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력 486년 5월 26일, 신무우궁 '장미 정원'. 에리히 발렌슈타인


  폭탄소동 다음날, 나는 궁중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프리드리히 4세가 만나고 싶다고 한 것이다. 나로선 상황이 좋았다. 아침에 직장에 나가보니 발레리가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날 노려보고, 다른 동료들도 흥미 만만한 태도로 날 보고 있었다. 그 주제에 내가 시선을 향하면 슥하고 눈을 피한다.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이다. 나는 날라가는 듯한 기세로 궁중을 향했다. 물론 발레리는 두고 왔다. 그녀를 데려갔다간 설교가 시작될 것은 눈에 뻔하다. 맹세코 말하는데, 나는 설교 당할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다. 어제의 폭탄 사건은 사상자 제로. 감사할 일이라면 모를까, 설교할 일은 아니다.


  알현실에서 치하라도 할 셈인가하고 생각했지만, 길을 달리하여 안내한 곳은 장미 정원이었다. 이건 비공식 대면이라는 거겠지. 장미 정원 밖에 경비병은 있지만 나와 황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부탁이니까 심장발작이라던가 일으키지 말아달라고. 이 이상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난 황제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황제는 전정 가위를 손에 들고 장미를 보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가위를 넣어 가지를 자르고 있다. 힐끔하고 나를 봤지만 손을 멈추는 일도 없이 말을 걸어왔다.

  "감사하네. 발렌슈타인. 자네 덕분에 짐이 살아날 수 있었네. 아니, 짐만이 아니군. 그 외에 많은 이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네."

  "황송합니다."


  "저번 일에서도 신세를 졌네. 훌륭히 오딘을 지켜줬군. 거듭 감사를 표하지."

  "옛."

  "그대에 대한 것은 그림멜스하우젠에게서 들었네. 재밌는 젊은이라고 그가 말하더군."

  "황송합니다. 그림멜스하우젠 각하의 일은 유감이었습니다."

  "음. 그렇구먼……."


  그림멜스하우젠. 황제의 어둠의 왼손. 결국 저 노인은 제국력 486년을 맞이하지 못했다. 제 6차 이젤론 요새 공략전이 끝나고 우리들이 오딘에 돌아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황제는 저 노인을 떠올린 것인지. 손을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장미 정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황제는 기묘할 정도로 주변에 녹아들어 있다.


  "클로프슈토크 후작이네만. 대역죄 미수범으로 토벌하도록 했네."

  "……."

  황제는 시선을 이쪽으로 향하고 말해왔다.

  "지휘관도 정해졌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일세. 아무쪼록 부탁드린다고 하더군. 어제 밤에 말일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인가.

  "……."


  "그대와 사이가 나쁜 프레겔 남작도 참가하게 됐네. 아무래도 공적을 올려 죄를 씻고 싶다고 하더군."

  황제의 눈에 작은 웃음이 떠오른 듯이 보인다.

  "……."

  "마음가는 데가 있는가? 발렌슈타인."

  틀림없는 것 같다. 세상 속엔 얕볼 수 없는 노인이 많다.

  "약간, 있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그림멜스하우젠을 슬프게하지 말고."

  "……."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뭔가 바라는게 있는가?"

  "……그럼 두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두 가지인가. 욕심이 많구먼."

  황제는 재밌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클로프슈토크 후작 토벌에 임함에 있어 군율을 바로 세우라 해주십시오."

  "흠. 좋네. 그래서 또 하나는?"

  "가능하다면, 장미 한 송이를 받을 수 없겠습니까?"

  그 순간 황제가 웃었다.


  "확실히 그대는 재밌구먼. 그림멜스하우젠의 말대로일세. 장미꽃인가. 지금까지 장미를 돌봤네만. 꽃을 달라는 건 처음이로구먼. 그것도 한 송이인가? 연인에게라도 줄 생각인가?"

  "아뇨. 무서운 부하가 있어서 말입니다. 기분을 풀어줄까하고."


  황제는 더욱 더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누구도 이 장미를 요구하지 않은건가? 꽤 예쁜데.

  "좋네. 가져가도록 하게."

  황제는 장미 한 송이를 잘라서 내게 건냈다.

  "그럼, 슬슬 알현실로 돌아가야겠군. 발렌슈타인. 그대도 돌아가도록 하게. 즐거웠네."


  황제와 헤어져 궁전을 걷고 있으니 리히텐라데 후작이 불러 세웠다. 날 기다리고 있던 건가?

  "발렌슈타인 중장. 경은 장미를 받은겐가?"

  "예. 그렇습니다만?"

  "대담하구먼."

  "? 누구도 장미꽃을 원한 적이 없다곤 들었습니다만."

  "장미는 폐하의 유일한 취미일세. 모두 사양하고 있던 걸세."

  "……."

  사양도 적당히 하는게 좋을텐데 말이지.


  "폐하와의 대화는 어땟는가?"

  "감사를 받았습니다. 어제의 일과 저번 일로."

  "그런가. 달리는?"

  "장미꽃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날 경계하고 있는 듯 하다. 권력자란 슬프구만.


  "프레겔 남작의 건. 잘해주었네."

  "?"

  "최근 묘하게 건방져서 말일세. 리텐하임 후작이 저번 일로 흠을 잡혀서, 이제부터 자신들의 시대라고 생각한 듯 하네. 애송이 놈들이."

  쓰디쓰게 얼굴을 찡그린다. 악인상이로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아니. 거기까지 낙관은 하지 않겠지. 귀찮은 건 본인보다 그 주변일세. 이걸 기회로 출세하려는 거겠지."

  "?"


  "엘리자베스가 여황제가 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차기당주 자리가 비네. 프레겔이 노리는 건 차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던가, 혹은 여황제의 부군이겠지.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내뱉는 듯이 리히텐라데 후작이 말한다. 과연 가능성은 있군. 하지만 저 바보가 차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여황제의 부군? 심한 농담이군. 조금 놀려볼까.


  "그렇게 되면 후작은 파면이군요."

  리히텐라데 후작이 더욱 더 얼굴을 찡그린다.

  "기분 나쁜 소리를 하는군. 하지만 경도 그냥 넘어가진 못할걸세."

  확실히 그 말대로다.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하네만?"

  이쪽을 재는 듯한 눈으로 리히텐라데 후작이 본다. 부추기고 있는 건가?


  "뮈켄베르거 원수는 어떻게 생각할까?"

  "글쎄요. 소관은 원수 각하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알 수 없죠."

  "후후후. 신중하군. 아니면 날 경계하고 있는 겐가?"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음. 수고했네."

  순간 조바심 섞인 눈을 했는데. 초조해하는 건가?


  리히텐라데 후작의 노림수는 뮈켄베르거 원수와 작당하여 엘윈 요제프를 옹립하는 건가. 지금대로라면 그리 될테지만. 불확정요소는 라인하르트가 어떻게 할지다. 앞으로 두 번, 이기면 원수가 될테지만. 이겨줄까? 능력은 문제 없다. 나머지는 동맹이 어떻게 나설지. 그리고 운이겠지.


...


■ 제국력 486년 5월 26일, 병참통괄부 제 3국.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중장이 돌아왔다. 내게 장미꽃을 한 송이 건내줬다. 무슨 속셈이야?

  "황제 폐하의 장미 정원에서 받아왔습니다. 물론 폐하의 허락은 받았습니다. 언제나 도와주고 있으니까요. 보답입니다."

  황제 폐하의 장미꽃! 무슨 짓을 하는거야. 이 바보. 주변의 시선이 단숨에 내게 집중한다.


  제국에선 전선에 여군을 내보내지 않는다. 그런만큼 후방에 여군 비율이 높다. 당연히 병참통괄부도 마찬가지다. 아니 군무성이나 통수본부와 비교해봐도 많은 듯 하다. 여군들에게 있어서 군대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병참통괄부의 여군들은 복이 없다. 여기는 결코 엘리트가 모이는 부서가 아니다. 군무성이나 통수본부의 여군들에 비교해 명백하게 불리한 상황이고, 그 때문에 그녀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럴 때에 발렌슈타인 중장이 나타났다.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제국문관시험 합격. 게다가 나이는 19세. 소위로서 임관하여 왔을 때부터 그는 병참통괄부의 아이돌이었다. 군무성이나 통수본부의 여군들이 울면서 분해했다고하니 대단하다. 중장이 병참통괄부를 떠났을 때엔 비탄을 흘렸다고 하지만. 이번엔 출세해서 돌아왔다. 그녀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 그녀들에게 있어 나는 틀림없이 해충. 망명자에 부관에, 전장에까지 따라가는 거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존재겠지. 덧붙여 계급은 소령. 제국에선 대부분의 여군이 하사관으로 사관은 아주 소수밖에 없다. 이 병참통괄부에서도 나 이상의 계급을 가진 여군은 극소수다.


  "감사합니다. 각하."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대답한다. 시선이란게 이렇게 아픈거였나?

  "폐하가 장미를 하사하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소중히 해주세요."

  "예."

  일부러 그러는 거다. 분명 틀림없다. 어제의 일이 더 이상 구설수에 오를 수 없도록 선수를 친거다. 강해지는 시선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미소지으며 기뻐하는 척 했다. 내게도 의지란게 있다. 이 정도의 시선으로 굴복하지 않는다. 유감이야. 난 부관이니까 이런 대우도 당연한거라고. 알겠어? 여러분.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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