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3월 4일 3: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적 함대는 이미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갔다. 아군은 사령장관의 명령으로 사정거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각 함대 중에는 병행추격에 의한 혼전을 요청하는 함대도 있었지만, 사령장관은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몰아붙이면 적은 아군사살도 망설이지 않을 거라며…….


  “각하. 적 함대의 대부분이 요새에서 떨어져갑니다.”

  발트하임 참모장이 놀랐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화면에는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향하는 함대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서 멀어지는 함대가 보이고 있다. 요새에서 멀어져가는 함대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휘관석에 앉아있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지긋이 화면을 보고 있다가 한 번 끄덕이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참모장, 루츠, 바렌,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제독에게 명령을. 전장을 이탈하는 함대를 추격. 그들이 오딘으로 향하면 격파하라.”

  “예.”


  “그들이 이제르론, 페잔을 향한다면, 그걸 확인한 시점에서 추격을 중지하라. 또한 추격부대의 총사령관은 코르넬리아스 루츠 제독에게 맡깁니다.”

  “예.”


  발트하임 참모장은 한 순간 의심쩍은 표정을 보였지만,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에 맞춰 오퍼레이터가 루츠, 바렌,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제독에게 명령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상한 명령이다. 이제르론, 페잔을 향한다면 도망치게 하라는 듯이 들린다.


  “각하. 괜찮은 건가요? 그들을 도망치게 해서.”

  “상관없습니다. 남작부인. 오딘으로만 가지 않으면 문제 없어요.”

  “하지만 반란군에 합류하면 성가신 일이 되지 않겠나요?”


  걱정하는 표정으로 남작부인이 물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괜찮을까?

  “반란군에 합류하면 두 번 다시 제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많은 병사들은 그렇게 되기 전에 항복을 선택하겠죠. 반란은 일으켜도 제국을 버리는 일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이제르론 요새로 가는 건 극히 일부분의 함대일 겁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남작부인이 날 보는 걸 알 수 있다. 나라를 버린다. 그게 어떤 것인지 아는 건 이 함교에서 나와 뤼네부르크 중장뿐이다. 타인의 눈이 없으면 질문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라를 버린 건 오직 하나, 사령장관을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마음은 흔들리지 않지만, 타인에게 말할 일도 아니다. 힐끔힐끔 때때로 날 보는 남작부인의 시선이 성가셨다. 사령장관이 화면을 보고 있다. 나도 남작부인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듯이 화면을 지켜봤다.


  10분 정도 지나자 추격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하. 추격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의 함대는 어떻게 합니까?”

  발트하임 참모장이 사령장관에게 질문했다.


  참모장은 요새를 공격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사령장관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전승의 흥분이 아직 함교에 풍기고 있는 것이다. 모두 호전적이 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사령장관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각 함대는 지금 상태로 대기. 적이 항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공격해봐야 오히려 적을 자폭하게 만들 뿐입니다. 필요 이상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적이 항복하지 않을 경우엔 어떻게 합니까?”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발트하임 참모장을 봤다. 온화하고 침착한 눈이다. 사령장관에게 있어서 전투는 이미 끝난 걸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엔 그때 또 생각해보도록 하죠.”

  “예에.”


  사령장관의 대답에 발트하임 참모장은 독기가 빠진 듯이 소리를 냈다. 그게 웃겼던 걸지도 모른다. 사령장관은 쿡하고 웃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모장. 전 조금 지쳤기에 탱크베드에서 1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겠습니다. 나머진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함교에서 나갔다. 그 뒤를 뤼네부르크 중장이 쫓는다. 변함없이 과보호라니까.


...


제국력 488년 3월 4일 4:0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기함 베를린에서 내려 지친 몸을 채찍질하며 요새사령실로 간다. 뒤에서 슈트라이트, 안스바하가 따라왔다. 사령실에 들어가니 페르너들이 경례하며 마중했다. 어딘지 모르게 쑥스러웠지만, 답례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수고하셨습니다.”

  “페르너. 역시 내겐 무리였던 것 같다.”

  그걸로 침묵했다. 아무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제 자신의 신변을 처리한다. 그 뿐이다.


  “아버님.”

  “백부님.”

  엘리자베트와 사비네가 우물쭈물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이런. 딸들 앞에서 패하는 모습을 보였는가. 한심한 일이다.


  “엘리자베트, 사비네……. 미안하군. 지고 말았다.”

  “아뇨. 아뇨. 그런 건 상관없어요. 그보다 다들 너무해요. 아버님을 버리고 도망치다니…….”


  엘리자베트가 몸을 떨면서 도망친 자들을 비난했다.

  “그렇지 않다. 엘리자베트. 적어도 그라이프스는 달라.”

  내 말에 엘리자베트, 사비네만이 아니라 페르너들도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라이프스에게 도망치라고 부탁한 거다. 이 이상 설령 요새에 숨어 있어도 패배하는 건 정해져있어. 그러나 사람에겐 체면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다. 알고 있어도 도망칠 수가 없단다. 이대로 요새에 머물러 있으면 마지막엔 비참한 꼴을 당하겠지. 너희들도 휘말리게 만든다. 그러니 그라이프스에게 도망쳐 달라고 부탁한 거다. 총사령관이 도망치면 모두 도망치기 쉽겠지.”


  내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그라이프스에겐 미안한 짓을 했다. 저 자는 모두에게 비난을 받겠지. 하지만 굳이 그 오명을 짊어져줬다. 결코 잊지 말거라. 지금 우리들이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도 저 자 덕분이다.”


  페르너가 침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은 어떻게 할까요?”

  “오명을 뒤집어쓰고 도망친 거다. 항복은 할 수 없다. 아마도 망명이겠지.”


  모두 그라이프스를 생각하는 거겠지. 잠시 동안 침묵했다.

  “브러울러, 감리히. 경들은 리텐하임 후작에게서 사비네를 지키라고 명령을 받았겠지?”


  내 질문에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브러울러 대령이 답했다.

  “예.”

  “다른 건?”

  “……투항하라 들었습니다.”


  사비네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아비라는 건 생각하는 것도 모두 같은가.

  “슈트라이트, 안스바하, 페르너.”

  “예.”

  “난 경들에게도 같은 걸 명령하네. 알겠지?”

  “예.”


  “아버님. 아버님은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그런 얼굴을 하지 마라. 엘리자베트.

  “……난 이 반란의 주모자라서 말이다. 결말을 지어야만 하지.”

  “결말…….”


  불안한 딸의 표정을 일부러 눈치 채지 못한 척 했다.

  “슈트라이트. 한 시간 뒤에 항복하게.”

  “예.”

  “뒤를 부탁하지.”


  내가 개인실로 돌아가기 위해 걷기 시작하자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자베트겠지.

  “아버님!”

  “따라오면 안 된다!”


  발소리가 멎었다. 나도 발을 멈췄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딸이 우는 얼굴 따위 보고 싶지 않다.

  “이전에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겠지? 설령 반역자의 딸이라 해도 고개 숙이지 마라. 가슴을 피고 고개를 들고 살아가는 거다.”

  “……예.”

  “엘리자베트. 행복해져라. 아버지는 그것만을 바라고 있어.”


  걷기 시작했지만 이번엔 쫓아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훌쩍이는 듯이 우는소리가 들렸다. 듣고 싶지 않다. 그 소리에서 도망치는 듯이 발을 서둘렀다.


  방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끝났군. 이제야 끝났어. 나머진 자신의 뒤처리인가.”

  무심코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시 멍하니 있으니 안스바하가 방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뭔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그렇군. 술을 준비해주겠나?”

  “예.”

  “잔은 두 개 준비하게. 나와, 리텐하임 후작의 것을.”

  “리텐하임 후작의……, 알겠습니다.”


  안스바하가 잔과 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잔이 두 개, 그리고 잔에 와인을 따른다. 색깔은 적색, 아름다운 색이다. 와인이란 이렇게나 아름다운 색이었든가…….


  “달리 뭔가 준비할 것은?”

  “아니, 없네. 고생이 많았네. 안스바하.”

  “예.”


  안스바하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그걸 지켜보고 가슴께의 주머니에서 캡슐을 꺼냈다. 즉효성의 독. 고통 없이 천천히 죽을 수 있는 약이다. 이 반란을 일으킬 때 준비했다. 역시 이 약을 쓰게 되었나.


  캡슐을 입에 넣고 와인을 마신다. 나머진 죽음이 올 것을 기다릴 뿐이다.

  “리텐하임 후작. 역시 우리들은 이길 수 없었군. 그래도 문벌귀족다운 최후는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 그것만은 자랑할 수 있어.”


  다시 한 번 와인을 마셨다. 인생 최후의 와인이다. 즐기도록 하자.

  “그라이프스에겐 미안한 짓을 했지. 언젠가 발할라에서 만나 사죄해야 하리라 생각하고 있어.”


  “많은 자들이 죽었다. 문벌귀족의 긍지라는 바보 같은 것을 위해서 말이야.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네. 유일한 구원은, 딸들을 휘말리게 하지 않고 끝났다는 것뿐인가. 많은 이들이 죽고 그것만이 남았다. 죄 깊은 일이다. 역시 우리들은 죽어야만 하겠지.”


  조금 졸리기 시작 했나…….

  “우리들은 어디서 틀렸을까. 저 자를 엘리자베트의 사위로 삼자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했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군.”


  눈을 뜨고 있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무래도 끝이 찾아온 것 같다.

  “후작. 조금 졸리는군. 미안하지만 쉬도록 하겠네. 발할라에서 만나지.”

  눈을 감았다.


  ……소리가 들려온다. 엘리자베트의 즐거운 웃음소리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얼굴도 보인다. 아말리에와 크리스티네, 리텐하임 후작, 사비네도 있다. 플레겔, 경도 있는가. 오딘의 저택인가? 거기에 모두 모여있다.


  발렌슈타인. 경도 있는가. 여전히 술은 마실 수 없는가? 곤란한 녀석이다. 술을 마시지 못해 곤란하고 있는 발렌슈타인을 보며 모두가 웃고 있다. 겨우 발렌슈타인이 술을 마셨지만 고개를 돌려버린다. 엘리자베트가 서둘러 등을 쓰다듬는다. 그 모습을 모두가 부드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꿈이로군. 아름다운 꿈이다…….


...


제국력 488년 3월 4일 6:0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토벌군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진주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대회관에 있는 듯하다. 나와 사비네는 슈트라이트 준장, 페르너 준장, 브러울러 대령, 감리히 중령과 함께 대회관으로 향했다. 안스바하 준장은 아버지의 방에 있다.


  대회관 정면에 사령장관이 서 있다. 그리고 많은 장성들이 좌우로 나눠져 늘어서있다. 사령장관의 곁으로 가기 위해선 그들의 앞을 지나야만 한다. 그들이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서 싫었지만, 그 이상으로 공포감이 몸을 감싼다. 사비네도 같은 마음이겠지. 내 손을 잡았다.


  앞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할 때였다. 사령장관이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흑일색의 사령장관이 천천히 다가온다. 공포 때문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칠 뻔했다. 필사적으로 참자 몇 미터정도 남겨두고 사령장관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좌우의 군인들이 모두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이제부터 오딘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머님들, 그리고 폐하께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수…….”


  “그리고 아버님들에 대한 일, 아쉽게 생각합니다. 별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일어섰다. 그와 맞추는 듯이 좌우의 군인들이 일어섰다.

  “메크링거 제독. 두 분을 오딘으로 모십시오.”

  “예.”

  “안톤. 공작 곁으로 날 안내해줘.”

  “예.”


  아버님 곁으로? 난 저도 모르게 사령장관과 페르너 준장을 봤다. 내 모습을 눈치 챈 걸지도 모른다.

  “안심하십시오. 공작의 시신도 메크링거 제독에게 부탁할 것입니다. 결코 모욕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사령장관은 날 안심하게 하려는 듯이 말하고 페르너 준장과 함께 대회관을 나갔다. 군인들이 모두 우리들을 두고 사령장관을 따르는 와중, 몸가짐이 말쑥한 군인이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에르네스트 메크링거입니다. 두 분을 오딘까지 모시겠습니다. 소관의 함선에 승함하시게 됩니다. 모쪼록 이쪽으로.”

  메크링거 제독이 걷기 시작한다. 나와 사비네는 서로를 돌아보고 그 뒤를 따랐다.


...


제국력 488년 3월 4일 6:0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에리히 발렌슈타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개인실 앞까지 오자 거기엔 안스바하 준장이 있었다. 한 순간이지만 원작이 생각나서 불안해졌다. 괜찮다. 이쪽은 엘리자베트를 확보하고 있다. 날 죽이면 저 두 사람의 입장이 위험해진다. 안스바하가 그런 짓을 하진 않겠지. 그리고 공작도 그런 걸 명령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안스바하가 경례했다. 답례를 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쪽입니다.”

  하고 그가 답하고, 방의 문을 열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뤼네부르크가 먼저 들어가 안을 확인했다.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겠지.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축 늘어져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테이블에는 와인병과 잔이 두 개 있다. 아마 독을 마시고 자살한 거겠지.


  공작은 조용히 죽었을까. 아니면 괴로웠나. 공작의 얼굴을 들어 확인해볼까 생각했지만 그만뒀다. 평안하든 괴로워하든 원통하게 죽었을 것이 틀림없다. 가족을 남기고 죽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내 양친의 죽음을 보면 알 수 있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


  “안스바하 준장.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은 메크링거 제독이 오딘으로 모십니다. 공작의 시신도 함께 옮길 생각이니 준비를 부탁합니다. 준장도 오딘으로 동행해주세요. 안톤. 경도다.”

  “예.”


  페르너는 예의를 차리고 답했다. 이전처럼 스스럼없이 답하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을 느꼈다. 지금뿐이다.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황제폐하의 사위입니다.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해주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변경성역을 평정하면 반란은 끝이다. 지금부터 전군을 평정으로 보낼 수 있다. 예정대로 이번 달 말에는 내란 종결을 선언할 수 있겠지…….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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