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오염행성 편
10화. 마왕, 격전 끝에 마을에 도착하다
잠깐, 누구나 장난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예를 들자면, 차도에서 인도를 보호하고 있는 돌 위를 걷는다든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이용해서 자동차만큼의 속도를 낸다든가.
딱히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분명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번쯤 있지 않나?
의미도 없이 위험을 동반한 바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그래도 장난치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좀처럼 없지 않나?
나의 에두른 표현을 좋아하는 탓에 지긋지긋한 녀석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참고 들어주길 바란다.
슬슬 2행으로 정리할 테니까.
이번에 내가 장난을 친 탓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성검을 휘두른 라이무에게 “속옷 입는 거 잊었나?”라고 물어봤더니.
그 날 밤에 습격을 당했소이다.
아니, 진짜로 이거 어쩌냐.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 확실히 이것저것 짐작가는 바가 있기는 하다.
점점 욕구불만이 되고 있는 리젤의 개인실 소리를, 일부러 라이무의 방까지 들리게 한다든가.
설계 미스로 위장하고 리젤의 개인실을 라이무의 방에서도 볼 수 있게 해둔다든가.
식품작성기(원재료를 가공해주는 타입)을 써서 신급 디자인으로 20~21세기의 디저트를 재현해서, 그걸 미끼로 야간에 이성이 날아가서 심각한 애교를 부리는 리젤의 모습을 목격하게 한다든가.
같은 수법으로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을 목격하게 해서, 일상적인 일이라고 이해하게 만든다든가.
세 번째부터 자발적으로 훔쳐보러 오게 되어서, 나도 텐션이 올라가 더욱 심하게 리젤의 응석을 받아준다든가.
……어라, 이상하다.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필하이트의 경순양함을 날려버리고, 인연 깊은 오염행성을 탈출한 그날 밤의 일이다.
강습양륙함 와이번은 진로를 북으로, 오염행성이 있는 성역에서 아드람 제국 변경으로 연결되는 점프게이트로 진로를 향하고 있었다.
확실히 다들 피곤했던 것 같다.
전투 후에도 수리나 조정으로 열심히 일했던 리젤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반쯤은 자고 있었다.
디저트의 마롱 글라세(마왕제)의 마지막 한 입을 넣은 채로 잠들었기에 개인실 침대에 눕혀줬다.
그 때엔 라이무도 도와줬다.
이런저런 일로 나도 피곤했던 거겠지.
평소처럼 함교의 함장석에서 좌석을 뒤로 눕히고 휴대단말로 책이나 읽으려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무게를 느끼고 눈을 뜨자, 허리 위에 라이무가 올라타고, 나를 지긋이 보고 있었다.
나를 밀어 눕히는 듯이, 손은 나의 손을 잡고서, 언제나 강한 의지를 띄우고 있던 눈동자에는, 지금은 무표정하면서도 불안, 기대, 갈망,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이 만화경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안녕. 무슨 일이야?”
예상외의 상황에 당황 반, 즐거움 반.
솔직히 말하자면 즐거운 기분이 꽤나 앞서고 있었지만, 당황을 겉으로 내보이며 물었다.
“이구사. 언제부터 눈치 채고 있었어?”
어이쿠, 선택지를 잘못 선택하면 배드엔딩으로 직행할 듯한 분위기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손에도 힘이 들어가 있다.
팔의 굵기도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래도 용사다.
스테이터스 수준으로 볼 때, 근육질 남성조차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들어가 있다.
나도 싫어하지는 않았던, 미연시적인 선택지로선.
> 1. 아까 전에 눈치 챘다. 라고 우연을 가장한다.
> 2. 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고 고의였다는 걸 고백한다.
> 3. 뭐가 말이냐? 고 모르는 척한다.
이 정도일까.
거기 너, 어차피 헤타레는 1이나 3밖에 선택하지 않잖아? 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확실히 헤타레라든가 무자각둔감계스런 주인공이라면, 그 선택지밖에 없겠지.
하지만 잊고 있지 않나. 나는 마왕이라고?
“꽤 전부터, 그보다 숨기고 있을 셈이었나?”
> 2. 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고 고의였다는 걸 고백한다.
칭찬을 바란다. 이 선택지를 고르는 녀석은 좀처럼 없다.
“그래……. 그렇구나.”
어이쿠. 내 손을 잡고 있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 찔린다고 해도 후회는 없지……!
“어떻게 할 생각?”
어째서 라이무는 뺨을 붉히고 있는 걸까.
허리를 슬금슬금 비비고 있고.
“어떻게, 라는 건 무슨 의미냐?”
조금 더 주어를 확실하게 해라. 역시나 의도를 읽기 힘들다.
“내 약점을 잡았으니까, 이구사라면 나에게 심한 짓을 할 터.”
현재진행형으로 내가 심한 짓을 당하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손목이 아프다.
그리고 심한 짓을 할 거라고 단정하다니. 너무하네. 뭐, 실은 이미 하고 있지만.
하지만, 의도는 알았다.
“심한 짓을 하려고 한다면, 라이무는 어떻게 할 거지?”
“……약점을 잡혔으니까,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걸 재료로 더욱 협박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가?”
“이구사라면 그 정도는 한다. 하지만, 별 수 없어.”
OK, OK. 알았습니다.
라이무로선 협박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좋은 변명거리란 거다.
이걸로 내가 착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자포자기를 하면 안 돼! 라며 설교할 터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리고 장본인이나 신사적인 여러분에게 있어서 다행스럽게도, 나는 마왕이다.
악의 미학적으로도 이 상황은 있을 법하다! 라고 생각하고.
악을 기대하고 있다면, 거기에 답하는 것도 마왕의 일이겠지.
“그런가. 그럼 약점을 이용하도록 하지.”
나를 억누르고 있던 손을 억지로 빼고, 라이무의 턱을 손으로 잡고 작은 입술을 빼앗았다.
―――잘 먹겠습니다.
――
결론부터 말하지.
마왕과 용사의 싸움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격전이었다.
전투 개시는 심야 직전이었을 텐데, 정신을 차리니 아침이었다.
솔직히 몇 번이나 패배를 각오했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한 주제에 몇 번이나 잘 먹혔다.
그보다 용사님에겐 초심자 마크가 달려있었을 텐데 공격력이 여러모로 이상하다.
보통 무표정하며 언동도 담백한 주제에 사람이 변한 듯이 애교를 부리는 건 비겁하잖아!
마왕의 스테이터스에, 사망자에 의한 스테이터스 강화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다고……?
의식을 잃은 라이무를 개인실 침대에 눕히고,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엔, 심각한 피로감 때문에 방금 태어난 사슴새끼처럼 다리가 떨렸다.
이번 일로 추가된, 극히 한정된 환경의 전투가 아니면 장식에 불과한 스킬도 몇 개나 취하기로 했다.
개인실의 침대 위에 누웠을 땐, 이미 진흙처럼 잠들고 싶었지만, 의식을 잃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어이, 와이번. 어차피 카메라 총동원해서 촬영했겠지? 가장 알아보기 쉬운 앵글의 카메라 영상을, 실수를 가장해서 리젤의 단말에 넣어둬.”
「네이.」
――
다음 날 밤.
겨우 싸움의 상처에서 회복된 나는, 슬슬 지정석이 되고 있는 함장석에 누워서 단말을 이용하여 고전문학의 책을 찾고 있었다.
이 휴대단말의 이전 주인은 낭만을 모르는 인물이었던 것 같아서, 시간 기록이 짧은 책은 열등품이 많았지만, 고전문학, 내 주관으로 보자면 현대에 가까운 미래의 서적들은 제대로 된 것들이 많았다.
다음 격전에 대비하여 참고가 될 것 같은 책을 찾고 있었지만.
데자뷔라고 하는 것이 좋을까. 또 허리 위의 무게를 느꼈다.
위에 타고 있는 것은 리젤이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상태가 이상하다.
평소에는 제대로 갖추고 있던 의복은 흐트러져있고, 눈은 반짝반짝 육식동물처럼 험악한 빛을 띄고 있다. 털색이 좋은 고양이 꼬리는 감싸듯이 내 허리를 빙글빙글 두르고 있다.
“리젤,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인가?”
평소와 같은 대사를 말하지만, 왠지 모르게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마스터어, 마스터어는 너무해요오. 언제나언제나, 애교 부리는 것으로 참고 있는데, 라이무씨만 그런 포상을 주다니. 사역마 차별이에요오.”
어조가 이상하다. 녹아내리는 듯한 묘하게 달콤한 어조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뭐, 리젤의 의도는 알겠지만. 마왕으로서 위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역마 차별 같은 짓을 하는, 나쁜 마스터에게 벌을 주는 거에요오.”
어라? 뭔가 흐름이 이상하다.
리젤의 요구를 받는 건 예상대로이긴 하지만.
어째서 내 옷을 벗기고 손을 묶는 거지?
그보다 사역마인데 주인에게 이런 식의 반항을 할 수 있는 건가?
“오늘의 먹이는 마스터어에요오. 잘 먹겠습니다아.”
리젤은 겉모습은 고양이였지만, 속은 늑대였던 것 같다.
――
…………또, 아침이 됐다.
내가 허약한 건가? 아니면 라이무와 리젤이 이상한 건가?
기절한 리젤을 개인실 침대에 눕히고.
흐트러지고 찢어진 의복을 손으로 누르면서 개인실로 돌아갔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아무리 여권지상주의를 외치는 배심원이라 해도, 피해자라고 인정할 것이 틀림없다.
샤워를 하고 의복을 새로운 것으로 한 뒤, 이곳저곳에 입은 상처를 치료하고.
조금 울면서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와이번. 어차피 보고 있었겠지? 솔직히 조금은 도와줬으면 했지만, 뭐 됐어. 음성 첨부로 가공한 것을 라이무의 단말에 넣어둬라. 그리고 리젤이 일어나면 방을 나오기 전까지의 모든 걸 내 단말에 넣어둬.”
「네이.」
와이번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의식을 놓았다.
고양이의 꼬리에 그런 무시무시한 사용법이 있었을 줄이야………….
――
오염행성에서 탈출한 지 5일 째.
강습양륙함 와이번은 오염행성이 있는 성계의 북(성계도 상의 편의적 방위)에 위치하는 점프게이트를 이용하여, 아드람 제국 변경에 들어갔다.
점프게이트는 아드람 제국함대가 방어하고 있었기에, 다소 뇌물을 쓰게 되었지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와이번의 등록을 아드람 제국 소속의 용병부대에서 무소속 민간인, 이구사 명의로 변경하기 위해서 변경에 위치한 성계에 있는 지방행정부가 있는 교역 스테이션에 겨우 도착했다.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의 우주선은 그렇게 속도를 낼 수 없다.
변경을 개척하거나, 신규 점프게이트를 설치하기 위한 배는 특별히 빠르다고 하지만.
우선 속도가 빠르면 방향전환이 힘들다.
탑승원을 지킬 정도의 관성중화장치는 있지만, 배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선 강력한 리액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속도를 너무 낸 상태에서 방향전환을 하면, 관성과 원심력으로 배가 공중분해한다.
실드 제너레이터에 의해 배 전체의 강도는 비교적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에,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고 한다.
다음으로 속도가 너무 빠르면 조작이 힘들다.
우주공간은 원래 지구 근처의 우주처럼 조용하지 않다.
다종다양한 종족이 이동, 항행, 상업, 갖가지 이유로 우주선을 날리고 있다.
너무 빠르면 충돌이 일어날 것 같아도 회피할 수 없고,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엔 심각한 참사로 이어진다.
사고방지도 겸해서 점프게이트와 점프게이트를 연결하는 성간항로에선 소형의 고속기라도 겨우 음속 정도의 속도밖에 내지 못한다.
다음으로 너무 빠르면 싸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급한 방향전환으로 공중분해할 위기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고속전투를 할 수 있는 파일럿이나 승조원의 수가 적다고 한다.
음속의 몇 배 정도, 현대 지구의 전투기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그 정도가 생물로서 반응할 수 있는 한계라고 한다.
전투기끼리의 전투라면 음속 이하에서 음속의 몇 배 정도, 함대전이라면 음속의 5분의 1이라도 내면 고속함이라고 한다.
인간이나 우주인이 할 수 없다면, 기계에게 맡기면 되지 않나? 그렇게 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평범한 AI로는 대처할 수 없고,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할 수 있는 AI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천 년 정도 전에 고등 AI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켜서 은하 레벨의 대전쟁이 일어났고, 그 상처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드론의 제어나 자동항행 장치 같은 일부를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인력으로 행하고 있다고 한다.
냉동수면이나 시간감속 장치도 발달되어 있다.
점프게이트와 점프게이트 사이도 장거리다. 통상항행으로 몇 주 간격이라지만, 냉동수면으로 잠들거나, 시간감속장치로 자신의 시간경과를 늦게 해서 지낸다고 한다.
미래인이나 우주인은 참을성이 강하군. 현대인이 너무 급하게 사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결정적인 것이 점프게이트의 존재다.
언제부터 은하에 있었던 건지는 모른다고 하지만, 거리를 무시하여 쌍으로 된 점프게이트까지 순간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물건이다.
하기야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제어가 곤란하므로, 중요한 성계끼리 연결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지만.
은하의 반대로 가는 것도, 점프게이트를 갈아타기만 하면 되기에, 원거리를 가기 위해 초고속함이나 스스로 워프하는 배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점프와 워프는 전혀 다른 거라고 한다.
변경이라 불리는 개척지역 이외엔 거의 모든 지역이 점프게이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상이 섣불리 질문을 한 나에게, 리젤 선생이 끝도 없이 말해준 내용이다.
와이번은 본래 고속함이었고, 부상신으로 변했기에 리미터가 풀려있지만, 그래도 최대속도가 대기권내에서 음속의 4배, 우주공간이라도 음속의 6배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건 어째서냐? 라는 질문은 어떤 의미로 지뢰였던 것 같다.
뭐가 어찌됐든, 뇌물 덕분에 실로 아무 일도 없이 행정부에서 와이번의 소유권을 덮어쓰는 것이 끝나고, 나와 라이무의 신분증명서까지 작성할 수 있었다.
나도 라이무도 소환된 거긴 하지만, 이 시대에선 희귀한 순혈의 지구인(Pure Terran)이기에, 리젤과 와이번의 조언에 의해, 이전에 전투가 있었던 성계의, 지구이민의 로스트 콜로니 출신이라는 것으로, 간단하게 증명서를 만들 수 있었다. 우주에서도 뇌물의 힘은 위대하군.
이렇게 이 SF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던 우리들은, 급하지는 않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서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번역 > 마왕과 용사는 시대에 뒤처졌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왕과 용사는 시대에 뒤처졌습니다 / 2장 / 12화 (0) | 2019.04.28 |
---|---|
마왕과 용사는 시대에 뒤처졌습니다 / 2장 / 11화 (0) | 2019.04.28 |
마왕과 용사는 시대에 뒤처졌습니다 / 1장 / 9화 (0) | 2019.04.28 |
마왕과 용사는 시대에 뒤처졌습니다 / 1장 / 8화 (0) | 2019.04.28 |
마왕과 용사는 시대에 뒤처졌습니다 / 1장 / 7화 (0) | 2019.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