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9년 5월 25일. 페잔. 길베르트 파르머.


  세 번, 네 번하고 수신음이 울린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째 콜에 상대가 수신했다. 화면에 상대방이 나타난다. 군복이 아니다. 사복차림이다. 자택에서 편히 쉬고 있던 것 같다. 웃음을 띠고 있지만 조금 지친 듯이 보인다. 발렌슈타인. 경은 여전히 바쁜 것 같군…….


  “오랜만이군. 발렌슈타인.”

  “네.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헤르 파르머.”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발렌슈타인은 내 말에 쓴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보입니까?”

  “아니, 인사치레다. 바쁜 것 같군. 조금 지친 듯이 보이지만, 괜찮은가?”

  더더욱 쓴웃음이 커졌다.


  “지치기도 했지요. 매일처럼 부정부패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요.”

  “부정부패?”

  “네. 바보 놈들이 모여서 단 것을 탐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긋지긋해요.”

  이번엔 얼굴을 찡그린다. 꽤나 곤란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부정부패?


  “……나쁜 짓을 할 만한 귀족은 없어졌을 텐데.”

  “그 만큼 자신들의 몫이 늘어났다. 그렇게 생각하는 평민 출신의 악당들이 있다는 겁니다.”

  “……과연.”


  과연, 그런 건가……. 귀족들이 몰락했다. 그것이 정치, 경제, 군사만이 아니라 범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주역교체. 그런 거로군. 지금까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살던 소악당들에게 대악당이 될 찬스가 왔다는 건가……. 어쩐지 발렌슈타인이 지긋지긋한 듯한 목소리를 낸다 했다.


  “지금 제국이 가장 원하는 직업이 뭔지 아십니까?”

  비아냥이 넘치는 목소리다. 목소리만이 아니다. 화면에 보이는 발렌슈타인에겐 비웃음이 보이고 있다. 어쩌면 냉소도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아니, 모르겠는데.”

  “변호사입니다. 그것도 돈만 주면 뭐든지 해주는 악덕변호사……. 혼자서 세, 네 건의 재판을 맡고 있는 녀석이 있습니다. 의뢰인은 다들 부정부패 용의자로 체포된 쓰레기입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에요.”

  처음엔 냉소였지만 마지막엔 내뱉는 듯한 어조였다. 분노하는 발렌슈타인을 보고 있자 왠지 실소가 흘러나왔다.


  “좀처럼 잘 안 되는군.”

  “네. 잘 안됩니다. 제도가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왜곡되어 있는 건 제도만이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였던 거죠.”

  이번엔 한숨이 나왔다. 꽤나 치명상이군. 조금 용기를 붙여줄까. 하지만 내가 이 남자의 용기를 북돋는다니. 이 세상은 자극과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비관할 일은 아니겠지. 페잔에선 다들 제국의 개혁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경기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 덕분에 우리들도 크게 벌고 있다. 감사하고 있어.”

  내 말에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띄웠다. 위로를 받았다는 걸 눈치 챘는가…….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습니다. 범죄 없는 세계 따위 없을 텝니다만, 범죄를 보고 그냥 넘어가는 세계를 만드는 것도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들 범죄를 저지르게 되겠죠. 그러는 편이 편하니까요.”

  “확실히, 그렇군.”

  화내는 듯한 어조다. 역시 눈치 챘는가.


  “단, 그렇게 됐을 때엔 심각한 인간불신이 사회에 만연하게 됩니다. 사람을 보면 도둑이라고 생각한다, 로군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지금보다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불행의 극치에요. 뭘 위해서 내란을 일으키기까지 해서 국정을 바꿨는지…….”

  “…….”

  “넋두리뿐이군요. ……헌데, 오늘은?”


  “얼마 전에 라트부르프 남작과 만났다.”

  “…….”

  “우연이었지. 상대방이 먼저 눈치 채서 말이야. 조금 대화를 했다.”

  “……그렇습니까.”

  당혹스러워 보이는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희안한 일도 있군.


  “경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두번째라고. 그런 말을 들은 건. 그 외엔 없는 건가?”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띄웠다.


  “그렇군요. ……민폐를 끼치진 않았습니까?”

  “아니. 그런 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즐거웠다. 경에 대해서 좋은 상사라고 하더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라트부르프 남작을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심한 상사에요.”


  발렌슈타인은 시선을 피하고 있다. 겸손이 아니다. 본심에서 말하는 것 같다. 완전히 비정해지진 못하는군. 이 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하기야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이 자의 무른 부분 덕분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의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생각할 수 있다.


  “란즈베르크 백작에 대해서 말이지만. 라트부르프 남작에게서 들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이야기로군.”

  “네.”

  “서툰 시작이나 하던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종하기 쉬운 거겠죠.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듯합니다…….”

  좋지 않다는 듯한 어조다. 란즈베르크 백작에겐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으니까. 무리도 아닌가…….


  “신경 쓰여서 조사해 봤다.”

  “…….”

  “그런 표정 하지 마라. 걱정할 필요 없어. 대단한 조사는 하지 않았으니까. 정말 약간 조사해본 정도다. 상대가 눈치 챌 일도 없어.”


  안 되겠군. 발렌슈타인의 표정이 딱딱하다. 날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자금 면에서 곤란한 것 같지 않더군.”

  “우주선을 팔았다고 합니다. 당분간 돈 걱정할 일은 없겠죠.”


  “아니야. 주변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녀석은 아직 우주선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가 원조하고 있는 것 같다.”

  “뭐라구요…….”

  “누군가가 자금원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발렌슈타인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역시 몰랐는가…….


  내란이 끝나고 많은 귀족들이 전쟁터에서 이탈하여 페잔으로 망명했다. 망명한 귀족들의 재산은 제국정부가 압수했다. 반란을 일으켰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귀족들이 페잔의 금융기관, 투자기관에 맡겨둔 자금도 압수 대상이 되었다.


  페잔으로선 거절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국정부와의 관계악화를 피하기 위해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관계악화를 두려워한 동맹정부의 의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거지만……. 페잔 정부에서 각 금융기관, 투자기관에 대하여 제국에 자금을 반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실행되었다. 다시 말해 망명한 귀족들은 거의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우주선을 팔아치워 금전을 얻는 일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제국에선 귀족이 몰락했기 때문에 교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있었다. 교역선의 수요가 늘어나니 우주선 판매가 퇴짜를 맞는 일도 없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에 팔렸겠지. 지금 망명귀족들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은 것도 그것이 이유다.


  란즈베르크 백작 알프레드는 우주선을 팔지 않았다. 생활비만이 아니다. 우주선의 유지비도 있다.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자금면에서 곤란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원조를 받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란즈베르크 백작은 다른 사람들에겐 우주선을 팔았다고 말하며 후원자가 있다는 걸 숨기고 있다.

  “후원자가 있다면 큰 목소리로 떠벌리고 싶을 터다. 다른 이들의 용기를 북돋는 일도 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후원자는 고상한 분인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거겠죠. 백작에게 입막음을 했나봅니다.”

  농담을 하고 있을 땐가. 발렌슈타인.


  “반란군 주전파가 쿠데타에 실패하여 붙잡혔다. 백작의 자금원이 그거라면 백작에게도 조사가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백작에겐 그걸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곤란한 모습도 보이지 않아. 뒤에 있는 건 다른 손이겠지.”

  발렌슈타인이 쿡쿡하고 웃었다.


  “반란군입니까. 그건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헤르 파르머. 정체를 들키고 맙니다.”

  “확실히 그렇군. 평소엔 이런 단어는 쓰지 않지만……. 아무래도 경과 이야기하고 있다 보면 제국인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 같다.”

  이런이런.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동안 둘이서 웃었다. 묘한 일이다. 이 자와 이런 식으로 웃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이 더욱 우스워서 웃었다.


  “자유행성동맹이 아니라고 하면…….”

  “그 이상은…….”

  “위험한가.”

  “네.”

  진지한 표정이다.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는 것인가……. 그리고 위험한 상대이기도 하는 것 같다. 여기까지군…….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먼 날은 아니겠죠.”

  발렌슈타인이 웃음을 띠웠다. 부드러운, 온화한 웃음이다.

  “그런가. 멀지 않았나. 기대되는군.”

  “그렇지요.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걸로 통신을 끊었다. 그렇게 먼 날은 아닌가……. 아무래도 제국군의 페잔 침공은 앞으로 1, 2년 안에 실행되는 것 같다……. 만날 날이 기대되는군…….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


제국력 489년 5월 25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직장에 연락하자 바로 연결되었다. 밤 8시를 넘겼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여어, 귄터. 아직 일이야?”

  “아니. 돌아가려던 참이다. 무슨 일 있나?”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쪽으로 오지 않겠어?”

  내 말에 키슬링은 조금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건 상관없지만. 괜찮나? 신혼가정에 실례해도.”

  진지한 표정이다. 농담을 말하는 건가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상관없어. 식사는?”

  “아니, 아직이다.”


  “알았다. 준비해두지.”

  “괜찮은 건가?”

  “사양하지 않아도 돼. 기다리고 있겠어.”

  시간이 없군. 있는 재료로만 해도 좋겠지. 어디, 오랜만에 요리라도 할까…….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살펴보자 유스티나와 슈테판 부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왔다. 키슬링이 온다는 걸 전하고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하자 자신들이 만들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기분전환으로 스스로 만들겠다고 말하며 포기하게 했다. 무척이나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시금치, 콩나물, 감자, 양파를 꺼낸다. 그리고 버섯이다. 슈타인필츠와 꾀꼬리 버섯이 있군. 좋겠지. 충분하다. 그 외엔 소시지가 있다. 이걸 쓸까. 저 녀석은 야채를 그다지 섭취하고 있지 않겠지. 오늘은 듬뿍 먹여주마. 그리고 계란을 두 개와 고형 콩소메를 꺼낸다. 이걸 잊으면 안 되지.


  그 외엔 인스턴트 치킨도리아를 꺼낸다. 이 집에서 인스턴트 식품?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도 뮈켄베르거도 군인이다. 휴일에도 급한 호출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배가 고파선 일도 할 수 없다. 인스턴트라면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는 사이에 준비할 수 있다. 때론 지상차 안에서 먹을 때도 있다. 인스턴트 식품은 필수불가결이라고 해도 좋다.


  시금치는 다섯 포기, 콩나물은 적당히 두 줌, 감자 하나, 양파 반개, 버섯은 다량으로 준비한다. 야채를 잘 씻어서 시금치, 감자, 양파, 버섯을 적당히 잘랐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꺼내어 알루미늄 호일을 깐다.


  프라이팬에 물을 약 250cc 넣어 조미료를 적당히 넣는다. 그리고 고형 콩소메를 절반 넣는다. 그 위에 시금치, 감자, 양파, 버섯을 적당히 올린다. 소시지를 식칼로 칼집을 내어 야채 위에 올린다. 소금, 후추를 뿌려 한 번 뚜껑을 닫는다. 불은 중불이다. 1, 2분 정도로 완성 될 테니 그 사이에 인스턴트 치킨도리아를 데운다. 키슬링이 온 것은 모든 것이 끝나고 응접실에 요리를 옮긴 직후였다.


  “호오, 호일구이인가. 경이 만든 건가? 오랜만이군.”

  프라이팬을 보고 바로 안 것 같다. 기쁘단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걸 뮐러와 페르너에겐 자주 만들어 줬었지. 레시피도 줬지만 과연 스스로 만들어 먹은 적이 있었을는지…….


  “이야기는 나중이다. 우선 먹어둬. 식으면 맛없으니까 말이야.”

  호일구이를 프리이팬에 올린대로 가져온 것도 그것이 이유다. 식으면 맛없다.

  “알았다.”

  그렇게 말하고 키슬링은 바로 프라이팬의 뚜껑과 알루미늄 호일을 벗겼다. 좋은 향기가 응접실에 풍긴다. 야채와 버섯 냄새다. 바로 키슬링이 먹기 시작했다.


  “맛있군. 이 스프, 버섯의 맛국물이 뭐라 할 수 없다. 게다가 소시지의 육즙이 참을 수 없어. ……제길! 이 콩나물, 맛이 배여 있어! ……하지만 어째서 백합 뿌리가 없는 거냐? ……난 그걸 좋아하는데.”

  요리비평가, 귄터 키슬링의 탄생이다.


  “나도 좋아하지만 말이야. 우리 집 냉장고에는 백합 뿌리가 없더라고.”

  “안 되겠군. 그건. ……경답지 않은 실책이야. ……백합 뿌리는 건강에도 좋다고?”

  올려다보는 눈으로 날 보지 마라. 우리 집 냉장고는 내 냉장고가 아니야. 별 수 없잖아.


  “그보다 도리아도 먹어 보라고.”

  “도리아 따위 언제든 먹을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여기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고. ……제길, 이 감자가 백합 뿌리였다면 완벽했을 텐데!”

  감자와 백합 뿌리를 비교하는 놈이 있겠냐. 이 얼간이가!


  “감자는 필수다! 양파가 백합 뿌리였다면 완벽했어.”

  “……아무튼 백합 뿌리가 없는 건 용서하기 힘든 실책이다.”

  “알았다. 알았어. 이 다음엔 백합 뿌리를 냉장고에 넣어둘게.”

  겨우 납득해줬나. 키슬링은 도리아를 먹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도리아를 다 먹고 한숨 쉬고 나서니 대략 20분 뒤인가. 나중에 슈테판 부인에게 백합 뿌리를 상비해 주도록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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