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력 486년 7월 23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고 이제 열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 살고 일주일이 지났다. 솔직히 말해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지쳤다. 혼자 살기 시작해서 이제 8년. 거기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갑자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내가 에리히 발렌슈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이 저택에서 방으로 돌아가 혼자 있을 때뿐이다. 다른 장소에선 혼자 있을 수 없다. 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모두 그렇게 대한다. 페르너마저 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라고 부른다. 쓸쓸할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공작 저택의 사람들 모두 내게 호의적이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내게 호의적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공작부인도 내게 호의적이다. 의붓이긴해도 아들이 생긴 게 기쁜 것 같다. 내게 코코아를 타주고 기뻐한다. 남자가 코코아를 기쁘게 마시는 것이 재밌는 것 같다.
곤란한 것은 엘리자베스다. 가끔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붉힌다. 그만두라고. 내가 뭔가 나쁜 짓을 한 것 같잖아. 덕분에 그걸 보고 페르너를 시작하여 모두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공작 부처도 마찬가지다. 딸과 의붓아들을 보고 웃는 부모란 건 과연 어떨까. 어느 의미론 학대가 아닌가? 이건.
지금의 나는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군에서 계급은 상급대장. 직급은 군무성 고등 참사관, 우주함대 최고참모회의 상임위원으로 되어 있다. 비공식으론 차기 원정군 총사령관이다.
원정군의 규모는 2만척이라고 한다. 2만척, 어중간한 숫자지. 1개 함대보다 크지만, 누가 봐도 대군이라곤 할 수 없다. 상대가 2개 함대 이상 동원하면 그것만으로 불리해진다. 총사령관인 내 능력을 시험하겠단 거다. 꽤 엄한 시험이긴 하지만.
참모장에는 메크링거 소장을 가져왔다. 부사령관에는 클레멘츠 소장. 분함대 사령관은 봐렌, 루츠, 아이제나하, 비텐펠트다. 뭐, 지금 시점에서 뮐러나 로이엔탈, 미터마이어를 뽑을 수 없으니까. 그나마 베스트 멤버에 가깝지 않을까?
사령부에는 메크링거 외에도 부참모장에 슈트라이트 준장, 참모에 베르겐그륀, 뷔로 대령이 배속되었다. 슈트라이트 준장이 배속된 것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의 의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인 듯하다. 바로 곁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을 두고 싶은 것 같다.
모두 내게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곤란해하고 있다. 귀족도 군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날 적대시하고 있던 녀석들의 곤란함은 꽤 심하다. 뭐, 나 스스로 곤란해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평소 때와 같은 건 제국군 3장관이나 리히텐라데 후작, 리텐하임 후작 등 일부뿐이다.
콩콩하고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에리히님.”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온 것은 엘리자베스였다. 조금 뺨이 상기되어 있다. 부탁한다고. 날 곤란하게 하지 마.
“무슨 일이죠?”
할 수 있는 한 부드럽게 말을 거니 엘리자베스는 내게 다가와 손에 든 편지를 내밀었다.
“?”
“에리히님에게 이게 도착했어요.”
엘리자베스로부터 편지를 받아 개봉한다. 한번 읽고 뭐가 일어났는지, 일어나려 하는지 알았다. 이런이런. 이것이 내게 오는가…….
“엘리자베스. 아버님은 지금 어디에?”
“거실에 계셔요. 아버님에게 도착한 편지였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아버님에게도 보여드리는 게 좋겠네요.”
...
■ 제국력 486년 7월 23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라인하르트 폰 뮈젤.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부터 급히 저택으로 와달라는 연락이 있었다. 지금까지 파티 등등으로 몇 번 이 저택에 온 적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많은 참가객 중 한명이었다. 이번처럼 당주로부터 홀로 불린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예의 건에 대해선 아직 회답하지 않았다. 황제는 범용하지 않았다. 키르히아이스에게도 황제와의 회담 전부를 말했지만, 그도 놀라고 곤란해했다. 아마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협력하는 것이 옳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황제가 되기를 목표로 해왔던 것이다. 그것을 버릴 수 있을까……. 하지만 실패하면 누님에게까지 누가 미친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내가 황제가 되는 건 꽤 힘들다……. 문제는 차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출병이겠지. 어떤 결과가 될는지. 거기에 따라 아직 앞은 알 수 없다.
응접실로 안내 받고 들어가니 거기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대공, 그리고 리텐하임 후작이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빙긋 미소지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날 맞이했다.
“뮈젤 대장. 바쁘신 도중에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뇨.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럼 이리로.”
“예. 실례합니다.”
아무래도 대하기 힘들다…….
소파에 앉아 세 사람과 대면한다. 묘한 느낌이다. 이 네명이 이런 느낌으로 대면할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대공이 말했다.
“뮈젤 대장. 잘 와주었네. 조금 귀찮은 일이 일어나서 말일세. 경도 관련된 중요한 일일세.”
“귀찮은 일? 제게 관련된 일입니까?”
내 질문에 대공이 무겁게 끄덕였다. 그리고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본다. 나도 따라 공작을 보니 공작은 담담히 편지를 건냈다.
편지를 받았다. 이미 밀봉은 풀려 있었다. 이미 눈앞의 세 사람은 봤다는 건가. 그리고 내게 관련된 일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체 뭐지? 안의 편지를 보니 극히 짧은 문장이 써 있었다.
“궁중의 ㅂ부인이 ㄱ부인을 해하려는 계획이 있음. 조심하시길.”
누님? 베네뮌데 후작부인인가…….
“이건?”
“아까 에리히에게 온 편지일세. 어떻게 보는가?”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누님을 해하려 한다…….”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어째서 공작에게 이 편지가?”
“아마도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막고 싶은 거겠죠. 그리고 내가 뮈젤 대장과 친하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공작에게? 내게가 아니라? 어쩐지 맘에 들지 않았다. 누님의 일이라면 내게 편지가 와야 할텐데.
“그래서 공작에게 편지가?”
“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라면 궁중에도 영향력을 가집니다. 이 문제는 궁중의, 그것도 미묘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거겠죠.”
과연. 나는 궁중에는 영향력이 없다. 그래서인가……. 맘에 들진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에게도 말했습니다. 이 건에 대해선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대장은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뮈젤 대장에게 있어서 백작부인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장이 움직이면 귀족들 안에선 대장이 백작부인을 이용하여 궁중에 개입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그건 대장에게 있어서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공작이 하는 말은 알겠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작은 어쨌든 대공은, 리텐하임 후작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에게 있어선 누님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내가 침묵하자 대공이 입을 열었다.
“불안한가? 뮈젤 대장.”
“아뇨. 그렇지는.”
“경은 아무래도 내가 백작부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
“……솔직히 말해 불안이 있습니다.”
그 말에 대공은 리텐하임 후작과 얼굴을 마주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나도 리텐하임 후작도 호의는 가지고 있지 않아. 하지만 백작부인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네.”
“…….”
묘한 말이다. 호의는 없으나 필요성은 인정한다? 다시 말해 누님을 평가하고 있다는 건가? 대공이? 리텐하임 후작이?
내가 곤란해하니 리텐하임 후작이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혼란해하는 것 같군. 알겠나? 뮈젤 대장. 보통 폐하의 곁에 있는 총희는 그 영향력 때문에 우리들 귀족에게 있어서도, 정부, 군에 있어서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누님도 눈엣가시라고.”
“서두르지 말게나. 뮈젤 대장. 귀족, 정부, 군은 때로 적대하기도 하고 때로 협력도 하며 제국을 지켜왔네만. 총희의 존재는 그 조화를 혼란해하길 뿐일세. 하지만 백작부인이 폐하를 이용하여 권세를 휘둘렀던 적이 있었나? 정부를 혼란에 빠뜨린 적이 있었나?”
“아뇨. 그런 일은 없습니다. 누님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또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대공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일세. 혹시 부인을 끌어 내린다면 다른 누군가가 총희가 되겠지. 그 여성이 권세를 휘두르지 않으리라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다시 말해, 백작부인은 우리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총희일세. 부인을 지키고자 하는 건 그 때문일세.”
과연. 누님이 권세를 휘두르지 않았던 것이 누님의 몸을 지키고 있다. 다른 어떤 총희보다도 누님 쪽이 모두에겐 편리하기 때문인가. 혹은 대공들에게 있어선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복권은 기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가. 환상의 황후인가. 그것이 있었는가…….
“환상의 황후입니까…….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복권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에게 있어서 귀찮은 일이 됩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적으로 삼는 것으로 우리들은 협력할 수 있다. 그런 거지요?”
내 말에 브라운슈바이크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얼굴을 마주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오해가 있는 듯 하네만. 우리들은 후작부인의 자식을 죽이지 않았네.”
“그 말대로입니다. 뮈젤 대장. 아버님이나 리텐하임 후작이 후작부인의 아이를 죽일리 없습니다…….”
“그럼 정말로 사산이라는 겁니까?”
“……아뇨. 그럴리도 없어. 살해된 것은 틀림없겠지.”
대공도 리텐하임 후작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작부인이 낳은 아이는 살해당했다.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대공의 무실을 믿고 있다. 무슨 말인가?
“? 그럼…….”
“나도 리텐하임 후작도 무관계일세. 그 건은 달리 진범이 있네.”
알 수 없다. 다른 진범이 있다? 그럼 어째서 그 범인을 잡지 않는가? 자신들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을 어째서 방치하는가. 있을 수 없다. 뭔가 이상하다. 아니면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가? 대체 뭘 놓치고 있는가. 혼란해하는 내게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했다.
“죽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태어난 남아를 죽인다는 것은 황위에 야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엔 황태자 루드비히 전하가 살아계셨습니다. 아무리 막 태어난 아이를 죽여도 황위에는 닿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두 가문에 태어난 것은 여아. 게다가 아직 어립니다…….”
“…….”
“이래서야 황태자 루드비히 전하의 경쟁상대도 되지 못합니다. 아버님도 리텐하임 후작도 이 상태에서 자칫 잘못하면 대역죄인이 될지도 모르는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과연. 확실히 일리있다.
“끄럼 대체 누가…….”
내 질문에 대공들은 얼굴을 마주한다.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이 끄덕인다. 그걸 보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한다.
“젊은 측실이 남아를 생산했을 경우. 가장 곤란한 건 노회한 본처 사이에서 태어난 후계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다시 말해, 황태자 루드비히가 범인이라는 건가. 놀라는 내게 공작이 계속 말한다.
“남아가 태어나면 반드시 측실과 손을 잡고 전하를 배척하려는 세력이 나오겠죠. 게다가 루디비히 전하의 경우 어머님인 황후폐하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황후가 되면 단번에 그런 움직임이 나오리라 판단했겠죠. 그렇기에…….”
“막 태어난 적자를 죽였다…….”
응접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천천히 대공이 침묵을 떨치듯이 머리를 한번 젓고 말했다.
“그 사건 이후, 나와 리텐하임 후작이 비밀리에 만났네. 내가 후작에게 경이 했냐고 물으니 후작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했네. 그리고 리텐하임 후작은 내게 공작이 한 게 아니냐고 물었네. 나도 아니라고 했네.”
“…….”
대공의 말에 리텐하임 후작이 천천히 끄덕였다. 옛날을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알고 있었네. 서로 상대가 그런 짓을 할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네. 단지 만일을 위해 확인했을 뿐이지.”
“서로 하늘을 향해 한숨을 뱉었지. 대공.”
리텐하임 후작의 말에 대공이 끄덕였다.
“그 죄를 나와 리텐하임 후작에게 뒤집어 씌웠네. 어리석은 이야기지. 그 이후로 모두 루드비히 전하를 따돌리기 시작했네.”
“그건 어째서입니까?”
내 질문에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불쌍하다는 듯이 날 봤다.
“모두 범인이 루드비히 전하라는 건 바로 알았을 것일세. 그 전하가 나와 리텐하임 후작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일세. 이제 전하는 우리들의 협력을 구할 수 없게 됐네. 의형제로서 누구보다도 신뢰해야 할 존재인 우리들을 적으로 돌린 것일세. 그런 황태자에게 누가 따르겠는가?”
“…….”
그런 것인가. 그 사건으로 귀족들은 충성해야 할 존재를 잃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충성심을 향할 존재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을 선택했다. 루드비히의 죽음이 양가의 세력확대를 부른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양가의 세력은 강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태자의 죽음은 거기에 박차를 가했을 뿐이다…….
황제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알고 있었겠지. 황제는 범용하지 않다. 알았기에 제국이 내부분열하리라 생각했다. 아들이 살해된 것이 제국 붕괴의 방아쇠가 되었다. 황제는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리고 제국붕괴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그렇기에 날 세웠다……. 제국을 새로이 만들기 위하여.
증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멸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황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유감이라고도 생각한다. 부친으로서, 황제로서 프리드리히 4세는 아들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난 대체 황제에게 뭘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누님은 황제의 고통을 곁에서 계속 봐온 것일까……. 만나고 싶다. 무척이나 누님에게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황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 > 아름다운 꿈(연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9 화. 베네뮌데 후작부인(3) (0) | 2015.02.13 |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8 화. 베네뮌데 후작부인(2) (0) | 2015.02.13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6 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0) | 2015.02.13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5 화. 장미 정원에서 (0) | 2015.02.13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4 화. 마음 (0) | 2015.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