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9년 2월 20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머리맡의 TV전화가 수신음을 울리고 있다. 화면 한편에 번호가 표시되어 점멸하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번호다. 일어나야한다. 보류 버튼을 누르고 살짝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유스티나를 일으키고 싶진 않다.


  쌀쌀하군. 가운을 걸치고 방을 나왔을 때였다.

  “여보…….”

  일으키고 말았나……. 유스티나가 상반신을 일으켜 날 보고 있다. 불안한 표정이다. 무리도 아니다. 밤중에 남편이 불려나가면 누구라도 불안하겠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이쪽이 불안해진다.


  “긴급한 연락이 들어온 것 같아. 길어질 것 같진 않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자고 있어.”

  “예…….”

  일부러 큰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긴 유스티나에게 있어서 위안도 되지 못하리란 건 알고 있다.


  침실을 나와 통신실로 향한다. 사방 2미터 정도의 작은 방이다. 방음완비, TV전화, FAX등의 통신장치만이 있다. 뮈켄베르거는 군의 중진이었다. 당연히 기밀에 접하는 일이 많았다. 가족을 신뢰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주변에 괜한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겠지. 저택에 들어오는 연락은 모두 여기에서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쓰고 있다. TV전화 수신 버튼을 눌렀다. 노인, 날 기다리고 있겠지.


  “면목 없습니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밤늦게 미안하네. 쉬고 있었는가.”

  화면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시각은 2시를 지나고 있다. 오딘의 겨울은 춥다. 깊은 밤이 힘든 건 나보다도 리히텐라데 후작이겠지. 게다가 이전엔 내가 밤중에 후작을 두들겨 깨웠었다. 불만을 말할 순 없다. 괜한 일로 일으킬만한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노인장. 괜찮은가? 추워보이는데.

  “페잔에서 묘한 일이 일어났네.”

  “묘한 일이라고 하신다면?”


  화면에 보이는 리히텐라데 후작이 곤혹한 표정을 짓고 있다. 흔치 않은 일이다. 페잔인가. 그렇다면 지구교인가. 아니, 묘한 일이라고 했지.

  “렘샤이트 백작의 연락이네만, 반란군의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구속되었다고 하네.”

  “…….”


  “그것만이 아니야. 주류하고 있던 함대 사령관을 시작해 주요인물들이 구속되었다고 하더군.”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게, 렘샤이트 백작의 말로는 페이워드라고 하더군.”

  “…….”


  과연. 확실히 묘하다. 추위도 잊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곤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괴뢰인 페이워드가 자신을 조종하던 인형사, 올리베이라를 구속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맹에서 독립이라도 할 생각인가. 제국으로 향방을 바꿨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력은 이쪽이 위다.


  “페이워드에게서 사전에 렘샤이트 백작에게 연락이 있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더군. 묘하지?”

  “확실히.”

  리히텐라데 후작도 같은 생각을 했는가…….


  사전에 렘샤이트 백작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돌발적으로 일으켰는가. 혹은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어리석은 자인가……. 아니 그 전에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지.


  “자유행성동맹은 렘샤이트 백작에게 뭔가 말했습니까?”

  “그게 말일세. 렘샤이트 백작은 그런 일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하더군. 더더욱 묘하지 않은가?”

  동맹정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거기에 눈치 챘는가…….


  “모르리라 생각합니까?”

  리히텐라데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

  동감이다. 일단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하이네센의 승인을 받고 움직였다는 것이 된다…….


  “독립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먼.”

  “인형사가 바뀌었습니까……. 새로운 인형사는 하이네센이군요.”

  “그렇겠지.”

  올리베이라는 해고인가. 문제는 무슨 원인으로 해고됐는가다.


  “하이네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헌데……, 올리베이라만이 아니라 함대사령관까지 구속되었다면…….”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봤다. 그 앞은 내가 말하라는 건가.


  “단순한 파면이 아니군요. 쿠데타이든가, 혹은 거기에 속하는 무언가. 올리베이라와 함대사령관의 구속은 거기에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겠지.”

  쿠데타. 아마도 주전파에 의한 거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턱을 쓰다듬고 있다. 턱이 가늘어서 그다지 어울리지 않다니까.


  가능성은 둘이로군. 하이네센에서 쿠데타 계획이 발각됐다. 올리베이라와 함대사령관은 거기에 관여했다. 그래서 구속되었다……. 또 하나는 하이네센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 세력은 페잔을 직접 컨트롤 하기 위해 올리베이라와 함대사령관을 구속했다. 대충 그런 거겠지.


  쿠데타인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질 않는군. 페잔에 주류하고 있는 건 제 9함대, 알 살렘 중장이지만,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일 남자인가? 루글랑주라면 알겠지만 알 살렘……. 아무래도 딱하고 감이 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페잔은 쿠데타와 무관계, 하이네센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녀석들이 페잔을 직접 컨트롤 하려 했다…….


  “문제는 하이네센이겠죠. 지금 하이네센을 지배하고 있는 게 누구인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으음”하고 말하고 끄덕였다.

  “……경우에 따라선 내란이 되겠는가.”

  “가능성은 있군요.”


  가능성은 있다. 원작에서도 내란이 일어났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누가 일으키나? 그린힐인가? 하지만 정부와 군의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보인다. 아무래도 알 수 없다. 판단재료가 너무 적다…….


  “정보가 필요하군요. 판단재료가 너무 적습니다.”

  “동감이구먼. 렘샤이트 백작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내일, 아니 오늘인가. 아침 8시에 신무우궁으로 와주게.”

  8시인가. 늙은이는 아침이 빠르군. 벌써 3시라고.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 원수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연락을 해두지.”

  “알겠습니다.”


  통신이 끊긴 뒤 방을 둘러봤다. 그림 한 점 없는 살풍경한 방이다. 오딘의 겨울엔 어울리는 방이겠지. 어떻게 할까. 벌써 3시다.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락을 할까……. 연락을 하니 바로 상대가 나왔다.


  “에리히인가.”

  “다행이군. 일어나 있었나? 귄터.”

  “경에게 연락을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지.”

  키슬링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양하지 말라고. 용건이 있을 땐 얼마든지 연락해.”

  “아아, 그렇게 할게.”

  “페잔의 대한 거로군.”

  내 질문에 키슬링이 끄덕였다.


  “알고 있었나.”

  “올리베이라와 제 9함대사령관이 페이워드에게 구속된 건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들었다. 정보원은 렘샤이트 백작이다.”

  난 리히텐라데 후작과의 대화 내용을 키슬링에게 전했다. 키슬링은 때때로 끄덕였다.


  “내게는 라트부르흐 남작, 세츨러 자작, 노르덴 소장이 연락했다.”

  “도움이 되는 것 같네.”

  “무척이나. 반란군이나 지구교의 접촉은 없지만 페잔의 상황은 알 수 있어. 도움이 되고 있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묘한 말이로군. 게다가 키슬링의 어조에는 자조의 색이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라트부르흐 남작이 묘한 말을 했다.”

  “…….”


  “올리베이라가 구속된 직후, 람즈베르크 백작과 연락을 취했다고해. 그때 백작이 이렇게 말했다더군. ‘이걸로 또 제국으로 돌아갈 날이 늦어졌다.’”

  자신의 표정이 엄해지는 걸 알 수 있다. 과연. 그런 건가.


  “백작은 올리베이라들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건가. 남작은 그걸 몰랐다…….”

  “그런 거지. ……라트부르흐 남작이 사과하더군. 람즈베르크 백작을 너무 쉽게 봤다고. 자신들과 상의하는 일 없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키슬링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라트부르흐 남작 이상으로 키슬링이 충격을 먹은 것 같다.


  “성장한 걸까?”

  키슬링이 웃었다. 나도 웃는다.

  “바보. 농담을 하고 있을 땐가?”

  “농담이 아니야. 성장한 것이 아니라면 옆에서 바람을 넣은 녀석이 있겠지. 포로가 되었던 녀석들을 조심하라고 말이야. 문제는 그 녀석이 누군가다. 올리베이라들이라면 괜찮아. 그렇지 않다면 문제다.”


  “루빈스키, 혹은 지구교인가.”

  “……글세 대체 뭐하는 작자일까. 뭐, 되먹지 못한 녀석인 건 확실하지만 말이야.”

  또 키슬링이 웃었다.

  “저쪽도 이쪽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어.”

  틀리지 않다. 타인을 조종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사람 따위 되먹지 못한 녀석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걸로 알았다. 하이네센에선 주전파가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지만 실패했단 거겠지. 올리베이라들은 주전파에 관여하고 있었다. 혹은 그런 혐의가 있었기 때문에 구속되었다.”

  “페이워드는 하이네센의 지시로 움직였다. 그런 건가.”

  “그런 일이겠지.”


  주전파가 무너졌나……. 가능하면 내란으로 국력을 소모해줬으면 고마웠겠지만, 훌륭하게 빠져나온 것 같다. 만만찮군. 트류니히트는 생각보다 만만찮다. 방심할 수 없다.


  주전파의 뒤에는 지구교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저쪽도 알고 있겠지만, 하이네센에 조사를 의뢰해야만 하겠지. 안스바흐와 페르너에게도 전해둘 필요가 있겠지.


  “귄터. 라트부르흐 남작에게 전해주지 않겠어? 내가 감사하고 있다고.”

  “알았다.”

  “그리고 무리하지 말라고도 전해줘. 혹시나 의심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무리는 금물이다.”


  키슬링이 날 지긋이 보고 있다. 혹시나, 아니 아마도 확실하게 람즈베르크 백작 옆에서 바람을 잡고 있는 녀석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기 위해선 다소 무리도 별 수 없다고…….


  “부탁해. 귄터.”

  침을 박아놓자. 라트부르흐 남작은 이쪽에 협력적인 것 같다. 쓰고 버릴 수는 없다.


  “알았다. 전해두지.”

  키슬링이 쓴웃음을 짓고 있다. 아마도 내가 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라트부르흐 남작이 이쪽의 협력자라는 걸 들키면 세츨러 자작, 노르덴 소장도 위험해진다.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그 뒤에 안스바흐, 페르너에 대한 연락을 키슬링이 행할 걸 확인하고 통신을 끊었다. 안되겠군. 벌써 4시가 다되어간다. 그래도 앞으로 2시간 정도는 잘 수 있나……. 아니, 생각해야 할 일도 있다. 아마도 잘 수 없겠지. 유스티나,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통신음으로 일어났을 때 그녀도 눈을 떳었다. 자고 있다면 괜찮지만…….


...


제국력 489년 2월 20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밤중에 통신이 들어와 방을 나가고 나서 돌아오지 않는다. 10분, 30분, 1시간, 그리고 2시간이 지나려하고 있다. 뭔가 성가신 문제라도 일어난 걸까……. 아니, 밤중에 남편을 호출한 거다. 중대한 문제가 일어난 건 틀림없다.


  남편은 가운을 입고 나갔지만, 혹시 춥지는 않을까. 뭔가 입을 걸 가지고 남편에게 갈까 생각했지만, 중요한 이야기 중에 방해하고 싶지 않다. 그 정도의 마음씀씀이도 할 수 없는 여자라고 보이고 싶지도 않다……. 이 무슨 답답한 일인지.


  신경 쓰지 말고 자라는 말을 들었지만, 도저히 잘 수가 없다. 남편이 국가의 중신인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별 수 없다고 이해는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기다리며 잘 수 없는 밤을 보내고 있는 걸까.


  문이 조용히 열렸다. 남편이 발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들어온다. 아마도 날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거겠지. 눈을 감고 자는척한다. 남편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


  옷을 벗는 소리가 들린다. 가운을 벗은 남편이 침대에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자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 때였다. 남편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잘 수 없게 됐다. 남편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부자연스럽게 긴장하는 느낌이 들고, 호흡도 괴롭다.


  그대로 시간이 지났다. 5분? 10분? 갑자기 남편이 쿡쿡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자는 척 하는 건 서툴군. 유스티나.”

  “……눈치 채고 계셨나요?”

  슥하고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에게 시선을 향하자 남편은 몸을 내 방향으로 향했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온화한, 상냥한 웃음. 나도 남편으로 몸을 향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성가신 일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되는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까 전에 한숨을 내쉬고…….”

  “아아,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꽤나 만만찮아.”


  남편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도 맘처럼 되지 않는 일이 있나요?”

  “?”

  “모두, 당신은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하는 걸요.”


  내 말에 남편이 웃었다.

  “맘처럼 되지 않는 일들뿐이야. 내 주변에는 맘처럼 되지 않는 사람들뿐이니까 말이야.”

  “어머, 그런 사람이 있나요?”


  남편이 날 재밌다는 듯이 보고 있다.


  “아아. 자는 척을 하고 날 속이려하는 너라든지.”

  “어머.”

  “이쪽으로 와.”

  남편이 웃으면서 날 끌어안았다. 약삭빠르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맘처럼 되지 않는 건 이 사람, 언제나 이렇게 날 맘대로 조종하니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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