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3월 3일 19:30. 그라이프스 함대 기함, 비스바덴.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지금까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봐도 될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클레이머 대장.”

  내 뒤에 클레이머 대장과 프펜더 소장이 대화하고 있다. 확실히 순조롭게 적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끌어들이고 있다.


  단, 내심 조마조마하면서다. 그 부분을 프펜더는 알고 있을지……. 클레이머 대장은 헌병 출신이니까 이해하지 못하도 어느 의미 별 수 없지만, 프펜더가 모르고 있다면 참모로서 신용할 수 없다. 불안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적도 솜씨가 없군. 이대로 가면 순순히 가이에스하켄을 먹게 되겠지.”

  “이렇게나 전장이 한정되어 있으면 적에게도 수가 없겠죠.”


  안되겠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상대를 얕보고 있다. 전장이 한정되어 있기에 적에게 수가 없어? 농담이겠지. 적은 뭔가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쪽은 아직 그걸 탐지하지 못하고 있다.


  “가능하면 가이에스하켄을 이 손으로 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걸 맞고 산산조각나는 적을 보고 싶었다.”

  “소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녀석들을 가지고 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라겔 대장, 노르덴 소장이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포로로 잡혔다. 그 이후, 이 두 사람은 자신이야말로 육전의 전문가, 참모의 톱이라고 자부하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이 지금 요새가 아니라 여기에 있는 건, 요새에 두기엔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지 그 외의 것은 없다. 경우에 따라선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을 이용하려 들겠지.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적의 우익, 더욱 전진합니다.”

  오퍼레이터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좌익부대에 후퇴하라 명령해라.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곳까지 물러나도록. 그리고 적의 돌파를 허락하지 마라.”

  “예.”


  좌익 다음엔 우익도 후퇴다. 그리고 그 뒤엔 좌익만을 후퇴하게 만들어 적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로 유인한다. 다행히 적의 우익에는 발렌슈타인도 있다. 일격을 먹으면 적은 혼란에 빠지겠지. 그 시점에서 총세를 가지고 반격에 나선다. 문제는 그때까지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다.


  적은 반드시 이쪽 좌익의 돌파, 혹은 혼전을 노릴 것이다. 여기부터가 진짜 승부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의 통신을 열어라.”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9:3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페르너 준장. 순서를 확인하도록 하지. 이제 곧 아군의 좌익이 후퇴를 시작하네.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선까지 물러나겠지. 그 뒤에 우익이 후퇴하네.”

  “예.”


  스크린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모습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표정에 피로의 색이 있다. 하지만 총사령관의 어조는 확실하고, 시선에도 흔들림이 없다. 괜찮다. 총사령관은 침착하다.


  “그 뒤에 또 좌익을 후퇴하게 만들고, 적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내로 유인하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좌익을 천정, 천저 방향으로 대피하게 할 걸세.”

  “우익은 후퇴하지 않는 겁니까?”


  내 질문에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끄덕였다.

  “가이에스하켄으로 노리는 건 적의 우익이다. 다행히 우익에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도 있다. 일격을 가하면 적은 혼란하겠지. 그 틈을 타서 총 반격이다.”

  “알겠습니다.”


  “적은 잘 걸려줄까요? 이쪽이 대피하면 거기에 맞춰 대피할지도 모릅니다만?”

  “상관없다. 처음부터 적이 거기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총사령관의 말에 저도 모르게 나는 브러울러 대령, 감리히 중령을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공작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래서야 적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습니다만.”


  “가이에스하켄은 미끼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적을 한 척도 격침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적이 대피한 후, 가이에스하켄을 쏜 후에 예비를 적 좌익의 측면으로 보낸다. 노리는 건 케슬러, 클레멘츠 함대의 격파다. 이쪽 정면에서의 공격과 연동하면 적의 좌익을 괴멸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겠지.”

  “!”


  “과연. 괴멸상태는 무리더라도 케슬러, 클레멘츠 함대를 격파하면 적의 중앙을 돌파할 수 있다! 그런 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흥분 섞인 말에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은근한 미소를 보였다.


  “적의 좌익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당연하지만, 가이에스하켄을 회피한 우익도 당황하겠지. 아군의 좌익은 그걸 친다. 전군으로 총 반격.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다.”

  “예.”


  가이에스하켄이 미끼인가. 아무래도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은 제 6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의 에리히를 모방하려는 것 같다. 총사령관은 함대결전으로 승리를 굳히려 하고 있다. 에리히들이 가이에스하켄을 회피하면, 당연하지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혼자의 힘으로 이쪽의 반격을 막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적의 예비겠지.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하지만 이쪽의 예비가 거리 면에서 보면 케슬러, 클레멘츠 함대에 먼저 달라붙을 수 있다. 케슬러, 클레멘츠가 무너지면 메르카츠 부사령장관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충분할 정도의 승산이 있다. 아까 전부터 불안해하던 감리히 중령도 지금은 얼굴에 홍조가 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말대로다. 에리히,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0: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각하. 적 우익,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갔습니다.”

  발트하임이 내게 주의했다. 적은 좌익에 이어 우익까지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갔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오고 말았다고 해야 하나.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그들도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전 함대에 명령. 발퀴레는 그대들의 용기를 사랑하니.”

  “예.”

  발트하임은 대답을 하고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퍼레이터가 복창하고 명령을 확인하고 있다. 이 명령이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전국이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발퀴레는 그대들의 용기를 사랑하니.”인가……. 확실히 지금부턴 용기와 인내를 시험하게 된다.


  그렇다 해도 적은 예상외로 끈질기다. 이미 전투를 시작하고 5시간이 지났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좀 더 빨리 적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길고 지긋지긋한 시간이었지만, 지금부터 바빠질 것이다. 코코아를 마실 여유는 없어지겠지.


  이쪽 우익은 아직 실력 전부를 보이고 있지 않다. 비텐펠트와 켐프도 많이 쳐서 7할에서 8할 정도의 힘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이미 한참 전에 적을 압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저면에 있는 건 카르나프 남작, 하일만 자작이다. 실전 경험 따위 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손대중을 한 공격이라도 막는 것이 전부였겠지. 그런 그들이 진심으로 공격하는 두 사람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성가신 일이다. 손대중하면서 적을 공격하라니……. 하지만 처음부터 전력으로 공격하면, 적은 이쪽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요새 근처까지 철퇴하여 나오지 않을 위험이 있다. 그렇게 하면 조기진압은 바랄 수 없다.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까지 끌어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뭐, 그것도 좌익부대보다는 낫겠지. 이쪽이 전력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보이기 위해 좌익에겐 손을 빼고 공격하라고 해뒀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휘권도 분리했다. 우익은 내가, 좌익은 메르카츠가. 내가 전력으로 공격하고, 메르카츠는 신중하게 공격하고 있다. 적이 그렇게 오해해 준다면 좋다.


  성가신 건 클라이스트와 바르텐베르크다. 이 녀석들은 실전경험이 풍부하니까 적당한 공격은 꿰뚫어볼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클라이스트에겐 파렌하이트와 밀러, 바르텐베르크에겐 메크링거와 렌넨캄프를 배치했다. 두 개 함대를 상대하는 거다. 벅차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겠지.


  그라이프스는 이쪽을 좀 더 요새로 끌어들이고자 생각하겠지. 지금은 아직 가능하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곧 그건 불가능하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때 그라이프스는 어떻게 할지…….


  버티려고 하면 분쇄 당한다. 도망치면 진형이 무너져 패배가 정해진다. 그렇다면 그라이프스는 가이에스하켄을 써서 진형을 만회할 수밖에 없겠지. 예정보다도 빨리 요새주포를 쏘게 된다. 당연히 이쪽도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쉬워진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0:3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준장, 적의 공격이.”

  “알고 있다. 주포의 발사 준비는?”

  “언제라도.”

  감리히 중령의 표정에 긴장이 보인다. 브러울러 대령의 표정도 굳어있다. 나도 아마 비슷하겠지.


  아군이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부터 적 우익의 공격이 한층 격렬해졌다. 아마 혼전으로 몰고 가 이쪽이 가이에스하켄을 쏘지 못하게 하려는 거겠지. 상황은 좋지 않다. 이대로라면 돌파당할 수밖에 없다.


  “준장. 예정보다도 빨리 주포를 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대령. 하지만 이쪽의 목적은 예비를 써서 적의 좌익을 공격하는 겁니다. 문제는 없겠죠.”


  내 말에 브러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이 끄덕였다. 그래. 문제는 없는 거다. 조금쯤 적의 공격이 강해졌다고 해서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에게서 통신입니다. 화면에 비칩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화면을 봤다. 화면에 긴장한 표정의 공작과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얼굴이 나타났다.


  “적의 공격이 격렬해졌다. 억지로라도 혼전으로 몰고가려 하고 있어.”

  “…….”

  “페르너 준장. 적은 이제 곧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네. 그 시점에서 가이에스하켄으로 적을 공격해주게.”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표정이 쓰다. 예상 이상으로 적의 공격에 괴로워하고 있다.


  “조금 더 끌어올 수 없겠습니까? 그러는 편이 적을 혼란하게 만들기 쉽고, 역습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만.”

  내 의견을 각하한 건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아니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었다.


  “유감이지만 무리다. 카르나프 남작과 하일만 자작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아까 전부터 예비를 보내달라고 비명처럼 구원요청을 하는 참이었다.”

  공작도 총사령관도 표정이 괴롭다. 쫓기고 있는 것이다. 예비를 내놓으면 적의 좌익을 공격할 수 없다. 내놓지 않으면 진형이 붕괴한다. 질서를 갖춘 행동 따위 할 수 없어진다.


  “알겠습니다. 적이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온 시점에서 공격합니다.”

  내 말에 공작과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끄덕였다.

  “음. 부탁하네. 페르너. 그리고 실수로라도 아군을 쏘지 말게나.”

  “예.”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1:00. 그라이프스 함대 기함 비스바덴.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이제 곧 적 우익, 가이에스하켄 사정거리에 들어옵니다.”

  “가이에스부르크에게서 입전입니다. 10분 전.”

  오퍼레이터의 말에 합교의 공기는 한 순간 긴장을 높였다. 단 그 긴장감에는 불안 외에도 희망도 있겠지. 모두의 표정에는 기대하는 기색이 있다.


  “앞으로 5분에 좌익에 대피명령을 내려라. 틀리지 마라. 5분 전이다.”

  내가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리자 프펜더 소장이 질문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괜찮겠습니까? 조금 시간이 적다고 생각합니다만.”

  “5분으로 충분하다.”


  저도 모르게 엄한 어조가 됐다. 가이에스하켄은 미끼인 거다. 한 척도 격침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페르너 준장에게 말하는 걸 이 남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공작도 아군 희생자를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만만찮은 적보다 무능한 아군이 훨씬 신경에 거슬린다…….


  내가 불쾌하다는 걸 이해했겠지. 프펜더 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났다. 클레이머 대장도 아무 말 없이 대기하고 있다. 어색한 분위기가 생기지만 별 수 없다. 나머진 시간이 지나는 걸 기다릴 뿐이다.


  “앞으로 5분입니다! 좌익에 대피명령을 내립니다!”

  “서둘러라!”

  오퍼레이터가 앞으로 5분이라고 고했을 때, 난 슬슬 기다리다 지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아직 5분 지나지 않았나?’하고 오퍼레이터에게 소리칠 참이었다.


  “아군 좌익, 대피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적 우익도 대피행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었는데도 적은 냉정하다. 이쪽의 행동을 보고 가이에스하켄이 오리라 판단했다. 이래서야 가이에스하켄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주는 건 힘들다.


  역시 가이에스하켄은 결전병기에는 부족하다. 그건 요즘 최근 이제르론 요새 공략전을 보면 안다. 반란군은 토르 해머를 극히 경계하고 있다.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일은 없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인가…….


  아군을 희생할 각오가 없으면 적을 유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클라이스트나 바르텐베르크도 틀리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아군사살’의 오명을 받았지만, 적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었다.


  화면은 대피행동을 하는 적, 아군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비추고 있다. 요새의 한 점이 급속히 새하얗게 빛났다. 그것과 동시에 적 아군의 대피행동에 박차가 가해졌다.


  가이에스하켄의 발사를 기다리고 있던 내 귀에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적 좌익, 후퇴합니다!”

  “!”


  말도 안 되는. 무슨 일이냐. 어째서 지금 후퇴하나! 페르너 준장이 우리들을 희생해서라도 일격을 적에게 가하리라고 메르카츠 제독은 판단했나? 아니면 만일을 위해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후퇴했나? 하지만 이대로 두고 보면 적을 놓치고 만다!


  “적 좌익에 예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후퇴하고 있습니다!”

  후퇴하고 있다……. 이쪽의 움직임을 읽은 건 아니라는 건가. 그럼 취할 수는 하나다! 망설이지마라.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전군에 명령, 반격하라!”

  “예.”

  “폴겐 백작, 발데크 남작에게 전하라. 가이에스하켄 발사 후, 적 좌익 부대의 측면을 공격, 분쇄하라!”

  “예.”


  내가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새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에너지파가 우주를 찢었다. 반격 개시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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