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6년 8월 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응접실로 들어가니 몇 명의 남자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결코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모두 여섯 명. 이상하군. 분명 리텐하임 후작 저택에 들어온 건 일곱 명이었을 터다. 한 명 부족해.


  힐데스하임 백작, 헬더 자작, 세츨러 자작, 라트부르흐 남작, 하우징거 남작, 카르나프 남작……. 과연. 하일만 자작이 사라졌다. 나와는 만나기 괴롭다는 건가. 리메스 남작가에 대한 일이 있으니까 말이지. 리텐하임 후작을 통해서 날 설득하려고 한 건 그 이유도 있었나…….


  내가 자리에 앉자 바로 뒤에 페르너와 안스바하 준장이 섰다. 슈트라이트는 입구 근처에 서 있다.

  “기다리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리텐하임 후작부인, 후작가의 프로이라인이 놀러오셔서. 그 상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섯 명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의 친밀함을 재확인했겠지. 생각해보면 이 녀석들에게 있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가 친한 건 좋지 않은 사태인 거다. 적대하여 반발하고 있기에 자신들의 가치가 오른다. 아군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하고 은혜를 입히는 것이 가능하다…….


  무슨 용무냐고 묻지 않는다. 저쪽이 먼저 뭐라고 말하기 전까지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어색하게 여섯 명이 앉아있다. 그 안에는 명백히 초조해하는 녀석도 있다. 벼락출세한 신 공작은 자신들의 기분이라도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유감이군. 난 네 녀석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다. 멍청하긴.


  헛기침을 하고 힐데스하임 백작이 입을 열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코르프트 자작에 대한 일입니다만…….”

  “그 모반자가 왜요?”

  일부러 찌르듯이 말하자 힐데스하임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섯 명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이 녀석들, 대체 여기에 뭐하러 왔나? 아까 전부터 서로를 돌아보고 있을 뿐인데.

  “아, 그. 대공 각하는…….”

  “대공은 리텐하임 후작부인과 차를 즐기고 계십니다. 힐데스하임 백작. 그게 무슨 문제라도?”


  또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과연. 내가 아니라 대공과 말하고 싶다는 건가. 녀석들에게 있어서 난 말하기 힘든 존재인 거다. 귀족으로서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이해를 구할 수 없다. 극히 이단적인 존재로 보이겠지. 교섭 상대로는 최악이다.


  “코르프트 자작의 건에 관해선 제가 모든 걸 맡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기 전에도 아버님께선 당신에게 사양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힐데스하임 백작. 저로는 불만입니까?”

  “…….”


  침묵이냐. 힐데스하임. 다른 다섯 명에게 차례대로 시선을 향하지만, 모두 시선을 피했다. 너희들 무례하지 않아? 이런 녀석들을 위해서 나는 즐거운 티타임을 포기한 건가? 점점 머리에 피가 오르기 시작했다. 침착해라. 팔을 두드리며 진정하는 거다…….


...


제국력 486년 8월 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안톤 페르너.


  위험하다. 에리히가 팔 툭툭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저걸로 분노를 참고 있다고 하지만, 저게 나오면 세 번 중 한 번은 폭발한다. 전혀 참고 있는 게 아니다. 저건 점화 오분 전의 신호라고 보는 편이 좋다. ……이런, 점점 팔을 두드리는 속도가 느려진다. 위험한 징후다.


  응접실은 조용하게 변해 에리히가 팔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린다. 테이블 위에는 단 것을 뒀지만 에리히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효과 없나……. 새로운 수를 생각해둬야겠군. 그렇다 해도 이 녀석들 뭐하러 온 거냐? 이대로 침묵하고 있을 생각인가?


  평소엔 에리히를 벼락출세한 평민이라든가, 발렌슈타인이라든가 숨어서 말하는 주제에 본인 앞에선 이건가……. 뭐, 여러 가지 있으니까 말이지. 리텐하임 후작 저택에서의 일이라든가, 흑진주 홀에서의 일이라든가……. 상대가 누구든지 에리히는 용서가 없다. 그런 면을 보면 확실히 무섭다는 건 안다. 알다 못해 너무나도 믿음직하다. 엘리자베트님의 신랑으로 에리히를 고른 건 정답이다.


  이상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건가. 힐데스하임 백작이 우물쭈물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코르프트 자작에 대한 일입니다만. 출입을 금지하고 일절의 관계를 끊는다는 건 조금 극단적이지 않습니까? 코르프트 자작가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게 있어서도 가까운 일족일 겁니다. 공작의 일족으로서…….”


  마지막까지 백작은 이야기할 수 없었다.

  “힐데스하임 백작.”

  “예.”

  에리히가 팔을 두드리는 걸 멈췄다.


  “코르프트 자작은 반역이라고 봐도 좋을 행동을 한 겁니다. 그 건을 백작은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차가운 목소리다. 그리고 엄격한 시선이다. 힐데스하임 백작은 거기에 참지 못하겠단 듯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코르프트 자작이 아니라 코르프트 자작가인가…….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개인이 아니라 가문의 문제로 하여 양자인 에리히가 멋대로 정해도 좋은 건가하고 묻고 싶었던 거겠지만……. 고식적이군. 말이 되지 않는다.


  “코, 코르프트 자작은 본심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무심코 흥분하여 어리석은 걸 말하고 말았다고.”

  이번엔 하우징거 남작이다. 어리석은 녀석. 조금 더 생각하고 나서 말을 해라.


  “저는 그레이저 의사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르프트 자작의 행동은 변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비천한 의사가 하는 말 따위.”

  “말을 삼가세요! 하우징거 남작. 그레이저 의사는 궁정의입니다. 그걸 비천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엄격한 갈책에 이번엔 하우징거 남작이 고개를 떨궜다. 안 되겠군. 말이 통하질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돌아가라.


  “아무래도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상황을 모르는 것 같군요.”

  “…….”

  에리히의 말에 모두가 서로를 돌아봤다. 그들의 표정엔 명백한 불안이 있었다.


  “코르프트 자작은 반역자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 그 때문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는 관계를 끊었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코르프트 자작을 고발하면 코르프트 자작은 반역자로서 처단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레이저 의사와 제가 증인입니다. 충분할 정도겠죠.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코르프트 자작에 대한 최소한의 온정입니다.”


  에리히의 말에 모두가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에리히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하지 못한 거겠지. 조금은 머리를 쓰라고.

  “본가가 정부에 고발하기 전에 코르프트 자작은 자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이야기하고 자비를 구해야 했죠. 그렇게 했으면 정상참작할 여지도 있었을 텐데…….”

  “…….”


  에리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불쌍하단 표정으로 여섯 사람을 봤다.

  “코르프트 자작은 어리석게도 도당을 꾸며 반란을 진행하려했다. 일단 자신에 대한 혐의를 흐리기 위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과의 관계를 본래대로 돌리려고 했다.”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여섯 사람이 에리히를 보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건 오해입니다. 저희들은 코르프트 자작의 반역에 가담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여…….”

  황급하게 힐데스하임 백작이 변명했다. 다른 다섯 사람도 입을 모아 힐데스하임 백작을 따라 변명한다.


  “유감이군요.”

  “…….”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당신들은 코르프트 자작과 한패입니다. 반역자로군요.”

  “그런.”

  한심한 소리를 내지 말라고. 헬더 자작.


  “아까 전에 말했습니다만. 정부도 이미 코르프트 자작에 대한 일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그의, 그리고 당신들의 행동이 정부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

  “안스바하 준장.”

  “예.”

  “경이 보기에 이 여섯 사람은 어떻게 보입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안스바하 준장이 한 순간만 여섯 사람을 봤다. 모두 바지끄댕이라도 잡는 듯한 표정이다.


  “반역자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만?”

  “반역자라 보여도 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능숙하네. 안스바하 준장. 한 번 희망을 주고서 다음에 절망을 주는가……. 과연 근본이 나쁘다. 그 부하에 그 주군인가.


  “당신들이 살아날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코르프트 자작을 설득하여 자수하게 하는 겁니다. 그건 코르프트 자작을 구하는 것이기도 하겠죠. 서둘러야겠군요.”

  “…….”

  바보같은 여섯 명이 아연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유감이군. 어차피 너희들은 에리히의 적이 아니다. 얌전히 그 바보를 자수하도록 설득해라. 그게 너희들을 위해서다. 한숨이 나왔다…….


...


제국력 486년 8월 12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수고가 많구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국무상서 집무실을 방문하니 리히텐라데 후작이 웃음을 띠며 마중했다. 소파에 앉기를 권하고 자신이 직접 음료수를 준비해줬다. 홍차다. 코코아가 아닌 건 유감이지만, 커피에 비하면 훨씬 낫다. 하지만 이 노인이 웃음을 띠고 있다니 불길하군.


  “설마 저 녀석들만이 아니라 저까지 조서를 써야 할 줄이야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게. 리텐하임 후작도 조사에 응한 거다. 하기야 후작은 조서를 쓰는 건 두 번째지만.”

  그렇게 말하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소리 높여 웃었다. 나도 웃지 않을 수 없다. 그 조서엔 나도 관여되어 있다.


  8월 2일에 행해진 나와 힐데스하임 백작들의 회합 후에 사태는 급격히 움직였다. 힐데스하임 백작들은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이해했겠지. 그 뒤의 움직임은 총알 같았다. 싫어하는 코르프트 자작을 설득하여 자수하게 만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힐데스하임 백작들은 블라스터를 코르프트 자작의 머리에 겨누고 자수를 강요했다고 한다. 코르프트 자작은 울면서 자수하겠다 말했다고 들었다. 꽤나 과격하군.


  코르프트 자작의 자수를 받은 정부는 신중하게 조사를 시작했다. 그레이저 의사, 저 바보 귀족들, 리텐하임 후작, 그리고 나……. 단,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조사를 받지 않았다.


  정부는 이 사건의 원흉이 그녀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녀의 불만이 이 사건을 일으켰다. 하지만 후작부인은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여성이며, 그녀의 불만이 황제의 총애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다. 부주의하게 그녀를 조사하면 황제의 위신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거기서 주변을 조사할 것을 우선하여 증거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겐 그 증거를 찔러대며 유무를 묻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현재 그녀의 행동은 제한되고 있다. 저택 주변을 경비라는 명목으로 경찰이 둘러싸고 있어 출입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고, 후작부인 본인의 외출도 허락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근신, 아니 감금이나 마찬가지겠지.


  “조사는 끝입니까?”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슬슬 끝이지. 다들 조사에 극히 협력적이라서 말이야. 누군가가 엄청 협박한 것 같다.”

  이상한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후작의 시선을 무시하고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문제는 이 다음이군요. 처분을 어떻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왼손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음. 그게 말일세. 폐하의 마음을 생각하면 사형이라는 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네.”

  뭐, 그렇겠지. 지금은 어쨌든 일찍이 아이를 낳게 할 정도로 사랑한 여성인 것이다. 사형이라니 잠자리가 좋지 않겠지. 하물며 원인이 황제가 그녀를 버린 데에 있는 거다.


  “그럼 작위, 영지의 박탈?”

  리히텐라데 후작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것도 무리다. 오래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죽겠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 좋을 게야.”

  “그렇군요.”


  궁중에서밖에 살 수 없는가……. 귀족은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빈약하고 취약하다. 귀족이 아니게 된 순간 약자로 전락한다. 그들이 귀족인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거기에 집착하는 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군…….


  “뭐, 증거를 내밀며 다음엔 용서하지 않겠다고 침을 박아둘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영지 중 일부를 진상하게 만든다. 금후, 후작부인은 24시간 감시하에 두게 되겠지. 폐하에게도 이해를 구하겠네.”

  뭐, 대충 그렇게 되겠지.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은 처분이군.

  “그럼 코르프트 자작도 사형은 없습니까?”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부인을 사형할 수 없는 이상, 자작도 사형은 할 수 없네. 본래라면 사형이지만. 본인이 반성하고 자수했다는 점. 조사에 협력했다는 점으로 죄를 감면한다. 뭐, 근신 외에 영지의 일부를 진상하게 한다. 그 정도가 적당한 선이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코르프트 자작가와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과연. 그게 좋겠지. 어떤 처벌보다도 엄한 느낌이 들 터다. 경, 좋은 생각을 했구먼.”

  유감이군. 노인. 저 바보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게 진짜 이유다.


  “폐하께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들 사이에서 이번 일을 확인해두고 싶네. 오늘 밤, 경의 저택에서 회합을 가지지. 리텐하임 후작에게도 전해주게나.”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내가 말을 흐리자 리히텐라데 후작은 의심쩍은 표정을 보였다.


  “뮈젤 대장은 어떻게 합니까?”

  “결과만 전하면 되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얼굴을 찡그렸다. 역시 이 노인, 라인하르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그를 아군으로 삼고 싶습니다만.”

  “흠.”

  “다행히 명목은 있습니다. 백작부인에 대한 질투가 원인이니까요.”

  “과연……. 좋겠지. 그러게나.”

  그렇게 말하고 리히텐라데 후작은 묘한 눈으로 날 봤다.


  “경, 대공과 닮았군.”

  “예?”

  “적이 될 인간을 아군으로 삼는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꽤나 강하군. 적으로 돌리면 만만찮겠네.”

  후작이 웃었다. 과연. 그런 의미인가. 한 순간 무슨 일인가 전혀 알지 못했다.


  “대공이 감탄하고 있더군. 저 시끄러운 녀석들을 훌륭하게 닥치도록 만들었다고……. 꽤나 좋은 아들노릇 아닌가? 발렌슈타인.”

  괜한 참견이다. 좋아서 양자가 된 게 아니라고. 날 양자로 한 건 너희들이잖아? 이 음모 할아범.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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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8월 2일. 오딘, 리텐하임 후작 저택. 빌헬름 폰 리텐하임 3세.


  아내와 딸이 몸단장을 하고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건가?”

  “예. 언니에게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말인가.”

  “그래요. 언니의 자랑스런 아들을 보러 가는 거예요. 그렇지?”


  아내와 딸에게 동의를 구하자 사비네가 즐겁게 끄덕였다. 헌데, 사비네는 외출하는 것이 기쁜 건가? 아니면 저 남자와 만나러 가는 것이 기쁜 건가? 지나친 생각인가……. 사비네는 아직 열두 살이다.


  “자랑스런 아들인가.”

  “귀엽다면서요. 커피를 싫어하고 코코아를 아주 좋아한다며. 맛있게도 마신다고 언니가 웃었어요. 언니는 새로운 아들에게 정신이 없어요. 케이크 만드는 것이 특기라서 무척이나 맛있다면서요. 오늘은 그걸 대접 받으러 가는 거예요.”


  맘 편한 일이다. 남자 세계의 갈등 따위 여자들에게 있어선 어떤 의미도 없다. 맛있는 케이크를 대접 받는다? 저 남자가 케이크를 만든다? 지금 이 오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아니, 알고 있어도 가는 거겠지. 여자에게 있어서 맛있는 케이크는 마약과도 같다. 알고 있지만 막을 수 없다. 마치 별세계 이야기다.


  “요즘 신경 쓰지 않고 언니에게 갈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워요. 어째서 좀 더 빨리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

  “선물 가지고 올게요. 맛있는 케이크를 말이죠.”

  근심걱정없이 그렇게 말하고 아내는 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요즘엔 신경 쓰지 않고 언니에게 갈 수 있는가……. 예전, 대공과 기싸움을 하고 있을 땐 아내도 대공 부인과 만나는 일을 삼가고 있었다. 그보다도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경 쓰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잃는다. TV전화로 대화할 순 있어도 만나지는 못한다. 쓸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선물로 케이크? 저 남자가 만든 것을?


  아내가 나가고서 한 시간 정도 지났을 쯤, 서재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날 리하르트 브러울러 대령이 깨웠다.

  “무슨 일인가? 브러울러.”


  내심, 일으켜 깨워진 것이 화났지만 참았다. 브러울러가 괜한 일로 깨우는 자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내객 예정은 없었을 텐데. 어째서 날 일으켰나……. 나의 납득가지 않는 표정을 본 브러울러가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급한 손님입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겨우 머리가 돌아갔다.

  “코르프트 자작인가?”

  “예.”


  일주일 정도 전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코르프트 자작과의 관계를 끊었다. 코르프트 자작이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부추겨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것, 그에 의해 부인의 동생인 뮈젤 대장의 실각, 그리고 부하인 미터마이어 소장의 살해를 꾸몄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황제에 반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어리석은 자와는 관계를 끊는다. 그런 일이었다.


  “코르프트 자작이 온 건가. 당 가문도 사이를 끊었을 터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힐데스하임 백작, 세츨러 자작,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 하우징거 남작, 그리고 카르나프 남작입니다. 코르프트 자작에 대해서 상담하고 싶다고. ……실례했습니다. 라트부르프 남작을 잊었습니다.”


  역시나. 코르프트 자작이 친한 귀족에게 울며 매달리고 있다는 건 들었지만, 그거로군. 이야기를 마무리지어 여기에 왔다는 건가……. 귀찮군……. 아내와 함께 케이크나 먹으러 갔어야 했나.

  “잊어도 상관없다. 기왕이면 두, 세 명은 더 잊었으면 좋았겠군.”


  브러울러가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무리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누굴 잊으면 좋았나 생각하는 건가. 혹은 어이없어 하는 건가……. 판단이 곤란하지만, 기분 전환은 된다.


  그렇다 해도 묘한 면면들이다. 당 가문에게 친한 자가 있는가 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친한 인간도 있다. 과연. 신 당주에겐 말하기 어렵나. 지금까지의 경위를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다. 저 애송이. 괜히 더 경원시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일이다. 낮잠을 방해하는 바보가 없다는 거니까 말이지.


  “그래서 뭘 원하고 있던가?”

  “코르프트 자작을 받아들여 달라는 거겠죠.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해 중재를 부탁하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


  한숨이 나왔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브러울러.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다.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리텐하임 후작가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손을 잡은 거다. 그 손은 정부, 군부와도 연결되어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정부, 군부는 내란을 막고 제각기 번영하기 위하여 4자 동맹을 맺었다. 이 연합에 의해 사비네는 황후가 되고 리텐하임 후작가는 제국 굴지의 권력가로서 번영할 것이 약속되어 있다.


  어째서 코르프트 자작 따위를 위해서 그 빛나는 미래를 버려야만 하는가? 코르프트 자작에게 그럴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부채질하여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해한다? 잘도 그런 어리석고 열등한 생각을 한다. 그런 바보를 구할 가치 따위 어디에 있다는 거냐.


  혹시 본가가 코르프트 자작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하게도 우리 가문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정부, 군부에서 적대행위라고 비난 할 것이다. 마주 잡은 손을 놓아버렸다고 보일 것이다. 그리고 본가가 대신 잡은 건 도움도 되지 않는 코르프트 자작의 손이다. 우리 가문의 입장은 두려울 정도로 불안정한 것이 된다.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혹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4자 연합은 그들에겐 어떤 관계도 없는 곳에서 생겨났다.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군.”

  “만나지 않겠다고 전합니까?”

  “……아니, 만나겠네. 녀석들의 무지몽매함을 깨우쳐보지. 큰 방으로 들여보내게.”

 브러울러 대령이 일례하고 방을 나간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


  큰 방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옛날엔 이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기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이 싫어졌다. 젊은 날의 잘못……, 이라고는 할 수 없군. 어째서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 기뻐한 건지……. 덕분에 자칫 잘못하면 멸망할 뻔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 같아서 지긋지긋했다. 마치 오줌을 지린 후의 팬티가 눈앞에 너풀거리는 기분이다. 더러워진 팬티는 버리면 된다. 그 남자는 이 바보 녀석들을 짓뭉개고 싶어했지만, 대찬성이다. 이렇게나 더러운 팬티가 있다니 인생의 악몽이다. 혹시 대공도 같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모두, 무슨 용무인가?”

  가능한대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싸움 걸며 나설 필요는 없다.

  “오늘은 후작 각하에게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우선 힐데스하임 백작이 말을 꺼냈다.


  “코르프트 자작에 대한 일입니다. 출입금지에 모든 관계를 끊는다니 조금 극단적이 아닙니까? 게다가 부당하기도 합니다. 자작은 후작에게 있어서도 가까운 일족일 것입니다.”

  힐데스하임 백작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끄덕이지 않는 건 나뿐이다.


  “코르프트 자작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부추겨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해하려고 했다. 그의 행동은 황제 폐하에 대한 반역행위겠지. 그러한 인물과 연결을 끊는 건 당연하다. 경들이 어째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일부러 더더욱 냉담한 어조로 답했다. 하기야 이 정도로 물러날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코르프트 자작은 동생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반역은 용서할 수 없다.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말이지.”

  힐데스하임 백작들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 떠오르는 것은 곤혹이 아니다. 확신이다. 무슨 생각인가?


  “코르프트 자작도 거기에 대해선 반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취한 행동이 반역이라 여겨지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단지 동생의 원수를 갚고 싶다, 그 마음 때문에 서두르고 말았다고 합니다.”

  힐데스하임 백작이 신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기야 이 남자의 신묘한 표정 따위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힐데스하임 백작.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들은 이야기와 조금 다르군. 자작은 자신의 행위가 반역이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들었네. 아니면 경은 공작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건가?”

  일부러 엄한 어조로 말했다. 상대가 응하면 격노한 행동을 보이고 쫓아낸다. 하지만 백작은 이쪽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았다.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작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앞에서 흥분하고 말아 어리석은 말을 해버렸다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게 사실이라면 기특한 일이긴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군.


  “코르프트 자작의 마음은 이해하기 마땅하고 무시해서 좋을 일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육친이 살해당하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저희들 귀족의 피가 평민에 의해 흐른 겁니다.”

  힐데스하임 백작을 보조하듯이 세츨러 자작이 말을 이었다. 과연. 이 녀석의 노림수는 미터마이어 소장인가.


  “코르프트 자작은 스스로 해명할 기회를 받고 싶다고 합니다.”

  이번엔 카르나프 남작이다. 들어오고 나가고, 더러운 팬티가 바쁘기도 하다.

  “해명이라고?”

  “그렇습니다. 해명할 기회만 받으면 자신에게 반역할 의지가 없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모든 건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죄라 하고 있습니다.”


  미터마이어 소장을 죽일 수 있다면,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가. 코르프트 자작은 후작부인을 철저하게 이용할 생각이다. 그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자신은 바라던 바를 이루려하고 있다. 불쌍한 여자로군. 후작부인. 그대는 지금 미터마이어 소장의 목숨 대신 지금 팔리려고 하고 있다…….


  “환상의 황후라고 불리며 조금 오만해졌던 것 같군요. 후작 각하도 불쾌하지 않으셨습니까?”

  “…….”

  묘한 눈으로 모두 날 보고 있다. ……과연, 그런 건가…….


  이 녀석은 나와 거래를 할 생각이다. 후작부인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위협은 아니지만 눈에 거슬리는 존재다. 이걸 기회로 후작부인을 처단하는 게 어떠냐고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가 미터마이어 소장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아니라 내게 온 것도 그게 이유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이미 대가 바뀌었고, 게다가 당주는 양자다. 그래서야 거래는 힘들다. 하지만 리텐하임 후작가는 다르다. 이 녀석들은 나라면 거래가 가능하다고 봤다…….


  “미터마이어 소장의 목숨을 코르프트 자작에게 넘기라는 거군. 경들은. 내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설득하라고.”

  내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반대하는 자는 없다는 거다.

  “경우에 맞지 않군.”

  일부러 냉담하게 답했다. 이 녀석들과 거래할 필요 따위 없다.


  “저 원정에서 총사령관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었다. 대공은 코르프트 대위를 사살한 미터마이어 소장을 책하지 않았다. 소장의 행위는 군칙을 바로 세운 것이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총사령관이 판단한 일을 경들이 이렇고 저렇고 말할 자격은 없어.”


  “하지만.”

  항의하려하는 힐데스하임 백작을 손으로 막았다.

  “이 건은 나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사이에 이야기하여, 공작이 맡게 되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공작에게 가도록 하게. 다행히 오늘은 저택에 있을 터다. 지금 한 이야기를 그에게 하도록 하게. 수고했군.”

  “…….”

  더러운 팬티여. 안녕이다. 그럼 한숨 더 자도록 할까?


...


제국력 486년 8월 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맛있네요. 사비네.”

  “예. 어머니.”

  리텐하임 후작부인이 딸인 사비네와 티라미스를 먹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싱글벙글하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어디에나 있는 모녀로군. 그보다도 어디에나 있는 가족인가. 거실에는 나 외에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부처, 엘리자베트, 리텐하임 후작부인 모녀가 있다. 화기애애하다.


  “그렇지요? 에리히는 케이크 만드는 게 특기에요.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파티시에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았을지도.”

  장난스럽게 웃음을 띠우며 대공부인이 말하자 모두가 웃었다. 웃을 수 없는 건 나뿐이다.


  “실패였을까? 아말리에.”

  “어떨까요. 뭐,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아들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다행이군. 에리히. 아들로 인정해주는 것 같다.”

  또 웃음소리가 올랐다. 부탁이야. 사이가 좋은 건 알겠으니까 날 가지고 노는 건 그만두라고.


  “하지만 아버님이 단 것을 좋아하시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술도 좋아하지만 단 것에도 환장하는 사람인걸. 당뇨병이 걱정이야.”

  대공이 부인의 말에 조금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공작나 대공이라고 불려도 아내에겐 약한가. 하물며 상대가 황녀니까 말이지. 고개를 들 수 없는 거겠지.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삼합의 쌀을 가지고 있다면 데릴사위로 가지 말라는 말이 있지.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곳이 공작가? 앞이 뻔하군……. 엘리자베트를 봤다. 맛있게 티라미스를 먹고 있다. 괜찮을까?


  “이 사람이 수염을 기르지 않는 이유를 아시나요?”

  “어이어이. 아말리에.”

  “괜찮잖아요. 리텐하임 후작이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이 사람이 기르지 않는 이유는…….”

  대공부인은 말을 끊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대공만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수염에 생크림이 묻으면 위엄이 사라지니까.”

  모두가 웃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웃고 말았다. 대공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엘리자베트가 “정말이에요? 아버님.”하고 묻자 대공은 애매하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모두가 또 웃었다.


  즐거운 한 때를 끝낸 건 안톤 페르너의 목소리였다.

  “공작 각하. 즐거운 때에 죄송합니다.”

  “손님인가?”

  “예.”

  “그분들인가?”

  “예.”


  대공과 서로를 돌아봤다. 리텐하임 후작에게서 바보들이 이 저택에 온다는 건 이미 들었다. 아까 전까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여성진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죄송합니다.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수고하는군. 에리히.”

  “아뇨.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내게 사양할 필요는 없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는 너다. 좋을 대로 하거라.”

  “예.”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일례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페르너를 앞에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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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7월 26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안톤 페르너.


  응접실에는 코르프트 자작과 슈트라이트 준장이 있었다. 코르프트 자작은 소파에 앉아있고 슈트라이트 준장은 방 한켠에 대기하고 있다. 우리들이 방에 들어가자 두 사람이 시선을 향했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코르프트 자작.”

  에리히는 응접실에 들어가고 이미 방에 안내받아 와있던 코르프트 자작은 일어나서 인사했다.

  “아뇨. 그리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기다리던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5분 정도겠지. 하지만 코르프트 자작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벼락출세한 신 공작이 시건방지게도 자신을 기다리게 하다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작의 표정이 조금 딱딱하게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겠지.


  에리히는 코르프트 자작에게 자리에 앉도록 권하고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나와 안스바하 준장은 에리히와 코르프트 자작이 보이는 위치에 서있다. 에리히에게 불렸을 때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진짜 이유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호위역이다.


  에리히는 리메스 남작가의 피를 잇고 있지만 평민 출신이다.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들어오기 전까진 귀족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당연하지만 귀족들 중엔 에리히에 대해 멸시에 가까운 반감을 가진 자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에리히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며 황손의 약혼자이기도 하다. 어떤 귀족도 에리히에겐 경의를 표해야만 한다. 거기에 딜레마가 생긴다. 딜레마가 심해지면 폭발하는 자도 나오겠지. 에리히는 사관학교에서 백병전 기술을 배웠지만 결코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들은 에리히의 안전을 항상 주의해야만 한다…….


  대공이 당주였을 때엔 이런 일은 없었다. 우리들은 호위라는 명목으로 우둔한 귀족들에 대한 대응에 온갖 고생하는 대공을 보며  익살스러움에 은밀이 웃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한 대공을 보며 더욱 웃을 수 있었다. 커피 타임에 어울리는 담소거리였으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할 이야기라니 대체 무엇인지요?”

  코르프트 자작이 꽤나 긴장한 느낌으로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라는 목소리가 떨리게 들린 것은 기분 탓인가? 에리히는 빙그레 웃음을 띠웠다.


  “이걸 보시겠습니까?”

  에리히가 코르프트 자작에게 편지를 건냈다. 예의 그레이저가 적은 것이다. 편지를 읽은 코르프트 자작의 표정이 굳었다.


  “곤란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말과는 달리 에리히의 어조에도 표정에도 웃음기가 있다. 코르프트 자작은 에리히에게 말없이 편지를 돌려줬다.


  “황제의 총희가 총애를 다투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부채질하는 사람도 있지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에겐…….”

  “소용 없습니다. 그레이저 의사가 모든 걸 말했습니다.”

  “…….”

  온화한 표정의 에리히. 그리고 대조적으로 굳은 표정의 코르프트 자작…….


  “당신의 동생인 코르프트 대위는 미터마이어 소장에게 사살 당했지요. 군율을 어긴 코르프트 대위에게 죄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겠죠. 미터마이어 소장에게 복수하려고 했지만, 그는 지금 뮈젤 대장의 부하지요.”

  “…….”


  “미터마이어 소장에게 복수하는 데에 뮈젤 대장이 방해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그를 감싸려 드는 뮈젤 대장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거기서 당신은 뮈젤 대장에게 적의를 가진 베네뮌데 후작부인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아닙니까?”

  “…….”


  “말해둡니다만, 미터마이어 소장을 뮈젤 대장에게 보낸 건 접니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 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주셨으면 합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코르프트 자작이 에리히의 말을 끊었다. 눈이 혈안이 되어 있다. 괜찮은가? 이 녀석.


  “복수는 고귀한 피가 바라는 것, 고귀한 자가 가진 의무인 겁니다. 각하는 리메스 남작가의 피를 잇고 계십니다. 그 몸에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각하는 평민으로서 자라셨지요. 그 때문일 겁니다. 아무래도 각하는 그런 부분을 모르는 것 같군요.”


  어처구니 없는 녀석이군. 에리히를 상대로 귀족에 대한 설교라니. 덧붙여 고귀한 자의 의무가 복수? 나도 슬슬 귀족이란 바보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하게 됐지만, 이 녀석은 극도의 바보로군. 아니, 이런 바보니까 베네뮌데 후작부인이라는 머리 나사가 느슨한 여자를 이용하려고 생각했나. 나라면 도저히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안스바하 준장에게 시선을 향했다. 무표정하게 에리히를 보고 있지만, 내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이런 곳에서 탄식을 뱉었다간 에리히가 어떻게 생각할지……. 다른 사람 일인 것처럼 탄식하지마! 누구 때문에 이런 바보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마구 화내겠지.


  “몰라도 됩니다. 내가 이해하는 것은 코르프트 대위가 군율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군율을 바로 세우라는 것은 폐하의 의지이기도 했습니다. 미터마이어 소장이 코르프트 대위를 사살한 것은 군율을 바로 세웠던 일. 폐하의 의지를 따랐을 뿐입니다. 그걸 복수?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아아, 화내고 있구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덧붙여 어조는 정중하지만 희미하게 경멸하는 느낌이 있다……. 부탁한다. 분노는 그 녀석에게만 쏟아 달라고. 우리들에겐 실수로라도 향하지마. 불똥은 딱 질색이다.


  “물론 알고 있지요. 군율이 뭐라는 겁니까? 우리들은 귀족, 우리들이야말로 황제를 지키고 제국을 지키는 선택된 자들입니다. 우리들의 의지야말로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


  대단하다. 이 근원을 알 수 없는 자부심은 어디서 오는 거지? 귀족이라는 것만이 아니군. 이 녀석은 어딘가 이상하다. 에리히도 독기가 빠져서 아연해졌고 나도 눈이 점이다. 안스바하 준장도 묘한 눈으로 코르프트 자작을 보고 있다. 뭔가 새로운 종류의 생물, 아니 희귀동물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다.


  “코르프트 자작가의 동생이 비천한 평민에게 살해당한 겁니다. 저 천민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 가문에 붙은 불명예는 씻을 수 없습니다. 저 자만이 아닙니다. 저 애송이, 폐하의 총애를 좋을 대로 이용하고 있는 저 애송이에게도 대가를 치루 게 해야…….”


  코르프트 자작은 에리히를 보고 있지 않다. 허공을 보고 어딘가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녀석, 틀림없이 위험한 녀석이로군.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타입인데다 친구도 적겠지. 어째서 이런 바보가 코르프트 자작인거지?


  “폐하도 겨우 눈을 뜨신 것 같습니다. 저 애송이에게 작위라니 미치광이 행위나 마찬가지. 세상 말세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거둬주셨으니 말입니다.”

  에리히는 고개를 젓고, 한 번 숨을 내뱉고 내게 시선을 향했다. 표정에서 분노는 사라졌다. 어이없어하는 거겠지.


  “그럼 복수를 그만 둘 생각은 없다고.”

  “당연하겠죠. 이건 저희들 귀족의 고귀한 의무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별 수 없군요. 좋을 대로 하시지요.”

  에리히가 그렇게 말하자 코르프트 자작이 만면의 웃음을 띠웠다. 벼락출세한 신 공작에게 귀족의 의무를 가르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겨우 이해하신 것 같군요. 기쁜 일입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라면 우리들의 의무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지 우리들의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입니다.”

  “…….”

  정곡인가……. 태평한 일이다.


  “그럼 저는 이걸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코르프트 자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례하고 걷기 시작했다. 에리히는 배웅하려 하지 않는다. 말없이 정면을 보고 있다. 보통 손님이 퇴출할 때, 주인은 손님을 배웅하는 것이 예의다. 그걸 하지 않는다……. 코르프트 자작은 그 의미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리석은 놈이. 네가 신 공작을 화나게 만든 거다.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방을 나가기 직전이었다. 에리히가 코르프트 자작을 불러 세웠다.


  “코르프트 자작.”

  차가운 목소리였다. 에리히는 정면을 향한 채다. 그의 시선은 코르프트 자작을 무시하고 있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부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코르프트 자작가와의 관계를 끊지요. 이후 본 저택에 출입을 금지합니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하지 못한 거겠지. 코르프트 자작은 아연해하고 있다.

  “총희 다툼을 부채질하는, 군율을 바로 세운 사관을 죽이려고 하는, 폐하의 의지를 배반하는 행위를 하는, 말하자면 반역자를 이 저택에 들일 수 없습니다.”


  “무, 무슨 말을 하시는지.”

  “슈트라이트 준장. 저 어리석은 놈을 내쫓으세요.”

  “예.”

  슈트라이트 준장이 코르프트 자작의 팔을 잡는다. 반항하는 코르프트 자작에게 에리히가 추가타를 가한다.


  “안스바하 준장. 리텐하임 후작에게 전하세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코르프트 자작가와의 관계를 끊는다고.”

  “알겠습니다.”

  코르프트 자작이 끌려가는 것을 배웅하고 나서 안스바하 준장이 에리히에게 질문했다.


  “리텐하임 후작에게 코르프트 자작가에 대하여 당가와 같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합니까?”

  에리히가 안스바하 준장을 봤다. 차가운 시선이다. 어지간히 분노하고 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에리히의 시선이 강해졌다.

  “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들어간 것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 정부, 군부의 타협에 의한 것입니다. 리텐하임 후작이 그걸 잊고 나보다도 저런 어리석은 것을 택한다면 그것도 좋겠죠.”

  말을 끝낼 때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안스바하 준장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일례하고 방을 나간다.


  위험하군. 방에는 나와 에리히 둘뿐이다. 에리히가 분노하고 있는 건 싫어도 알 수 있다. 안스바하 준장도 괜한 일을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는 편이 훨씬 좋았다. 나중에 불만 한 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방의 분위기가 찌릿찌릿하고 있다. 나중에 크림이라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거칠어지겠군. 난 이래 뵈도 피부가 건조한 편이다.


  “안톤, 앉지 않겠어?”

  “아니, 나는.”

  “사양하지 않아도 좋아. 손님은 돌아갔으니까.”

  거절할 수 없다. 단념하고 에리히 앞에 앉았다. 전기의자라도 앉은 기분이다.


  “안톤. 경들은 저런 바보를 상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한 건가?”

  “…….”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저건 조금 심각한 편이고, 다른 녀석들은 조금 낫다. 그러니 부탁이니까 그 팔을 툭툭 두드리는 건 그만두지 않겠어? 우리들은 친구지? 친우가 아닌가.


  “어째서 잠자코 있어?”

  “아, 아니. 그.”

  그것도 그럴 것이 ‘저건 좀 심한 놈일 뿐’이라고 말할 순 없잖아? 게다가 저런 바보 상대를 하는 것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일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럼 침묵하고 있는 편이 피곤하지 않고 끝난다. 경도 기분 나쁜 일 없이 끝나겠지.


  “저런 녀석들의 맹주라고? 마치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맞은 듯한 기분이다.”

  “그러면, 기, 기분전환으로 코코아라도 어때?”

  “필요 없어.”

  쌀쌀맞은 대답이었다. 코코아는 기분전환에는 좋지만 말이야. 달콤한 것을 마시면 기분이 침착해진다. 앞으로는 응접실엔 반드시 케이크를 준비하게 하자. 그리고 사탕도. 필수품이로군.


  방문이 열리고 안스바하 준장과 슈트라이트 준장이 들어왔다. 우물쭈물하는 느낌이다. 이걸로 다소 분노를 분산할 수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에 에리히가 손으로 제지했다. 별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 모두 앉으세요.”

  에리히의 정면에는 앉고 싶지 않다.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을 때였다. 두 사람이 날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는다. 잠깐, 이거 너무하지 않아? 두 사람을 돌아봤지만 두 사람 모두 모르는 척하고 있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검토하고 온 거겠지. 내게 꽝을 뽑게 만들 생각이다.

  “코르프트 자작은 돌아갔습니다. 꽤나 당황하더군요. 아마도 리텐하임 후작에게로 향했겠죠.”

  “리텐하임 후작에게 연결을 취했습니다.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슈트라이트, 안스바하 두 준장의 보고에도 에리히는 말없이 끄덕일 뿐이다. 준장들도 이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 두 준장이 날 사이에 두고 서로를 돌아봤다. 무슨 생각인가. 부탁이니까 괜한 짓은 하지 말라고.


  “그나저나, 각하. 상급대장으로 승진하셨기에 폐하께서 각하께 전함을 하사하시게 됩니다. 전함에 대해서 희망이 있는가하고 궁중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만…….”

  “뮈젤 제독은 브륀힐트라는 전함을 하사받는다고 합니다. 실험함입니다만, 꽤나 좋은 전함이라고 들었습니다. 각하가 바라신다면 동형함을 준비하겠다고…….”


  슈트라이트 준장도 안스바하 준장도 마지막까지 말하지 못한다. 마음이 급한 것이 뻔히 보인다. 어린애가 아니니까 전함을 받는다고 기분이 좋아질 리가 없잖아? 오히려 기분을 망칠뿐이다. 부탁이니까 애 취급은 하지 말라고. 에리히는 그 부분에서 민감하다.


  “필요 없습니다.”

  거 봐라. 화내고 있잖아. 입가에는 웃음이 보이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식인 호랑이 같은 웃음이다.

  “브륀힐트라면 알고 있습니다. 비용을 도외시하여 만든 실험함입니다. 저건. 실험함은 한 척이면 충분합니다. 두 척이나 필요 없습니다.”


  그 말대로입니다. 공작 각하. 바보 같은 두 준장에겐 나중에 철저하게 말해둘테니 슬슬 용서해주세요.

  “적당한 전함으로 고르셔도 괜찮습니다. 고속전함일 것, 통신설비가 충실할 것. 이 두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어떤 전함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싸울 수 있는 전함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장식은 필요 없다고. 빌헬미나급은 그만 두는 편이 좋겠지. 저걸로 좋다면 처음부터 지명했을 것이다. 적당한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들이 해방된 것은 그로부터 바로였다. 대공 부인이 나타나 에리히를 티타임에 초대한 것이다. 우리들도 초대 받았지만, 당연히 사양했다. 가신 주제에 주군과 동석이라니 황송하기 그지없다. 분수를 알아야지.


  “너무합니다. 두 사람. 소관을 표적으로 세우다니.”

  “경은 공작 각하의 친구인 거다. 당연하겠지.”

  에리히가 사라진 응접실에서 태연하게 안스바하 준장이 말하고 또 한 명의 준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끄덕였다. 성격이 나쁘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렇게 분노하고 나면 어떻게도 하지 못한다고요.”

  “코르프트 자작인가. 뭐, 저건 심각했지. 슈트라이트 준장.”

  “음. 확실히 처참했다.”

  두 사람 모두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말한다.


  “게다가 에리히를 애 취급하는 건 그만두세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이상하군. 보통 전함을 받는다고 하면 남자아이라면 기뻐할 테지만.”

  “음. 확실히 이상하다.”

  남자아이는 아니겠지. 일단 20세는 지났다고.


  “뭐, 대공 부인에게 부탁해 둔 것이 정답이었군.”

  “정말이다. 여기에 있는 친구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니.”

  “……저건 두 분이 부탁했던 것입니까?”


  내 질문에 안스바하 준장이 씨익 웃었다.

  “보험을 들어두는 건 당연하겠지.”

  “당연하지. 아직 미숙하구만. 페르너 대령.”

  한숨이 흘러나왔다. 무서운 주군과 만만찮은 동료. 나는 은하에서 가장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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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6년 7월 25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안톤 페르너.


  에리히는 거실에서 공작부인, 프로이라인 브라운슈바이크와 함께 3시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 오늘은 쉬는 날이다. 에리히는 군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다. 옅은 푸른색의 얇은 와이셔츠와 하얀 바지다. 제국의 실력자보단 극히 평범하고 온화한 젊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작부인과 프로이라인도 즐겁게 웃고 있다. 녀석은 여성들이 다가가기 쉬운 타입이다. 온화하고 상냥하며, 조금 둔감하고 서툰 구석이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들은 그런 에리히에게 약한 것 같다. 그냥 놔둘 수 없는 거겠지. 그런 주제에 본인은 여자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아까운 일이다.


  헌데, 어찌된 일일까……. 에리히에 대해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불온한 움직임을 전하는 편지가 왔었다. 에리히는 후작부인의 주변에 편지를 쓴 사람이 있으리라 보고 내게 조사를 명했지만……. 티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릴까. 아니면 부를까. 생각하고 있으니 공작부인이 내가 있다는 걸 눈치 챘다.


  “페르너 대령. 에리히에게 용건이라도?”

  “예. 휴식 중에 면목 없습니다만…….”

  나와 공작부인의 대화에 에리히가 조용히 티컵을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부탁했던 예의 건인가?”

  “예. 보고를 하고자 생각해서.”

  “알았어. 안톤. 내 방으로 가자.”

  “황송합니다. 공작.”


  “죄송합니다. 어머님. 엘리자베트. 급한 용무가 생겼습니다.”

  “유감이지만 별 수 없지요. 엘리자베트.”

  “예.”


  유감스럽다는 듯한 여성 두 사람에게 사죄하고 에리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둔감하다니까. 아니면 일에 열심일 뿐인가. 어느 쪽이든 여성에게 있어선 기쁜 일이 아니겠지. 엘리자베트님도 고생하겠어.


  거실을 나와 에리히의 서재로 향한다. 살풍경한 방이었다. 그림이나 조각은 흔적도 없다. 책장 외에는 집무용 책상과 소파와 통신장치, 그리고 휴식용 간략침대가 있을 뿐이다. 덕분에 방이 괜히 더 넓게 보이고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책은 실용서 뿐이라서 살벌하기 그지없다.


  관능소설을 두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연애소설이라든가 시집이라든가 둘 순 없는 건가……. 어떤 빈곤 귀족이라도 이것보단 괜찮은 서재를 가지고 있겠지. 그림이라도 걸어놓게 할까? 너무 큰 건 안 겠지. 적당한 크기의 풍경화라면 에리히도 싫다곤 하지 않을 거다.


  소파에 앉고서 에리히가 말을 걸어왔다.

  “어땠어? 뭔가 알았나?”

  “예. 공작 각하의…….”

  “안톤. 그 공작 각하라는 건 그만두지 않겠어?”


  에리히가 지긋지긋하단 표정을 짓는다.

  “사람 앞에선 어쩔 수 없지만, 둘만 있을 땐 이름으로 불러줘. 예전과 마찬가지로.”

  “…….”

  “나는 나인 채로 있고 싶어. 공작 각하라고 불리며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이상한 특권의식 따위 갖고 싶지 않다고. 안톤.”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평범한 녀석이라면 기뻐하겠지만 말이다. 뭐, 하지만. 이 녀석은 평범하지 않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묘한 당주를 가지게 됐구만.

  “알았다. 단, 둘만 있을 때야. 나도 새로운 당주의 친구랍시고 과시하고 있다고 보이긴 싫다고.”


  내 말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별 수 없지. 서로가 답답한 상황이니. 그래서 어땠어?”

  “경의 생각대로였다. 그레이저라는 궁정의가 베네뮌데 부인 밑을 때때로 출입하고 있었다. 편지를 쓴 건 그레이저다.”

  “그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

  “그래. 심한 일이었지. 저래서야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도 이해할만해.”


  그레이저의 말에 의하면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그뤼네발트 백작부인, 뮈젤 대장에 대한 적의는 심상찮다고 한다. 뮈젤 대장에게 몇 번이나 암살자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엔 백작부인을 관계하라고 명했다. 물론 황제 이외의 인물과 말이지. 그렇게 하면 뮈젤 대장도, 백작부인도 단번에 처리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하겠지?”

  에리히가 어이없단 듯이 말했다.

  “물론 궁중에 있는 한 그런 일이 가능할리 없지. 그러니…….”

  “그러니?”


  “백작부인을 궁중에서 쫓아내라고 명했다는 것 같아. 그 뒤엔 가능할 거라면서.”

  “이런이런.”

  에리히가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어깨를 움츠린다.


  “상식에서 벗어나있어. 그레이저는 공포에 질려 편지를 썼지. 내게 모든 걸 말한 뒤에 안심하더군.”

  “휘말리는 건 사양이라는 건가.”

  “그래. 내가 그 입장이라면 같은 행동을 했겠지.”

  “경이 그런 소리를 하게 만들다니 대단하군.”

  저도 모르게 서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에리히. 그레이저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비호를 바라고 있다.”

  “…….”

  “내가 보기에 그레이저는 이제 한계야. 이쪽에서 보호하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해.”

  에리히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 날 보고 있다. 어디보자. 보호에는 반대인가? 이 녀석은 약자에겐 꽤나 약한데…….


  “그걸 정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후작부인을 부채질한 인물이 있을지 없을지. 내 생각이 지나친 걸까? 안톤.”

  과연. 확실히 아직 보고 도중이었다. 안 되겠군. 이건 친구에 대한 상담이 아니다. 주군에 대한 보고다. 정신 차려라. 안톤 페르너!


  “미안. 순서가 반대였다. 후작부인을 부채질한 인물은 확실히 있었다. 역시 대단하군.”

  내 말에 에리히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부해도 아무 것도 안 나와. ……역시 있었나.”

  내 말에 에리히의 표정이 더더욱 떫어진다.


  “……프레겔 남작이 없어지고 코르프트 자작이 후임이 되었나…….”

  “경, 알고 있었나?”

  “……뭐, 그렇지.”

  내 질문에 에리히는 애매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과연. 이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대한 일은 조사가 끝났다는 건가. 아마도 친족인 프레겔 남작에 대한 것도 조사했겠지. 그 과정에서 베네뮌데 후작부인에 대한 것도 조사했다. 그렇다면 그레이저에 대한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이런. 이번 공작 각하는 보기완 달리 만만찮은데다가 좀처럼 파악할 수 없다. 하기야 그렇지 않으면 섬기는 맛이 없는 것도 확실하다. 즐거워질 것 같군.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뮈젤 대장을 비방하고 있었다고 하더군. 미터마이어 소장에 대한 것도 말이지.”

  “코르프트 대위 사살에 대한 걸 원한으로 삼고 있다는 거로군.”

  “아아, 그런 거지.”

  코르프트 자작의 동생은 미터마이어 소장의 총에 맞고 죽었다. 죄는 군율을 어지럽힌 코르프트 대위에게 있다. 하지만 자작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겠지.


  그리고 미터마이어 소장은 뮈젤 대장의 부하가 됐다. 미터마이어 소장에게 복수하는 데엔 뮈젤 대장이 장해물이다. 거기서 자작은 뮈젤 대장에게 적의를 가진 베네뮌데 후작부인에게 눈을 돌렸다……. 굳이 설명할 것도 없겠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에리히.”

  내 질문에 에리히는 시선을 떨어뜨리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물이 있으면 마시고 있었겠지.


  “그레이저 의사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서 비호하지. 이번 사건의 살아있는 증인으로서 쓴다.”

  “그래서, 코르프트 자작,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방치할 순 없어. 일단 코르프트 자작을 억누를 필요가 있겠지. 그를 억누르고 그레이저 의사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면 후작부인도 조금은 얌전해질 거야.”

  “차라리 뮈젤 대장, 코르프트 자작,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한꺼번에 처리해버리는 건 어때?”


  농담 섞인 제안을 해봤지만 에리히는 웃지 않았다. 잠시동안 날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

  “목이 마르군. 물을 가져오지.”

  “응.”


  건성으로 대답하는 에리히를 두고 물을 가지러 간다. 사실은 누군가 사람을 부르면 되겠지만, 지금은 혼자 두는 편이 좋겠지. 역시 에리히는 뮈젤 대장을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은 우호적이지만 이전에 공작이 되기 전에 말했던 대로 위험하다는 인식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혹은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건가…….


  물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오자 에리히는 아직도 생각 중이었다. 잔에 물을 따르고 한 입 마시고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질문하자 겨우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건 안 된다.”

  “……안 되나.”

  “응. 그는 이쪽에 협력적이고, 동맹에 대한 건도 있어.”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대답처럼 보였다. 꽤나 망설였군.


  “동맹이라는 건?”

  “벅찬 상대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에게 이길 수 있는 건 뮈젤 대장 정도겠지.”

  “그렇게 벅찬 상대가 있었나?”

  내가 아는 한, 에리히의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대단하다. 나이트하르트도 꽤 하지만 에리히에겐 미치지 못한다. 그런 에리히가 그렇게까지 두려워한다? 뮈젤 대장 이외에? 대체 누구지?


  “……양 웬리.”

  “……엘 파실의 영웅인가.”

  내 말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두려운 상대다. 전술 레벨에선 뮈젤 대장이라도 이기기 어렵겠지. 잘해야 무승부인가.”


  “경이라면 어때?”

  “승부도 되지 않겠지. 패배하지 않도록 싸우는 것이 한계다. 그래도 지겠지. 장기전으로 몰고 가는 게 끝이야.”

  “흠.”

  에리히는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러한 판단에서 에리히가 실수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우연이 아닌가? 그 이후엔 좀처럼 활약이 없는데.”

  내 질문에 에리히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아니. 우연이 아니야. 용병이라는 건 결국 개인의 능력과 감성에 의존하는 부분이 커. 같은 전국에서도 지휘관이 다르면 전투과정, 결과도 다른 건 그렇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떤 사람이 공세를 취할 때에도 어떤 사람은 수세를 취한다……. 에리히가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다시 말해서 군사적 재능이라는 건 노력보다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질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해. 자유행성동맹의 뷰코크 제독은 병졸에서 올라왔지만, 동맹에서도 제국에서도 명장이라고 평가받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


  “과연. 노력보다도 재능인가. 비도덕적인 학문이군. 노력을 허위로 돌리게 한다는 건.”

  내 말에 에리히는 조금도 웃지 않고 끄덕였다. 농담이라고 한 소리였는데 별로 재미 없었나…….


  “사관학교가 해야 하는 일은 군인으로서 최저한도의 지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군인으로서의 능력, 이건 주어진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른 거겠지.”

  “그리고 감성이라는 것에 따라 어느 지식을 선택할지 정한다는 거로군…….”

  에리히가 끄덕였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계속한다.

  “전술 시뮬레이션은 그 선택지를 늘리는 일이라고 생각해.”

  “과연.”


  “엘 파실의 한 사건은 장래 그의 능력을 현저하게 보여준 케이스라고 생각해. 저렇게 적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민간인을 데리고 탈출하다니, 시뮬레이션에서 했던 적 있어?”


  “아니, 없지. 시뮬레이션은 거의가 함대결전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그 말대로야. 다시 말해 양 웬리는 참고해야 할 사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거지. 저 작전은 그의 오리지널 작전이야.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아?”

  “…….”


  “그는 민간인을 떠맡고, 게다가 아군에게서 버림받았지. 하지만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적확하게 알아차리고, 그걸 이용하여 기적을 일으켰다. 아군을 미끼로 말이야. 기적이라는 말에 속기 쉽지만 냉철하고, 비정하다고 해도 좋아. 능력, 냉철함, 비정함, 그 어떤 하나라도 빠졌다면 저 기적은 없었지. 극히 위험한 상대야.”


  과연. 우연이 아닌가. 그저 단순히 아군을 이용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잘도 거기까지 상대를 볼 수 있다. 내가 양이라면 에리히야말로 두렵다고 하겠지. 양, 뮈젤 대장, 그리고 에리히…….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만만찮군.”

  “응. 지금은 아직 계급이 낮지. 그래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다시 말해, 앞으로 계급이 올라가면, 자유재량권이 커지면 위협이 된다…….


  “뮈젤 대장은 필요 한가…….”

  “그가 없으면 제국군의 피해는 꽤나 심각하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 대충 그런 거겠지. 에리히는 탐탁찮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내우외환. 그런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코르프트 자작을 억누를지 로군.”

  내 질문에 에리히는 기쁘게 미소 지었다.

  “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니까 말이야. 모쪼록 그걸 이용해주겠어. 날 이 자리에 빠뜨린 녀석들도 협력하게 해서.”

  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구만, 이 녀석. 최근 모두의 장난감 같은 것이 되고 있어서 울분이 뭉쳐있다. 불쌍한 코르프트 자작을 못살게 굴며 즐길 생각이다.


  “안톤. 재미있어 질 것 같네. 경은 이런 거 좋아하잖아?”

  “뭐, 싫어하진 않지. 나만이 아니야. 안스바하 준장과 슈트라이트 준장도 좋아하지.”

  “그럼, 빨리 시작해볼까.”


  빙그레 웃는 에리히에게 아주 조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공작 각하의 뜻대로.”

  도중에 에리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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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486년 7월 23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고 이제 열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 살고 일주일이 지났다. 솔직히 말해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지쳤다. 혼자 살기 시작해서 이제 8년. 거기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갑자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내가 에리히 발렌슈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이 저택에서 방으로 돌아가 혼자 있을 때뿐이다. 다른 장소에선 혼자 있을 수 없다. 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모두 그렇게 대한다. 페르너마저 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라고 부른다. 쓸쓸할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공작 저택의 사람들 모두 내게 호의적이다.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 내게 호의적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공작부인도 내게 호의적이다. 의붓이긴해도 아들이 생긴 게 기쁜 것 같다. 내게 코코아를 타주고 기뻐한다. 남자가 코코아를 기쁘게 마시는 것이 재밌는 것 같다.


  곤란한 것은 엘리자베스다. 가끔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붉힌다. 그만두라고. 내가 뭔가 나쁜 짓을 한 것 같잖아. 덕분에 그걸 보고 페르너를 시작하여 모두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공작 부처도 마찬가지다. 딸과 의붓아들을 보고 웃는 부모란 건 과연 어떨까. 어느 의미론 학대가 아닌가? 이건.


  지금의 나는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군에서 계급은 상급대장. 직급은 군무성 고등 참사관, 우주함대 최고참모회의 상임위원으로 되어 있다. 비공식으론 차기 원정군 총사령관이다.


  원정군의 규모는 2만척이라고 한다. 2만척, 어중간한 숫자지. 1개 함대보다 크지만, 누가 봐도 대군이라곤 할 수 없다. 상대가 2개 함대 이상 동원하면 그것만으로 불리해진다. 총사령관인 내 능력을 시험하겠단 거다. 꽤 엄한 시험이긴 하지만.


  참모장에는 메크링거 소장을 가져왔다. 부사령관에는 클레멘츠 소장. 분함대 사령관은 봐렌, 루츠, 아이제나하, 비텐펠트다. 뭐, 지금 시점에서 뮐러나 로이엔탈, 미터마이어를 뽑을 수 없으니까. 그나마 베스트 멤버에 가깝지 않을까?


  사령부에는 메크링거 외에도 부참모장에 슈트라이트 준장, 참모에 베르겐그륀, 뷔로 대령이 배속되었다. 슈트라이트 준장이 배속된 것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의 의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인 듯하다. 바로 곁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을 두고 싶은 것 같다.


  모두 내게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곤란해하고 있다. 귀족도 군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날 적대시하고 있던 녀석들의 곤란함은 꽤 심하다. 뭐, 나 스스로 곤란해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평소 때와 같은 건 제국군 3장관이나 리히텐라데 후작, 리텐하임 후작 등 일부뿐이다.


  콩콩하고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에리히님.”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온 것은 엘리자베스였다. 조금 뺨이 상기되어 있다. 부탁한다고. 날 곤란하게 하지 마.


  “무슨 일이죠?”

  할 수 있는 한 부드럽게 말을 거니 엘리자베스는 내게 다가와 손에 든 편지를 내밀었다.

  “?”

  “에리히님에게 이게 도착했어요.”


  엘리자베스로부터 편지를 받아 개봉한다. 한번 읽고 뭐가 일어났는지, 일어나려 하는지 알았다. 이런이런. 이것이 내게 오는가…….

  “엘리자베스. 아버님은 지금 어디에?”

  “거실에 계셔요. 아버님에게 도착한 편지였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아버님에게도 보여드리는 게 좋겠네요.”


...


■ 제국력 486년 7월 23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라인하르트 폰 뮈젤.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부터 급히 저택으로 와달라는 연락이 있었다. 지금까지 파티 등등으로 몇 번 이 저택에 온 적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많은 참가객 중 한명이었다. 이번처럼 당주로부터 홀로 불린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예의 건에 대해선 아직 회답하지 않았다. 황제는 범용하지 않았다. 키르히아이스에게도 황제와의 회담 전부를 말했지만, 그도 놀라고 곤란해했다. 아마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협력하는 것이 옳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황제가 되기를 목표로 해왔던 것이다. 그것을 버릴 수 있을까……. 하지만 실패하면 누님에게까지 누가 미친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내가 황제가 되는 건 꽤 힘들다……. 문제는 차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출병이겠지. 어떤 결과가 될는지. 거기에 따라 아직 앞은 알 수 없다.


  응접실로 안내 받고 들어가니 거기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대공, 그리고 리텐하임 후작이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빙긋 미소지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날 맞이했다.

  “뮈젤 대장. 바쁘신 도중에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뇨.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럼 이리로.”

  “예. 실례합니다.”

  아무래도 대하기 힘들다…….


  소파에 앉아 세 사람과 대면한다. 묘한 느낌이다. 이 네명이 이런 느낌으로 대면할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대공이 말했다.

  “뮈젤 대장. 잘 와주었네. 조금 귀찮은 일이 일어나서 말일세. 경도 관련된 중요한 일일세.”


  “귀찮은 일? 제게 관련된 일입니까?”

  내 질문에 대공이 무겁게 끄덕였다. 그리고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본다. 나도 따라 공작을 보니 공작은 담담히 편지를 건냈다.


  편지를 받았다. 이미 밀봉은 풀려 있었다. 이미 눈앞의 세 사람은 봤다는 건가. 그리고 내게 관련된 일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체 뭐지? 안의 편지를 보니 극히 짧은 문장이 써 있었다.


  “궁중의 ㅂ부인이 ㄱ부인을 해하려는 계획이 있음. 조심하시길.”

  누님? 베네뮌데 후작부인인가…….

  “이건?”

  “아까 에리히에게 온 편지일세. 어떻게 보는가?”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누님을 해하려 한다…….”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어째서 공작에게 이 편지가?”

  “아마도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막고 싶은 거겠죠. 그리고 내가 뮈젤 대장과 친하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공작에게? 내게가 아니라? 어쩐지 맘에 들지 않았다. 누님의 일이라면 내게 편지가 와야 할텐데.


  “그래서 공작에게 편지가?”

  “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라면 궁중에도 영향력을 가집니다. 이 문제는 궁중의, 그것도 미묘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거겠죠.”

  과연. 나는 궁중에는 영향력이 없다. 그래서인가……. 맘에 들진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아버님과 리텐하임 후작에게도 말했습니다. 이 건에 대해선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대장은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뮈젤 대장에게 있어서 백작부인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장이 움직이면 귀족들 안에선 대장이 백작부인을 이용하여 궁중에 개입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그건 대장에게 있어서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공작이 하는 말은 알겠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작은 어쨌든 대공은, 리텐하임 후작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에게 있어선 누님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내가 침묵하자 대공이 입을 열었다.


  “불안한가? 뮈젤 대장.”

  “아뇨. 그렇지는.”

  “경은 아무래도 내가 백작부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

  “……솔직히 말해 불안이 있습니다.”

  그 말에 대공은 리텐하임 후작과 얼굴을 마주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나도 리텐하임 후작도 호의는 가지고 있지 않아. 하지만 백작부인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네.”

  “…….”

  묘한 말이다. 호의는 없으나 필요성은 인정한다? 다시 말해 누님을 평가하고 있다는 건가? 대공이? 리텐하임 후작이?


  내가 곤란해하니 리텐하임 후작이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혼란해하는 것 같군. 알겠나? 뮈젤 대장. 보통 폐하의 곁에 있는 총희는 그 영향력 때문에 우리들 귀족에게 있어서도, 정부, 군에 있어서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누님도 눈엣가시라고.”


  “서두르지 말게나. 뮈젤 대장. 귀족, 정부, 군은 때로 적대하기도 하고 때로 협력도 하며 제국을 지켜왔네만. 총희의 존재는 그 조화를 혼란해하길 뿐일세. 하지만 백작부인이 폐하를 이용하여 권세를 휘둘렀던 적이 있었나? 정부를 혼란에 빠뜨린 적이 있었나?”


  “아뇨. 그런 일은 없습니다. 누님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또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대공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일세. 혹시 부인을 끌어 내린다면 다른 누군가가 총희가 되겠지. 그 여성이 권세를 휘두르지 않으리라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다시 말해, 백작부인은 우리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총희일세. 부인을 지키고자 하는 건 그 때문일세.”


  과연. 누님이 권세를 휘두르지 않았던 것이 누님의 몸을 지키고 있다. 다른 어떤 총희보다도 누님 쪽이 모두에겐 편리하기 때문인가. 혹은 대공들에게 있어선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복권은 기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가. 환상의 황후인가. 그것이 있었는가…….


  “환상의 황후입니까…….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복권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리텐하임 후작가에게 있어서 귀찮은 일이 됩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적으로 삼는 것으로 우리들은 협력할 수 있다. 그런 거지요?”

  내 말에 브라운슈바이크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얼굴을 마주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오해가 있는 듯 하네만. 우리들은 후작부인의 자식을 죽이지 않았네.”

  “그 말대로입니다. 뮈젤 대장. 아버님이나 리텐하임 후작이 후작부인의 아이를 죽일리 없습니다…….”

  “그럼 정말로 사산이라는 겁니까?”


  “……아뇨. 그럴리도 없어. 살해된 것은 틀림없겠지.”

  대공도 리텐하임 후작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작부인이 낳은 아이는 살해당했다.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대공의 무실을 믿고 있다. 무슨 말인가?


  “? 그럼…….”

  “나도 리텐하임 후작도 무관계일세. 그 건은 달리 진범이 있네.”


  알 수 없다. 다른 진범이 있다? 그럼 어째서 그 범인을 잡지 않는가? 자신들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을 어째서 방치하는가. 있을 수 없다. 뭔가 이상하다. 아니면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가? 대체 뭘 놓치고 있는가. 혼란해하는 내게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했다.


  “죽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태어난 남아를 죽인다는 것은 황위에 야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엔 황태자 루드비히 전하가 살아계셨습니다. 아무리 막 태어난 아이를 죽여도 황위에는 닿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두 가문에 태어난 것은 여아. 게다가 아직 어립니다…….”

  “…….”


  “이래서야 황태자 루드비히 전하의 경쟁상대도 되지 못합니다. 아버님도 리텐하임 후작도 이 상태에서 자칫 잘못하면 대역죄인이 될지도 모르는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과연. 확실히 일리있다.

  “끄럼 대체 누가…….”


  내 질문에 대공들은 얼굴을 마주한다.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이 끄덕인다. 그걸 보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한다.

  “젊은 측실이 남아를 생산했을 경우. 가장 곤란한 건 노회한 본처 사이에서 태어난 후계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다시 말해, 황태자 루드비히가 범인이라는 건가. 놀라는 내게 공작이 계속 말한다.


  “남아가 태어나면 반드시 측실과 손을 잡고 전하를 배척하려는 세력이 나오겠죠. 게다가 루디비히 전하의 경우 어머님인 황후폐하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황후가 되면 단번에 그런 움직임이 나오리라 판단했겠죠. 그렇기에…….”

  “막 태어난 적자를 죽였다…….”


  응접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천천히 대공이 침묵을 떨치듯이 머리를 한번 젓고 말했다.

  “그 사건 이후, 나와 리텐하임 후작이 비밀리에 만났네. 내가 후작에게 경이 했냐고 물으니 후작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했네. 그리고 리텐하임 후작은 내게 공작이 한 게 아니냐고 물었네. 나도 아니라고 했네.”


  “…….”

  대공의 말에 리텐하임 후작이 천천히 끄덕였다. 옛날을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알고 있었네. 서로 상대가 그런 짓을 할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네. 단지 만일을 위해 확인했을 뿐이지.”

  “서로 하늘을 향해 한숨을 뱉었지. 대공.”

  리텐하임 후작의 말에 대공이 끄덕였다.


  “그 죄를 나와 리텐하임 후작에게 뒤집어 씌웠네. 어리석은 이야기지. 그 이후로 모두 루드비히 전하를 따돌리기 시작했네.”

  “그건 어째서입니까?”

  내 질문에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은 불쌍하다는 듯이 날 봤다.


  “모두 범인이 루드비히 전하라는 건 바로 알았을 것일세. 그 전하가 나와 리텐하임 후작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일세. 이제 전하는 우리들의 협력을 구할 수 없게 됐네. 의형제로서 누구보다도 신뢰해야 할 존재인 우리들을 적으로 돌린 것일세. 그런 황태자에게 누가 따르겠는가?”

  “…….”


  그런 것인가. 그 사건으로 귀족들은 충성해야 할 존재를 잃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충성심을 향할 존재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을 선택했다. 루드비히의 죽음이 양가의 세력확대를 부른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양가의 세력은 강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태자의 죽음은 거기에 박차를 가했을 뿐이다…….


  황제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알고 있었겠지. 황제는 범용하지 않다. 알았기에 제국이 내부분열하리라 생각했다. 아들이 살해된 것이 제국 붕괴의 방아쇠가 되었다. 황제는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리고 제국붕괴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그렇기에 날 세웠다……. 제국을 새로이 만들기 위하여.


  증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멸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황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유감이라고도 생각한다. 부친으로서, 황제로서 프리드리히 4세는 아들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난 대체 황제에게 뭘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누님은 황제의 고통을 곁에서 계속 봐온 것일까……. 만나고 싶다. 무척이나 누님에게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황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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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486년 7월 1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엘리자베스 폰 브라운슈바이크.


  오후에 손님이 온다. 어머니의 말로는 손님은 에리히 발렌슈타인 중장이라던가. 어머니는 유모에게 내 복장을 정리하도록 말했지만, 드문 일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 없었는데.


  이상한 일은 그밖에도 있다. 아버지와 발렌슈타인 중장은 결코 사이가 좋다곤 할 수 없는데, 어째서 초대한 것일까? 중장도 우리들 귀족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다고 들었다. 프레겔 남작의 일이 있었으니 화해라도 한 것일까?


  나 스스로는 발렌슈타인 중장과 만나는 것이 무척 기쁘다. 중장은 부드러운 웃음이 멋진 분이라고 들었다. 가능하면 말을 나누고 싶은데 아버지가 허락하실까? 초대할 정도에, 복장을 정돈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 괜찮으리라 생각하지만.


  발렌슈타인 중장이 찾아온 것은 오후 2시를 지났을 쯤이었다. 중장은 우리들에게 미소를 띄우며 인사했다.

  “에리히 발렌슈타인입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오, 발렌슈타인 중장. 바쁜 와중에 잘 와주었네. 소개하지. 아내인 아마리에. 딸인 엘리자베스네.”

  발렌슈타인 중장. 오늘은 편하게 지내다가 가세요.“

  “갑사합니다. 부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중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도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 때였다.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엘리자베스. 너도 중장에게 인사를 해라.”


  “엘리자베스에요.”

  “발렌슈타인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난 이름을 말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중장은 그런 나를 부드럽게 바라봤다. 부끄러웠지만 기뻤다. 중장은 소문대로 상냥한 사람 같았다.


  인사가 끝나고 응접실로 이동하여 소파에 앉았다. 난 아버지에게 중장의 옆에 앉으라는 말을 들었다. 차가 들어왔다. 커피가 셋, 코코아가 하나. 코코아의 달콤한 향이 퍼지는데, 이건 날 위해 준비한 걸까?


  “중장이 코코아를 좋아한다고 들어서 말일세. 준비했네.”

  “감사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중장이 코코아? 조금 웃겼지만 중장은 맛있게 마시고 있다.


  “경이 초대를 받아 들어줘서 감사하게 생각하네. 필시 화내고 있으리라 생각했네.”

  아버지의 말에 중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는 중장을 화내게 만든 걸까?


  “아버님. 발렌슈타인 중장에게 실례하신 건가요?”

  “아, 아니. 그건.”

  아버지가 조금 당황하고 있다. 중장이 쿡쿡 웃었다.


  “그렇지 않아요. 프로이라인. 공작이 제게 대하여 실례하신 일은 없습니다. 다소 억지를 부리신 일은 있습니다만.”

  “어머.”

  아버지를 보니 곤란한 듯한 웃음을 띄고 있다. 아버지가 그런 표정을 하다니 희안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초대해주신 일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예.”

  아버지는 중장을 쭉 지켜보다가 한번 끄덕였다. 중장도 아버지를 보고 있다. 그리고 날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


...


■ 제국력 486년 7월 1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티타임이 끝나고 발렌슈타인은 일로 돌아가야 한다며 저택을 떠나려 했다.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시간이었다. 모두 좋은 마음으로 대화했다고 생각한다. 발렌슈타인이 돌아가겠다고 말했을 때엔 모두 아쉽다고 생각할 정도다.


  작별 인사를 했을 때, 발렌슈타인은 나만이 알 수 있도록 ‘둘이서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와 딸에게 ‘잠깐 중장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고 장소를 피해 있도록 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프로이라인은 아직 모르시는 거지요?”

  “음. 선입견 없이 경이 봐줬으면 해서 말일세.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나쁜 분은 아니시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안심했다. 뭐, 그 티타임의 분위기를 보자면 나쁜 인상은 가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잘 되리라 생각하는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음. 딸을 부탁하네.”

  발렌슈타인이 끄덕인다. 괜찮다. 신뢰해도 되겠지.


  “이제부터 프로이라인에게 전달할 생각입니까?”

  “그렇네.”

  “그럼, 큰일이군요.”

  비아냥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발렌슈타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뭘. 저건 경을 마음에 들고 있네. 걱정할 필요 없어.”

  “이제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하네.”

  “공작부인에게도 잘 전해주세요.”

  “알았네.”


  발렌슈타인이 떠났다. 그럼 이제부터 딸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분명 걱정은 필요 없지만. 큰일이긴 하겠지. 이런이런. 차라리 아내에게 부탁할까? 이런 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전하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


■ 제국력 486년 7월 13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발렌슈타인.


  전례성에서 나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양자결연의 허가가 나왔다. 그 사이에 내가 리메스 남작가의 피를 잇는 자손이라는 것도 함께 전례성에 있는 가계도에 등록되었다. 리메스 남작가는 영지도 작위도 반환했으니 등록되어도 나에겐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그것을 청구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난 지금 리메스 남작가의 유일한 자손으로 작위와 영지를 청구하면 허락하리라는 말을 들었다. 전례성의 몇몇이 은혜를 베풀 듯이 말했다. 바보 같다. 그런 거 필요 있을까!


  그렇다곤 해도 늙은이들이 일이 빠르다. 늙어 죽기 일보직전이니 서두르는 거겠지. 날 하루라도 빨리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눌러붙이고 싶은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는 것도 빨라질 것 같다. 일단 말해두지만 난 로리콤이 아니다. 가슴을 피고 말할 수 있는데, 마더콤이다. 엘리자베스에게 나쁜 인상은 없지만, 결혼은 어른이 되고 나서다.


  이제부터 의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함께 프리드리히 4세를 배알한다. 어째선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난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페르너에게, 아니 이 제국의 권력자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라인하르트가 이쪽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황제 프리드리히 4세와 만나고 나서 아무래도 다소 바뀐 것 같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쁜 징후는 아니다.


  배알하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으니 멀찍이서 많은 귀족들이 나를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소곤소곤 뭔가 말하고 있다. 관람물이 아냐! 정말이지 불쾌한 녀석들이다. 이제부터 이런 나날이 계속되리라 생각하니 질려버리겠다.


  이 장소에서 도망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황제 앞에서 의붓아들은 싫습니다라고 한다면. ……용서받을 리 없지. 그거야말로 동맹에 망명이라도 해야. 공작위와 황족과의 결혼이 싫어서 망명인가…….


  대단하군. 올해 우주 십대 뉴스 톱일게 틀림없다. 아마도 페잔에선 날 모델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겠지. 아마도 공작 영애를 걷어차게 한 비밀의 애인은 망명자인 발레리가 될 것이다. 대히트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저편에서 리텐하임 후작이 다가왔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이제부터 폐하를 배알하는 건가?”

  “음. 의붓아들을 얻어서 말일세. 폐하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가는 중일세.”

  부탁한다. 짜고치는 고스톱 좀 그만둬.


  “흠. 발렌슈타인 중장.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중장인가. 좋은 상속자를 얻어 부러울 따름일세.”

  “엘리자베스도 기뻐하고 있네. 사비네가 분해하고 있진 않은가?”

  “저건 아직 어린애일세. 그럴리 없지.”

  그렇게 말하고 리텐하임 후작이 큰 목소리로 웃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거기에 맞춘다. 나만이 침묵하고 있다.


  “중장.”

  “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는 함께 황실의 번병으로서 제국을 지지해왔네. 지금부터는 중장, 경에게도 황실의 번병으로서의 활약을 기대해도 되겠나?”


  이런 음험한 아저씨 같으니. 정신나간 소리를 하고 있다. 그때 총으로 위협한 것을 아직도 원망하고 있는가.

  “예. 기대를 배반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 부탁함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이 얼굴을 마주하고 끄덕였다. 이놈들 처음부터 짜고 있었구나. 뿌리부터 악당인 놈들!


  리텐하임 후작과 헤어져 앞으로 나아가니 겨우 알현실이 나왔다. 알현실에는 프리드리히 4세 외에도 리히텐라데 후작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웃긴 표정을 하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도 마찬가지다. 나만이 즐겁지 않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가……. 오늘은 무슨 용건인가?”

  “예. 이번 폐하의 허락을 얻어 의붓아들을 받아들어 인사를 위해.”

  “오오, 그런가.”


  이놈들도 짜고 고스톱인가. 하지만 나도 거기에 응해야만 한다.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입니다.”

  “음. 좋은 젊은이로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예.”


  황제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말을 건 다음, 이번엔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엘리자베스를 부탁하네. 저건 짐의 손녀이기도 하니.”

  “예.”

  이걸로 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데릴사위로 결정됐다.


  “폐하. 신은 이것을 기해 가독을 에리히에게 맡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흠. 은거할 셈인가?”

  “예. 허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에 황제는 조금 생각했다. 헌데, 의부의 은거는 확정사실일 테지만…….

  “가독을 넘기는 건 상관없지만, 은거는 허락 못하네.”


  뭐야, 그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묘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연기가 아니군.

  “그러시다면?”

  “지금부터도 궁중엔 출사하게. ……그렇군. 출사해도 작위가 없어선 뭐라 불러야 할지 곤란하겠지. 그대에겐 대공의 칭호를 하사하지.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이라 칭할 것을 허락하네. 애초에 대공령이라는 건 없으니 칭호뿐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프리드리히 4세는 웃긴 얼굴로 웃었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웃고 있다. 뭐,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저택에서 니트질하는 것보다는 좋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의 생각일까? 나와 공작의 관계를 신경 썼는가…….


  “……황송합니다. 지금부터도 부자가 함께 임하겠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감격한 얼굴로 감사를 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드니 황제와 리히텐라데 후작이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좋은 수로군. 대공의 칭호만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마음을 얻었다.


  알현을 끝내고 난 의부와 헤어졌다. 자수정의 복도로 가니 발레리와 호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합류하여 군무성으로 향한다. 호위는 모두 거한들이다. 올려봐야 하는 것이 좋은 기분이 아니다. 오늘은 불쾌한 일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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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486년 7월 12일. 오딘, 리르베르크 쉬트라제. 지크프리드 키르히아이스.


  발렌슈타인 중장이 뮐러 소장과 함께 라인하르트님을 방문했다. 중장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서려있다. 뮐러 소장은 조금 긴장한 것 같다. 그다지 좋은 징후라곤 할 수 없다. 그 외에 신경 쓰이는 점은 중장에게 동행자가 몇 명인가 있던 것이다. 중장은 싫은 표정으로 호위라고 말했지만, 중장에게 호위라니 들은 적이 없다. 무슨 일일까?


  발렌슈타인 중장은 방에 들어가서 라인하르트님에게 케슬러 소장, 로이엔탈 소장, 미터마이어 소장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모두에게 말해야 할 일이 있다고. 아무래도 동행자인 뮐러 소장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케슬러,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소장이 오는 사이, 모두 차를 마셨다. 호버 미망인이 신경써 준 것이지만. 준비된 것은 커피가 4개였다. 발렌슈타인 중장은 얼굴을 찡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아니 핥고 있다.


  케슬러,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소장이 온 것은 10분 이상 지났을 때였다. 호버 미망인이 새로 차를 준비했다. 이번엔 중장에겐 코코아를 준비해 주었다.


  “중장.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가?”

  라인하르트님의 질문에 중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뮐러 소장과 얼굴을 마주한다. 아무래도 말하기 힘든 일인 것 같다. 드문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인가? 라인하르트님도 수상쩍은 표정을 하고 있다.


  “어제, 궁중에 불려갔습니다.”

  궁중에? 중장이 궁중에 불려갔다? 무슨 일인가. 프레겔 남작의 일이 흘러간 것인가?


  “거기서 어떤 결정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결정사항?”

  중장은 라인하르트님의 질문에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아들…….”

  라인하르트님이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동감이다. 중장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아들? 무슨 말인가? 내 생각을 말로 한 것은 로이엔탈 소장이었다.


  “중장. 각하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아들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아들이 됩니다. 공작은 은퇴하여 제가 새로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됩니다. 군의 계급도 아마도 상급대장이 되겠죠. 그리고 프로이라인 브라운슈바이크과 결혼한다. 그런 겁니다.”


  이번엔 모두가 아연해한다. 중장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아들? 새로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무슨 말인가? 애초에 중장은 평민이다. 무슨 농담인가?

  “하지만 각하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평민이라는 거지요. 로이엔탈 소장.”

  “예.”


  로이엔탈 소장이 조금 어물쩍 끄덕였다. 중장은 한숨을 내쉬고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실은 저는 리메스 남작의 손자입니다.”

  “!”


  “제 어머니가 남작의 딸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낳은 할머니도 평민으로, 저희들은 평민으로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리메스 남작이 할아버지라는 걸 안 것은 그가 죽은 1주일 전입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 모른 채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중장이 리메스 남작의 손자……. 중장의 어머니가 남작의 딸……. 모두가 그 사실에 놀라는 얼굴로 마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작은 본래라면 리메스 남작가를 이을 사람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공작가의 양아들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동안 침묵이 방을 지배했다.


  “잘 모르겠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딸을 여제로 만드는 걸 포기한 건가?”

  미터마이어 소장이 중얼거리듯이 말을 뱉었다. 몇 명인가 소장의 말에 끄덕인다. 나도 동감이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미터마이어 소장의 말대로다. 이대로는 제국은 리텐하임 후작의 것이 된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그걸 인정한 것인가?


  “다음 황제는 엘윈 요제프 전하가 됩니다. 황후는 사비네 폰 리텐하임…….”

  “!”

  중장의 말에 모두 숨을 삼킨다. 중장은 꽤나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다.


  “리텐하임 후작은 딸을 황후로 하는 것으로 권세를 유지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국무상서로서 정권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새로운 당주는 군의 중진으로서 그들을 돕는다…….”

  “!”


  다시 말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이 손을 잡은 것인가.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새로운 당주……. 발렌슈타인 중장이 군의 중진이 되어 제국을 지킨다……. 그렇게 생각하니 중장이 꽤나 자조가 섞인 웃음을 흘렸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 그리고 군대……. 그들은 지금까지 뿔뿔히 흩어져 반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그들은 협력하여 나아갈 것을 선택한 겁니다. 그 희생이 저입니다.”


  중장에게 있어서 바라던 일이 아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무심코 한숨이 나온다.

  “거절할 순 없습니까? 중장.”

  케슬러 소장이 중장을 다독이듯이 묻는다. 무리인 것은 알고 있다. 제국의 실력자들이 결정한 일이다. 중장이 거절할 수 있을리 없다. 실제로 케슬러 소장의 질문에 발렌슈타인 중장은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리입니다. 케슬러 소장. 이 일로 칙허가 내려왔습니다.”

  “칙허?”

  케슬러 소장이 따라하듯이 묻는다. 모두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 칙허까지 내려왔다. 그렇게나 그들이 진심이라는 것인가.


  “예. 칙허입니다. 프로이라인 브라운슈바이크는 황손이니까요. 이미 전례성에도 신청이 들어갔습니다. 칙허가 있으니까 각하할 수도 없습니다. 아마도 내일에라도 인정되겠죠. 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사람이 됩니다.”


  ‘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사람이 됩니다.’, 그 말이 방 안에 무겁게 울렸다. 누구나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모두 내란을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내란이 벌어지면 지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국내가 어지러워지는 건 피하고 싶다. 군도 내란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선 원정에도 나갈 수 없다. 모두 내란을 피하고 싶다. 그러니…….”


  그러니 발렌슈타인 중장을 집어넣어, 사태 수습을 꾀했다. 라인하르트님이 날 본다. 곤란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보이지 않는 거겠지. 나도 동감이다. 중장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된다. 그리고 귀족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귀족은 무섭지 않다. 하지만 귀족들은 주의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대론 중장이 적이 된다.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하는가…….“


  “뮈젤 제독. 지금부터 위험한 건 뮈젤 제독입니다.”

  “나?”

  발렌슈타인 중장의 말에 라인하르트님은 수상쩍다는 듯이 되물었다. 중장이 끄덕인다. 중장의 표정은 진지하다. 농담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놀란 표정으로 중장을 보고 있다.


  “귀족들은 지금까지 반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뮈젤 제독에게도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릅니다.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면 당연히 다른 적을 찾기 마련입니다. 최초로 표적이 되는 건 뮈젤 제독입니다.”

  “…….”


  중장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부터 라인하르트님은 무척 위험한 입장에 서게 된다. 그리고 적대하는 상대가 되는 것은 발렌슈타인 중장. 아니 새로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겠지. 공작가의 힘. 그리고 새로운 공작의 역량. 두려운 적이 될 것이다.


  “뮈젤 제독은 총희의 동생이라는 것으로 주변에서 반감을 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귀족들은 제독이 언젠가 황제에게 반역하는 건 아닐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

  발렌슈타인 중장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긴박해진다. 모두 라인하르트님과 중장을 교대로 보고 있다.


  “저에게 협력해주지 않겠습니까? 뮈젤 제독.”

  “……경에게 협력?”

  중장이 묘한 것을 말한다. 협력? 대체 무슨 협력을 하라는 건가?


  “국내를 개혁합니다. 귀족들의 권력을 제한하여 평민들의 권리를 확대합니다. 일부의 특권계층이 약자를 짓밟는 지금의 제국을 바꿉니다.”

  모두 놀라서 중장을 봤다. 하지만 중장은 신경쓰지도 않고 라인하르트님을 보고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제가 제국을 바꾸고자 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절 양아들로 만들고자 하는 겁니다.”

  “…….”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아까까지 놀라고 있던 사람들이 이번엔 망연하게 중장을 보고 있다. 혹시 중장은 그들을 믿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라인하르트님에게 협력을 구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백작 부인을 뺏은 폐하를 용서할 수 없습니까?”

  “…….”

  “폐하는 뮈젤 제독이 폐하를 증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찬탈 의지가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제독을 세우신 겁니다…….”

  “바보 같은…….”

  라인하르트님이 아연하게 말을 뱉었지만, 중장은 머리를 저으며 말을 계속했다.


  “사실입니다. 그분은 범용하지 않습니다. 범용한 척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대론 제국은 다시 일어설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여 뮈젤 제독에게 제국의 재생을 위탁하려 한겁니다…….”

  “…….”

  누구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저 범용하다 일컬어졌던 황제가 실제론 다르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한번 둘이서 만나보면 어떻습니까?”

  “그건.”

  “만나도 손해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진짜 폐하를 아셔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발렌슈타인 중장이 열심히 라인하르트님을 설득한다. 라인하르트님은 조금 망설였지만, 결국 마음을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만나보지.”


...


■ 제국력 486년 7월 12일. 오딘, 신무우궁, 장미정원. 라인하르트 폰 뮈젤.


  만나보겠다곤 했지만 그 날로 황제와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발렌슈타인은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 내 동의를 얻는 대로 바로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연락하여 황제와의 면회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비공식이기 때문에 장미정원에서 만나게 됐다.


  장미정원으로 향하니 황제는 이미 날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누님도 있다. 근처에 다가가 무릎 꿇고 인사를 말하려하니 황제가 그걸 말렸다.

  “인사는 필요 없네. 일어나게. 여기는 허례허식이 필요 없는 곳이니.”

  “예.”


  어떻게 해야하나. 인사는 필요없다곤 하지만, 일어나도 좋은 것인가. 아니면 여긴 무릎 꿇은 상태로 있어야만 하나. 망설였지만 누님을 보니 미소하며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마음 먹고 일어섰다. 그런 날 보고 황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그대가 짐과 만나고 싶다니 드문 일이군. 짐에게 뭘 듣고 싶은가?”

  “……발렌슈타인 중장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아들이 된다고 합니다만…….”

  내 말에 황제는 묵묵히 끄덕였다. 곁에 있는 누님이 놀란 표정으로 나와 황제를 보고 있다.


  “그 남자도 꽤 하는구먼. 가장 강력한 적을 아군으로 삼을 줄이야. 과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서 궁중을 넘볼만한 자일세.”

  “…….”

  프리드리히 4세는 즐거워 보인다. 난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대는 유감스럽겠군.”

  “예?”

  “가장 믿음직한 아군을 적에게 뺏겼으니 말일세.”

  가장 믿음직한 아군……. 분명 그렇다.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지만 믿음직하다. 그가 적으로 돌아가면 귀찮은 일이 될 것이 틀림없다.


  “짐은 이 제국을 재생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네. 그리고 그대를 찾았지. 기뻤다네. 라인하르트 폰 뮈젤. 그대라면 이 제국을 새롭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말이지.”

  “…….”


  “그대는 아마 골덴바움 왕조를 멸망시키겠지.”

  “폐하! 동생이 그런 일은…….”

  “괜찮다네. 안네로제. 여기는 장미정원일세. 우리들 이외엔 아무도 없어…….”

  “폐하…….”


  난 묵묵히 황제와 누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부정하는 것보다도, 내 야심을 알고 있었던 것이 충격이었다. 분명 이 남자는 범용하지 않다. 난 대체 뭘 보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네. 제국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폐하. 폐하는 제국이 멸망하리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망설이며 황제에게 묻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는 제국의 멸망을 전제로 말하고 있다. 진심인 것인가?


  “멸망하겠지. 그대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가?”

  “…….”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분명 제국은 혼란에 빠져있다. 대귀족들이 세력을 넓혀 힘을 경쟁하고 있다. 언젠가 내란이 일어난다. 내가 황제가 되기 위해선 그 내란이 일어나기 전에 확고한 지위를 가져야만 한다.


  “그대에겐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네. 그대를 끌어들여 기껏 세운 주제에, 이제와서 그대를 잘라버리는 짓을 하는 것을.”

  “잘라버린다…….”


  누님이 숨을 삼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황제의 말에 흥미가 동했다. 날 잘라버린다니. 무슨 일인가. 생각하고 있으니 황제는 날 보고 웃었다.

  “그대는 중요한 부분이 아직 무르구먼.”

  “…….”

  내가 무르다? 무심코 반발하고 싶어져 참았다. 지금 입을 열면 말도 안되는 짓을 할 것 같다.


  “발렌슈타인은 이 나라를 개혁할 생각일세.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 리히텐라데 후작. 그리고 군도 그것을 지지하고 있네. 알겠는가? 그 이외에도 제국을 재생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것일세.”

  “…….”


  “제국을 재생할 수 있는 것은 그대거나 발렌슈타인이겠지. 그 방향은 정반대지만. 그대가 불이라면 발렌슈타인은 물이네. 그대는 모든 걸 태워버리고 새로운 제국을 만들 것이 틀림없어. 희생이 많겠지……. 그러니 짐은 발렌슈타인을 택할 걸세……. 황제로서 희생이 적은 방법을 택할 걸세……. 미안하네.”

  “…….”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은가. 멋대로 말하지 말라고 화내야 할까? 하지만 내가 황제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희생이 적은 방법을 택할 것이 아닌가…….


  “발렌슈타인이 뭐라고 했는가?”

  “……자신에게 협력해달라고.”

  “그런가.”

  황제는 내 대답에 천천히 끄덕였다.


  “라인하르트 폰 뮈젤. 발렌슈타인에게 협력하게. 그것이 그대의 목숨을 구할 방법일세.”

  “!”

  나에게 저 남자의 아래에 들어가라는 것인가?


  “안네로제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나……. 그대가 망할 때, 안네로제도 망하게 되네. 그것으로 좋은가?”

  “…….”

  내가 망할 때, 누님도 망한다…….


  “그대에게 로엔그람 백작가를 잇게 한다는 이야기네만.”

  “예.”

  “그건 철회함세.”

  “!”


  황제는 날 슬픈 눈으로 봤다. 날 모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대를 지키기 위해선 오히려 작위는 필요 없네. 부탁하네. 뮈젤 대장. 안네로제를 지켜주게. 짐의 수명은 길어야 3년.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게나…….”

  “예.”


  “서로 만난 건 오랜만이겠지. 안네로제와 이야기하고 가도록 하게.”

  그렇게 말하고 황제는 나와 누님에게 등을 돌려 장미정원을 떠나갔다. 난 떠나가는 황제의 모습을 바라봤다. 자연히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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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486년 7월 11일. 병참통괄부 지하 2층, 자료실. 나이트하르트 뮐러.


  "그래서 날 팔아넘겼다는 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아니 안톤도 알고 있겠지…….

  "……."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거다. 안톤."


  "아아, 알고 있어. 경이 문벌귀족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 처부수고 싶어하는 것도 말이지."

  조용한 목소리였다. 안톤은 침착하다. 표정도 온화하다.

  "그럼 어째서 이런 짓을."

  "경을 위해서다."

  "?"

  "경을 위해서라고 말했어."

  정색한 말투였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안톤.


  "어째서 프레겔을 죽이지 않았지?"

  프레겔? 급사했다던 프레겔 남작인가. 거기에 에리히가 엮여있던 건가?

  "……."

  에리히는 안톤을 노려보며 입을 닫고 있다. 안톤도 에리히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어째서 프레겔을 죽이지 않았냐고 묻고 있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폭발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거짓말이군. 경은 정에 끌렸을 뿐이야."

  "아냐!"

  "아니긴! 프레겔이 죽어도 공작은 폭발하지 않아. 프로이라인을 위험하게 할 짓을 할리가 없어. 경은 정에 끌렸을 뿐이야!"

  "아니야!"

  노성의 교차였다.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서로 노려보고 있다.


  "괴로워하는 공작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 아닌가?"

  "……."

  에리히는 창백하다. 그래도 안톤을 노려본다. 아플 정도로.

  "정신을 잃은 프레겔을 옮겼을 때, 어째서 우리들의 경에게 목례했다고 생각하나? 경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감사하고 있다고."

  "……."

  에리히가 시선을 피했다. 안톤, 이제 그만둬. 경의 승리다.


  "내란이 되면 많은 희생자가 나온다. 그걸로 된거냐?"

  안톤, 그만둬.

  "귀족들이 멸망한다면 대환영이야."

  에리히도 그만두라고.


  "귀족들만의 싸움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거야. 몇백만, 아니 몇천만에 가까운 인간들이. 그걸로 된거냐? 에리히."

  "……."

  에리히는 조금씩 떨고 있다. 분노인가. 아니면 고통인가. 참을 수 없어졌다.

  "이제 그만둬라. 안톤. 그 정도로 해둬."


  "안돼. 나이트하르트. 이건 중요한 일이야. 에리히. 경에겐 무리다. 참을 수 없겠지. 아닌가?"

  "……할 수 있어. 뮈젤 대장이 있어. 그는 천재다. 그는 귀족들을 멸망하고, 황제를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가 될 생각이다. 나는 그와 함께 싸우겠어. 그리고 귀족들을 처부순다!"


  짜낸 듯한 목소리였다. 그건 그렇고 뮈젤 대장인가? 분명 태강이 있는 분이지만…….

  "……내란을 일으켜서 말인가?"

  "그래."

  이제 그만둬라 에리히. 어떤 기분으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내란을 일으키지 않아도 귀족들을 처부술 수 있다. 그렇게 말한다면 어떠냐?"

  내란을 일으키지 않아?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안톤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진지하다.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에리히도 의표를 찔린 듯 하다.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리히텐라데 후작도 경을 방해하지 않아. 그런 말이다."

  "?"


  "내가 경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경의 마음을 전했지. 경이 귀족들을 증오하고 있다. 멸하고 싶다고 밀이지."

  "……."

  "전혀 상관없다고 하시더군. 이기주의에 어리석은 데다가 도움도 되지 않는 귀족들 따위 필요 없다고 말이지."

  필요 없다? 귀족이 귀족을 부정한다는 건가?


  "무슨 말이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그들 때문에 조금만 더 하면 멸망할 뻔했다고? 귀족들에게 호감 따위 파편도 있을까보냐. 공작은 클로프슈토크 후작을 칭찬할 정도였다.

  "?"

  클로프슈토크 후작을 칭찬했다? 반역자를?


  "영주민들이 누구도 클로프슈토크 후작을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로프슈토크 후작은 30년간 궁중에 들어오지 못했어. 그 사이에 영내의 통치밖에 할 일이 없었던 거겠지. 선정을 펼쳤다는 듯 하다."

  "……."

  과연. 그런 건가.


  "도움도 되지 않는 귀족보다 평민 쪽이 신뢰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셨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뿐이다. 다른 이들은 달라."

  에리히는 어딘가 자포자기한 어조로 말했다.

  "리텐하임 후작도 리히텐라데 후작도 마찬가지다. 어제 이야기했어."

  "어제?"


  "그래. 우리들 사이에 이야기가 정리된 후, 바로 리텐하임 후작과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상담했어. 그 때 귀족들을 뭉개버리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이견은 없었다."

  "설마."

  에리히가 기가 막힌 듯이 말했다.


  "당연하지. 이유는 같아. 귀족연합 따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리텐하임 후작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오펜하이머 때문에 반역자가 될 지경이었다고. 그의 눈에는 귀족따위 도움도 되지 않는 배신자로밖에 보이지 않아."

  "……."


  "리히텐라데 후작은 더 과격했지. 저 노인에게 있어서 내란은 악몽이라고."

  "아냐. 제국의 패권을 잡을 기회다."

  에리히가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런 건 바라지 않아. 내란이 일어나면 제국은 피폐하여 혼란에 빠진다. 그 복구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거라 생각하지? 저 노인은 이제 일흔을 넘고 있어. 그에게 내란의 뒤처리를 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나? 처리하기 전에 과로사할거야."

  "……."


  "귀족이란 황실을 지키고 제국을 지키는 수호자다. 하지만 작금, 귀족은 그 본분을 잊고 사리사욕만을 취하고 있어. 그 결과 제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황통을 위험하게 했다. 존속할 가치가 없어."

  "……."

  "평민이, 클로프슈토크 후작을 지켰듯이 황제를 지킨다면, 이후 황제의, 제국의 수호자가 될 역할을 짊어지는 것은 평민이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한 말이다."

  "……있을 수 없어."

  얼이 빠져 있다. 나도 동감이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귀족을 부정하고 있다. 후작이 아니라면 반역죄를 물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다.


  "그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멸망이 닥쳐와서 모두 알아차린거야. 지금 이대론 언젠가 멸망할거라는걸. 이번엔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었을 뿐이란걸."

  "……."

  "멸망하고 싶지 않다면 변할 수 밖에 없어. 그걸 경에게 맡기려고 하는거야."

  "……."


  "경이 좋을대로 하면 돼. 모두 협력할거야. 내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어."

  안톤이 상냥한 어조로 말한다. 에리히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너무한 녀석이다. 날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고서. 이래서 난 경이 싫다고."

  에리히가 시선을 외면한 채로 토라진 어조로 안톤을 비난한다.


  "알고 있어. 미워해도 좋아. 하지만 난 경과 싸우고 싶지 않아……."

  안톤은 쓴웃음을 지으며, 비난을 받아들었다. 이 녀석들은 언제나 그렇다. 싸움해도 마지막엔 누구보다도 서로 이해하고 있다.

  "……모두, 내 목숨을 노리게 되겠지. 불평하는 귀족, 자유혹성동맹, 페잔, 그리고 뮈젤 대장……. 날 죽일 셈이냐? 안톤."


  "죽게 하지 않을거야. 내가 방패가 되지. 그 각오는 이미 되어 있어."

  "안톤. 그건 내가 할 역할이다. 헌병총감으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경은 에리히를 데리고 도망쳐."

  "에리히가 그런 걸 바랄 것 같아? 귄터."

  "……."


  "경은 내 방패가 되라고."

  "……알았다."

  "유능한 함대사령관이 필요하겠군. 아무래도 나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소관을 제국에 망명하도록 한 건 각하입니다. 어디까지나 따라가겠어요."

  "……바보다. 경들은 모두 바보다. 난 바보가 싫어. 경들이 정말 싫다."


  울기 시작한 에리히를 둘러싸고 우리들이 모두 웃기 시작한다. 어려보이기까지 하는 에리히가 아무래도 사랑스러웠다. 우리들이 향해가는 곳은 지옥이겠지. 하지만 그런 장소이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괜찮다. 분명 잘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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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486년 7월 11일, 제도 오딘. 안톤 페르너.


  "알겠습니다. 그럼 병참통괄부 제 3국에서 뵙도록 하죠."

  역시 날 부르는가……. 화내고 있겠지. 에리히.

  "왜그러나? 페르너 대령."

  "안스바하 준장. 에리히가 좀 보자고 하는군요."


  "호오, 그런가. 축하의 말이나 전해주게나. 미래의 공작 각하에게."

  웃으면서 기쁜 듯이 안스바하 준장이 말한다.

  "농담하지 말아주세요. 살해 당한다구요? 그런 짓을 했다간."

  안스바하 준장도 심하다. 알고 있으면서 말하는 거니까.

  "누가 살해 당하는 걸까? 페르너 대령."


  "물론 소관입니다. 슈트라이트 준장."

  "경이 죽는 걸로 발렌슈타인 중장이 납득해 준다면 그것도 좋지. 아닌가? 안스바하 준장."

  이쪽은 입꼬리도 움직이지 않고 무서운 말을 한다.


  "분명 그렇습니다만. 될 수 있으면 살아서 돌아오면 좋겠군요. 소관들의 소중한 장난감이니까요."

  "뭘. 장난감이라면 이제 곧 새로운 것이 도착할걸세. 그렇지 않나?"


  이 사람들 정말 심하다. 두 사람 절반 정도는 진심이니까 더욱 질이 나쁘다. 마음이 뒤틀린 어른이 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군.

  "말해둡니다만, 에리히는 화나면 무서우니까요. 장난감이라니 어림도 없습니다."


  "농담이라네. 대령. 그보다도 중장에게 제대로 설명해서 납득하게 해주게나. 불만을 가진채로 온다 해도 엘리자베스님이 불쌍하실 뿐이다."

  "알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보장은 할 수 없어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서 병참통괄부로 자동차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 접수처에서 내방을 알리니 바로 한 여성이 마중 나왔다. 꽤나 미인이다. 에리히의 부관인 피츠시몬즈 소령이었다. 소령과 인사를 하고 병참통괄부 제 3국의 응접실로 안내 받았다.


  "안톤. 어째서 여기에?"

  "!"

  선객이 있었다. 안에 있던 것은 나이트하르트와 귄터였다.

  "경들이야말로. 어째서 여기에?"

  "난 에리히가 불러서. 귄터는 뭔가 용무가 있는 것 같지만."

  나이트하르트는 아직 모르는 것 같군. 귄터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내 쪽을 묘한 눈으로 보고 있다.


  "귄터, 무슨 일로 여기에?"

  일단 모르는 척 하고 물어볼까.

  "헌병총감의 명이다. 그래서 여기로 왔어. 경이로군? 이번 일을 꾸민 것은."

  헌병총감? 군무상서가 손을 쓴 건가.

  "……무슨 말이지? 잘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지 말라고. 에리히는 화내고 있어. 말해두겠는데 난 도와주지 않을거야."

  "……."

  "무슨 이야기야?"

  나이트하르트. 경도 알면 날 책망하겠지…….


  문이 열리고 에리히가 들어왔다. 표정이 굳었다. 위험하군. 확실히 화내고 있다. 아니 화가 날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역시 위험하다. 우리들을 보고 귄터가 있는 것에 놀란 것 같다. 귄터에게 묻는다.

  "어째서 여기에?"


  "헌병총감의 명령이다. 이유는 안톤이 알고 있을 것 같군."

  "헌병총감……. 그런가. 그렇군. 확실하게 듣도록 하지. 여기선 좀 그러니까 장소를 바꿀까?"

  에리히는 잡아 당기는 듯한 웃음을 띄우며 나를 본다.

  "그게 좋겠지."

  귄터는 조금도 웃지 않는다. 너희들 그렇게 내게 압박 줘서 즐겁냐?


  우리들을 안내한 곳은 병참통괄부의 지하 2층에 있는 자료실이었다. 통칭 '물자창고'라고 하는 듯 하다. 나이트하르트는 한번 온 적이 있는 듯 하다. "그립다"라고 하고 있다. 넌 좋겠네. 무사태평해서. 난 처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인이 된 기분이다. 피츠시몬즈 소령도 들어오라는 말을 들어서 조금 망설이면서도 들어온다. 겁내고 있는 건가?


...


■ 제국력 486년 7월 11일. 병참통괄부 지하 2층, 자료실. 나이트하르트 뮐러.


  아무래도 이상하다. 귄터도 에리히도 조금도 웃지 않는다. 분명히 화내고 있다. 피츠시몬즈 소령은 뭔가 두려워하는 느낌이다. 안톤은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이 녀석도 긴장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럼, 안톤. 어째서 이렇게 된건지. 한번 들어볼까?"

  에리히는 언제나와 달리 입술을 잡아 당기는 듯한 웃ㅁ을 띄우고 있다. 안톤. 대체 뭘 한거냐?

  "아니, 뭐. 그. 화내고 있나? 역시."

  "당연하지! 이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자라니 대체 무슨 소리냐!"

  "양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무심코 난 목소리를 올리고, 피츠시몬즈 소령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녀도 놀라서 혼란에 빠져있다.


  "잠깐 기다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양자라니 무슨 소리냐?"

  뭐야 그거? 이상하지 않아?

  "그 말대로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날 양자로 삼고 싶다는 것 같더군."

  에리히는 가시가 돋힌 말투로 대답한다. 시선은 안톤에게 향한 상태다.

  "프로이라인 브라운슈바이크와는 어떻게 되는거냐?"

  설마 결혼하는 건가. 상대는 황제의 손녀라고?

  "결혼하는 듯 하더군. 나와."

  "다시말해 데릴사위인가?"

  "아냐. 양자가 먼저고, 다음이 결혼이다."

  잘 모르겠군. 어디가 다른거냐?


  "하지만 그런게 가능한가? 애초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프로이라인을 황제로 하고 싶어하지 않은가."

  "포기한 듯 하더군."

  "포기했다?"

  "그래. 거기에 있는 안톤이 설득한 거겠지. 아닌가?"

  에리히는 호감의 파편조차 없는 시선으로 안톤을 본다. 거기에 이어서 나도 안톤을 본다.


  "그래. 조금 다르군. 맨 처음 프로이라인의 남편으로 경을 생각한 사람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이 녀석의 나쁜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하게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귀여움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해서."

  "진정해.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들어."

  항의하려는 나애게 안톤은 침착한 목소리로 제지했다.


  "저번의 클로프슈토크 후작 반란 진압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시작하여 우리들은 위기감을 가지게 됐다."

  "위기감?"

  "절망감이라고 해도 좋겠지. 이대론 내란이 일어났을 때 틀림없이 진다. 그걸 알았기 때문이다. 귀족연합따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싫을 정도로 알게 되었어."

  안톤의 목소리에는 쓴맛이 섞여 있다. 어지간한 일이 있었겠지.

  "……."


  "어떻게 해야할지 매일 생각했어. 하지만 좋은 안이 없었지. 단순히 황위계승 싸움에서 떨어지려고 해도 주변이 허락하지 않아. 나름대로 실리가 없으면 말이지. 가문의 존속이 걸려 있어. 모두 필사적이지. 마치 미로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 나도 완전히 질려버렸지."

  쓴맛이 더더욱 강해진다.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양자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 거냐?

  "……."


  "그럴 때였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에리히와 프로이라인을 결혼시킨다고 말한건. 기가 막혔지. 미쳤나라고도 생각했다."

  지금도 기가 막혀 있는건 아닌가? 이 녀석.

  "……."

  "하지만 공작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가 큰일이었지. 공작과 안스바하 준장, 슈트라이트 준장, 그리고 나. 네 명이서 하루종일 생각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잘 될거라고 생각했다. 흥분했어. 바보 같이 소란 피웠지. 우리들은 살 수 있을 거라고."


  "어째서냐?"

  "에리히를 양자로 한다. 그리고 공작은 은거하고 에리히가 새로운 당주가 된다. 당연히 군대의 계급도 나름대로 올라가겠지. 뭐, 상급대장 정도일까? 장식품 상급대장이 아니야. 실력을 동반한 상급대장이다. 나이트하르트. 경은 전쟁에 나가 있어서 모르겠지만, 황제폐하 불예 때에 오딘을 지배하고 있던 건 에리히였다. 계급이 낮아서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지만 실력으로 말하자면 제국군 3장관에 다음가는 실력자라고. 그 실력에 상응하는 계급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준비한다."


  눈빛이 날카롭다. 언제나처럼 장난기를 품은 눈이 아니다. 안톤은 진심이다. 난 무심코 피츠시몬즈 소령을 봤다. 소령은 노려보는 듯한 눈으로 안톤을 보고 있다.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궁중에서의 힘과 새로운 군대의 힘을 얻게 되겠지.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어."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 일을 국무상서가 인정할까?"

  "인정한다."

  안톤은 간단하게 단정했다.

  "!"


  "모두 내란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리텐하임 후작도 내란이 일어나면 질거란 걸 알고 있어. 리히텐라데 후작도 국내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건 피하고 싶지. 군대도 반란군을 상대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 집안 싸움따위 사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특히 뮈켄베르거 원수는 심각하다. 내란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선 ㅤㅅㅓㅌ불리 원정을 나갈 수 없어. 모두 내란은 피하고 싶어한다고. 단지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 계기만 있으면 막을 수 있어……."

  "……."

  그 계기가 에리히가 양자가 되는 것인가…….


  "다음 황제는 엘윈 요제프 전하가 된다. 황후는 사비네 폰 리텐하임이다. 황제를 리히텐라데 후작이 황후를 리텐하임 후작이 후견한다. 그것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가 지지한다. 이걸로 모두 둥글게 수습될거야."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지 말하지만…….


  "가능한건가? 에리히는 귀족이 아니라고."

  "칙허를 얻었다고. 문제 없어. 오히려 보장수표가 붙은거나 마찬가지야. 어떤 귀족보다도 프로이라인의 결혼 상대로 어울린다고 황제가 인정한거니까. 게다가 에리히는 리메스 남작의 피를 잇고 있어.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못할거야."

  "리메스 남작?"

  에리히는 저 리메스 남작의 피를 잇고 있다는 건가…….

  "모두 크게 기뻐하고 있다고. 완벽하다고 말이지. 나도 마찬가지고."

  경이 기뻐하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눈 앞에서 경을 노려보고 있는 에리히를 어떻게 하는게 좋을거라 생각하는데. 게다가 피츠시몬즈 소령도다. 말해두겠지만 나도 귄터와 마찬가지로, 경을 도울 생각은 없어. 힘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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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486년 7월 11일. 신무우궁.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방에서 사람이 나왔다. 놀랍게도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 군무상서 에렌베르크 원수, 통합본부장 슈타인호프 원수, 우주함대 사령장관 뮈켄베르거 원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리텐하임 후작이 있다.


  뭐야 이거? 제국 굴지의 실력자가 모여서 뭘하고 있었던 걸까? 황제 폐하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생각하고 오싹했지만, 모두 표정이 밝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함박 웃음이다. "이야, 다행이야. 다행이야."라던가 "경사롭구먼."이라던가 말하고 있다. 뭐야 이거? 아니, 그것보다 우리 중장 각하는 어째서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거지?


  조심조심 방에 들어가니 중장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놀라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표정이 이상하다. 미간을 찌푸리고 쭉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평소의 온화함따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말도 걸지 못하고 서서 움츠리고 있으니 그가 눈치챈 것인지 시선을 향해왔다. 무섭다. 평소의 온화하고 상냥한 시선이 아니다.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시선이다. 이런 눈도 할 수 있구나.


  "황제 폐하를 배알하고 오겠습니다."

  무기질적이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예."

  "소령은 먼저 돌아가세요."

  질문을 용서하지 않는 목소리다.

  "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섬기고 있는 페르너 중령. 아니 페르너 대령. 그리고 뮐러 소장을 불러주세요."

  "예."


  그것만을 말하고 중장은 일어나 나따위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방에서 나가는 걸 본 직후, 나는 무너져 쓰러질듯이 손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저건 중장이 아니다. 좀 더 다른 뭔가다. 떨리는 몸을 양손으로 감싸며 나는 울음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


■ 제국력 486년 7월 11일. 신무우궁, 장미 정원. 에리히 발렌슈타인.


  오늘도 황제는 전정 가위를 손에 쥐고 장미를 보고 있다. 나는 황제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왔는가."

  "옛."

  "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을테지?"

  "……어째서, 양자를 허락하신 겁니까?"

  "흠. 모두 찬성하고 있어서 말일세. 짐이 반대할 수도 없었다네."

  "……."

  웃기지 말라고, 이 자식아.


  "훗훗훗.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황제는 내 쪽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가지고 노는 것 같아서 재미없다.

  "……."

  "제국은 멸망하고 있다네."

  "!"

  나는 무심코 황제의 얼굴을 봤다. 온화한 표정이다. 체념? 싹뚝하고 황제가 장미의 가지를 잘랐다. 가지가 땅에 떨어진다.


  "그림멜스하우젠으로부터 짐이 방탕한 이유를 들었겠지?"

  "……."

  "황제 계승 싸움을 싫어했다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네. 짐에겐 제국이 멸망하는 걸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일세."

  "……."

  제국이 멸망한다…….


  "아버지, 오트프리트 5세의 치세 아래에 제국은 이미 붕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네. 귀족들이 강대화하여, 정치는 사물화되기 시작했네. 제국은 천천히 썩어가기 시작했다네."

  황제는 온화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변함없이 시선은 장미를 향한채다. 내가 있는 것을 정말로 눈치채고 있는 걸까. 그건 그렇다쳐도 표정과 말하는 내용의 낙차가 심하다.

  "……."


  "짐은 그걸 알 수 있었다네. 언젠가 제국은 분열하여 내란 상태가 되고, 은하제국은 없어질거라고 말일세."

  "어째서 그걸 막지 않으신 겁니까?"

  황제는 장미에서 시선을 거둬 허공을 바라봤다. 여전히 난 무시다.

  "아는 것과 막는 것은 다른 문제일세. 짐에겐 막을 수 있을만한 힘이 없었어……."

  "……그래서 제위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방탕하게 생활했다는 거군요."

  "음."

  "……."

  황제의 옆 얼굴에는 무력감이 있었다. 이 남자의 비극이다. 누구보다도 미래가 보였는데도 그것을 바꿀 만한 힘이 없었다. 황제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불가능했던 것이다. 고통이었겠지.


  "하지만 짖궂게도 제위는 짐에게 돌아왔네. 그로부터 멸망을 뒤로 미루는 것이 짐이 할 일이었네. 어떤 즐거움도 없이, 멸망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일생……, 고통스러웠네. 맨정신으론 할 수 없는 일이야."

  "……."

  황제의 목소리에는 고통이 차 있었다. 매일을 술로 보낸 것은 그 때문인가……. 황제가 날 향해 얼굴을 돌렸다. 지쳐있는 노인의 얼굴이 있다.


  "보도록하게. 지금의 제국을. 문벌귀족은 비대화하고, 서로 세력 다툼이나 하고 있네. 국무상서는 어떻게든 막으려 하지만 과연 어떻게 될런지."

  분명 그 말대로다. 원작에선 폭발했다.

  "내란이 되어도 뮈켄베르거 원수가 있습니다. 제국은 안전하겠죠."

  위안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겐 되지 않겠지. 내란이 끝나면 엘리자베스도 사비네도 이 세상에는 없을 걸세. 그렇게 되면 황족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엘윈 요제프 한 명 뿐. 그리고 저놈의 자질은 총명이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네. 언젠가 혼란 속에서 제국은 자멸하게 되겠지. 자네는 그래도 제국은 안전하다고 할텐가?"

  "……."


  황제의 대답에는 명쾌하고 목소리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거기까지 읽고 있었는가…….

  황제만큼 제국의 미래를 계속 생각해 온 남자는 없지 않을까? 그 결과 항상 비참한 미래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 황제의 방탕을 내가 책망할 순 없다……. 실제로 술을 마신 것도 여자를 안은 것도 즐거움 때문이 아니다. 절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겠지.


  "그럴 때, 저 남자와 만났네. 라인하르트 폰 뮈젤. 누구나가 짐에게 아첨하고, 조금이라도 이득을 챙기려 하던 중, 저건 똑바로 짐을, 그리고 귀족들에 증오를 향해왔네. 기분이 좋았다네. 저 증오와 패기, 재능. 저거라면 이 제국을 재생, 아니 새롭게 창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네."

  "……."

  황제의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있다. 골덴바움 왕조의 멸망을 슬퍼하기보다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바랐는가……. 황제는 다시 장미를 바라본다. 즐겁다는 듯이 장미를 보고 있지만 정말로 보고 있는 건 장미일지? 아름답고, 그리고 가시가 있는 장미. 마치 누군가와 마찬가지 아닌가?


  "저건 골덴바움 왕조를 없애겠지. 하지만 은하제국은 그걸 기반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 틀림없네……. 그로부터 저것이 짐에 다가오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네.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는 것은 쓸쓸하지만 그것이 숙명이라면 별 수 없지. 충분히 화려하게 멸망하도록 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네."

  "……."

  화려하게 멸망인가……. 확실히 골덴바움 왕조로부터 로엔그람 왕조로 바뀌는 건 화려하다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흘러간 피의 양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로엔그람 왕조는 성립한 직후 지구교, 자유 혹성 동맹, 양 웬리, 로이엔탈 등의 피로 채색하게 된다…….


  "그럴 때였네. 그대가 나타난 것은. 누구나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기 시작한 그대를 누가 아군으로 삼을 것인가. 거기에 따라 제국의 미래가 정해질거라 생각했네. 뭐, 뮈젤의 곁으로 갈거라 생각하긴 했네만. 설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그대를 양자로 받고 싶다고 할줄은 몰랐네."

  "……."


  "놀라긴 했지만 묘책이라고도 생각했네. 듣고나서 처음으로 깨달았네. 제국을 골덴바움 왕조를 기반으로 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책략이라고. 새로운 미래를 말일세. 오랜만에 흥분했다네. 저 남자가 이런 책략을 생각할줄이야. 멋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서 궁중에서 살아온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더군. 훗훗훗. 평탄한 길이 아닐세. 혼란도 있겠지. 하지만 내란보다는 흐르는 피의 양도 적을 것이 틀림없네."

  "……."

  멋대로 말하지 말라고. 난 콘라트 발렌슈타인의 아들이다. 귀족따위 될 생각 없어.


  "그대에게 제국을 맡김세."

  "!"

  정신을 차리니 황제는 날 보고 있다. 조용하고 침착한 눈이다.

  "적당한 마음으로 말하는게 아닐세. 짐의 수명은 앞으로 3년 정도겠지.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게나."


  "제국을 재생할 수 있는 것은 뮈젤이나 그대겠지. 뮈젤과 그대는 정반대일세. 뮈젤이 불이라면, 그대는 물일세. 저건 전부를 태워버리고 새로운 제국을 만들 것이 틀림 없네. 희생이 많겠지……. 그대는 다르네. 불필요한 것만을 씻어내고 제국을 새롭게 만들 것이 틀림 없어. 시간은 걸리겠지만 희생은 적겠지. 짐은 그대를 선택함세. 모두가 그대를 선택하듯이."

  "모두, 말입니까?"

  "그렇네. 국무상서. 제국 3장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 지금은 모르더라도 언젠간 눈치챌 것일세."

  "……."


  "엘윈 요제프는 결코 총명하다곤 할 수 ㅇ벗네. 많은 자들이 저것을 황제로 한 것을 후회하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인망은 그대에게 몰리게 될걸세. 그대와 엘리자베스가 제국을 움직이게 되겠지. 제국을 맡김세. 짐은 이 나라의 백성을 행복하게 할 수 없었네. 하지만 그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네. 부탁하네."


  황제는 그렇게 말하곤 내게 등지고 장미 정원을 떠났다. 나는 맡겨진 것의 무게에 아연해하며, 떠나가는 황제의 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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