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2월 2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근처까지 왔다. 하긴, 요새 그 자체는 아직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다. 적도 이쪽이 보이지 않겠지만, 요새 근처까지 왔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적의 정찰부대와 몇 번인가 접촉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다. 접근할까. 아니면 끌어낼까. 어쨌든 요새 근처에서의 전투는 그다지 좋지 않다. 언제 요새 주포, 가이에스하켄을 맞을까 걱정하며 싸우는 건 그다지 좋은 싸움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을 끌어내어 싸울 수밖에 없지. 저걸 하는 수밖에 없나……. 원작에서 보인 라인하르트의 도발행위, 하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지. 그거. 아무래도 너무 안하무인하다. 내 감각에서 보자면.


  라인하르트는 저런 성격이니까 타인을 모욕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내겐 무리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패라도 하면 무참하고,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뭐, 원작에선 효과가 있었고. 해볼 가치는 있겠지만……. 다른 녀석에게 시킬까. 내가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뤼네부르크라든가가 잘 할 것 같고, 로이엔탈도. 비텐펠트도 가능하겠지. 의외로 메크링거 쯤이 좋을지도 모른다. 품위 있고 신랄하게 수염이라도 꼬면서 하면 지릴 것 같다.


  현실도피를 해도 별 수 없지. 일단 해볼까. 헌데, 어떤 식으로 도발해야 할까…….


...


제국력 488년 2월 25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토벌군이 근처까지 왔다고 한다. 변경성역을 평정하고 있었을 터인 별동대도 같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단 이쪽을 평정하려는 것 같다. 리텐하임 후작이 전사했기에 적은 기세를 타고 있는 거겠지. 그 기세를 그대로 이쪽으로 부딪치려 하고 있다.


  “공작 각하. 적군에게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오퍼레이터가 긴장에 찬 목소리를 냈다.

  “화면에 투영하라.”


  대회랑의 스크린에 발렌슈타인이 나타났다.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다. 그 웃음을 묘하게 그립게 느끼는 건 왜일까. 그러고 보면 이 남자의 얼굴을 벌써 몇 개월째 보지 못했다. 언제나 있는 것이 없으면 진정하지 못한다는 건 이런 건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에 쓴웃음이 뜨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힌 겁쟁이에 소심한 귀족들에게 고합니다. 경들에게 추호라도 용기가 있다면 요새에서 나와 정정당당하게 결전에 임하세요. 하긴, 나약한 여자아이들을 납치하는 것 정도밖에 못하는 경들에게 전쟁 따위 무리였죠. 참.”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 배후에서 귀족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네 놈, 애송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조용하라!”


  발렌슈타인. 경의 말대로다. 이 정도의 도발에 흔들리는 자들 밖에 없으니. 싸움이라니 도저히 무리다. 다른 이가 없었으면 큰 목소리로 경에게 동의했겠지. 하긴, 그런 바보들을 이끌고 싸워야만 하다니 운명의 장난이로군.


  “힐데스하임 백작이나 라트부르흐 남작, 세츨러 자작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무슨 무참하고 무능한지! 역사에 남을 우열함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얌전히 투항하는 편이 좋겠죠. 항복하면 죽이지 않을 테고, 살아가는 데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도 드립니다.”


  “말도 안 되는. 우리들에게 물건을 베풀겠단 건가. 우쭐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소란하지 말라 했잖은가!”


  “일도 드리겠습니다. 그렇지요. 폐하의 장미 정원을 돌보는 건 어떻습니까? 폐하를 곁에서 섬길 수 있는 겁니다. 당신들에게 있어서 명예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겠죠. 하지만 장미가 시들면 사형이니까 주의력이 산만한 당신들에겐 무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쿡쿡하고 웃었다. 배후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뭐, 다른 일도 있으니까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숨은 하나 밖에 없으니까 잘 생각해서 행동해주세요. 무의미하게 고집을 부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화면에서 발렌슈타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쿡쿡하고 웃고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러한 말, 해두게 놔둬서 좋겠습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출격하여 우리들의 힘을 보여주지요!”

  “출격합시다!”

  젊은 귀족들이 머리에 피가 올라 다가왔다.


  “소란하지마라! 이 정도의 도발에 흔들려서야 어떻게 하겠나!”

  “하지만.”

  “모르겠는가! 발렌슈타인은 우리들을 여기서 끌어내려는 거다.”


  내 말에 젊은 귀족들이 입을 닫았다. 하지만 표정에는 아직 불만이 있다.

  “아이들 장난 같은 도발이다. 발렌슈타인은 지혜자라 생각했으나, 이 정도라니……. 대단치 않군. 핫핫핫.”


  내가 웃으니 겨우 귀족들도 흥분을 삼키고 웃기 시작했다. 성가신 일이요. 아군을 위로하기 위해 웃고 싶지 않아도 웃을 수밖에 없으니……. 시야 한 편에 그라이프스가 어렴풋이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


제국군 488년 2월 2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통신을 끝내고 한숨을 내쉬니 짝짝하고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니 뤼네부르크가 히쭉거리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 자식, 뭐가 재밌어? 놀리는 거냐?


  “이야, 꽤나 재밌는 볼거리였습니다.”

  “어차피 제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뤼네부르크 중장이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뤼네부르크가 웃었다.


  “아니아니, 소관 따위가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각하가 싸움을 받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싸움을 거는 건 훨씬 대단하군요. 놀랐습니다.”

  “…….”


  진심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발트하임과 슈마허도 끄덕이고 있다. 의외로군. 난 그렇게 싫은 녀석이 아니라고. 발레리라면 알아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를 찾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그 곁에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남작부인이 있다. 난 주변에서 이해받고 있지 않다. 고독할 따름이다.


  안되겠군. 침울해할 때가 아니다. 기분을 고치고 명령을 내렸다.

  “미터마이어 제독에게 연락. 귀족연합군을 도발하라. 적이 공격해왔을 경우엔 가능한 한 꼴불견으로 도망치도록.”

  “예.”


  미터마이어라면 잘 해주겠지. 뭐라 해도 원작에서도 귀족연합을 무지막지하게 도발했으니까. 일단 3일에서 4일인가. 그 정도는 미끼를 계속 뿌릴 필요가 있다. 이번 달 말까지 다음 달 초순이 고비다.


  “면목 없습니다. 적은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화면에는 면목 없다는 듯이 보고하는 미터마이어가 나와있다. 그가 도발행동을 시작하고 오늘로 4일이 지났지만, 귀족연합은 꿈쩍도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외다.


  “고생하셨습니다. 미터마이어 제독. 적도 필사적인 겁니다. 그렇게 간단하겐 되지 않겠죠.”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서둘러 참았다. 면목 없어하는 미터마이어의 앞에서 할 일이 아니다. 적이 물지 않는 건 그의 책임이 아니다. 침울하게 만들 일은 해선 안 된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띠웠다.


  “내일은 어떻게 합니까? 계속 합니까?”

  미터마이어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 없다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헌데,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내일은 조금 취향을 바꾸도록 하죠.”

  “취향을 바꾼다고 하신다면?”

  “뭐, 그건 내일의 즐거움이라는 걸로 해둡시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 미터마이어의 수고를 치하하고 통신을 끊었다. 이런이런.


  미터마이어와의 통신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뤼네부르크가 말을 걸었다.

  “예상외, 입니까? 저만큼의 열변이 쓸모없다니.”


  기쁘다는 듯이 말하지 마라. 이 자식.

  “미터마이어 제독 때문이 아닙니다. 제 생각이 너무 물렀던 거겠지요. 혹은 제가 싸움 거는 것이 서툴렀든지. 아마도 둘 다겠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뤼네부르크는 쓴웃음을 띠웠다.


  미터마이어를 감쌀 생각은 없다. 원작에선 그는 이 시기, ‘질풍 볼프’라 불리는 용장으로서의 이름을 확립하고 있지만, 이 세계에선 아직 거기까지의 명성은 없다. 적에 대한 임팩트가 약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코르프트 대위의 사건이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무리더라도 젊은 귀족이라면 그의 도발을 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의도가 빗나간 것 같다. 내 나쁜 버릇이다. 아무래도 원작 지식을 끌어다 쓰는 일이 많다. 이 세계는 원작과 다르다는 걸 마음에 새겨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크게 다친다.


  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쪽이 밀고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적이 생각하는 대로다. 저쪽은 우리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건곤일척의 결전을 하려는 거다. 거기에 순순히 끌려가게 된다.


  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꽤 격전이 되겠지. 격렬한 싸움이 된다. 궁리가 필요하군.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선 궁리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내일은…….


...


제국력 488년 3월 1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각하. 적 함대가 왔습니다.”

  “정취가 없는 일입니다. 오늘로 5일 연속이 아닙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정말이지. 발렌슈타인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젊은 귀족들이 조소한다. 지금이니까 조소 할 수 있는 거지, 첫날엔 적이 왔을 땐 출격하겠다고 숨을 헐떡이는 것을 말리는 게 쉽지 않았다.


  적의 함대사령관, 미터마이어 대장은 코르프트 대위의 건도 있다. 클롭슈톡 후작의 반란진압에 참가한 녀석들의 격앙은 굉장했다. 그들이 미터마이어를 조소할 수 있게 된 건 어제쯤부터다.


  “적 병력, 약 3만 척. 2개 함대입니다.”

  어제의 두 배인가. 단순하게 병력을 늘렸을 뿐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 갑자기 그 병력으로 공격할 일은 없겠지만, 발렌슈타인.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2개 함대라면 우리들이 도발에 응하리라고 생각했나?”

  “어차피 어리석은 평민인 거다. 별 수 없어.”

  오퍼레이터의 말에 주변의 귀족들이 조소한다.


  “적의 지휘관은 알 수 있는가.”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신경쓸 필요 없네. 어차피 2개 함대인 거다.”

  그라이프스는 귀족들의 조소를 신경 쓰지도 않고 화면을 보고 있다. 그도 뭔가를 느낀 거겠지. 아니면 당연한 조심인가.


  “전함 베이오볼프, 확인했습니다. 1개 함대는 미터마이어 제독입니다.”

  “남은 하나는?”

  “잠시 기다려주세요.”


  오퍼레이터의 답에 그라이프스가 초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변의 귀족들은 뭘 서두르고 있냐는 듯이 모멸을 담은 표정으로 그라이프스를 보고 있다.


  “이, 이건.”

  “침착해라! 누구냐!”

  오퍼레이터의 당황하는 어조에 그라이프스가 반응했다.


  “총기함 로키를 확인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발렌슈타인 원수의 직할함대입니다!”

  “틀림없나!”

  “틀림없습니다! 화면에 확대합니다.”


  주변이 웅성거리는 와중, 화면에 칠흑의 함선이 나타났다. 틀림없다. 총기함 로키다. 가느다란 함수와 매끈한 함체. 지금까지의 제국군 표준전함과 명백히 함형이 다르다.


  대회랑에 침묵이 떨어졌다. 모두 불안하다는 듯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이 불안이야 말로 귀족들의 본심이다. 지금까지 조소하거나 출격을 구했던 건 허세에 불과하다. 그걸 증명하는 듯이 젊은 귀족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출격이다. 지금이야말로 발렌슈타인에게 우리들의 실력을 보여줄 때다!”

  “그래. 출격이다!”

  “침착해라. 지금 출격해도 적이 도망칠 뿐이다. 어떤 의미도 없어.”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침착해라! 그라이프스. 경의 의견을 듣고 싶다. 발렌슈타인이 스스로 최전선에 나온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주변의 시선을 맞으며 그라이프스는 스스로의 대답을 확인하는 듯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도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미끼가 되어 이쪽을 격발하려는 거겠죠.”

  그라이프스의 말에 출격을 외친 젊은 귀족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겠지. 달리는?”

  “아마도 이쪽이 도발에 응하지 않으리라 보고 자신의 눈으로 우리들을 확인하러 온 거겠죠.”


  “확인하러 왔나……,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대군을 가지고 공격하러 올 심산으로 보입니다.”


  그라이프스의 말에 대회랑의 공기가 긴박해졌다.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누구나가 결전의 때가 왔다는 걸 안 것이다. 자연히 모두가 화면에 비친 로키를 바라봤다. 칠흑의 전함을…….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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