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1월 30일, 22:00. 루츠 함대 기함 스키르니르.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전투가 시작되고 2시간이 지났지만, 전황은 좋지 않다. 전술 컴퓨터에 비춘 피아의 진형은 V자형을 취하고 있다. 아군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그 때문이겠지, 함교의 분위기도 험악하게 느껴진다. 뵐러 참모장, 부관인 구텐존 대위의 표정도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뭐라 해도 정면의 적이 너무나도 강력하다. 병력은 이쪽의 두배 가까이 된다. 게다가 아무래도 훈련도도 높은 것 같다. 개전 직후, 루츠 제독이 “만만찮군. 의외로 정연한 공격을 하지 않는가. 조금 더 틈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내겐 적의 숫자가 많은 건 알겠지만, 병사의 훈련도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적의 기세가 훌륭하다는 건 알 수 있고, 스크린에 비추는 적에게 압도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루츠 제독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까 전까지 루츠 제독의 눈동자에 연보라의 색채가 보였다. 흥분하면 그게 나온다고 듣기는 했지만, 난 처음 봤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의 푸른 눈동자로 돌아왔다. 전국은 결코 유리하진 않지만, 루츠 제독은 침착하다. 아직 이제부터 승부라는 거겠지.
“프로이라인. 걱정인가?”
“조금 불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각하의 지휘를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상관없네. 첫 출전에 이거라면 불안한 것이 당연하지. 이런데도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오히려 이쪽이 불안해져. 이 사람은 제정신인가. 하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루츠 제독은 활발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나도 모르게 이쪽도 웃고 만다. 그에 잇듯이 뵐러 참모장, 구텐존 대위도 웃었다.
주변이 우리들을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는 자도 있다. 하지만 함교의 분위기엔 명백히 험악함이 사라졌다.
“지휘관이라는 건 편하지 않군. 아군을 침착하게 만들기 위해 열세라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니.”
루츠 제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아까 전의 웃음소리는 연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연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다는 거겠지.
“적은 의외로 연계가 좋아. 오산이었어. 끌어들여서 양익을 때리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되지 않는다는 건가요?”
내 질문에 루츠 제독은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뵐러 참모장이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가리키며 현 상태를 설명해줬다.
“적의 정면은 리텐하임 후작입니다. 그 양옆을 적에게서 볼 때 오른편에 클라이스트, 왼편에 바르텐베르크 두 대장이 맡고 있습니다. 더욱 그 외측에 있는 것이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 예비로 힐데스하임 백작입니다.”
헬더 자작은 클라이스트 대장의 오른편, 하우징거 남작은 바르텐베르크 대장의 왼편에 있다.
“리텐하임 후작의 병력이 많기에, 우리들은 아무래도 양편에 있는 로이엔탈 제독, 바렌 제독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 때문에 두 제독은 정면의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대장을 막지 못합니다. 그 만큼의 여유를 가진 그들은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을 잘 원호하고 있는 겁니다.”
과연. 그런 건가……. 그렇기에 미터마이어 제독과 뮐러 제독은 적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루츠 제독이 “적은 의외로 연계가 좋다.”라고 한 이유다. 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지금 상태를 타개할 건지…….
“아군사살이라고 얕볼 생각은 없었지만, 어딘가 과소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생각해보면 제국의 최전선에 있던 군인들인 거다. 무능할 리가 없지.”
루츠 제독이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저주스럽다는 어조였다. 자신에 대해서 화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 좀 더 끌어들일 수밖에 없군. 리텐하임 후작,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를 더욱 이쪽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하면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을 지원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되겠지.”
“하지만 각하. 더욱 끌어들이게 되면 그들의 기세를 살리게 됩니다. 지금조차도 우리들은 적의 압력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세를 살리게 만들어 공격하게 하는 건 위험합니다.”
“참모장의 말대로입니다. 오히려 예비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뵐러 참모장, 구텐존 대위가 입을 모아 반대한다.
“지금 시점에서 예비를 쓰면 이쪽이 괴롭다는 걸 적에게 알려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다지 좋은 수라고 할 수 없어.”
“…….”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가 이쪽으로 붙게 만든다. 바라던 바겠지. 참모장. 그때야말로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을 격파할 찬스다. 미터마이어와 뮐러도 그걸 놓칠 범용한 지휘관이 아니야. 거기에 맞춰 예비를 움직이지.”
루츠 제독이 침착한 어조로 뵐러 참모장을 설득했다.
“……알겠습니다. 소관은 각하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단, 사전에 각함대사령관에게 설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아니. 안 된다. 적에게 방수될 위험이 있어. 참모장. 그들을 믿는 거다!”
강한,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어조였다. 루츠 제독은 내기에 나서려 하고 있다. 뵐러 참모장도 각오를 정한 걸지도 모른다. 크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함대를 후퇴하게 하죠.”
...
제국력 488년 1월 30일, 23:00. 리텐하임 함대 기함 오스트마르크. 클라우스 폰 재커드.
“적, 후퇴합니다.”
노르덴 소장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겔 대장이 기쁘게 끄덕이고 있다.
“리텐하임 후작. 지금이야말로 예비를 쓸 때입니다. 적의 측면을 뚫고, 혹은 후방을 교란하면 승패가 정해지겠죠.”
“노르덴 소장. 적에게도 예비가 있다는 걸 잊지 말게.”
“적은 전의가 없습니다. 보시는 대로 계속 후퇴하고 있습니다. 적의 예비 따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예비를 쓰는 건 나중이다. 지금은 적을 밀어붙인다.”
리텐하임 후작은 노르덴 소장의 의견을 각하했다. 노르덴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하고 있다. 라겔 대장은 침묵한 채다. 함대전에는 초보다. 입을 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리텐하임 후작이 날 보고 있다. 은근하게 내가 끄덕이자 후작이 끄덕였다. 혹시 후작에게도 망설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후작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아직 적에겐 여력이 있다. 지금 예비를 움직이면, 당연히 적도 예비를 움직이겠지. 적의 예비는 약 1만 5천 척, 이쪽은 약 1만 척. 병력도 그렇고 훈련도도 그렇고,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
예비끼리 부딪치면 순식간에 격파당하겠지. 노르덴은 아군이 우세에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노르덴의 전술능력은 꽤 낮다. 믿음직하지 않은 애송이다.
“리텐하임 후작.”
“뭔가? 재커드.”
“적의 목적은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의 함대겠죠. 우리들과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대장의 3개 함대를 끌어들여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을 고립하게 만들어 격파하려고 하는 겁니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대장의 함대에게 그들을 지원하게 만들고, 정면의 적은 우리들만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내 말에 노르덴 소장이 반대했다.
“말도 안 되는. 그래서야 우리들은 적 한 가운데에 고립되지 않는가. 리텐하임 후작. 지금이야말로 예비를 쓸 때입니다.”
바보가! 닥치고 있어라 애송이! 지금 설명해줄테니.
“우리가 적의 본대를 밀어붙이면, 적은 버티지 못하고 양익의 함대에게 지원을 요청하겠죠. 그렇게 되면 적의 양 끝단은 고립됩니다. 예비를 쓰는 건 그 때입니다.”
원래는 중앙의 3개 함대로 적을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대장이 의외로 잘해주고 있다.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의 함대를 지원하며 정면의 적을 밀어붙이고 있는 거다. 그 덕분에 아군의 양 끝단의 함대는 전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적의 중앙은 루츠 제독이지만, 그 만으로 우리들을 막을 수 없다. 당연히 양쪽 함대의 지원을 필요로 하겠지. 적의 중앙을 3개 함대가 연계를 강화한다면, 그만큼 적의 양 끝단의 함대는 고립한다.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가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을 지원하며 그들을 밀어 붙인다. 기회를 봐서 예비를 움직여 우익이나 좌익 중 어느 쪽을 포위하여 섬멸한다. 적도 예비를 움직이겠지만, 그건 시간과의 승부다. 기회는 있다.
두 군대는 V자형을 취하고 있다. 서로의 예비는 본대의 뒤에 두고 있지만, 본대가 밀리고 있는 만큼 적의 예비는 양익에서 멀어지고 있다. 더욱 깊게 밀어 붙이면 된다.
포위되는 만큼 이쪽도 피해는 나온다. 하지만 그건 버틸 수밖에 없다. V자형의 진형이 세로로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쪽의 예비가 먼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간다. 예상외의 일이지만, 승산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단지 저편도 나름대로 대응책을 취하겠지. 방심은 할 수 없다.
귀찮기는 하지만 타이르는 듯이 설명했다. 노르덴은 “위험하다”, “예비를 써야 한다.”면서 투덜투덜 말했지만, 이전보다 말이 약하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겁쟁이인 것 같다. 버티지 못한다. 그러니 승부를 빨리 내고 싶은 거겠지. 패배라도 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도망칠 것이 틀림없다. 어차피 귀족의 도련님이다.
“재커드의 말대로다. 적의 중앙은 우리들만으로 밀어붙이지.”
리텐하임 후작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오퍼레이터가 놀라면서 목소리를 올렸다.
“힐데스하임 백작의 함대가 움직입니다!”
“말도 안 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아연한 리텐하임 후작의 목소리가 함교에 흐르는 중, 기쁨이 넘치는 노르덴 소장의 얼굴이 보였다.
...
제국력 488년 1월 31일, 0:00. 힐데스하임 함대 기함, 아이히슈테트. 로터 폰 힐데스하임.
“각하. 리텐하임 후작에게서 통신입니다. 스크린에 투영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와 함께 스크린에 리텐하임 후작의 모습이 나타났다.
“힐데스하임 백작! 무슨 생각인가. 원래 위치로 돌아가게!”
“돌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손으로 승리를 확정하는 겁니다!”
“바보 같은. 이제 조금이면 이길 수 있는 거다. 조금 더 기다려라!”
“이제 조금이면 이긴다? 지금 이기고 있지 않습니까. 뭘 기다리는 거니까? 통신을 끊어라.”
통신이 끊기고 동시에 오퍼레이터가 걱정하는 듯이 질문했다.
“각하.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다. 이 이상 잠자코 보고 있을 수 있을까보냐. 내 손으로 승리를 확정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리텐하임 후작도 아무 말 못하겠지.”
그렇다. 이 손으로 승리를 확정하는 거다. 애초에 어째서 내가 예비인 거냐. 예비라면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 중 어느 쪽이면 충분하다. 나야말로 최전선에서 싸워, 승리를 가져올 인간이다. 그런데 예비? 게다가 좀 더 기다려라? 기다리고 있다간 전투가 끝나고 말지 않는가. 내게 무훈을 세우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겠지. 녀석들은. 그런 일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나야말로 이 싸움에서 영웅이 되어야만 한다.
...
제국력 488년 1월 31일, 0:00. 루츠 함대 기함 스키르니르. 코르넬리아스 루츠.
“적, 예비함대가 움직입니다.”
“뭐라고!”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니 확실히 적의 예비함대가 움직이고 있다. 우리 군의 우익을 공격하려고 하고 있다. 무슨 일이냐?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건가?
“각하. 이쪽도 예비를 움직이죠.”
“그렇군. 참모장. 슈타인메츠 소장에게 연락하게. 적의 예비부대를 공격하여, 격파하라. 그 뒤엔 적의 배후를 찌르라고.”
“예.”
“무슨 일이냐. 어째서 예비를 움직이나?”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적의 움직임은 저주스럽지만, 훌륭하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좀처럼 반격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예비를 움직이나……. 내 의문에 답한 건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였다.
“아마도 힐데스하임 백작의 독단이겠죠.”
“독단?”
의심쩍게 묻는 내게 프로이라인은 침착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그는 방만하고 자제심이 없는 데다 허영심의 덩어리 같은 인물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이 싸움의 승리를 확정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겠죠. 오합지졸의 군대가 가진 약점이 나왔습니다.”
“귀족연합군의 약점이 나왔나. 리텐하임 후작도 불행하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말에 프로이라인이 끄덕였다. 승리가 보였다. 원래라면 기뻐해야겠지. 하지만 리텐하임 후작에게 있어서 운명을 건 일전이었을 것이다.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그녀도 마찬가지겠지.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침울하다.
그녀도 귀족의 일원인 것이다. 자신과 같은 입장의 인간이 실력 이외의 부분에서 패배를 맛보려하고 있다. 복잡한 기분이겠지.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 혹시 그녀가 기쁨을 표현했다면, 난 그녀의 재능은 인정해도 인품에 불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당초 예상했던 전개와는 다르지만, 아무래도 승산이 보일 것 같다. 그것도 적이 승산을 만들어줬다……. 묘한 이야기다. 이만한 대회전에서 이런 일이 있는가. 석연찮은 마음이 들었다. 나머진 슈타인메츠 소장의 수완이 모든 걸 정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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