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력 794년 4월 25일. 제 5함대 기함, 리오 그랑데. 바그다슈.


  “바보같은 소리 말게. 발렌슈타인 소령. 양 중령이 우리들을 죽게 내버려두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강한 어조로 발렌슈타인을 나무랬다.


  대체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중령이 우리들을 죽게 내버려두다니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은 이쪽을 조금도 보지 않았다. 문을 등진채 양 중령을 내려보고 있다.


  “뷰코크 제독은 아까 전 양 중령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령의 진언으로 반플리트 4=2로 방향을 바꿨다면 제독은 그걸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중령에게 감사를 표했겠죠.”

  “…….”


  냉정하다기보다 냉혹하다고 해야 할 어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령을 보는 발렌슈타인의 시선이 차가웠다. 미하마 중위가 불안한 표정으로 저를, 그리고 양 중령을 보고 있다. 무거운 분위기가 방을 가득 채웠다.


  무심코 표정이 외면에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내가 동요하면 미하마 중위는 나 이상으로 동요하겠지. 발렌슈타인 소령의 짐작일 뿐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뷰코크 제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령이 반플리트 4=2로 갈 것을 진언하지 않았던가, 혹은 진언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던가…….”

  “…….”


  “어느 쪽이더라도 뷰코크 제독에게 있어서 중령의 존재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저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회전에서 중령이 맡은 역할은 작은 것이었다……. 아닙니까? 양 중령.”

  “…….”


  중령은 말이 없는 채로 담담히 소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시트레 원수가 죽게 내버려두라고 했습니까?”

  “그렇지 않아.”

  발렌슈타인의 질문에 경악하는 미하마 중위가 보였다.


  “기다려라. 발렌슈타인 소령. 양 중령의 말대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시트레 원수는 귀관에게 최대한 협력하라고 우리들에게 말했다. 귀관을 앞으로도 백업하라고 말이지.”


  발렌슈타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과연. 그럼 양 중령의 독단입니까…….”

  “바보같은 소리 말아라! 발렌슈타인 소령! 대체 뭐가 맘에 안드는 거냐. 전쟁은 이겼다. 1시간 지체정도 눈썹을 치켜세울 일이 아니잖나.”


  나의 질책에도 발렌슈타인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겼다고 기뻐할 기분이 아닙니다. 바그다슈 소령. 엘 파실에서도 한 번 그랬죠. 중령. 그 때도 중령은 아군을 죽게 내버려뒀습니다.”

  이번엔 엘 파실인가. 어째서 그렇게 달려드나? 대체 뭐가 맘에 들지 않는 건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건 린치 소장들이 양 중령에게 민간인을 떠넘기고 도망친 거다. 죽게 내버려 둔 건 그들이겠지.”

  나는 양 중령을 변호하면서 곁눈으로 중령을 봤다. 중령은 몸을 미약하게 떨고 있다. 분노? 아니면 공포?


  “바그다슈 소령. 양 중령은 알고 있었습니다. 린치 소장이 자신들을 두고 도망치려 한다는 걸 말이죠. 알면서도 그들을 이용한 겁니다. 린치 소장이 한 짓과 양 소령이 한 짓에 얼마나 차이가 있다는 겁니까? 오십보백보겠죠.”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제정신인가? 미하마 중위가 놀란 표정으로 양 중령을 보고 있다. 확실하게 부정해야만 한다.

  “적당히 해라, 소령! 린치 소장은 지켜야 마땅한 민간인을 내팽개친 비겁자다. 중령은 민간인을 지킨 거다. 그걸 비방하는 짓은 용서 못해! 화제를 되돌리지. 저 기지는 이제르론 요새공략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귀관은 양 중령이 그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다고 할 생각인가?”

  “떨어지지 않아요. 이제르론은.”

  “!”


  발렌슈타인은 웃고 있다. 명백하게 조소라는 걸 알 수 있는 웃음이다.

  “이제르론 요새는 후방에 기지가 하나 있다고 해서 떨어질 정도로 쉬운 요새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적을 유인하여 눈엣가시인 녀석들을 처리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렇죠? 양 중령.”

  “…….”


  상냥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명백하게 독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은 독설을 계속했다.

  “저는 양 중령이 필요 이상으로 희생을 범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5함대에 가시도록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당신에게 있어 필요한 희생이었던 것 같군요.”


  “거짓말이에요. 그런거,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라고 해주세요. 중령.”

  미하마 중위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양 중령에게 말하고 있다. 무심코 나는 미하마 중위를, 발렌슈타인을 꾸짖고 있었다.

  “거짓말일게 당연하지! 소령. 대체 뭐가 맘에 들지 않는 건가. 헛다리에도 정도가 있어!”


  “왜 화내는 겁니까? 바그다슈 소령. 필요한 희생 속에는 소령도, 그리고 미하마 중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낼 거라면 제가 아니라 양 중령에게 하세요. 그렇다쳐도 꽤나 미움받고 있군요.”


  냉소, 그리고 조소. 발렌슈타인 소령의 말에 양 중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조금 몸을 숙이고 한숨을 뱉는다. 중령이 발렌슈타인 소령에게 시선을 향했다. 눈에는 후회의 색이 있다. 설마, 사실인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다. 발렌슈타인 소령. 나는 반플리트 4=2로 항로 변경을 권했으나 사령부의 다른 참모들이 반대해서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뷰코크 제독이 결단하여 반플리트 4=2로 향했지만 1시간은 늦었겠지. 귀관이 말하는 대로다…….”


  침묵이 떨어졌다. 양 중령은 시선을 떨궜고 미하마 중위는 안심한 듯한, 곤란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의 표정은 심각한 채다. 다른 참모들이 반대했다. 신참모라는 점 때문에 부외자 취급을 받았다는 건가……. 혹은 중령의 배속 그 자체를 자신들에 대한 불신이라고 받아들었는가……. 그 때문에 고의로 반대했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면목이 없다……. 귀관에게 약속했으면서도 나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기지가 제국군에게 파괴됐겠지. 귀관이 의심하는 것도, 화내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나도 시트레 원수도 귀관을 모살하려고 하지 않았어. 그것만은 믿어줬으면 한다.”


  양 중령이 발렌슈타인 소령에게 고개를 숙여서 사죄했다.

  “소령, 양 중령이 말한 대로다. 우리가 귀관을 모살하다니, 있을 수 없어. 다행히 싸움은 이겼다. 양 중령을 탓하는 건 이제 그만둬라.”


  “그래요. 소령. 조금은 저희들을 믿어주세요.”

  나와 미하마 중위가 말했으나 발렌슈타인은 표정을 풀지 않고 양 중령을 보고 있다. 그가 납득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확실하게 말해야겠지.


  “발렌슈타인 소령. 잘 듣게나. 우리들은 귀관을 전장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건 귀관을 모살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진정한 의미로 동맹시민이 되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


  “귀관은 제국에게 돌아가고 싶겠지. 하지만 우리들은 그걸 인정할 수 없다. 심한 말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귀관이 제국에 돌아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심복이 되면…….”


  “무슨 말입니까? 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란 건…….”

  발렌슈타인이 의심쩍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어째서 숨기는가. 이제 숨기지 않아도 될텐데. 귀관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겠지…….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귀관을 제국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안톤 페르너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이다.”

  나의 말에 미하마 중위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녀는 안톤 페르너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이라는 걸 모른다…….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심복? 그걸 막기 위해 나를 반플리트로 보냈다?”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발렌슈타인 소령이 웃고 있다. 하지만 그 눈에는 틀림없는 증오가 있었다.


  웃음이 잦아든 발렌슈타인은 차가운 눈으로 우리들을 둘러봤다.

  “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심복이 되다니. 있을 수 없어요.”

  “하지만 페르너는.”

  나의 말에 발렌슈타인은 뺨에 냉소를 띠웠다.


  “그는 제가 문벌귀족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때려 부수고 싶어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수로라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섬기라곤 말하지 않아요.”

  “…….”

  아니다. 연기가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뭔가 잘못 본건가?


  “잘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할 수 있군요.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소령…….”

  발렌슈타인의 말투가 변했다. 말투만이 아니다. 표정도 변했다. 아까 전까지 있었던 냉소는 없다. 있는 것은 경멸과 증오뿐이다. 그 변화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나는 반플리트 4=2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면 그 남자와 싸우게 될테니. 그래서 가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

  조심스럽게 미하마 중위가 질문했다. 발렌슈타인은 묵묵히 끄덕였다.


  “라인하르트 폰 뮈젤 준장. 전쟁의 천재. 패왕의 재능을 가진 남자……. 문벌귀족을 증오하며, 제국을 바꿀 수 있는 남자입니다. 나의 소망은 그와 함께 제국을 바꾸는 일이었다.”

  “…….”


  라인하르트 폰 뮈젤. 그 이름에 무심코 미하마 중위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황제의 총희,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동생이었을 것이다. 그가 전쟁의 천재? 패왕의 재능을 가진 남자?


  “그를 상대로 어중간한 승리 따위 있을 수 없습니다. 자존심을 상처입혀 화를 살 뿐입니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따라서 그를 죽여서라도 내가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다. 설령 자신의 꿈을 버리게 되어도.”

  “…….”


  “다행히 그는 아직 계급이 낮고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어. 따라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반드시 죽일 수 있는 수를 쓸 수 있다……. 아마도 최초이며 마지막 기회였을 겁니다. 그런데…….”


  발렌슈타인이 입수을 깨문다. 그리고 양 중령을 노려본다. 나도 양 중령도, 그리고 미하마 중위도 아무 말 없이 발렌슈타인 소령을 보고 있다.


  “제 5함대의 증원이 1시간 늦었다……. 그 1시간만 있었다면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를 괴멸할 수 있었다. 도망칠 구석을 잃은 라인하르트를 잡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발렌슈타인은 한탄하는 듯이 말하며 하늘을 올려봤다. 양손을 꽉 쥐고 있다.


  “최악의 결과입니다. 라인하르트 폰 뮈젤은 탈출하고 지크프리드 키르히아이스는 전사했다. 라인하르트는 절대로 저를 용서하지 않겠죠.”

  지크프리드 키르히아이스? 그 이름에 이상한 것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다른 두 사람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들의 표정을 눈치챈 거겠지. 발렌슈타인이 냉소를 띠우며 말했다.


  “지크프리드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의 부관입니다. 라인하르트에는 미치지 못해도 언젠가 우주함대를 이끌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진 자입니다. 그리고 친우이며 심복이기도 하며, 그의 반신이기도 한…….”

  “…….”


  잠시 동안 침묵이 떨어졌다. 발렌슈타인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빤히 바라봤다. 로켓 펜던트? 그리고 고개를 올리고 느릿한 말투로 말말하기 시작했다.


  “라인하르트는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며 제국을 버린 배신자입니다. 이번엔 내게 졌습니다만 그대로 끝날 남자가 아닙니다. 반드시 저를 죽이고자 집념을 불태우겠죠.”

  “…….”


  “그가 무훈을 세워 지위가 올라가면 그만큼 그가 가지는 권한도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를 죽이겠죠…….”

  발렌슈타인이 어두운 웃음을 띠운다. 자조인가?


  “비관이 심하다. 귀관이라면 이길 수 있겠지?”

  격려하고자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은 어딘가 내던지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이길 수 없어요. 저따위 그의 앞에선 무력한 토끼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부터 쭉, 그가 힘을 얻게 될수록 저는 이길 수 없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간단히 짓밟히겠죠. 내기해도 좋습니다.”

  “…….”


  방에 부자연스런 침묵이 떨어졌다. 양 중령의 얼굴은 창백하다. 1시간 늦어 그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어째서 발렌슈타인이 그렇게나 자신을 탓했는가 알았겠지. 그리고 미하마 중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발렌슈타인을 보고 있다.


  “시트레 원수는 앞으로도 저를 최전선에서 쓰고자하겠죠. 그렇게 되면 라인하르트와 만날 기회도 늘어납니다…….”

  그 다음을 발렌슈타인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 뒤에 있을 말을 이해했겠지. 언젠가는 라인하르트 폰 뮈젤에게 죽는다…….


  “귀관들의 어리석음에 의해 저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유일하게 잡은 지푸라기도 거기에 있는 양 중령 때문에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귀관들은 저에게 사형집행 명령서에 싸인한 셈입니다. 이것이 반플리트 성역 회전의 진실입니다. 하이네센에 돌아가면 시트레 본부장에게 전해주세요. 발렌슈타인을 지옥에 떨어뜨렸다고.”

  냉소와 달관, 서로 섞일 수 없는 두 가지가 서로 섞인 이상한 말투였다.


  “소령, 우리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가. 무심코 튀어나온 목소리에 돌아온 건 냉혹할 정도의 거절이었다.


  “듣고 싶지 않고 들어도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나가세요. 저는 불쾌합니다. 애초에 제 입장에서 유쾌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웃기 시작했다. 희망을 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허무한 웃음소리였다……. 그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동맹시민이 되어주길 바랬는가……. 그 결과가 이건가……. 웃을 수밖에 없군. 바보같아서 웃을 수밖에 없어…….”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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