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5년 10월 21일. 이제르론 요새. 라인하르트 폰 뮈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병실에서 나온 뒤, 나는 자신이 굉장히 지쳤다는 걸 깨달았다. 뤼네부르크, 오프레서도 마찬가지겠지. 표정에 피로의 색이 있다. 모두 말없이 걸었다. 오프레서와는 도중에 헤어졌다.
헤어질 때 오프레서는 우리들에게 이 건에 대해 밖에 흘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입을 막았다.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대체 누구에게 한다는 건가? 듣는 것조차 끔찍한데 그걸 이야기하다니…….
제국을 지키기 위해 카스트로프 공작이라는 희생물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희생물은 더욱 많은 희생을 필요로 했다. 정신을 차리니 300만 명 이상의 희생이 발생했다. 키르히아이스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리고 300만 명을 죽인 발렌슈타인조차 그 희생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누님을 황제에게 뺏겼다. 하지만 살해당한 것이 아니었다. 허가가 필요하지만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자는 양친이 죽었다. 그리고 목숨의 위협을 받고 나라에서 쫓겨났다. 모든 걸 잃은 것이다. 지금은 배신자라고 멸시받고, 학살자, 피투성이라고 불리며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저 자는 거기에 합당한 자가 아니다. 저 자는 모두가 경의를 표해야 할 사람이다. 유능하며 성실하고, 신뢰를 거듭해온 남자……. 좀 더 저 자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바랬는가. 좀 더 잘 알고 싶었다.
그때, 나는 저 자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혹시 죽였다면 난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겠지. 오프레서가 막았던 것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들은 야만인이라도 살인자라도 상관없다. 제국을 지키는 군인이며 무인, 지킴이인 것이다. 그러니 그 명예와 긍지를 잃어선 안 돼. 그걸 잃으면 장갑척탄병은 그저 살인자, 야만인이 되고 만다…….”
그 말대로다. 장갑척탄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군인은 사람을 죽인다. 그렇기에 더더욱 명예와 긍지를 잃어선 안 된다. 이번 나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고 끝났다. 요행이라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요행이 두 번 연속되리라곤 할 순 없다. 앞으로 나 스스로가 조심해야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군에서 무훈을 올려 승진할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력을 가지고 황제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된다. 제국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 복잡하고 위험하다. 제국이 가진 어두운 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처럼 제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물을 준비하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앞으로 위를 향하려 한다면 그런 사람들과 호각으로 맞설 능력을 가지든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아군으로 삼아야 한다……. 명예나 긍지 따윈 인연이 없는 자들과 호각으로 싸울 것을 요구받는 날이 오겠지……. 나는 그런 자들과 싸우면서, 명예와 긍지를 지켜나가야만 한다.
...
우주력 794년 10월 22일. 우주함대 총기함 아이아스. 에리히 발렌슈타인.
눈을 뜨자 눈앞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아마도 병실이겠지. 병실 천장이라는 건 어찌된 영문인지 흰색이 많다. 일어나려고 하자 오른쪽 어깨가 아팠다. 생각났다. 난 이제르론 요새에서 총에 맞았다. 그 상처가 아픈 거다.
“대령. 발렌슈타인 대령. 눈을 뜨셨군요.”
사아야의 목소리다. 옆을 향하자 사아야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라인하르트의 앞에서 떠난 후의 기억이 없다. 아마도 정신을 잃었던 거겠지. 출혈에 의한 의식불명인가……. 그다지 자랑거리가 아니군. 지긋지긋하다.
사아야가 내 얼굴을 훔쳐보고 있다. 심한 얼굴이다. 눈 밑이 시커멓다. 이래서야 판다로군.
“여기는, 어딥니까?”
“총기함 아이아스입니다. 대령은 철퇴중에 정신을 잃었어요. 기억나지 않나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잃은 거다.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겠지…….
“얼마나 자고 있었습니까?”
“오늘은 22일이에요. 대령은 약 하루 한나절, 자고 있었습니다.”
하루 한나절인가……. 꽤나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사아야가 의사에게 연락을 넣고 있다. 그리고 함교에도 연락을 넣는 것이 들렸다……. 확인할 것이 있다. 하지만 일단 사아야가 연락을 넣는 것을 기다릴까…….
“철퇴작전은 어떻게 됐습니까?”
연락이 끝난 사아야에게 물었다.
“문제없이 끝났습니다. 제 1차 철퇴도, 저희들의 제 2차 철퇴도 적의 공격을 받는 일 없이 철퇴했어요.”
사아야의 표정엔 웃음이 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철퇴작전은 문제없이 끝났다. 다시 말해 로보스의 해임은 그 점에 관해선 잘못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문제는 전투가 어떻게 됐는지인데…….
“전투는 어떻게 됐습니까?”
“본대는 철퇴작전 지원에 전력을 쏟았어요. 아군에 커다란 손해는 없습니다. 당연하지만 적에게도 큰 손해는 없습니다.”
사아야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졌지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은 없다. 적의 손해를 입히지 못했다는 것이 유감이라는 거겠지. 안심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대위는 계속 여기에 있었던 겁니까?”
“예. 민폐였나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지쳤으리라 생각한 겁니다. 전 괜찮으니까 이만 쉬세요.”
내 말에 사아야는 기쁘게 웃었다. 그리고 의사의 진단이 끝나면 쉬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정말이지 심한 얼굴이다.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겠지…….
의사가 왔다. 30대 초반인 것 같은데 격하게 숨을 내쉬고 있다. 뛰어온 걸지도 모른다. 사아야가 자리를 비키자 거기에 앉아 갑자기 맥을 재기 시작했다. 난 어깨를 맞았다고, 맥을 재서 어쩌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출혈이 컸다든가, 내 몸이 건강하지 않다든가, 휴식을 제대로 취하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괜한 참견이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다. 열어 뻗쳤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내겐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제 214조를 진언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로보스는 명백히 총사령관에게 필요한 냉철함을 잃고 있었다. 내 철퇴안을 쓰지 않겠다면 그것도 좋다. 포크의 제안을 쓴다면 더욱 더 챙겼어야 했다. 냉철함을 보여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욕망을 우선했다.
그리고 현실과 욕망이 일치하지 않았을 때, 그래도 욕망을 우선하려고 했다. 저대로 계속 싸웠다면 로보스는 승산도 없이 육전대를 요새 안으로 계속 들여보냈겠지.
그리고 요새 밖에선 요새 돌입구를 확보하기 위해서 동맹군과 제국군이 격심하게 싸우게 됐을 것이다. 손해만 늘어가고, 종결이 보이지 않는 전투가 계속됐겠지. 경우에 따라선 그 전투 안에서 아군 사살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피아간의 손해는 경미……. 나쁘지 않은 결과다. 적 함대에 커다란 손해를 가했다면 육전대 철퇴를 의문시하는 사람이 나온다. 반대로 이쪽이 손해를 입고 있었다면 해임 그 자체를 의문시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손해는 경미. 둘 다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양과 와이드본은 혼전상태를 만들어서 철퇴작전을 원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었다. 혼전상태는 소모전이 된다. 당연히 피해가 커진다. 그리고 아군사살을 뮈켄베르거가 실시했다면 더욱 피해가 커졌을 것이다. 철퇴 그 자체가 비난받았겠지. 육전대를 죽게 내버려두는 편이 손해가 적었을 거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다. 결과론으로서 로보스가 옳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뮈켄베르거가 아군사살을 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했을지도 모르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뮈켄베르거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아군사살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걸 막기 위해선 혼전상태는 만들 수 없다. 충분한 이유다. 다들 납득했겠지.
문제는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경우다. 당연히 철수를 진언한 내게 비난이 향하겠지. 망명자니까 제국군과의 싸움을 피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녀석이 반드시 나온다. 적어도 로보스나 포크라면 그렇게 지적할 것이다.
그래서 철퇴작전을 지휘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르론 요새에 갈 필요가 있었다. 최전선에서 아군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이거라면 소극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키슬링이 있었던 것만이 예상외였다.
키슬링을 구하기 위해선 직접 라인하르트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승산은 있었다. 녀석들이 싫어하는 건 비겁하고 미련한 짓거리다. 그리고 용감한 행동과 신의를 상찬한다……. 적이든 아군이든 다르지 않다. 대충 7할 정도의 확률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바그다슈와 사아야가 따라온 것은 예상외였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굴렀다. 무심코 라인하르트를 지나치게 도발했다. 저 두 사람 덕분에 적들도 분노를 삭힌 것 같다. 나도 아연했었다고. 웃음을 참는 데에 필사적이었다. 총에 맞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다들 생각하겠지.
로보스든 포크를 위해서 군법회의에서 총살형을 당할까보냐! 처벌을 받는 건 개구리들이다. 황소개구리는 틀림없이 퇴역이겠지. 청개구리는 질병요양, 예비역 편입이다. 병원에서 나와도 아무도 상대하지 않겠지. 그러는 편이 세상을 위해서 좋다.
키슬링. 넌 지금 어쩌고 있나? 무사한가? 괴로워하고 있진 않나? 너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것이 유감이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난 제국에 돌아갈 수 없다…….
“밴플리트의 학살자”, “피투성이 발렌슈타인”. 곰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증오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밴플리트에서 제국인을 3백만 명은 죽였겠지.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사아야가 나를 제국으로 데리고 돌아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오프레서나 뤼네부르크, 라인하르트, 누구도 긍정하지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제국인이었던 사람이지 더 이상 제국인이 아니다. 엄한 현실이다.
나는 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돌아가고 싶었다. 아마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겠지. 그렇기에 이번 이제르론 요새공략전에서도 좀처럼 진지해지지 못했다…….
내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 나라에서 살아야만 한다. 그걸 뼈에 세기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동맹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을 수 없다……. 이 이상 망설일 순 없겠지.
“발렌슈타인이 눈을 떴다고?”
문을 기세 좋게 열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이런이런. 곧바로 동맹인으로서 살아갈 각오를 시험받게 생겼다. 여긴 병원이라고? 바보가. 병원에선 조용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건가. 너는……. 적당히 상대하고 내쫓을까……, 이게 도움이 되겠군…….
...
우주력 794년 10월 22일. 우주함대 총기함, 아이아스. 미하마 사아야.
문을 기세 좋게 열고 와이드본 대령이 들어왔습니다. 그 뒤에 양 대령이 따라옵니다. 와이드본 대령이 내게 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발렌슈타인이 눈을 떴다고?”
“네. 지금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있어요.”
대령은 내 말에 불만스럽게 그 자리에 멈춰섰습니다. 군의 진찰을 기다리겠다는 거겠죠. 내 위치에선, 와이드본 대령의 얼굴도 발렌슈타인 대령의 얼굴도 보입니다. 지금까지 빙그레 웃음을 띠우고 군의의 말을 듣고 있었던 발렌슈타인 대령이 얼굴을 찡그리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발렌슈타인 대령과 군의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진찰이 끝난 것 같습니다. 군의가 우리들에게 다가왔습니다.
“발렌슈타인 대령은 원래 몸이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다지 무리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죠. 아무쪼록 느긋하고 안정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고 군의는 떠나갔습니다.
안정이라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저주스럽다는 표정을 띠우고 와이드본 대령이 발렌슈타인 대령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억누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어이, 그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그거?”
“스스로 포로교환을 한 일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죽었을 거라고!”
와이드본 대령이 화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좀 더 화내주세요. 발렌슈타인 대령은 정말 무리만 한다니까요!
“살아있어요. 보시는 대로.”
긴장감은 조금도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양 대령이 뒤에서 기가 막혀하고 있습니다.
“결과론이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렇지 않아요. 승산이 있어서 한 겁니다.”
거짓말입니다. 절대로 거짓말입니다. 애초에 발렌슈타인 대령은 총에 맞은 겁니다. 게다가 대령은 뮈젤 준장에게 자신을 쏘라고 했었습니다. 준장은 아주 조금만 더 있었으면 대령을 쏠 뻔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보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승산이라고?”
“네. 100퍼센트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구요.”
“100퍼센트? 거짓말하지 말라고. 바그다슈 중령과 미하마 대위에게 들었어.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뻔했다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더 말해주세요. 정말 큰일이었다니까요. 나와 바그다슈 중령도 그땐 죽음을 각오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돌아올 땐 대령이 의식을 잃고 말아 죽은 건 아닐지 정말 걱정했습니다. 난 엉엉 울고 말아서, 중령에게 혼나면서 대령을 옮겼습니다. 중령도 반 울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죽을뻔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습니다. 문제는 없어요. 바그다슈 중령과 미하마 대위에겐 감사하고 있습니다. 생존률 100퍼센트가 120퍼센트 정도가 됐으니까요.”
발렌슈타인 대령이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와이드본 대령은 눈썹을 치켜들고, 양 대령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뭐, 무리를 하는 건 이번뿐입니다. 앞으로는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주세요……. 조금 졸리군요. 아까 군의가 준 약 때문이겠죠. 잠깐 쉴 테니까 혼자 있게 해주세요. 군의에게선 모쪼록 안정하라고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 대령은 눈을 감았습니다. 군의에게 안정하라고 말하게 한 건 틀림없이 발렌슈타인 대령입니다. 와이드본 대령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럴 정도로 대령은 방심할 수 없는 악질입니다.
'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 > 망명편(완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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