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6월 3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발터 폰 쇤코프



  "페르너 대령, 공작 각하께서 페잔의 동향을 확인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네만?"
  "그 일로 조금 곤란해하고 있습니다. 팀을 만들려고 생각합니다만 적당한 인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안스바흐 준장의 질문에 안톤이 표정을 찡그리며 답했다. 그걸 보고 안스바흐 준장, 슈트라이트 소장도 표정을 찡그렸다.

  "저택 사람으로는 안 되는 건가?"
  내가 묻자 안톤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되나. 이 저택에는 200명 이상의 고용인이 있다. 저택 유지 운영을 위한 고용인도 있지만, 나름대로 훈련, 교육을 받아 공작가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국이 개혁을 시작한 걸로 페잔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유력 상인, 유력 기업 중 몇 개가 지위를 잃고 그 대신 독립 상인, 중소 기업이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개혁이 진행되면 그 움직임은 더욱 커지겠지. 어처구니 없는 변화가 페잔에서 일어나리라 공작은 보고 있어."
  페잔인가. 공작에게 있어선 그리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 당연하지만…….

  "나도 동감이다. 아마도 루빈스키의 동향에도 영향을 주겠지. 그리고 제국에도 영향이 나온다. 그 움직임, 흐름을 재빨리 파악하기 위해선 페잔의 경제, 정치에 정통한 인물이 필요하다. 유감스럽지만 그걸 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저택에 없어."
  안톤의 대답에 안스바흐 준장, 슈트라이트 소장의 떫은 표정이 더욱 심해졌다.

  "그렇다면 페잔인이군. 당가에 연결 고리가 있는 페잔인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얼마나 신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안스바흐 준장. 루빈스키의 사주로 공작가 안에 들어와 혼란을 부추겼다간 참을 수 없어."
  슈트라이트 소장의 말에 안스바흐 준장이 "으음"하고 끄덕였다. 변함 없이 떫은 표정인 채다. 아니, 더욱 더 심해졌구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 있는 안톤 방에 나를 포함해 네 명의 남자가 모였다. 각각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있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 페르너 대령, 이 세 사람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핵심에 있는 자들이다. 세 사람 모두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공작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내게도 보이기 시작한 게 있다. 슈트라이트 소장은 대공이 공작에게 붙여준 군사면의 보좌역이다. 우주함대에 자리를 두고 있다. 안스바흐 준장은 대공의 측근이라는 색채가 강하다.

  그리고 안톤 페르너, 그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친우다. 대공과 공작, 어느 쪽에 기울어지는 일 없이 성실하게 보좌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악몽은 대공과 공작의 관계가 결렬하는 거겠지. 양자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고생이군. 이 집에는 혼자 왔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할 때마다 공작가의 사람을 써야만 한다는 거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 적도 많겠지. 발레리는 공작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아무렇지 않게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도 페잔인을 이용하는 걸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 분이라면 어떨까요?"
  안톤의 말이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분? 누구냐?
  "저 분? ……설마, 경."
  안스바흐 준장의 안색이 바뀌었다. 슈트라이트 소장도 경악하고 있다.
  "안 된다! 페르너 대령. 애당초 저 분을 제국 내에 들여보내는 일은 위험하다."
  "제국 내에 들어오는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보만이라도……."
  "안 된다!"
  슈트라이트 소장이 분을 토해내며 말했다.

  "저 분이란 어느 분입니까?"
  내가 끼어들자 세 사람이 날 봤다. 꽤나 떨떠름한 표정을 보였지만, 바로 시선을 피했다.
  "알려주실 수 없는 분일까요."
  다시 세 사람이 이쪽을 봤지만, 이번엔 성가시단 표정을 지었다. 재밌어졌다. 아무래도 지뢰를 밟은 것 같군.

  "죽은 사람이다."
  헌데, 다음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자 안스바흐 준장이 툭 내뱉으며 답했다. 변함 없이 시선은 피한 채다. 그건 그렇고 죽은 사람? 안톤을 봤지만 말이 없다. 슈트라이트 소장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나와 시선을 맞추려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인가. 묘한 이야기다. 아무래도 제국에는 죽은 사람을 써먹는 기술이 있는 듯하다. 혹은 암호명일까. 그렇다면 꽤나 폼이 나는데.

  "쇤코프 대령. 이 이상 파고들지 마라."
  "소관은 알 필요가 없다는 겁니까? 안스바흐 준장."
  꽤나 비아냥이 들어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장은 시선을 피한 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모르는 편이 좋아. 혹은 언젠가 경도 알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듯한 짓은 하지 마라. 대공도 공작도 그런 일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대공도 공작도? 두 사람도 알고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상당한 일이군.

  "알겠습니다. 파고들지 않겠습니다."
  내가 답하자 세 사람이 명백히 긴장을 풀었다. 뭐, 파고들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미안하군. 쇤ㅋ코프 대령. 하지만 말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밖으로 흘러가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거다."
  안스바흐 준장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은 반응이 없다. 부정은 아니군. 이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건가. 잠깐 동안의 침묵 후, 슈트라이트 소장이 입을 열었다.

  "재무성은 어떤가?"
  "재무성? 공무원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파견시키는 겁니까?"
  안톤이 질문하자 슈트라이트 소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면 각하께서 직접 게르라흐 자작에게 부탁했을 거다. 페르너 대령에게 명령했다는 건 비밀리에 하라는 뜻이겠지."
  "그럼?"
  "은퇴한 관료를 이용할 수 없겠냐는 거다."
  안톤이 "그렇군요"라며 끄덕였다.

  "하지만 적당한 인물이 있습니까?"
  내가 묻자 세 사람이 못미더운 표정을 지었다.
  "공작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세금이나 예산을 취급했던 인물은 안 되겠죠. 유통, 금융, 경제정책 등의 분야에서의 견식이 필요합니다만……."
  안톤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찾을 거다. ……페잔으로 사람을 보내죠. 정보원이 필요합니다. 정보가 없으면 분석도 불가능합니다."
  앞부분은 나에게, 뒷부분은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에게 하는 말이었다. 죽은 사람을 쓸 수 없으니 대신할 사람을 페잔으로 보낸다는 거겠지. 두 사람 모두 끄덕이는 것으로 안톤의 제안을 인정했다.

  "그리고 공작의 영내 시찰입니다만……."
  "포로교환 후에 실행하지. 가족이 다 함께 시찰하다록 한다, 였던가."
  슈트라이트 소장의 말에 안톤에 곤란하단 표정을 보였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소장이 "뭐가 있는 건가?"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안톤에게 말했다.

  "가장 먼저 카스트로프로 가신다고 합니다."
  "카스트로프?"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카스트로프는 공작령이 아니다. 제국의 직할령이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통치를 맡고 있다. 분명 개혁파, 개명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통치에 임하고 있을 것이다. 공작가의 영지는 아니지만 통치에 책임은 있으니 시찰은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재차 공작께 예정을 여쭸습니다만, 카스트로프의 상황을 확인하고, 개혁파 사람들을 데리고 영내 시찰로 향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카스트로프, 라파트, 브라운슈바이크, 베스타란트, 폭켄하우젠, 디첸바흐……."

  안톤이 지명을 나열하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카스트로프 외에 알고 있는 건 폭켄하우젠 뿐이다. 라파트, 베스타란트, 디첸바흐는 모른다. 안톤에게 묻자 라파트는 카스트로프 성계에 있는 유인 행성으로, 이것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위임 통치하고 있다고 한다. 베스타란트, 디첸바흐는 폭켄하우젠과 마찬가지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소유하는 유인행성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작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책임 지고 있는 유인행성을 모두 시찰하려는 것 같다.

  "영지민들과 단순한 상견례는 아니라는 건가. 영지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부족한 부분을 개혁파에게 확인시키고 싶다는 거로군. 한 지역에 5일 머문다고 해도 1개월, 이동도 포함하면 최소한 2개월은 걸린다. 지연이 생기는 걸 감안하면 3개월은 걸리겠지."
  안스바흐 준장이 신음소리를 냈다. 마음은 이해한다. 제국 제일의 중요인물이 3개월이나 제도 오딘을 떠나게 된다.

  "포로교환이 시작되는 것이 7월경, 대략 9월까지는 걸릴 거다. 그렇게 되면 시찰은 10월부터 연말까지인가……."
  슈트라이트 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연말에는 돌아오셔야만 합니다. 연시에는 폐하의 신년 인사가 있으시고, 귀족들의 인사도 있습니다."
  "어렵군. 하나나 둘 정도 줄일 수는 없는가?"

  "무리입니다. 공작은 내년은 지금 이상으로 바빠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대규모 시찰을 할 수 있는 건 지금밖에 없을 거라고."
  안톤이 부정하자 두 사람이 탄식을 내뱉었다.
  "확실히 그 말이 맞다. 어쩔 수 없군. 안스바흐 준장."
  "그래. 확실히 내년은 지금 이상으로 바빠질 것이다. 어쩔 수 없네."
  "시찰을 즐길 여유 따위 없겠군요. 엘리자베트 님도 낙담하시겠죠. 기대하고 계셨으니."
  안톤의 말에 슈트라이트 소장이 고개를 저었다.

  "참으실 수밖에 없겠지. 지금만이 아니야. 앞으로도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공작의 아내는 될 수 없어."
  안스바흐 준장과 안톤이 끄덕였다.
  "이상하군요. 공작가의 공주님에게 참으라고 하는 겁니까. 엘리자베트 님은 황손이기도 하시는데."
  조금 심술궂은 질문이었을까? 하지만 세 사람은 화내지 않았다.

  "쇤코프 대령, 착각하지 말게. 대공 각하는 이미 은거하셨기에 공작가의 당주가 아니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는 공작 각하다. 그리고 공작은 제국의 군사, 정치, 궁중에 있어 없어선 안 될 분, 엘리자베트 님도 그 점에 대해선 숙지하고 계셔야만……."
  나에게 설명한다기보단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듯한 어조였다.

  "슈트라이트 소장의 말대로다. 공작은 양자,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들은 공작을 지지해야만 한다. 어떤 의미로도 공작의 입장을 흔드는 듯한 짓은 해선 안 되는 거다. 엘리자베트 님조차 공작에게는 사양하신다, 주변에 그렇게 보이도록 해야만 한다."
  "그렇군요."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의 말을 듣고 뤼네부르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나라에선 인간관계가 중시된다. 황손이 사양한다. 그 의미는 크다.

  "뭐, 다소는 공작도 엘리자베트 님을 신경 써주셨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쪽 방면으로는 서툴기에 기대는 할 수 없습니다."
  슈트라이트 소장의 희망을 안톤이 무자비하게 처부쉈다. 다들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내 차례인가. 다소는 공작에게 어드바이스를 할 수 있겠지. 즐거움이 생겼군.



제국력 488년 6월 8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빌헬름 폰 리텐하임 3세



  "어떻게 생각하는가? 리텐하임 후작."
  "아니, 말의 의미는 이해한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 실감이 나지 않는군."
  "그렇겠지. 나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랬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 상상을 할 수 없다는 거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나와 비슷한 말을 했다.

  대공 부인과 엘리자베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크리스티네와 사비네는 아연해하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응접실에서 대공 부부, 엘리자베트, 나와 크리스티네, 사비네가 차를 마시고 있지만, 이야기가 너무 기발하여 차의 맛을 잘 느낄 수가 없다. 조금 진정해야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확실히 우주가 통일되면 오딘에서 통치하는 건 불편할지도 몰라. 페잔으로 천도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겠지."
  "그렇게 되면 나도 후작도 지리적 이점을 잃네."
  "음."
  그 말이 맞다. 우리들이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내가 황족이라는 점,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력, 무력 외에도 본거지가 오딘에 가깝다는 점에 있다. 지리적 이점을 잃으면 점점 쇠퇴하게 되겠지. 제도에 가까운 편이 번영하기 쉬운 거다. 영향력도 발휘하기 쉽다.

  "통일은 언제쯤이 될 거라 공작은 생각하고 있습니까?"
  "내정에 10년, 그 뒤 5년으로 우주를 통일한다고 말했었지."
  "그럼 15년 후입니까……."
  "앞일은 알 수 없지만. 뭐, 하나의 예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빨라질 가능성도 있어."
  대공과 대화하던 아내가 탄식을 내뱉었다. 15년인가. 그렇게 되면 천도는 늦어도 20년 이내에는 실현되겠지. 단, 통일이 된다면 말이다.

  "그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변경 개발에 나서는 건가?"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후작은 어떻게 할 건가?"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아내와 딸도 날 보고 있다.
  "……어렵군. 행성을 처음부터 개발한다고 한다면 막대한 비용과 세월이 걸릴 거야. 잘 될까라는 불안이 있어.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두면 우주가 통일되었을 때, 당가가 점점 쇠락하는 것도 사실이다. 판단하기 어렵군."
  내가 답하자 대공은 당연하다는 듯이 몇 번이나 끄덕였다.

  "지금 당장 대답을 내놓을 필요는 없겠지. 정부에서 정식 타진이 온 것도 아니니까."
  "음."
  "한 번 에리히와 대화해보는 게 어떤가? 저것에겐 그럭저럭 계산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군. 대화해볼까."
  개발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내정에 대한 것, 통일에 대한 것, 이참에 이것저것 캐묻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헌데 포로교환이 끝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다 같이 영지 시찰에 나설 생각이다."
  "호오."
  "카스트로프, 라파트, 브라운슈바이크, 베스타란트, 폭켄하우젠, 디첸바흐, ……10월에 출발하여 오딘에 돌아오는 건 연말이 되겠지."
  놀랐다. 대공은 악동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대공만이 아니다. 대공 부인, 엘리자베트도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건 사실인가?"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왔다. 크리스티네, 사비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에리히는 단순한 상견례로 끝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아. 자기 나름대로 영지를 파악하고 싶은 것 같다."
  "그렇군."
  신체가 건강하지 않다고 들었지만 꽤나 정력적이다. 하지만 3개월이나 오딘에 부재한 건가.

  "나도 카스트로프, 라파트가 어떤지 흥미가 있어. 개혁파가 지향하는 통치가 어떠한 것인지……. 당가에게 있어서도 참고가 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런가. 개혁파인가. 그게 있었지. 확실히 신경 쓰인다. 귀족도 개혁이 시작된 후로는 이전처럼 맘 편하게 살 수는 없게 되었다. 영지의 시정을 개선하고 영지민들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그건 리텐하임 후작가도 마찬가지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우리들도 그 시찰에 동행할 수 없을까? 나도 카스트로프, 라파트의 상황을 알고 싶어졌다. 어떨까? 크리스티네, 사비네."
  내가 말을 걸자 아내와 딸이 자신들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놀러 가는 게 아닌데 알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밝은 목소리였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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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5월 30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지쳤다. 거실에서의 프리 토킹 시간도 끝나고 서재로 돌아가자 피곤함이 확 몰려왔다. 조금 쉴까? 2시간 정도 가면을 취하는 것도 좋겠지. 삼단 접이식의 간이 침대를 펴서 모포 한 장을 준비하고 누웠다. 프리 토킹의 최종 결론은 변경성역 개발은 리텐하임 후작이나 정부 각료에게도 이야기하고 나서라는 거였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만이 참가하는 건 피하는 편이 좋다는 거다. 뭐,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위화감이 있네. 아니, 인식의 간극이라고 해야 할까. 원작 지식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우주는 통일해야만 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런 인식은 희박하다. 제국, 동맹, 페잔의 삼국병립이 자연스럽단 인식이 있다. 따라서 통일 후는 어떻게 될 거라는 발상이 나오지 않는다.

  변경 개발은 적극적으로 해야만 한다. 사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됐을 때에 하고 싶었지만, 양자였으니까. 좀처럼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게다가 변경에도 세력을 넓히려 하고 있다면서 지레짐작을 받는 것도 싫고……. 진심을 말하자면 이번 타진은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조금씩 힘을 잃게 될 테니까.

  원작에 있어서 마린도르프 가문은 황비 힐다의 친가지만, 라인하르트 사후에 어떻게 됐을지를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오딘에서 페잔으로 천도했다. 군대, 정부의 각 기관도 이동했겠지. 인구 이동은 몇 천 만? 혹은 억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포함하면 수억에 달하는 수준이겠지.

  그리고 인구 감소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을 거다. 오딘이 정치의 중심에 있다는 이유로 눌러붙어 있던 사람들, 상인이나 기업도 뒤따라 이동했을 거다. 그만한 숫자의 인구가 줄어들면 소비, 생산력은 꽤나 감소한다. 마린도르프 백작가는 그 영향을 그대로 받았겠지. 로엔그람 왕조 초대 황비 힐다를 배출한 마린도르프 백작가는 200년 정도 지났을 시점엔 변경의 일개 백작가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때는 변경 성역에서 죽치고 있던 클라인게르트 자작가 쪽이 더 흥성했을지도 모른다.

  꽤나 즐거운 상상이다. 피곤할 터인데 잠이 오지 않는다. 조금 더 상상을 즐겨볼까. 변경 귀족들, 평민들은 라인하르트의 초토작전 때문에 로엔그람 왕조에는 그리 호의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힐다의 후계자를 중심으로 한 제국 정부는 일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힘을 쌓은 신흥 세력이 정부에 대해 반항적인 거다. 어떤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변경의 반응과 신영토의 반응이겠지. 부정적인 반응을 상상하고 인상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로엔그람 왕조라는 건 신기한 왕조다. 정권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 좀처럼 확실하지 않다. 일단 귀족 계급에는 없다. 립슈타트 전역에서 문벌귀족을 처부쉈기 때문이 아니다. 전후,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아군으로 삼은 귀족들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힐다는 아무튼 그 외의 라인하르트에 아군이 되어준 귀족들은 실망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불만도 품었겠지. 그들은 립슈타트 전역이 권력투쟁일 뿐만이 아니라 계급투쟁이기도 하다는 점을 경시했다. 혹은 인식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럼 평민 계급에 정권기반이 있었는가? 이것도 의문이다. 확실히 내란 이래, 평민 계급의 정치적 지위는 향상되었다. 평민들은 라인하르트의 시정을 지지했겠지. 하지만 신뢰는 했을까? 초토작전을 실행하여 변경에 고통을 준 것이 라인하르트라면, 베스터란트에서 주민 200만 명을 죽게 내버려둔 것도 라인하르트인 거다. 지지는 하더라도 어딘가 불안하게 생각했을 테지. 언제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밀지 모른다는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그런 불신감을 더욱 크게 만든 것이 힐다와의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와의 결혼은 황제 라인하르트가 몇 가지 범한 정치적 실책의 하나가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힐다에겐 황비로서 적절한 자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라인하르트의 주변에서는 힐다와의 결혼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오베르슈타인이 마린도르프 백작에게 외척으로서 권력을 휘두르지 말라고 못을 박았을 뿐이다.

  하지만 황비로서의 자격은 있었을까? 없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힐다는 백작가의 딸이다. 그 한 가지 점 때문에 자질은 있었어도 자격은 없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녀가 황비가 된다는 걸 알게된 평민들은 또 귀족이 외척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닌가하고 불안하게 생각했겠지. 그리고 라인하르트에 대해선 귀족 계급의 복귀를 용인한다는 불신감을 품었을 거다. 황비는 평민이나 하급귀족에서 골랐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평민들도 불신감을 품지 않았을 거다. 평민이라도 황비가 될 수 있다면 평민 계급은 라인하르트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했겠지. 진정한 의미로 루돌프를 부정했다고 느꼈을 거다.

  오베르슈타인은 평민 계급의 불안을 알고 있었을 거다. 그가 마린도르프 백작에게 힐다를 황비로 할 생각이냐고 경고했던 것이 그걸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베르슈타인이 바라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힐다의 임신과 결혼, 황비 힐다의 탄생이다. 혀를 차고 싶었겠지.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일에 대해 오베르슈타인은 반대하지 않았다. 후계자가 필요하기에 낙태하라고는 말하지 않았겠지만, 정치적 리스크를 호소하며 측실로만 두라고 진언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오베르슈타인은 침묵을 유지했다. 대체 어째서일까?

  생기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나? 아니면 라인하르트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렇진 않겠지. 오베르슈타인에겐 반대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만 한다. 다시 말해 그는 라인하르트의 건강 문제를 중시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베르슈타인은 라인하르트의 수명이 길지 않다. 아니 극단적으로 짧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 거겠지.

  후계자가 없으면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오베르슈타인은 그걸 두려워한 거다. 그리고 황제가 어리면 그 옆에서 어린 황제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다. 힐다는 모친이기도 하고 정치적인 재능도 있다. 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권기반이 빈약한 이상 그녀의 정치적 지위와 앞으로 태어날 후계자의 정치적 지위도 단단한 것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렇기에 황비 힐다의 탄생과 적자의 탄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측실과 사생아로는 정치적 입장이 약하다고 본 것이다. 조금이라도 정치적 입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선 황제 계승에 관한 정통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평민 계급의 불안은 리스크이긴 했지만 제국의 혼란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거겠지. 마린도르프 백작이 권력욕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도 판단 재료로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육지책이었겠지…….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이런. 쉴 수도 없나……. 하기야 쉬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불만을 토할 수도 없다.
  "들어오세요."
  몸을 일으키며 말을 하자 문이 열리고 페르너가 들어왔다. 혼자다. 내가 간이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올까"라고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라고 말렸다.

  "용건은?"
  "아니, 조금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우물쭈물하지 마라. 너 답지 않아.
  "알았다. 적당히 앉아."
  페르너가 의자를 내 옆에 가져와서 "미안하군"이라고 말하며 앉았다. 옛날 같네. 나는 침대에 앉아 페르너는 의자를 가져와 앞으로 숙이며 앉아 있다.

  "아까 전의 이야기지만."
  "반대인가?"
  "아니, 그게 아니야. 무슨 말인지는 잘 이해했어. 우주가 통일되면 변경은 발전하겠지. 천도가 실행되면 브라운슈바이크 성역은 지리적 이점을 잃는 것도 틀림 없어. 하지만 신경 쓰이는 점도 있다. 그걸 확인하고 싶어."
  페르너가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사람은 어떻게 할 건가?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인구 이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처음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각 영지에서 조금씩 이주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페르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론 안 된다. 발전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걸려. 최소한이라도 처음 5년으로 100만 명 정도의 인구를 이주시켜 발전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겠지."

  "그 외에도 방법은 있어. 이번에 귀족들이 빚 탕감을 조건으로 영지를 반환했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아니, 모른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있어. 조금 곤란한 일이 말이야."
  페르너가 이상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안 되겠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안에서 태스크팀, 혹은 섀도우 캐비넷 같은 걸 만들어야겠다.

  문제는 농노다. 영지 반환에 동반하여 정부가 농노를 구입했다. 귀족들에겐 좋은 수입이 되었겠지. 정부는 그 농노를 해방하여 정규 영지민으로서 취급하기로 했다. 인권을 존중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는 쪽이 틀림없이 생산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본래 영지민이었던 자들과의 사이에서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영지민들에게 있어서 농노는 한 계급 아래에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해방되어 자신들과 같은 계급이 되었다. 그 점이 불만인 것 같다. 사람이란 자신보다 아래가 있으면 우월감에 빠진다. 하지만 그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던 존재가 자신과 어깨를 나란하게 되었다. 재미 없다. 건방지다. 라고 생각한 거다. 라인하르트가 로엔그람 백작가를 계승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겠지. 나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었을 때는 반발이 굉장했다. 내가 설명하자 페르너가 응응하고 끄덕였다.

  "그렇군. 있을 법한 일이다."
  "이제 이해했겠지?"
  "그래. 그 해방 농노를 데려간다는 거로군?"
  "바로 그거다. 이대로 방치하면 대립이 격화되겠지. 소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그래선 생산력은 올라가지 않아."
  페르너가 "그렇지"라고 끄덕였다.

  생산력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를 통괄하는 내무성에도 부담이 되겠지. 경우에 따라선 군대 출동이라는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방치할 순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서 빼가는 것도 해방 농노인가?"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되겠지."
  "얼마나 데려갈 생각이지? 설마하고 생각하지만, 30만 명 전부인가?"
  "그건 아니다. 아버님과도 상담해서 적당한 인구를 데려갈 거야."

  페르너가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이 녀석, 최근 나와 아버님이 충돌하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기색이 있다. 이 녀석만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여기에 온 것도 아버님의 사주일까? 페르너를 이용해서 의문점을 확인한다는 건가? 가능성은 있군.

  "게다가 내년 이후로는 몰락하는 귀족이 속출할 거다. 그들이 품고 있는 농노를 적극적으로 받아간다. 인구 100만 명은 가볍게 넘겠지."
  1,000 가문이나 무너지면 한 귀족 당 1만 명의 농노를 데리고 있다고 쳐도 1,000만 명의 해방 농노가 출현하게 된다. 변경 개발을 위해 인적 자원은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보고 있다.

  문벌 귀족 따위 전멸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양자가 되었기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기울었다고 역사서에 쓰여지는 건 사양이다. 내 세대에서 번영의 기반이 쌓여졌다. 그렇게 기록되게 만들겠다. 그렇게 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이외의 가문도 평민에서 양자를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혈통이 아니라 실력의 존중이다. 계급 사이의 교류도 조금씩 넓어지겠지.

  "알았다. 의문이 풀렸어. 피곤한 와중에 미안. 느긋하게 쉬길 바래."
  "기다려. 마침 좋다. 조금 이야기할 것이 있어."
  일어나려는 페르너를 멈췄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에리히."
  있다. 페르너를 지긋이 봤다. 녀석이 자세를 바로했다. 쉽지 않은 일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 생각이 맞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 개혁에 의해 제국에선 지격변동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알고 있지?"
  "그래, 알고 있어. 귀족 계급에서 몰락하는 귀족이 속출한다. 상대적으로 평민 계급의 지위가 향상되겠지."
  "그 지각변동은 페잔에까지 미치려 하고 있어. 아니, 이미 미치고 있다."
  "페잔에 말인가?"
  "그래."
  그렇다. 페잔이다. 그렇게 의아한 표정을 짓지 마라. 페르너. 제국, 페잔, 동맹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지를 잃은 귀족들이지만, 그들은 페잔 상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돈만의 문제가 아니야. 물류도 포함해서다."
  "……."
  "하지만 귀족들이 영지를 버린 걸로 돈은 아무튼 물류는 지금까지처럼 한 손에 쥐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군. 기득권익을 잃고 거기에 독립상인이 틈을 파고든다는 건가."
  "그렇다."

  물류를 취급하고 있던 상인들은 기득권익을 잃고 독립상인, 혹은 마찬가지로 기득권익을 빼앗긴 상인들과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페잔에서 발행되고 있는 전자 신문에 의하면 경영이 기울어진 기업도 있는 한 편 실적을 올리고 있는 기업도 있다. 말하자면 하극상, 전국시대에 들어간 거다. 그리고 무너진 귀족은 이제부터 더욱 많아진다. 그게 대체 페잔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페르너도 떫은 표정을 짓고 생각하고 있다.

  "이 쯤에서 물류 관계의 기업을 가지려고 생각해. 페잔에서 경영이 기울어진 기업이 있으면 구매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선이라면 지금이라도 있잖아."
  "안 돼. 지금의 상선으로는 페잔 회랑을 넘을 수 없어."
  "……."
  페르너가 입을 다물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소유하는 상선, 운송회사는 있다. 하지만 그건 제국령내에서밖에 활동할 수 없다. 이유는 제국 국적의 상선, 운송회사이기 때문이다.

  "변경을 개발하려고 한다면 동맹제의 생필품이 있는 편이 좋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인구 100만 명은 가볍게 달성할 수 있다. 문제는 100만 명의 생활을 유지, 향상시킬 수 있는 인프라 정비, 경작기계, 생필품이다."
  페르너의 표정을 살폈다. 꽤나 몸을 뒤로 빼는 듯이 보였다.
  "그건 이해하지만……."
  "공작가가 소유하는 상선은 제국령내에서 활동하게 한다. 그리고 페잔 국적의 상선은 변경 개발을 위해 이용한다."
  "……."
  생각하고 있다. 페르너는 생각하고 있다.

  "페잔이 그걸 허락할 거라 생각하나?"
  "일단 허락하지는 않겠지. 매수는 인정해도 상선을 저쪽으로 보내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 페잔이 교역의 독점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허락할 리가 없다."
  "그럼 의미가 없잖아."
  그렇게 어이 없단 듯이 말하지 마라. 내가 상처 입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야. 설령 동맹령으로 상선을 보낼 수 없다 해도 변경 개발은 페잔에 기점이 있는 편이 효율이 좋아. 페잔 방면에서, 제국 중앙부에서 양쪽 방향에서 개발을 실행한다. 게다가 페잔이 없어지면 동맹령으로 상선을 보낼 수 있다."
  "……."
  "게다가 상선을 보낼 수 없다면 동맹에서 페잔으로 오게 한다는 방법도 있어. 화물을 구입해서 변경으로 옮기는 거야."

  "멈춰! 그건 위험하다. 페잔은 경을 완전히 적으로 보게될 거야."
  "지금도 적으로 보고 있잖아."
  내가 웃자 "안 된다!"라고 말하고 페르너가 격렬히 고개를 저었다.
  "적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경을 방해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걸 해버리면 페잔은 경을 무너뜨리려 할 거야."
  "……날 죽이려 할 거라는 건가?"
  "경이라고는 한정할 수 없어. 엘리자베트 님을 죽이려 할지도 몰라. 그것만으로도 경의 지위를 흔들 수가 있다."
  그렇군. 가능성은 있다.

  갑자기 무릎을 흔들었다. 페르너가 진지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에리히. 초조해하지 마라. 경 답지 않아."
  "……초조해하고 있다고 보이나?"
  "그래. 내겐 그렇게 보여. 마음은 이해한다. 어려운 문제는 모두 경에게 모인다. 그 대부분이 귀족들의 뒤처리다. 본의가 아닐테고 불쾌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초조해하지 마라. 경 답지 않아."
  다시 무릎을 흔들었다.

  "경에게 만약의 일이 생기면 개혁이 좌절될 수밖에 없어. 자중해. 경은 불안할지도 모르지만 제국은 틀림 없이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알았다. 매수 건은 철회한다. 하지만 페잔의 동향에는 주의해줘."
  "알았다. 팀을 만들어 대응하지."
  페르너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화제를 바꾸지. 안톤, 포로교환이 끝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영지를 시찰하려고 생각하는데."
  "계속 뒤로 미루고 있었지. 가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대공 각하 부부, 엘리자베트 님도 함께 가는 편이 좋겠지."
  "여행이 아니야. 업무다."
  "그래. 업무다. 영지민들에게 가족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것도 말이야."
  그렇군. 그런 건가.

  "알았다"라고 말하자 페르너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쉬어줘. 경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안톤, 나는 초조해하고 있나?"
  "그래. 나에겐 그렇게 보여."
  "그런가. ……고마워. 말려줘서."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하고 페르너는 일어나 의자를 되돌리고 방을 나갔다. 초조함인가……, 그럴 셈은 없었는데…….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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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5월 24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라인하르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렴."
  "물론입니다. 누님. 공작이 저를 이래저래 챙겨주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걸 무위로 돌리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라인하르트 님은 황제가 된다는 야심을 봉인했다. 안네로제 님을 빼앗은 프리드리히 4세를 용서한 건 아니다. 하지만 황제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극히 불행할 뿐인 사람이라는 건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황제가 안네로제 님을, 그리고 라인하르트 님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단순히 증오하기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게 되었다.

  "그럼 좋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신기한 사람이야."
  조금 말을 흐렸다. 신기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라인하르트 님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너희들과 이래저래 얽히는 분이었기에 계속 봐왔지만, 나는 공작이 무척이나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다시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다.

  "안네로제 님, 신기하다는 건 대체……."
  안네로제 님이 날 보고 조금 곤란하단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유능한 군인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고 나서부터 신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내로제 님이 말씀하고 싶은 건 신기할 정도로 운이 좋다는 걸까?

  "누님이 말씀하고 싶으신 건 운이 좋다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야."
  안네로제 님이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운이 아니야?
  "그것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러워. 너무 자연스럽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궁중 대신이라는 역할을 다하고 있어. 보통이라면 망설임이나 실패가 있을 텐데 그게 없어. 위화감이 없는 거야."
  그렇군, 이라고 생각했다. 라인하르트 님도 끄덕이고 있다. 확실히 위화감이 없다. 이미 10년 동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하고 있다고 들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원수, 우주함대 사령장관 자리에서도 평범하게 일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은 국정 개혁도……. 자연스러운 거야. 모든 것이……."
  "……."
  "아직 젊으니까 부담감이나 패기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안네로제 님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군요?"
  "그래."
  안네로제 님이 끄덕였다.

  "신기하지?"
  라인하르트 님이 "듣고 보니 그렇네요"라며 끄덕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 때 그 때에 필요한 역할을 연기하는 듯이 보이는 거야. 그렇기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
  라인하르트 님이 날 봤다. 질문하는 듯한 눈이다. 라인하르트 님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곁에 있으면 그 신기함을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주의하렴."
  "주의, 입니까?"
  "눈치 채고 나니 깜짝 놀랐다, 라는 일이 없기를 바래. 그리고 공작 곁에 있으렴. 이제부터 제국은 변할 거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바꿀 거야.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라인하르트 님이 약속하자 안네로제 님이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확실히 나도 라인하르트 님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자연스러웠기에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다. 하지만 안네로제 님의 말씀대로 언제부턴가 제국 중신이자 국정의 중심이 되어 있다. 안네로제 님이 주의하라는 건 그걸 받아들이라는 거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미 군인일 뿐인 존재가 아니다. 국가의 중신, 국정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제국력 488년 5월 30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그래서 변경에 대한 건 어떻게 되고 있는 건가? 개발을 진행한다고 들었지만."
  "간단하진 않습니다. 꽤나 성가셔요. 아버님."
  내가 답하자 아버님이 "간단하지 않은가"라며 탄식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끄덕였다. 대공 부인, 엘리자베트, 슈트라이트, 안스바흐, 페르너, 쇤코프. 나와 엘리자베트는 코코아, 그 외엔 커피를 즐기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선 내가 양자가 된 뒤로 최소한 반 년에 한 번은 이렇게 거실에서 근황보고 같은 걸 하고 있다.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빨리 익숙해질 수 있도록 대공이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그 전까지는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기에 꽤나 평판이 좋다. 트깋 대공 부인은 엘리자베트에 대한 교육도 된다며 대만족이다. 보고회 형식은 프리토킹, 시간은 최대 2시간. 그 이상이 될 경우엔 한 번 휴식을 취하기로 되어 있다.

  최근엔 리텐하임 후작가에서도 같은 걸 하고 있다고 한다. 대공 부인과 후작 부인은 자매니까. 그쪽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 모양이다. 머지않아 한 번 합동 회의를 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쇤코프는 이번으로 참석 2회째다. 그에게 있어선 제국에 대한 걸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저번에도 재미있게 듣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무성, 재무성은 귀족의 지원에 대해선 적극적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조금 다릅니다. 내무성도 재무성도 적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억지로 하고 있다는 편이 좋겠죠."
  내가 안스바흐의 질문에 답하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모두의 귀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변경성역 개발을 행하려한다는 이야기가 닿은 모양이다.

  "귀족령, 직할령을 따지지 않고 일단 변경성역 개발이 시작되면 말도 안 되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재무성, 내무성의 진심을 말하자면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변경 귀족은 점점 더 가난해져 언젠가는 무너지겠죠. 그렇게 되면 제국 정부가 모든 걸 짊어지게 됩니다. 재무성, 내무성은 그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럴 바에야 귀족들을 어떻게든 원조하는 편이 좋다. 그게 진심입니다."

  이곳저곳에서 "호오"라는 탄식이 들렸다. 또 하나 싫은 현실을 보여줄까.
  "최근입니다만, 변경성역 귀족들에게서 영지 변경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영지 변경?"
  안스바하가 의아하단 목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거겠지. 유감이지만 다들 미심쩍어하고 있다. 뭐, 최근 이야기다.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변경에선 미래가 없다고 보고 영지 변경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다행히 영지를 반환한 귀족들이 있습니다. 그 후임자로서 해주면 좋겠다고. 자신들이라면 잘 통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걸 받아들이는 겁니까?"
  "그건 아니겠지. 그렇게 하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게 돼. 영지 반환은 빚 보증, 융자 변제의 포기에 대한 대가니까."

  아버님이 슈트라이트의 발언을 부정했다. 그 말대로다. 정부는 거부했다. 반환 받은 영지와 변경을 비교하면 인구도 생산력도 차이가 난다. 국정 개혁으로 세금을 경감한 이상 세수 부족이 일어난다. 그걸 직할령의 증가, 귀족들의 빚 변제, 융자 자금의 운용으로 얻은 수익의 10%를 징수하는 걸로 보충하려는 거다. 그리고 개발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건 변경만이 아니다. 세수 저하를 초래할 영지 변경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군요. 맛있는 고기 쟁탈전, 맛 없는 고기의 떠넘기기입니까."
  변함 없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군. 쇤코프. 다들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엘리자베트도 포함해서.
  "그래서 정부는 어떻게 한다고? 무시는 할 수 없고, 깊게 들어가는 것도 할 수 없다면 어중간해지지 않겠습니까?"
  커피를 마시면서 말하지 말아라. 페르너. 하지만 네 말대로다. 어중간하긴 하다. 하지만 이 경우 중요한 건 변경 개발 그 자체보다도 제국이 변경 귀족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페잔에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귀족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변경을 4개 구역으로 나눠 1년 단위로 순서대로 개발해 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4년에 한 번의 빈도로 정부가 영지 개발을 협조하게 됩니다. 그걸 정부 방침으로서 발표하는 겁니다. 7월에는 발표되어 즉시 실시에 들어갑니다."
  "그렇군요. 항상 변경의 어딘가를 정부가 원조하고 있다는 건가요."
  대공 부인이 끄덕이고 있다. 그 말대로다. 정부는 대규모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변경 개발을 계속한다는 게 된다. 그리고 귀족령의 개발은 귀족이 주체가 되고, 정부는 어디까지나 지원이다.

  "생각은 이해하지만 확실히 페르너 대령이 말한대로 어중간, 결단이 부족한 것 같군요."
  안스바흐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하자 쇤코프가 씨익 웃었다. 뭐, 이래선 위험시되어도 어쩔 수 없나. 배신했다고 의심을 받는 것도 절반 이상은 자업자득이겠지. 부덕의 소치, 려나. 응, 코코아가 맛있다.

  원작과 달리 이 세계에선 귀족들이 멸망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제국의 재정은 개선되어 있지 않은 거다. 대규모 개발은 현시점에서 불가능하다. 하지만 2, 3년이 지나면 상황은 극적으로 변한다.
  "4년 후, 한바퀴 돈 시점에서 계획을 재검토할 생각입니다."
  "그런가, 4년 후인가."
  아버님이 부인과 서로를 마주 보고 끄덕였다. 눈치 챘나.

  "원조 내용입니다만,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경작 기계의 대량 공여, 용수 설비의 증설 등입니다. 슈트라이트 소장. 일단 변경성역의 식량 생산량을 높일 생각입니다."
  그렇다기 보단 그 정도밖에 할 일이 없다. 발전소 건설이나 우주항 확대에는 자금이 부족한 거다. 그래도 식량 생산량이 늘어나면 변경 사람들도 기뻐할 것이다. 굶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출산에도 힘쓸 수 있게 된다. 인구 증가에도 도움이 되겠지. 인프라 정비, 의료나 교육은 그 뒤다.

  "실은 재무성, 내무성의 고급 관료들에게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게 변경 개발에 해주길 바란다고 은밀하게 요청이 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의심, 의혹, 이의, 거절, 부정적인 감정이 담긴 시선이었다. 기분은 이해하지만. 좀 더 부드러운 시선이 필요하네. 커피라도 마시면서 진정하라고.

  "무슨 소리냐? 에리히."
  "대귀족에게도 개발에 참가해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정부만으로는 변경성역의 신용을 얻을 수 없다. 대귀족이 개발에 참가해주면 변경도 안심할 거라고. 언젠가 리텐하임 후작가에게도 같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다지 호의적인 침묵은 아니네.

  "플레겔이나 게르라흐는 알고 있는 건가? 그 이야기를."
  "아마도, 모르겠죠. 지금 상황에선 관료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합니다. 공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은밀하기는 하지만 타진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관료들 사이에선 나름대로 검토되고 있는 이야기겠죠."
  아버님이 신음했다. 그다지 호의적인 울림은 아니다. 좋을 대로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뭐, 관료들도 상대방이 나니까 말한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아버님이라면 입을 다물었겠지.

  "구체적으로는 변경 귀족과 협력하여 인프라 정비를 행하든가, 혹은 무인 행성을 당가만으로 개발하든가, 대충 그런 거겠죠. 어느 쪽이든지 어떠한 형태로든 변경 개발에 관여해줬으면 좋겠다. 재무성도 내무성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아버님이 고개를 저으면서 탄식을 뱉었다. 다른 이들도 어이 없단 표정이다. 페르너가 "형편 좋은 이야기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개척 가능한 행성을 최소한이라도 하나, 성계채로 받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심인가!"
  아버님이 눈을 부릅 떴다. "각하", "공작", 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충고하는, 아니 책망하는 목소리다. 진심이냐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아버님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너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다. 네가 정했다고 한다면 반대는 할 수 없어. 하지만 무인행성을 개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주민 이주를 포함하여 하나부터 모든 걸 하지 않으면 안 돼. 알고 있는 건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는 건가."
  "네."
  거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다들 날 보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말도 안 되는 손해를 가져올 녀석, 그런 시선이로군.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의무감만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이익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변경성역을 다들 짐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건 보물산입니다. 다들 눈치 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
  말이 없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겠지. 변경이란 빈곤하고 사람도 없다. 벽지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익이 있다고 말한 건 사실이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보물산이라는 것도.

  "아버님, 저는 제국의 손으로 우주를 통일하고자 합니다. 원정을 지탱할 수 있을만한 재정 기반을 준비하는 데에는 최소한 5년, 길면 10년은 걸리겠죠. 그 뒤, 5년을 목표로 자유행성동맹을, 페잔을 정복합니다."
  "……."
  "그렇게 되었을 때, 변경은 변경이 아니게 됩니다."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무슨 뜻이냐? 에리히."
  아버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의심암귀 잔뜩이군.
  "구 동맹령에서 수많은 상인이 변경으로 찾아올 겁니다. 새로운 비지니스 찬스를 노리며."
  거실에 신음소리가 넘쳤다.
  "제국 인구는 200억을 넘습니다. 국경이 사라진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선 새로운 시장이 눈앞에 나타나는 게 됩니다. 이익을 추구하며 앞다퉈 찾아올테죠. 본래 생필품은 저쪽이 품질이 더 좋습니다. 그 생필품이 이제르론 회랑, 페잔 회랑을 넘어 대량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위치적으로 봐서 그 은혜를 최초로 받게 되는 것이 변경입니다. 변경은 양질의 생필품으로 넘쳐나게되겠죠.

  "그렇군, 그런 건가……."
  안스바흐가 중얼거리자 슈트라이트가 신음했다. 아버님도 신음하고 있다. 쇤코프와 페르너가 서로를 돌아보고 씨익 웃었다. 어째서 성격 나쁜 놈들은 금방 서로 친해지는 걸가. 이상한 일이다. 보통 반발할 거라 생각하지만……. 대공 부인과 엘리자베트는 솔직하게 감탄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지. 엘리자베트. 부탁이니까 뺨을 붉히면서 멍한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그런 건 익숙하지 않다.

  "제국의 상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구 동맹령을 향해 교역선을 보내게 되겠죠. 변경을 횡단해서입니다. 지금까지는 오지 않았던 교역선이 항상 변경을 지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하지만 교역이 발생합니다. 변경은 우주에서 가장 많은 교역선이 오가는 장소가 될 겁니다."
  마치 실크로드다. 캐러밴을 편성하여 지나는 곳마다 교역을 행한다. 같은 일이 우주에서 일어나겠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뭐냐, 그건."
  응. 이번 아버님의 목소리에는 흥미진진한 울림이 있다. 좋은 경향이다.
  "우주를 통일하면 제국의 영역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지게 됩니다."
  "그렇네만."
  "오딘은 제국 영토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확대된 제국을 통치하기엔 조금 불편합니다."
  "……."
  다시 거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하지만 나쁜 침묵은 아니다. 다들 눈으로 살피고 있다.

  "통일한 뒤에는 페잔으로 천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어라, 신음소리나 웅성거림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페잔에 천도하면 군사적으로는 페잔 회랑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제국령, 구 동맹령 양쪽에 병력을 보내기에 편합니다. 그리고 경제의 중심이기도 한 페잔을 직접 통치하는 겁니다. 페잔에 자리를 잡아 제국령, 구 동맹령을 통치합니다. 이 이상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서 어울리는 장소는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같은 걸 생각하겠죠."
  아, 아버님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탄식? 아니면 산소부족인가?

  "그것까진 좋다. 잘 알았다. 오딘이 제도가 아니라면 브라운슈바이크 성계는 지리적 이점을 잃는다. 그보다도 변경성역쪽이 이득이다. 그런 거로군."
  "예. 당초엔 가난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변경 쪽이 브라운슈바이크 성계보다도 발전하게 되겠죠."

  리텐하임 후작, 그리고 정부 각료에게도 이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되면 다들 변경성역에 거점을 두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변경 귀족들은 정부가 진심으로 변경을 개발할 생각이라고 여기겠지. 그리고 정부 각료도 변경성역 개발에 진심이 될 것이다. 지금은 무리라도 재정상황이 호전되면 반드시 힘을 들일 것이다. 나머진 어떻게 해서 동맹을, 페잔을 정복할 것인지다.

  재정 건전성을 확복하는 데까지 5년에서 10년인가. 라인하르트의 병이란 문제가 있군. 그 부분도 신경 쓰지 않으면……. 가능한 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안네로제와도 빈번하게 만나게 하는 편이 좋겠고, 전쟁에도 적당하게 출동하게 하자. 포로 교환이 끝나면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해서 출병시켜볼까. 뭐, 호각 이상으로 싸워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함대 부장으로서의 입장도 강화될 것이고,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뮐러를 정규 함대사령관으로 발탁할 수도 있다. 케슬러는 그대로 참모장으로 해두자. 라인하르트의 통제역으로서 필요하고 라인하르트에게 별동대를 지휘하게 할 때는 그대로 별동대의 참모장으로서 역할을 맡기도록 하자. 케슬러라면 문제 없이 해줄 것이다. 조금씩이지만 형태가 잡혀가는 듯하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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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7년 5월 16일. 하이네센, 통합작전본부. 양 웬리



  본부장실에 들어가자 시톨레 원수가 집무석에서 일어나 싱글벙글하며 마중해주었다. 헌데, 무슨 용건일까?
  "앉게나. 양 준장."
  "예."
 본부장이 소파에 앉길 권해주었다.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자 본부장이 정면에 앉았다.

  "제국이 포로 교환을 제안해왔다."
  "예."
  끄덕이자 시톨레 본부장도 끄덕였다. 동맹 정부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다. 뭐라 해도 200만 명의 포로가 돌아오면 포로만이 아니라 그 가족도 기뻐한다. 여론도 포로 교환에 호의적이다. 최근 군사면에서 실패가 계속되었다. 지지율도 좋지 않다. 이쯤에서 점수를 따두고 싶다 생각하고 있는 정부에게 있어선 더 바랄나위 없는 이벤트겠지.

  "전부는 기본적으로 포로 교환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오늘 정식으로 국방위원회에서 군부에 연락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입니까."
  조건 첨부? 쌍수 들어 환영한다는 건 아닌가. 어떻게된 일이지? 반문하자 시톨레 원수가 "음"하고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페잔 주재 제국 고등변무관, 렘샤이트 백작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백작이 비공식으로 어느 타진을 해왔다."
  "비공식? 다시 말해 포로 교환에는 공표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겁니까?"
  본부장이 "바로 그렇다"라고 끄덕였다.

  "그래서 타진이라니 무엇을? 아, 아니 소관이 들어도 되는 겁니까?"
  내가 묻자 본부장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관 없다. 자네에게도 관계 있는 이야기니까."
  "저에게도, 입니까."
  시톨레 본부장이 웃음을 거뒀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양 준장, 제국은 로젠리터를 제국에 양보해달라고 하고 있네."
  한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설마, 로젠리터를 양보해달라니……. 쇤코프 대령에게서 정보를 얻었나.

  "제국은 동맹이 로젠리터를 처치 곤란해하고 있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서 말하는 거로군요?"
  확인하자 본부장이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우주 공간에선 육전부대가 할 일은 많지 않아. 로젠리터의 전투력은 높지만 병력도 적고 전투의 귀추를 결정할 정도도 아니다. 그들을 해방하는 편이 동맹에게 있어서 부담이 줄어드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렇군요."

  확실히 그런 면도 있다. 역대 연대장은 13명. 그 중 4명이 전투 중에 사망, 2명이 장성까지 출세한 뒤 퇴역, 6명이 제국으로 역망명했다. 그리고 13대 연대장 쇤코프 대령은 제7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에서 포로로 잡혀, 그 뒤 브라운 중령이 연대장 대리로서 연대를 이끌고 있다. 연대장의 약 절반이 배신한 거다. 로젠리터는 극히 다루기 어려운 부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군부가 그들을 신뢰하지 않고 버림패로 쓰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실패였군……. 제국어에 능란하며 전투력이 높은 군인. 이제르론 요새에 침투시키기에 적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장 적합하지 않은 임무였을지도 모른다. 실패했을 때의 위험을 경시했다. 제7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의 실패. 그리고 그 뒤의 혼란은 위험을 경시한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물론 제국은 무조건적으로 넘기길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야. 제국으로 돌아갈지 아닐지는 본인들의 의사에 맡기겠다고 하고 있어. 제국이 동맹에 요구한 것은 귀국 의사의 유무에 대한 확인. 그리고 귀국 의사가 있는 경우 그걸 막지 말라는 거다. 제국은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도 받아들이겠다고 하고 있어."
  "그렇군요."
  무조건이라고 하면 동맹 정부도 반발하겠지. 하지만 그들에게 선택을 맡기라고 한다면 반발하기 어렵다. 하물며 로젠리터는 우대 받고 있지 않다.

  "포로 교환은 제국 정부의 정식 타진이지만, 실제론 군부가 크게 얽혀 있는 건 틀림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입니까."
  "그렇겠지. 쇤코프 대령은 귀관의 조언에 따라 제국에 임관했다고 한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이라고 해도 좋은 입장에 있는 것 같아."
  "대담한……."

  한숨이 나왔다. 제국에서 임관하는 편이 좋을 거라 말한 건 나지만, 설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이라니…….
  "로젠리터에게 있어선 돌아가기 쉬운 환경이 마련되었단 거다. 연대장이었던 쇤코프 대령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 뤼네부르크 대장도 제국 내에서 나름대로의 지위에 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정부는 뭐라고?"
  시톨레 본부장이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정부에게선 로젠리터 대원을 가능한 한 설득하라는 말을 들었네."
  "동맹에 머무르라고 말입니까?"
  내가 묻자 시톨레 본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가능한 한 많은 대원을 제국으로 돌려보내도록 설득하라는 거다."
  "돌려보내도록?"
  깜짝 놀라 시톨레 본부장의 얼굴을 봤다. 본부장은 무표정하게 날 보고 있다.

  "가능한 한 많은 대원을 제국으로 돌려보낸다. 그렇게 되면 로젠리터를 연대로서 유지하는 건 불가능. 해체하여 남은 대원은 다른 육전부대로 전속시킨다."
  "……그럼 로젠리터의 해체가 목적입니까."
  "그렇다. 연대가 유지될 수 없게 된다면 해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야. 남은 대원은 제국보다도 동맹을 선택한 거다. 다른 부대에 전속시켜도 누구에게도 배신자라 경멸 받는 일은 없겠지."
  "……."
  논리는 그렇겠지만…….

  "본래 로젠리터는 망명자들의 희망으로 반세기 정도 전에 만들어진 부대다. 거기에는 동맹군 내부에서 자신들의 활동을 인정 받아 그 입장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로젠리터는 망명자의 입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그렇다면 해체하는 게 옳겠지."
  "그것이 정부의 생각입니까. 본부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실은 본부장의 생각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본부장은 말이 없었다.



제국력 488년 5월 24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설마 이 곳에서 누님과 면회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나도 생각하지 못했어."
  라인하르트 님과 안네로제 님의 대화에 나도 끄덕였다. 확실히 두 사람의 말이 맞다. 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서 안네로제 님과 면회하게 될 줄은 생각치 못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의 일광욕실은, 창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겠지, 5월의 온화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왔다. 공작가에 어울리는 고풍스런 흰색 테이블과 의자, 우리들 세 사람은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다. 무척이나 이상한 기분이다.

  "베스트팔레 남작부인의 상황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샤프하우젠 자작부인에게 부탁하려고 했으나 궁내성이 순순히 허가를 내줄지 불안했습니다. 그걸 안 공작이 그럼 자신에게로 라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이라면 궁내성도 싫다고는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네."
  라인하르트 님의 말에 안네로제 님이 끄덕였다.

  황제의 총희인 안네로제 님의 외출에는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설령 그것이 동생인 라인하르트 님과의 면회라고 해도다. 당연하지만 외출처에도 제한이 있다. 궁내성이 그 장소를 부적당하다고 판단하면 외출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걸 생각하면 신무우궁의 안네로제 님의 방에서 만나는 것이 간단하지만, 그래선 이래저래 불편하다.

  또한 안네로제 님이 머무시는 남원은 황제의 생활 구역이기도 하다. 라인하르트 님은 몰라도 나는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안네로제 님을 모시는 궁녀들도 반드시 안네로제 님의 아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안심하고 대화를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는 베스트팔레 남작부인이 장소를 제공해주었지만…….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시선을 향하자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부부가 측근을 데리고 일광욕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광욕실에는 대공 부부만이 들어왔다. 세싱서 일어나 마중했다.
  "오늘은 이래저래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인하르트 님이 고개를 숙인다. 나와 안네로제 님도 고개를 숙였다.
  "아아, 딱딱한 인사는 그만두게나. 뮈젤 대장. 그런 건 옛날부터 거북했다네. 자, 사양하지 말고 앉게. 백작 부인도. 그리고 경은, 분명 키르히아이스 중령이었지. 앉게나. 우리들도 앉도록 하지."

  다섯 명이서 앉았지만 마음이 거북했다. 평민에 군대에서의 계급도 낮은 내가 동석해도 좋은 걸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대공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조금 놀랐다. 라인하르트 님도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뮈젤 대장, 남작부인은 금한 용무가 생겼다고 들었네만. 영지로 돌아갔는가?"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결산보고서나 재산목록에 관계가 있으려나. 어떻게 생각하나? 아말리에."
  "아마도 그렇겠죠."
  대공 부부가 응응하고 끄덕이고 있었지만, 라인하르트 님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그걸 눈치 챘는지 두 분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옛날과 달리 지금의 귀족에겐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을 작성한다는 의무가 생겼으니까. 너무 대충 만들면 영내 통치에도 영향이 나오게 된다. 언제나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 백작부인도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공이 묻자 안네로제 님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저는 그리 큰 영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폐하가 좋은 재무고문을 붙여주셨기에."
  "그렇군. 폐하가. 그거 참 부러운 일이다."

  "대공 각하야말로 고생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대가문이니까요."
  "뭘. 당가에는 믿음직한 아들이 있으니까. 저 녀석은 천성부터 꼼꼼해서 가신들을 부려먹으며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대공이 다시 소리 내어 웃자 안네로제 님, 아말리에 님도 웃음을 지었다.

  "누님, 혹시 누님도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을 만들고 있습니까?"
  "물론이야. 라인하르트. 폐하에게서 몇 개인가 영지를 받았으니까. 만들 의무가 있지. 몰랐어?"
  "네. 몰랐습니다."
  나도 몰랐다. 하지만 아연하게 있자 라인하르트 님과 날 보고 세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웃고 있다.

  "뭐,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에 대한 건 에리히가 자세하지. 저 녀석이 있었다면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급한 호출이 있어서 말이야.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래그래. 경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군."
  "아, 아뇨. 이쪽이야말로 배려를 받아 감사하고 있다고 전해주십시오."
  호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호출할 수 있다면 꽤나 중요한 인물, 용건일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라인하르트 님도 의아해하고 있다.

  "호출이라고 하셨습니다만, 군대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라인하르트 님의 질문에 대공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재무성과 내무성 쪽이다. 최근 군대보다도 그쪽에서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 저 녀석을 꽤나 고생하게 만들고 말았지."
  대공의 표정은 침통하다고 해도 좋았다. 부인도 침울한 표정이다. 보통이라면 군대 이외에도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자랑할 일일텐데…….

  "그럼, 너무 오래 있어선 안 되겠군. 방해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아말리에, 우리들은 이걸로 실례하도록 하지. 느긋하게 있도록 하게."
  "느긋하게 있다가 가세요."
  우리들이 "마음 씀씀이 감사합니다"라고 답하자 대공은 "음"하고 끄덕이고 부인과 함께 일광욕실에서 나갔다. '휴'하는 마음과 함께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는 묘한 감정이 남았다. 이전엔 대공을 싫어했지만, 지금은 나쁜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만이 아니다. 라인하르트 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묘한 일이다.

  "재무성과 내무성인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키르히아이스,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습니다. 개혁에 관계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마도, 변경성역에 대한 일이라고 생각해."
  놀라서 안네로제 님을 봤다. 나뿐만이 아니다. 라인하르트 님도 안네로제 님을 보고 있다. 안네로제 님은 시선을 받고서 곤란하단 웃음을 지었다.

  "뭔가 아시는 겁니까? 누님."
  "응, 조금. 변경은 가난하잖아? 이대로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을 내년부터 공표하면 변경 귀족들은 아무래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변경, 이건 귀족만이 아니라 정부의 직할령도 포함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원조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 같아."
  "그렇군요. 그런 일입니까. 하지만 어째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제안자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야."

  변경의 귀족……. 공작은 역시 귀족들을 우대하고 있는 걸까? 신경이 쓰여 그 점에 대해 안네로제 님에게 물어봤지만, 안네로제 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름다운 금발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렇지 않아. 지크. 변경 귀족이 무너지면 변경 통치는 정부가 하게 되잖아? 하지만 그건 정부에게 있어서 큰 부담이라는 것 같아. 그보다는 지금 변경을 통치하고 있는 귀족을 이용하는 편이 효율이 좋다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재무성, 내무성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렇군요. 쓸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쓰자. 그런 생각입니까."
  라인하르트 님이 응응하고 끄덕이자 안네로제 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한 소리네. 라인하르트."
  "하지만 맞는 말이죠?"
  이번엔 다들 웃었다. 확실히 라인하르트 님의 말이 맞다. 그리고 쓸만하지 않으면 부숴버리겠지. 대공의 말대로, 귀족도 편하지는 않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네로제 님. 어째서 그렇게나 자세히 알고 계신 겁니까?"
  다시 안네로제 님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 재산관리를 하고 있는 재무고문은 재무성의 관료야. 그 사람이 알려줬어."
  "그렇습니까."
  라인하르트 님이 걱정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믿을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괜찮아. 라인하르트. 믿어도 좋아. 내무성도 재무성도 개혁을 지지하고 있어. 그리고 개혁을 추친하고 있는 것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 알잖아? 공작과 네가 친하니까 날 속이려고는 하지 않아."
  "그렇다면 괜찮습니다만……."
  라인하르트 님은 아직 불안한 것 같다. 그걸 보고 안네로제 님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정부, 군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가 하나로 뭉쳐 있어. 그리고 공작은 우리들에게 호의적이니까 안전해. 날 이용하려는 건 오히려 위험, 의미가 없어."
  "확실히 그렇네요. 베네뮌데 후작부인 때에도 누님의 몸에 위험이 다가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말대로다. 그 사건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움직였지만, 나와 라인하르트 님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공작가와 공작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오늘 일도 그래. 보통 이런 때는 친가에 돌아가 가족과 친지와 만나는 거야. 하지만 우리들에겐 집이 없어."
  "……."
  안네로제 님도 라인하르트 님도 외로워 보인다. 두 분 모두 이름뿐인 귀족 집에서 태어났다. 설령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도 후견이 되어주는 건 어렵겠지. 그래도 정신적인 의지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베스트팔레 남작부인이나 샤프하우젠 자작부인이 가족 대신이 되어 줬지."
  "네. 그렇지요."
  그 외에는 아무도 안네로제 님과 엮일려고 하지 않았다. 안네로제 님은 고립되어 불안정한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오늘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우리들에게 장소를 제공해 줬어. 이건 공작가가 우리들의 가족 대신이 되어주겠다는 거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어쩔 수 없이 외출했지만, 대공 부부가 우리들을 환대해주었어. 우리들에 대한 호의는 공작 혼자의 변덕이 아니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의지. 그 걸 오늘 일로 모두가 알게 될 거야."
  "……."
  한마디 한마디를 씹어 말하는 듯한 어조였다. 어쩌면 안네로제 님도 새삼 인식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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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5월 14일. 오딘, 리텐하임 후작 저택.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인구 문제인가."
  "음."
  "우주의 통일인가."
  "그렇다."
  나와 리텐하임 후작의 대화를 아내들이 말 없이 듣고 있다. 리텐하임 후작 저택의 응접실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컵이 네 개 있지만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우리들은, 아니 제국이 멸망 직전이었을 줄이야……. 어리석은 일이다."
  후작의 말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눈치 채지 못했던 건 우리들만이 아니야. 게다가 지금은 문제의 심각함을 알고 있어. 그리고 대처하려 하고 있다. 그 점이 중요하다. 그렇겠지?"
  리텐하임 후작이 "음"하고 말하며 끄덕였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을 행하고, 평민들의 불만을 씻어내면, 그리고 귀족들의 횡포를 통제하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는데……."
  "저도 그래요. 형님."
  아말리에의 말에 리텐하임 후작 부인이 끄덕였다. 평소엔 쾌활한 그녀도 활기가 없다.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거겠지.

  "크리스티네, 대공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조사해 봤다. 바로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어. 성인 남성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평민 여성들은 남성을 둘러싼 다툼을 일으키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귀족들이라면 단순한 연애 스캔들이었겠지만, 그들은 다르다. 결혼 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운명의 갈림길이다. 경우에 따라선 다툼으로 살인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그녀들은 궁지에 몰려 있어."

  아말리에와 후작부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엘리자베트와 사비네를 응접실로 데리고 오지 않은 게 정답이었다. 그 두 사람에겐 조금 험한 이야기다.
  "언제부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눈치 채고 있었던 건가요."
  "나와 아말리에가 처음으로 그걸 들은 건 올해 2월이었다. 후작부인. 저 녀석이 카스트로프에 시찰을 갔다온 뒤였다. 하기야 인구 감소의 문제는 이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 것 같아. 시찰 결과 예상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후작부인이 아말리에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말리에가 끄덕였다. 다시 후작부인이 숨을 내쉬었다.

  "그 때, 전쟁을 멈출 필요가 있다고 에리히가 말했다. 강화를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위험하다고 말렸다. 바르트바펠 후작의 고사도 있어. 하지만 저 녀석은 강화가 아니라 통일을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능한 건가? 150년이나 지속된 전쟁이다."
  리텐하임 후작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확실히 그렇다. 나에게도 다소의 불안이 있다.

  "강화는 어렵다는 거에요. 리텐하임 후작."
  아말리에가 답했지만 리텐하임 후작은 납득하지 않았다.
  "귀족 대부분이 힘을 잃어도?"
  "네."
  후작이 날 봤다.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답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의 대화 후에, 잠깐 에리히에게 말해봤다. 양국의 체면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녀석은 말했지."
  "체면?"
  후작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작부인도 의아한 표정이다.
  "강화 조약을 맺게 된다면 상대방을 반란군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어. 가능한가?"

  리텐하임 후작이 "그렇군"이라며 말하며 끄덕였다. 후작부인도 끄덕이고 있다. 납득한 것 같다.
  "패배한 뒤라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선 제국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그걸 평민, 귀족 구별 없이 제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부분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하는 거다."
  "확실히 그렇긴 하군."

  "게다가 열악유전자 배제법에 대한 게 있어."
  리텐하임 후작의 표정이 험해졌다.
  "무슨 뜻인가? 그 법은 지금으로선 유명무실화되어 있지 않은가."
  "분명 그렇다. 청안제 막시밀리언 요제프 2세 폐하에 의해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유명무실화되었다. 하지만 그 법에서 모든 게 시작된 것도 사실. 그 법을 반대하는 자들이 제국에서 도망쳐 반란군이 되었다. 강화를 맺으려고 하면 폐법하라고 요구가 나오겠지."
  리텐하임 후작이 신음소리를 울렸다. 아내들은 숨 죽이고 나와 후작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다.

  "유명무실해져도 말인가?"
  "유명무실해졌다면 폐법하기 쉽겠지. 그렇게 말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군."
  "반란군으로선 루돌프 대제가 제정했다는 사실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하지 않겠냐고 에리히는 생각하고 있어. 막시밀리언 요제프 2세 폐하조차 그 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고, 폐법은 하지 못했다. 그러한 미묘한 사정은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오히려 고집을 부리며 폐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리텐하임 후작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에리히로부터 들었을 때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강화는 어렵군. 일시적으로 맺을 수 있어도 항구적인 것은 될 수 없나……."
  "명분은 반란군에게 있겠지.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취하라고 설득해도 언젠가는 파탄할 거라 에리히는 상정하고 있어. 5년은 유지될지……. 그럴 경우 양국 감정의 골은 극심한 것이 되겠지.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통일을 생각하는 편이 묘한 응어리가 남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리텐하임 후작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우울해지는 이야기다. 듣는 것만으로 우울해진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에리히의 고생은……. 정신을 차리니 나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언젠가는 평민들의 인권 존중을 지키는 법을 황제 칙령으로 발포할 필요가 있다고 에리히는 말했었어요."
  아말리에가 말을 꺼냈다. 내가 지쳤다고 생각했는가…….

  "반란군을 물리치고 통일한 후엔 그들을 안심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래도 그게 필요하다고. 그것 없이 신영토 통치는 불가능하다고.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새로이 인권 존중을 지키는 법을 발포하는 걸로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사실상 폐법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칙령이라는 형태로 법에 무게를 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었어요."
  "……."
  "에리히에게 있어서 개혁은 국내 문제의 해소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반란군을 쓰러뜨리고 우주를 통일하기 위한 밑준비인 거겠죠."

  리텐하임 후작이 고개를 늘어뜨렸다. 기분은 알겠다.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어처구니 없는 당주를 가졌다.
  "후작, 커피가 식는다. 마시지 않겠는가?"
  "……그렇군. 마시도록 할까."
  넷이서 커피를 마셨다. 쓰다. 그리고 식었다. 이 무슨 맛 없는 커피인지. 그래도 커피를 마시는 걸로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하지만 통일이 가능한 건가? 간단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리텐하임 후작의 말에 후작부인이 끄덕였다.
  "여차 하면 이제르론 요새를 반란군에게 넘겨준다는 것 같다."
  리텐하임 후작과 후작부인이 믿을 수 없는 거라도 봤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우스웠다. 웃었다. 오랜만에 웃은 기분이 든다.

  "웃을 일이 아니네. 대공."
  "나도 에리히에게 그렇게 말했지. 웃을 일이 아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
  "이제르론 요새 함락 후, 모략을 걸어 반란군이 대규모 출병을 하게 만든다는 것 같다. 병력은 최소한이라도 8개 함대 정도일까. 그걸 제국령 깊숙이 유인하여 섬멸한다."
  후작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다시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에리히도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도 후작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150년, 일방적으로 침공을 받았던 거다. 입장이 역전된다면 그 녀석들, 꽤나 마음이 설레겠지."
  "……."
  "그걸 꼬드기는 거다. 제국은 혼란에 빠졌다고 말하고 말이지. 불가능하진 않아."
  "……."
  언제부턴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후작이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 뜨고 있다.

  "한 번 커다란 손해를 입으면 간단하겐 회복할 수 없어. 인구 감소도 있지만 재정 문제도 있을 터다."
  "하지만 이제르론은 어떻게 할 건가? 저 것이 반란군에게 있어선 간단하게 공략할 수 없어."
  리텐하임 후작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는 걸 눈치챈 것 같다.

  "이제르론 요새는 공략 가능하다."
  "설마……."
  후작도 후작부인도 경악하고 있다.
  "그 점은 군무상서도 통수본부총장도 알고 있어. 공략안을 생각한 건 에리히다."
  "……모든 것은 이미 계획대로, 라는 건가."
  "……."

  그런 거다. 망연한 리텐하임 후작과 후작부인을 보면서 생각했다. 에리히는 모든 걸 계획하고 있다. 언젠가는 국내를 개혁하고 반란군을 정벌하여 새로운 은하제국을 만들겠지. 인류사상 최대의 제국,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는 제국. 그리고 에리히가 만든 제국은 최전성기를 맞이할 것이 틀림 없다. 하지만 그걸 만들어낸 인간은……, 한숨이 나왔다.



제국력 488년 5월 16일. 오딘. 발터 폰 쇤코프



  페르너 대령이 안내한 가게는 무척이나 지저분한 가게였다. 품행이 좋지 않아 보이는 손님이 잔뜩 있다.
  "여기는?"
  "주로 평민들이 이용하는 가게다. 점심에는 식사지만 밤에는 술을 마시는 손님이 온다. 마시고 푸념을 늘어놓고 시름을 푸는 거지."
  "그렇군. 그래서 우리들도 이런 복장을?"
  "그런 거다."

  나도 페르너 대령도 군복이 아니다. 극히 눈에 띄지 않는, 결코 상등품이라 할 수 없는 사복이다. 이걸 준비한 건 페르너 대령. 이걸 입고 나갈 준비를 하라고 들었지만. 글쎄……. 입구 근처에 있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맥주와 카르토펠푸퍼(Kartpffelpuffer)와 린다 룰라드(Rinder Rouladen)를 페르너 대령이 주문했다. 메뉴도 보지 않고 주문하는 걸 보면 꽤나 자주 오는 가게인 거겠지.

  "여기에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쇤코프 대령."
  페르너 대령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작은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평민들의 반응을 알기 위해 왔다. 대충 그런 건가. 입구 근처에 앉은 건 언제든 도망치기 쉽도록, 들어오는 녀석을 확인하기 위해서겠지."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답하자 씨익하고 대령이 웃었다. 합격일까?

  "나는 안톤이라고 불러. 나도 당신을 발터라고 부르지."
  "알았다."
  합격이다.
  "여기에 온 이유는 하나 더 있어."
  "호오, 그건?"
  "여기 린다 룰라드는 맛있다. 너도 한 번 맛보면 알 거야. 중독 된다고."
  "그거 기대 되는군."

  왠지 모르게 즐거워졌다. 맥주와 음식이 나왔다. 건배를 하고 린다 룰라드를 한입 먹었다.
  "그렇군. 맛있다."
  페르너 대령이 웃었다.
  "그렇지? 한 번 더 건배다."
  한 번 더 건배하고 다시 한 입 먹었다. 맛있다. 확실히 중독될 것 같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 이번 개혁은, 저건 대체 뭘까? 귀족을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보여. 확실하지가 않단 많이지."
  "영지를 몰수했는데?"
  "하지만 빚은 탕감됐고 융자도 거저 준다는 거지? 밑천 한푼 안 들이고 몽땅 벌어들인 거잖아."

  벌써 시작 됐나. 중앙 쪽의 남자가 두 사람,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다. 주변에도 끄덕이고 있는 사람이 몇 명 보인다. 젊은 쪽이 불만을 토하고 있다. 페르너 대령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가 끄덕였다. 이번엔 카르토펠푸퍼를 먹어봤다. 이것도 좋다. 가게가 지저분한 것에 비해 번성하고 있는 건 요리가 맛있기 때문이겠지. 뭐, 여자를 데려올 가게는 아니지만 남자끼리라면 문제 없는 가게다. 다음에 린츠들을 데리고 오자.

  "세금을 내잖아. 군대도 없어졌고 농노도 없어졌지. 귀족이라고 해도 부자와 뭐가 다른 거지? 작위가 있을 뿐이잖아."
  "뭐, 그렇게 말하면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석연찮단 말이지!"
  젊은이가 맥주를 벌컥하고 마시고는 탕하고 소리를 내며 맥주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이곳저곳에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진정하라고. 영지민들은 기뻐하고 있을 거야. 더 이상 귀족의 빚 변제를 위해 착취 당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놈들의 말도 안 되는 재판으로 울 일도 없어. 이건 하늘과 땅 차이라고. 그렇잖아?"
  "응, 뭐 그렇지만."
  젊은이가 마지못해 끄덕였다. 주변도 마찬가지다. 끄덕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꽤나 관심을 가지고 있군."
  "당연하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평민 출신이다. 그들에게는 공작이라면 자신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어줄 거란 기대가 있어."
  "불만도 있는 것 같은데."
  "자칫 잘못하면 제국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는 거다. 그걸 피하면서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 거야. 간단하겐 되지 않지."
  괴로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개혁 내용은 나도 듣고는 있다. 확실히 간단하지는 않다. 고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보다 영지 개발에 이익의 30%가 쓰이게 되었단 거다. 그 사실이 더 중요하겠지. 지금까지는 영지 개발 따위 손 놓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기왕 할 거면 50%로 해줬으면 했어. 30%라니 어중간하잖아."
  젊은 남자가 투덜거리자 이곳저곳에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50%라고 하면 귀족들이 받아들었을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0%라고. 0%보단 30%인 편이 더 좋잖아."
  "뭐, 그렇긴 하지만."
  "조금씩이지만 더 좋아지고 있는 거야. 너무 불만을 토하지 말라고. 공작 각하도 고생하고 있는 거니까."
  "알고 있다고. 그런 건."
  삐진 듯한 어조였다. 어리광을 부리는 건가. 중년 남자는 직장 선배인가.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직장 상사와 부하일까?"
  "……뭐, 그런 거겠지."
  "한 잔 더 어떤가? 안톤."
  "그러지. 그리고 마울타셰(Maultasche)도 주문하지. 이것도 맛있다."
  "기대되는군."

  "개혁도 중요하지만 포로 교환도 잘 됐으면 좋겠구만. 지인 중에 포로가 된 녀석이 있어."
  "나는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말하는 게 대본 읽는 것 같더군. 조금 더 마음을 담아서 말해주면 신뢰할 수 있는데 말이야."
  젊은 녀석의 말에 중년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무례한 말을 하는구만. 저렇게 광역 통신으로 선언한 거다. 한다는 거 아니겠냐? 뭐, 반란군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문제지만."
  "뭐, 그렇지만."
  "정부도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거다. 좋은 일 아니냐."
  "좀 더 빨리 가져줬으면 좋았겠는데."
  다시 중년 남자가 웃었다.



  맥주를 마시고, 서빙 된 요리를 모두 비우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으로 돌아가자 페르너 대령은 바로 공작 개인실로 향했다. 오늘의 결과 보고다. 개인실에선 공작이 군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수고했습니다. 그래서?"
  "뭐, 지금으로선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개혁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페르너 대령의 보고에 공작이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플레겔 내무상서에게 감사해야겠죠. 잘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
  묘한 대화다. 무슨 뜻일까? 공작과 페르너 대령이 날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뭐지. 뭐가 있는 거지?

  "쇤코프 대령, 가게에서 대화하고 있던 두 사람의 남성이 있었겠지. 중년 남성과 젊은 남성이다."
  "그래, ……설마?"
  "그 설마다. 그 두 사람은 제국 내무성, 악명 높은 사회질서유지국의 직원이다. 제국 안의 이곳저곳에서 내무성 직원이 같은 일을 하고 있어. 저곳은 사람이 넘쳐나서 말이야. 인원부족을 걱정할 일이 없다."
  사회질서유지국! 내가 말을 잃자 공작이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여론의 조작, 유도입니까?"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보일지도 모릅니다만, 저로선 개혁 내용을 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들이 개혁 내용을 잘못 이해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개혁의 의도를 왜곡하여 평민들에게 전해지면 곤란한 겁니다."

  의도를 왜곡한다? 세론의 조작, 유도를 하고 있는 건 공작이 아닌건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군요. 그걸 막으려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죠?"
  개혁에 반대하는 자들이로군. 그렇단 건……. 페르너 대령이 재밌다는 듯이 날 보고 있다. 또 시험을 받고 있다.

  "문벌귀족들, 입니까."
  "그들도 있지요."
  그들도 있다? 그 외에도 있다는 건가. 대체 누구지?
  "모르겠습니까?"
  "……."
  "문벌귀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자. 그들에게서 커다란 이익을 얻고 있는 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커다란 이익……, 이익! 그런가. 그런 건가.
  "페잔이군요."
  공작과 페르너 대령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합격인가. 제국에 온 뒤로 시험만 받고 있군.

  "보다 정확하겐 페잔의 자치령주 정부, 대기업입니다. 자치령주 정부는 제국이 강대해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기업에게 있어서 문벌귀족은 귀중한 단골 손님입니다. 그들이 약체화되면 이익이 줄어듭니다. 경우에 따라선 생사 문제가 됩니다."
  "……."
  당연하지만 녀석들에게 있어서 눈앞의 청년은 눈엣가시겠지.

  "비교적 호의적인 건 독립상인을 중심으로 한 영세 기업입니다. 그들은 개혁에 의해 장사 기회가 늘어나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내가 답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웃음을 지었다.

  "잘 오셨습니다. 쇤코프 대령. 이것이 제국입니다. 정부, 귀족, 군인, 평민, 페잔이 섞여 다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밖에는 자유행성동맹이라는 적이 있습니다."
  "……."
  동맹에게 있어서도 눈앞의 청년은 눈엣가시일 터다. 이 무슨 적이 많은 자인지. 다들 그를 죽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그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앞으로 개혁이 진행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를 둘러싼 환경은 지금 이상으로 험해지겠죠. 그 사실을 이해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내가 답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뤼네부르크가 말한 대로였다. 실수를 저지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건 그렇고 주변에 적밖에 없다는 상황인데도 두려워하는 모습이나 한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외견과 달리 꽤나 담이 큰 모양이다. 아니, 적의 총기함에 침투하기도 한 자다. 겁쟁이일 리가 없나. 재밌어졌군. 눈앞의 청년이 어디까지 갈지 보고 싶어졌다. 동맹에선 맛볼 수 없었던 즐거움이다. 임관한 보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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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5월 1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플레겔 내무상서



  우리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거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하기 시작했다.
  "현재 제국, 반란군은 각각 200만 명 정도의 포로를 품고 있습니다. 그걸 교환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부탁드리고 있는 겁니다."
  "200만? 그렇게나 많은 건가."
  리텐하임 후작이 어이 없단 듯이 말했다. 다들 놀라고 있다. 200만 명이라고 하면 꽤나 많은 숫자다. 그보다 인구가 적은 유인행성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매년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다. 그 정도는 될지도 모르겠군."
  "오히려 적은 편이겠죠. 우주 공간에선 산소가 없으니까 사람은 간단히 죽습니다. 한 번의 회전에서 수백만 명이 싸운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많다곤 할 수 없습니다."
  룸프의 중얼거림에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이 답했다. 그렇군. 한 번의 회전에 10만 명이라고 치고, 매년 2회 전쟁이 있다면 1년에 20만 명의 포로가 발생한다. 10년으로 200만 명이다. 그렇다면 한 번 회전 당 포로 숫자는 더욱 적다는 건가…….

  "그 대부분이 하급귀족과 평민입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포로를 교환하는 것으로 평민들을 다독이려는 건가."
  "그런 의도도 있습니다. 그것도 있습니다만, 아버님. 정부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이해한다면 병사들의 사기 향상으로도 이어집니다."
  다들 끄덕였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그렇군"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좋겠지. 공작의 설득만으로는 평민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 표로 교환을 행하는 것으로 그것이 해소된다면 할 가치는 있다. 어떤가?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
  리히텐라데 후작이 두 사람의 원수에게 시선을 향하자 두 사람이 "동의합니다", "이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후작이 다른 참가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재무상서로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포로 교환에 다소 비용은 발생하겠죠. 하지만 포로를 교환하여 받으면 200만 명의 납세자, 소비자, 생산자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포로는 아무런 사회적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요."
  게르라흐 자작의 말에 응접실에 희미한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너무 솔직하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긴 하다.

  "그럼 군부에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끊었다. 공작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응접실에 미세한 긴장감이 일어났다.
  "포로교환은 군부 주도가 아니라 정부 주도로 부탁드립니다. 떠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실무는 군부에서 해도 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부 주도라는 형식으로 부탁드립니다."

  글쎄. 어찌된 일일까? 포로 교환, 군부 주도가 아니라 정부 주도? 공작은 싫어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실무는 군부에서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나 뿐만이 아니다. 다들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어찌된 거냐? 에리히.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
  대공이 묻자 공작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버님. 포로 교환을 군부 주도로 실행하면 평민들은 이것이 제 발안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게 뭐 어때서?"
  대공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당연한 말을, 이라는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평민들의 지지가 정부가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 제국에는 240억 명의 인간이 있습니다만, 그 대부분은 평민인 겁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어조에 다들 숨을 삼켰다. 어조만이 아니다. 표정도 험해지고 있다.

  "지금은 아직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눈치챌 것입니다. 가장 먼저 개혁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소란을 피울 테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평민들을 꼬드겨 지지를 모아 황위 찬탈을 노리고 있다고. 개혁을 중단시키는 데에는 가장 효과적인 중상, 비방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에 대한 중상, 비방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평민들은 개혁 계속을 바라며 저를 지키기 위해 단결할 겁니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귀족들이 바라던 바겠죠. 그들은 평민들을 위험분자로서 탄압하고 개혁 중지를 바랄 겁니다. 찬탈을 막기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다들 굳어서 움직이지 못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아니 그 이전에 평민을 너무 경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하나로 뭉쳐 한 개인을 숭배하는 일이 일어나면 확실히 위험하다. 루돌프 대제가 은하제국을 성립시킬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연방시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누구나 평민을 무시하고 있었기에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로 뭉치면, 그걸 가능하게 할 인물이 나타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봤다. 반역을 일으킬 것 같은 패기나 야심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공작이라면 가능하겠지. 우주함대는 공작의 휘하에 있다. 그리고 능력도 있다.

  "확실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대로군. 리히텐라데 후작. 이건 정부 주도로 행할 수밖에 없다."
  "그건 좋지만 정부 주도라고 해도 뭘 해야 좋을까. 실무는 군부가 한다고 하면……."
  리텐하임 후작의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곤혹스럽다는 듯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봤다.

  "주로 평민에 대한 통지겠지요. 일단 많은 병사가 포로가 되어 남아있는 가족을 괴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정부도 그걸 걱정하고 있다는 점, 포로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전하여 포로교환을 반란군에 제안한다고 발표합니다."
  "음. 그래서?"
  "다음으로 반란군이 포로교환을 승인한 시점에서 그 사실을 발표하여, 가족에 대하여 조금 더 참으라고 전합니다."
  "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인다.

  "포로 교환이 시작된 시점에서 포로에 대해 포로 교환이 늦어져 괴롭게 한 점을 사죄하고 금일봉, 일시 휴가를 지급하고 일계급 승진을 약속합니다. 그 뒤, 퇴역할지 군대에 복귀할지를 정하도록 하라고 전하는 겁니다."
  "그렇구먼. 꽤나 좋은 대우다. 하지만 평민들을 다독이기 위해선 그 정도는 필요한가."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은 비아냥이 아니겠지. 확실히 좋은 대우다. 다들 동의하는 듯이 끄덕이고 있다.

  "이러한 정부 발표를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나인가. 대변인은 안 되는 건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놀라고 있다. 그걸 보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후작이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확실하게 답했다. 다들 다시 한 번 서로를 돌아봤다. 아직 무언가가 있다. 공작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평민들은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어디까지 개혁에 진심인지를. 그 이유 중 하나가 정부 수반인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들 숨을 삼키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불쾌하단 듯이 표정을 찡그리며 "무슨 뜻이냐?"며 물었다.

  "후작은 지금까지 궁내상서, 내무상서, 재무상서를 역임하고 국무상서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개혁을 해온 것은 아닙니다. 개혁을 실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점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민들은 그걸 모릅니다."
  "그렇군. 그렇기에 평민들의 지지가 정부가 아니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향하고 있다는 건가."
  리텐하임 후작의 말에 "그렇습니다"며 공작이 끄덕였다.

  "여기서 리히텐라데 후작께서 평민들에게 발언을 하신다면, 평민들도 후작이 자신들을 생각해준다는 걸 알고 안심하겠죠. 후작만이 아닙니다. 다른 정부 각료도 적극적으로 평민들에게 말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 사실이 평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집니다. 그런 만큼 개혁도 하기 쉬워집니다."
  공작이 입을 다물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이런. 대중 연설은 거북하지만 어쩔 수 없나."
  리히텐라데 후작이 투덜거렸다. 그 모습에 다들 실소했다. 후작이 "웃다니 너무한 녀석들일세. 남의 일이 아니란 말일세"라고 다시 투덜거렸다. 확실히 나에게도 불똥이 튈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실소가 멈추지 않는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잠시 동안 응접실을 정적이 지배했다. 다들 제각각의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 안도하고 있는 자, 깊게 생각하고 있는 자, 졸린 표정을 짓고 있는 자…….
  "일단은 일단락, 그렇개 봐도 좋으려나?"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모두를 둘러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일단락,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불안은 남았다. 귀족들을 믿을 수 없다. 평민들을 믿을 수 없다. 그런 점이다. 다들 입을 다문 것도 같은 생각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걸로 어떻게든 내년부터의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은 무사히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러나? 무슨 일이 있는가. 에리히."
  대공의 질문에 공작이 침통한 표정으로 숨을 내쉬었다.
  "아버님. 유감스럽지만 진짜 혼란은 내년부터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군대를 움직이게 되겠죠."
  응접실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다들 조용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보고 있다.

  "어떻게된 거냐. 무슨 이유에서?"
  대공이 억누른 목소리로 의붓아들에게 물었다. 공작이 다시 숨을 내쉬었다.
  "귀족들이 얌전히 수익의 40%를 내놓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흑진주 홀에서 녀석들의 표정을 봤지만, 다들 불만스러워 보였습니다. 만약을 위해 안스바흐 준장에게 조사하게 했습니다만, 정부를 속인다, 지금 이상으로 이익을 올린다, 등등을 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공이 "뭐시라"라며 신음소리를 울리고 리텐하임 후작이 "말도 안 되는"이라고 말하며 큰 소리를 내며 허벅지를 때렸다. 짜증내고 있다.
  "이익따윌 간단하게 올릴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무리를 하다가 실패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겠죠. 당연합니다만 정부에 대한 10%의 지불, 영지 개발에 대한 자금도 낼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영지 경영에 실패했다는 게 됩니다."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룸프 사법상서가 "이 바보 놈들이! 모처럼의 온정을 무위로 돌릴 생각인가!"라고 내뱉었다.

  "영지 경영 실패인가……, 몰수로군."
  "예."
  "저항하면 반란으로 보고 박살인가."
  "예."
  대공과 공작의 대화는 담담했다. 그리고 그만큼 무겁게 울렸다.

  "……어느 정도의 귀족이 살아 남을 거라 보고 있나?"
  "제국 귀족 4천 가문 중, 영주로서 남는 건 절반도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상은……, 뭐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너는 일찍이 이걸 예상하고 있었는가?"
  "……저 법은 영주로서의 능력, 자각, 책임을 가지고 있는 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없는 귀족은 그 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배제되게 되겠죠."
  공작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향했다. 하지만 공작은 두려워하는 일 없이 태연하게 그걸 받아들였다.

  "오해하지 마시길. 귀족을 싫어하기에 저 법을 만든 게 아닙니다. 우주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 법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전쟁을 없앤다? 잘못 들었나? 당황하며 다른 이들을 둘러봤다. 다들 놀라고 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공작은 확실하게 전쟁을 없앤다고 말했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은 아연하게 의붓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가. 이 우주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인가. 그러기 위해선 저 자들은 방해인가. 그렇기에 배제한다는 건가……."
  "……."
  "그런가. 포로 교환도 평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란 건가. 눈치 채지 못했다. 이 무슨 어리석은 자인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알겠다. 나는 막지 않겠다. 아니, 막지 못한다. 에리히, 네 마음대로 하도록 해라."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의 말에 리텐하임 후작이 "대공!"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대공은 고개를 저었다.

  "리텐하임 후작, 그리고 그대들도 듣길 바란다."
  "……."
  "이대로 가면 제국은 붕괴한다."
  생각치도 못한 말이다. 다들 숨을 삼켰다.
  "……그건 개혁을 실행해도 입니까?"
  "개혁을 해도다. 플레겔 내무상서. 얼마 전에 에리히에게서 그걸 지적 당했다. 나는 부정하지 못했다. 신경이 쓰여 조사했다. 확실히 이대로 가면 제국은 붕괴하게 되겠지. 상황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나쁘다. 설마 이런 위기가 닥쳐오고 있을 줄은 생각치 못했다. 인식이 얕았어……."

  다들 굳었다. 대공은 굉장히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붕괴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태는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떻게된 일입니까?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데 어째서 제국이 붕괴한다고?"
  "인구 감소다. 군무상서. 이대로 가면 언젠가 제국은 국가로서 유지할 수 못하게 돼."
  생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 인구 감소?

  "일찍이 이 은하에는 3,000억을 넘는 인간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제국, 반란군, 페잔을 모두 합쳐도 400억을 넘지 못하는 사람밖에 없어. 장기간에 걸친 전쟁과 혼란에 의해 인구는 약 10분의 1까지 감소했다."
  10분의 1, 그 말이 귀에 울렸다. 그렇게 줄어들었단 건가.

  "더욱이 위험한 건 성인 남성이 극심히 감소되었단 점이다. 남성이 너무 적어. 남녀 균형이 맞지 않는 거다."
  비명과도 같은 어조였다.
  "결혼하지 못하는 여성,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 가정을 가지지 못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어. 우리들 귀족은 거리에 나가지 않으니 모르겠지만, 제국령내에선 남성이 압도적으로 적다. 이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대공의 목소리는 쓴물을 삼키는 것 같았다.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면 전사하는 성인 남성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성이 늘어날 뿐이다. 다시 말해 새로 태어나는 인간은 계속 줄어들어 인구 감소에 브레이크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 에리히가 포로 교환을 꺼낸 것도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이겠지. 200만 명의 성인 남성이 돌아온다. 하지만 위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도 50년 후에는 인구 감소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있겠지. 100년 후에는 제국을 붕괴시킬 수밖에 없는 사태까지 심각해질 것이다. 150년 후에는……."
  대공이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게 제국은 붕괴한다는 건가……. 암담하고 있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그 뒤는 제가 말하도록 하죠"라고 말했다.

  "제국이 붕괴되면 인류는 행성 단위에서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지역에 따라선 중세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될수도 있다는 겁니다. 간단한 질병으로도 사람들은 죽겠죠. 전염병이 일어나면 무인 행성이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변경성역은 심각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제국에선 인류는 비교적 발전하고 있는 제국 중심부에 점점히 생존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 혼자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람이 있다. 표정은 다들 어두웠다.

  "이걸 막기 위해선 전쟁을 끝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 강화인가, 통일인가 입니다. 바로 가능한 건 강화입니다. 인구 감소는 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반란군도 같은 상황일 겁니다. 인구가 적은 만큼 저쪽이 더 상황이 어려울 테죠. 교섭에 따라선 강화, 혹은 휴전은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귀족들이 방해물인가."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끄덕였다.
  "그들은 반란군과 교섭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겁니다. 그들에게 있어선 천재일우의 찬스입니다. 우리들을 실각시키고 개혁을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할 테죠. 그리고 페잔은 그런 그들을 부채질하여 제국을 혼란에 빠드리려 할 것입니다."
  공작의 말에 신음소리가 울렸다. 확실히 그 말이 맞다. 강화 따위 페잔에게 있어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반드시 귀족들을 부추길 것이다.

  "그렇구먼. 그렇기에 저 법을 만들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공작의 제안을 게르라흐 자작에게서 들었을 때, 공작의 목적은 눈치 챘다. 귀족들을 배제하려는 거라고 말이지. 무척이나 분노하고 있다고는 생각했으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는가……. 인구 감소인가. 눈치 채지 못했다……. 둔해졌구먼. 나도 나이를 먹었나."
  놀랐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눈치 채고 있었는가. 둔해졌다? 그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우리들은 뭐란 거지? 후작이 국무상서의 지위에 있는 건 당연하다는 건가. 새삼 리히텐라데 후작의 대단함을 실감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대단함도.

  "그럼 그 자들을 배제한 뒤에 강화를?"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이 묻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강화는 일시적인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선 인구 감소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선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무상서와 통수본부총장이 크게 끄덕였다. 두 사람은 군인이다. 강화라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공작에게도 같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에도 그들이 방해가 됩니다. 반란군을 항복시키기 위해선 대규모 군사행동이 필요합니다. 당연하지만 제국령내의 군사력은 옅어집니다. 그 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쿠데타, 입니까."
  내가 묻자 공작이 끄덕였다.

  "반란군을 쓰러뜨리고 우주를 통일하면 그들은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전에 쿠데타를 일으켜 우주함대를 고립시킵니다. 함대사령관은 누구나 하급귀족이든가 평민입니다. 보급을 끊고 죽게 내버려두는 짓 정도는 태연하게 해주겠죠."
  다시 신음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병사를 잃게될 것인가. 인구 감소에 박차를 가하게 되겠지.

  "그리고 대규모 군사행동을 일으키게 된다면 그걸 지탱할 수 있을만한 재정면에서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공작의 말에 게르라흐 자작이 끄덕였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것 없이는 통일은 불가능합니다만."
  "귀족들을 배제하고 그 영지를 제국 직할령으로 함으로서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게르라흐 자작."
  게르라흐 자작이 "그건"이라고 신음하듯이 말한 뒤, 창백해지며 끄덕였다. 자작만이 아니다. 다들 창백해져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모든 걸 생각하고 그 법을 만든 것이다.

  "그런가. 거기까지 생각했단 건가. 언젠가 녀석들도 눈치 채게 되겠지. 함정에 빠졌다고 말이야. 너는 그들에게 원망을 받을 게야. 그것도 각오한 바인가?"
  "예."
  "……불쌍한 녀석이군. 너는 지나치게 앞까지 보고 있어. 그리고 그것 가만히 놔두지도 못하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버님."
  대공이 고개를 저었다. 불쌍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책망하는 것이 아니야. 불쌍히 여기고 있는 거다. 너를 양자로 들인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제국은 안정됐다. 번영도 하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도 멸문하지 않고 끝날 것이다. 감사하고 있어. 인류는 언젠가 너에게 감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너 개인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지. ……너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했다. 미안하군. 용서해라."
  대공이 고개를 숙이고 공작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불행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나라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바란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님.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이 길은 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요."
  쥐어 짜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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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4월 30일. 오딘. 발터 폰 쇤코프



  감시역의 정보부원 2명과 함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을 나왔다. 대원들이 있는 숙사로 가기 위해 지상차에 탑승하자 뤼네부르크도 올라 탔다. 정보부원이 놀랐다.
  "뤼네부르크 각하?"
  "됐으니 출발해라. 이 녀석과 그 동료에게 할 말이 있어."

  감시역이 서로를 돌아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상차를 출발시켰다.
  "뭐냐. 이야기란."
  "……."
  정보부원이 다시 놀랐다. 포로가 대장에게 반말을 쓰고 있으니 무리도 아닌가. 우리들의 관계를 모르겠지. 아니, 정보부원이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놀라나. 놀라겠지.

  "내게 이야기해두면, 녀석들에겐 내가 말하지."
  "……."
  뤼네부르크는 팔짱을 끼고 말없이 눈을 감고 있다. 여기선 말할 수 없다. 혹은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런 건가. 두 사람의 정보부원도 말이 없다. 차내 분위기가 미묘하게 긴장됐다.

  숙사에는 15분 정도로 도착했다. 정보부원이 노골적으로 안심한 표정을 짓는 것이 웃겼다. 이 숙사는 정보부가 포로를 신문할 때 쓰는 시설이라는 것 같다. 우리들은 한 방에 두 사람씩 갇혀있다. 하기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우리들을 스카웃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노골적인 포로 취급은 받고 있지 않다. 숙사 밖으론 나갈 수 없지만 숙사 안이라면 행동은 자유롭다.

  회의실에 전원 집합한 대원들이 뤼네부르크를 보고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만 뤼네부르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다시 말해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뤼네부르크가 말하겠다는 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이야기했다. 기뻐해라. 우리들은 제국 군인이 되기로 결정 됐다."
  회의실이 고요해졌다. 제국 군인이 된다. 바라던 바, 각오했던 바이긴 하지만 의외일 정도로 무게가 있었다.

  "결정 사항인 거군요."
  "결정 사항이다. 린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미 에렌베르크 군무상서와 조율하고 있어. 내일이라도 인사가 발령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엔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빠르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뤼네부르크 각하의 부하, 라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크로네커가 뤼네부르크를 힐끔 보면서 질문했다. 다른 녀석들도 뤼네부르크를 보고 있다. 한 번은 연대장으로 모셨던 몸이다. 그 뒤엔 밴플리트, 이제르론에서 적으로 인식하고 싸웠다. 복잡한 마음이 있겠지. 공작이 우리들을 자신의 밑에 두겠다고 한 건 그 부분을 고려한 걸지도 모른다.

  "아니다. 우리들은 제국군에 정식으로 입대한 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맡겨지게 된다. 임무는 평상시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의 경비, 이건 우리들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비를 담당하던 자들과 협력하여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전시엔 총기함 포르세티에 탑승한다. 나는 막료로서, 너희들은 함내 보안임무에 임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흥분하고 있다. "대단하군", "믿을 수 없어"라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총기함 포르세티에 탑승한다는 게 가장 놀랄 일이겠지. 실제로 포로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우라고 해도 좋다. 그 때였다. 뤼네부르크가 "들뜨지 마라!"라고 모두에게 일갈했다.

  "들뜰 일이 아니야. 네놈들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을 경호한다는 것의 의미, 총기함 포르세티에 탑승한다는 의미를 알고 있는 건가? 알고서 들뜨고 있는 건가?"
  "……."
  "모른다면 들뜨지 마라."
  뤼네부르크가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쇤코프, 네놈은 알겠는가?"
  "우대 받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뤼네부르크가 혀를 찼다.
  "네놈은 바보냐. 그런 건 삼척동자도 알아. 내가 말하고 있는 건 네놈들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을 경비한다는 것의 정치적 의미다."
  정치적 의미인가…….

  "제국 굴지의 권력자, 명문 귀족을 경호하게 된다. 나름대로의 신뢰를 받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0점이다. 쇤코프. 어이가 없군."
  "……."
  시비 걸고 있는 건가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뤼네부르크는 차가운 시선으로 날 보고 있다. 어이 없다고 하는 건, 분하지만 진심이겠지.

  "알겠나? 여긴 동맹이 아니야. 제국이다. 동맹처럼 사람은 평등하다는 둥, 달콤한 개념은 없어. 제국은 황제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계급사회인 거다. 그걸 명심해라."
  "……그렇군."
  "이 제국에서 권력자라 불리기 위해선 황제와 극히 친밀한 관계를 쌓는 것이 필요 불가결이다."
  다들 뤼네부르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정치적, 군사적인 능력에 대한 신뢰. 혈연, 인척 관계에 의한 신뢰. 애정에 의한 신뢰……. 이 제국에서 황제의 총희가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가능한 것도 그때문이다. 동맹이라면 최고평의회 의장의 애인이 권력을 휘두르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알겠나? 확실하게 명심해라. 제국 정도로 인간관계가, 그에 의한 역학관계가 중시되는 세계는 없어."
  무게 있는 말이다. 뤼네부르크가 역망명자면서 제국군 대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의 친밀한 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제국 굴지의 대귀족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작을 제국 굴지의 권력자라고 확언할 수는 없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선대 대공이 황제 프리드리히 4세 폐하의 황녀, 아말리에 님과 결혼했다. 두 분 사이에는 따님, 엘리자베트 님이 있다. 당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혼약자다."
  뤼네부르크가 "알겠냐"라고 우리들에게 물었다. 변함 없이 시선은 차갑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황제와 인척 관계에 있다. 극히 친밀한 관계에 있다. 그런 거로군."
  내가 답하자 뤼네부르크가 끄덕였다.
  "그래. 공작은 평민 출신이지만 황제 폐하에게 있어선 의붓이라곤 해도 손자가 된다. 군부에선 원수, 제국군 3장관 중 한 명으로서 우주함대를 맡고 있는 몸이다. 그리고 지금, 제국에선 황족이 적어. 당연하지만 그 배우자의 존재는 굉장히 크다."

  그렇군, 이라고 생각했다. 대귀족, 황손과의 인척 관계, 그리고 우주함대 사령장관. 무엇 하나만 취해도 황제와의 관계는 가깝게 되겠지. 그걸 전부 갖추고 있다. 젊지만 제국 굴지의 권력자라는 건 그런 건가. 군인으로서의 평가만은 아닌 거다. 동맹에 있으면 볼 수 없는 사실이군.

  "그럼 쇤코프, 다시 한 번 네게 묻지. 너희들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을 경비한다는 것의 정치적 의미는 뭔가?"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뤼네부르크는 변함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이 제국을 이해하고 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것 같다. 섵부른 대답은 할 수 없다.

  "황족 두 명을 포함한, 무엇보다 황제 폐하에 가까운 분들이 사는 저택을 경비하게 되었다.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분들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으며 신뢰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런 건가."
  "흥"이라며 뤼네부르크가 코를 울렸다.
  "50점이군. 장래성이 있다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못난 녀석이다."
  다들 쓴웃음을 짓는 걸 알 수 있었다. 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꽤나 점수가 짜지 않나?"
  "점수가 짜? 바보 같은 소릴. 오히려 너그러울 정도다."
  흠. 뤼네부르크의 시선은 변함 없이 차감다. 놀리고 있는 건 아니군. 대훤들도 눈치 챈 거겠지. 모두의 얼굴에서 쓴웃음이 사라졌다.

  "나는 뭔가 놓치고 있는 건가?"
  "그래. 놓치고 있어. 말했을 거다. 제국 정도 인간관계가, 그에 의한 역학관계가 중시되는 세계는 없다고."
  "……."
  확실히 그런 말을 했었지. 인간관계, 역학관계인가……. 뤼네부르크는 뭘 나에게 전하려고 하고 있는 거지? 뤼네부르크가 한 발자국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너는 공작과 너희들의 관계를 이해했다. 그렇다면 그걸 한 발 더 나아가서 봐라. 우리들과 너희들 이외의 인간관계, 역학관계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런가, 그런 건가."
  내가 한숨을 내쉬자 뤼네부르크가 "겨우 이해했나 보군"이라며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너희들을 받아 들여 너희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너희들은 공작의 뒷배경을 얻은 거다. 그건 귀족, 정치가, 군인, 평민, 모두가 이해할 것이다. 누구도 너희들을 모욕할 수 없을 거다. 그런 짓을 하면 공작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오프레서 장갑척탄병 총감도 너희들을 보고 인상은 찌푸려도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런 짓을 하면 오프레서라도 목이 날아간다. 그게 제국이다."
  그게 제국인가……. 직위나 지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들뜨지 마라."
  뤼네부르크가 엄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모두에게 시선을 던졌다.
  "본래라면 너희들은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을 인간이다. 거짓말이 아니야. 내가 좋은 예시다. 망명하고 3년, 단 한 번도 전장에 나가지 못하고 생죽음을 당했다. 겨우 전장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쩔 도리도 없는 짐덩이 함대에 배속되었다. 그 뒤에도 노골적인 버림패 취급을 당한 적이 있다. 몇 번이나 절망했는지……. 다행히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공작과 만나지 못했다면 틀림 없이 나는 망명한 일을 후회하면서 미련 가득한 인생을 끝마쳤을 것이다. 이 제국의, 밑바닥에서."

  역시 그런가. 그 이제르론 사건으로 알게 된 거지만, 뤼네부르크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연결은 굉장히 강하다. 무엇이 두 사람을 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딜 봐도 접점은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다. 전장에서 서로를 도우는 과정에서 깊어진 인연이겠지.

  "제국은 정치적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평민의 권리를 확대하고 귀족의 방만을 통제하려는 거다. 주도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당연하지만 귀족들은 그 점을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너희들이 실수를 저지르면 귀족들은 마침 잘 됐다며 공작을 공격하겠지. 자칫 잘못하면 개혁은 좌절 될 수밖에 없다. 너희의 성패에 제국의 미래가 걸려있단 거다."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다들 얼굴이 굳어 있다. 아마도 나도 굳어 있겠지.

  "뤼네부르크. 다시 말해 우리들은 제국의 정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건가?"
  내가 묻자 뤼네부르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미 휘말려든 거다. 쇤코프. 너희들을 공작이 받아 들였을 때부터. 공작은 그 위험을 알고서 너희들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들의 입장은 처참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너희들도 그 위험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돼."

  다시 신음소리가 들렸다. 나도 신음하고 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우리들은 성가신 입장에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우리들에게 호의를 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들은 왼쪽 오른쪽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패거리라고 인정 받은 셈이다.

  "그러니 들뜨지 마라.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는 거다."
  "……."
  "공작의 걸림돌이 되었다간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 혹시 그렇게 된다면 그 땐……."
  "우리들을 죽일 건가?"
  뤼네부르크가 내 대답에 냉소를 지었다.

  "무르군. 쇤코프. 내게 죽임을 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난 그 정도로 상냥하지 않아. 스스로 뒤처리 해라."
  "……."
  "제국 굴지의 권력자를 실망시킨 이상, 너희들에게 미래는 없다. 이 제국의 밑바닥에서 비참하게 썩어 빠지든가, 혹은 전장에서 무참하게 버려지든가다. 그 자리에서 죽는 편이 낫겠지. 그것만은 보장한다."
  그렇게 말하고 뤼네부르크는 등을 돌려 회의실에서 나갔다.



제국력 488년 5월 1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플레겔 내무상서



  "겨우 끝났군요."
  재무상서 게르라흐 자작이 감명 깊게 말하자 브라운슈바이크 대공과 공작,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 룸프 사법상서,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 그리고 나 8명이 끄덕였다.

  "이 일에 관해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굉장한 수고를 끼쳤습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게르라흐 재무상서가 고개를 숙이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게르라흐 잽무상서야말로 수고하셨습니다."
  "황송합니다. 하지만 저따위보다 공작이 훨씬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건강을 잘 살피시길."
  게르라흐 재무상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걱정하자 공작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게르라흐 재무상서가 공작에게 감사하는 것도 당연하다. 막대하기까지 부풀어 오른 귀족 전용의 금융기관, 특별은행, 신용금고에서 귀족들이 받은 융자, 그리고 그 부정이용, 거기에 겨우 수술칼이 들어가 융자 자금 회수의 전망이 보였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법안을 작성하고 재무성이 법제화했다. 그리고 오늘, 그게 흑진주 홀에서 발표되었다. 정부의 재정 재건에도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영지를 잃은 귀족들입니다만, 의외로 얌전하더군요. 조금 더 반발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룸프가 고개를 갸웃하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미세하게 웃었다.
  "공작이 사전에 공작을 했으니 말이야. 영지는 없어지지만 빚도 없어진다. 융자 자금은 그대로 받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내무성에서 파견된다는 감찰관에게서도 해방된다, 고 말이야. 그 놈들, 어지간히 감찰관이 눈앳가시였던 것 같다. 의외로 간단하게 물러났어. 플레겔 내무상서. 경의 공적이구먼."

  응접실에 웃음 소리가 넘쳤다. 나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그들 스스로 알고 있는 거겠지요. 영지 경영은 앞으로 어려워질 거라고. 돈도 들지만 영민들의 불만을 이해하고 그걸 해소하는 방향으로 통치해야만 합니다. 꽤나 성가시겠죠. 그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입장이 편하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공작의 말에 다시 웃음 소리가 터졌다.

  "무책임한 놈, 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만 그들 덕분에 다른 귀족들도 얌전히 받아들어주었습니다. 영지를 잃은 그들이 받아들이는 거니까요. 영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허락된 자들은 불만을 말할 수 없겠죠."
  기분 좋아보이는 게르라흐 재무상서의 말에 다들 끄덕였다. 성가신 일이 하나 정리되었기 때문이겠지. 다들 표정이 밝다.

  "무책임이라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니군요."
  "극히 희소하지만 이런 일도 있는 거겠지. 평소엔 곤란하지만."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과 에렌베르크 군무상서의 대화에 이곳저곳에서 뿜는 소리가 들렸다. 참지 못하고 대공이 웃었다. 다들 그 뒤를 이었다.

  한바탕 웃은 뒤, 리히텐라데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 다음은 평민들에게 설명해야 하겠지만……."
  "산 넘어 산이군요. 여기서 실패해선 말짱 도루묵입니다."
  내가 뒤를 이어 말하자 다들 끄덕였다. 이번 발령된 법안은 귀족에게 있어서 반드시 불리하다곤 할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평민들에게 있어선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 하지만 평민들이 폭동이라도 일으켰다간 이번엔 귀족들이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 한 번 받아들였던 자들도 철회를 요구하게 되겠지. 마무리를 잘못해선 안 된다.

  "이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설명해줬으면 하네만."
  리히텐라데 후작이 약간 사양하는 느낌으로 발언하자 다들 공작을 봤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평민들은 공작이 평민계급 출신이라는 점, 개혁의 주도자가 되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이긴 하지만 귀족들의 횡포를 막고 평민들의 권리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공작이 광역통신으로 설명하면 평민들은 다소 불만은 품어도 어쩔 수 없다고 납득해줄 것이다. 물론 공작에게 있어선 본의가 아니고 성가신 일이기는 하다. 공작은 정부 관료가 아니라 군인이다. 담당 구역이 다르다는 생각도 있을 터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신경 쓰는 것도 그 부분을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알겠습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공작이 불쾌함을 보이지 않고 극히 평범하게 대답했다. 다행이란 분위기가 응접실에 흘렀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다들 공작을 주목했다. 역시 간단하겐 끝나지 않는다.
  "포로 교환을 실시해주셨으면 합니다."
  포로 교환?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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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4월 12일. 오딘,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 라이너 폰 게르라흐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의 서재, 나와 후작은 소파에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후작은 홍차를 마시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무상서 각하."
  내가 묻자 리히텐라데 후작은 "흠"하고 코를 울렸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후작이 찻잔을 테이블에 놓고 째릿하고 나를 봤다.

  "게르라흐 자작,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금 과격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했고, 귀족을 우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귀족들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다시 "흠"하고 코를 울렸다.

  어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우리 집에 왔다. 귀족들이 빌리고 있는 귀족 전용의 금융기관, 특별은행, 신용금고에서의 융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해결책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설명하고 있다.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후작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승락한 거로군?"
  "이미 설명하여 승인을 받았다고 공작은 말했었습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세 번째 "흠"하고 코를 울렸다.
  "아무래도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나 보군."
  "네?"
  화가 머리까지 치밀었다? 무슨 뜻이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말이다. 무척이나 분노하고 있어. 말도 안 되는 폭탄을 설치했다."
  "폭탄, 이라고 하시면?"
  되묻자 후작은 날 불쌍하게 보는 것처럼 웃었다.
  "경도 브라운슈바이크 대공도 리텐하임 후작도 눈치 채지 못했나 보군.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몇년 후에는 귀족들 대부분이 몰락하게 되겠지."
  "무슨……."
  말을 잃은 나에게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흘렸다.

  "이익의 40%나 빼앗기고 귀족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게르라흐 자작, 나는 지금까지 내무, 궁내, 재무상서를 역임했다. 그리고 알게된 것이 있어. 귀족의 탐욕은 끝이 없다. 법을 무시한다. 갈책해도 무리를 지어 압력을 가해온다. 아주 제멋대로야. 그 놈들이 이익의 40%나 빼앗기고 참을 수 있을 거라, 경은 생각하는 건가?"

  "……그럼 이 제안에 반대할 거라고?"
  내가 묻자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반대는 할 수 없겠지. 일단 우대는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납득은 하지 않을 게야."
  "영지 개발을 행하지 않는다, 혹은 이익을 숨길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이익을 좀 더 높이려고 발버둥 칠 경우야."
  그렇군. 확실히 있을 법한 일이다.

  "무리를 하면 위험도 높아진다. 계속되면 언젠가는 파탄하게 될 게야."
  "파탄……, 손실을 입을 거라는 겁니까."
  "음. 그것도 치명적일 정도로."
  리히텐라데 후작이 홍차를 마셨다. 하지만 표정은 쓰다.

  "손실을 입는다는 건 정부에 내줄 10%의 돈을 낼 수 없게 된다는 게 됩니다."
  "영지 개발자금도 내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조심조심 묻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험한 눈빛으로 날 봤다.
  "영지 경영에 실패했다는 게 된다."

  역시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면…….
  "작위 박탈입니까."
  "뭐, 적어도 영지 몰수는 피할 수 없겠지. 지금 정부에 돈을 빌리고 있는 놈들과 같은 취급이 되지 않을까? 작위 박탈은 반발이 너무 크겠지."
  "그렇군요."

  정부에게서 돈을 빌리고 있는 놈들에게서 영지를 몰수하는 건 그 때문인가. 전례가 있는 이상 귀족들도 반대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정부는 영지를 접수하여 직접세 증가에 의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간다. 정부의 힘도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귀족들이 얌전히 따를까.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그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기야 조건은 꽤나 나쁘다."
  "무슨 말씀이신지?"
  "운용에 실패한 거다. 자금은 꽤나 줄어들었겠지. 빈곤 귀족이라 불릴 수밖에 없겠군."
  "그렇군요."
  영지를 잃은데다 돈도 없나. 귀족들의 영향력은 꽤나 줄어들 것이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이대로 받아들이실 겁니까?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만."
  내가 묻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대안은 있는가?"
  "……."
  "대안이 없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이걸 거부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 문제에서 손을 떼겠지."
  "이 문제를 방치할 거라는?"
  리히텐라데 후작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영지민이 폭동을 일으킨 시점에서 작위 박탈이라고 말하겠지. 혹은 영지 몰수를 주장하든가. 그러는 편이 더 혼란스러울 것이야. 하기야 공작의 성격을 보면 정말 하고 싶었던 건 그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무상서 각하의 지적하신대로 제국은 혼란에 빠질 겁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거야말로 브라운슈바이크가 노리던 바겠지. 우주함대를 써서 반란을 쳐부술 것이 틀림 없어. 그리고 영지도 재산도 모두 몰수다. 지금의 우주함대 지휘관은 하급귀족과 평민이다. 귀족들에게 사양할 리가 없지.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재정난 같은 건 단숨에 해결될 거다. 카스트로프 공작의 재산이 어느 정도였는지, 경도 알고 있겠지?"
  "……."
  리히텐라데 후작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

  "본래는 평민이었으니 말일세. 어째서 자신이 귀족들의 뒤를 닦아줘야 하냐는 불만이 있을 게야. 그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지. 불만이 쌓이면 언젠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터질 테니까."
  "위험합니까."
  "그 마음을 무시하면 말일세."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외견은 부드럽지만 내면에는 격렬한 것이 있다고는 인식하고 있었다. 귀족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설명하고 있을 때는 온화하고 성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는 공작의 설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공작의 제안에서 진짜 목적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그럴 리가. 경과 마찬가지로 이해하고 있지 않겠지."
  "그럼 공작의 생각대로 되면……."
  다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으나 리히텐라데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공작을 책망하지 못할 게야. 공작의 제안은 아주 잘 만들어져있어. 멀쩡한 귀족이라면 몰락할 리가 없어. 설령 몰락하는 귀족이 있더라도 소수일 게야. 그리고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평민들도 개발의 은혜를 입게 되네. 귀족들이 예상 이상으로 어리석고 탐욕스러웠을 경우만 그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도 공작을 책망할 수 있겠는가?"
  "……."
  답할 수 없었다. 확실히 책망할 수는 없겠지. 자업자득이다.

  "게다가 공작 스스로가 딱 잘라 모른 척 하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이야. 혹은 뻔뻔하게 나오려나? 그래서 그게 뭐 어쨌냐면서. 뭐, 내 지나친 생각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공작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딱 잘라 말했다.
  "얼마나 바보가 많은가, 다들 인식할 좋은 기회야. 그리고 이 쯤에서 귀족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니. 조금 거친 방식이지만, 명분은 이쪽에 있다. 망설여서는 안 될 테지. 이 문제는 질질 끌어선 안 될 문제다. 무엇보다, 공작을 이 이상 화나게 만들면 위험하니 말일세."
  리히텐라데 후작이 씁쓰레한 표정으로 웃었다.



제국력 488년 4월 30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발터 폰 쇤코프



  "왜 그러나. 긴장하고 있는 건가?"
  "그렇진 않아."
  "그런가. 그럼 됐지만……."
  뤼네부르크가 조금 걱정하는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혹은 정말로 걱정하는 건가. 하이네센에서 오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의 응접실에서 공작을 기다리고 있다. 동석자는 뤼네부르크, 어째서 이 녀석과 나란히 앉아야만 하는 건지…….

  찰칵하고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부하를 세 명 데리고 들어왔다. 뤼네부르크와 나는 일어나 경례했다. 공작이 답례한다. 경례 교환이 끝나고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세 명의 부하는 공작의 뒤에 서있다. 호위겠지.
  "기다리게 했나 보군요."
  "아뇨.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발터 폰 쇤코프, 귀환했기에 인사를 드리고자 실례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끄덕였다.

  "어땠습니까? 하이네센은."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공작이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그리운 사람, 소중한 사람과 만났냐고 물어본 것입니다만."
  그렇군. 그런 의미인가. 자신의 착각이 우스워서 웃고 말았다. 오랜만에 웃은 기분이 든다.
  "만난 건 로젠리터 대원과 그 외 1명뿐입니다. 하이네센은 소관에겐 위험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그렇습니까"라고 말하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배신자라고 의심 받고 있는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엔 뤼네부르크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자신이 동맹에서 역망명한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확실히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동맹정부가 눈앞의 인물의 무시무시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우리들은 동맹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눈앞의 남자의 무시무시함을 이해한다. 제7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은 이 자 때문에 패배했다…….

  "괴로운 일이군요."
  툭하고 던진 공작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 뤼네부르크도 애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묘한 일이다. 동맹인보다 제국인이 나를, 우리들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고 있다. 뤼네부르크는 우리들을 배신했었는데……. 뒤에 서있는 세 사람의 표정에도 나에 대해 동정하는 색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앞으로도 계속 동맹에 대한 절조를 지킵니까. 아니면 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겠습니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대령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 말씀을 감사히 받아, 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 생각합니다."
  "그건 대령뿐입니까. 다른 대원도?"
  "포로가 된 35명, 전원의 생각입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끄덕이고, 그리고 조금 걱정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하이네센의 로젠리터와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습니까?"
  "제국에서 임관할지도 모른다고는 전해뒀습니다. 그들도 이해해줬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어느 인물이 권했었습니다."
  공작이 "어느 인물"이라고 중얼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양 웬리 준장입니다."
  "……."
  공작의 표정이 조금 험악해졌다. 그렇군. 엘 파실의 영웅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인가. 그렇다면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편이 좋겠지.

  "우리들이 제국에서 임관하면 하이네센의 로젠리터는 우리들을 비난할 수 있게 된다. 기치를 뚜렷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이대로, 배신한 건지 배신하지 않은 건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의심만 받고 있으면 어떻게도 할 수 없다고."
  "그렇군요. 분명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정한 말이기도 합니다. 대령들도 하이네센의 로젠리터도 마음이 괴롭겠지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날 걱정하는 눈으로 봤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내렸다. 이 자는 우리들의, 망명자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들의 임관, 인정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환영합니다. 쇤코프 대령."
  "각하"하고 공작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흑발 사관이다.
  "괜찮으십니까?"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우리들을 신용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도 의심을 받는가. 아니 경위를 생각하면 그것도 당연한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가볍게 웃음 소리를 냈다.

  "괜찮습니다. 안스바흐 준장. 그들은 비겁, 비열이란 말과 연이 없는 자들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용감하고 유능하죠."
  확실히 그렇다. 자부심은 있다. 하지만 꽤나 우리들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뤼네부르크가 기뻐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우리들에 대한 평가다. 착각하지 말라고.

  "그럼 쇤코프 대령들에 대한 처우입니다만, 소관 쪽에서 맡는 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뤼네부르크의 부하인가. 뭐, 타당하지만 조금 불만이군.
  "으음. 그렇게 되려나요. 하지만 35명이라는 건 어중간한 숫자입니다. 대장도 어떻게 써야 할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공작이 그렇게 말하자 뤼네부르크도 "뭐, 다소는"이라며 말을 흐렸다.

  말 그대로다. 갑자기 나에게 연대를 이끌게 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뤼네부르크의 부관, 혹은 막료, 정도가 가장 괜찮은 경우려나. 하지만 그렇게 되면 린츠 들은 어떻게 될지…….
  "제 쪽에서 맡도록 할까요."
  "어?"라고 생각했다. 공작이 맡는다? 뤼네부르크도 놀라고 있다. 아니 뤼네부르크만이 아니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놀라고 있다. 놀라지 않은 건 공작뿐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서 맡겠다는 겁니까."
  "본적은 군부입니다. 거기에서 파견이라는 형태로 공작가에 오도록 합니다. 어떻습니까?"
  "하지만 그건……."
  "평상시는 저택 경비로군요. 제가 전쟁에 갈 때는 총기함 포르세티에 탑승하게 합니다. 대령은 막료로서 일을 하게 하고, 다른 대원에겐 함내 보안임무를 맡깁니다."
  뤼네부르크가 "으음"하고 신음했다.

  "언젠가는 로젠리터를 연대째 데려오도록 하죠."
  다시 "어?"하고 생각했다. 그런 게 가능한가?
  "가족 문제도 있고요. 뿔뿔히 흩어져 있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다. 이번에 포로가 된 35명 중에도 가족이 동맹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합니까?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만……."
  뤼네부르크가 날 보면서 공작에게 물었다. 경솔하게 떠맡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혹은 내게 진심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걸까.
  "이건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만, 근시일 내에 제국, 동맹이 각자 품고 있는 포로 교환을 정부, 군 상층부에 제안할 거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 "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놀랄 일뿐이다. 눈앞의 청년은 기습 작전이 특기인 것 같다.

  "그 때 로젠리터를 제국으로 양보해달라고 동맹에 부탁해봅시다. 저쪽도 애물단지로 여기고 있다면 넘겨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원 본인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만."
  그렇군, 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애물단지이긴 하겠지. 제국에 넘겨줄 가능성은 있다. 그보다도 넘겨주도록 교섭하겠지.

  재밌는 일을 생각하는 자다. 믿어도 좋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의 자는 우리들이 망명자라는 이유로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머진 우리들의 행동 나름인가. 뤼네부르크도 망명자이면서 대장까지 승진했다. 제국에서의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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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4월 10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저택. 에리히 폰 발렌슈타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 있는 밀담실에 세 명이 모였다.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 그리고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제국 귀족 4천 가문 중에서도 정점에 선 권력자일 테지만, 나에게 있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란 건 골칫거리만 몰려오는 벌 게임과 같은 자리처럼 느껴진다.

  "일부러 이곳에서 대화라니, 꽤 성가신 이야기인가 보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소파에 나란히 앉은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의 표정이 굳어있다. 꽤나 긴장하고 있겠지. 나도 다소는 긴장하고 있다.

  "저는 평민으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귀족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리텐하임 후작에게 판단해달라는 건가."
  "예."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날 봤다. 험한 표정이다. 그리고 경계의 색이 있지만, 거부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걸 봐주세요."
  한 권의 파일을 꺼냈다. 게르라흐 자작에게서 빌린 자료다. 귀족전용 금융기관, 특수은행, 신용금고에서 융자를 받고 있는 귀족 일람이다. 아버지가 파일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진도가 나갈수록 아버님의 표정이 떫어지고 입가가 일그러진다. 다 읽고난 뒤 크게 숨을 내쉬고 파일을 리텐하임 후작에게 건냈다.

  "게르라흐 자작인가."
  "예. 리히텐라데 후작이 제게 상담하라 했다고 합니다."
  "또 성가신 일을……."
  아버지가 중얼거린다. 그리고 옆에서 파일을 읽고 있는 리텐하임 후작의 표정도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성가시다. 이런 문제를 떠넘겨진 나는 더더욱 귀족이 싫어졌다.

  "제국이 재정난에 신음할만 하군. 이걸 보면 이해할 수 있어."
  "어느 정도의 가문이 빚지고 있는 거냐? 에리히."
  "제국 귀족 4천 가문, 그 중에 대충 3천 가문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빚지지 않고 있는 건, 무척이나 유복하여 빚을 질 필요가 없든가, 반대로 너무 가난하여 대출조차 받지 못하던가, 혹은 권력이 없든가입니다."
  두 사람이 지친 표정을 보였다. 내 고생을 조금은 이해했으려나.

  리텐하임 후작이 내게 파일을 돌려주려 하기에 거절하고 또 하나의 파일을 건냈다.
  "이건?"
  "페잔 상인에게서 빚을 지고 있는 귀족입니다. 지금은 정부가 대신 감당하고 있습니다."
  리텐하임 후작이 아버님에게 시선을 향하고서 파일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한숨을 내쉬고 아버님에게 파일을 건냈다. 아버님도 마찬가지였다. 읽기 시작하고 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이름이 기록되어 있군. 공작."
  "네. 정부의 대출 보조를 받고 있는 대부분의 귀족, 500만 명 정도입니다만. 그들은 금융기관에게서 융자를 받은 것에 더해 페잔 상인에게서 대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불쾌한 표정을 짓지 말라고. 빚을 진 건 내가 아니니까. 어째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금융기관에게서 받은 융자는 페잔의 투자회사에 맡겨져 운용되든가, 혹은 귀족 자신이 기업을 운용하는 데에 쓰였습니다. 거기에서 얻은 이익이 귀족들의 유흥비가 되는 식입니다. 투자회사도 절대로 귀족들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손해를 입히게 되면 귀족들은 두 번 다시 돈을 맡기지 않을 테니까요. 신용이 걸려있습니다. 페잔 상인이 그들에게 융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변제는 확실하니까요."
  눈앞의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다. 불쾌한 이야기일 테니까. 호통이 없는 것이 다행인가.

  "내년부터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이 작성되어 공표되는 것이 의무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일들이 평민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폭동이 일어나겠지."
  아버님이 말하자 리텐하임 후작이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본래 영지 개발에 쓰여야 할 자금이 유흥비를 벌기 위해 쓰인 거니까. 그것도 부족해서 빚까지 지고 있는 바보도 있다. 적어도 이익을 영지 개발에 써줬다면……. 무리겠지. 평민따위 귀족에게 있어 벌레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작은 이 사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지금 상황에서 자금 회수는 불가능합니다. 강제 회수하면 제국은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되겠죠. 이건 재무성도 같은 의견입니다. 아마도 페잔도 혼란에 빠질테고, 그 혼란은 동맹에까지 미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은하계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제국에서 빼낸 자금이 페잔에 맡겨지고 페잔이 그걸 운용한다는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그걸 멈추면 페잔은 말도 안 되는 자금부족에 빠지겠지.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폭동이 일어나는 걸 단지 기다린다는 건가."
  "……."
  "공작,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리텐하임 후작의 목소리에는 책망하는 색이 있었다. 화를 내도 소용 없다. 나도 분노하는 중이니까.

  "폭동이 일어난 시점에서 정부가 개입합니다. 그리고 상황을 조사하여 '시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판단하여 작위를 박탈합니다."
  "말도 안 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라고 두 사람이 어이 없어하는 소리를 냈다. 목소리만이 아니다. 시선도 그렇다. 마치 정신이 나갔냐는 듯한 눈이다.

  "작위를 박탈당한 귀족의 재산은 모두 제국 정부의 것이 됩니다. 귀족이 경영하는 기업, 투자한 자금 전부입니다. 사실상 회수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아차렸겠지.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영지도 몰수하니까 직접세도 증가할 것이고, 영지 경영을 못하는 귀족들도 도태하게 됩니다. 재정재건과 귀족계급의 열화 방지. 일거양득이네요."

  페르너, 네가 한 말이 맞았다. 영지경영을 하지 못하는 귀족이 영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귀족은 제국의 번병, 지켜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이상해지는 거다. 오히려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렇게 되면 귀족도 어리광을 부릴 수 없게 된다. 모델은 에도 막부다.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다이묘에 죄가 있다면 용서 없이 지위를 박탈하고 영지를 몰수했다. 덕분에 어떤 번도 영내통치에는 힘을 들였다. 농민 봉기 같은 건 막부에 구실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

  "에리히, 폭동이 일어나 박탈당한 귀족의 숫자는 어느 정도가 되리라고 보고 있나?"
  "최소한 500가문 아래는 아니겠죠. 그리고……, 2천 가문을 넘을지도 모르겠네요. 폭동 하나가 일어난 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불만 같은 건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아버님이 한숨을 내쉬고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넌 분노하고 있는 건가?"
  "분노하는 중입니다."
  "……."
  "귀족은 제국의 번병? 농담이 아닙니다. 이걸 보면 아시겠습니다만, 어딜 어떻게 봐도 제국을 갉아먹는 해충입니다. 바보처럼 제국은 지금까지 그 해충 놈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국은 벌레 파먹은 자국 투성이인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면 제국은 해충 놈들에게 물어뜯겨 썩어 자빠지고 말겠죠."
  아버님이 고개를 저었다.

  "혼란이 일어날 거야. 놈들이 얌전히 영지와 지위를 박탈 당할 거라 생각할 수 없다. 네가 귀족들의 몰락을 바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놈들은 협력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하겠지. 큰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대공의 말대로다. 공작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 외의 방법은 없는 건가? 박탈하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해야겠지. 처음부터 박탈을 목적으로 했다간 생사를 건 전쟁이 될수밖에 없어.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반란군이 그걸 틈 탈 가능성도 있다."

  역시 반대인가. 뭐,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지만. 아버님도 리텐하임 후작도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귀족을 제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혼란은 바라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이 바라는 건 연착륙이다. 원작에서 라인하르트가 행한 것 같은 드라마틱한 경착륙은 바라고 있지 않다.

  결국 체제 안에서의 개혁이라는 게 된다. 이 두 사람만이 아니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같은 생각이겠지. 라인하르트처럼 체제 그 자체를 바꾸는 개혁은 되지 않는다. 바라지 않는다. 그런만큼 개혁은 철저한 것은 되지 않겠지. 어중간한 대증요법에 가까운 정책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소화불량에 빠질 것 같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나 자신이 배제 당하게 된다. 은근슬쩍, 무리 없는 개혁을 진행해야만 한다. 데릴사위는 괴롭다. 입장이 너무 약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싶어지네.

  "그럼, 이건 차선책입니다만. 금융기관에서 빚진 것만이 아니라 정부에게서도 빚을 지고 있는 귀족입니다만, 이 빚들을 전부 탕감해줍니다."
  "탕감?"
  "네. 단, 영지는 몰수합니다. 영지 경영을 할만한 능력을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두 사람이 신음소리를 냈다.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합니다. 성가신 영지 경영은 하지 않아도 되고, 빚도 사라집니다. 덧붙여 융자한 자금은 그대로 재산으로서 인정됩니다. 재정상황은 단숨에 개선되겠죠. 영지를 잃는 일에 저항은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작위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익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정부는 직할령이 늘어나고, 그곳에서 직접 세금을 거둘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적자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본전은 뽑을 수 있겠죠."
  "……."
  "그리고 영지 경영을 하지 않는 이상, 세금 면제는 없습니다. 이후로는 세금을 내도록 합니다."
  다시 신음소리가 들렸다.

  "영지를 잃고 세금을 내는가……. 엄하군."
  "음. 엄하다. ……, 공작 혹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단 폭동이 일어나면……."
  "몰수인가."
  "네. 그들이 바라던 일입니다. 용서는 없습니다. 저로서는 그쪽이 더 좋네요. 이 이상 저 놈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건 사양입니다."
  두 사람이 얼굴을 찡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만인가?

  "이 이상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빚 탕감에 융자도 거저 주겠다는 겁니다. 대우가 너무 좋을 정도입니다. 평민들도 간단하겐 납득하지 않겠죠. 무척 정중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불만을 품으면, 그 불만은 이번엔 정부를 향하게 될 겁니다."
  아버님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째냐?

  "어쩔 수 없군. 그래서, 에리히.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할 건가? 빚을 지고 있지는 않지만 융자를 받고 있는 놈들이네만."
  "융자를 회수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렇다면 융자를 써서 얻고 있는 이익의 일부를 영지 개발에 돌리는 걸로 지금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할 건가?"
  "융자에서 얻은 이익의 10%를 정부가 회수합니다. 그리고 30%를 영지 개발에 투자하게 합니다. 이건 법률로 정하여 위반하면 처벌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벌금입니다만, 위반 사항이 심할 경우 영지 몰수도 실시합니다.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이 작성되면 법 집행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익 전부를 영내 개발에 투자하라고 하면 귀족들은 반발하겠지. 하지만 절반 이상을 자유롭게 써도 좋다고 하는 거다. 참아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평민들도 불만은 있겠지만 영지의 투자금액은 확보했다. 게다가 융자기간이 길어지면 영지 개발에 투자금액은 최종적으로는 융자금액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 이쪽도 참아줘야만 한다. 정부도 정기적으로 수입을 가지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본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리텐하임 후작."
  "영지 몰수, 세금 지불은 조금 엄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폭동이 일어나면 작위가 박탈되어도 불만을 말할 수 없다. 그걸 생각하면 우대라고 해도 좋겠지. 공작의 말대로, 너무 무른 대처라고 비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다."
  아버님이 "그렇겠지"라며 끄덕였다.

  뭐, 잘 됐나. 처음부터 영지 몰수, 세금 지불을 제안했다면 너무 엄하다고 난색을 비췄겠지. 일부러 작위 박탈이라는 극단적인 강경책을 내놓았던 건 영지 몰수, 세금 지불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걸로 리히텐라데 후작, 게르라흐 자작도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이 찬성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두 사람도 떫어하긴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제국력 488년 4월 10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저택. 안톤 페르너



  에리히가 서재로 오라고 불렀다. 요 며칠 간 에리히는 기분이 좋지 않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과 함께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들어가니 에리히가 소파에 앉도록 권유했다. 양쪽에 슈트라이트 소장과 안스바흐 준장, 한 가운데에 나다. 또 이 배치인가. 좀 봐달라고…….

  "회의는 잘 끝나셨습니까?"
  안스바흐 준장이 말하자 에리히가 끄덕였다.
  "대공, 리텐하임 후작은 제 생각에 찬성해주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뿐만이 아니다. 양쪽의 두 사람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에리히에게서 상담을 받았지만, 저 두 사람이 받아들일지 어떨지 의문이었다. 영지 몰수에다가 귀족에게 세금을 내게 한다는 것에 동의했는가…….

  "이 다음은 리히텐라데 후작, 게르라흐 자작에게 설명하게 됩니다. 다소 논쟁도 있겠습니다만,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이 찬성하고 있다고 하면 반대는 하지 못하겠죠."
  제국은 변한다. 귀족이 세금을 내는 거다. 평민들도 제국이 변했다고 실감하게 되겠지.

  "슈트라이트 소장, 영지를 잃은 귀족들입니다만, 사병을 보유하고 있을 겁니다. 영지를 잃으면 필요 없게 되겠죠. 제국군에 넣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병력인지 조사해주겠습니까? 가능하면 훈련도도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급히 조사하겠습니다."
  그렇군. 섵불리 방치하면 해적이 될수밖에 없다. 제국군 편입이 필요하겠지. 500 가문쯤 되면 꽤 많은 병력이 될 것이다. 5만 척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니, 빚을 지고 있으니까 그보다 적으려나…….

  "그리고 안스바흐 준장."
  "예."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노의 숫자를 조사해주세요."
  "농노, 입니까."
  준장이 반문하자 에리히가 "그렇습니다"라고 끄덕였다.

  "영지가 없어진 이상 농노는 불필요하게 됩니다. 사적재산이기에 정부가 구매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겠죠. 귀족들 사이에서 거래를 하게 되면 싼값에 후려쳐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가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해주면 기뻐하겠죠. 다소는 서비스 해야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돈이 들겠군요."
  내가 지적하자 에리히가 힐끔 날 봤다. 그런 무서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기 위한 재원은 준비했다. 귀족들의 수익 10%를 징수할 것이고, 몰수한 영지에서는 직접세도 들어온다. 문제는 없어."
  불쾌하단 목소리다. 그렇게 생각하니, 에리히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언젠가 직접세 수입은 더욱 늘어날 거야."
  엑, 하고 생각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도 의아한 표정이다. 그걸 보고 에리히가 더욱 웃음을 크게 지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명백한 냉소다.

  "수익의 40%를 빼앗기게 된 귀족들이 그걸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안톤."
  "……."
  "무리겠지. 대부분의 귀족은 투자회사에게 더 많은 이익을 내라고 요구할 거야. 더욱 큰 리턴을 얻기 위해 더욱 큰 리스크를 지닌 상품에 손을 대게 되겠지. 언젠가 실패하여 손실을 내게 될 거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손실을 내면 당연히 영지 개발에 돌릴 자금은 사라진다. 영지민들은 납득하지 않겠지. 정부도 납득하지 않아. 그 수익으로 영지 개발에 돈을 내고 있으니까 투자회사에 융자를 맡기는 걸 인정하고 있던 거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슈트라이트 소장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영지를 몰수한다."
  "그건……."
  말을 잃은 슈트라이트 소장을 에리히가 차가운 눈으로 쳐다봤다.
  "영지 개발을 할 수 없는 이상 영주로서의 자격은 없다. 제 예측으로는 10년도 지나지 않아 제국 귀족 4천 가문 중 절반 이상은 영지를 가지지 못한 귀족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안스바흐 준장이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그것에 대해선 대공 각하, 리텐하임 후작은……."
  "모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예상입니다. 빗나갈 가능성도 있겠죠. 그렇기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다. 말하면 반대할 거라 생각한 거다. 에리히의 진짜 목적은 귀족의 무력화겠지. 그렇게 하여 개혁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면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반대할 것이라 봤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귀족을 우대하는 척하는 정책을 보여주며 설득했다…….

  "말하는 게 좋을까요?"
  은근슬쩍 꺼낸 에리히의 말에 양쪽 두 사람의 몸이 굳었다. 나도 그렇다. 시험 받고 있다. 개혁을 지지하는가 아닌가. 자신을 지지하는가 아닌가……. 에리히가 웃음을 짓고 우리들을 보고 있다.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다. 떨릴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슈트라이트 소장, 안스바흐 준장. 조금 전 부탁했던 것, 시급히 조사해주세요."
  "예."
  공기가 풀렸다.
  "안톤, 게르라흐 자작에게 연락을 취해줘. 예의 건으로 상담하고 싶다고."
  "알겠습니다."

  그걸 계기로 서재에서 물러났다. 방을 나오자 세 사람 모두 두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할 건가. 슈트라이트 소장."
  "글쎄. 경은 어떻게 할 건가? 안스바흐 준장."
  "어떻게 해야 할지. ……페르너 대령, 경은 어떻게 할 건가?"
  "……글쎄요. 소관은 뭐라고도."
  결국 아무도 대답을 내지 못했다. 서로를 돌아보고, 그리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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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3월 1일. 오딘, 게르라흐 자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게르라흐 자작이 내게 비밀리에 상담하고 싶은게 있다고 요청했다. 남의 귀를 피하고 싶다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다. 눈에 띄지 않는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밤 늦게, 9시를 넘은 시간에 게르라흐 자작의 저택으로 몰래 방문했다. 뒷문으로다. 호위는 페르너 한 사람. 지상차는 저택에서 떨어진 장소에 세웠다.

  자작 저택의 하인은 나와 페르너를 어느 방으로 안내한 뒤 말 없이 나갔다. 응접실은 아니고 거실도 아니다.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안티크 풍의 유리 캐비넷이 있지만 다른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마도 밀담용의 방이겠지. 귀족 저택에는 이런 방이 반드시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도 있다.

  소파에 앉자 페르너가 내 뒤에 섰다. 옆에 앉으라고는 말하지 않을 거고 페르너도 그걸 바라지 않는다. 이제 곧 게르라흐 자작이 오겠지. 상하구분 못하는 남자라고 생각되어선 안 된다. 높은 사람이 되는 것에도 장점 단점이 있다. 자유롭지 못한 일만 잔뜩 생긴다.

  문이 열리고 게르라흐 자작이 들어왔다. 페르너가 인사하고는 방을 나갔다. 밖에서 경비를 하겠지. 자작은 아무 말도 없이 유리 캐비넷에서 잔과 음료를 꺼냈다.
  "저는 마시지 못합니다만."
  "안심하시길. 이건 물입니다."
  "마음 씀씀이 감사합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할 내용은 아니기에. 신경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게르라흐 자작이 내 정면에 앉았다. 잔을 두고 물을 따른다.
  "밤 늦게 수고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실은 제가 공작께 방문해야 하겠습니다만……."
  이런 게 성가시단 말이지. 직위로 보자면 게르라흐 자작 쪽이 상급이다. 하지만 나는 황제 손녀딸의 약혼자며 공작이다. 궁중서열로는 내가 상급자가 된다.
  "그거야말로 신경 쓰지 마세요. 비밀스런 이야기라면 제가 이쪽으로 오는 편이 좋겠죠. 저 저택은 감시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감시하는 사람은 이래저래 많다. 페잔도 있겠고 문벌귀족 쪽 사람도 있다. 그리고 독립상인도 최근엔 내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나는 개혁을 이끄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야기란?"

  내가 묻자 게그라흐 자작이 한 권의 파일을 내밀었다. 읽으라는 건가. 그렇게 두껍지는 않지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었다. 게르라흐 자작이 괴로움에 찬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마음은 이해한다. 이 문제가 있었지. 한숨이 나올 것 같다.

  말을 꺼내기 전에 물을 마셨다. 게르라흐 자작도 물을 마셨다.
  "이러한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귀족이란 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영지민에 대한 의무라든가 책임은 추호도 없는 듯하군요."
  게르라흐 자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평민 출신인 내게 이런 말을 듣는 건 굴욕이겠지. 하지만 내 말을 부정은 하지 않았다. 부정할 수 있었다면 날 여기에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귀족 전용의 금융기관, 특별 은행, 신용금고에서 융자를 받은 귀족의 일람 파일이었다. 그리고 사용처도 기재되어 있다. 원작에선 라인하르트가 개혁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부숴버린 제도다. 이 융자는 무이자, 무담보, 무제한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제도다.

  본래는 행성 개발에 자금이 든다는 이유에서 만들어진 금융기관이지만, 지금 자료를 본 바로는 영지 경영에 쓰이고 있지 않았다. 페잔의 투자기관에 맡긴다든가, 경우에 따라선 스스로 금융기관을 운영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이익이 유흥비나 사병 유지에 쓰이고 있는 거다. 그리고 융자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제국에 재정난에 처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영지 경영도 하지 않고 제국에게서 돈을 빌려 놀아 처먹고 있는 귀족이 있으니까요."
  "그 말이 맞습니다. 재정 재건에는 이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재무상서 카스트로프 공작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겠지. 자기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햇을 것이 틀림 없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는 것 외엔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옳을까. 다들 사이 좋게 제국의 단물을 빨아먹고 있었단 소리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뭐라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상담하라고, 국무상서 각하도 이전부터 이 문제가 두통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두통거리라고 그걸 나에게 집어 던지지 말라고. 그 할아범, 궁극오의 통째로 떠넘기기를 쓰는 건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내 머리가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걸 강제적으로 회수하면 어떻게 될거라고 재무상서는 보고 있습니까?"
  내가 질문하자 게르라흐 자작은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제국은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금융기관을 경영하고 있는 귀족은 자금부족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신용 불안이 발생합니다. 최악의 경우, 제국 정부가 공적 자금 투입을 멈추는 수밖에 없어지게 되겠죠. 회수 시도 자체가 혼란만 일으키고 의미 없는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재무성의 견해입니다. 어떻게든 하고 싶어도 어떻게도 할 수 없습니다. 질질 끌다가 오늘까지 오고 만 것이 현상태입니다……."

  "페잔도 마찬가지겠죠. 귀족이 자금을 회수하면 투자기관은 자금 부족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부족한 자금을 어딘가에서 보충해야만 합니다. 가장 먼저 행하는 건 역시 제국에서의 자금 회수……."
  "네. 재무성도 공작과 같은 견해입니다."

  이번엔 정말 한숨이 나왔다. 같은 견해라고 들어도 조금도 기쁘지 않다. 두통이 더 심해질 뿐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 편하게 벌 수 있는 길이 있는 이상, 귀족들은 성가신 영지 경영에는 소극적이게 된다. 사용처가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 융자를 거둬들여야 하겠지만, 그렇게 했다간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다시 한 모금 물을 마셨다.

  "일단 신규 융자는 멈출 수 없습니까? 용도를 확인하여 영지 경영 이외에는 쓰지 못하도록……. 당주가 죽고 세대 교체를 하면 일단 융자는 변제될 것입니다. 그걸 기회로 조금씩 정리하는……."
  내가 제안하자 게르라흐 자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정부가 융자를 거두기 시작했다고 다들 이해할 겁니다. 그것만으로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귀족이 경영하고 있는 금융기관에서 자금 유출이 일어나는 건가……. 심각한 자금부족이 발생하겠군…….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1년 뒤에는 문제가 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작이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틀림 없이 문제가 되겠죠.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다시 한 번 파일을 봤다. 귀족들이 빌리고 있는 금액은 꽤나 크다. 게르라흐 자작이 날 올려다 보고 있다.
  "조금씩 변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이미 빚투성이인 귀족도 있습니다. 모두 변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게르라흐 자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융자를 받고 있는 귀족 중에는 예전에 페잔에서의 빚을 제국 정부가 대신 져줬던 귀족도 있다. 그것도 꽤 많은 숫자다. 페잔에 돈을 빌려주고 자산운용을 하여 이익을 얻는다. 그것도 부족해 페잔에게서 돈을 빌려 유흥비로 쓴다. 귀족이란 놈들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나는 전혀 모르겠다.

  결국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게르라흐 자작은 내게 상담을 하고 안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게 있어선 또 하나 골칫거리가 생겨난 셈이다. 지상차로 돌아갈 때에도 대응책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좋은 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래서야 우주통일따위 언제가 될런지……. 내정개혁만으로 일생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리히."
  "응?"
  "괜찮나? 얼굴색이 좋지 않은데……."
  페르너가 내 얼굴을 살피듯이 보고 있다.

  "산 넘어 산이야. 머리가 아파."
  "내게 말해주면 어떤가? 게르라흐 자작이 얽혀있다는 건 재정 문제겠지. 경제나 재정은 잘 모르지만 이야기 하는 것으로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몰라."
  걱정스런 표정이다. 아무래도 나는 생각이 표정으로 곧바로 드러나는 나쁜 주인인 것 같다.

  "그렇지. 저택으로 돌아가면 말해볼까."
  내가 답하자 페르너가 끄덕였다. 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만든 건 이 녀석을 포함한 공작가 사람들이다. 어쩌면 페르너는 나에게 죄악감이라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톤, 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서 어떨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야. 안스바흐 준장, 슈트라이트 소장도 그렇게 말했다. 제국의 문무 중신으로서 잘 하고 있다고 말이야."
  "……."
  "단지, 불운하다고 생각한다."

  "불운?"
  농담인가 생각하여 내가 되묻자 페르너가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앞으로 100년 빨리 태어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야."
  "100년 전이라면 누구도 개혁을 필요로하지 않았겠지."

  무심코 웃고 말았다. 하지만 페르너가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기에 바로 그쳤다. 시대가 사람을 필요로 한다면, 원작 세계에선 귀족들의 정치가 한계에 도달했기에 라인하르트가 등장한 거라고 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겠지.

  프리드리히 4세가 말한대로 모든 걸 불태우든가, 불필요한 것들을 흘려보내든가, 그것들을 감당할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온 거라고 생각한다. 하기야 내가 그 불필요한 것들을 시대의 흐름에 흘려보내는 자로 선택된 건 전혀 내 의도와 반대되는 일이지만…….

  저택에 돌아가자 나와 페르너는 밀담용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걸 바랬다. 말하는 도중에 귀족에 대한 욕설이 나올 것 같았다. 대공이나 대공부인이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엘리자베트에게도.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겠지만 귀족에 대한 비판을 듣는 건 괴롭기도 하겠지.

  페르너에게 게르라흐 자작과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페르너의 표정도 험해졌다. 끝난 뒤 큰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운 문제군. 하지만 1년 후에 문제가 된다는 건 무슨 뜻이지?"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이 공표된다. 놈들이 영지 개발을 위해 빌린 돈을 자산운용에 멋대로 썼다는 것이 밝혀진다. 영지민들은 난리겠지."
  페르너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면 결산보고서와 재산목록 공표를 미루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무리야. 공표는 평민들도 페잔 상인도 이미 알고 있어. 뒤로 미루면 뭔가 일이 터졌다고 눈치 채겠지. 무책임한 소문이 흐를 거야. 그게 더 위험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정직하게 공표하는 편이 좋다. 귀족, 정부에 대한 불만은 나오겠지만 영문 모를 신용불안은 일어나지 않고 끝난다.

  "올해 안에 무슨 수를 쓸 필요가 있다. 그런 거로군?"
  "그렇지. 하지만 무슨 수를 써야 할지……."
  이번엔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경은 반대하는 것 같지만, 조금씩이라도 변제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평민들이 납득할 거라 생각해?"
  내가 반문하자 페르너는 얼굴을 찡그렸다.

  "영지 개발에 써야 할 자금을 다른 목적으로 쓰고 있었다. 거기서 얻은 이익을 영지 개발에 썼다면 모르겠지만, 유흥비와 사병 유지에 쓰고 있었다면 영지민들이 납득할 거라곤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워. 덧붙여 변제한다고 하면 영지 개발로 돌리는 자금은 더욱 적어지겠지……."
  "그럼 그 이익을 영지 개발로 돌린다는 건 어때? 개혁 성과로서 영민들은 받아들이겠지."

  "융자를 받은 귀족 중에는 페잔 상인에게서 진 빚을 정부가 대신 져준 그 귀족들이 꽤나 포함되어 있어. 그 놈들은 정부에게 50년 가까이 빚 변제를 계속해야 해. 그것도 무이자로. 안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변제를 계속하면 영내 개발에 쓰이는 자금은 극히 적어지게 된다. 본격적으로 영지 개발이 행해지는 건 50년 후가 되겠지. 그들의 통치를 받는 영지민들이 납득할 거라 생각하나?"
  "……무리겠지."
  페르너가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떤 형태로든 귀족에게 벌을 내릴 수밖에 없어. 눈에 보이는 형태로. 그리고 제국 재정을 호전시킬 필요가 있어. 얼마 전의 귀족 채무 구제에 대해 평민들은 유쾌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제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납득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또 융자를 거둬들이면 혼란에 빠진다는 것 때문에 그냥 냅두면 어떻게 되겠어? 평민들은 정부는 귀족에게 무르다. 그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불만을 품겠지. 그리고 귀족들은 개혁따위 말만 떠들썩할 뿐이다. 자신들은 무슨 짓을 해도 용서 받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페르너의 표정이 어둡다. 나도 마찬가지겠지. 나도 페르너도 평민 태생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다. 그럭저럭 승진도 했다. 평민으로선 충분히 축복 받은 편이겠지. 하지만 제국에는 우리들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있는 평민이 있다. 그들의 통치자에 대한 불신감을 가볍게 보는 건 위험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페르너가 "목이 마르군. 물을 가져올게."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넓은 저택이다. 돌아올 때까지 10분은 걸리겠지. 원래대로라면 대책을 생각해야만 하겠지만, 아무래도 생각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바보에 무책임한 귀족이 거하게 똥을 싸놓고, 평민인 내가 그 뒷처리로 고생하고 있다. 바보 같은 이야기다. 페르너가 돌아오기까지 한숨만이 나왔다.

  "차라리 귀족들에게서 영지를 몰수하면 어때?"
  돌아온 페르너가 물이 든 잔을 내게 건내며 말했다. 농담인가, 생각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다.
  "진심인가? 꽤나 난폭한 의견이지만."
  "난폭할지도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을 찌르고 있어. 영주로서 책임감과 의무감이 없는 놈들이 영지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야. 그걸 해소하면 된다."
  "그렇군."

  확실히 그렇다. 문제는 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겐 영주로서 부적합한 인간이 그 지위에 있는 게 문제인 거다.
  "놈들에게서 영지를 몰수하면 영지민들도 납득하겠지."
  "제국의 직할령으로 한다는 건가."
  "그래."

  나쁜 생각은 아니다. 직할령으로 한다는 건 세금 징수를 가늠할 수 있다는 소리다. 게다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개발도 정부 주도로 행해지는 거다. 영지민들도 납득하겠지. 그리고 귀족들의 힘이 약해지고 정부의 힘이 강해진다. 원작에 가까운 사고방식이네. 귀족들이 사라지고 영지가 제국의 직할령이 되었다. 문제는 귀족들이 납득할지 아닐지다. 당연히 반발하겠지. 혼란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선 그 반발을 줄일 필요가 있다…….

  "하나 더 고안이 필요하네. 안톤. 귀족들의 반발을 적게 할 무언가가."
  페르너의 얼굴을 봤다.
  "그건 경이 생각해주게. 내겐 이게 최선이야."
  "……."
  다시 한숨이 나왔다. 이 녀석, 중요한 부분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지 몰수인가. 가능하다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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