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력 796년 2월 28일. 하이네센, 통합작전본부. 양 웬리

 

  "수고했네. 양 준장."

  "아뇨.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본부장의 기대에 응하지 못하여 면목 없습니다."

  "그렇지 않네. 귀관은 최선을 다해주었다. 귀관의 제안이 받아들어지지 않은 것은 귀관의 책임이 아니야."

 

  시톨레 본부장의 집무실은 총기함 락슈미의 함교와 달리 있기 편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지금의 내겐 괴롭다. 결국 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본부장의 기대에 응하지 못한 것이다.

  소파에 마주 앉으며 나는 정면에 앉은 본부장의 얼굴을 직시하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있다. 한심할 따름이다.

 

  "그린힐 참모장도 귀관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귀관의 의견이 받아들어지지 않은 건 정말 유감이었다고 말했다."

  "저는 도슨 사령장관에게서 신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인 이상 좋고 싫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지휘관과 참모 사이에는 최소한도의 신뢰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절감했습니다."

 

  "그것도 귀관의 책임이 아니겠지. 이번엔 상성이 나빴을 뿐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책망하지 말게."

  "……."

  정말로 그럴까? 나는 비교적 윗사람에게 호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참모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게 아닐까. 참모는 지휘관을 돕는 게 일일 텐데…….

 

  본부장이 지휘관이라면 내 의견을 받아들어 줬겠지. 동맹군은 승리를 얻는 건 어려웠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고 끝났을 것이다. 본부장이 날 보고 있다. 노고를 위로하는 눈빛이다. 아니, 실제로 위로하는 거겠지. 그 사실이 괴롭다…….

 

  이번 패배에 대해 군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굉장히 크다. 본부장이 지휘를 잡은 건 아니다. 하지만 군부의 최고책임자인 이상 책망을 받는 건 본부장이다. 위로가 필요한 건 본부장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신경 써주고 있다…….

 

  동맹군은 전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패배했다. 절반도 미치지 않은 적에게 우롱당하고 최종적으로는 원정군과 이제르론 요새 주류함대를 오인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했다. 결국 그걸 원인으로 제국군에게 협공 당해 패배했다.

 

  아군은 1만 5천 척 이상의 함선을 잃었지만 제국군의 피해는 그 10분의 1도 되지 않겠지. 그리고 도슨 사령장관은 전투를 개시하자마자 인사불상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 패배로 창피한 마음을 품고 있는 건 본부장도 마찬가지겠지.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휘관이었다면 패배하지 않고 끝났다. 150만 명이나 되는 장병을 죽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동맹의 군부 인사는 어딘지 모르게 엉망진창이다. 국가로서의 통치능력이 떨어져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니 본부장이 말을 걸어왔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가. 성가신 적이다. 아니, 무서운 적이라고 해야 하겠지. 요즘 들어 통합작전본부 내부에서도 그를 위험시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어. 조금 늦었지만."

  "아픈 꼴을 당하고 겨우 깨달았다는 건가요. 지금까지도 아픈 꼴을 실컷 당해 왔는데."

 

  내 말에는 비아냥이 섞여 있겠지. 시톨레 본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적의 유능함을. 한 번이나 두 번은 우연이라 생각하고 싶은 거다. 이번 패배로 겨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런 거겠지."

 

  "아이고 맙소사, 로군요."

  "그래. 아이고 맙소사다."

  본부장의 쓴웃음이 더욱 강해졌다. 나도 웃을 수밖에 없다. 이 무슨 한심한 이야기인지. 사람이란 이 얼마나 어리석은 동물인지…….

 

  조금 지나 본부장이 웃음을 거뒀다.

  "용인할 수 없는 사태로군. 뮈켄베르거 원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리고 뮈젤 대장인가……. 지금 가장 위험한 건 뮈젤 대장이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형국이 되고 있다. 그 때문에 실력이 정당하게 평가 받고 있지 않아……."

  한숨 섞인 어조였다.

 

  "동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이다. 머리가 아파."

  본부장이 표정을 찡그렸다. 제국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인재가 나타난다. 기세가 있다는 증거겠지.

 

  "도슨 사령장관이 사표를 냈다."

  "그렇습니까……."

  놀라지는 않았다. 예상한 일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번 패전에는 정부, 군부, 그리고 시민에게서도 격렬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만 한다.

 

  "본인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국방위원장에게 호소한 것 같다. 하지만 받아들어지지 않았지.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입원하고 있어서야 국방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한 것 같아."

 

  시톨레 본부장이 고개를 젓고 있다. 뒤끝이 나쁘다고 생각했는가. 아니면 억지로 갖다 붙인 것 같은 이유라고 생각했나.

  "그런가요. 최종판결이라고 봐도 좋겠군요."

  "음."

 

  한 번만 더 기회를, 인가……. 마음은 알겠지만 인정할 수는 없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다. 그 위치에 걸맞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자리에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패바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국방위원장은 도슨 대장을 경질하고 싶었던 것 같더군."

  "그렇습니까."

  "음. 제국이 공세를 걸어올 일은 없다. 그렇게 판단했기에 그를 사령장관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제국은 국내 대립을 해소했다……. 그렇게 되면 공세를 걸어올 것은 자명한 이치다. 트류니히트 위원장은 도슨 대장을 불안하게 생각한 것 같아."

 

  어조에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자기 멋대로라고 생각한 거겠지. 나도 동감이다. 도슨 대장을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도 정치가들에게 우롱된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겠지. 지금은 사표지만 퇴원하면 퇴역이 될 것이 틀림 없다. 우주함대 사령장관까지 역임한 거다. 이겼다면 몰라도 패배한 이상 다음 직위는 없다…….

 

  "다음 사령장관은 누구에게."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국방위원장에겐 다시 한 번 나도 후보자로서 검토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할 셈이다."

  "……."

  이번이야말로 올바른 선택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톨레 본부장을, 이라곤 하긴 어렵지만 도슨 대장과 같은 인물이라면 곤란하다. 헌데, 정부는 누구를 고를런지…….

 

 

 

우주력 796년 3월 5일. 하이네센, 호텔 샹그릴라. 죠안 레벨로

 

  사람 눈을 피하여 호텔에 들어가, 계단을 이용해 5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선 누굴 만날지 모른다. 계단 쪽이 안전하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비만은 좋지 않다. 유권자들에게서 움직임이 둔하지 않냐고 생각되는 일은 피해야만 한다. 성실하고 행동력이 있다. 그런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

 

  주위를 확인하며 513호실 앞에 서서 가볍게 문을 노크한다.

  "누구냐?"

  "레벨로."

  서로 억누른 작은 목소리로 확인한다. 문이 열리고 내가 방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방 주인이 앞에 서서 걷는다.

  "언제나 이 방이로군. 어떻게 된 영문이야?"

  "이 호텔 오너가 내 친구라서 말이야. 이 방은 웬만한 일이 없으면 쓰이는 일이 없다."

 

  방 중앙에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내렸다.

  "다시 말해 자네 전용실이라는 건가. 트류니히트."

  "그렇게 되는군."

  기뻐하며 자랑하지 마라. 불쾌하잖아.

 

  "이 방은 미인과 밀회용으로 쓰겠다고 오너에게 전해뒀어. 어디까지나 사적 용무에 쓴다고 말이야."

  "괜찮은 거냐?"

  "괜찮다. 여기에 오는 미인은 자네뿐이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오너를 믿을 수 있냐는 의미로 물은 거다. 한숨을 뱉자 트류니히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안심해도 좋아. 오너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자식, 날 놀렸구만……. 이런 불한당 녀석.

 

  "그래서, 용건은 뭐냐? 사령장관의 인사인가?"

  트류니히트는 한 번 끄덕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방위원회에서 세 사람의 이름이 올라왔다. 통합작전본부장 시톨레 원수, 제1함대사령관 쿠브르슬리 중장, 제5함대사령관 뷰코크 중장이다."

 

  그렇군. 대체적으로 예상된 이름이 올라왔다. 생각하는 건 다들 마찬가지인가.

  "그래서?"

  "뷰코크 중장을 추천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는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야. 그로서는 우주함대의 참모들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할 것이라고 불안시하는 목소리가 많아."

  "엘리트니까 말이지. 병졸 출신에게 명령을 받는 건 싫다는 건가……."

  트류니히트가 내 비아냥에 끄덕였다.

 

  "쿠브르슬리 중장으로 정해졌다."

  "잠깐 기다려. 시톨레가 아닌 건가?"

  "그래서 자네를 여기로 부른 거지."

  "……."

 

  잠깐 동안의 침묵이 지난 후, 트류니히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고 있어. 군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극심하다. 그리고 제국은 국내의 불안정 요인을 해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역량 있는 시톨레를 배치하여 국방의 충실을 꾀해야 한다는 거겠지. 이 이상 국내 사정을 우선하는 건 위험하다고."

  "그래. 자네도 찬성하지 않았나? 트류니히트."

 

  트류니히트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어. 나는 시톨레를 추천했다. 다들 거기에 찬성했다. 결정 됐다고 생각했지만, 한 국방위원이 반대했지……."

  "한 명? 그걸로 바뀌었다는 건가?"

  트류니히트가 끄덕였다. 한 명? 대체 누구야? 국방위원회에서 트류니히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걸 단 한 사람이 뒤집었다?

 

  "그는 함대 재편성 등에 주로 관여하고 있지만, 시톨레 본부장을 움직이면 곤란하다고 하더군."

  "무슨 뜻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뭔가 정체 모를 것을 밟은 느낌이 들었다. 발을 들어 올려 확인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감촉과 닮았다.

 

  "요즘 몇 년 동안, 동맹군은 연패 중이다. 함대 손실도 막대해. 그 재편에 시톨레가 크게 관여하고 있는 것 같아."

  "……."

  시톨레가 어쩔 도리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싫은 예감이 더욱 더 강해졌다.

 

  "신편성 함대를 편입할 것인가, 아니면 변경경비 함대를 편입할 것인가, 혹은 신병이 많으니 변경에서 경험을 쌓게 하여 2, 3년 후에 정규함대에 꾸려 넣을 것인가……. 그걸 쥐고 있는 자가."

  "시톨레라는 건가……."

  트류니히트가 쓴 표정으로 끄덕였다.

 

  "제국이 국내 불안요소를 해소했다는 건 알았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무시무시한 상대라는 것도 알았다. 이후 군내부에는 제국을, 공작을 경시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렇다면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쿠브르슬리 중장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톨레 원수에겐 지금까지처럼 통합작전본부장으로서 대국을 보게 하는 것이 좋다. 군 재편도 원활하게 진행되겠지……."

  "……."

 

  "그걸로 흐름이 바뀌었다. 확실히 정론이긴 해. 정규함대 편성은 급선무다. 지금 이대로는 제대로 쓸 수 있는 함대가 절반도 되지 않아. 수도경비의 제1함대, 겨우 함대 재편이 끝난 제5, 제10, 제11, 제12함대로 5개 함대뿐이다. 이제부터 다시 제2, 제3, 제4, 제7, 제8, 제9의 각 함대를 정비해야만 한다. 다들 그를 지지했어. 나도 반대하지 못했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났을 줄이야…….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다음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쿠브르슬리다. 다음 주에는 정식으로 발표하게 되겠지……."

  나쁜 인사는 아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나쁜 인사는 아니다. 아니, 함대 재편을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겠지. 그렇게 스스로 되뇌었다…….

 

 

 

제국력 487년 4월 4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라인하르트 폰 뮈젤

 

  "사실은 어제 방문하려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신경을 쓰게 만든 것 같군요."

  "아뇨. 그런 것은……."

  "확실히 어제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작의 말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다행이란 표정을 짓고 있다. 공작도 웃음을 짓고 있다.

 

  어제, 원정군이 오딘으로 돌아왔다. 케슬러,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뮐러, 슈타인메츠, 그리고 키르히아이스와 축하하기 위해 방문하자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상대방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문벌귀족들이 대거 저택으로 몰려올 것이 틀림 없다. 하루 두고 방문하자는 것이 되었다.

 

  대다수로 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조금도 싫은 표정을 보이지 않고 우리들을 응접실로 안내해주었다. 모두에게 커피가 준비되었다. 잠시 환담을 할 때였다. 응접실 문이 열리고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들어왔다. 다들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아니, 그럴 필요 없네. 다들 앉게나."

  "……."

  대공은 활달하게 말했지만 도저히 앉을 수는 없다. 애초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일어서 있는 것이다. 그 모습에 대공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잘 와주었네. 음, 거기에 있는 건 미터마이어 소장인가? 잘 지내고 있는가."

  "예.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미터마이어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답하자 대공이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모두들, 앞으로도 사양 없이 방문하게나."

  "예. 감사합니다."

  "음. 그럼 나는 이걸로 실례하지. 그대들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마음 편히 있다 가게나."

  "아버님. 감사합니다."

  공작의 감사의 말에 대공이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응접실을 나갔다.

 

  대공이 나가자 다들 자리에 앉아 서로를 돌아봤다.

  "놀랍군. 설마 대공이 우리들에게 일부러 얼굴을 보이시다니."

  "특히 경은 놀랐겠지? 미터마이어."

  "그래."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두 사람의 대화에 다들 끄덕였다.

 

  "마음을 써주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의외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오만한 분이시라 생각했습니다만……."

  "케슬러 소장,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작의 말에 다들 감탄한 듯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라는 건 극히 평범하게 행동해도 오만하게 보일 때가 있는 거겠죠."

  "하지만, 공작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만."

  내 말에 공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귀족들 중에선 나를 극히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저는 더할나위 없이 오만한 존재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제 귀족들이 대거 와서 승리를 축하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군사에 대한 일도 모르는 자들에게 축하를 받아도……. 솔직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저는 확실히 오만하게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좋고 싫음은 둘째치고 솔직히 기뻐할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한심한 이야기입니다."

  공작이 고개를 젓고 있다. 쓸쓸하단 듯한 말과 제스쳐다.

 

  가슴을 치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나는 공작을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작이 말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공작은 오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면모만으로 사람은 알 수 없다는 건가……. 화제를 바꾸는 편이 좋을까.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공작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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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1월 27일. 이제르론 요새. 제뢰베(바다사자). 폴커 악셀 폰 뷔로.


  “건배다. 베르겐그륀.”

  “뭐에 건배하나?”

  “일단 살아서 돌아온 것이군.”

  “그리고 승리에.”

  “음.”


  서로 잔을 들어 올리고 단숨에 와인을 마신다. 입 안에서 부드럽고 떫은 맛이 남았다. 베르겐그륀이 만족한 웃음을 띠고 있다. 살아있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서로 상대방의 빈잔에 와인을 따랐다.


  이제르론 요새의 고급사관 클럽, 제뢰베(바다사자)는 희미한 웅성거림에 차있다. 싸움에 이겼기 때문이겠지. 어딘지 모르게 들뜨고 화려한 분이기다. 이곳저곳에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잔을 올리고 건배하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전쟁은 이겨야만 한다. 혹시 패배했다면 다들 조의 때문에 잔을 올렸겠지. 애절하고 괴로운 건배다.


  “잘도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겨서 여기에 돌아올 수 있을 줄이야…….”

  “동감이다. 뷔로. 뭐라해도 상대가 5만 척의 대군이었으니까 말이야.”

  “아아.”


  상대는 5만 척이라고 들었을 때엔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동시에 죽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진 적이다. 철퇴해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 할 수 있는 건 초등학생 레벨의 산수도 못하는 녀석뿐이다. 바보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무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차하면 철퇴한다고……. 그렇기에 솔직히 철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반란군을 도발하여 승기를 찾았다. 반란군이 견디지 못할 때까지 참는다. 그리고 승기를 찾는다……. 무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승산이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주류함대를 이용할 줄이야…….”

  “반란군은 이쪽이 요새공방전으로 끌고 가리라고 생각했겠지.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요새공방전이라면 다소의 병력차는 무의미하다.”

  “음.”

  베르겐그륀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끄덕이고 있다. 아무래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공작이 철퇴하는 건 공작 자신이 승기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뿐이다. 그것은 병력의 많고 적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공작은 양군의 병력차를 줄이고, 상대를 속여, 기습을 성공시켰다. 최종적으로 병력차는 거의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확실히 공작은 무리를 하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뒤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까지 승리를 쫓을 수 있는 것인가…….


  공작가의 양자로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었다. 이기는 것이 의무인 싸움이었던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공작의 재기보다도 그 집념에 압도되었다. 공작가의 당주에게 요구되는 그릇의 크기란 그 집념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거겠지. 내게는 도저히 무리다…….


  공작가의 양자가 된 것을 행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운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요구되는 그릇의 크기를 모른다. 그걸 알면 행운보다도 고행이라고 할 것이 틀림없다. 지휘관석에서 계속 승기를 찾는 모습은 승리를 얻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듯이 보였다…….


  “훌륭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해. 잘도 그 상황에서 승리를 찾았다고…….”

  “동감이다. 나는 도저히 무리지. 경이라면 가능한가? 베르겐그륀.”

  “그게 된다면 좀 더 출세했겠지.”

  틀림없다. 지금쯤 일개 함대라도 이끌고 있겠지. 둘이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들은 소리내며 웃을 수 있다. 하지만 공작은 할 수 없겠지. 아마도 쓴웃음을 지을 것이 틀림없다…….


  그 마지막에 열린 작전회의. 거기서 들었던 공작의 말.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상대의 예측대로 움직여서 이길 수 있는 건 전략적으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을 때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는 건 힘들죠. 상대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하물며 우리들은 전력적으로 열세한 상황입니다. 상대의 예측대로 움직여선 이길 수 없습니다. 상대의 예측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면서 의표를 찌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별동대를 격파한다. 혹은 후퇴하여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으로 끌고 간다. 그렇게 주장하는 참모들에게 온화한 표정으로 이제르론 요새주류함대와의 협공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바렌, 루츠 두 함대를 분리하여 주류함대에게 맡기는 것으로 반란군의 눈을 속였다.


  반란군은 우리들이 배후에 나타나기 전까지 눈앞의 적이 주류함대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 우리들의 배후를 찔렸을 때엔 경악했을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됐나하고……. 싸움이라는 것은 심리전이라는 일면이 있다. 상대의 심리를 얼마나 읽어서 싸우는가……. 이번 싸움에선 그야말로 심리전이 점하는 면이 컸다. 거기에 의해 제국군은 열세를 뒤집었다.


  “이걸로 원수로 승진인가…….”

  “그렇지. 그때 발렌슈타인 소령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원수 각하다. 세상사 뭐가 어찌될지 모르는군.”

  “정말이다.”

  베르겐그륀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짓고 있다. 마음은 안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베르겐그륀이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군. 뷔로.”

  “음. 그런 느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스럽지 않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네만…….”

  “그 당시엔 여유가 없었어. 특별 취급을 받는 공작에게 반발했던 걸지도 모른다.”

  “음.”


  서로를 보고 쓰게 웃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제국력 483년 말. 제 359 유격부대에서 있었던 일. 그로부터 3년이다. 시간이 빠른 건지, 아니면 늦은 건지……. 나나 베르겐그륀에게 있어선 결코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공작에게 있어선 순식간이 아니었을지. 그럴 정도로 변화가 빠르다.


  “그보다도 우리들도 준장으로 승진이다. 각하라 불리게 되겠군. 뷔로.”

  “아아.”

  “그걸로 한 번 더 건배하지.”

  “좋아.”

  서로 잔을 올렸다. 그리고 단숨에 마신다. 맛있다. 승리와 마음이 맞는 친구. 오늘은 맘껏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


제국력 487년 1월 27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지금 돌아왔다.”

  “어서오세요. 아버님.”

  “어서오세요.”

  궁중에서 저택으로 돌아가자 딸과 아내가 마중했다. 그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두 사람 모두 들떠 보인다. 요즘 최근엔 없었던 일이다.


  거실에 가서 소파에 앉자 바로 두 사람이 정면에 앉았다. 그리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에리히가 이겼다면서요.”

  “아버님이 궁중에 간 뒤에 에렌베르크 원수에게서 연락이 있었어요.”

  두 사람 모두 아이들같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음. 5만 척의 반란군을 이겼다고 하더군. 훌륭한 일이다.”

  내 말에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뭐야. 듣지 못한 건가?”

  “이겼다고 밖엔……. 그치?”

  아내와 딸이 서로 돌아보며 끄덕였다. 아무래도 군무상서는 자세한 건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다.


  “반란군은 5만 척의 대군이었다고 하더군.”

  “5만 척…….”

  “그래서 에리히님은?”

  “음. 이제르론 요새의 주류함대와 협력하여 협공했다고 한다. 반란군은 큰 손해를 입고 퇴각했다. 대승리로군.”


  “대단해.” “정말.” 두 사람이 기뻐하며 말했다. 꽤나 걱정하고 있었으니. 그만큼 기쁨도 크겠지.

  “에리히님은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어디보자. 이제르론 요새에서 보급이나 함선 수리를 해야만 할테니……, 대충 두 달 후인가?”


  내 말에 딸이 실망한 표정을 보였다.

  “두 달이나…….”

  “그런 표정을 짓지 말아라. 엘리자베트. 전쟁은 끝났으니. 나머진 돌아올 뿐이니까 말이야.”


  안되겠군. 납득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보다도 돌아오고 나선 바빠질 게다. 에리히는 원수로 승진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원수봉 수여식, 전승식전도 있겠지만, 본가에서도 축하 파티를 해야만 하겠지.”


  “에리히는 싫어하겠지만 말이에요.”

  “뭐, 그럴지도 모르겠군.”

  나와 아내의 대화에 엘리자베트가 웃음소리를 냈다. 아내와 나도 합창하듯이 웃었다.


  웃음이 끝나고 딸이 아내에게 뭔가 속삭이고 자리에서 떠났다. 거실에 나가기 직전에 “어머님, 부탁해요.”라고 한다. 헌데, 지금 그건 딸이 내게 직접 부탁하기 힘든 걸 부탁할 때의 버릇이지만……. 아내에게 시선을 향하자 쓴웃음을 띠고 있다.


  “뭔가 내게 부탁할게 있나?”

  “네. 조금.”

  “뭐냐. 대체.”

  질문하자 아내의 쓴웃음이 더욱 커졌다.


  “에리히와 정식으로 약혼하고 싶다고요.”

  “약혼?”

  “에리히는 의붓아들이지 데릴사위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네요.”


  아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농담인가?”

  “아뇨. 정말이에요.”

  “질투인가?”

  “네.”


  질투? 엘리자베트는 아직 15살이겠지. 그런데 질투? 내가 아연해하자 아내가 말했다.

  “여보. 엘리자베트는 벌써 15살이에요. 질투도 하지요.”

  “그런 건가? 엘리자베트는 아직 아이겠지.”


  아내가 웃었다. 어이없단 표정이다. 여심을 모르는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 봐도 뻔하다. 그 말대로다. 여자아이의 생각은 전혀 모르겠다.

  “이전 무도회에서 말인데요.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 에리히와 이야기를 했잖아요? 백작부인은 평소엔 인사만 하고 거의 말하지 않는데도.”

  “…….”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인가……. 움직일 것 같은 표정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때는 무심코 가슴께에 눈이 가고 말아서 아내에게 엄청 혼났다. 기분을 푸는 데에 루비 목걸이가 필요할 정도였다. 리텐하임 후작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지. 후작은 사파이어 귀걸이였다던가……. 딱히 닿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렇게 화내는 건가. 불합리하지 않은가. 설마 보석을 사주게 할 구실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에리히가 뮈젤 대장을 어떻게든 비호하려고 하잖아요? 귀족의 영애들 사이에선 그걸로 그뤼네발트 백작부인과 이으려는 자가 있다고 해요. 특히 저번 코르프트 자작의 사건에선…….”

  “하찮군.”


  바보 같은 소리다. 에리히가 그 금발 애송이를 비호하는 건 그를 아군으로 삼기 위해서다. 백작부인의 일 따위 아무런 관계도 없다. 백작부인이 에리히에게 말을 거는 것도 에리히에게 그 애송이를 맡기기 위해서겠지. 혹은 코르프트 자작 사건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선 저 두 사람의 관계는 극히 친밀하지만, 정치적인 것이다. 연애가 아니야.


  오히려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 놀랍다. 에리히의 장래성을 산 것인가. 혹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이제부턴 백작부인의 움직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험시하는 건 아니지만, 주의는 필요하겠지.


  “알고 있어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하지만 모두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고, 엘리자베트와 에리히가 정식으로 약혼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흠.”

  확실히 약혼은 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께서 에리히를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약혼 허가가 내려졌다. 그런 인식이었다. 굳이 약혼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왜 그러세요? 여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좋아. 약혼을 발표하지.”

  “…….”

  아내가 내 얼굴을 보고 있다. 예상외의 반응이었나……. 하지만 약혼을 발표한다면 지금이다. 지금이 그런 때겠지…….


  “조금 성가신 적이 나타났다.”

  “성가신 적?”

  “음. 페잔이라는 성가신 적이 말이야……. 아무래도 페잔은 에리히를 방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에게 이번 싸움에서 페잔이 반란군의 정보를 고의로 제국에게 숨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리히텐라데 후작의 추측, 페잔은 우리들이 손을 잡은 것을 위험시하고 있다. 그리고 에리히를 위험시하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내의 표정이 엄해졌다.


  “에리히를 양자로 받은 것은 내란을 막기 위해서였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실제로 제국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됐다. 우리들도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어. 하지만 대외적으로 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유리하게 전쟁을 진행하고 있던 제국이 국내의 불안정요소를 해소했다. 보다 강력해졌다. 그렇게 봐도 이상하지 않아.”

  이야기를 끝내자 아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제국, 반란군의 세력균형을 바라는 페잔에게 있어선 바라는 바가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지.”

  “그래서 중요인물인 에리히의 실추를 노렸다고.”

  “그 말대로다.”

  또 아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약혼을 발표한다는 건, 에리히의 입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거군요.”

  “맞다. 그리고 에리히를 지키겠다는 우리들의 결의표명도 되겠지.”

  “……확실히 지금이 그때일지도 모르겠네요. 에리히는 궁중에서도 군부에서도 힘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엘리자베트가 바라고 있다. 표면적으론 그게 이유가 되겠지. 하지만 진실은 페잔에 대해서 선언이기도 하고 제국 내부 귀족에 대한 위압이기도 하다. 에리히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이며 제국 원수고 황손의 혼약자라는 것을 새삼 선언한다.


  “모처럼 하는 일이니 맘껏 화려하게 하는 게 어때요?”

  “화려하게?”

  “궁중에서 전승축하 파티가 열리지요? 기왕에 하는 김에 거기서 발표해서 폐하의 축하를 받는 거예요. 참여하고 있는 모두가 축하해주겠죠…….”

  말을 잃었다. 그런 나를 아내가 재미있단 듯이 보고 있다.


  “과연. 궁중의 공식행사에 끼우는 것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희사가 아니라 제국의 희사로 하는 거군.”

  “네.”

  “좋다. 내일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말해보지.”

  저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나왔다. 저 노인도 눈을 크게 뜨겠지. 그리고 웃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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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1월 19일. 포르세티.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아무래도 우리들을 눈치 챈 것 같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요…….”

  공작의 말에 끄덕였다. 확실히 이미 늦었다. 전술 컴퓨터 화면, 정면의 스크린은 어떻게든 사태에 대응하려고 하는 반란군을 비추고 있다.


  최후미의 소부대, 아마도 반란군의 총사령관이 이끄는 부대라고 생각하지만. 필사적으로 진형을 바꿔 이쪽을 향하려고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적을 막아서 아군을 철퇴하려는 거겠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와서 해봤자 혼란에 박차를 가할 뿐이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겠지.


  그리고 전방에 있는 3개 함대는 서둘러 후퇴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전방에서 이제르론 요새주류함대, 바렌, 루츠 함대의 공격을 받아 생각처럼 후퇴하지 못하고 이쪽도 혼란에 빠져있다. 게다가 후방에는 총사령관의 부대가 있다. 생각처럼 후퇴도 할 수 없다.


  “방해전파를 보냅니까?”

  발견 된 이상, 더 이상 은밀행동은 필요 없다. 그보다도 적의 통신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습은 성공했고, 적의 별동대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방해전파는 필요하지 않다고도 보이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대로 전진하여 일격에 최후미 함대를 격파합니다. 그 뒤에 전방 3개 함대를 배후에서 공격하며 오른쪽으로 이동합시다. 그걸로 상대는 궤주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후방은 차단하지 않는다. 올바른 판단이다. 아군은 1만 5천, 반란군은 최후미의 함대를 빼도 4만 척 이상 있겠지. 섣불리 후방에서 퇴로를 차단하면 궤주하는 적 함대에게 말려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함대로서 행동은 도저히 할 수 없게 된다. 이쪽도 함께 궤주하고 만다.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적이 패주한다면 후방, 혹은 후방 비스듬히 반란군을 공격하는 편이 좋다. 충분히 손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반란군, 사정거리 안까지 앞으로 10초!”

  오퍼레이터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리가 목전에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겠지. 공작에게 시선을 향하자 희미하게 끄덕였다.


  “전 함대, 포격전 준비.”

  내 목소리와 함께 공작의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 손이 내려지면 공격이다. 함교의 분위기가 긴박해졌다. 1, 2, 3, ……약간의 사이를 두고 오퍼레이터가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완전히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 목소리가 끝나기 전에 공작의 오른손이 내려졌다…….


...


제국력 487년 1월 27일. 오딘, 신무우궁.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에리히가 출정하고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앞으로 열흘이 지나면 세 달째다. 이미 반란군과 접촉은 했겠지. 어느 정도의 전투도 했을 것이 틀림없다. 대체 어떤 상황인 것인가, ……답답한 일이다.


  아말리에와 엘리자베트도 최근엔 침울한 기색이다. 예전엔 식사 때에 에리히는 어떻게 하고 있을지 화두가 되기도 했지만, 요즘엔 오히려 피하게 되었다. 꽤나 걱정하고 있다.


  이런이런. 군인 남편 따윈 붙여줄 것이 못되는군. 아니, 아직 남편은 아니었나. 어떻게든 잘 뿌리쳤으면 하는 맘이지만……. 그런 걸 생각하면서 신무우궁 복도를 걷고 있자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무슨 일인가? 근심스런 얼굴이네만.”

  “오오, 리히텐라데 후작인가.”

  “보아하니, 의붓아들 일인가.”

  눈앞에서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이 히쭉히쭉 웃고 있다. 변함없이 악인상이군.


  “모처럼 얻은 의붓아들이다.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뭐, 그렇구먼.”

  “국무상서도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네만.”

  정부, 군부,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그 4자 협력의 일환으로 그 자가 당가의 양자가 된 것이다. 히쭉히쭉 웃을 일이 아니다.


  “확실히. 어떤가? 내 집무실에 들리지 않겠나? 잠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네만.”

  “흠. 알았다. 가도록 하지.”

  둘이서 나란히 신무우궁 복도를 걷고 있자 귀족이나 궁중 직원이 인사를 해왔다. 어찌된 일인지 그들의 표정이 이쪽을 보고 웃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에리히를 걱정하는 걸 보고 웃는 것인가……. 바보 같군. 기분 탓이다…….


  국무상서 집무실에 들어가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술잔과 와인을 꺼냈다.

  “좋은가? 한낮부터 술이라니.”

  “가끔씩은 좋겠지. 대공에겐 이게 필요한 듯하니.”

  “흠.”

  마음을 써주는 건가. 흔찮은 일이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잔에 와인을 따르고 내게 건냈다.

  “게다가 축하할 일도 있고.”

  “축하할 일?”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 회임했다.”

  “설마…….”


  백작부인이 회임했다? 태어난 아이가 여자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게 남자라면……. 생각에 빠져있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이상하다는 듯이 웃고 있다.


  “?”

  “용서하게. 백작부인의 회임은 거짓말이다.”

  “거짓말?”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거짓말인가……. 어처구니없는 노인이군. 날 속여먹다니. 노려봤지만 후작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축하해야 할 일은 따로 있네. 아까 전에 군부에서 보고가 있었다. 원정군이 이제르론 요새에 돌아왔다. 대승리라고 하더군.”

  “호오. 그런가?”

  “음. 축하할 일이지?”


  확실히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안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가. 이겼는가…….”

  “에렌베르크 군무상서가 대공의 저택에 연락을 넣었네만. 이쪽으로 왔다고 들었나보네. 그래서 내게 보고하는 겸 대공에게 알려달라고 부탁을 받았지.”


  “그런가. 그건 수고를 끼쳤군.”

  “나도 꽤나 친절하지 않은가?”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후작이 웃음소리를 냈다. 함께 웃으며 잔을 입으로 옮겼다. 흠. 꽤나 괜찮다. 나쁘지 않다.


  “헌데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네.”

  “…….”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는 건 날 끌어들일 구실만인 건 아닌 것 같다. 국무상서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반란군은 5만 척에 가까운 대군을 움직였다고 하더군.”

  “5만 척……, 잘도 이겼군.”

  에리히는 2만 척밖에 이끌지 않았다. 그걸로 5만 척에 이겼다. 기쁨 보다도 탄식이 나왔다.


  “주류함대와 함께 협공했다고 하네.”

  “과연……. 하지만 그래도 열세였겠지. 대단한 일이다.”

  “음. 뭐, 그건 됐네. 문제는 페잔에서 반란군의 움직임에 대해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일세.”

  “…….”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보고 있다.

  “지금까지 반란군이 움직이면 이쪽에 연락이 있었네. 적어도 대규모의 출정이라면 반드시 말이야.”

  “5만 척. 적지는 않겠지.”

  “음.”


  반란군이 대규모로 함대를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잔에서 보고가 없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경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리히텐라데 후작.”

  “아니겠지.”

  저도 모르게 몸을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의인가…….”

  “음.”

  “제국군의 패배를 노렸다는 거로군. 요즘 최근 제국은 유리하게 전쟁을 진행하고 있네. 열세인 반란군에 힘을 줘 전력의 천칭을 맞춘다. 그런 거로군.”


  리히텐라데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이 아닐세. 녀석들이 노리는 건 대공, 경의 의붓아들일지도 모르네.”

  “…….”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말을 계속했다.


  “녀석들, 우리들이 손을 잡은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행동에 나선게지.”

  “그 첫단계가 에리히인가.”

  “첫단계라기보단, 공작을 노린 것이 아닐까 난 생각하고 있네.”

  “…….”


  “이전 코르프트 자작 사건, 깔끔하게 정리했으니 말일세. 군부만이 아니라 궁중에서도 힘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한 걸지도 몰라. 이대로 방치하면 성가신 존재가 된다고 말이지.”

  “그래서 고의로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

  “음. 전장에서라면 페잔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지.”


  전사하지 않더라도 패배하면 정치적인 지위는 떨어진다. 그걸 노렸을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에리히는 그 함정을 훌륭하게 피했다. 의도가 빗나간 페잔은 어떻게 나올까…….

  “앞으로도 페잔은 에리히를 노리겠지.”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이런이런. 모처럼 내란의 위기를 막았다고 생각했다. 공작가도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새로운 적이 나타났나. 교활하고 방심할 수 없는 적. 페잔……. 생각에 빠져있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쿡쿡하고 웃기 시작했다.


  “……훌륭한 의붓아들을 가지는 것도 큰일이구먼.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놀리지 말게.”

  “뭐, 걱정할 필요는 없네. 저건 적에게 대해선 용서가 없는 자이니. 이제 곧 페잔은 뼈저리게 느끼겠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그렇게 말하며 리히텐라데 후작은 크게 웃었다……. 맘도 편하다.


...


우주력 796년 1월 27일. 동맹군 우주함대 총기함, 락슈미. 양 웬리.


  “어떻습니까? 사령장관은.”

  “음. 꽤나 좋아진 것 같네. 단지…….”

  그린힐 참모장이 곤혹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삼각건으로 왼팔을 묶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하기야 나도 이마에 붕대를 감고 있다. 안쓰러운 건 마찬가지인가…….


  “단지?”

  “……약간 기억에 혼란이 있는 듯하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설명하셨습니까?”

  참모장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라도 좋겠지. 지금은 치료에 전념하는 편이 좋아. 게다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있을지 어떨지…….”

  “그렇지요.”

  서로 말끝이 무겁다. 한숨이 나올 것 같은 대화다.


  “이제 와서 말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네만. 귀관의 말대로 아스타테 성역에서 제국군이 철퇴하기를 기다려야 했네.”

  “그건…….”

  확실히 이제 와서 말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동맹군은 패배했다. 손실은 전체의 3할에 가깝다. 함정 수 1만 5천 척, 장병 1백 50만 명에 이르겠지. 대패라고 해도 좋을 상황이다. 후방에서 제국군이 나타났을 때, 사령장관의 직솔함대는 필사적으로 진형을 변경하여 새로이 나타난 제국군에 대응하려고 했다. 전방에서 싸우는 함대는 철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 부대는 급진해오는 제국군에게 분쇄됐다. 전력차가 3배나 되고 불충분한 태세인 채 선제공격을 당한 것이다.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제국군은 순식간에 우리들을 분쇄하고 전방에 전개하고 있는 3개 함대를 습격했다.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배후를 공격한다. 후퇴하고 있던 제 2, 제 7, 제 9, 3개 함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궤주하는 동맹군을 제국군은 후방, 그리고 후방 비스듬히 추격했다. 손해의 대부분은 이 시점에서 발생했다.


  제국군이 추격을 빠른 단계에서 끊지 않았다면 손해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들이 추격을 끊은 것은 이제르론 요새주류함대를 추격에 쓰는 데에 망설였기 때문이겠지. 일시적이라곤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를 맨몸으로 하는 위험성을 고려했을 것이 틀림없다.


  도슨 사령장관은 전투 최초 단계에서 부상에 의해 인사불성에 빠졌다. 총기함 락슈미는 제국군의 공격을 받아 좌현에 피탄, 락슈미는 극심하게 진동했다. 그 충격에 도슨 사령장관은 지휘관석에서 떨어졌다.


  도슨 사령장관만이 아니다. 그린힐 참모장과 나도, 아니 함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의해 자리에서 떨어졌겠지. 하지만 사령장관은 운이 나빴다. 떨어졌을 때, 머리를 강하게 테이블에 부딪쳤다고 한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도슨 사령장관 위에 마찬가지로 의자에서 떨어진 사관이 쓰러졌다…….


  쓰러진 사관에 의해 심하게 흉부가 눌린 사령장관은 갈비뼈가 두 개 부러지고, 그 중 하나가 폐에 찔렸다. 그 외에도 팔이나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다행인 건 머리의 타격에 의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픔도 숨이 괴로운 것도 느끼지 않았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가……. 만만한 상대는 아니군.”

  “예.”

  “정부도 이번 패전에서 그 부분을 이해해줬으면 하네만……. 그를 상대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야.”


  그린힐 참모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다. 다음 사령장관에 대한 것이겠지. 이번 패전에서 도슨 사령장관이 경질되는 건 틀림없다. 이유는 부상요양이 되겠지. 완치에 세 달은 걸리리라 군의가 진단했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경질하기 쉬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 사령장관이 누가 되는가다……. 가능하면 시트레 원수가 사령장관이 되었으면 하지만 트류니히트 국방위원장이 어떻게 생각할지……. 이번 건으로 평범한 지휘관을 사령장관으로 두면 어떻게 될지 이해했으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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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1월 18일. 동맹군 우주함대 총기함, 락슈미. 드와이트 그린힐.


  동맹군은 도슨 사령장관의 지시에 함대를 둘로 나눠 제국군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하기사 진격이 원활하게 행해진 건 아니다. 함대 배치를 무시하고 중앙 제 2함대를 별동대로 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다소 혼란이 일어났다.


  도슨 사령장관은 제 2함대를 시계방향으로 우회하도록 명령했다. 그렇다면 제 2함대는 좌익 제 9함대 눈앞을 지나 뿌리치며 우회행동하게 된다. 뿌리칠 수 있으면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제 2함대의 옆구리를 제 9함대가 찌르게 될 수도 있다.


  제 2함대를 정지하고 제 7, 제 9함대가 선행한다는 방법도 있다. 양익이 선행하며 합류하여 제 2함대는 그 배후에서 우회행동을 한다. 그 뒤에 사령장관의 직솔함대가 선행하는 제 7, 제 9함대를 뒤따른다……. 혹은 제 2함대가 선행해도 좋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시간은 걸리겠지. 다시 말해 제국군에게 그만큼의 시간을 준다는 뜻이다.


  그걸 한다면 이동하면서 제 2, 제 9함대 어느 쪽인가를 상승, 혹은 하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좌익 제 9함대와 우익 제 7함대로 본대를 새로 꾸민다는 작업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제 2함대를 상하 어느 쪽으로 이동시켜 제 9, 제 7함대를 중앙으로 이동하는 편이 함대편성 효율이 좋다. 그리고 사령장관의 직솔함대를 재편된 본대 후방에 둔다.


  이동하면서 행한다면 각 함대의 속도, 거기에 제 2함대의 상승, 혹은 하강 각도를 조율해야만 충돌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조율은 지시를 내린 총사령부가 해야만 한다. 거기에 눈치 챘을 때의 도슨 사령장관의 짜증은 굉장했다. 이유도 없이 마구잡이로 주변 사람에게 분풀이를 했다.


  결국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바에야 별동대를 제 9함대로 변경하든가, 모든 함대를 일단 정지하게 하여 제 2함대를 먼저 보내는 편이 좋다고 도슨 사령장관이 판단했다. 사실은 전투 전에 충돌 사고를 일으키면 지시를 총사령부가 내린 이상 자신의 책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함대행동의 신속함을 우선한다면 별동대를 제 9함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령장관은 별동대를 제 2함대로 하는 것에 집착했다. 만일 제국군에게 공격당해도 제 2함대라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사이에 본대가 구원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일리 있는 건 확실하지만, 사실은 일단 내린 자신의 명령을 취소하기 싫었겠지. 체통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일이다. 결국 전 함대를 정지하여 제 2함대를 선행하게 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일련의 소동 속에서 사령부 참모들은 창백한 무표정으로 분풀이를 하고 있는 도슨 사령장관을 보고 있었다…….


  함대를 둘로 나누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다. 당초 동맹군의 본대는 천천히 진격하고, 별동대인 제 2함대는 속도를 올려 진격했다. 제국군이 동맹군 본대의 이동속도에 맞춰 철퇴한다면 협공이 가능, 가능하다면 제국군을 협공하고 싶다는 도슨 사령장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제 2함대가 너무 선행하면 제국군이 각개격파에 나설 위험성이 생긴다.


  사령장관에겐 그 점을 새삼 지적했지만, 제 2함대에겐 충분히 주의하라는 지시했다. 본대도 다가가고 있으니 구원은 가능. 걱정할 필요 없다. 경우에 따라선 제 2함대를 공격하는 제국군을 협공할 가능성도 발생하겠지 라며 퇴짜를 놓았다.


  뺨을 떨면서 찢어진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고 한다. 정당함이 아니라 권위로 상대를 짓누르려 한다. 자유행성동맹은 어처구니없는 폭군을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가지고 말았다. 적보다도 성가신 상대다.


  도슨 사령장관은 전과를 바라고 있다. 밀어 붙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하면서 사실은 제국군을 격파하기 바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은 제 2함대를 이용하여 제국군을 유인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상대는 그런 전과 욕심으로 싸워도 좋을 물러한 상대가 아니다.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 유일한 위안은 제국군이 후퇴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맹군이 전진을 시작하자 제국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발퀴레가 몇 번이나 색적을 목적으로 이쪽에 접촉했다. 그 때마다 스파르타니안에게 명령하여 쫓아냈지만, 그래도 발퀴레는 접촉해왔다.


  이쪽도 색적을 목적으로 스파르타니안을 보내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발퀴레에게 쫓기오 있다. 꽤나 방해가 심하다. 병력이 열세인 이상 당연하긴 하지만, 제국군은 신경질적일 정도로 이쪽을 경계하고 있다. 도슨 사령장관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심성을 배웠으면 할 정도다.


  덕분에 색적부대에선 단편적인 정보밖에 오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제국군은 5천 척 정도의 함대를 최후미에 두고 본대는 선행하여 철퇴했다고 한다. 제국군 최후미의 부대는 이쪽의 색적부대를 배제하면서 정연하게 철퇴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 5천 척은 원정군 안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겠지. 방심할 수 없다. 혹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본인이 이끌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선행하는 제국군 본대를 둘러싸고 또 논의가 일어났다. 혹시 밴플리트 성계에 숨어서 우리들을 지나쳐 보낸 다음 배후에서 습격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양 준장의 지적은 지당한 것이었다. 도슨 사령장관도 떫은 표정이었지만 그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밴플리트 성계를 지나갈 때엔 기습을 두려워하여 함대는 찌릿찌릿한 긴장감에 싸였었다. 결과적으로 기습은 없었지만, 만일을 위해서 밴플리트 성계에는 초계부대를 몇인가 남겨뒀다. 적을 발견하면 바로 보고가 올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보고가 없다는 것은 제국군 본대는 이제르론 회랑 방면으로 서두르고 있다는 거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쪽의 의도를 눈치 채고 있는 것 같다. 후퇴를 시작하고 일주일 이상이 지났지만 이쪽을 도발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제국군은 철퇴에 전념하고 있다. 덕분에 동맹군 본대도 진격의 속도를 올렸다. 제 2함대와의 거리도 위험할 정도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점에 관해서만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양군의 거리는 제국군이 철퇴를 끝내면 거의 하루 정도로 붙는 거리다. 하지만 제국군은 이제 곧 이제르론 회랑 입구에 도착한다. 본대는 이미 회랑 안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동맹군은 제국군을 포착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협공도 불가능하다. 회랑 내부로 밀어붙이는 것이 전부겠지.


  도슨 사령장관은 불편한 표정으로 지휘관석에 앉아 있다. 그리고 때때로 작게 몸을 떠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제국군을 협공할 수 없는 점이 불만스러운 거겠지. 몇 번인가 큰 소리로 “제국군도 한심하군. 도망칠 뿐인가.”하고 내뱉고 있다. 혹은 그러면서 자신을 크게 보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다들 그런 적 이상으로 성가신 사령장관에게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


우주력 796년 1월 19일. 동맹군 우주함대 총기함, 락슈미. 도슨.


  “제국군도 한심하군. 도망칠 뿐이지 않은가.”

  시시하다. 아무도 내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단지 잠자코 일하고 있다. 추격중인 거다. 대단한 일 따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누구도 날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나도 모르게 “흥”하고 코를 울리고 말았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다. 다들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만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일도 없다. 도슨은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서 믿음직하지 않다. 적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경질되리라 보고 있다. 그래서 누구도 날 친밀하게 보좌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잠자코 보고만 있다…….


  그린힐이나 양이나 입을 열면 신중하라는 말밖에 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두려워하며, 전투를 피하려고 하고 있다. 전쟁이다.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번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일 것이다. 아군은 4만 6천 척, 제국군은 2만 척. 2배 이상의 전력차가 있다. 정면에서 밀어붙여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걸로 이길 수 없다면 이상하겠지. 그런데도 싸움을 피하려고 한다.


  알고 있다. 두 사람은 내가 공적을 세우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린힐이나 양이나 시트레 통합작전본부장과 친하다. 본부장이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되고 싶어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시트레 본부장의 뜻으로 여기에 있는 거겠지.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서도 적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하게도 내게 대한 비난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적이 위험하다고 해도, 아무리 참모들이 그걸 권했다고 해도 군인의 일은 적에게 이기는 것이며 결단하는 것은 지휘관인 나다. 내 책임이 되는 것이다. 날 경질시키는 것에 아무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싸움, 적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한다면 동맹 전체에서 내게 대한 비난이 일겠지. 그렇기에 더더욱 공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쪽은 적과의 결전을 바랬다. 하지만 적이 거기에 응하지 않고 철퇴했다. 손해는 주지 못했지만 동맹군은 제국군을 밀어붙여 이제르론 회랑까지 추격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실적이 필요한 것이다…….


  그거라면 적어도 무능하다는 말은 듣지 않겠지. 그런데도……. 함교는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그린힐을 시작하여 참모들 거의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양 웬리는 낮잠 자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날 주목하지 않는다. ……아군 중에도 적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색적부대에게서 보고입니다. 제국군, 이제르론 회랑 입구에서 발견!”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양 웬리도 눈을 떴다. 혹은 자는척했던 건가……. 그린힐이 긴장한 모습으로 어퍼레이터에게 물었다.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약 2만 척.”


  선행하며 철퇴하던 부대와 최후미를 맡았던 부대가 합류했는가.

  “참모장. 앞으로 어느 정도면 이제르론 회랑에 도착하나?”

  “약 4시간 정도입니다.”

  4시간인가……. 그린힐이 날 보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이다. 무례한 녀석이다.


  “제국군의 목적은?”

  잠시 간격을 두고 내 질문에 포크 중령이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답했다.

  “제국군이 회랑 입구에 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주류함대가 원군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주류함대가 응원한다 할지라도 적의 총수는 4만 척도 되지 못해. 우리가 유리하다. 그렇지 않은가? 포크 중령.”

  “그 말씀대로입니다. 참모장. 그렇다면 주류함대가 원군으로 올 가능성은 적지요. 남는 가능성은 제국군이 우리들을 회랑 안으로 유인하여 요새공략전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요새공략전이라면 병력 차이를 커버할 수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과연, 요새공략전인가……. 중령의 말대로, 요새공략전이라면 다소의 병력차는 커버할 수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이기려고 생각한다면 확실히 그것밖에 없겠지…….

  “우리 군은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모두 서로를 돌아보고 있었지만, 그린힐이 입을 열었다.

  “일단 시급히 제 2함대와 합류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르론 회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득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요새공략전은 피해야만 합니다. 제국군은 우리들을 도발하여 회랑 안으로 후퇴할지도 모릅니다만, 우리 군은 회랑 밖에서 응전해야 합니다.”


  역시 그렇게 되는가……. 요새공략전이 불가능한 이상 별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쉬운 일이다. 여기까지 제국군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걸로 만족해야겠지. 그렇다 해도 불쾌한 일이다. 함교에 있는 참모들 전부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린힐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대로 요새공략전으로 돌입하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이기고 싶은 거다. 싸우고 싶은 게 아니다. 왜 질지도 모르는 싸움을 해야 하는 거냐…….


  “좋겠지. 제국군이 공격을 가해와도 이쪽은 회랑 입구에서 응전, 회랑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제 2함대와의 합류를 서둘러라.”

  “예.”

  그린힐이 희미하게 안심하는 표정을 보였다. 무례한 녀석이다…….


...


우주력 796년 1월 19일. 동맹군 우주함대 총기함, 락슈미. 양 웬리.


  동맹군과 제국군이 이제르론 회랑 입구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다. 동맹군은 제 2함대가 합류하여 병력은 4만 6천 척으로 돌아왔다. 한편 제국군은 2만 척으로 병력에 변화는 없다. 당초, 양군은 사정거리 밖에서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먼저 제국군이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와서 공격을 가한다. 그리고 빠르게 후퇴한다. 이쪽이 쫓아가서 공격하려고 하면 더욱 후퇴한다. 벌써 4시간 가까이 계속하고 있지만, 명백하게 이쪽을 회랑 안으로 유인하려고 하고 있다.


  도슨 사령장관은 조바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르론 회랑 안으로 돌입은 막고 있다. 회랑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어디에서 전투를 끝낼지 어려워진다. 회랑 밖에서 대치하는 것이 현명하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언제까지나 대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철퇴한다.


  대병력을 가지고 지구전으로 상대를 철퇴하게 한다. 조금 소극적이지만 명백히 뻔히 보이는 도발에 응할 필요는 없다. 이대로 끈기를 가지고 대응하면 된다. ……묘하군. 제국군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부자연스럽다. 어찌된 일인가. ……설마…….


  “사령장관 각하!”

  “……뭔가? 양 준장.”

  도슨 사령장관이 날 불쾌하단 표정으로 보고 있다.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이 노골적으로 태도로 드러나고 있다. 지긋지긋하지만, 그 이상으로 제국군이 신경 쓰인다. 혹시 당해버렸나…….


  “제국군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습니다.”

  “부자연?”

  “아까 전부터 우리들을 도발하고 있는 건 5천척 정도의 함대뿐입니다.”

  “그래서 뭐라는 건가?”

  도슨 사령장관의 표정을 보고 알았다. 불쾌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정말로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초조한 마음으로 말을 계속했다.


  “우리들을 회랑 안으로 유인하려면 2만 척 전부를 쓰는 편이 효율적일 겁니다.”

  “…….”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의 함대만으로 도발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휘계통이 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린힐 차모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오퍼레이터에게 뭔가를 명령했다. 아마도 함정 식별을 명령했겠지. 포크 중령도 표정이 굳었다.

  “어찌된 일이냐. 지휘계통이 달라? 대체 무슨 말이야.”

  “저 움직임이 없는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의 주류함대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


  도슨 사령장관이 경악하고 있다. 그리고 함교 안에서 참모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눈치 채는 것이 늦다! 아니, 늦은 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제국군이 집요하게 동맹군을 도발한 것은 동맹군을 이제르론 회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겠지.


  생각해보면 공작에게 있어서 동맹군이 함대를 둘로 나눌지 아닐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각개격파가 가능할지 아닐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애매모호한 것을 전제로 작전을 세울 리가 없다…….


  요새공략전도 마찬가지다. 동맹측이 공략전을 행할 가능성은 낮았다. 회랑 근처에서 이쪽을 계속 도발하는 것은 회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동맹군의 눈을 자신들에게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그 사이에 제국군 본대가 움직인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목적은 요새공략전이 아니다. 이제르론 주류요새와의 협공이다……. 동맹군이 도발에 응하여 회랑 안으로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아무래도 좋았다. 회랑 근처까지 유인하기만 하면 좋았던 것이다…….


  “원정군 본대는 우리들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곧바로 철퇴해야만 합니다. 이 이상 여기에 머무르는 건 위험합니다.”

  “……철퇴하라는 건가. 하지만 확증은 없겠지.”

  도슨 사령장관은 어딘가 납득하지 못하겠단 표정이다.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나…….


  “그럼 1개 함대를 전선에서 빼내 후방을 경계하도록 해주십시오.”

  “…….”

  “각하!”

  안 된다. 납득하고 있지 않다……. 그 이상으로 날 신용하고 있지 않다. 신용이 있으면 다소 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용이 없다…….


  “좌후방에 적 함대! 다수, 1만 척을 넘습니다!”

  오퍼레이터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리고 다른 오퍼레이터가 마찬가지로 외쳤다. 희미하게 떨고 있다.

  “전방의 함대에 전함 굴베이그를 발견! 저건 주류함대 기함입니다!”

  함교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모두 얼굴이 굳었다. 늦었다……. 승패는 정해졌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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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6년 1월 10일. 동맹군 우주함대 총기함, 락슈미. 드와이트 그린힐.


  모두 망쳤다. 참모들을 진정시켜 의식을 맞추려고 했는데……. 참모들도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는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령장관만이 아무것도 모른다.


  질책을 받은 사관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고 있다. 이후 그가 도슨 사령장관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는 일은 없겠지. 아군을 줄이고 적을 늘릴 뿐이다. 많은 참모들이 표정을 지우고 있다. 내심 어이없겠지. 스스로의 행위로 평가를 낮춘 꼴이다.


  도슨 사령장관이 끔찍하다는 듯이 혀를 차고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 번 묻지. 어떻게 하면 적을 쳐부술 수 있는가? 자네들은 그걸 생각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거겠지?”

  “…….”

  비아냥거리는 듯하다. 그것 때문에 사관학교 교관시절, 학생들에게 미움 받았다고 들었지만, 본인은 아무것도 느끼는 바가 없었던 것 같다.


  “함대 하나를 우회하여 제국군의 후방으로 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후방이 끊기면 적도 철퇴할 수밖에 없겠죠. 적이 눈치 채지 못하고 술래잡기를 계속 한다면 협격할 수 있습니다.”

  “음.”


  제안을 내놓은 건 포크 중령이었다. 젊은 축에선 준수하다고 불리는 사관이다. 사령장관 옆에 놓인 전술 컴퓨터를 조작하여 작전안을 모니터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한 함대가 우회하여 제국군의 배후로 빠지는 움직임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도슨 사령장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만족하기만 하는 표정은 아니다. 적을 반드시 격파할 수 있다곤 할 수 없다는 것이 불만이겠지. 도슨 사령장관은 서두르고 있다. 도발 당한 이상 뭐가 어찌됐든 적을 격파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만두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적이 노리는 것이 그겁니다.”

  포크 중령은 제안을 부정당해 얼굴을 찡그렸다. 발언한 것은 양 준장이었다. 도슨 사령장관이 준장에게 시선을 향하지만, 호의적이기만 한 시선은 아니다. 준장은 시트레 원수와 친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슨 사령장관은 양 준장을 꺼리고 있다.


  “제국군이 공세에 나서지 않는 것은 우리들에 비해 병력이 적기 때문입니다. 도발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우리들이 초조한 나머지 병력을 분산하여 협격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준장은 도슨 사령장관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고 말을 계속했다. 보기보다 신경이 두껍다.


  “한 함대를 별동대로 했을 경우, 최대라도 제 2함대 1만 5천 척입니다. 제국군 2만 척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적의 후방으로 나가기 전에 제국군에게 포착되어 각개격파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

  도슨 사령장관이 얼굴을 찡그렸다. 저주스럽단 듯이 준장을 보고 있다.


  “적의 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극히 유능하며 위험한 용병가입니다. 이건 지금까지의 싸움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병력이 적다고 해서 경시하여 작전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양 준장의 의견에 모두가 침묵했다. 준장의 말대로다. 나도 그에게 아픈 꼴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불쾌하단 표정, 그리고 억누른 목소리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감정을 내비치는 사령장관도 드물겠지. 하지만 양 준장은 신경 쓰지도 않고 말을 계속했다.


  “아스타테 성역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합니다. 이쪽이 움직이지 않으면 적도 더 이상 수를 쓸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양 준장이 입을 닫자 침묵이 떨어졌다. 도슨 사령장관이 불쾌하단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양 준장의 제안은 포크 중령의 협격안에 비해선 소극적이긴 하지만 무리가 없는 안전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과는 올릴 수 없지만 손실도 없다. 제국군이 별 도리도 없이 철퇴하면 국토방위라는 관점에선 충분한 전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제국군은 언제 철퇴하는 건가?”

  “그건 뭐라고도.”

  “한달 뒤인가? 아니면 반년 뒤인가? 그때까지 우리들은 아스타데 성역에서 제국군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기다리라고 귀관은 말하는 건가. 말도 안 된다!”


  도슨 사령장관이 뺨을 흔들면서 외쳤다. 맘에 들지 않는 부하가 맘에 들지 않는 제안을 했다. 울분을 풀기 위해 짜증내며 책망했다. 그런 거겠지. 말도 안 되는 사내가 우주함대의 탑이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질문했다. 딱히 비아냥거린 건 아니다. 사령장관의 제안을 기본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빠르리라 생각한 것이다. 불만이 있다면 그걸 지적하여 최선으로 만든다. 혹은 단념하게 한다. 게다가 이 이상 경박한 말투로 짜증내는 모습을 주변에게 보이는 것도 사기에 좋지 않겠지.


  사령장관이 이쪽을 노려봤다. 이야기가 돌아온 것이 재미없는 것 같다. 한 순간 말을 잃은 후에 중얼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별동대를 제국군 배후로 돌려 협격이다!”

  결국 그건가……. 명확한 형태로 제국군을 격퇴했다. 그것을 바라는 것이 틀림없다.


  여기부턴 내가 상대하는 편이 좋겠지. 참모들이 의견을 내면 갈책을 당할 수밖에 없다.

  “양 준장도 말했습니다만, 그건 위험합니다. 이걸 봐주십시오.”

  사령장관 옆에서 전술 컴퓨터를 조작했다. 모니터에 본대가 후퇴하고 적이 접근하는 상황이 표시된다. 별동대는 우회하면서 적의 배후로 나가려고 한다.


  “협격을 성공하게 하려면 본대를 후퇴하여 적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별동대를 우회하여 적의 배후를 찌릅니다. 이 경우 문제인 것은 작전이 진행될수록 본대와 별동대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런 한편 별동대와 제국군의 거리가 좁혀집니다…….”

  “…….”


  “우리 군 안에서 최대의 병력을 가진 제 2함대조차 1만 5천 척입니다. 그리고 제국군은 2만 척. 별동대는 혼자서 우세한 적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에게 설명할 일이 아니로군. 사관학교 학생에게 설명해야 할 이야기다. 하지만 전과를 올리는 것에 눈이 먼 도슨 사령장관에겐 이게 필요하다. 컴퓨터를 조작했다. 제국군이 진행방향을 바꾸고 별동대에게 접근한다. 이제 곧 공격을 걸 것이다.


  “제국군이 이쪽의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하면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눈치 채면, 별동대에 대해 제국군이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별동대는 고립된 상황에서 우세한 적과 싸우게 되겠죠.”

  모니터에선 제국군이 별동대를 공격하고 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이다.

  “제국군이 이쪽의 작전을 눈치 채리라곤 할 수 없다.”

  사령장관은 그렇게 말하고 휘릭 주변을 돌아봤다.


  어이가 없다. 물끄러미 얼굴을 볼 것 같아서 당황하며 시선을 돌렸다. 주변을 보면 몇 명인가가 역시 어이없다는 듯이 도슨 사령장관을 보고 있다. 희망적 관측으로 작전을 세울 수 있다는 건가? 전과를 바란 나머지 희망과 예측도 구별할 수 없어졌나.


  “평범한 지휘관이라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극히 유능하고 위험합니다. 그가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공작가의 양자가 된 것을 봐도 명백합니다. 경시해선 안 됩니다. 작전을 신중하게 짜야 합니다.”

  나의 발언에 몇 사람의 참모가 끄덕였지만, 도슨 사령장관에겐 어떤 감명도 주지 못한 것 같다. 흥하고 코를 울렸다.


  “그럼 대체 어쩌자는 건가? 귀관도 아스타테 성역에서 대기하자는 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도슨 사령장관은 내게 질문하면서 시선은 양 준장을 보고 있다. 과연, 그런 건가…….


  재미없는 거다. 전과를 올리지 못한다는 것도 있지만, 시트레 원수와 친한 양 준장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재미없는 거다. 혹시 자신의 공적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초엔 편하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아스타테 성역에서 대기하자는 말을 양 준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다면 혹시 얌전히 받아들었을지도 모른다…….


  시트레 원수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취임을 원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실현되진 않았지만 군 내부에선 그걸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 자신도 그걸 바라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게 도슨 사령장관의 마음에 못이 되어 박혀 있다. 다들 자신이 아니라 시트레 원수를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자신을 최선을 다해 보좌하지 않는 게 아닌가. 무훈을 세울 수 없게 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형편이 나쁜 건 그게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조금씩 조금씩 도슨 사령장관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다.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다. 지금까지 도슨 사령장관의 언동에 의해 보좌할 보람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패배하고 빨리 모가지가 날라가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


  “본대도 적에게 다가가게 하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협격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만 별동대를 필요 이상으로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끝납니다. 이제르론 회랑까지 적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겁니다.”

  포크 중령이 수정안을 내놨다. 나와 사령장관을 교대로 보고 있다. 절충안을 내놓아 심기를 풀게 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


  “밀어 붙여서 어떻게 하는가? 우리들이 철퇴하면 또 나오겠지.”

  “그때엔 다시 한 번 밀어붙이는 겁니다. 제국에 대해 맘대로 놔두진 않는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제국군도 이 이상 도발은 무의미하도 이해하겠죠.”


  “음. 단호한 결의인가.”

  하고 도슨 사령장관이 중얼거렸다. 생각에 빠졌다. 아무래도 포크 중령의 수정안을 맘에 든 것 같다. 아니면 ‘단호한 결의’라는 말이 맘에 든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까? 사령장관이 포크 중령의 정정안을 채용하겠다고 했을 때 찬성할까, 아니면 반대할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양 준장의 제안이 최선이긴 하다. 하지만 도슨 사령장관이 받아들이기 싫어하겠지…….


  “포크 중령의 작전안을 취하지.”

  “각하…….”

  “이건 결정이다! 별동대는 제 2함대로 한다. 바로 제 2함대에 지시를 내리게. 제 2함대에겐 충분히 주의하도록 전하고. 그걸로 되겠지.”

  “…….”

  “제국에 단호한 결의를 보이는 거다! 이 이상 녀석들 맘대로 놔두진 않아.”


  알고 있는 건가? 제 2함대는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우익에는 제 7함대 1만 4천척, 좌익에는 제 9함대가 1만 2천척이 배치되어 있다. 제 2함대를 우회한다는 건 함대 배치를 재편한다는 거다. 전군을 전진시킨다면 별동대는 제 2함대일 필요는 없다.


  아까 전에 내가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정신을 차리니 입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 끊겼다. 아마도 도슨 사령장관은 반대하려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도슨 사령장관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건가. 아마도 이 전투 후에 나는 참모장을 사임하게 되겠지. 나는 어딘지 쓸쓸한 것과 동시에 안심했다…….


...


제국력 487년 1월 10일. 제국군 기함, 포르세티.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지쳤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지쳤다. 싫을 정도로 지쳤다. 5일이다. 벌써 5일이나 밀었다가 물러났다가 줄다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거 평범한 녀석이라면 2일이면 대책을 생각한다. 그런데도 무식하게 5일이나 이 짓을 계속하다니……. 도슨이군. 이런 걸 하는 놈은 도슨이 틀림없다. 설령 아니라고 해도 도슨이라는 걸로 하자.


  도슨 바보 자식. 쓰레기. 멍청이. 얼빠진 놈. 둔감하니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이 둔치에 쓸모없는 놈. 이쪽은 2만 척으로 5만 척 가까이 되는 너희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지친다고. 방심했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단숨에 끝장이니까 말이야. 그런데도 너는……. 편하게 차라도 마시고 있겠지. 이 맹추가.


  무리는 하지 않겠다고 했어. 분명히 말했어. 하지만 말이지. 단지 적의 병력이 많아서 철수했습니다. 라고 할 수 있겠냐? 조금은 적의 상태를 살피지 않았냐고 질문을 받겠지. 그러지 않아도 소수로 다수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초보가 많으니까.


  목숨 걸고 도발하고 있는데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도슨. 이 쓰레기가. 아텐보로의 말대로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먹지도 못할 감자. 아마 전쟁에 서툴러서 자신이 없는 거겠지.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거다. 마치 오장원의 싸움 같군. 내가 공명이고 도슨이 중달……. 안 된다. 점점 침울해진다. 도슨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 얼마나 가엾은지. 지옥에 떨어진 건 이쪽이다…….


  라인하르트 때엔 3개 함대가 분산해서 각개격파 당했다. 그런데도 내겐 5만 척 가까이 되는 함대가 뭉쳐서 행동하고 있다. 불공평하잖아. 그래도 말이야. 일단 대책은 생각했다고. 일단은. 도발해서 적을 분산하게 만든다고. 분산하게 만들어 다가오게 해서 격파한다고. 몇 가지 상황을 상정해서 생각했어. 그런데 도슨 감자가 분산도 하지 않고, 따라오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애초에, 내 전문은 보급이다. 그런데 어째서 최전선에서 전쟁하고 있는 거야? 기왕에 될 거면 병참통괄부의 탑이라도 시켜달라고. 거기다가 언제부턴가 공작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결혼 상대까지 정해졌다……. 불행의 극치다. 내 인생을 돌려줘!


  공작이 됐다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양자니까. 어깨가 좁다고. 그런데도 귀찮은 일, 성가신 일은 전부 내게 돌아온다. 바보 귀족들 상대에다가, 황제의 총희 뒤처리에다가, 거기다가 멋대로 자살까지……. 모두 나를 괴롭힌다…….


  좋겠구만. 대공과 음후음후는. 귀찮은 건 전부 내게 맡기고 자신들은 케이크를 만끽한다. 거기에 엘리자베트는 내가 안네로제를 넋을 잃고 봤다고 화내고……. 별 수 없잖아. 그쪽이 큼직한 슴가를 보여주니까. 남자라면 누구라도 눈을 돌릴 수 없다. 대공이나 음후음후도 코 밑을 늘리고 있었다고. 나를 혼내는 건 부당하다!


  메크링거들이 날 보고 있다.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다. 힐끔, 힐끔하고 나를 보고 있다. 언제까지 계속 하는 건가? 다음엔 언제 열이 나는 건가? 그런 거겠지. 알았다. 알았다고. 내겐 전쟁은 무리라는 거겠지. 이 이상 여기에 있어도 쓸모없다고. 알았다고. 앞으로 이틀만 참아줘. 그때까지 아무 일도 없으면 제국으로 돌아간다.


  녀석들의 마음은 잘 알겠다. 아무도 무슨 말도 하지 않지만 원정군의 사기는 꽤나 꺾였겠지. 급강하 폭격기를 지난 잠수함이다. 아니, 침몰함이군. 적은 2배 이상. 거기다가 원정군 사령관은 애송이에 병약. 어제도 반나절 동안 열이 나서 지휘관석에 쓰러져 있었다.


  발레리가 최선을 다해서 보살피고 있지만, 보호자 동반으로 전쟁에 나서는 사령관이 있냐고. 전대미문의 진기한 일이다. 이 상황에서 제대로 전쟁하자고 생각하는 녀석은 절대로 없다. 바보 같아서 해먹을 수 있겠냐. 나도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다.


  발퀴레 파일럿들에겐 부담을 주고 있다.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훨씬 전부터 색적활동으로 혹사하고 있으니까. 적 함대에 접촉하면 스파르타니안에게 쫓겨서 로스트. 그리고 또 색적해서 접촉……. 계속 그걸 반복하고 있다. 일단 순번을 짜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식사나 탱크베드 사용도 최우선으로 하고 있지만……. 지쳤겠지. 정말로 미안하다.


  앞으로 이틀이다. 이틀만 기다리자. 그래도 안 되면 흔쾌히 돌아가는 거다. 아마 안 되겠지. 도슨이니까. 하지만 일단 변명은 된다. 도발은 했지만 거기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상대방은 감자였습니다……. 뭐, 그런 거겠지.


...


제국력 487년 1월 10일. 제국군 기함, 포르세티.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반란군은 5만 척에 가까운 대군을 이끌고 있다. 한편 우리군은 2만 척. 절반도 되지 않는 병력이다. 정면에서 싸우면 승산은 적다. 아니, 전혀 없다고 해도 좋겠지. 이기기 위해선 빈틈을 찌르거나 분단해서 각개격파해야 한다.


  처음엔 밴플리트 성역으로 이동해서 반란군을 유인하는 작전에 나섰다. 밴플리트 성역은 색적이 힘들고 극히 싸우기 힘든 장소다. 잘하면 기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걸어보자고…….


  하지만 공작은 그 작전을 취하지 않았다. “아군이 열세인 이상 믿을 수 있는 건 눈과 귀밖에 없다. 그걸 잃을 수 없다. 그러한 무리는 해선 안 된다…….” 다시 말해 공작이 선택한 것은 분단하여 각개격파라는 것이다. 단, 이쪽이 적을 분단하는 건 할 수 없다. 상대가 스스로의 뜻으로 함대를 나누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벌써 5일이나 계속하고 있다.


  버티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계속 버티고 있다. 전황, 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지만, 양군 사이에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다. 아스타테 성역과 밴플리트 성역 사이를 양군은 5일에 걸쳐 왔다갔다 할뿐이다. 하지만 병력이 적은 제국군에게 있어선 결코 편하지 않다. 상대는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극히 피곤해진다. 하지만 공작은 계속 버티고 있다.


  지휘관석에 앉은 공작에게 초조함은 없다. 어제, 열을 내며 괴로워했을 때에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막료인 우리들이 초조하게 공작에게 시선을 보내는 일이 가끔 있다. 눈치 챈 것인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인가. 공작은 단지 말없이 기회를 보고 있다. 마치 조용한 호수 같다. 파문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초조함을 참고 있다. 아직 괜찮다. 아직 참을 수 있다…….


  반란군은 언제 조바심에 이쪽을 협격하려고 할까……. 인내심 강하게 그걸 기다리는 공작의 모습은 겁쟁이에 민첩한 사냥감을 노리는 사자와도 같다. 한 순간의 틈을 찌르고 사냥감을 덮치는 사자……. 거기까지 가기 위한 인내심은 평범한 것이 아니다…….


  참는 것을 아는 사내……. 그 화려한 경력에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의 본질은 재능보다도 끈질김, 참을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과감함. 적으로 돌리면 극히 성가신 상대겠지.


  “색적 부대에서 연락입니다! 반란군에 움직임 있음!”

  오퍼레이터가 외친다. 반란군이 움직였다.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고, 함교가 긴장감에 싸였다. 그리고 다음 보고를 기다린다. 기대에 가슴이 뛴다. 소리가 모두에게 들리는 것이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반란군의 병력, 약 3만 5천. 나머지는 불명. 함대는 접근하고 있음.”

  반란군은 함대를 분산했다! 주력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겨우 움직였군요.”

  슈트라이트 준장이 낮게 중얼거렸다. 사냥감이 움직였다. 틈을 보인 것인가……. 모두가 공작에게 시선을 향하자 공작이 희미하게 끄덕였다.


  “참모장. 함대를 후퇴하세요.”

  “예.”

  “부사령관. 그리고 분함대 사령관을 포르세티로 모아주세요. 작전회의를 엽니다.”

  “예.”


  조용한 목소리였다. 공작의 목소리에는 흥분도 기쁨도 없었다. 표정도 변하지 않는다.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 아직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시작됐을 뿐이다. 호수는 아직 조용하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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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12월 31일. 밴플리트 성계, 포르세티.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내가 이끌고 있는 제국원정군 2만 척의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를 예정대로 20일에 출발하여 지금은 밴플리트 성계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진 동맹군의 움직임은 이쪽에선 보이지 않는다. 적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때문인지 함교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다. 머리가 아프다…….


  오늘은 12월 31일. 다시 말해 섣달 그믐날이다. 1년이 끝나는 날. 그리고 내일은 1년의 첫날인데도 나는 자유행성동맹령까지 들어와 전쟁하려고 하고 있다. 정말 연말연시를 쉴 수조차 없을 줄이야……. 장병들의 불평불만도 심하겠지. 나도 그러고 싶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작전 목적은 반란군 병력의 격파라는 걸로 되어 있다.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작전목적이지만, 나를 원수로 만들기 위한 싸움 같은 거니까 어쩔 수 없다……. 덕분에 이쪽은 전과를 올리기 위해서 적을 찾아야 한다는 본래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전략보다도 국내정치를 우선한 출병이라는 거다……. 더더욱 머리가 아파온다.


  색적에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 배후를 찔렸다간 한줌도 남지 않을 테니까. 이제르론 회랑을 나선 뒤, 티아마트, 아레스하임 방면에서 배후를 찔리지 않도록 신경 써서 확인했다. 지금도 후방에는 꽤 많은 수의 발퀴레가 색적활동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함대 이동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이제르론 요새를 출발하고 오늘로 10일. 본래대로라면 밴플리트 성계 따위 훨씬 전에 도착했을 텐데……. 루빈스키 자식, 괜한 짓을 해선. 언젠가 이 빚은 10배로 돌려줄 테다.


  동맹군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제국, 동맹의 양패구상을 노리는 루빈스키에게 있어서 이번의 나는 바라마지 않던 타깃인 것이다. 반드시 동맹측에는 알렸을 것이다. 그것도 꽤나 자세하게 알렸겠지. 그리고 동맹에게 있어서 나의 함대는 꽤나 맛있는 먹이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1개 함대, 2만척. 때려 부수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동맹군은 이쪽을 쳐부수고 싶어 하고 있다. 철퇴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대군을 동원하고 있다고 이쪽도 알 수 있는 형태로 과시했겠지. 원작의 아스타테 회전이 그랬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쪽을 끌어들이고 결전으로 쳐부수는 것이 목적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만한 병력을 동원하고 있다.


  아마도 신 사령장관 도손 대장의 의향도 있었겠지. 전임자 로보스가 해임이나 마찬가지로 잘렸기에 도손은 눈으로 보이는 전과를 바라고 있다……. 실수로 사령장관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니까.


  나왔을까? 소심하고 겁쟁이이긴 하다. 하지만 약자를 가지고 노는 것을 즐기는 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면을 중시하는 자다. 압도적인 병력차라면 안심하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무훈을 올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아마도 깊숙이 은밀한 곳에서 이쪽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감자가 아니라 단팥 같은 녀석이다. 아니, 그건 단팥에 대한 실례로군. 섬세하진 않지만 굉장히 맛있다. 게다가 버릴 곳이 없다. 거기에 비하면 도손은 섬세하지도 않은데다가 우습기 짝이 없다. 전혀 다르다. 감자도 아니겠지. 그것도 맛있는데다가 쓰임세가 풍부하다. 도손과는 다르다.


  이쪽도 승리를 원하지만, 저쪽도 승리를 원한다. 싸우는 이상 승리를 원하는 건 당연하지만, 누가 보다 승리를 강하게 원하는가, 참을 수 있는가가 전국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서두르지 마라. 초조한 것은 도손이다. 네가 아니다. 병력이 적은 이상 서두르는 것은 위험하다. 침착하게 기회를 노려라. 일단 책략은 있다. 그러기 위한 준비도 했다. 경우에 따라선 퇴각하면 된다. 재정비하면 된다.


  “앞선 색적부대에서 연락입니다. 밴플리트 성계에서 반란군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오퍼레이터가 면목 없다는 듯이 보고했다. 이 분위기에선 보고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네 탓이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역시 밴플리트에 적은 없었나……. 거기는 적을 발견하기 어려우니까 혹시나 하고 생각했지만……, 뭐 상정 이내이긴 하다.


  “묘하군요. 적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슈트라이트가 중얼거리자 메크링거도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은 밴플리트에 적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실히 밴플리트는 함대를 숨기기 쉬운 장소이긴 하다.


  “티아마트, 아레스하임 방면에는 없었다……. 여기에도 없다는 건, 아스타테인가?”

  두 사람 모두 목소리가 작다. 확신이 없으니 자신도 없는 거겠지.  뷔로, 베르겐그륀 두 사람은 잠자코 그걸 듣고 있다.


  “각하, 이대로 가면 아스타테 성역으로 향하게 됩니다만. 그 다음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메크링거가 망설이듯이 질문했다.


  “그 경우엔 엘 파실로 향하죠. 거기엔 유인행성이 있습니다. 반란군도 버리지 못할 겁니다.”

  네 사람이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안심해라. 적은 아마도 아스타데에서 이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네 사람은 저번 아스타데 성역 회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손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래서 적의 목적, 심리상황에 대해서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서투르게 설명하여 선입관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은 거다.


  게다가 뷔로나 베르겐그륀도 나를 사양하고 있다. 내가 뭔가 말하면 거기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예측이니까 말이야. 빗나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리고 지금 상태에선 적에게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백지라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는 편이 갖가지 가능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겠지.


  적은 아스타테에 있다. 근거는 있다. 저번 싸움, 동맹군은 제국이 꾸민 기만 작전에 걸려들어 주요 전장을 티아마트 성역이라고 상정했다. 당연하지만 함대전력도 티아마트에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론 제국군은 아레스하임에서 팔란티아를 빠져 아스타테 성역을 향했다.


  서둘러 동맹군은 함대를 티아마트에서 아스타테로 돌렸지만, 지나친 강행군이었던 데다가 보급과 휴식도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저번 싸움에서 동맹군이 제국에게 패한 이유 중 하나에는 이것도 있다. 이미 저지른 실수를 두 번 저지르고 싶지 않다. 동맹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맹군이 제국군을 기다리는 포인트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포인트는 이제르론 회랑 출입구 근처다. 사실 여기가 가장 제국군을 발견하기 쉽고 요격하기도 쉽다. 원작에서 동맹군이 제국령 침공을 행했을 때, 미터마이어, 비텐펠트가 이제르론 회랑 출입구 근처를 요격 포인트로 제안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 이제르론 요새가 제국측에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언제라도 주류함대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이제르론 요새까지 퇴각하여 요새공방전으로 끌어오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쪽의 격파를 생각하고 있을 동맹에게 있어서 최선의 포인트는 아니다.


  두 번째는 티아마트, 아레스하임 방면에 숨어 제국군의 배후를 찌르는 방법이다. 이건 티아마트, 아레스하임 방면을 꽤나 색적했고, 지금도 배후에는 초계부대를 두고 있다. 지금 시점에선 가능성이 낮다.


  그렇게 생각하면 동맹군은 전방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국군이 티아마트, 밴플리트, 아레스하임, 어느 성계를 지나서 와도 비교적 단시간에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 동맹군이 있다. 다시 말해 아스타테다. 거기라면 티아마트에서 다곤, 아레스하임에서 팔란티아로 오는 제국군에도 대응하기 쉽다.


  문제가 있다면 저번 싸움에서 졌다는 거겠지. 재수가 없다고 반대하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엘곤 성계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거기라면 엘 파실을 버리게 된다. 유인행성을 버리는 것은 공화정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다. 역시 아스타테 성역에 동맹군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다시 말해 늦어도 앞으로 일주일 이내에 동맹군과 접촉하게 될 것이다…….


...


우주력 796년 1월 4일. 동맹군 우주함대 총기함, 락슈미. 양 웬리.


  “아직도 제국군의 위치는 알 수 없는가!”

  “……유감입니다만.”

  그린힐 참모장의 대답에 지휘관석에 앉은 도슨 사령장관이 초조하게 흥하고 코를 울렸다. 이걸로 몇 번이나 같은 대화를 반복하는 건지…….


  총기함 락슈미의 함교는 사령장관의 초조함도 있어서 찌릿찌릿한 분위기와 불안에 휩싸여있다. 주변에 주는 영향을 생각하면 사령장관의 태도는 결코 좋지 않다. 그것 때문에 모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하기야 사령장관의 초조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뭐라해도 제국군의 동향을 아직도 모르는 것이다. 이제르론 요새를 떠난 것이 저번 달 20일이라는 건 하이네센에서 온 정보로 알고 있다. 페잔에서 온 정보니까 믿어도 좋을 테지만…….


  20일에 출격했다는 건 벌써 2주일 이상 지났다는 것이 된다. 원래라면 아스타테, 다곤, 팔란티아 각 성계에 펼치고 있는 초계망 중 어느 것에 걸려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직 제국군 발견이란 보고는 없다. 뭔가가 이상하다.


  정보가 틀렸던 걸까? 하지만 페잔은 동맹이 이겨줬으면 할 것이다. 최근 제국이 우세하게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페잔이 위기감을 품고 있는 건 틀림없다. 적당하게 정보를 보냈을 리가 없다. 때때로 동맹정부보다도 페잔이 동맹의 안전보장에 관심이 더 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정 때문에 제국군의 움직임이 둔하다는 것이 되지만…….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제국군은!”

  또 도슨 사령장관이 초조하게 외쳤다. 작게 몸을 떨고 있다. 안달하고 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사령장관을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거겠지. 여기서 크게 이기면 자신을 위구시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할 수 있다. 원수로 승진한다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조건은 갖춰져 있다.


  페잔의 정보에 의하면 제국군은 2만 척, 한편 동맹군은 4만 6천 척을 넘는 함대가 아스타테 성계 앞에 집결하고 있다. 상세하게 말하자면 제 2함대 1만 5천 척, 제 7함대 1만 4천 척, 제 9함대가 1만 2천 척, 그리고 사령장관 직솔부대가 5천 척. 압도적으로 동맹군이 유리하다. 동맹군은 제국군에 대해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있다. 웬만한 일이 없는 한 병력차로 제국군을 압도할 수 있겠지.


  여기서 제국을 이기는 건 크다. 패전이 계속된 동맹에게 있어선 사기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국의 실력자가 되어가고 있는 브라운슈타인 공작이 패배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실각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제국군을 아직 확인할 수 없는 건 공작이 주변을 경계하면서 천천히 전진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증원을 부른 것일까? 함대는 아직 이제르론 요새에서 오딘에서 오는 증원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제국군의 병력은 좀 더 커지게 된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질 수 없는 건 서로 마찬가지니까.


  “초계부대에서 연락. 우리, 발퀴레와 접촉함!”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모두가 이맛살을 폈다. 함교에 휴우하는 듯 한 공기가 흐른다. 겨우 발견했다. 그런 거겠지. 곳곳에서 끄덕이는 자도 있다. 묘한 일이다. 적을 발견하고 분위기가 밝아지다니…….


  “어느 방면인가?”

  답답하단 어조로 도슨 사령장관이 물었다.

  “전방, 밴플리트 방면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의외란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이제르론에서 밴플리트, 그리고 아스타테……. 최단거리로 이쪽을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군의 움직임이 느리다. 그리고 접촉한 건 함대가 아니다. 발퀴레……. 명백히 색적부대다. 함대는 그보다 더욱 후방에 있겠지.


  “묘, 하군. 움직임이 느려…….”

  그린힐 참모장의 혼잣말에 모두가 끄덕이고 있다.

  “증원을 불렀다는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그걸 기다리고 있어서 움직임이 느려졌다고.”

  내 말에 모두가 또 서로를 돌아봤다.


  “증원이라고?”

  도슨 사령장관이 이쪽을 노려봤다. 눈에 핏발이 서고 뺨이 꿈틀거리고 있다. 비위에 거슬리는 부하가 재미없는 말을 했다. 그런 거겠지. 의견 따위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어지지 않는 대응이로군. 지긋지긋하지만 이것도 급료분의 일이다. 정말 어째서 군인 따위가 된 것일까…….


  내 지적에 답한 것은 그린힐 참모장이었다.

  “가능성은 있군. 저쪽에게 있어도 질 수 없는 싸움이다. ……사령장관, 스파르타니안으로 색적하도록 하죠. 일단 적의 전력을 확정해야 합니다.”

  “음.”


  도슨 사령장관이 벌레 씹은 표정으로 허가를 내렸다. 재미없겠지. 제국군에 증원이 있다면 당연하지만 승산은 내려간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을 노려보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증원을 부른 게 아니다. 애초에 증원이 있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나는 가능성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린힐 참모장이 지시를 내리고 스파르타니안이 발진한다. 적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함교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


우주력 796년 1월 10일. 동맹군 우주함대 총기함, 락슈미. 드와이트 그린힐.


  “제국군,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함교를 울린다. 또 인가…….


  “대체 제국군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싸우는 거냐, 싸우지 않는 거냐!”


  도슨 사령장관이 지휘관석에서 뺨을 떨면서 외치고 있다. 이걸로 몇 번째일까. 참모들은 모두 뚱한 표정으로 잠자코 듣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사령장관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곤란한 일이다.


  “침착하십시오. 각하.”

  “침착하라고!”

  찌릿하고 이쪽을 봤다. 마치 내가 적이라는 것 같다. 지긋지긋하지만, 참모장으로서 말해야만 한다.

  “적은 이쪽을 도발하고 있는 겁니다.”

  내 말에 도슨 사령장관이 흥하고 코를 울렸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제국군 색적부대와 이쪽의 초계부대가 접촉한 후, 이쪽도 스파르타니안을 색적부대로서 내보냈다. 그 결과 제국군은 아스타테 성계와 밴플리트 성계의 거의 중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력은 약 2만 척. 나타나는 것이 늦었다는 걸 빼면 정보대로다. 아마도 주변을 경계하고 있기에 늦었겠지.


  적의 존재를 알았기에 도슨 사령장관은 전군에 전진을 명령했다. 적의 색적부대와 접촉하기까지 가능하면 제국군에 다가가야만 한다. 전력은 압도적으로 이쪽이 우세하다. 제국군이 그걸 알면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일단 승리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가능하면 싸워서 적에게 피해를 입히고 후퇴하게 만들고 싶다. 요즘 동맹군이 열세에 있다. 그 이미지를 씻어버리고 싶다고 군부, 정부 상층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 생각에 찬성이다. 그리고 적의 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극히 성가신 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가능하면 그에게 패배를 맛보게 하고 싶다. 그에 의해 그의 발언력을 약하게 만들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가……. 성가신 상대다. 방심할 수 없다. 밴플리트에서도 이제르론에서도 그에게 당했다. 도슨 사령장관은 무훈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에 안달이 나 있지만 극히 위험하다. 최악의 경우엔 피해 없이 후퇴하게 만드는 것으로 좋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동맹군 본대가 발퀴레에 의한 접촉을 받은 것은 1월 5일이 되고 나서였다. 저쪽도 이쪽의 전력을 파악한 거겠지. 이제르론 요새 방면을 향해 후퇴를 시작했다. 두 군세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면 추격해도 닿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도슨 사령장관은 추격을 명령했다.


  적을 추적했다는 사실을 원했겠지. 보고에는 철퇴하는 적을 추적했지만, 도망이 너무 빨라서 포착할 수 없었다고 쓰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하찮은 치장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원래라면 그걸로 끝났을 것이었다.


  문제는 제국군이 얌전하게 후퇴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쪽이 추적하면 도망치고, 이쪽이 돌아서면 다가온다. 벌써 이미 5일이나 장난하는 것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다. 두 군세의 거리는 극히 평범하게 접근했을 때 하루면 도달하는 거리다.


  “모두,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탄없는 의견을 말해주게.”

  내 말에 참모들이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국군은 우리들을 이 장소에 잡아두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혹은 본국에 증원을 요청했을지도 모릅니다. 2개 함대 정도를 부르면 충분히 우리들과 싸울 수 있습니다.”

  몇 사람인가가 끄덕이고 있다. 일리가 있겠지. 제국군의 움직임은 우리들을 이 장소에 잡아두려는 듯이 보이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증원을 부른 건 언제인가? 우리들과 접촉하고 나서 불렀다면 증원이 오는 데엔 최소한 40일은 걸린다는 소리가 된다.”

  “…….”

  “이대로 술래잡기를 40일이나 계속하는 건가? 그리고 그 다음에 전투? 바보 같은 소리다. 그러는 동안에 연료가 떨어져 움직일 수 없어진다. 있을 수 없다. 비합리적이야.”

  이것도 당연하다. 몇 사람인가가 얼굴을 찡그렸다.


  “……증원을 부른 것은 좀 더 전일 가능성이 있겠지.”

  “그럼 이제르론 요새에서 합류하면 좋지 않은가? 우리들과 접촉하여 각개격파 당할 위험을 범할 필요는 없다.”

  “…….”


  참모들이 잠자코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다.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겠지.

  “다시 말해, 증원은 없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건가?”

  내 확인에 몇 사람인가가 끄덕였다. 적극적으로, 혹은 주저하며,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 증원이 없다고 한다면, 적은 뭘 노리는 건가?”

  또 참모들이 서로를 돌아봤다. 이번엔 모두가 곤란해하고 있다.

  “……아마도 도발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망설이는 듯 한 어조다. 자신이 없는 거겠지. 하지만 나도 같은 생각이다.


  덜컹하는 소리가 났다. 도슨 사령장관이 지휘관석에서 일어나 자신만만하게 일어섰다.

  “바보인가. 귀관들은! 그런 건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적을 쳐부술 수 있는가, 내가 듣고 싶은 건 그것뿐이다!”

  “…….”

  도슨 사령장관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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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10월 28일. 오딘, 신무우궁, 흑진주 홀.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다음 달 5일이 출격입니까. 얼마 남지 않았군요. 공작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였지? 이 녀석. 유난히 친근하게 굴고 머리숱이 적은 아저씨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일가인 것 같다. 얼굴은 본 적이 있다. 아마 양자가 되었을 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서 행한 상면식에서 봤겠지. 아, 그렇다. 할츠. 할츠 자작? 이었나?


  “저도 할츠 남작과 마찬가지로 공작의 무운을 빌고 있습니다.”

  “그거 감사한 일입니다.”

  “공작이 승리하시면 저희들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일가로서 콧대가 높아질 겁니다.”

  그래그래. 할츠 남작이다. 위험해, 위험해. 잘못하면 할츠 자작이라고 부를 뻔했다. 하지만 이 녀석들 이렇게 친근하게 굴었던가? 무뚝뚝한 얼굴밖에 기억나지 않는데…….


  헌데 이번에 말을 건 녀석은 또 누구야? 유난히 키가 크고 휘청거리고 있는데, 이 녀석은 본 적이 없다. 대화 내용으로 보자면 마찬가지로 공작가의 일가인 것 같지만, 전혀 모르겠다. 상면식 할 때엔 없었나? 혹은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인가…….


  “에리히. 책임이 크군.”

  “아버님. 에리히님이 곤란해하고 계셔요.”

  “오오, 그거 미안하다.”

  대공과 엘리자베트가 즐겁게 대화하고 있지만, 나는 경직된 웃음을 띠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다들 내게 압박을 주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


  훈련에서 돌아온 것은 어제였지만, 대공이 “내일은 신무우궁에서 무도회다.”라는 말을 들었다. 뭐라던가. 프리드리히 4세가 오랜만에 무도회라도 열까 하고 말했다고 한다. 제발 좀 봐줬으면 좋겠다. 훈련으로 지친 건 아니지만, 원정에 대한 걸 생각하면 도저히까진 아니지만 무도회에 갈 기분이 아니다.


  애초에 나는 그런 거엔 쥐약이다. 댄스 같은 걸 출 바에야 혼자서 책이라도 읽고 있는 편이 좋다. 하지만 말이지. 곤란하게도 나 외엔 모두 흥청망청이란 말이지. 대공부인과 엘리자베트도 정말 즐거워 보인다. 이런 걸 눈앞에서 보면, 그들은 뿌리부터 궁정인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평민 출신인 나와는 어딘가 감각이 다른 것 같다.


  아직 무도회까진 시간이 남았다. 게다가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무도회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을 보면 꽤나 사람들이 있다. 성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기야 황제 주최의 무도회다. 별 볼일 없는 일로 결석할 순 없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참가하고 있다.


  할츠 남작과 또 한 명이 겨우 떨어졌다. 아까부터 묘하게 말을 걸어오는 녀석이 많다. 힐데스하임 백작도 왔었고 라트부르흐 남작도 왔었다. 모두 즐거워 보였으니 이런 궁중행사를 좋아하는 거겠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이다.


  “아버님, 아까 키가 큰 분 말입니다만. 누구입니까? 아무래도 기억에 없습니다만…….”

  조금 부끄러웠기에 작은 목소리로 질문하니 대공도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대공도 부끄러운 건가?


  “볼프스부르크 자작이다. 네가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상면식 자리에 없었으니까. 그 날 몸이 아프다고 결석했었다.”

  “그랬습니까.”

  내가 끄덕이자 대공도 끄덕인다. 눈을 악동처럼 하고 웃고 있다.


  “할츠 남작도 볼프스부르크 자작도 네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내심 인정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저번 네가 코르프트 자작들을 물리치는 걸 보고 무서워진 걸 거다. 최선을 다해 호의를 사려고 하고 있어. 하기야 그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


  과연, 어쩐지 아까부터 묘하게 즐거워 보이는 녀석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최종시험이 남아있습니다만…….”

  “원정이 끝나고 나선 늦다고 생각했겠지. 그만큼 다들 널 무서워하는 거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로서 인정하는 거기도 하겠지.”

  “과연.”


  아무래도 나는 유혈제 아우구스트 만큼이나 두려움을 사고 있는 것 같다. 괜찮은 일이다. 다시 말해 원정은 실패할 수 없다. 그런 거겠지. 압박으로 위가 아프다. 그렇다 해도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대공부인과 엘리자베트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평소엔 대화에 끼어들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고 있다. 기특한 일이다.


  프리드리히 4세가 나타난 건 즐거운 귀족들을 4명 정도 상대하고 나서였다. 부탁이니까 좀 더 빨리 오라고……. 내 인내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기름진 아저씨들과 화장기 진한 아줌마 상대는 지긋지긋하다.


  무도회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황제에 대한 인사를 행하게 됐다. 이런 경우, 높은 순으로 인사하게 되어 있다. 지금까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고 한다. 바보같은 이야기지만 두 가문에서 보자면 체면의 문제였을 테지.


  이번엔 두 가문이 함께 인사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친하다~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는 것 같다. 그런고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서 4명, 리텐하임 후작가에서 3명이 가장 먼저 황제에게 다가갔다. 다들 이쪽을 주목하고 있다. 시선이 아프다.


  “폐하께서 안녕하시니 기쁘옵니다.”

  “음. 그대들도 사이가 좋아 보여 다행일세.”

  “예. 황송하옵니다.”

  대공과 프리드리히 4세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두 즐거워 보인다. 괜히 다툴 일도 없어서 마음이 편한 거겠지. 먼저 연장자 4명이 인사한다. 나를 포함해서 젊은이 3명은 그 다음이다.


  황제의 반보 뒤에는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 있다. 머리를 높게 올리고 있지만 역시 미인이다. 이래서야 라인하르트가 시스콤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24세인가. 나보다 3살 연상…….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대는 언제 출정하는가?”

  오, 어느새 내 차례인가.

  “아무 일도 없다면 다음 달 5월에는…….”

  “그런가. 무운을 기대하겠네.”

  “예.”


  이걸로 끝이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아아, 그렇군. 안네로제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네.”

  “……그게 무슨?”

  “라인하르트가 그대의 신세를 졌다고 하더군.”

  “아뇨. 그러한 일은.”


  그렇지 않다. 이쪽도 속셈이 있어서 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백작부인이 딱하고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아니, 그런 눈으로 봐도 곤란합니다만. 두근두근합니다만…….

  “공작. 언제나 동생에 대해 걱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백작부인이 고개를 숙였다. 가볍게가 아니다. 꽤나 깊게다. 덕분에 가슴계곡이……. 아니, 그건 아무래도 좋다. 황제의 총희가 고개를 숙이는 건 좀 봐줬으면 좋겠다. 주변의 시선이 더욱 아파진다……. 덕분에 엘리자베트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내게 켕기는 일은 없다고. 엘리자베트. 그런 눈으로 날 보지마.

  “아뇨. 이쪽이야말로 뮈젤 제독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잘 부탁해야 하는 건 이쪽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다. 황제 앞에서 내게서 언질을 받았는가……. 라인하르트를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연합에 끼우려는 거로군. 다른 귀족에 비하면 라인하르트의 기반은 약하다. 그걸 생각하고 한 일이겠지만……. 한 방 먹었다. 여자로는 아깝군.


  오늘 무도회의 화제거리는 이거로군. 뭐, 라인하르트의 우호는 이쪽이야말로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문제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엘리자베트, 날 노려보지 말라고, 공작영애의 품위에 어긋나는 일이다. 나중에 애플파이라도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야. 아니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낫나. ……크리스마스 선물은 조금 분발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번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제국력 486년 12월 15일. 이제르론 요새.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오딘에서 11월 5일에 출발하여 이제르론 요새에 12월 15일에 도착. 약 40일간. 그럭저럭 괜찮은 항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제르론 요새에서 보급 겸 수리, 반란군 정보수집을 행한 다음, 그들의 세력권을 향해 출격하게 된다. 장병들의 휴식도 포함하니까 이제르론 요새에 있는 건 5일간으로 정해져있다. 출격은 20일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사령부 요원, 그리고 분함대 사령관이 요새로 내려오니 두 사람의 사관이 마중나왔다. 각자 자기소개를 했지만, 아무래도 요새사령부, 함대사령부에서 마중하러 가라고 명령을 받은 것 같다. 여전히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사관의 안내를 받으며 걷는다. 선두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피츠시몬즈 소령, 그 뒤에 나와 슈트라이트 준장, 그리고 분함대 사령관이 따른다. 잠깐 걷고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을 시작했다.


  “이제르론 요새에는 좋은 추억이 없습니다. 여기에 오면 우울해지죠.”

  농담으로 하는 어조가 아니다. 마음 깊이 우울한 어조다. 헌데, 곁을 걷고 있는 슈트라이트 준장에게 시선을 향했다. 준장도 짐작가는 데가 없는 듯한 표정이다.


  “몸도 좋지 않으신데 무리를 하시니까 그런 겁니다. 그 몸으로 정전교섭이라니…….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걱정? 저를 엄청 혼내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은 환자를 배려한다는 걸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더더욱 스스로의 불운을 원망했습니다.”

  “걱정했기에 주의한 겁니다!”


  분연한 항의를 하는 소령을 보며 공작이 소리 내며 웃었다. 과연, 저번 싸움에서 공작이 정전교섭에 나섰었다는 건 들은 적이 있다. 몸이 좋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다. 아무래도 그 때의 일인 것 같다. 공작이 이쪽을 돌아봤다.


  “그땐 비텐펠트 소장의 함선으로 정전교섭을 행했습니다만, 소장이 어이없단 표정을 했던 걸 기억합니다.”

  “아,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오는 걸 보고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당황하며 답하는 비텐펠트 소장을 보며 또 공작이 소리 내며 웃었다. 짖궂은 소리가 아니다.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밝은 목소리다.


  “비텐펠트 소장. 나쁜 짓은 할 수 없구만.”

  “나쁜 짓이라니 뭐냐. 나는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바렌 소장.”

  “그런 것 치고는 꽤나 당황하는 것 같지만.”

  루츠 소장의 말에 모두가 소리 내며 웃었다. 아이제나흐 소장도 소리 없이 웃고 있다. 비텐펠트 소장도 포기했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안내를 받은 방에는 젝트 주류함대사령관, 슈톡하우젠 요새사령관이 있었다. 두 사람이 경례하고 공작도 거기에 응한다. 서로의 경례를 교환하고 젝트 주류함대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공작 각하께서 찾아오셔서…….”

  “아, 아뇨.”

  “?”

  “그, 공작이라는 건 그만두십시오. 저는 군인으로서 여기에 온 것이니까요.”


  젝트, 슈톡하우젠 두 대장이 곤란한 표정을 보였다. 우리들도 같은 말을 들었다. 공작은 자신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공작이라는 걸로 경의를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작위보다도 능력을 평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능한 귀족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전에 함께 궁중경비를 맡았던 적이 있기에 알고 있다. 이 사람은 무능하면서도 거만한 귀족에 대해 지극히 엄하다. 작위로 부르지 말라는 건 그런 녀석들과 도매금 취급당하며 살 수 있겠냐,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재미있다. 제국 최대의 귀족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가 실력주의의 신봉자인 것이다. 실제로 원정군 인사는 공작의 의향에 의한 것이지만, 모인 것은 하급귀족과 평민이다. 문벌귀족 따위 한 사람도 없다.


  새삼 인사를 마친 다음 공작이 보급과 수리 요청을 두 사람에게 고했다. 문제없이 받아들어졌다. 이미 연락이 끝난 일을 새삼 최고책임자가 전한 것이니까 당연하겠지. 그 외에 반란군의 동정을 확인했지만, 이제르론 회랑 내의 움직임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움직이고 있는 건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지……. 앞으론 색적행동을 하면서 회전의 기회를 탐색하게 되겠지…….


...


  밤, 내 방에서 클레멘츠, 슈트라이트 준장과 와인을 마셨다. 출격하면 알코올은 삼가야 한다. 즐길 수 있는 건 오늘을 포함하면 앞으로 5일이다. 그 뒤엔 어떻게 될지……. 경우에 따라선 두 번 다시 마실 수 없게 되는 일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마실 수 있는 기회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


  “반란군의 움직임은 알 수 없는가……. 조금 신경 쓰이는군.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

  “이제르론만이 아닙니다. 오딘도 반란군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클레멘츠, 슈트라이트 준장이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표정은 밝지 않다. 오딘에서 이제르론 요새로 항해하는 도중, 몇 번이나 반란군의 동향을 오딘에 물었지만, 반란군의 동향은 알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각하께선 반란군이 요격에 나선다. 혹은 이미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호오?”

  “그 병력은 5만척 전후라고 보고 있는 것 같군.”

  “5만척인가. 이쪽의 2배 이상이로군……. 하지만 그만한 병력이 움직인다면 어떤 정보가 있어도 좋을 텐데……. 정말 움직이고 있는 건가? 이쪽의 움직임을 모르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는데.”

  클레멘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페잔이 고의로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 각하께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고의로 말인가.”

  슈트라이트 준장의 말에 클레멘츠가 놀란다. 확인하는 듯이 이쪽을 보기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멘츠도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인다.


  “요즘 최근 제국이 우세하게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페잔의 입장에선 제국, 반란군 사이의 균형을 지키고 싶다. 이번 기회에 제국이 지도록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내 말에 클레멘츠가 “있을 수 있는 이야기군”하고 말하고 잔을 단숨에 넘겼다. 그리고 빈잔에 와인을 따른다. 또르르하는 소리가 방에 울렸다.


  “모든 건 페잔의 손바닥 위인가. 좋지 않군.”

  클레멘츠가 중얼 거리자 슈트라이트 준장이 끄덕였다.

  “이쪽의 입장에서도 좋지 않습니다. 각하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선 승리가 필요하니까요.”


  그 말에 다들 끄덕였다. 내란을 막기 위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군부, 정부가 협력체제를 맺었다. 지금은 협력체제가 잘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하진 않다.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선 이 싸움에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승리를 거둘 필요가 있다.


  “각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대로는 승산이 꽤나 낮은데.”

  클레멘츠가 탐색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며 나와 슈트라이트 준장을 봤다.

  “무리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출격은 하지만 이길 수 없다고 보면 퇴각하겠다고…….”

  “호오, 하지만 그걸로 좋은 건가?”


  “무참하게 패배하는 것보다는 좋겠지.”

  “그건 그렇지만…….”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클레멘츠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이길 수 없다는 현실에 초조해진다. 그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서 와인을 한 입 마셨다. 입안이 쓰다…….


  한숨을 내쉬고 있는 우리들에게 슈트라이트 준장이 말했다.

  “언젠가, 페잔은 이번 일을 후회할 겁니다.”

  “?”

  “겉으로만 보면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각하께선 속에 꽤나 격렬한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각하를 적으로 돌린 겁니다. 반드시 후회하게 될겁니다. 게다가…….”


  “게다가?”

  질문하는 클레멘츠에게 슈트라이트 준장이 웃음을 보였다.

  “각하께선 최근 빈번하게 반란군의 성계도를 피츠시몬즈 소령에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클레멘츠가 의표를 찔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아직 졌다고 정해진 건 아닌가…….

  “아무래도 포기하기엔 아직 빠른 것 같군. 클레멘츠.”

  “그런 것 같군. 어디 즐겨보도록 할까?”

  와인을 한 입 마셨다. 쓴맛은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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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9월 15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안톤 페르너.


  “페르너 대령.”

  “예. 왜 그러십니까?”

  “저기, 그, ……에리히님은 괜찮을까요?”

  조금 곤란한 듯한 망설임을 보이며 엘리자베트님이 말했다. 약혼자를 걱정하는 어린 미소녀인가……. 응, 꽤나……. 질투 난다. 에리히.


  “괜찮습니다. 엘리자베트님. 공작은 이전에도 전쟁터에 나간 경험이 있어서 익숙합니다. 게다가 이번엔 훈련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겠죠.”

  “…….”


  될 수 있으면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대답했지만, 엘리자베트님은 잠자코 내 얼굴을 보고서 눈을 돌린 뒤,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 어째서 그런 행동을 보이냐. 그건 남자의 둔감함에 기가 질린 여자가 하는 행동이겠지. “이 녀석. 아무 것도 모르는 구만. 빵점이야.” 15살의 소녀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다니. 게다가 상대는 주군의 약혼자. 어허허…….


  “뭔가 걱정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침착해라. 지금 이 시점에선 스마일이다. 아직 만회할 수 있다. 일단 탐색에 들어가라. 정찰행동을 게을리 하지 마라! 이번엔 실패할 수 없다. 엘리자베트님이 힐끔 이쪽을 보고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최근 에리히님은 기운이 없으셨으니…….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일이 쇼크였을까요…….”

  과연. 그런 일인가……. 확실히 조금 기운이 없었다. 여기선 마찬가지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여 동료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군.


  “그렇지요. 소관도 그건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저런 결과가 되리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겠죠. 공작의 책임이 아닙니다만, 처분을 전달한 것은 공작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나하고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공작은 상냥한 분이시니까요.”


  엘리자베트님이 끄덕이고 있다. “책임은 없다”, “상냥하다”, 여기가 포인트다. 누구라도 누군가가 약혼자를 책망하면 재미없고, 칭찬하면 기쁘다. 좋아. 호감도 업. 침로 이대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딘가 매달리는 듯한 어조다. 음. 여기선 서투니 위로하지 말고 어른의 대응을 보여줄 차례다. 그래야지 과연 페르너 대령은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저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저희들이 공작에게 책임이 없다고 해도 공작은 납득하지 않겠죠. 말하면 오히려 책임을 느끼고 말겁니다. 공작이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합니다.”


  엘리자베트님이 “그런.”하고 말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음. 좋다. 여기서 어드바이스다.

  “다행히 공작은 지금 우주에 있습니다. 함대 훈련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망함이 그 사건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 잊게 해주겠죠. 오딘으로 돌아올 때쯤엔 원래대로 돌아오시리라 생각합니다.”


  “페르너 대령은 그렇게 생각하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좋겠지만…….”

  믿고 싶다. 하지만 믿을 수 있을까. 그런 모습이로군. 좋다. 여기서 한 걸음 더.


  “그보다도 편지라도 보내시면 어떻습니까? 엘리자베트님에게서 편지가 도착하면 공작도 기뻐하겠죠.”

  “그럴까요? 기뻐해주실까요?”

  조금 불안한 것 같다. 여기선 빙그레 스마일이다.

  “물론이고 말고요.”


  내 미소에 엘리자베트님도 기쁘게 웃음을 띠웠다.

  “그렇지요. 기뻐해주시겠죠?”

  “예.”

  “고마워요. 페르너 대령.”


  그렇게 말하고 엘리자베트님이 동동하고 걸어 나갔다. 지금부터 영상편지를 만들겠지. 아마 하루종일 걸릴 것이다. 기쁜 마음이 가슴 가득 차겠지……. 에리히도 약혼자에게서 영상편지를 받으면 가슴이 뛸 것이다. 응. 나도 좋은 친구로군.


...


제국력 486년 9월 22일. 프레이아 성계, 포르세티.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내가 원정에서 이끌 예정인 함대, 2만척은 현재 프레이아 성계에서 훈련중이다. 이미 훈련에 들어가서 2주일이 지났다. 훈련은 지나칠 정도로 순조롭다. 뛰어난 부하를 가지면 편하지. 앞으로 2주일만 지나면 훈련을 종료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참모장인 메크링거 소장이 슈트라이트 준장, 베르겐그륀, 뷔로 대령과 훈련 회의를 하고 있다. 내일부터 일주일 간 행할 훈련 내용에 대해서다. 기본방침은 함대를 둘로 나눠 연습하는 것이 된다. 그들은 지금 그 상세사항을 토의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휘관석에서 그걸 보고 있다는 상황이다.


  전함 포르세티. 포르세티급의 1번함으로 나의 함선이다. 다시 말해 원정군의 기함이 된다. 원작에선 이 함은 케슬러의 함선이지만, 이 세계에선 내 기함이 되었다. 뭐, 이 세계의 케슬러는 라인하르트의 참모장이고 문제는 없겠지.


  아무래도 제국은 제국력 480년대 후반부터 기함급 전함은 고속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설계사상을 기본으로 함선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포르세티급과 거의 동시기에 베오울프급, 그리고 브륀힐트나 바르바롯사가 건조되었지만, 모두 고속전함이다.


  나는 이 포르세티가 꽤나 맘에 들었다. 이 함선의 전고는 200미터도 되지 않는다. 차로 말하자면 차체가 낮은 것이다. 기함급 전함이면서 전고가 200미터 이내인 것은 극히 적다. 이 포르세티와 바르바롯사 정도겠지. 게다가 기관부를 후방에 집중 배치하고 장갑을 강화하니 극히 내구성이 강한 함선이 되었다. 살아남아 지휘를 잡는다는 점에선 비상하게 우월한 함선이다.


  포르세티의 이름도 좋다. 포르세티는 북구신화에 나오는 사법신이지만, 아스 신족 중에서도 가장 현명하고 웅변가인 신이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상냥한 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를 굉장히 숭배하기에, 극히 엄숙한 맹세를 할 때엔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곤 한다. 변호사가 꿈인 내게 있어선 롤모델 같은 신이겠지. 실제로 있다면 만나고 싶을 정도다.


  원작에선 루츠의 함선 스키르니르, 바렌의 함선 살라만더도 포르세티급이다. 분명 스키르니르가 2번함이고 살라만더가 3번함이었을까. 두 함선 모두 라인하르트를 따라 전쟁터를 돌아다녔다. 제국에서도 굴지의 무훈함이겠지. 덧붙여 지금 두 사람은 아직 포르세티급을 쓰고 있지 않다.


  스키르니르나 살라만더에 비하면 포르세티는 그다지 전쟁터에서 활약하지 않았다. 케슬러가 헌병총감이 되고나서 지상근무만을 했기 때문이다. 침몰하진 않았지만 무훈도 쌓지 못했다. 이 세계에선 어떻게 될까……. 가능하면 원작세계와 마찬가지로 침몰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딘에 돌아가는 건 10월 중순이로군. 보급, 함대 정비를 행하고 출격하게 될 테니 출격할 수 있는 건 대체로 11월 초순 정도인가. 이제르론 요새에는 늦어도 12월 중순쯤엔 도착하겠지. 이제르론 요새에서 마지막 보급을 행하고 출격인가…….


  신년 축하는 틀림없이 포르세티에서 하게 되겠군. 아니, 문제는 그보다도 크리스마스다. 엘리자베트가 서운하겠지. 선물만이라도 준비해둘까. 페르너에게 부탁해서 당일 건내게 하면……. 케이크는 만들어도 보관할 수 없겠군. 그건 내년이 되어야 한다.


  돌아가면 엘리자베트를 챙기는 일이 큰일일 것이다. 어제 오딘에서 보급이 도착했는데, 그 안에 그녀의 영상편지가 있었다.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제대로 식사는 취하고 있는지 피망과 생간은 남기지 않는지 이런저런 말을 했다. 하지만 나란 놈은 15살짜리 여자아이가 그렇게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믿음직하지 못한 걸까? 양 웬리와 같은 수준인가? 그건 조금 심하겠지…….


  누군가가 엘리자베트를 부채질 했겠지. 슈트라이트는 여기에 있으니까 페르너나 안스바하……. 혹은 대공부인인가? 의외로 리텐하임 후작부인이라는 선도 있겠지만…….


  그 수염 아저씨, 요번에 우리 집으로 와서 내가 만든 흰 복숭아 소스의 블랑망제를 먹었지만, 수염에 흰 복숭아 소스를 뭍이고 꽤나 기분이 좋았으니까 말이지. 한 입 먹을 대마다 “음후”, “음후”라면서 즐거워했다. 모두 박장대소했지만, 음후음후에 가장 크게 웃은 건 후작부인이었다. 그 이후로 내 마음 속에선 음후음후가 녀석의 별명이다.


  “각하,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

  “아까부터 뭔가 고민하시던 것 같습니다만…….”

  발레리가 걱정하는 얼굴로 날 보고 있다. 안 좋군. 설마 엘리자베트와 음후음후를 생각하고 있었다곤 말할 수 없다.


  “원정에 대한 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꽤나 위험하겠죠. 어려운 싸움이 될 겁니다.”

  “2만척은 결코 적은 전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적지는 않습니다만 크지도 않습니다. 극히 어중간합니다. 운용하기 힘들어요…….”


  내 말에 발레리가 곤란한 표정을 보였다. 얼버무리려고 적당히 지어낸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요즘 최근 내 가장 심각한 고민은 이 2만척이라는 숫자다. 아무래도 어중간하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설명하는 편이 좋으려나 생각하니 메크링거가 다가왔다. 발레리도 그를 눈치 채고 표정을 고쳤다.


  “각하. 내일부터 행할 훈련 상세가 정리되었습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메크링거가 내민 자료를 받아 확인한다. 함대를 적, 청으로 나누어 청군은 내가, 적군은 클레멘츠가 사령관이 된다.


  클레멘츠 곁에는 참모로서 슈트라이트와 뷔로, 분함대 사령관은 아이제나흐와 비텐펠트가 배치되었다. 나에겐 메크링거와 베르겐그륀, 바렌, 루츠인가…….


  연습 내용은 수송부대의 호위와 습격. 처음엔 내가 수송선을 호위하고 클레멘츠가 습격을 행한다. 종료하면 입장을 바꿔 다시 한 번인가……. 수송 루트는 프레이어 성계에서 트라바흐 성계로 직선 코스인가……. 항로로서 정비된 곳이 아니니 습격에 유리하다. 훈련으로 쓰기엔 딱 좋겠지.


  메크링거의 후방을 보니 뷔로와 베르겐그륀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나 혹시 소외되고 있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된 탓일까. 조금 외롭다. 이번에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볼까.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겠지…….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클레멘츠 부사령관, 각 분함대 사령관에게 통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하고 말했는데 메크링거는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헌데……, 뭔가 지시해야 하는 것이 더 있었나?


  “뭐죠?”

  내가 질문하니 메크링거가 조금 쑥스럽다는 표정을 보였다. 꽤나 귀엽잖아.

  “아뇨. 아까 전에 각하께서 소령에게 운용하기 어렵다고 하신 말씀을 엿듣고 말았기에…….”


  이런이런, 들렸었나. 시선을 후방으로 향하자 슈트라이트, 뷔로, 베르겐그륀도 이쪽을 보고 있다. 별 수 없군.

  “피츠시몬즈 소령. 동맹군의 정규함대로 1개 함대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병력입니까?”

  “대체로 1만 2천척에서 1만 5천척, 그 정도일까요?”


  “이쪽은 2만척, 함대의 규모로선 이쪽이 많습니다. 이 경우 동맹군은 어떻게 대응하리라 상각합니까?”

  내 질문에 발레리는 메크링거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고서 답했다.


  “……1개 함대로는 열세입니다. 극히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2개 함대, 혹은 3개 함대를 동원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말대로입니다. 초등학생 정도의 산수가 가능하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2개 함대라면 최저 2만 4천척에서 최대 3만척, 3개 함대라면 3만 6만척에서 4만 5천척을 동원할 거란 소립니다. 우리들은 우세한 적과 싸워야만 합니다.”


  내 말에 발레리와 메크링거가 끄덕였다. 발레리, 내가 왜 우울한지 알았겠지. 저쪽은 1개 함대로는 병력이 열세지만 전체로 보면 이쪽을 뛰어 넘는다. 그리고 임무부대도 많다. 다시 말해 작전행동의 선택지는 이쪽보다 큰 것이다.


  “확실히 각하의 생각대로입니다. 편한 원정은 아니로군요.”

  “그렇습니다. 참모장.”

  “반란군의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도손 대장이라고 합니다. 들어본 적 없는 인물입니다만…….”

  메크링거가 나와 발레리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다. 발레리는 동맹에 있었으니까 말이지. 정보를 알고 싶겠지만, 내가 대답하는 편이 좋겠지.


  “용병가로서는 전임자인 로보스 대장보다도 떨어지겠죠.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후방지원 쪽이 적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초등학생 정도의 산수를 할 수 없는 건 아닐 겁니다. 방심은 할 수 없어요.”

  내 말에 모두가 소리 내며 웃었다. 딱히 농담이 아닌데 말이지.


  이쪽의 방침은 한정되어 있다. 적이 아군보다도 많은 이상 정면에서 맞붙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취해야 할 수단은 기습이거나 각개격파다. 하지만 기습이든 각개격파든 상대방의 방심, 틈을 찌르지 않으면 어렵다……. 머리가 아프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작에서 라인하르트가 2만척을 끌고 원정한 것은 라인하르트의 실패를 바랬기에 그랬던 것이라는 것을 잘 알겠다. 1만 5천척 정도의 함대를 끌고 가게 했다면 동맹측에서 1개 함대로 요격하면 된다고 로보스쯤에서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2만척이라면 아무리 봐도 2개 함대 이상을 내놓을 테니 라인하르트가 불리할 거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못하고 돌아와라. 모두 함께 있는 대로 비웃어주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메르카츠를 포함하여 모두가 라인하르트에 대해 철퇴를 진언했다.


  내 경우엔 최종시험 같은 거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를 잇는 거니까 이 정도는 통과하라는 것이다. 다행히 사령부 막료나 분함대 사령관은 이쪽의 요구대로 받아들어 줬고, 모두 협력적이니 원작의 라인하르트보다는 낫다.


  나머진 실제로 현장에 가고 나서의 일이다. 격이 분산할 경우 각개격파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하나로 뭉쳐서 요격하러 나타났을 경우다. 헌데 어떻게 해야 할까…….


...


우주력 795년 10월 5일. 자유행성동맹 통합작전본부. 양 웬리.


  통합작전본부의 본부장실에 들어가니 본부장이 말없이 소파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쪽에 앉으라는 거겠지. 본인은 그대로 책상 위에 놓인 문서에 시선을 향하고 있다. 뭔가 결재하고 있는 것 같다. 소파에 앉아 본부장을 기다린다. 5분 정도 기다리자 본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미안하군. 불러놓고 기다리게 했네.”

  “아뇨. 신경 쓰지 마십시오.”

  본부장이 소파에 앉는다.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한 번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준장. 어떤가? 그쪽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우주함대 사령부 상황은 좋지 않다. 그건 이미 카젤느 선배에게 몇 번이나 전했다. 본부장도 알고 있겠지. 기분이 좋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새로운 사령장관은 너무 체면에 신경 쓴 나머지 웃는 것을 잊은 모양입니다. 뷰코크 제독이나 우란푸, 보로딘 제독 같은 실력과 인망이 있는 제독들과 좀처럼 잘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 트류니히트 위원장에게 접근하고 싶은 녀석들이 도손 사령장관에게 들러붙고 있습니다.”

  “…….”


  “저도 소외되고 있습니다. 도손 사령장관은 저를 시트레 본부장이 집어넣은 스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누군가가 사령장관에게 알리고 있을 테죠.”

  한숨을 내쉬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죄악감을 느끼고 만다. 맹세코 말하는데 나는 죄가 없다. 문제는 도손 대장에게, 그리고 그를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고른 정부에 있다.


  “성가신 일이 되었군.”

  “예. 말도 안 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시트레 본부장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되었다. 발렌슈타인 중장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다니…….


  처음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정을 알게 되면서 얼굴이 굳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기 황제의 자리를 둘러싸고 다투고 있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 그리고 그 쌍방을 누르고 있던 정부, 군부……. 그 넷이 화해했다.


  발렌슈타인 중장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양자가 되어,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와 결혼하는 것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후계자 싸움에서 내려왔다. 차기 황제는 엘윈 요제프, 황후는 사비네 폰 리텐하임, 그리고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가 중신으로서 황제를 보좌한다.


  지금까지는 프리드리히 4세의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제국의 최대 약점이었다. 황제에게 만일의 일이 생겼을 경우, 차기 황제의 자리를 둘러싼 내전이 일어난다……. 저번 아스타테 회전은 그 약점 덕분에 살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동맹군은 말도 안 되는 손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걸 기대할 수 없다…….


  “정부의 높으신 분들도 머리를 아파하고 있겠지. 예측이 틀렸으니까 말이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걸로 정부도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했을 겁니다.”

  “뭐, 그렇군.”


  원래라면 도손 대장이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가 그 지위에 임명된 것은 제국에 내전발발의 위기가 있는 한 적극적으로 외정에 나설 수 없으리라는 정부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사이에 군부를, 우주함대를 재건하려고 생각했다. 그걸 위해서 용병에 자신이 있는 전의 높은 군인보다도 전쟁이 서툰 군인이 좋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기야 나와 본부장은 달리 생각했다. 위기이기에 제국은 동맹을 침공할 것이다. 내란이 일어났을 경우, 동맹이 침략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동맹을 쳐부수기 위해 온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도손 대장에 대한 불안이 되어 있었다…….


  “제국군은 출병 준비를 순조롭게 하고 있는 것 같네만…….”

  제국군이 올해 안에라도 군사행동을 일으키리라는 정보는 페잔 경유로 동맹에 전해졌다. 총 병력 2만척. 원정군 지휘관은 제국군 상급대장 에리히 폰 발렌슈타인 공작.


  “우주함대 사령부에서도 그건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요하게 말입니다.”

  시트레 본부장이 묘하게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의심하는 것 같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우주함대는 사태를 인식하고 있다. 단, 본부장의 인식과는 온도차가 있다.


  “어느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 생각인가?”

  그렇게 의심 깊은 목소리를 내지 말았으면 한다.

  “3개 함대, 도손 사령장관이 지휘를 잡습니다. 사령장관의 직솔부대를 포함하면 총세 4만 5천척 정도가 되겠죠. 이제 곧 본부장에게도 연락이 오리라 생각합니다만…….”


  시트레 본부장이 눈을 열고 놀라고 있다. “호오”하고 탄성을 올렸다.

  “우주함대 사령부는, 아니, 도손 사령장관은 의욕이 넘치고 있습니다.”

  “의욕이 넘치고 있다?”

  “예. 상대는 애송이에 함대사령관 경험도 없는 초보. 한 번 거칠게 환영해주겠다고 의욕을 내고 있습니다.”


  시트레 본부장이 눈을 끔뻑끔뻑하고 있다. 한 순간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몰랐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진심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봤다. 아마도 본부장은 어이없어하고 있는 걸 테지만, 도손 사령장관은 진심이다. 그리고 우주함대 사령부는 그걸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바보 참모들이 많이 있다.


  “제정신인가?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밴플리트에선 실질적으로 1개 함대를 이끌고 있었겠지. 그자 때문에 그 싸움에서 졌다. 그걸 초보…….”

  본부장은 고개를 젓고 있다. 질 나쁜 농담이라도 들은 기분이겠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도손 제독이 사령장관으로 취임한 것은 실력을 샀기 때문이 아니다. 우주함대를 재건하기 위해서다라고. 그게 끝나면 당연합니다만, 불필요해 질 것이라는 것도. 도손 사령장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부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다시 말해, 여기서 실적을 올려서 자신이 사령장관으로서 어울리는 인간이라고 어필하고 싶다는 건가?”

  “그 말대로입니다. 다행히 적은 1개 함대, 2만척입니다. 쳐부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사령장관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


  시트레 본부장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다. 높아지면 그만큼 고민도 늘어나는가……. 평범한게 제일이로군.

  “생각하는 방향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대군을 가지고 소수를 치는 것은 용병의 상식입니다. 나머진 끌어 모은 병력을 얼마나 유효하게 쓰는가겠죠.”


  “다시 말해 용병가로서의 센스를 묻게 되리라는 건가…….”

  “예.”

  거기가 문제일 것이다. 상대가 상대다. 간단하게 이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그때 그때, 적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참모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꽤나 전도다난하군.”

  “동감입니다. 낙관할 수 없습니다.”

  그 말대로다. 한숨 섞인 본부장의 말에 이쪽도 한숨이 나왔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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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8월 14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어떻게 합니까?”

  “……처분은 바꿀 수 없네. 불쌍하다 생각하네만…….”

  장미 정원에서 빠져나온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엔 생기가 없었다. 막노동 뒤의 피로감 같은 것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숨이 흘러나오는 것을 눈치 챘다. 후작만이 아니다. 나도 함께다.


  “이 무슨 마음 무거운 일인건지.”

  “그렇군요.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경이 있어줘서 살았네. 혼자였다면 벌써 도망쳤을게야.”

  “전 후작을 원망하고 있어요. 변변찮은 일에 휘말리게 했으니까요.”

  생기 없는 목소리. 무거운 발걸음. 지금의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은 살아있는 시체겠지. 좀비나 마찬가지다.


  장미 정원에서 황제, 프리드리히 4세와 만났다. 베네뮌데 후작부인 사건에 대한 보고, 그리고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이쪽의 제시 내용에 이의를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은 지쳤다.


  “불쌍하구먼. 후작부인도.”

  “……그렇군요…….”

  “어떻게 해야 될는지.”

  “처분은 바꿀 수 없습니다. 불쌍하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제자리 걸음이다. 아까부터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하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쉰다.


  프리드리히 4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알게 된 일이 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황제는 그녀를 싫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생각하기에 곁에서 떨어뜨렸다. 슬픈 이야기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낳은 황자를 루드비히 황태자가 죽였다. 황제도 그걸 알고 있었다. 루드비히가 죽기 직전에 프리드리히 4세에게 참회했다고 한다. 루드비히는 죄악감 때문에 쇠약사했다고 한다. 꽤나 마음이 약했겠지. 약했기에 황태자 자리를 뺏길 것을 두려워하여 적자를 죽였다. 약했기에 그 죄를 견디지 못했다……. 황태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임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견본 같은 사람이다.


  그 뒤, 후작부인은 세 번 유산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유산하도록 조작했다. 조작한 것은 아스칸 자작가……. 후작부인의 친가였다. 후작부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그 남자아이가 황제에 즉위하면 아스칸 자작가는 외척으로서 강대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겠지. 야심 있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아스칸 자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아스칸 자작가는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프리드리히 4세의 후궁으로 들어가기 전까진, 그 총애를 얻기 전까진 귀족이라고 불릴 뿐인 가난한 집안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유복한 생활뿐이었으며, 권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칸 자작가는 정치적인 야심 따위 전혀 없는 집안이었다.


  후작부인이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얻게 되어 아스칸 자작가의 가운이 상승했다. 그녀는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 황금알을 낳는 귀중한 닭이었다. 그녀가 황금알을 낳을 때마다 자작가는 장원이나 이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난함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졸부라고 경멸을 받는다 할지라도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아스칸 자작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을 것이다.


  후작부인이 처음으로 회임했을 때, 아스칸 자작가는 기뻐했겠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그녀가 황후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흘렀을 때엔 광희했을지도 모른다. 외척이 되면 강대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아스칸 자작가는 황후를 배출한 명가로서 후세까지 전해질 것이라고, 졸부라고 경멸받을 일도 없어질 거라고……. 그들에게 있어서 눈부실 정도의 미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것에 모든 것이 일변했다. 아스칸 자작가는 겨우 권력의 무시무시함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적대할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했을 것이 틀림없다. 루드비히 황태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어느 곳도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강대한 존재였다.


  아스칸 자작가는 두려움에 떨었다. 본래 정치적인 야심 따위 전무했던 집안이다. 외척이 된다는 꿈 따위 간단하게 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 이대로면 충분하다. 하찮은 야심 때문에 지금의 번영을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불행했던 것은 그런 그들의 결의와 관계없는 장소에서 사태가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프리드리히 4세가 후작부인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소란 피울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가정에선 아이가 생기지 않는 쪽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선 후작부인이 재차 회임했을 때엔 악몽이라도 꾸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을 망하게 할 것이냐며 운명을 저주하고, 그리고 후작부인을 증오했을 것이 틀림없다. 자작가에게 있어서 황금알을 낳는 닭은, 자작가를 망하게 만들 맹독을 품은 독사로 변했다.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 후작부인은 단순한 총희였으면 충분했다. 어머니 따위 될 필요는 없었다. 적당하게 총애를 얻고, 때때로 아스칸 자작가에 은혜를 베풀어주는 존재면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스칸 자작가는 후작부인이 어머니가 되는 일을 막았다. 후작부인은 세 번에 걸쳐 유산했다. 환상의 황후는 환상인 채로 끝났다.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도 괴로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일이 겉으로 드러나면 당연하게도 아스칸 자작가는 비난을 받게 된다. 아마도 전원 사형에 가명 절단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스칸 자작가는 권력 투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과 범죄를 숨길 수 있을 가능성을 천칭에 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결단했다. 주산나를 유산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4세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멀리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아마도 프리드리히 4세는 유산이 계속된 일에 의문을 품었겠지. 그리고 아스칸 자작가가 후작부인의 회임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첫 번째 아이가 루드비히 황태자에게 죽은 일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결코 범용하지 않다.


  모든 걸 알아낸 황제는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멀리했다. 애정이 식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이 후작부인을 계속 사랑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이상 유산을 계속하면 그녀의 마음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누가 유산하게 만든 건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궁중은 지옥이었겠지.” 황제가 한 말이다.


  황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멀리한 이유는 또 하나 있겠지. 지금까지는 유산으로 끝났다. 하지만 다음엔 유산이 아니라 부인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닐까. 황제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그녀의 정신과 생명의 안전을 꾀했다. 이 이상 황제는 그녀를 가까이해선 안 된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대신하여 황제의 총애를 받은 것이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었다. 그녀의 육친은 주정뱅이 아버지와 5세 연하의 동생뿐이다. 그녀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빈곤귀족도 없을뿐더러 권력을 얻고자 하는 야심가 일족도 없다. 그래도 황제는 그녀를 사랑하긴 해도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싫은 일이지만, 해야만 하겠지.”

  “동감입니다. 슬슬 가도록 할까요.”

  “그러세.”

  말과는 반대로 한숨이 나왔다. 후작도 한숨을 내쉰다. 두 사람 모두 무거운 발걸음으로 베네뮌데 후작부인 저택으로 향했다. 후작부인 저택은 신무우궁의 일각에 있다. 여기서 멀지는 않다. 자동차를 쓰면 바로 도착하겠지.


  8월 14일 오후. 베네뮌데 후작부인 저택을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이 방문했다. 현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돈이 많이 들었겠지. 황제의 총희 정도 되면 저택도 대단하다. 방문을 고하자 살롱으로 안내 받았다. 옛날, 그녀가 황제의 총희로서 총애를 독점했을 때엔 이 저택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것이다. 모두 제국의 중요인물이었겠지. 지금은 누구 한 사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이 여기에 왔다.


  후작부인이 우리들을 살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인이라고 해도 좋겠지. 흑발, 푸른 눈동자, 그리고 붉은 입술. 알맞게 조화되어 있다. 하기야 조금 표정이 드센 느낌이 든다. 선입관 때문일까……. 후작부인이 생긋 미소지었다.


  “어서오세요. 국무상서. 오랜만이네요. 데려오신 분은 누구신가요? 보지 못한 분이신 것 같은데.”

  미소는 띄우고 있지만 말에는 명백하게 독기가 서려있다. 나를 모른다니 그럴 리가 없다. 묘욕이라도 주려는 생각이겠지. 그녀에게 있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증오해야 마땅할 존재다. 그녀의 유산 원인은 아스칸 자작가지만, 그들을 그렇게 결단하도록 만든 건 루드비히 황태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그녀의 독을 눈치 챘겠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후작부인은 모르셨습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세대를 바꿨습니다. 그는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당대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색다르게도 평민을 양자로 받았다든가……. 그 분이 그런가요?”

  조소하는 듯한 웃음이다.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이군. 놀리면서 울분을 풀고 싶은 거겠지. 이번 건으로 내가 라인하르트 편에 섰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비호자인 것이다. 후작부인에게 있어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상대겠지.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입니다.”

  “모쪼록 힘내세요. 하지만 비천한 평민에게 귀족의 임무가 가능할까요?”

  농밀한 독을 품은 웃음. 지긋지긋하군. 여자도 남자에게 10년 이상 사랑받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가……. 오한이 일었다. 프리드리히 4세가 취한 행동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독을 쐬는 이쪽 입장이 되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까 전까지 있었던 그녀에 대한 연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기까지 해두게. 후작부인. 공작은 폐하가 엘리자베트님의 사윗감으로 인정한 분일세.”

  “…….”

  리히텐라데 후작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오늘 여기에 온 건, 이번 후작부인이 코르프트 자작과 함께 일으킨 소동에 대해서 처분을 고하기 위해서입니다. 폐하는 다음과 같은 처분을 결정했습니다.”

  처분이라는 말에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불문에 붙여지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처분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국무상서. 저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보기 흉하네. 후작부인. 이미 코르프트 자작은 모든 걸 자백했네. 부인이 코르프트 자작과 함께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내쫓으려 책모한 것, 뮈젤 대장을 실각하게 만들어 미터마이어 소장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것은 알고 있네.”

  “모함입니다! 목숨이 아까워 제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겁니다!”


  “그레이저 의사의 증언도 있습니다. 그 전부가 조서에 써있을 겁니다. 발버둥은 그만두시지요.”

  “…….”

  후작부인이 번뜩거리는 눈으로 리히텐라데 후작을 노려보고 있다. 벽옥 같은 눈동자가 이렇게 저주를 품는 일도 좀처럼 없겠지. 오한이 들 것 같은 눈이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질리고 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 이하의 다섯 장원을 반상한다. 메들러 파세쥬, 아룬스베르크, 알트너, 할부르크, 원츠베크.”

  “…….”

  다섯 장원을 뺏겼지만 아직 후작부인에겐 비슷한 정도의 장원이 남았다. 황제가 총희에게 준 장원인 것이다. 모두 윤택함에 정평이 있는 장원이다. 경제적으로 곤란해지는 일은 없겠지. 웃으며 허락하마. 그 정도의 계산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정부의 허가 없이 외출을 금지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의 면회도 마찬가지입니다.”

  “…….”

  정부의 허가가 있으면 문제없다. 다시 말해 정부의 허가가 귀찮은, 혹은 후작부인과의 접촉을 정부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배제할 뿐이다. 이것도 특별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늘 이후로 후작부인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질 테니까. 오히려 싫은 손님이 오면 내쫓을 구실이 생기겠지. “정부에서 사람과 만나면 안 된다고 들어서요. 호호호.”


  “셋, 현재 이 저택에 있는 하인은 모두 해고합니다. 이 이후엔 정부가 파견한 하인이 후작부인을 모십니다.”

  속령이 줄어든 것이다. 정부가 하인을 파견해준다면 그만큼 경비가 줄어든다. 나라면 대환영이다. 뭐니뭐니해도 인건비만큼 비싼 건 없다. 덧붙여 하인의 식비는 정부가 내라고 정도는 말해라. 리히텐라데 후작도 싫다곤 할 수 없겠지. 뭐하면 내가 설득해주마.


  ……얼굴색이 변했다. 설마하고 생각하지만, 처분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폐하의 말씀이 그러하시다면, 어떻게 소첩이 거기에 거역하겠습니까. 하루라도 폐하에 대한 충심을 잃은 적이 없는 소첩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폐하는 스스로 그러한 지시를 소첩에게 말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소첩은 그것이 서운해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폐하도 너무나 무정하십니다.”


  지긋지긋하다. 거역할 수 없다? 어째서 스스로 말하지 않는 것인가? 만나면 반드시 자신은 무죄라고 울면서 용서를 구할 것이 당연하잖은가. 그거야말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 눈앞의 여자가 그 증거를 얻을 찬스를 놓칠 리가 없다…….


  설마, 그것이 노림수인가? 그래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프리드리히 4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를 여기에 부르기 위해서? 그렇다면 너무나도 바보 같다. 이 여자가 불쌍하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동정할 순 없다. 이제 연기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폐하는 다망하십니다.”

  “다망?”

  “그렇습니다.”

  내 말에 후작부인이 조소를 띄웠다.


  “아아, 그렇게나 다망하신 겁니까? 주연 때문에? 사냥 때문에? 도박 때문에? 아니, 무엇보다도 그 여자 곁으로 가시느라 다망하시겠죠.”

  “그 말대로입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뭐니 뭐니해도 마음 상냥하고 아름다운 분입니다. 폐하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책망하는 눈으로 봤다. 괜한 것을, 하고 생각했겠지. 그 괜한 일 때문에 후작부인의 얼굴은 명백하게 변모했다. 증오, 광기…….


  “그 여자……, 그 여자가 내숭이나 떨며……. 폐하의 마음을 빼앗고, 그리고 소첩에게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아아, 그 여자, 그 여자의 뻔뻔한 얼굴을 찢어서 물어뜯어버리고 싶어.”

  하늘을 노려보며 후작부인이 중얼거렸다. 사람이 가진 부의 감정이 형태를 가진다면, 지금의 후작부인이 되겠지. 이걸 사람으로 돌리는 건 편한 일이 아니겠군.


  “쓸모없습니다.”

  후작부인이 날 봤다. 무시무시한 광기의 눈…….

  “백작부인을 죽여도 폐하가 후작부인의 곁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는…….”

  “왜냐하면, 폐하가 후작부인을 멀리한 건 당신이 싫어져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폐하는 당신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조금 눈이 누그러졌나.


  “당신이 낳은 아이를 죽인 건, 선대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아닙니다. 루드비히 황태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세 번 유산한 것은 당신의 친정, 아스칸 자작가가 꾸민 일입니다. 당신은 그걸 알고 계셨겠죠. 폐하도 알고 계십니다.”

  “…….”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녀는 황제가 모르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하다. 혹시 황제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그녀가 알았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 황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는 당신을 이 이상 궁중에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도 당신이 상처 입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뭐라 해도 원인을 말하자면 폐하가 후작부인을 사랑한 일이 발단이었으니…….”

  “……소첩은 폐하의 곁에, 단지 그것만을…….”


  리히텐라데 후작을 봤다. 고개를 젓고 있다. 불쌍한 여자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평범하게 태어났다면 조금 질투심 강한 좋은 아내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황제였다. 총희에는 항상 정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은 잔혹한 현실이며, 보기 좋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이 여자의 불행은 정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유감입니다만, 폐하는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혹여 지금 후작부인이 궁중으로 돌아간다면, 아스칸 자작가는 반드시 당신을 죽이겠지요.”

  “…….”

  리히텐라데 후작은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후작도 같은 의견이겠지.


  “제국의 후계자는 정해졌습니다. 체제도 정해졌습니다. 차기 황제는 엘윈 요제프 전하, 황후는 사비네 폰 리텐하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군부, 귀족의 중진으로서, 그리고 황제에 가장 가까운 일족으로서 황제를 돕는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정부수반으로서 황제를 보필한다……. 아시겠습니까? 정부, 군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이 4자가 협력체제를 결성한 것입니다. 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들어간 건 그런 의미입니다.”

  “…….”


  “아스칸 자작도 당연히 그걸 알고 있죠. 여기서 당신이 들어가 황자를 낳는다면 어떻게 되리라 생각합니까? 당신이 황후가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처럼 정리된 체제에 틈이 벌어지고 맙니다. 그런 걸 4자가 용서할 리가 없죠. 아스칸 자작가는 이번이야말로 뭉개진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선 후작부인, 당신을 죽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방금 전의 광기가 사라지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선 잔혹한 현실이겠지. 하지만 현실을 보지 않는 한 그녀는 자신이 위험하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다.

  “폐하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사랑한 것은 그녀에겐 아스칸 자작가와 같은 친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폐하는 그녀 사이에서 아이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후작부인. 당신처럼 상처 입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작부인이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그걸 보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조용하게 지내십시오. 여기라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폐하의 의지입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저택을 나오니 자연스럽게 심호흡하고 있었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마찬가지로 심호흡을 하고 있다. 서로 돌아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끝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잘 했네. 경에게 동행을 부탁한 건 정답이었군.”

  “이제 충분합니다. 지긋지긋해요. 돌아가죠.”

  자동차에 타고 자리에 몸을 깊숙이 앉혔다. 지친 몸에 부드러운 자리가 편안했다…….


...


제국력 486년 8월 18일. 오딘.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죽었다. 죽은 건 2일 전, 8월 16일이었다. 정오가 지나도 후작부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하녀가 침실에 들어가자 후작부인이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단, 드레스를 입고 호흡을 하지 않았다. 지행성 독을 사용한 자살이었다.


  유서가 있었다. 프리드리히 4세에게 보내는 유서였다. 유서에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봄날 양지처럼 잊혀질 바에야 엄동설한의 추위처럼 기억에 남고 싶다고 써있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황제에게 그 일을 보고하자 프리드리히 4세는 “그런가.”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후작부인의 마음도 모를뿐더러, 황제의 마음도 알 수 없다. 찝찝한 이야기다.


  장례식은 극히 간소하게 치러졌다. 그녀가 정부의 감시 하에 있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참례자는 적었다. 아스칸 자작,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일가, 리텐하임 후작 일가, 리히텐라데 후작, 라인하르트…….


  묘한 이야기다. 아스칸 자작을 빼면 황제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대공부인과 리텐하임 후작부인도 그녀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녀에게 죄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루드비히 황태자가 그녀의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 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스칸 자작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이 뻔하게 드러났다. 그에게 있어서 후작부인은 무거운 짐에 불과했겠지. 소문에 따르면 후작부인의 자살을 알았을 때, 자작은 “이걸로 주박에서 해방된다.”라고 중얼거리고 축배를 올렸다고 한다. 마음은 알겠지만 후작부인이 없었다면 아스칸 자작가는 그저 빈곤귀족이었을 것이다. 죽은 자를 슬퍼할 정도의 예의를 보여도 벌은 받지 않겠지. 제대로 된 놈이 아니다.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라인하르트를 빼면 모두 적극적으로는 그녀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죽었다. 대체 우리들은 뭘 한 건가……. 모두가 침묵한 것도 그것이 이유겠지. 대체 우리들은 뭘 한 건가…….


  앞으로도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어쩔도리 없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 한 권력의 향기와 썩은 냄새를 계속 내게 되겠지. 그리고 이런 일에선 평생 도망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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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8월 1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라인하르트 폰 뮈젤.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입니다. 공작 각하께 제가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잠시 기다리십시오. 주인을 부르겠습니다.”

  내방에 응대한 것은 아직 젊고 샤프한 인상의 대령이었다. 분명 페르너라는 이름이었을 터다. 대령은 그대로 집 안으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묘한 기분이다. 페르너 대령의 말을 듣자면 공작 스스로 나를 마중한다는 것 같다. 확실히 나는 제국 대장이지만 제국 제일의 실력자가 되어가고 있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 할 입장이 아니라는 건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공작이 되었다고 우의가 변한 건 아니라는 건가.


  곁에 있는 키르히아이스를 돌아봤다. 키르히아이스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거겠지.

  “라인하르트님. 지금 그 분은 페르너 대령이라고 합니다만. 대령과 공작 각하는 사관학교에서 동기생이었습니다. 친구였다던가.”

  “그런가…….”

  말하자면 심복이라는 건가……. 대령이 내게 정중이 대응하는 건 공작의 의사가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지.


  바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나타났다. 뒤에는 페르너 대령이 붙어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여전히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뮈젤 제독. 자, 이쪽으로.”

  공작은 손이라도 잡듯이 날 안내하려고 한다. 조금 곤란했다.


  “대장 각하. 그럼 저는 자동차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키르히아이스 중령. 안에서 차라도 마시며 기다리세요.”

  “…….”

  키르히아이스가 머뭇거리고 있다.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키르히아이스의 입장에선 밖에서 기다리라는 소리는 들은 적이 있어도 안에서 차라도 마시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사양할 필요는 없습니다. 밤이라도 밖은 덥겠죠. 안톤. 안에서 키르히아이스 중령의 상대를 해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차가 질리면 시뮬레이션이라도 해서 중령을 대접해줘. 중령은 꽤나 실력이 좋아. 나보다 위일까?”

  그렇게 말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가볍게 웃음소리를 냈다. 혹시 우리들을 곤란하게 만들며 즐기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페르너 대령이 의미심장하게 키르히아이스를 보고 있다. 키르히아이스가 그 시선을 피하는 듯이 날 봤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키르히아이스 중령은…….”

  말리려는 나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웃으면서 잡았다.

  “뮈젤 제독, 키르히아이스 중령의 실력은 뮈젤 제독이 가장 잘 알고 있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지요. 중령이 승진할수록 역풍이 강해질 겁니다.”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이 맞다. 지금까진 우리들을 받아들이려 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우리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키르히아이스도 그 능력을 모두에게 알려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쪽에 호의적이다. 여기서 라면 나쁘게 될 일은 없겠지…….

  “키르히아이스. 모처럼 받은 호의다. 감사하게 받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응접실로 들어가니 이미 선객이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 젊은 내가 아무래도 마지막인 것 같다. 한 마디 해야만 하겠지.

  “늦었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내 말에 모두 무표정으로 끄덕인다. 그걸 보면서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며 새삼 생각했다. 모두, 꼭 내게 호의적인 건 아니다. 그런 내가 어째서 여기에 불려온 것인가……. 역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호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온 것 같다.


  문이 열리고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아마도 하녀겠지. 커피를 가져온 것 같다. 내게 와서 인사하고 커피를 내려놨다. 극진한 대접이다. 자연스럽게 이쪽도 고개가 숙여졌다.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다. 지금까지 부당하게 대접 받은 적은 없어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대접 받은 적은 없다.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곤란한 일이다.


  “아무래도 모두 모인 것 같군. 슬슬 시작하면 어떤가? 리히텐라데 후작.”

  여성이 나가는 것을 보고서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입을 열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음.”하고 끄덕인다. 모두를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 코르프트 자작의 사건이네만. 조사가 거의 끝났다. 이 사건의 대략적인 경위와 이후의 일을 관계자인 경들에게 말해두고 싶네.”

  낮고 잠긴 목소리다. 모두 끄덕였다.


  “일의 시작은 후작부인이 폐하의 총애를 잃은 일이다. 후작부인은 당연하게도 새로운 총희인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증오했다. 그리고 실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바랬다.”

  내게 자객을 보낸 것도 후작부인이다. 누님만이 아니라 나까지 노렸다. 그 때문에 죽을 뻔한 일도 있다. 아마도 날 죽이는 걸로 누님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겠지.


  “미터마이어 소장이 코르프트 자작의 동생을 죽였다. 그 사건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군율을 바로 세웠다고 판단하여 불문에 붙였으나 자작은 그걸 참을 수 없었다. 복수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미터마이어 소장은 뮈젤 제독의 비호를 받았다. 그에게 있어선 뮈젤 제독이 방해였다.”

  “그래서 코르프트 자작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이용할 것을 생각했나…….”

  리텐하임 후작이 중얼거리는 듯이 말을 내뱉는다.


  “그렇네.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폐하 이하의 남자를 다가가게 하여 간통죄로 처단 당하게 하라고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귓가에 속삭인 거다. 백작부인이 실각하면 후작부인이 총희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이야.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그걸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어리석은 일일세…….”

  “…….”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잠자코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을 듣고 있다. 내심 모두 후작과 마찬가지로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코르프트 자작의 입장에서 보자면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복권하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던 게지. 그에게 있어서 후작부인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실각하게 만들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백작부인이 간통죄로 처단 당하면 당연하게도 뮈젤 대장도 그냥 넘어가지 않아. 코르프트 자작은 그걸 노렸던 게지.”


  모두가 날 봤다. 새삼 자신이 위험한 입장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번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이쪽에 아군이 되어줘서 살았지만, 만일 적이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이쪽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적도 강력하게, 교활하게 되어간다……. 아군을 만들라던 공작의 말이 새삼 생각났다.

  “뮈젤 대장의 비호를 잃은 미터마이어 소장 따위 간단하게 죽일 수 있다고 코르프트 자작은 생각했던 게지.”


  응접실에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만이 흘렀다. 대략적으로 그 일은 알고 있었다. 소문도 흘렀었고, 이쪽도 가능한 한 조사 상황을 알려고 했다. 케슬러가 헌병대에 강한 연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서 새삼 그 무시무시함, 어리석음에 구토가 나오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모두 표정에 혐오감이 있다.


  “코르프트 자작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어리석은 여자라고 했지만, 자작 스스로도 어리석음을 따지자면 후작부인과 별 다를바 없네.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두 가문에게서 단교 선언을 받아도 자작은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지. 힐데스하임 백작들을 이용하여 복수하자고 생각했던 거다. 최후엔 그들에게도 버려져 목숨의 위기를 느껴 자수했지만…….”

  리히텐라데 후작이 표정을 찡그렸다. 과연. 힐데스하임 백작들이 블라스터를 코르프트 자작의 머리에 쑤시며 겨눴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모두 누구라도 자신의 몸이 소중하고, 물귀신은 사양이라는 건가…….


  “이번 사건에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감사해야만 하네. 코르프트 자작만이 아니라 힐데스하임 백작들에게서도 조서를 받을 수 있었지. 녀석들의 목줄을 잡은 걸세. 잠시동안은 얌전하겠지.”

  모두가 웃음을 흘리는 와중, 칭찬을 받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입을 열었다.


  “리히텐라데 후작답지 않군요. 녀석들이 그렇게 기특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줄을 잡히기는커녕, 코르프트 자작을 자수하게 만든 건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겠죠.”

  “한 방 먹었구먼. 리히텐라데 후작.”

  표정을 찡그린 리히텐라데 후작을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놀렸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얼굴이 더더욱 구려진다. 그런 후작을 보고 모두가 웃었다. 겨우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한 순간이지만, 방의 분위기가 풀어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건, 그런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리히텐라데 후작이 말한 사건의 개요는 무거웠고 지긋지긋했다. 잠시동안의 침묵 후, 리히텐라데 후작이 말을 계속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처분이네만. 폐하의 기분을 생각하면 사형이라는 건 피하고 싶네.”

  리히텐라데 후작이 한 사람씩 얼굴을 본다. 확인을 받으려는 거겠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리고 리텐하임 후작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됐다. 나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있다. 하지만 나 이외의 네 사람이 이미 사죄에는 반대라는 것에 동의했다. 가장 약한 입장이 내가 혼자 반대해서야 의미가 없겠지. 섣불리 반대했다가 반감을 사는 것도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지.”

  리텐하임 후작이 말했다. 그 말대로다. 처벌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걸 듣고서도 반대는 늦지 않다.

  “후작부인에게 증거를 들이밀어 다음엔 용서하지 않는다고 침을 박아놓을 걸세. 그리고 영지를 일부 반상하게 되겠지. 후작부인의 저택에는 정부의 손이 닿는 자를 넣어, 그 언동은 24시간 감시하에 두게 되네. 또한 외출은 엄격히 제한되고, 외부에서 저택으로 출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제한되게 되네.”


  리히텐라데 후작의 제한에 모두가 서로를 돌아봤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말했다.

  “다시 말해 사실상의 감금. 그렇게 봐도 좋은가?”

  “그렇게 봐도 좋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주변을 둘러봤다. 리텐하임 후작,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리고 나……. 시선으로 찬부를 확인하고 있다. 대공이 한 번 끄덕였다.


  “좋겠지. 딱히 이견은 없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번엔 리히텐라데 후작이 주변을 둘러본다. 정말로 이의는 없냐고 확인하는 거겠지. 내게 향하는 시선이 조금 엄한 듯한 느낌이다. 반대하리라고 생각한 건가…….


  그 여자가 무력화 된다면 그걸로 좋다. 사실상의 감금. 그 여자에게 있어선 굴욕이겠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지옥일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게다가 그 여자가 이후 문제를 일으켜도 여기에 있는 자들이 누님의 아군이 되어주겠지. 그 의미는 크다. 이제와서 생각하지만 누님이 정치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정말 컸다.


  “헌데, 이 사건에 대해서 폐하께 보고해야만 하네. 그리고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처분을 고해야만 하네만 하네만…….”

  리히텐라데 후작이 말을 끊었다. 그리고 꽤나 망설이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시선을 향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공작이 날 도와줬으면 하네만.”

  그 말에 공작이 얼굴을 찡그렸다.


  “제가, 말입니까?”

  “음. 정부, 귀족의 총의라는 형태를 취하고 싶은 걸세.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예의 사건이 있으니까 말이야. 후작부인이 솔직하게 응해주지 않을지도 몰라.”

  예의 사건인가…….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낳은 아이가 사산했다는 사건 말이군. 확실히 브라운슈바이크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이라면 후작부인은 흥분하겠지. 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다.


  “뭐, 본의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미 타버린 배라는 놈일세. 앞으로 조금 더 도와주게나.”

  “……별 수 없군요.”

  한숨 섞인 대답이었지만 리히텐라데 후작은 기쁘게 끄덕였다. 혹시나 이 노인,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껄끄러운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우스웠다. 그렇다 해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젊은 만큼 뭔가 귀찮은 일을 많이 맡는 것 같다. 그것도 우스웠다.


  그 뒤엔 조금 잡담을 하고 나서 해산하게 됐다. 리텐하임 후작과 리히텐라데 후작을 두고서 먼저 실례했다. 응접실을 나오니 키르히아이스가 페르너 대령과 함께 안쪽에서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웃음을 띠며 이쪽을 보는 걸 보니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좋은 일이다. 나도 가능하면 그쪽에서 시뮬레이션이라도 하고 싶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우리들을 배웅해줬지만, 놀랍게도 밖까지 나와서 배웅해줬다. 공작이 말을 걸어준 것은 승용차에 올라 탈 때였다. 아무래도 그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일단 그뤼네발트 백작부인, 미터마이어 소장의 몸은 안전한 것 같습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겉치레가 아니었다. 이번 사건에서 나는 움직이지 않고 끝났다. 귀족들도 나를 위험시할 일은 없겠지. 그리고 새삼 공작이 내게 호의적이라는 것도 귀족들은 알았을 것이다. 수확은 크다.

  “잠시입니다. 이번엔 버텼습니다만, 다음엔 알 수 없습니다. 녀석은 나도, 그리고 뮈젤 제독에게도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충분히 조심하세요.”

  그 말이 맞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감사를 표하고 승용차에 올라 탔다. 공작은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밖에서 배웅해줬다.


...


제국력 486년 8월 1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라인하르트가 타고 있는 승용차가 멀어진다. 그걸 보면서 페르너에게 물었다.

  “어때? 안톤. 키르히아이스 중령은.”

  “꽤나 하더군. 그냥 소꿉친구는 아니라는 건가.”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지. 어조가 친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게 기뻤다. 타산적인 이야기도 가볍게 말할 수 있다.


  “저 두 사람, 어디가 위일까?”

  “물론 뮈젤 제독이지.”

  내 말에 페르너가 어깨를 움츠렸다.

  “이런이런. 키르히아이스 중령의 위엔 뮈젤 제독인가……. 적으로 돌리는 건 득책이 아니군. 경의 마음을 잘 알겠어.”

  “그걸 모르는 녀석들도 있어. 얕보고 있는 녀석은 언젠가 아픈 맛을 보게 되겠지.”


  라인하르트의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걸 보고서 뒤꿈치를 돌렸다.

  “후작부인에 대한 건 정리 됐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을까?”

  맘 편한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맘에 거슬렸다.

  “아직이야. 폐하께 보고를 드려야 하고, 부인에 대한 처분을 전하는 일이 남았어.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이 가게 됐지.”

  “그건……, 안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구만.”

  바보 자식.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양자 따위가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전쟁터에 나가고 싶다. 문뜩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멍청한 생각을 한다고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오딘에 있는 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서 권력의 썩은 냄새에 둘러싸여 있게 되겠지. 이 악취를 떨쳐내기 위해선 우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원작의 라인하르트도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결벽한 면이 있는 라인하르트는 나보다도 그런 마음이 더욱 강했겠지.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그 권력을 약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이 썩은 냄새도 조금은 잦아들겠지. 제국 전체에 있어서, 라는 건 시기상조일 것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에서 행하는 것도 반대가 나오겠지. 어딘가, 실험장이 필요하다……. 리메스 남작가를 재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게다가 예의 건도 있나…….


  “에리히, 왜 그래? 멍하니 서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느 샌가 발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아니면 저택에 들어가기 싫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는가……. 삼합의 쌀을 가지고 있다면 데릴사위로 가지 마라인가. 정말 딱 맞는 말이다.


  하늘을 올려봤다. 오딘의 여름 밤하늘은 만천의 별에 빛나고 있다. 아름답고 더러움 없는 세계. 저기라면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이름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썩은 냄새와도 상관없겠지……. 저기에 가자. 다시 한 번 생각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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