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력 486년 7월 16일. 뮈젤 함대 기함, 브륀힐트. 에리히 발렌슈타인.


  리히텐라데 후작과 이야기를 한 다음날, 난 라인하르트와 만나기 위해 뮈젤 함대 기함 브륀힐트에 방문했다. 제국에선 대장으로 승진할 때 개인 소유의 기함이 주어진다. 전함 브륀힐트. 라인하르트의 기함으로 수많은 전장을 함께한 전함이다. 하얗고 유려한 함체는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라인하르트에 잘 어울린다. 발레리는 전함을 본 순간부터 환성을 올리며 눈을 빛내고 있다.


  함교에 들어서니 부관이 인사했다. 게벨 중령이라고 소개했다. 함장은 슈타인메츠 대령. 후에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이 될 사람이지만, 어딜 간걸까?

  "뮈젤 제독과 만나고 싶습니다만."

  "지금 회의실에서 분함대 사령관들과 회의 중이십니다."

  과연. 기함 함장도 함께로군. 새로이 미터마이어, 로이엔탈도 가입하여 여러모로 바쁜 모양이다.


  "오래 걸릴까요?"

  "아뇨. 이제 곧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급한 용무라면 호출하겠습니다만."

  "아뇨.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신경쓰지 마시길. 약속도 없이 찾아온 건 이쪽이니까요."


  난 자리를 배정 받아 기다리기로 했다. 뭐, 조금은 갸륵한 부분도 보여야지. 게다가 라인하르트도 회의 중에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불리는 건 싫을 것이다. 주변에 대한 체면도 있다. 난 이리 보여도 꽤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다. 다행히 발레리도 있다. 심심하진 않겠지. ……결국 라인하르트가 돌아오기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발레리는 까칠해지고. 함부로 배려같은 걸 하면 안되겠구만.


...


■ 제국력 486년 7월 16일. 뮈젤 함대 기합, 브륀힐트. 율리히 케슬러.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에서 함교로 돌아오니 게벨 부함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참모장 각하. 뮈젤 제독은 어디에?"

  "제독은 아직 회의실에 있다만. 무슨 일인가?"

  "발렌슈타인 중장 각하가 뮈젤 제독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


  주변을 보니 확실히 중장이 의자에 앉아 있다. 이쪽을 보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부관인 피츠시몬즈 소령도 앉아 있지만, 이쪽은 명백히 기다리는데 지쳐있다.

  "……얼마나 기다렸나?"

  "……한시간 정도 전입니다. 제독을 호출하겠다고 했습니다만. 기다리시겠다고 해서……."

  "……."


  현기증이 돌았다. 한시간이나 저 남자를 기다리게 했다고? 네 머리는 장식인가! 곧바로 불러라. 상대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중장이 아니라고. 우리들을 변경성역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건가! 호통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나는 빠른 걸음으로 발렌슈타인 중장 곁으로 향했다.


  "발렌슈타인 중장. 기다리게해서 면목없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케슬러 소장. 뮈젤 제독은 아직 회의실입니까?"

  부탁이니까 미소짓지 말아줘……. 곁에서 부관이 노려보고 있다. 이러는 쪽이 당연하겠지.

  "이제 곧 돌아오실겁니다. 제독에게 용무라도?"

  "……조금 미묘한 문제가 발생해서……."


  어미를 흐렸다? 희안한 일도 다 있군. 뮈젤 제독이 함교에 들어왔다. 뮐러,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키르히아이스가 뒤를 잇는다. 사전에 전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조금 기다리십시오. 지금 제독을 부르겠습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뮈젤 제독에게 다가갔다.


  "제독."

  "뭔가? 케슬러."

  "발렌슈타인 중장이 제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렌슈타인이?"

  잠시 미심쩍은 표정으로 키르히아이스 중령을 본다. 중령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은 발렌슈타인에게 솔직해지지 못하고 있다. 그가 이 두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곤 볼 수 없지만…….

  "이미 한시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한시간!"


  뮈젤 제독만이 아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놀라고 있다.

  "뮈젤 제독."

  정신을 차리니 중장이 곁에 다가와 있었다. 변함없이 표정은 온화하다.

  "발렌슈타인 중장. 꽤나 기다리게 한 것 같군."

  조금 초조하게 제독이 대답했다.

  "아뇨. 약속도 없이 온 것은 이쪽이니까요. 조금 시간을 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내밀한 이야기인가?"

  "약간은."

  "다시 한 번 회의실로 가도록 하지. 나만 있으면 되나?"

  "……아뇨. 다른 분들도 듣는게 좋겠습니다."

  조금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런가. 그럼 회의실로 돌아가지."


  회의실로 돌아가 각자 적당한 자리에 앉으니 천천히 발렌슈타인이 입을 열었다.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발렌슈타인은 한 장의 서간을 품에서 꺼내 뮈젤 대장에게 건냈다.

  제독은 그 서간을 눈으로 읽고선 한번 더 발렌슈타인에게 눈을 향하고 다시 서간에 눈을 내렸다. 그대로 노려보듯이 서간을 보고 있다.


  "제독?"

  뮐러가 신경쓰듯이 말을 걸었다.

  "아아, 미안하네. 여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네. 궁중의 B부인이 G부인을 해아려함. 조심하시오."

  과연. 분명히 미묘한 문제다. 모두 얼굴을 마주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 환상의 황후입니까."

  로이엔탈이 입을 연다. "환상의 황후"에 모두가 로이엔탈을 바라봤다.

  "중장. 이걸 어디에서?"

  제독이 서면을 발렌슈타인에게 돌려주며 묻는다.


  "어제밤입니다만. 국무상서께서 이것과 같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 그럼 이건?"

  "어제밤, 집에 돌아가니 이것이……."

  "같은 것이 국무상서와 중장에게?"

  제독의 물음에 발렌슈타인은 아무말없이 끄덕였다.


  "뮈젤 제독에겐 이것이 오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직 오지 않았네."

  망연한 표정으로 발렌슈타인의 물음에 뮈젤 제독이 대답했다. 불만이 있는 듯 하다.

  "그렇습니까……. 언젠가 같은 것이 오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일로 움직이는 건 그만두십시오."


  "무슨 말을 하는가? 그럴수 있을리가 있나. 그렇지 않은가? 키르히아이스."

  "예."

  두 사람 모두 분연한 표정으로 항의한다.

  "이 일은 국무상서로부터 소관이 조사하도록 명령 받았습니다. 혹시 협력을 부탁드릴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때까지 조용히 지켜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된다. 그럴 수 없어. 누님에게 만일의 일이 있으면."

  냉정함을 잃고 있군. 좋지 않은 징후다. 침착한 중장과 흥분한 제독. 주변이 어떻게 볼지…….


  "제독. 발렌슈타인 중장의 말대로 합시다. 제독이 지금 해야 할 일은 함대의 숙련도를 높이는 겁니다."

  백작 부인이 소중한 건 알겠지만. 공사는 구분해야 한다…….

  "케슬러……."

  "과거에 후작부인이 몇번이나 목숨을 노린 각하에게 있어선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까?"

  "!"

  발렌슈타인의 발언에 주변이 놀라서 그를 본다.

  "어째서 그걸 알고 있나?"

  그렇다. 어째서 알고 있나? 그 일을 아는 자는 당사자와 우리들, 황제의 어둠의 왼손 뿐이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은 미소지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그레이저라는 궁중의를 아십니까?"

  "?"

  갑자기 발렌슈타인이 화제를 바꾼다.

  "……분명 그 의사는 때때로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처소를 방문하는 자가 아닙니까? 그런 걸 어떤 여자에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어떤 여자인가……. 로이엔탈 소장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로이엔탈 소장의 말대롭니다. 이 서간입니다만. 아마도 쓴 것은 그레이저 의사겠지요. 그는 후작부인과 관계를 끊고 싶어 합니다. 이 이상 연관되면 자신이 파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거기부터 조사해볼 생각입니다. 다음은 국무상서에게 맡기면 되겠죠. 어떻습니까?"

  "……."

  결국 발렌슈타인 중장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


  "어째서 발렌슈타인은 저 여자가 내 목숨을 노렸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

  확실히. 어째서 알고 있는 걸까.

  "……이전에 묘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로이엔탈 소장이 곤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뭔가? 그것은."


  "중장은 황제의 어둠의 왼손이라고……. 그건 아마 사이옥신 마약 사건 때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내가 흘린 소문이다. 어느 여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냐. 경의 정보원은 여자겠지? 로이엔탈 소장.


  "뮈켄베르거 원수의 밀명이 아니었단건가?"

  "소관도 원수 각하의 밀명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예. 하지만 그런 소문이 흐른 것도 사실입니다."

  뮈젤 제독, 뮐러, 로이엔탈 소장이 차례대로 말한다.


  "케슬러. 경은 사이옥신 마약 사건에서 중장과 함께 있었지? 사실은 어떤가?"

  명확하게 부정할 필요가 있겠군. 방치하면 내가 그에게 원한을 사게 된다.

  "소관이 아는 한, 중장이 황제의 어둠의 왼손일리는 없습니다."


  "이번 일, 국무상서의 의뢰라고 들었습니다만……."

  "베네뮌데 후작부인, 그뤼네발트 백작부인. 어느 쪽도 폐하에 관한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둠의 왼손인가……."

  곤란하군. 모두 아무래도 그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듯 하다. 내 탓이 아니라고, 발렌슈타인. 평소 경의 행동이 문제다. 그렇다곤 해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곤란해졌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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