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오늘은 소관과 클레멘츠 제독이 알현에 입회합니다. 아마도 이쪽에 돌아오는 건 저녁 무렵일 테지요.”
메르카츠 제독이 가느다란 눈을 부드럽게 뜨고 있다. 단단한 몸을 회색 망토가 감싸고 있다. 뮈켄베르거도 회색 망토였지만, 역시 근엄한 노장은 회색이 잘 어울린다.
“수고합니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클레멘츠 제독에게도 수고를 끼치는군요.”
알현 입회 따위 메르카츠나 클레멘츠에게 있어선 반드시 감사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비텐펠트나 아이제나흐가 입회하는 것보단 낫다. 그 두 사람이 알현에 입회할 때면 나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적어도 다행인 점은 프리드리히 4세가 녀석들을 재밌어 한다는 점이다. 의외로 색다른 걸 좋아한다.
“아니아니, 이전에 비하면 알현도 꽤나 편해졌습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온화하게 답하는 메르카츠에게 나도 끄덕였다. 내전에 의해 많은 귀족이 멸망했다. 그에 의해 재미없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알현을 요구하는 귀족도 줄어들었다. 알현은 이전에 비해 극단적으로 편해지고 있다. 메르카츠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하기야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전엔 알현 입회는 우주함대에서 나와 라인하르트, 메르카츠뿐이었지만, 내란이 끝난 뒤엔 각 함대사령관도 입회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람스도르프와 오프레서가 죽었다. 다시 말해 알현에 입회하는 무관이 우주함대의 사령관들밖에 없게 되었다.
군 내부에서도 우주함대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에렌베르크와 슈타인호프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또한 함대사령관 중에선 입회를 원하지 않는 자도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쩐지 모르게 원작에 가까운 느낌이다. 군부의, 그것도 우주함대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은 무단주의인가……. 게다가 그 정점이 나라니 지긋지긋하다. 이 부분은 충분히 주의해야만 한다. 무력을 써서 일을 해결하는 건 본래 하책인 것이다.
“사령장관의 오늘 일정은?”
“오늘은 하루 종일 우주함대 사령부에 있을 예정입니다. 이 뒤에 브라케 민생상서, 리히터 자치상서가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메르카츠가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호오, 보아하니 변경성역의 개발에 대해서입니까? 각하야말로 고생이십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부사령장관.”
메르카츠가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아, 이거 안되겠군. 우주함대 내부에선 내가 변경성역의 개발에 관여, 아니 책임자가 되는 것에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이 많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테러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케슬러, 클레멘츠, 메크링거가 크게 걱정하고 있다. 그 세 사람은 지구교에 대한 것도 알고 있으니까. 몇 번이나 내게도 충고를 했다.
단지 오늘 이야기는 변경성역 개발에 대해서가 아니겠지. 그보다 다른 일일 거라고 나는 보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서 며칠 전에 이야기가 있었다. 그 노인이 제대로 두 사람에게 설명하면 될 것을……. 뭐,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무슨 말을 해도 녀석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지. 게다가 노인장 나름대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하지만 말이지. 난 군부의 넘버3라고. 민생성과 자치성의 우두머리가 머리를 맞대고 만나러 오는 건 좀 아니잖아……. 나중에 저 노인씨에게 제대로 말해야만 하겠군. 이대로 가면 군부의, 아니 우주함대의 영향력이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정말이지. 어째서 내가 이런 걱정을 해야만 하는 건지…….
...
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오이겐 리히터.
눈앞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A4 사이즈의 자료를 읽고 있다. 그렇게 두꺼운 것은 아니다. 20장 정도의 자료다. 읽으면서 때때로 고개를 갸웃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고개를 갸웃하는 때 뭔가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 페이지를 읽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
사령장관이 자료를 다 읽고 회의탁자 위에 자료를 뒀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고 오른쪽 중지로 가볍게 회의탁자를 두드렸다.
“각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눈앞의 청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반응은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그 정도인가……. 그리고 그런 그를 나와 브라케가 보고 있다. 신영토 점령통치 연구실 안에 있는 작은 회의실은 침묵에 둘러싸였다. 사령장관의 손가락이 내는 툭툭하는 가벼운 소리만이 작은 회의실에 울린다.
회의탁자 위에는 자료가 올라와 있다. 표지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다. 그보다도 아무 것도 적을 수 없다. 자료 내용은 금후 제국의 통치체제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의 황제에 의한 군주전제정권, 이걸론 황제의 자질에 의해 제국의 정치가 좌우되고 만다. 그걸 어떻게 막고 국가를 안정할 수 있을지가 이 자료의 주안점이다.
“의회정치의 도입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국신민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황지의 폭정을 막는다……. 그러기 위해선 의회정치를 도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의해 제국신민에게 폭군과 싸울 수 있는 제도와 견식과 힘을 주지 않으면…….”
사령장관의 중얼거림에 브라케가 열정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어떻게든 의회정치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나도 같은 마음이다. 지금은 괜찮다. 황제는 명백히 개명적인 정책을 취하며 국정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발렌슈타인 사령장관도 그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없어지면……. 가령 100년 뒤에는 어떨까? 지금 이대로 폭군에 의한 폭정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인재가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폭정을 막을 제도도 없다……. 이대로 가면 제국은 황제의 폭정에 우롱당하는 꼴이 되겠지. 경우에 따라선 제국의 존속 그 자체까지 위험해 질 수도 있다.
이 두 사람이 있는 사이에 제국의 정치체제를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황제의 악정 따위에 제국이 흔들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되는 거다. 거기에 대항할 수 있을만한 인재와 제도를 만들어야만…….
의회정치 도입에는 저항이 강하겠지. 뭐라 해도 제국의 정치제도에는 없었던 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반란군인 자유행성동맹이 쓰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지금 제국은 동맹을 압도하고 정복하려 하고 있다. 어째서 패배자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어야만 하는 것인가. 당연히 반발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애초에 동맹이 지금 열세에 있는 것도 민주공화정이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어떠한 형태라도 제국신민을 정치에 관여하게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처럼 통치되고 착취될뿐인 존재여선 안 된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으로 제국신민의 정치적식견을 높이고, 황제의 폭정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부여한다……. 다행히 사령장관은 평민의 권리 확대에는 적극적이다. 제국에 헌법을 만들려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의회정치의 중요성, 필요성도 이해해 주겠지…….
하물며 우리들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원내각제는 행정부가 입법의 영향을 받기 쉬워, 불안정한 상황에 되는 일이 자주 있다. 동맹을 보면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과도한 간섭을 받는 건 피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행정부와 입법부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회에선 입법권 및 황제입법안에 대한 거부권, 탄핵재판권, 황제지명인사의 승인권, 예산안에 대한 발의권, 승인권을 부여한다.
탄핵재판권은 의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황제를 폐위할 수 있는 권리다. 황제지명인사의 승인권도 황제가 명백히 부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인사를 행하는 일이 없도록 의회가 검사할 권리다. 이에 의해 제국이 폭군의 폭정에 처하는 일이 없게 한다.
행정부의 수장은 황제로 하고, 황제는 제국재상 혹은 국무상서의 보필에 의해 제국의 행정을 행한다. 황제는 입법권, 행정권, 군지휘권, 그리고 의원입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권리로서 가진다…….
사령장관이 다시 자료를 손에 쥐고 팔락팔락하고 페이지를 넘긴다. 손을 멈추고 어느 페이지에 시선을 가져갔다.
“20년 후에는 의회를 연다. 당초엔 남자에 대해서만 참정권을 부여한다. 30년후엔 여자에 대해서도 부여한다. 입니까…….”
“지방자치체에선 좀 더 빠르게, 10년을 목표로 의회를 열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녀구별 없이 부여하고, 여기서 여자에게는 정치에 참가하는 걸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브라케의 말에 사령장관이 희미하게 끄덕이고 있다.
사령장관이 브라케에게 시선을 향한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는 보였습니까?”
“네.”
“그래서 후작은 뭐라고?”
사령장관의 질문에 브라케의 표정이 썩는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안 된다고…….”
“안 된다, 입니까……. 그밖에는?”
“아뇨. 아무 말도.”
사령장관이 쓴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시선을 자료로 향한다.
사령장관이 자료를 손에 쥐면서 중얼거리듯이 “안 된다, 인가……. 좀 더 말할 것이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쓴웃음을 흘린다. 브라케는 불만있는 표정이다. 여기선 내가 말하는 편이 좋겠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 리히텐라데 후작은 귀족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구세력의 분이라고 해도 좋겠죠. 내정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해도 국체 개혁에는 꼭 적극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사령장관은 쓴웃음을 짓고 있는 채다.
“각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아까 전에도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슬슬 진심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만.”
더더욱 사령장관의 쓴웃음이 커졌다.
“그렇군요……. 리히텐라데 후작이 어떠한 생각으로 부정했는지는 모릅니다. 단지 단순한 감정론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도량이 작은 분이 아니니.”
“그럴까요.”
브라케가 있는 대로 의심스럽단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장관이 또 쓴웃음을 흘린다.
“두 사람 모두 후작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만, 저도 이 제안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조금, 아니 꽤나 무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브라케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는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스스로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의회도입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생각도 하지 못한 반응이다. 사령장관은 평민들의 권리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의회정치의 도입에는 반대하고 있다…….
사령장관이 수중의 자료에 눈을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쓴웃음을 볼 수 없다.
“목적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땅이 발에 닿고 있지 않다고 해야할지……, 조금 서두르고 있는 걸로 보이는 군요.”
서두르고 있다? 브라케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브라케가 입을 열었다.
“서두르고 있다, 입니까…….”
“네. 리히텐라데 후작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반대할 수밖에 없겠죠. 저 사람은 제국의 위기를 보고 지나칠만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제국의 위기를 보고 지나칠 사람이 아니다……. 그 말에 너무 거창하다고 반발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제국의 위기를 보고 지나칠 사람이 아니라면 사령장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정치체제에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결함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권리라는 건, 주긴 쉽지만 빼앗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한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건 알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을 가로 막는 브라케의 무릎을 찌르고 입을 막자 사령장관이 쿡하고 웃었다.
“30년 후에는 제국신민 전체에게 참정권이 주어진다. 그렇게 되면 당연하지만 통일 뒤의 동맹시민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진다. 그렇지요?”
사령장관이 확인하는 듯이 말했다. 브라케가 한 순간 나에게 시선을 향하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30년 후에는 우주가 통일됩니다. 그 때엔 그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합니다. 그들은 동맹에서 의회정치에 의한 통치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으면 제국에 대해 불만을 가지겠죠. 100억을 넘는 사람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신제국의 통치는 안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30년 후에는 제국신민 전부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 그런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말이 중간에 끊어졌기 때문이겠지. 조금 불만스럽게 브라케가 답했다. 사령장관이 그런 브라케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 일부러로군. 의외로 성격이 나쁘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의해 국정에 참가할 권리를 부여했다……. 그럼 이 경우 의무는 무엇일까요?”
사령장관이 브라케와 나를 교대로 봤다. 의무인가……, 납세? 혹은 병역일까?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면…….
“……폭정의 저지일까요.”
내 말에 사령장관이 희미하게 웃음을 띄웠다. 쓴웃음인가?
“뭐, 그것도 있겠죠. ……제가 생각하는 의무란 제국신민으로서 제국의 안정과 번영에 진력하는 것, 대충 그런 겁니다.”
과연. 일반적인 개념으로서의 의무인가……. 아까전의 웃음은 쓴웃음이군……. 저도 모르게 이쪽도 쓴웃음을 짓게 됐다. 브라케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극히 당연한 것이긴 합니다만, 제국이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여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제국인으로서 자각할 것과 그것에 대한 긍지가 필요합니다. 신영토가 된 구동맹령 사람들에게 그것이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병합후 바로 동맹시민에서 제국신민으로 의식이 바뀌리라…….”
“……30년 간, 제국을 보고 있는 겁니다. 제국이 변화한 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브라케가 떫은 표정으로 더듬더듬 답했지만 사령장관이 그것을 부정했다.
“제국을 이해하는 것과 제국인이 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브라케 민생상서.”
사령장관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브라케의 말이 맘에 들지 않은 것 같다. 혹은 무르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확실히 나와 브라케도 사령장관이 지적한 점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무르다고 생각해도 별 수 없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제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의사가 없는 인간이 선거에 입후보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제국신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의사가 없는 인간이 대표자를 뽑는다…….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가 없죠. 정부를, 폐하를 항상 적대시하는 행동,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반제국활동을 하는 사람이 의원으로서 제국의 통치에 관여하게 됩니다. 인구비율로 생각하면 의원전체의 3분의 1이 그런 사람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제국의 위기, 과언이 아니겠죠.”
엄한 말이다. 말만이 아니라 어조와 시선도 진지하다. 나와 브라케도 반론할 수 없다.
“자신들이 뽑은 대표가 반제국활동을 하고 있다면 구동맹시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구동맹시민인 채입니다. 결코 제국신민이 될 수 없죠. 제국은 동맹을 점령하고 은하를 통일하긴 했어도 통치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이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사령장관이 한숨을 토했다. 서두르고 있었는가……. 개혁을 진행함에 따라 제국신민은 개혁을 지지하고 협력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 참정권을 부여하면 동맹시민도 협력해줄 것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발에 땅에 닿고 있지 않다……. 사령장관의 말이 생각났다. 나도 브라케도 개혁을 서두른 나머지 동맹을 점령한다는 것을, 동맹시민의 감정을 경시했다. 사령장관이나 리히텐라데 후작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들은 개혁을 행하는 것에만 사로잡혀 국가의 위기를 보고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에 불과하겠지.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국신민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한다. 황제에 의한 폭정을 저지한다. 그러기 위해선 의회정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봐도 목소리가 어둡다. 나약한 어조다. 옆에 있는 브라케도 어깨를 떨구고 있다. 아까전까지 보였던 의욕은 어디에도 없다.
“의회정치 그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겠죠. 문제는 사람입니다. 의원을 누가 어떻게 고를 것인가……. 제국신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사람을 뽑아야만 합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겠죠.”
“과연.”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사령장관은 의회정치 도입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사람인가……. 선거로는 안 된다는 거로군. 그를 대신할 선출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
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의욕만만하게 왔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엔 침울해졌나……. 뭐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황제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서 의회제 민주주의를 도입한다. 나쁜 발상은 아니다. 두 사람이 생각한 건 아메리카의 대통령제도에 가깝겠지. 황제는 종신 대통령으로서 혈통에 의해 선출된다고 생각하면 극히 닮았다.
하지만 통합직후의 구동맹시민에게 선거로 의원을 고르게 하는 건 너무 무모하겠지.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경우엔, 방금 전까지 전쟁하고 있던 나라 사람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게 된다.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다고. 이념만 앞서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제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제국의 역사는 잘 알고 있다. 황제의 폭정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의회제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과도한 기대를 하고 있다.
제도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 제도를 운용할 때의 난점을, 결점을 알고 있다곤 할 수 없다. 의회제 민주주의의 결점이라고 한다면 중우정치로 타락하기 쉽다는 점이다. 대중의 표심을 얻기 위해 다들 발버둥치겠지. 하지만 나는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는 의회제 민주주의의 결점, 그건 주권자인 국민이 총명하며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의회제 민주주의가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책임의 소재가 극히 애매하다는 점.
지지율을 신경 쓰며, 낙선할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가에게 있어서 주권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최중요사항일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어리석고 감정적인 판단을 취하면 정치가도 거기에 휘둘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건 개인으로선 이성적인 행동을 취해도 대중이 모이면 무책임한 행동을 하기 쉽다. 다시 말해 국민주권에 의한 의회제 민주주의라는 것은 극히 빈약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인류는 아직 그것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제국은 황제주권에 의한 전제정치에 의해 국가가 통치되고 있다. 다시 말해 황제가 악정을 펼치면 황제를 살해하는 것으로 제국은 악정을 막았다. 유혈제 아우구스트 3세가 그 예다. 그는 자신의 목숨으로 악정의 책임을 졌다. 아니, 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한 것이다. 주권자인 황제가 폭군이 아니라면, 명군이 아니더라도 극히 평범한 사람이기만 하면 제국은 그 나름대로 기능했다. 좋게도 나쁘게도 책임은 황제에게 있다. 그럼 동맹은 어떨까…….
이제르론 요새 공략 후, 제국령 침공에서 대 패배를 맛보았다. 샌포드 정권은 총사임하는 것으로 책임을 졌다. 그 때, 주권자인 동맹시민은 출병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바라며 등을 밀었다. 그 시점에서 제국령에 대한 대규모 출병 따위 무모할 뿐이었을 것이다. 주권자인 동맹시민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졌을까?
전쟁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병을 지지한 건 잘못된 거였다고 말했을까? 정부, 군부를 책망하며 끝이 아니었을까. 전쟁을 한 건 나쁘지 않았다. 전쟁방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자신들이 전쟁을 지지한 것에 대해선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겠지.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극히 애매하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군주제 전제정치도 의회제 민주정치도 주권자가 바보면 기능하지 않는 건 같다. 그 차이는 주권자가 한 사람인가 다수인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주권자가 책임을 지기 쉬운 군주제 전제정치와 책임을 지기 어려운 의회제 민주정치. 어느 쪽이 정치체제로서 우수한 것일까.
언젠가 이 두 사람에게 내 이런 생각을 전해야만 하겠지. 그 뒤에 제국의 통치제도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한다. 뭐, 오늘은 여기까지겠지. 사실은 내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편이 빠르겠지만 그래선 안 된다. 내가 너무 눈에 띄는 건 안 되는 일이고, 이 두 사람은 이것저것 생각하며 성장해야만 한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안 된다.”라고만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 개혁자로만 끝나는 건 바라지 않는다는 거겠지만, 전도다난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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