동맹군에는 전력이 없다. 그런 이상 동맹군은 약자의 전술을 취할 수밖에 없다. 아군을 늘리고, 정면에서 싸우지 않고 적을 철퇴하게 한다. 우리들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 질문해도 되나? 보로딘 본부장.”
트류니히트가 침통한 표정으로 보로딘에게 질문한다.
“뭡니까? 의장.”
“공동점령 했을 경우, 제국이 염려하고 있던 현지의 군사충돌 말이네만. 자네들은 정말 병력을 삭감하는 걸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트류니히트의 질문에 보로딘 본부장과 그린힐 총참모장이 서로를 돌아봤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부분이 불안했습니다. 병력을 삭감하는 정도밖에 수가 없습니다. 렘샤이트 백작의 말대로입니다.”
보로딘 본부장이 답하자 계속해서 그린힐 총참모장이 입을 열었다.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오히려 제국이 그 가능성을 고의로 무시한 건 아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다리게. 총참모장. 고의로 무시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다시 말해, 제국도 우리들과 마찬가지의 것을 생각하지 않았는가하는 겁니다. 레벨로 위원장. 우리들에게 악역을 맡기고, 페잔을 아군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강대한 제국이 약자의 전략을 취하려고 하고 있다…….”
“!”
집무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대로라면 동맹은 쉽지 않은 적을 상대하고 있다. 트류니히트가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함대를 파견한 건 잘못이 아니었다.
거기서 파견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페잔을 죽게 내버려뒀다.”, “페잔 회랑을 포로와 바꿔 제국에 팔아 넘겼다.”라고 비난받았겠지.
공동점령안도 틀리지 않았다. 군의 생각을 보자면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보로딘이 공동점령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병력을 물려야 한다고 한 이유도 지금이라면 잘 알 수 있다. 제국에게 단독으로 점령하게 만드는 편이 페잔 방면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엔 우리들은 하야하게 됐을 것이다.
우리들이 하야하는 건 상관없다. 문제는 그 뒤다. 후속정권은 싫어도 제국에 대해 강경하게 될 수밖에 없다. 힘이 없는 자가 근거도 없이 강경책을 취한다. 제국에 대한 출병 따위 자살행위겠지. 팔방진이다. 아니, 군은 병력이 없다고 정부를 설득할 생각이었는가. 보로딘들은 우리들을 잘라버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침묵을 깬 건 그린힐 총참모장의 우울한 목소리였다.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알고 있네. 마지막의 ‘반제국적인 활동을 행하지 말 것’이겠지. 어떤 것이든 트집을 잡을 수 있으니까.”
호안이 떫은 표정으로 내뱉었다.
“아뇨. 그게 아닙니다.”
“?”
그린힐 총참모장의 대답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했다. 무슨 일인가.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건가…….“
“페잔에서의 철퇴는 제국, 동맹, 양자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
“일견 이건 동맹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보입니다만,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네그로폰테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동감이다. 어디가 문제인 건가.
“……제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동맹은 페잔에서 병력을 철퇴할 수 없다는 겁니다.”
“…….”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이 집무실에 울렸다. “제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동맹은 페잔에서 병력을 철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제르론 방면에서 군사적 위압이 걸려도 병력 이동은 할 수 없다. 그런 건가?”
“그 말대로입니다. 트류니히트 의장. 제국이 정말 전쟁을 걸어오기 전까지 페잔에서 병력을 이동할 수 없게 됩니다.”
신음소리가 들렸다. 호안과 네그로폰테겠지. 트류니히트는 입을 여는 것을 거절하는 듯이 입을 닫고 있다.
“그럼 처음부터 병력을 적게 해두면, 아니, 안되겠군. 그래서야 페잔에 위압을 가하게 되나. 증원도 양국의 합의가 필요하니.”
“그 말대로입니다.”
집무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오늘 몇 번째일까. 그리고 모두가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약자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괴로운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국은 내란상태에 있으면서도, 아니 그걸 이용해서 동맹을 압도하고 있다.
렘샤이트 백작. 저 남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새하얀 두발과 투명에 가까운 눈동자. 침울한 표정. 저건 전부 연기였던 걸까? 하얀 여우. 그 별명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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