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6년 8월 2일. 오딘, 리텐하임 후작 저택. 빌헬름 폰 리텐하임 3세.


  아내와 딸이 몸단장을 하고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건가?”

  “예. 언니에게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말인가.”

  “그래요. 언니의 자랑스런 아들을 보러 가는 거예요. 그렇지?”


  아내와 딸에게 동의를 구하자 사비네가 즐겁게 끄덕였다. 헌데, 사비네는 외출하는 것이 기쁜 건가? 아니면 저 남자와 만나러 가는 것이 기쁜 건가? 지나친 생각인가……. 사비네는 아직 열두 살이다.


  “자랑스런 아들인가.”

  “귀엽다면서요. 커피를 싫어하고 코코아를 아주 좋아한다며. 맛있게도 마신다고 언니가 웃었어요. 언니는 새로운 아들에게 정신이 없어요. 케이크 만드는 것이 특기라서 무척이나 맛있다면서요. 오늘은 그걸 대접 받으러 가는 거예요.”


  맘 편한 일이다. 남자 세계의 갈등 따위 여자들에게 있어선 어떤 의미도 없다. 맛있는 케이크를 대접 받는다? 저 남자가 케이크를 만든다? 지금 이 오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아니, 알고 있어도 가는 거겠지. 여자에게 있어서 맛있는 케이크는 마약과도 같다. 알고 있지만 막을 수 없다. 마치 별세계 이야기다.


  “요즘 신경 쓰지 않고 언니에게 갈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워요. 어째서 좀 더 빨리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

  “선물 가지고 올게요. 맛있는 케이크를 말이죠.”

  근심걱정없이 그렇게 말하고 아내는 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요즘엔 신경 쓰지 않고 언니에게 갈 수 있는가……. 예전, 대공과 기싸움을 하고 있을 땐 아내도 대공 부인과 만나는 일을 삼가고 있었다. 그보다도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경 쓰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잃는다. TV전화로 대화할 순 있어도 만나지는 못한다. 쓸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선물로 케이크? 저 남자가 만든 것을?


  아내가 나가고서 한 시간 정도 지났을 쯤, 서재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날 리하르트 브러울러 대령이 깨웠다.

  “무슨 일인가? 브러울러.”


  내심, 일으켜 깨워진 것이 화났지만 참았다. 브러울러가 괜한 일로 깨우는 자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내객 예정은 없었을 텐데. 어째서 날 일으켰나……. 나의 납득가지 않는 표정을 본 브러울러가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급한 손님입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겨우 머리가 돌아갔다.

  “코르프트 자작인가?”

  “예.”


  일주일 정도 전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코르프트 자작과의 관계를 끊었다. 코르프트 자작이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부추겨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것, 그에 의해 부인의 동생인 뮈젤 대장의 실각, 그리고 부하인 미터마이어 소장의 살해를 꾸몄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황제에 반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어리석은 자와는 관계를 끊는다. 그런 일이었다.


  “코르프트 자작이 온 건가. 당 가문도 사이를 끊었을 터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힐데스하임 백작, 세츨러 자작,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 하우징거 남작, 그리고 카르나프 남작입니다. 코르프트 자작에 대해서 상담하고 싶다고. ……실례했습니다. 라트부르프 남작을 잊었습니다.”


  역시나. 코르프트 자작이 친한 귀족에게 울며 매달리고 있다는 건 들었지만, 그거로군. 이야기를 마무리지어 여기에 왔다는 건가……. 귀찮군……. 아내와 함께 케이크나 먹으러 갔어야 했나.

  “잊어도 상관없다. 기왕이면 두, 세 명은 더 잊었으면 좋았겠군.”


  브러울러가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무리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누굴 잊으면 좋았나 생각하는 건가. 혹은 어이없어 하는 건가……. 판단이 곤란하지만, 기분 전환은 된다.


  그렇다 해도 묘한 면면들이다. 당 가문에게 친한 자가 있는가 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친한 인간도 있다. 과연. 신 당주에겐 말하기 어렵나. 지금까지의 경위를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다. 저 애송이. 괜히 더 경원시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일이다. 낮잠을 방해하는 바보가 없다는 거니까 말이지.


  “그래서 뭘 원하고 있던가?”

  “코르프트 자작을 받아들여 달라는 거겠죠.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해 중재를 부탁하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


  한숨이 나왔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브러울러.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다.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리텐하임 후작가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손을 잡은 거다. 그 손은 정부, 군부와도 연결되어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정부, 군부는 내란을 막고 제각기 번영하기 위하여 4자 동맹을 맺었다. 이 연합에 의해 사비네는 황후가 되고 리텐하임 후작가는 제국 굴지의 권력가로서 번영할 것이 약속되어 있다.


  어째서 코르프트 자작 따위를 위해서 그 빛나는 미래를 버려야만 하는가? 코르프트 자작에게 그럴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부채질하여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해한다? 잘도 그런 어리석고 열등한 생각을 한다. 그런 바보를 구할 가치 따위 어디에 있다는 거냐.


  혹시 본가가 코르프트 자작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하게도 우리 가문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정부, 군부에서 적대행위라고 비난 할 것이다. 마주 잡은 손을 놓아버렸다고 보일 것이다. 그리고 본가가 대신 잡은 건 도움도 되지 않는 코르프트 자작의 손이다. 우리 가문의 입장은 두려울 정도로 불안정한 것이 된다.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혹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4자 연합은 그들에겐 어떤 관계도 없는 곳에서 생겨났다.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군.”

  “만나지 않겠다고 전합니까?”

  “……아니, 만나겠네. 녀석들의 무지몽매함을 깨우쳐보지. 큰 방으로 들여보내게.”

 브러울러 대령이 일례하고 방을 나간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


  큰 방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옛날엔 이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기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이 싫어졌다. 젊은 날의 잘못……, 이라고는 할 수 없군. 어째서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 기뻐한 건지……. 덕분에 자칫 잘못하면 멸망할 뻔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 같아서 지긋지긋했다. 마치 오줌을 지린 후의 팬티가 눈앞에 너풀거리는 기분이다. 더러워진 팬티는 버리면 된다. 그 남자는 이 바보 녀석들을 짓뭉개고 싶어했지만, 대찬성이다. 이렇게나 더러운 팬티가 있다니 인생의 악몽이다. 혹시 대공도 같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모두, 무슨 용무인가?”

  가능한대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싸움 걸며 나설 필요는 없다.

  “오늘은 후작 각하에게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우선 힐데스하임 백작이 말을 꺼냈다.


  “코르프트 자작에 대한 일입니다. 출입금지에 모든 관계를 끊는다니 조금 극단적이 아닙니까? 게다가 부당하기도 합니다. 자작은 후작에게 있어서도 가까운 일족일 것입니다.”

  힐데스하임 백작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끄덕이지 않는 건 나뿐이다.


  “코르프트 자작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부추겨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해하려고 했다. 그의 행동은 황제 폐하에 대한 반역행위겠지. 그러한 인물과 연결을 끊는 건 당연하다. 경들이 어째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일부러 더더욱 냉담한 어조로 답했다. 하기야 이 정도로 물러날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코르프트 자작은 동생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반역은 용서할 수 없다.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말이지.”

  힐데스하임 백작들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 떠오르는 것은 곤혹이 아니다. 확신이다. 무슨 생각인가?


  “코르프트 자작도 거기에 대해선 반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취한 행동이 반역이라 여겨지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단지 동생의 원수를 갚고 싶다, 그 마음 때문에 서두르고 말았다고 합니다.”

  힐데스하임 백작이 신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기야 이 남자의 신묘한 표정 따위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힐데스하임 백작.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들은 이야기와 조금 다르군. 자작은 자신의 행위가 반역이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들었네. 아니면 경은 공작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건가?”

  일부러 엄한 어조로 말했다. 상대가 응하면 격노한 행동을 보이고 쫓아낸다. 하지만 백작은 이쪽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았다.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작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앞에서 흥분하고 말아 어리석은 말을 해버렸다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게 사실이라면 기특한 일이긴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군.


  “코르프트 자작의 마음은 이해하기 마땅하고 무시해서 좋을 일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육친이 살해당하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저희들 귀족의 피가 평민에 의해 흐른 겁니다.”

  힐데스하임 백작을 보조하듯이 세츨러 자작이 말을 이었다. 과연. 이 녀석의 노림수는 미터마이어 소장인가.


  “코르프트 자작은 스스로 해명할 기회를 받고 싶다고 합니다.”

  이번엔 카르나프 남작이다. 들어오고 나가고, 더러운 팬티가 바쁘기도 하다.

  “해명이라고?”

  “그렇습니다. 해명할 기회만 받으면 자신에게 반역할 의지가 없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모든 건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죄라 하고 있습니다.”


  미터마이어 소장을 죽일 수 있다면,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가. 코르프트 자작은 후작부인을 철저하게 이용할 생각이다. 그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자신은 바라던 바를 이루려하고 있다. 불쌍한 여자로군. 후작부인. 그대는 지금 미터마이어 소장의 목숨 대신 지금 팔리려고 하고 있다…….


  “환상의 황후라고 불리며 조금 오만해졌던 것 같군요. 후작 각하도 불쾌하지 않으셨습니까?”

  “…….”

  묘한 눈으로 모두 날 보고 있다. ……과연, 그런 건가…….


  이 녀석은 나와 거래를 할 생각이다. 후작부인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위협은 아니지만 눈에 거슬리는 존재다. 이걸 기회로 후작부인을 처단하는 게 어떠냐고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가 미터마이어 소장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아니라 내게 온 것도 그게 이유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이미 대가 바뀌었고, 게다가 당주는 양자다. 그래서야 거래는 힘들다. 하지만 리텐하임 후작가는 다르다. 이 녀석들은 나라면 거래가 가능하다고 봤다…….


  “미터마이어 소장의 목숨을 코르프트 자작에게 넘기라는 거군. 경들은. 내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설득하라고.”

  내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반대하는 자는 없다는 거다.

  “경우에 맞지 않군.”

  일부러 냉담하게 답했다. 이 녀석들과 거래할 필요 따위 없다.


  “저 원정에서 총사령관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었다. 대공은 코르프트 대위를 사살한 미터마이어 소장을 책하지 않았다. 소장의 행위는 군칙을 바로 세운 것이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총사령관이 판단한 일을 경들이 이렇고 저렇고 말할 자격은 없어.”


  “하지만.”

  항의하려하는 힐데스하임 백작을 손으로 막았다.

  “이 건은 나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사이에 이야기하여, 공작이 맡게 되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공작에게 가도록 하게. 다행히 오늘은 저택에 있을 터다. 지금 한 이야기를 그에게 하도록 하게. 수고했군.”

  “…….”

  더러운 팬티여. 안녕이다. 그럼 한숨 더 자도록 할까?


...


제국력 486년 8월 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맛있네요. 사비네.”

  “예. 어머니.”

  리텐하임 후작부인이 딸인 사비네와 티라미스를 먹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싱글벙글하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어디에나 있는 모녀로군. 그보다도 어디에나 있는 가족인가. 거실에는 나 외에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부처, 엘리자베트, 리텐하임 후작부인 모녀가 있다. 화기애애하다.


  “그렇지요? 에리히는 케이크 만드는 게 특기에요.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파티시에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았을지도.”

  장난스럽게 웃음을 띠우며 대공부인이 말하자 모두가 웃었다. 웃을 수 없는 건 나뿐이다.


  “실패였을까? 아말리에.”

  “어떨까요. 뭐,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아들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다행이군. 에리히. 아들로 인정해주는 것 같다.”

  또 웃음소리가 올랐다. 부탁이야. 사이가 좋은 건 알겠으니까 날 가지고 노는 건 그만두라고.


  “하지만 아버님이 단 것을 좋아하시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술도 좋아하지만 단 것에도 환장하는 사람인걸. 당뇨병이 걱정이야.”

  대공이 부인의 말에 조금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공작나 대공이라고 불려도 아내에겐 약한가. 하물며 상대가 황녀니까 말이지. 고개를 들 수 없는 거겠지.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삼합의 쌀을 가지고 있다면 데릴사위로 가지 말라는 말이 있지.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곳이 공작가? 앞이 뻔하군……. 엘리자베트를 봤다. 맛있게 티라미스를 먹고 있다. 괜찮을까?


  “이 사람이 수염을 기르지 않는 이유를 아시나요?”

  “어이어이. 아말리에.”

  “괜찮잖아요. 리텐하임 후작이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이 사람이 기르지 않는 이유는…….”

  대공부인은 말을 끊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대공만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수염에 생크림이 묻으면 위엄이 사라지니까.”

  모두가 웃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웃고 말았다. 대공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엘리자베트가 “정말이에요? 아버님.”하고 묻자 대공은 애매하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모두가 또 웃었다.


  즐거운 한 때를 끝낸 건 안톤 페르너의 목소리였다.

  “공작 각하. 즐거운 때에 죄송합니다.”

  “손님인가?”

  “예.”

  “그분들인가?”

  “예.”


  대공과 서로를 돌아봤다. 리텐하임 후작에게서 바보들이 이 저택에 온다는 건 이미 들었다. 아까 전까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여성진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죄송합니다.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수고하는군. 에리히.”

  “아뇨.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내게 사양할 필요는 없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는 너다. 좋을 대로 하거라.”

  “예.”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일례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페르너를 앞에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