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6년 8월 14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어떻게 합니까?”
“……처분은 바꿀 수 없네. 불쌍하다 생각하네만…….”
장미 정원에서 빠져나온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엔 생기가 없었다. 막노동 뒤의 피로감 같은 것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숨이 흘러나오는 것을 눈치 챘다. 후작만이 아니다. 나도 함께다.
“이 무슨 마음 무거운 일인건지.”
“그렇군요.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경이 있어줘서 살았네. 혼자였다면 벌써 도망쳤을게야.”
“전 후작을 원망하고 있어요. 변변찮은 일에 휘말리게 했으니까요.”
생기 없는 목소리. 무거운 발걸음. 지금의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은 살아있는 시체겠지. 좀비나 마찬가지다.
장미 정원에서 황제, 프리드리히 4세와 만났다. 베네뮌데 후작부인 사건에 대한 보고, 그리고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이쪽의 제시 내용에 이의를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은 지쳤다.
“불쌍하구먼. 후작부인도.”
“……그렇군요…….”
“어떻게 해야 될는지.”
“처분은 바꿀 수 없습니다. 불쌍하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제자리 걸음이다. 아까부터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하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쉰다.
프리드리히 4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알게 된 일이 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황제는 그녀를 싫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생각하기에 곁에서 떨어뜨렸다. 슬픈 이야기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낳은 황자를 루드비히 황태자가 죽였다. 황제도 그걸 알고 있었다. 루드비히가 죽기 직전에 프리드리히 4세에게 참회했다고 한다. 루드비히는 죄악감 때문에 쇠약사했다고 한다. 꽤나 마음이 약했겠지. 약했기에 황태자 자리를 뺏길 것을 두려워하여 적자를 죽였다. 약했기에 그 죄를 견디지 못했다……. 황태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임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견본 같은 사람이다.
그 뒤, 후작부인은 세 번 유산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유산하도록 조작했다. 조작한 것은 아스칸 자작가……. 후작부인의 친가였다. 후작부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그 남자아이가 황제에 즉위하면 아스칸 자작가는 외척으로서 강대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겠지. 야심 있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아스칸 자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아스칸 자작가는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프리드리히 4세의 후궁으로 들어가기 전까진, 그 총애를 얻기 전까진 귀족이라고 불릴 뿐인 가난한 집안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유복한 생활뿐이었으며, 권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칸 자작가는 정치적인 야심 따위 전혀 없는 집안이었다.
후작부인이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얻게 되어 아스칸 자작가의 가운이 상승했다. 그녀는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 황금알을 낳는 귀중한 닭이었다. 그녀가 황금알을 낳을 때마다 자작가는 장원이나 이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난함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졸부라고 경멸을 받는다 할지라도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아스칸 자작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을 것이다.
후작부인이 처음으로 회임했을 때, 아스칸 자작가는 기뻐했겠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그녀가 황후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흘렀을 때엔 광희했을지도 모른다. 외척이 되면 강대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아스칸 자작가는 황후를 배출한 명가로서 후세까지 전해질 것이라고, 졸부라고 경멸받을 일도 없어질 거라고……. 그들에게 있어서 눈부실 정도의 미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것에 모든 것이 일변했다. 아스칸 자작가는 겨우 권력의 무시무시함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적대할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했을 것이 틀림없다. 루드비히 황태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어느 곳도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강대한 존재였다.
아스칸 자작가는 두려움에 떨었다. 본래 정치적인 야심 따위 전무했던 집안이다. 외척이 된다는 꿈 따위 간단하게 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 이대로면 충분하다. 하찮은 야심 때문에 지금의 번영을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불행했던 것은 그런 그들의 결의와 관계없는 장소에서 사태가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프리드리히 4세가 후작부인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소란 피울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가정에선 아이가 생기지 않는 쪽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선 후작부인이 재차 회임했을 때엔 악몽이라도 꾸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을 망하게 할 것이냐며 운명을 저주하고, 그리고 후작부인을 증오했을 것이 틀림없다. 자작가에게 있어서 황금알을 낳는 닭은, 자작가를 망하게 만들 맹독을 품은 독사로 변했다.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 후작부인은 단순한 총희였으면 충분했다. 어머니 따위 될 필요는 없었다. 적당하게 총애를 얻고, 때때로 아스칸 자작가에 은혜를 베풀어주는 존재면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스칸 자작가는 후작부인이 어머니가 되는 일을 막았다. 후작부인은 세 번에 걸쳐 유산했다. 환상의 황후는 환상인 채로 끝났다.
아스칸 자작가에게 있어서도 괴로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일이 겉으로 드러나면 당연하게도 아스칸 자작가는 비난을 받게 된다. 아마도 전원 사형에 가명 절단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스칸 자작가는 권력 투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과 범죄를 숨길 수 있을 가능성을 천칭에 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결단했다. 주산나를 유산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4세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멀리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아마도 프리드리히 4세는 유산이 계속된 일에 의문을 품었겠지. 그리고 아스칸 자작가가 후작부인의 회임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첫 번째 아이가 루드비히 황태자에게 죽은 일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결코 범용하지 않다.
모든 걸 알아낸 황제는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멀리했다. 애정이 식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이 후작부인을 계속 사랑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이상 유산을 계속하면 그녀의 마음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누가 유산하게 만든 건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궁중은 지옥이었겠지.” 황제가 한 말이다.
황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멀리한 이유는 또 하나 있겠지. 지금까지는 유산으로 끝났다. 하지만 다음엔 유산이 아니라 부인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닐까. 황제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그녀의 정신과 생명의 안전을 꾀했다. 이 이상 황제는 그녀를 가까이해선 안 된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대신하여 황제의 총애를 받은 것이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었다. 그녀의 육친은 주정뱅이 아버지와 5세 연하의 동생뿐이다. 그녀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빈곤귀족도 없을뿐더러 권력을 얻고자 하는 야심가 일족도 없다. 그래도 황제는 그녀를 사랑하긴 해도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싫은 일이지만, 해야만 하겠지.”
“동감입니다. 슬슬 가도록 할까요.”
“그러세.”
말과는 반대로 한숨이 나왔다. 후작도 한숨을 내쉰다. 두 사람 모두 무거운 발걸음으로 베네뮌데 후작부인 저택으로 향했다. 후작부인 저택은 신무우궁의 일각에 있다. 여기서 멀지는 않다. 자동차를 쓰면 바로 도착하겠지.
8월 14일 오후. 베네뮌데 후작부인 저택을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이 방문했다. 현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돈이 많이 들었겠지. 황제의 총희 정도 되면 저택도 대단하다. 방문을 고하자 살롱으로 안내 받았다. 옛날, 그녀가 황제의 총희로서 총애를 독점했을 때엔 이 저택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것이다. 모두 제국의 중요인물이었겠지. 지금은 누구 한 사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이 여기에 왔다.
후작부인이 우리들을 살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인이라고 해도 좋겠지. 흑발, 푸른 눈동자, 그리고 붉은 입술. 알맞게 조화되어 있다. 하기야 조금 표정이 드센 느낌이 든다. 선입관 때문일까……. 후작부인이 생긋 미소지었다.
“어서오세요. 국무상서. 오랜만이네요. 데려오신 분은 누구신가요? 보지 못한 분이신 것 같은데.”
미소는 띄우고 있지만 말에는 명백하게 독기가 서려있다. 나를 모른다니 그럴 리가 없다. 묘욕이라도 주려는 생각이겠지. 그녀에게 있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증오해야 마땅할 존재다. 그녀의 유산 원인은 아스칸 자작가지만, 그들을 그렇게 결단하도록 만든 건 루드비히 황태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그녀의 독을 눈치 챘겠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후작부인은 모르셨습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세대를 바꿨습니다. 그는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당대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색다르게도 평민을 양자로 받았다든가……. 그 분이 그런가요?”
조소하는 듯한 웃음이다.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이군. 놀리면서 울분을 풀고 싶은 거겠지. 이번 건으로 내가 라인하르트 편에 섰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비호자인 것이다. 후작부인에게 있어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상대겠지.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입니다.”
“모쪼록 힘내세요. 하지만 비천한 평민에게 귀족의 임무가 가능할까요?”
농밀한 독을 품은 웃음. 지긋지긋하군. 여자도 남자에게 10년 이상 사랑받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가……. 오한이 일었다. 프리드리히 4세가 취한 행동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독을 쐬는 이쪽 입장이 되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까 전까지 있었던 그녀에 대한 연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기까지 해두게. 후작부인. 공작은 폐하가 엘리자베트님의 사윗감으로 인정한 분일세.”
“…….”
리히텐라데 후작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오늘 여기에 온 건, 이번 후작부인이 코르프트 자작과 함께 일으킨 소동에 대해서 처분을 고하기 위해서입니다. 폐하는 다음과 같은 처분을 결정했습니다.”
처분이라는 말에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불문에 붙여지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처분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국무상서. 저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보기 흉하네. 후작부인. 이미 코르프트 자작은 모든 걸 자백했네. 부인이 코르프트 자작과 함께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내쫓으려 책모한 것, 뮈젤 대장을 실각하게 만들어 미터마이어 소장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것은 알고 있네.”
“모함입니다! 목숨이 아까워 제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겁니다!”
“그레이저 의사의 증언도 있습니다. 그 전부가 조서에 써있을 겁니다. 발버둥은 그만두시지요.”
“…….”
후작부인이 번뜩거리는 눈으로 리히텐라데 후작을 노려보고 있다. 벽옥 같은 눈동자가 이렇게 저주를 품는 일도 좀처럼 없겠지. 오한이 들 것 같은 눈이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질리고 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 이하의 다섯 장원을 반상한다. 메들러 파세쥬, 아룬스베르크, 알트너, 할부르크, 원츠베크.”
“…….”
다섯 장원을 뺏겼지만 아직 후작부인에겐 비슷한 정도의 장원이 남았다. 황제가 총희에게 준 장원인 것이다. 모두 윤택함에 정평이 있는 장원이다. 경제적으로 곤란해지는 일은 없겠지. 웃으며 허락하마. 그 정도의 계산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정부의 허가 없이 외출을 금지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의 면회도 마찬가지입니다.”
“…….”
정부의 허가가 있으면 문제없다. 다시 말해 정부의 허가가 귀찮은, 혹은 후작부인과의 접촉을 정부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배제할 뿐이다. 이것도 특별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늘 이후로 후작부인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질 테니까. 오히려 싫은 손님이 오면 내쫓을 구실이 생기겠지. “정부에서 사람과 만나면 안 된다고 들어서요. 호호호.”
“셋, 현재 이 저택에 있는 하인은 모두 해고합니다. 이 이후엔 정부가 파견한 하인이 후작부인을 모십니다.”
속령이 줄어든 것이다. 정부가 하인을 파견해준다면 그만큼 경비가 줄어든다. 나라면 대환영이다. 뭐니뭐니해도 인건비만큼 비싼 건 없다. 덧붙여 하인의 식비는 정부가 내라고 정도는 말해라. 리히텐라데 후작도 싫다곤 할 수 없겠지. 뭐하면 내가 설득해주마.
……얼굴색이 변했다. 설마하고 생각하지만, 처분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폐하의 말씀이 그러하시다면, 어떻게 소첩이 거기에 거역하겠습니까. 하루라도 폐하에 대한 충심을 잃은 적이 없는 소첩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폐하는 스스로 그러한 지시를 소첩에게 말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소첩은 그것이 서운해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폐하도 너무나 무정하십니다.”
지긋지긋하다. 거역할 수 없다? 어째서 스스로 말하지 않는 것인가? 만나면 반드시 자신은 무죄라고 울면서 용서를 구할 것이 당연하잖은가. 그거야말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 눈앞의 여자가 그 증거를 얻을 찬스를 놓칠 리가 없다…….
설마, 그것이 노림수인가? 그래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프리드리히 4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를 여기에 부르기 위해서? 그렇다면 너무나도 바보 같다. 이 여자가 불쌍하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동정할 순 없다. 이제 연기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폐하는 다망하십니다.”
“다망?”
“그렇습니다.”
내 말에 후작부인이 조소를 띄웠다.
“아아, 그렇게나 다망하신 겁니까? 주연 때문에? 사냥 때문에? 도박 때문에? 아니, 무엇보다도 그 여자 곁으로 가시느라 다망하시겠죠.”
“그 말대로입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뭐니 뭐니해도 마음 상냥하고 아름다운 분입니다. 폐하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책망하는 눈으로 봤다. 괜한 것을, 하고 생각했겠지. 그 괜한 일 때문에 후작부인의 얼굴은 명백하게 변모했다. 증오, 광기…….
“그 여자……, 그 여자가 내숭이나 떨며……. 폐하의 마음을 빼앗고, 그리고 소첩에게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아아, 그 여자, 그 여자의 뻔뻔한 얼굴을 찢어서 물어뜯어버리고 싶어.”
하늘을 노려보며 후작부인이 중얼거렸다. 사람이 가진 부의 감정이 형태를 가진다면, 지금의 후작부인이 되겠지. 이걸 사람으로 돌리는 건 편한 일이 아니겠군.
“쓸모없습니다.”
후작부인이 날 봤다. 무시무시한 광기의 눈…….
“백작부인을 죽여도 폐하가 후작부인의 곁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는…….”
“왜냐하면, 폐하가 후작부인을 멀리한 건 당신이 싫어져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폐하는 당신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조금 눈이 누그러졌나.
“당신이 낳은 아이를 죽인 건, 선대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아닙니다. 루드비히 황태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세 번 유산한 것은 당신의 친정, 아스칸 자작가가 꾸민 일입니다. 당신은 그걸 알고 계셨겠죠. 폐하도 알고 계십니다.”
“…….”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녀는 황제가 모르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하다. 혹시 황제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그녀가 알았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 황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는 당신을 이 이상 궁중에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도 당신이 상처 입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뭐라 해도 원인을 말하자면 폐하가 후작부인을 사랑한 일이 발단이었으니…….”
“……소첩은 폐하의 곁에, 단지 그것만을…….”
리히텐라데 후작을 봤다. 고개를 젓고 있다. 불쌍한 여자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평범하게 태어났다면 조금 질투심 강한 좋은 아내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황제였다. 총희에는 항상 정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은 잔혹한 현실이며, 보기 좋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이 여자의 불행은 정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유감입니다만, 폐하는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혹여 지금 후작부인이 궁중으로 돌아간다면, 아스칸 자작가는 반드시 당신을 죽이겠지요.”
“…….”
리히텐라데 후작은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후작도 같은 의견이겠지.
“제국의 후계자는 정해졌습니다. 체제도 정해졌습니다. 차기 황제는 엘윈 요제프 전하, 황후는 사비네 폰 리텐하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군부, 귀족의 중진으로서, 그리고 황제에 가장 가까운 일족으로서 황제를 돕는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정부수반으로서 황제를 보필한다……. 아시겠습니까? 정부, 군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이 4자가 협력체제를 결성한 것입니다. 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들어간 건 그런 의미입니다.”
“…….”
“아스칸 자작도 당연히 그걸 알고 있죠. 여기서 당신이 들어가 황자를 낳는다면 어떻게 되리라 생각합니까? 당신이 황후가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처럼 정리된 체제에 틈이 벌어지고 맙니다. 그런 걸 4자가 용서할 리가 없죠. 아스칸 자작가는 이번이야말로 뭉개진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선 후작부인, 당신을 죽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방금 전의 광기가 사라지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선 잔혹한 현실이겠지. 하지만 현실을 보지 않는 한 그녀는 자신이 위험하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다.
“폐하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사랑한 것은 그녀에겐 아스칸 자작가와 같은 친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폐하는 그녀 사이에서 아이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후작부인. 당신처럼 상처 입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작부인이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그걸 보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조용하게 지내십시오. 여기라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폐하의 의지입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저택을 나오니 자연스럽게 심호흡하고 있었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마찬가지로 심호흡을 하고 있다. 서로 돌아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끝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잘 했네. 경에게 동행을 부탁한 건 정답이었군.”
“이제 충분합니다. 지긋지긋해요. 돌아가죠.”
자동차에 타고 자리에 몸을 깊숙이 앉혔다. 지친 몸에 부드러운 자리가 편안했다…….
...
제국력 486년 8월 18일. 오딘.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죽었다. 죽은 건 2일 전, 8월 16일이었다. 정오가 지나도 후작부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하녀가 침실에 들어가자 후작부인이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단, 드레스를 입고 호흡을 하지 않았다. 지행성 독을 사용한 자살이었다.
유서가 있었다. 프리드리히 4세에게 보내는 유서였다. 유서에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봄날 양지처럼 잊혀질 바에야 엄동설한의 추위처럼 기억에 남고 싶다고 써있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황제에게 그 일을 보고하자 프리드리히 4세는 “그런가.”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후작부인의 마음도 모를뿐더러, 황제의 마음도 알 수 없다. 찝찝한 이야기다.
장례식은 극히 간소하게 치러졌다. 그녀가 정부의 감시 하에 있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참례자는 적었다. 아스칸 자작,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일가, 리텐하임 후작 일가, 리히텐라데 후작, 라인하르트…….
묘한 이야기다. 아스칸 자작을 빼면 황제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대공부인과 리텐하임 후작부인도 그녀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녀에게 죄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루드비히 황태자가 그녀의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 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스칸 자작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이 뻔하게 드러났다. 그에게 있어서 후작부인은 무거운 짐에 불과했겠지. 소문에 따르면 후작부인의 자살을 알았을 때, 자작은 “이걸로 주박에서 해방된다.”라고 중얼거리고 축배를 올렸다고 한다. 마음은 알겠지만 후작부인이 없었다면 아스칸 자작가는 그저 빈곤귀족이었을 것이다. 죽은 자를 슬퍼할 정도의 예의를 보여도 벌은 받지 않겠지. 제대로 된 놈이 아니다.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라인하르트를 빼면 모두 적극적으로는 그녀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죽었다. 대체 우리들은 뭘 한 건가……. 모두가 침묵한 것도 그것이 이유겠지. 대체 우리들은 뭘 한 건가…….
앞으로도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어쩔도리 없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 한 권력의 향기와 썩은 냄새를 계속 내게 되겠지. 그리고 이런 일에선 평생 도망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 > 아름다운 꿈(연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15 화. 준동 (0) | 2015.02.13 |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14 화. 의도 (0) | 2015.02.13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12 화. 베네뮌데 후작부인(6) (0) | 2015.02.13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11 화. 베네뮌데 후작부인(5) (0) | 2015.02.13 |
새로운 조류 ~아름다운 꿈~ 제 10 화. 베네뮌데 후작부인(4) (0) | 2015.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